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중물 마중불 - ‘우리나라 좋은 동시 문학상’ 수상작 동심원 13
정두리 지음, 성영란 그림 / 푸른책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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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언젠가 들었다는 말처럼 "  이 세상 모든 것은 동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 주는 동시집이라는 생각이 든다. 

동시의 소재가 이렇게 다양할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정말 다양하다. 

몽고반점, 모서리, 김밥꽁지, 달챙이 숟가락,  풍선껌,  땅콩, 꽈배기 도넛, 지퍼, 화살표 자판기, 파리, 누운아기별꽃, 으아리꽃, 산제비나비, 된장 잠자리 등등 

처음 들어 본 꽃이름에서부터 하루에도 몇 번씩 사용하는 물건에 이르기까지 그 다양성에 입이 쩌억 하고 벌어졌다.  

김밥 꽁지 

 " 왜 김밥 꽁지가 맛있는 줄 아니? 

 꽁꽁 숨 막히지 않아서 맛있는 거래." 

우리 남편도 김밥 꽁지를 좋아한다. 참 기발한 시다.  숨이 막히지 않아 맛있다니...

 

달챙이 숟가락   

한쪽이 닳고 닳아 삐죽해진 숟가락 

박박 밥솥의 누룽지 긁고 

쓰극쓰극 감자 껍질 벗겨 내고 

사과 속 부드럽게 으깨 주던 숟가락 

 나 어렸을 적 우리 엄마도 그렇게 해 주셨었는데 

옛날 추억이 되살아난다.  

 

마중물 마중불 

펌프질할 때, 

한 바가지 물 미리 부어 

뻑뻑한 펌프 목구멍 적시게 하는 물을 

예쁘게도 '마중물'이라 부르지. 

 

어두운 길, 

손전등으로 동그랗게 불 밝히며 

날 기다리는 엄마 

고마운 그 불을 나는 '마중불'이라 부를 거야 

 

얼마 전 어느 책에서 <마중물>이란 단어를 처음 알고 참 예쁘고 곱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시로 만나게 되니 정말 반가웠다. 

 

까슬까슬 

까슬까슬  

금세 깎은 내 손톱 

그 손톱 세워 

할머니 등 긁어 드리면 

" 아이고야, 시원해라." 

 

어릴 적 우리 엄마도 등 가렵다며 나한테 박박 긁어달라고 하시곤 하셨었는데 

그 기억에 웃음이 나온다. 오늘 친정 어머니 뵈러 가는데 오랜만에 등이나 긁어 드려야지. 

 

부끄러운 어른의 모습을 톡 꼬집는 시도 인상적이다

혼나고도 남겠다.  

큰길을 가로질러 가는 

저 아저씨, 

뛰지도 않고 

아예 느긋이 걷는다. 

 

-중략 -

신호등 못 본 척하고 

찻길 질러가는 

저 아저씨의 엄마가 보았다면 

 

정말, 

혼나고도 남겠다.  

 

길에서 시 읽기

 버스 정류장 유리 벽에 

시가 걸렸다 

아주 짧은 시 한 편 

책 속에서 걸어 나와 

햇빛 아래 환하게 

걸린 시 

엄마도 나도 시 앞에 섰다. 

 

하지만 아이는 시를 읽고 있었고 

엄마는 시가 아닌 버스 안내표를 보고 있었다는 시인의 말 

짧은 시 한 편 읽어 내지 못하는 

여유가 전혀 없는 어른의 삶이란... 

 

동시집 1권으로 인해 11월의 마지막 날이 풍성해진 기분이다.  

버스 기다리면서 시 한 편 읽을 수 있는 여유로움을 가져야겠다고 

또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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