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야 빵호돌 (문고판) 네버엔딩스토리 23
이금이 지음, 이누리 그림 / 네버엔딩스토리 / 201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금이 작가가 1996년에 출간한 책을 새롭게 제목을 바꿔<나는야 빵호돌>이란 책으로 다시 발간하였다.  

14년 전의 시차가 있기에 다소 낯선 이야기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읽다 보면 여전히 우리 주변에는 빵호돌 같은 아이가 존재하고, 빵호돌이 사는 가난한 달동네가 있으며, 선생님 할아버지처럼 일을 하고 싶어하는 노인분들이 계시다는 것을 자각하면서 이 이야기가 비단 14년 전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바로 현재에도 존재하는 이야기임을 알게 된다. 

이 이야기는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 와 매우 흡사하다.  빵호돌과 할아버지의 관계가 바로 제제와 뽀르뚜가 아저씨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또한 제제처럼 빵호돌도 가난하고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나는 외로운 아이이며 장난꾸러기인 점도 닮았다.  

빵호돌이란 아이가 참 매력적이다. 언뜻 보기에는 장난꾸러기처럼 느껴지지만 속내를 들여다 보면 애어른 같은 구석이 있다. 하루종일 가죽 냄새에 고생하는 엄마를 위해 스스로 연탄불을 피워 따끈하게 아랫목을 데울 줄도 알고, 옆 방 분희 누나가 아프니깐 자기 집의 연탄을 빌려 줄 생각도 할 만큼 마음도 넓다. 할아버지가 엄마에게 한바탕 당하고 나서 할아버지의 마음이 아플까봐 몰래 할아버지 집 앞을 서성댈 만큼 사려 깊기도 하다.  아버지가 교도소에 있다는 사실이 부끄러울 수도 있건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엄마에게 함께 아버지를 보러 가자고 말할 만큼 씩씩하고 용감한 아이이다.  

할아버지는 또 어떤가? 평생 교직에 몸담고 계시다 정년퇴직을 하신 후 의사를 하고 있는 서울 아들 집에 오셔서 편안히 효도 받으며 사셔도 되건만 며느리 불편할까봐 매일 놀이터를 배회하시는 배려심 많은 시아버지이시다. 뿐만 아니라 정둘 곳 없는 빵호돌을 우연히 놀이터에서 만나 다정하게 이름 불러 주시고, 학교에 가지 못하는 빵호돌 마음을 헤아리시고 모래밭학교 선생님을 자처하시며 빵호돌을 가르쳐 주신다. 엄마가 공장에 나가면 하루종일 혼자서 놀아야 하는 빵호돌을 데리고 목마를 인수하시어 함께 장사를 하시는 할아버지. 교사로서 정년퇴직을 하신 분이 직업에 귀천이 없다시며 그런 일을 마다하지 않는 모습에서 진정한 교육자의 모습을 배운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가르치면서도 귀천이 있다고 생각하는 내 모습을 반성해 보았다.  그렇게 측은지심으로 빵호돌을 돌봐주었건만 빵호돌 어머니로부터 엄청난 말을 듣고서도 아무 변명 하지 않으시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처연해지까지 하다. 그렇게 모진 소리를 들으시고도 나중에 빵호돌 어머니가 아플 때 아들의 병원을 알선해 주시고 병원비에 죽까지 끓여 오시는 모습에 결국 빵호돌 어머니도 감화감동 받아 눈믈을 쏟고 만다.   

주변 사람들에게 늘 장난꾸러기로만 대접받던 빵호돌을 그 자체로 소중하게 생각해 주시고, 아껴 주시고, 사랑으로 보듬어 주시는 할아버지의 모습에서 성인군자의 모습이 떠오르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 이런 분들이 없다는 게 진짜 안타까울 뿐이다.

빵호돌과 할아버지는 객관적으로 볼 때 친구가 될 수 없어 보인다. 달라도 너무 다르다. 나이도 그렇고 살아온 환경도 그렇고. 하지만 두 사람은 서로의 아픔을 알고 서로를 이해하며 진심으로 존중하고 서로를 걱정해 준다.  두 사람 사이에 그런 장벽은 아무런 이유가 되지 않는다. 

<최기봉을 찾아라>에서 최기봉 선생님이 어렸을 때 자신을 배려해 주고 따뜻하게 보살펴 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해서 평생 교사를 하면서도 아이들에게 따뜻한 말 한 마디 못하시고, 머리 한 번 쓰다듬지 않는 냉랭한 교사로 살아온 것과는 정반대로 할아버지는 빵호돌에게 이렇게 따뜻한 사람이 있다는 걸 몸소 보여 주신다. 할아버지가 빵호돌을 배려하는 마음은 빵호돌에게 전이되어 목마를 타고 싶지만 돈이 없어 하루종일 목마만 향해 쪼그리고 앉아 있는 어떤 꼬마 아이를 그냥 태워 주자고 말하는 또 다른 배려를 낳는다. 

그런데 지금 우리 나라는 어떤가? 

빈곤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이렇게 할아버지처럼 따뜻한 배려를 하고 있는가? 

14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부모님이 돈 벌러 나가면 자기 혼자서 밥 차려 먹어야 하는 빵호돌 같은 아이들이 존재하고, 여전히 연탄 걱정에 추운 겨울이 두렵기만 한 빈곤층이 부지기수이며, 독거노인 또한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그런데 정작 이들에 대한 지원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요즘의 큰 화두가 되고 있는 무상급식 문제만 해도 그렇다. 

예전엔 나도 무상급식보다 다른 게 더 급선무인데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경기도 김상곤 교육감이 쓴 글을 읽고 나서 내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요지는 이렇다.

왜 무상급식을 해야 하는가? 그건 빈곤층에 대한 배려이다. 그들이 입을 상처에 대한 배려 말이다. 단순히 한달 4만원 정도 하는 급식비를 도와 준다는 의미보다 무상급식을 하는 아이로 낙인 찍혀 학교 생활에서 주눅 들고 마음 고생을 해야 하는 그들에 대한 배려를 해 주자는 취지이다. 모든 학생이 친환경으로 무상급식을 하게 되면 무상급식과 유상급식자에 대한 구별은 자연히 없어진다. <소희의 방>에서도 앞부분에 소희가 무상급식자임이 드러나면서 아이들에게 받았던 모멸감이 나와 있었던 것처럼 무상급식자들은 그런 모멸감을 느낀다. 그것을 없애주자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데 700억(서울)이 든다고 하는데 4대강 사업에 비하면 새발의 피인 돈을 가지고 반대하는 작자들은 정말 빈곤층에 대한 배려는 눈곱만큼도 없는 작자들이라고 생각한다.  

아울러 흔히 말하는 가난한 사람은 게을러서 가난하다는 논리는 통하지 않는다고 본다.  출발부터 다른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에게 노력하지 않아서 그렇게 못사는 거라고 말하는 것은 정말 아니라고 본다. 한창 인기있는 <시크릿 가든>이란 드라마에서도 부자로 태어난 현빈과 가난하게 태어난 하지원을 보자. 출발부터 다른 그 둘을 놓고 부자인 현빈은 부지런해서 부자이고, 가난한 하지원은 게을러서 그렇게 된 거라고 결과적으로 말할 수 있는가? 출발이 달랐기 때문에 그들은 현재 그런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개천에서 용 나오지 않는다는 말도 나오지 않는가? 지금의 상황에서는 도저히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가 없다.  부자 또는 가난하게 태어나는 것은 그야말로 운이다. 내가 나라와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담 최소한 출발점이 비슷해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나라가 할 일이라고 본다.

빵호돌이 이제 초등학교에 입학하려고 한다. 그런데 무상급식자로 이름이 올라가 색안경을 쓰고 선생님들이 보게 된다면 (가뜩이나 한 해 늦게 들어온 것도 그런데)그 여린 마음에 상채기가 생기지 않을까? 빵호돌 같은 처지에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은 그래도 따뜻하며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선생님 할아버지처럼 말이다. 그런 배려를 체험한 사람은 분명 또 다른 배려를 낳을 것이며 그 배려가 점점 더 번져서 지금보다 더 포근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