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는 바보가 아니다 우리들의 작문교실 14
안도현 지음, 김준영 그림 / 계수나무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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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냠냠>이란 동시집으로 맛깔스러운 동시들을 우리에게 전해 준 안도현 님의 새로운 창작 동화이다. 

 

알리, 무하마드 알리, 권투선수 무하마드 알리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다로 유명한 세계 챔피언  알리.

스포츠에 문외한인 사람이더라도 누구나 한번은 이름을 들어봤음직한 그 이름 알리.  

하지만, 이 책은 그 권투 선수 알리에 대한 책은 아니다. 나도 처음에는 그 알리에 대한 이야기인 줄 알고 깜빡 속을 뻔 했다. 

알고보니, 그냥 생김새가 비슷하다고 해서 '알리'라는 별명을 갖게 된 어릴 적 친구 김판수에 대한 이야기였다.  

항상 콧물을 코에 달고 다니던 아이, 꾀죄죄한 옷차림에 항상 땅을 보고  걷던 아이. 

며칠 만에 돌아온 아버지에게 가죽 허리띠로 매를 맞으면서도 히죽히죽 웃던 아이. 

공부시간에 똥마렵다고 화장실 간다고 나갔다가, 나비를 쫒아가 버리는 아이.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애가 절친에게 편지를 썼는데도 질투하기는 커녕 답장 잘 써 주라고 말하는 아이.  

그런 아이가 '알리'란 별명을 가진, 판수다. 

당연히 김판수는 아이들에게 바보라고 놀림을 받는다.    

그렇게 다들 알리를 바보라고 생각했지만 화자는 알리가 바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바로 이 책에 나온 이야기들은 그렇게 왜 화자가 '알리'가 바보가 아니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겉모습이나 하는 행동거지들을 보면 딱 바보인데 

그 안을 들여다 보면 그렇게 행동할 수 밖에 없는 알리만의 철학이 있다. 

예를 들어 항상 땅을 보면 걷는 것도 혹시나 돈이 떨어져 있을까 봐 아님 자신이 없어서가 아니라

행여 자기도 모르게 벌레를 밟을까 봐  조심조심 걷는 것이었고, 

수업 시간에 화장실을 갔다가 왜 나왔는지 까맣게 잊고 그냥 나비를 쫓아가버렸던 것도 

수업 시간은 내일도 찾아 오지만, 나비는 지금이 아니면 다시 못 보니까 라고 대답하는 알리. 

그렇게 겉으로만 보면 바보처럼 보이지만   

'알리'가 말하는 이유를 들어보면 언제나 사물을 새롭게 보는 그만의 시각이 드러나면서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지는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이런 아이를 그냥 <바보>라고 단정지을 수 있을까?  

(실상 알리는 공부도 그렇게 못하지는 않았는데... ) 

진짜 바보들은... 

알리가 아버지에게 그렇게 이유 없이 맞는데도 말리지 않았던 그 마을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알리가 공산당에 대해서 모른다는 이유만으로 가죽잠바 샘으로부터 그토록 모진 벌을 받는데도 가만히 있었던 

화자를 비롯한 그 반의 아이들이 아니었을까? 

화자가 마을을 떠나야 하는 알리와 나눈 마지막 대화에서 생각했던 그대로... 

 

그런데 책을 덮으며 정말 '바보란 게 뭘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바보는 그냥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보자면 자기 것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사람을 말한다. 

아무래도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지만 모두가 다 약삭빠르고 계산에 능한 사람들이기에 또 그렇지 않으면 

이 사회에서 생존을 보장할 수 없는지라 더더욱 자기 것을 제대로 챙길 줄 모르는 사람은 바보라고 놀림을 받는 것 같다.

솔직히 지금 우리 세상은 그런 자들로 넘쳐나고 언제나 타인들을 자신의 배를 불려 줄 먹잇감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비일비재하다.

그런 사람들의 눈에 오로지 타인에 대한 사랑, 배려 그리고 헌신만이 있는 사람들은 스스로 먹잇감이 되려고 자기 입으로 

걸어오는 바보들로 보일 수 밖에 없다. 

알리를 바보라고 바라보았던 어른들의 눈이, 반친구들의 눈이 바로 그랬다. 

하지만 알리가 그렇게 바보처럼 보였던 이유는 우리가 그의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알리가 그 어른들 보다, 반친구들 보다 더 멀리 더 깊이 세상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친구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온 세상을 자기 몸 처럼 사랑하고 그렇게 온 세상을 자기 안에다 품은 친구인지라 

그 어느 것 하나 자기와 별개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아낌없이 배려하고 내어주었으니 

언제나 제 주머니 속에 든 것만 헤아릴 줄 밖에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당연히 바보로 보일 수 밖에 없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바보에 대한 관점을 바꾸게 되었다. 

그러니까 바보라는 것은 단순히 지능지수가 모자른, 그런 '반편이'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 보다 더 멀리 더 높게 그리고 더 깊이 세상을 바라봄으르써 세상을 자기 품에 가득 안고 

그 모든 것은 제 것 처럼 여길 줄 아는 사람이 '바보'라고 말이다. 

배려와 사랑이 넘쳐 흘러 사람을 비롯한 모든 다른 생명들이 행복해지지 않고서는 자기도 행복해질 수 없는  

사람이 바로 바보라고 말이다. 그렇게 바보는 지은이가 첫 머리에 써 놓은 대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행복해지는지, 어떤 꿈을 꾸는 게 삶에서 중요한지, 마음먹은 꿈을 이루려는 자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 지'에 대한 것이며 진정한 바보는 그러한 자세를 제대로 잘 알고 있는 사람이란 걸 

새삼 '바보'라는 말에 감동까지 느낄 정도로 깊이 깨닫게 되었다. 

 

  알리는 바보가 아니었지만 그렇게 또 바보였다. 

세상 사람들이 바라보는 방식으론 바보가 아니었지만 진정한 의미에서는 바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알리를 바보라고 놀렸던 세상 사람들은 그들의 잣대에 의해서도 과연 바보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언제나 제 것을 잘 챙긴다며 스스로 바보가 아니라고 자부했던 그들은 사실은 그들이 놀렸던 그 바보들이 아니었을까? 

마치 이에 대답이라도 하듯이 마지막에 화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그 시절 우리는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많았다. 우리가 아는 것이라고는 부모나 선생님 같은 어른들에게 고분고분해야 하고, 

 이 세상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가장 존경해야 하고, 반대로 공산당을 가장 증오해야 한다는 것 정도였다. 궁금한 게 있어도  

함부로 질문을 하지 못하게 어른들은 우리의 입이 무거워지기를 바랐다. 알리네 아버지가 알리를 피멍이 들도록 때려도 아무 

 간섭하지 않았으며, 학교에서 가죽잠바가 아이들을 꼼짝 못하게 다루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고, 나쁜 소문 때문에 알리네가 

 이사를 가야 하는 일이 벌어져도 이웃들은 누구 하나 동정을 보내거나 연민의 감정을 내비치지 않았다. (P.134) 

  

 그렇게 자기 것을 잘 챙긴다고 스스로 똑똑하도 여겼던 세상 사람들 조차도 더 큰 거짓말에 놀아난 바보들이었다고... 

 그런데 이 고백은 40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고백이기도 하다. 

 그 시절 그들이 그렇게 타인의 고통에 무관심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서슬퍼런 권력에 자기의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 했기 때문

이듯이 지금의 우리도 여전히 내어주기 보다는 악착같이 제 것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살아가니까 말이다. 

아직 우리는 나눠줌으로서의 행복 보다는 쌓아놓는 것에서의 안도감을 더 좋아하고 나를 죽여서 남을 배려하기 보다는 무시 

당하지 않으려 먼저 남을 업신여기기 좋아한다. 경쟁에서 배려는 언제나 자신의 발목을 잡는 것으로 여기고 더불어 행복해지 

기 위해 나를 희생하기 보다는 나만 행복하기 위해 악착같이 움켜지려고만 든다. 알리가 가죽잠바 샘에게 피멍이 들도록 맞는 

데도 누구하나 나서지 않았듯 지금의 우리도 그런 불의한 일을 만나도 스스로 나서서 표적이 되기 보다는 누군가 먼저 나서서 

무임승차하려고만 든다.  

 지하철에서 내가 필요한 자리는 서 있는 만큼이지만 그 나머지 부분이 없다면 전혀 움직일 수 없듯이 사실 세상은 모든 게  

연결되어 있다. 내 것만 악착같이 지키려 다른 생명들을 또 타인들을 희생시킨다면 그것이 언젠가 부메랑이 되어 자신의 뒤 

통수를 치게 된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은 전혀 모른다. 그저 자기만, 바로 눈 앞의 것만 세상의 전부라고 여기는 식견이 좁은 

탓이다. 그런 의미에서 좁은 세상 밖에는 품을 줄 모르는 우리들은 우리들 잣대에 의해서도 바보인 것이다. 

 

 그래서 알리의 마지막을 읽으면서 더욱 부끄러워진다. 

 그렇게 마을을 떠난 알리...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알게 된 그에 대한 소식은 최근 노조위원장이었던 그가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 

 113일 동안이나 크레인 에서 농성을 하다가 끝내  하늘 나라로 가버렸다는 것이었다. 

 아... 그는 그렇게 끝까지 남들을 위해 살다가 나비가 되어 하늘로 날아갔다. 

 그 마지막을 읽으면서 울컥 치밀어 오르는 슬픔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새 나도 몰래 스며든 눈물에  

 눈 앞에 하얗고 작은 날개를 달고 티없이 맑고 푸른 저 하늘로 훨 훨 날아가는 나비가 보이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자기가 품었던 세상과 완전히 하나가 되어버린 그가 보이는 것만 같았다. 

 

 안녕, 알리... 나는 그렇게 조용히 읊조렸다. 

 넌 정말 꿈 꾸는 자였어... 혼자만의 꿈이 아닌 모두가 더불어 행복할 수 있는 꿈을 꾸는... 

 그렇게 작별을 보내며 문득 깨달았던 것은 나도 몰래 스며든 눈물이 

 작별에 대한 슬픔이 아니라 사무치는 그리움 때문이었다는 것이었다.  

 알리와 같은 진짜 바보에 대한 그리움... 

 그렇게 맑고 푸른 하늘이 우리들에게 새로이 희망을 주듯이... 

 만인의 만인에 대한 늑대들로 가득한 이 콘크리트 정글과도 같은 세상에 가슴 가득 청명함을 느끼게 해 줄 바람과도 같은 

 진정한 바보가 그리웠다. 너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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