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희의 방 푸른도서관 41
이금이 지음 / 푸른책들 / 201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다시 만나 반가운 소희에게 

 

하늘말나리 소희야, 

내가 좀 더 일찍 결혼했다면 너 나이 또래의 딸이 있었을 거야. 네가 그토록 의지하던 할머니를 땅에 묻고 친남매 같이 지내던 바우와 미르를 뒤로한 채 쓸쓸히 달밭마을을 떠나는 너의 모습이 내내 잊혀지질 않았단다. 

그런데 이렇게 10년이 지난 뒤 중2가 된 너를 다시 만나게 되어 정말 반가웠다. 소희가 어떻게 변했을까 행여 그동안 힘든 시절을 보낸 것은 아닌지 정말 궁금했었거든. 언제나 나이보다 어른스러웠던 소희. 아무리 슬퍼도 힘들어도 여간해선 속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는 너는 참 내게 대견스러운 아이였단다. 하지만 바우와 미르 그리고 달밭마을 마저 잊고, 작은 아버지 집에서 힘들게 지내는 널 보는 건 어찌나 마음이 아프던지... 그러던 너에게 뜻밖에 친엄마에게서 연락이 왔을 땐 드디어 네 고생이 다 끝나겠구나 했지만 그래도 한 가닥 불안한 마음은 남아있었어.  친엄마이긴 하지만 2살 때 헤어진지라 여느 모녀 지간과 같다고는 할 수 없고, 새아빠에 거기다 남동생 둘까지, 완전히 달라져 버린 환경인지라, 과연 어떻게 네가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염려스러웠단다. 게다가 우진이 마냥 살갑게 굴지도 못하는 너잖니?   

엄마는 왜 이리 냉기가 도는지... 그때 마다 네가 느꼈을 서운함. 나도 충분히 공감이 간다. 아끼던 카메라가 없어졌을때 <우리 애들은 그런 짓 안 해>라는 엄마의 말은 너의 가슴을 얼마나 후벼팠을지... 물론 나중에 그게 엄마가 습관처럼 한 말이라는 걸 알게 되었지만 말이야.  네가 본의 아니게 학교에 간 첫 날부터 거짓말을 하게 되고 자꾸 자꾸 거짓말이 눈덩이 처럼 부푸는 걸 보면서 나 또한 조마조마했단다. 이건 예전의 소희가 아닌데... 자꾸 거짓말을 하게 되면 나중에 되돌릴 수 없을텐데.... 네가 새로운 가정에 적응하기 힘들어할 때 엄마라도 먼저 손 내밀어 주고 살갑게 대해주면 좋으련만 모전여전이라고 엄마도 너처럼 가까이 다가서지 못하고 둘 다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걸 보고 정말 안타까웠단다. 누구라도 먼저 속마음을 꺼내 놓으면 좋으련만... 

그나마 영화까페에서 만나게 된 디졸브가 유일하게 너의 전부를 드러내보일 수 있는 상대였지. 그에게만은 익명의 힘을 빌어 너의 속마음을 다 털어 놓을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어.  디졸브를 통해 여러 가지 영화 기법도 알게 되고 더불어 너도 서서히 영화가 주는 매력과 사진에 빠져 들게 되었지. 그리고 바로 지훈 선배. 너를 좋아해 주고 너를 소중히 여겨 주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고, 그와의 첫 데이트는 마치 내가 첫 데이트를 하는 것 처럼 설레고 나 또한 여중생으로 돌아간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 주었단다. 집에서는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다가도 채경이, 지훈 선배와 있으면 다른 아이들과 똑같은 여중생으로 돌아가 한없이 즐겁고 행복해지는 너를 보면서 그나마 너 주변에 그런 친구들이 있어서 힘든 가정 생활을 견딜 수 있지 않았나 싶어진다.  재서와 지훈 선배 사이에서 갈등하는 네 모습은 순정만화를 보는 듯 하였어.  왜냐하면 채경이까지 합해서 사각관계 같은 건 순정만화나 하이틴 로맨스에서 흔히 나오는 거잖니? 어쩐지 순정만화의 클리셰가 느껴지더구나.  니 말대로 지금은 베프 채경이를 위해서 재서에 대한 마음은 접은 상태지만 사람 일은 어떻게 될 지 모르니깐 니 마음 흘러가는 대로 자연스레 놔두라고 말해 주고 싶구나. 

첫 데이트의 달콤함 뒤에 찾아온 것은 쓰디쓴 엄마와 너의 한바탕 싸움이었지. 지하철 화장실에서 몰래 갈아 입고 간 옷을 그대로 입고 들어 오는데 내가 왜 그리 조마조마하던지. 늦을 거라던 엄마가 벌써 거실에 앉아서 너를 기다리고 있었고. 넌 그때 그동안 마음 속에 담아 왔던 그 수많은 이야기들을 한꺼번에 폭포수처럼 쏟아내고 말았지.  아마 엄마도 엄청 충격 받았을 거야. 그리고 서먹서먹한 며칠이 지나고 우혁이가 니 카메라를 숨긴 장본인이라는 게 들통난 그 날. 우혁이로 부터 쏟아져 나온 <거지, 도둑>이란 말은 너에게 비수를 꽂기에 충분했어. 우혁이 입장에선 니가 바로 가족을 뺏아간 도둑이고 부유한 집에 얹혀 사는 거지나 다름 없었던 거야. 그걸 깨달은 너는 무작정 집을 나와 PC방에 들어갔어. 요즘 세상이 얼마나 위험한데..난 네 걱정이 되었어. 하지만 너도 어쩔 수없었을 거야. 그런 말을 듣고 아무 일 없었던 듯이 그대로 그 집에 있기는 정말 힘들었을테니...  넌 PC방에서 바로 재서가 디졸브 임을 알게 되었지. 난 예전에 PC방에서 네가 재서를 봤을 때부터 알아차리고 있었지만.  그래서 약간은 시시하기도 했어. 작가님이 너무 빤히 보여줬다는 느낌이 들었거든. 너는 속내를 다 보여 준 디졸브가 재서라는 것이 너무 화가 나 무작정 뛰었고 재서는 너를 붙잡고 자신의 잠바를 씌어 주었지. 정말 멋있는 애야. 그렇지?  재서가 지켜보고 있어서 넌 하는 수 없이 수서역 근처에 있는 고모네 집에 갔고 곧바로 쓰러져 버렸어. 얼마나 마음 고생이 심했으면.....우혁이가 던진 말과 재서의 존재. 진짜 견디기 힘들었을 거야.

고모의 말처럼 엄마와 너에게도 약정시간이 필요한 게 맞아. 지난 번 엄마에게 폭포수처럼 쏟아내는 것 처럼 앞으로는 엄마에게 그리고 다른 가족들에게 니가 하고 싶은 말 하면서 살아. 그게 바로 가족이야. 혼자만 참고 살지 말고 말이야. 엄마가 왜 너를 2살 때 헤어지고 나서 단 한 번도 찾지 않았는지 들려 주는 이야기는 놀라웠어. 하지만  억지로 해피엔딩으로 가기 위한 단계를 밟는 느낌이 들기도 했어. 이어지는 리나의 방문으로 인해 갑자기 화애 모드로 치닫는 듯한 분위기들도 조금 어색했어. 하지만 '리나의 등장'이 그냥 나오게 된 것은 아니더구나. 리나가 오게 된 것은 바로 <소희의 방>이 무엇을 말하는지 내게 일깨워주기 위함이었어. 

네가 작은 아버지집에 살 때, 그 좁은 방에서 사촌동생들과 생활하느라 너의 방은 없었지. 새 아빠 집에 와서도 그건 달라지지 않았어. 아무리 공주 같은 방이 생겼대도 말이야. 너는 거기서 너의 방이라는 것을 느낄 수 없었어. 계속 왠지 남의 방을 몰래 차지한 기분이었지. 그래서였을까? 넌 리나가 온다고 했을 때 원래 주인이 오니깐 순순히 방을 내어 주고 다른 곳에서 잔다고 하더구나. 하지만 리나 언니는 그건 안될 말이라며 여긴 <소희의 방>이라고  분명히 말해주었지. 난 그 말이 무척이나 마음에 와 닿더구나. 그 어디에서도 너만의 방을 가지지 못했던 너, 그랬기에 매일 매일을 그저 주변을 서성일 수 밖에 없었던 너를 알기에... 리나 언니의 그 말은 차라리 내게는 어떤 선언으로 들렸단다. 이제 소희 네가 완전하게 가족의 일원이 되었다는... 이제 네가 더이상 정처할 곳 없이 헤매이지 않아도 된다는... 

난 그제서야 왜 이금이 작가님이 이 책의 제목을 <소희의 방>으로 했는지 알 수 있었어. 작가님은 인터넷에 연재할 때도 그저 <소희>라는 제목을 달았는데 왠일인지 출간할 때는 <소희의 방>으로 바뀌어졌더구나.  왜 그렇게 바뀌어졌는지 궁금했었는데, 이제야 확실히 알게 된 거야. 너만의 방이 가지는 의미가 바로 너가 확실히 있을 거처라는 것을... 누군가의 집에 방을 가지게 되는 것은 바로 그 누군가에게 없어서는 안될 존재가 되었음을 말한다는 것을...  

하지만 조금 실망스러웠던 부분도 있어. 바로 새아빠와  리나의 대화를 우연히 듣게 되는 장면이야. 그건 좀 진부하더구나. 더불어 리나 엄마와 너희 엄마에게 새아빠가 행하던 폭력이 새아빠의 잘못했다는 말로 쉽게 용서되는 장면 역시도. 가정 폭력이란 건  알코올 중독과 같아서 쉽사리 고쳐지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그렇게 오래도록 지속적으로 행해지던 새아빠의 폭력이 고백 한 번으로 너무 쉽사리 마무리 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거든. 그런데도 네가 새아빠의 다짐을 듣고는 바로 <아빠>라고 부르는 게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단다. 과연 고백과 다짐만으로 그렇게 믿음이 금방 생길 수 있을까? 여기에 의문이 들었던거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너무 기뻤단다. 무엇보다 이제야 소희 네가 너만의 방을 찾았으니까.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그동안 감춰두었던 소중한 추억들 -미르가 준 일기장과 바우가 그려준 그림 -을 다시 꺼내들게 되어 정말 기뻤어. 바우와 미르를 완전히 네가 잊은 것 같아서 너무 서운했었거든. 

소희야, 네 말처럼 <산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는 여름날의 무성함과 찬란함이 아니라 겨울날의 초라함과 힘겨움에 담겨 있는 것>인 것 같아. 여름이 있어서 겨울이 더욱 춥고 우울할 수도 있지만 그 겨울이 있기에 여름이 더욱 더 찬란하게 느껴지는 것 처럼 말이야. 그 어느 것 하나 무의미한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모든 여정이란 게  결국은 하나의 발걸음들이 모여서 이루어지는 것 이잖니? 그 모든 소중한 걸음 걸음들이 있었기에 여행이 가능한 것 처럼, 너도 그 모든 걸음을 소중히 여기고 걸어갔으면 하는구나. 그리고 넌 꿈이 작가니까, 그 걸음 걸음들이 너에게 무슨 의미를 남겼는지 기록을 해 보는 건 어떨까 싶기도 하구나. 난 사실 네가 <너도 하늘말나리야>에서 계속 썼던 일기를 그만두어서 무척 안타까웠었거든. 미르가 선물로 건네 준 일기장이 그대로 방치되는 게 너무 속상했단다. 그러니 다시금 그 일기장을 꺼내어 그 걸음을 기록했으면 좋겠어. 

하지만 나의 진짜 소망은 이게 소희 너와 만나는 마지막이 아니었으면 하는 거야. 나는 다시 너를 간절히 만나고 싶단다. 그게 5년 후든 10년 후든 좋아. 대학생이 된 네가 다시금 바우와 미르를 만나는 것도 멋있을거야. 미르와 바우는 네가 보낸 그 시간들을 어떻게 보내고 견뎠는지 정말 궁금하구나.  아니, 그 어떤 미래라도 좋아. 소희와 미르 그리고 바우 이렇게 세 명의 하늘말나리들이 가꾸어 갈 미래의 그 어느 때가 난 너무도 보고싶구나.

                                                                하늘말나리 소희를 좋아하는 수퍼남매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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