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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개 따먹기 법칙 - 제8회 푸른문학상 수상작, 4학년 1학년 국어교과서 국어 4-1(가) 수록도서 ㅣ 작은도서관 33
유순희 지음, 최정인 그림 / 푸른책들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종업식을 하고 현재 학년말 방학 중이다. 지금쯤 아이들은 새학년에 사용할 학용품을 준비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전학년에 썼던 걸 다시 써도 무방하지만 왠지 새 분위기로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에 새학년이 될 때마다 새로운 학용품을 샀던 기억이 떠오른다. 학용품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바로 연필과 지우개가 아닐까 싶다. 필통 안에 뾰족하게 깎은 연필을 가지런히 정렬하고, 깨끗한 지우개를 채워 놓으면 왠지 공부가 잘 될 것 같은 기대감이 생긴다. 실제로 교실에서 아이들을 살펴 보면 필통 안이 깨끗하게 잘 정리되어 있는 아이들이 반에서 성실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는 학생인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다.
이 책은 학용품의 대명사인 지우개를 가지고 지우개 따먹기를 할 때 필요한 법칙들을 알기 쉽게 설명해 주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지우개 따먹기 법칙으로 보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 보면 친구 관계 즉 대인 관계에서 필요한 원칙들을 이야기해 주고 있다. 새학년을 위해 새로운 학용품을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새로운 선생님, 새로운 친구들을 어떻게 대할 지 이 책을 읽어 보면서 마음을 준비하는 자세도 학년말 방학 때 꼭 필요하리라고 본다.
책에서는 지우개 따먹기 대장 상보와 상보의 짝꿍 홍미가 교대로 화자가 되어 지우개 따먹기 법칙 한 개씩을 알려 주고 있다. 지우개 따먹기 법칙은 모두 10가지인데 순서대로 나오지 않는다. 그때 그때 상보와 홍미가 이야기하는 상황에 어울리는 법칙을 들려 주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편의상 순서대로 써 본다면 다음과 같다.
1. 꼭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은 버릴 것 2. 가벼운 지우개를 사용할 것
3. 지우개가 엉뚱한 방향으로 가더라도 미리 겁먹지 말 것 4. 상대방에게 예의를 지켜라
5. 납작한 지우개는 피한다. 6. 지우개 따먹기는 둘이 해야 한다.
7. 한 가지만 생각하지 말 것 8. 집중하기
9. 지우개 크기는 비슷해야 한다. 10. 지우개 따먹기를 할 때 상대는 나의 친구이다.
이 법칙들은 상보와 상보 아빠가 하나하나씩 만들어낸 법칙이다. 상보는 반에서 소위 모범생, 우등생이 아니다. 입 냄새가 구리게 나고, 양말은 벗어서 책상 밑에 놔두며, 준비물과 숙제도 잘 안 해오며 공부도 못한다. 심지어 지우개 따먹기 경기 중 그만 똥을 팬티에 싸버려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기도 하는 그런 보잘 것 없는 아이이다. 상보는 오직 지우개 따먹기를 잘할 뿐이다. 반에서 가장 잘나가는 준혁이조차도 지우개 따먹기에서는 상보한테 지고 만다. 상보의 짝꿍 홍미 또한 상보와 마찬가지이다. 반에서 별 존재감 없이 지내는 그런 아이 중의 하나이다. 친구들 끼리 피구를 할 때도 서로 데려가지 않으려고 하는 그런 아이이다. 상보와 홍미라는 두 아이. 반에서 존재감 없이 살아가며 뭔가 부족함이 많아 보이는 두 아이가 지우개 따먹기를 통해 다른 아이들과 소통하며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을 그린 따뜻한 동화이다.
책을 읽은 후 생각해 보니 근래 들어 교실에서 상보처럼 지우개 따먹기를 하는 아이들을 거의 보기 어렵다. 책을 읽는 내내 지금 교실의 모습보다는 내가 학교 다닐 때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건 바로 그런 이유에서일 거다. 놀이를 하면서 아이들은 서로를 알게 되고 상대방을 이해하게 되며 서로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다. 교육 현장에서는 이런 놀이문화들이 사라지고 있어서 안타깝다. 아이들은 놀면서 크는 건데 말이다.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면 사회성 내지는 대인 관계를 볼 수 있다. 꼭 끼지 못하고 한쪽 구석에 있는 아이, 놀이를 하다가 성질을 부리는 아이, 지나친 승부욕을 가진 아이 등등. 놀이는 교사가 그 아이의 내면을 관찰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아이들은 놀이를 하는 거지만 놀이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대인 관계에서 가져야 할 것들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쉬는 시간에, 하교 후에 친구들끼리 실컷 놀아야 대인관계에서 지켜야 할 법칙들을 습득할 수 있는데 학원이나 뭐다 해서 놀 시간조차 없는 현재의 아이들이 불쌍하다.
흔한 학용품 중의 하나인 지우개를 가지고 아이들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잔잔하게 그렇지만 대인관계에서 필요한 법칙들을 하나하나 에피소드을 통하여 짚어준 작가의 세심함이 보인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준혁이가 가져온 이탈리아제 맘모스 지우개의 그림에서 글자가 한국말로 되어 있는 그림은 잘못 된 게 아닌가 싶다. 이탈리아제 지우개가 한국말로 쓰여져 있다는 것은 납득이 안 된다.(8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