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의 규칙 (문고판) 네버엔딩스토리 24
정복현 지음 / 네버엔딩스토리 / 2011년 2월
평점 :
품절


 여학생들의 우정 문제를 잘 다룬 작품 하면 떠오르는 게 바로 <양파의 왕따 일기>였다. 그 작품을 작년 초 읽으면서 학교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다는 것과 왕따의 심각성을 느낄 수 있었다. 양파에 반기를 들었던 친구가 결국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고, 그 친구가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도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던 주인공의 모습은 마치 그대로 어른 사회의 모습인 것 같아서 섬짓하기도 했다. '양파'로 대표되는 거대한 세력 앞에 개인의 인권은 무시되고 심지어 처단되는데도 그걸 그냥 바라만 볼 수 밖에 없는 무기력한 개개인의 모습이 잘 드러난 작품이었다. 

 그런데 이 작품 또한 초등학교 여학생 사이에 일어나는 일들을 통하여 사회계층 간에 벌어지는 일들을 투영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해미'로 대표되는 빈곤층과  은지로 대표되는 상류층. 이렇게 양 계층 사이의 일어날 수 있는 갈등을 학교라는 장소를 빌려 보여주고 있었다.  

 할머니와 단둘이 살아가는 해미. 단짝이었던 소미가 전학을 가게 되면서부터 그 아이의 외로움과 방황이 시작된다. 쉽게 누구에도 다가갈 수 없고, 누구 하나 끼워주지 않는 해미에게 어느 날 가장 인기 있는 은지라는 아이가 먼저 손을 내밀어 온다. 은지는 여러 번 반장도 하고, 집도 잘 사는데다가, 공부 또한 잘 하는 소위 잘나가는 '엄친아'이다. 해미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그런 존재가 친구가 되자고 먼저 손을 내밀어 온 것이다. 처음엔 거절하던 해미도 어느덧 '최강미녀파'에 합류한다. 하지만 그런 은지의 손을 잡은 해미였지만 그녀가 기대했던 대로 장미빛 나날들은 오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과 어울리면서 해미는 할머니 지갑에서 돈을 슬쩍 하기도 하고 , 그 돈을 메우려 아르바이트까지도 하는 곤고한 나날들 뿐이다. 더구나 은지의 라이벌인 수호의 플루트를 훔친 범인으로 오해도 받고, 심지어는 담배 피는 불량아로 낙인까지 찍히게 된다. 소미와 단짝이었을 때는 절대 일어나지 않았던 일들이 해미에게 마구 일어난다.  그건 당연했다. 애시당초 '최강미녀파'는 그렇게 이용하려고 해미에게 손을 내민 것이니까. 노랑머리 언니의 말처럼 둘은 애시당초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없는 관계였던 것이다. 우정의 규칙이란 게 어느 한 쪽에서만 적용되어지고 지켜지고 있었으니까. '양파'나 '최강미녀파'나 모두 막대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데다 다수이기도 하다. 그런 그들 앞에서 해미 같은 약자가 덤벼 들어도 승산은 없다. 해미처럼 그들과 어울린다 해도 상황은 별 반 다를 게 없다. 그렇게 누명이나 뒤집어 쓰고, 그들의 바람막이가 될 뿐. 그래서 해미는 점점 더 그들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든다.  결국 해미는 일본의 야쿠자들이 자신의 손가락을 자르고 조직에서 빠져나오듯이 그런 결연한 각오로 그들을 대신해 스스로 담배를 핀 장본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는 '최강미녀파'에게서 빠져나온다. 

대학에서도 강남에 사는 학생들끼리, 강북에 사는 학생들끼리 친구 관계가 형성된다고 한다. 농담이면 좋겠지만 출신 성분을 따져서 친구를 만든다는 건 사실이다. 초등학교도 마찬가지다. 끼리끼리 논다. 계층을 초월해 친구가 되는 건 한낱 이상에 불과하다.  특히 해미 같이 불우환 환경의 아이는 더욱 더 그렇다. 말이 없고 내성적이거나, 성적이 별로인 아이들 역시 외톨이로 지내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런 아이들은 '최강미녀파' 같은 권력의 표적이 되기 십상이다.  

간혹 뉴스에서 왕따를 견디지 못해 자살하는 아이들의 소식을 들으면 왠지 남의 일 같지가 않다. 실제로 학교에서 소소하지만 때론 심각한 왕따 사건들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미는 그래도 씩씩하게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 '최강미녀파'로부터 벗어나려고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경우도 있으며, 최악의 경우 집단 왕따를 당하기도 한다.. 

겨울 방학 전. 교무실로 가는데 통로에서 어떤 아이가 몇 명의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울고 있는 걸 보았다. 그냥 지나치기가 그래서 왜 우냐고 묻자 언니들이 자신을 때리고 물건을 빼앗아갔다는 것이다. 예닐곱명의 고학년들이 그 여자 아이를 둘러싸고 있었는데 상황이 좀 심각해 보였다. 고학년 아이들은 이 아이가 그냥 자기 혼자 우는 거라면서 슬슬 자리를 피하기 시작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교무실 가서 자초지종을 들어보자 하니 아이들이 냅다 도망치는 게 아닌가! 얼른 한 명을 붙잡아 울던 아이와 함께 교무실로 데리고 갔다. 상담 선생님께서 해결하시겠다고 하셔서 교실로 돌아왔지만 울던 아이가 내내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담임께 전화를 드렸더니 그 아인 4학년 전체의 왕따 학생이라고 하신다. 그 아이가 너무 불쌍했다. 언니들에게 둘러싸여 고통스럽게 울던 아이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았다. 그 아이는 얼마나 자주 그런 일들을 교실이나, 화장실 아니면 복도나 운동장, 학원에서 당했던 것일까? 

 나와 생김새가 다르고, 생각이 다르고, 환경이 다르다고 해서 일방적으로 무시를 하고 고통을 주는 건 옳지 않다. 해미가 '최강미녀파'와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없었던 이유, 그 '4학년 아이'가 전체 왕따를 당하며 고통받을 수 밖에 없었던 가장 근본적 원인은 바로 상대방을 제대로 이해하고 존중하려는 마음들이 결여된 탓이리라. 교사로서 이 책에 나온 선생님처럼은 절대 되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해 본다. 소수의 의견도 기꺼이 들어 줄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가져야 겠다고 또 다짐해 본다. 이제라도 해미처럼 어디에도 끼지 못하고 혼자 교실에 멍하게 앉아 있는 아이를 보면 먼저 다가가 말을 붙여 봐야겠다. 내 손길이 미치치 않는 어딘가에서 4학년 여자애처럼 또 어떤 아이가 누군가에게 고통을 당하고 있지는 않은지 늘 두렵다. 그런 아이들까지 두루 살펴볼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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