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들 열린책들 세계문학 117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석영중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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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인기리에 종영한 <시크릿 가든>을 보면서 남편과 난 우리 나라 드라마에 왜 부자가 나와야 성공하는지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하였다. 

언젠가부터(꽤 오래 됨) 드라마에 남자 주인공이 부자 그것도 그냥 부자가 아니라 재벌이어야만  시청률이 높아지는 공식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이번 시크릿 가든도 예외는 아니다. 남자 주인공은 재벌, 여자는 가난하지만 자존심 하나로 버티는 그런 똑같은 설정에 싫증이 날 법도 하건만 나를 비롯해서 대부분의 여자들은 이런 드라마를 좋아한다. 우리 부부는 여자의 마음에 신데렐라 콤플렉스와 함께 대리만족이 있기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히트한 드라마 치고, 거꾸로 된 설정은 하나도 없다. 즉 여자 재벌과 가난한 남자인 경우는 없다.  왜 이런 장황한 설명을 하냐면 <가난한 사람들>을 만약 드라마로 만든다면 단연 실패할 거란 이야기를 하고 싶기 때문이다. 남녀 주인공 모두 극빈층이니 이 책이 드라마로 만들어져 우리나라에 방영된다면 보나마나 조기종영하고 말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책이라서 얼마나 다행인가!

문인들이 가장 롤 모델로 삼는다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처녀작이다. 이 책은 가난한 두 남녀가 서로 편지를 주고 받는 서간체로 쓰여져 있다. (러시아 사람 이름은 너무 어려워 잘 못 외워서 그냥 남자와 여자로 말하겠다.)  남자는 하급 관리로 아주 가난한다. 여자는 고아로  가난하며 몸 또한 연약하기 그지 없다. 남자는 여자의 먼 친척으로서 그녀를 물심양면 도와 주는 걸 기쁨으로 삼는다. 여자는 그 남자의 도움을 부담스러워 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도움을 받고 지낸다. 두 사람은 연인 같기도 하고, 친구 같기도 하고, 부녀 같기도 하다. 어떤 관계이든지 간에 두 사람은 서로를 걱정하고, 서로를 도와 주고, 서로 의지하며, 서로를 존중한다. 둘 다 하루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가난 속에서도 책을 가까이 하고, 학문에 대한 탐구 욕구를 불태운다. 남자는 자신이 빚을 내서라도 연약한 여자를 위해 도와 주려고 한다. 내용 중에서 남자의 궁상맞은 옷차림과 중대한 실수를 포용으로 감싸주는 각하의 모습은 감동적이다. 우리 주변에 그와 같은 상관이 존재한다면 저절로 충성심이 우러나오겠지.  각하가 준 돈으로 본인을 위한 옷을 사고, 또 얼마는 여자에게 보내는 남자의 모습은 지고지순한 사랑을 느끼게 해 준다. 가난하지만 언제까지 서로 도우면서 살 수 있을 것 같던 그들에게도 이별이 찾아 온다. 여자가 바로 부자와 결혼을 하여 먼 곳으로 떠나기로 결심한 거다.  남자는 끝까지 그녀의 결혼식을 위한 허드렛일을 도와 준다. 여자가 마지막 눈물로 쓴 편지를 읽어 내려가며그녀를 붙잡아야 된다는 남자의 울부짖음은 이미 소용이 없다. 

가난하다는 공통점 말고 남자와 여자는 참 다르다. 여자는 지식인이고, 젊다. 남자는 배운 것이 없으며, 늙었다. 남자의 말대로 그녀와의 편지 교환을 통해 남자는 점점 지식인이 되어 가고, 책도 읽게 된다. 예전에 여자가 함께 있었던 연약한 대학생 남자 때문에 책을 읽었던 것처럼 말이다. 두 남녀 사이의 진한 애정이 그려지진 않지만 두 사람의 편지를 통해서 둘이 얼마나 상대방을 존중하고, 사랑하는지 느껴진다. 하지만 여자는 남자를 선택하지 않았다. 단순히 그가 가난해서일까?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여자는 남자를 존경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여자는 남자의 순수한 사랑을 충분히 알지만, 남자에게서 존경할 만한 그런 것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떠나겠다고 결심했을 것이다.  이제까지 남자를 이용해 먹고 결국 남자를 떠났다고 욕할 수도 있겠지만 난 여자가 돈 때문에 그런 결정을 내린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여자 입장에서 물질적으로 의지하는 것도 힘이 되겠지만 이 여자는 물질보다는 지적 욕구가 많은 사람 같아 보인다. 남자에게서 지적 욕구가 채워지지 않기 때문에 결국 헤어지는 걸로 결정을 내린 것이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드라마와 비슷한 시기에 읽어서인지 비교가 많이 되는 작품이었다. 가난한 사람들만 나오더라도 이렇게 흡인력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소중한 작품이었다.억지로 해피엔딩을 짜맞추는 우리나라 드라마보다 비록 새드엔딩이지만 두고두고 기억되는 작품이 오래도록 사랑 받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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