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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봉을 찾아라! - 제8회 푸른문학상 수상작 ㅣ 작은도서관 32
김선정 지음, 이영림 그림 / 푸른책들 / 2011년 1월
평점 :
<맨발의 기봉이>란 영화를 보지는 못했는지만 기봉이란 이름이 낯설지 않은 건 바로 그 영화의 유명세 덕분인 것 같다. 그래서 이 책의 내용을 전혀 알지 못한 상태에서도 친근하게 느껴졌다.
최기봉! 당연히 어린이의 이름일 줄 알았는데 예상을 깨고 나이 드신 초등학교 선생님의 이름이었다.
겉표지 왼쪽 상단에 보이는 대머리의 선생님이 바로 주인공 최기봉 선생님이시다. 깐깐하고 버럭 소리도 잘 지르시고, 아이들 칭찬에 인색하시고,잘못하면 벌청소를 시키시고,권력을 지닌 교장 선생님께는 약간 비굴한 모습도 보이는 어떻게 말하면 구태의연한 옛날 방식으로 아이들을 교육하시는 그런 선생님이시다.
최기봉 선생님 반에는 일명 두식이라 불리는 아이 둘이 있는데 형식이와 현식이다. 이름에 <식>자가 공통으로 들어가고 똑같이 말썽쟁이라서 친구들이 붙여 준 별명이다. 어디서나 말썽쟁이들은 있게 마련이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어느 날 최기봉 선생님에게 15년 전 제자가 만년 도장 2개를 선물로 보내 준다. 하나는 엄지를 펴보이는 최고 도장이고, 하나는 찡그린 도장이다. 아이들은 이 도장을 엄지도장과 울보도장이라고 부른다. 이름도 참 잘 붙인다. 울보도장이 3개 찍히면 남아서 벌청소를 해야 한다. 일단 벌청소를 하면 걸레가 까마귀처럼 까매지도록 닦아야 한다. 그리고 다시 학처럼 새하얘지도록 깨끗이 빨아야 한다. 울보도장이 주로 찍히는 두식이네가 부러워하는 인간세탁기가 있는데 바로 거의 말을 하지 않는 걸레의 여왕 공주리이다. 인간세탁기라는 말이 마음에 팍 와닿는다. 이 친구는 왜 선택적 함구증에 걸린 아이처럼 말을 하지 않는 걸까 궁금해진다. 나또한 예전에 담임을 맡았던 여자 아이가 정말 학교에 있는 내내 한 마디도 하지 않는 걸 본 적이 있다. 집에서는 말을 조잘조잘 잘한다고 하는데 학교에서는 선생님에게도 친구들에게 입을 열지 않던 그 아이가 언뜻 떠올랐다. 1년 동안 그 아이 목소리를 들었던 적이 열 손가락 꼽을 정도였다.
그런데 학교에 하얀 페인트칠을 새롭게 하고 아이들에게 장난치지 말라고 교장 선생님이 교무회의에서 신신당부하던 그 날 바로 새하얀 벽에 그 엄지 도장이 벽 가득 찍혀 있는 사건이 발생하고, 선생님은 그 도장을 도둑 맞는다. 과연 누가 범인일까? 최선생님은 당연히 벌청소를 가장 많이 한 두식이네가 그런 짓을 했을 거라 생각하고 아이들을 다그치지만 자백을 받아내질 못한다. 이를 보고 있던 학교 박기사는 아이들을 윽박지르지 말라고 오히려 선생님께 화를 내고... 도대체 누가 무슨 앙심을 품고 선생님의 도장을 가져갔을까? 두식이? 박기사? 공주리? 아님 제 3의 인물?
이 책은 그 진범을 찾아가는 추리 형식으로 재미나게 쓰여져 있다. 정말 책장이 나도 모르게 넘어가다가 찔끔 눈물이 나려고도 한다. 사랑을 받아본 사람이 사랑을 나눠 줄 줄 안다고 마지막 부분에 최기봉 선생님의 말씀은 가슴 뭉클하다. 아무에게도 영향을 주고 싶지 않았다고. 그저 스쳐지나가는 사람 중의 하나이고 싶었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가슴 저리다. 교사라는 직업은 피교육자에게 영향을 주는 직업인데 이런 마음 자세로 평생을 교직에 몸담고 계셨으니 본인은 얼마나 아이들이 지겨웠을 것이며 아이들 또한 얼마나 불행한 나날이었겠는가 싶다. 최기봉 선생님을 욕하고 나무라는 것이 아니다. 한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 어린 날 받았던 상처가 트라우마가 되어 그 사람을 얼마나 좌지우지 할 수 있는지 보여 주는 대목인 것 같다. 최기봉 선생님이 어렸을 때 누군가 따뜻하게 품어 주었더라면 선생님은 따뜻한 사람이 될 수 있었을 텐데... 그래도 지금이라도 도장 사건을 통해 깨닫게 되어 다행이다. 늦었다고 생각한 때가 가장 빠르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책을 보면서 <나쁜 어린이표>란 책이 생각났다. 만년 도장이 사라진 것과 상표가 사라진 설정이 매우 유사해서 말이다.
딸 아이도 후다닥 읽어 치웠다. 이 책의 주제가 뭐냐고 물어 보니 딸 아이 왈 <존재감> 이란다. 실제로 담임을 하다 보면 존재감이 잘 안 느껴지는 아이들이 몇 있다. 이 친구들은 딱히 잘하지도 않고 딱히 못하지도 않고 대부분 내성적이어서 드러나질 않기 때문에 통지표를 쓸 때 정말 고민이 되는 아이들이다. 이 책을 보면서 그 친구들의 존재감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번에는 그 친구들을 더 관심 있게 살펴 보고 더 애정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