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순난앵 열린어린이 창작동화 13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지음, 홍재웅 옮김, 일론 비클란드 그림 / 열린어린이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도봉도서관에서 린드그렌의 이름이 있길래 얼른 집어 들었다. <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으로 유명한 스웨덴 작가 린드그렌. 그 이름만으로도 얼른 이 책이 읽고 싶어졌다. 

삐삐 시리즈를 즐겁게 읽었던 나 같은 부류의 사람이라면 이 책을 보면서 언뜻 < 린드그렌 책 맞아?> 라고 다시 저자의 이름을확인하게 될 거다. 이 책은 분명 삐삐 시리즈의 경쾌함, 발랄함과는 거리가 멀다. 계절로 표현하자면 삐삐 시리즈가 이글이글 작열하는 여름이라면 <그리운 순난앵>은 허허벌판에 차가운 눈이 내리는 쓸쓸한 겨울이다. 

순난앵. 이건 뭐야? 사람 이름 같기도 하고 동물 이름 같기도 하고. 알쏭달쏭하다. 본문을 보니 스웨덴의 지명이다. 역자의 해설을 보니 <순난>이라는 말은 스웨덴어로 '남쪽의' 또는 ' 남쪽으로부터 오는' 이라는 뜻을 가진다고 한다. '엥'은 잔디와 풀이 많이 나 있는 풀밭 혹은 목초지를 뜻한다고 하니 '순난앵'은 ' 따스한 바람이 부는 남쪽 풀밭'을 떠올리게 한다.  결국 '그리운 순난앵'은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가난하고 , 헐벗고, 굶주리고, 병에 걸린 가엾은 어린이들에게 '희망의 자리'를 뜻한다. 

책은 네 편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 그리운 순난앵> < 라임오렌지 나무가 노래해요.> < 매 매 매! > < 에카의 융케르 닐스> 모든 이야기 속의 주인공은 앞서 말했듯이 가난한 어린이들이다. 

지금은 북유럽의 선진국인 스웨덴도 이렇게 가난한 시절이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가난에 찌든 어린이들이 각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나온다.  <그리운 순난앵>에서는 고아가 된 남매  마티아스와 안나,  <라임오렌지 나무가 노래해요>에서도 마찬가지 고아원에 보내진 말린,< 매 매 매 >에서는  가난한 목장 집의 아이 스티나 마리아,  <에카의 융케르 닐스>에서는 언제 죽을지 모를 정도로 건강이 나쁜 닐스. 이런 아이들이 주인공이다. 그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는 어른인 내가 봐도 가슴이 먹먹할 정도로 안쓰럽기 짝이 없다.  

책 제목이 된 <그리운 순난앵>을 살펴 보자.

순난앵 마을에 살던 남매는 고아가 되자 멀리 농가에 보내어져 우유를 짜고 외양간을 깨끗이 청소하는 일을 한다. 그들이 먹는 거라곤 오직 청어를 절인 소금물에 감자를 찍어 먹는 게 고작이다.  남매는 어서 겨울 학교가 열려서 그곳에 가서 글을 배우는 것이 꿈이다. 겨울 학교에 가면 이 지긋지긋한 생활이 좀 나아질까 싶었지만 맛있는 도시락을 싸 온 아이들은 가난뱅이 남매를 놀려 댄다. 농장으로 돌아 오는 길에 빨간 새를 만나고 그 새를 쫒아가 보니 이상한 틈 속에 문이 보인다. 먹지 못해 깡마른 남매는 그 문으로 들어가 본다. 그런데 그곳은 추운 겨울이 아니라 여름이고 개울에서 놀고 있는 여러 아이들은 이 곳을 <순난앵>이라고 한다. 이 곳에서는 남매도 다른 아이들처럼 물에서 놀 수 있고, 피리를 불 수 있으며 나무배를 만들어 놀다가 배가 고파지면 어머니라고 불리는 사람이 만들어 놓은 맛있는 핫 케이크를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다시 농부의 집으로 돌아가려면 빈 틈으로 나오면 된다. 그렇게 겨울 학교가 열리는 동안 남매는 순난앵을 방문하여 그들의 슬픔과 외로움을 견뎌 낸다. 마지막 겨울 학교가 열리던 날! 이제 더 이상 순난앵이란 곳에 올 수 없다는 생각에 남매는 가슴 밑바닥까지 슬퍼진다. 겨울 학교가 끝나면 예전 처럼 다시 농부의 집에서 들쥐의 잿빛 같은 생활을 해야 하니깐 말이다. 빨간 새를 쫒아 순난앵에 들어 온 남매는 한 번 닫히면 절대 열 수 없다는 그 문을 조용히 닫는다.  어린 나이에 부모도 없이 고생하며 굶주리며 살았던 남매는 따뜻한 남쪽 풀밭이 많은 곳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더 이상의 불행은 없기를 바란다.

나머지 세 편의 이야기들도 가난한 어린이들이 겪게 되는 고통과 함께 그들이 경험하는 판타지가 나온다. 어린이들이 경험하는 판타지는 그들이 가장 원하는 것들의 표상이기도 하다.  마티아스와 안나에겐 순난앵이 그렇고, 말린에게는 라임오렌지 나무가 그렇고, 스티나 마리아에게는 희고 예쁜 양들이 그렇고, 닐스에게는 성에서 망누스 왕대신 자신이 죽었던 경험이 그렇다. 이런 판타지들을 통해 현세에서는 외롭고 힘들었던 그들의 고통이 완전히 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더 이상 그 불쌍하고 가엾은 어린 아이들이 고통 받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삐삐 시리즈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이지만 린드그렌이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재주와 어린이들을 향한 따뜻한 마음이 담겨진 참 포근한 책이었다. 그림 또한 그런 분위기에 맞춰 펜으로 그려졌는데 그림에서도 순난앵을 기다리는 어린이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잘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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