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아비춤
조정래 지음 / 문학의문학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아폴로 눈병에 걸려 눈이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단숨에 읽어버렸다. 그만큼 재미있고 그만큼 현실을 까발리고 있고 그만큼 나에게 도전을 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먼저 작가의 말을 옮겨 본다. 

정치에만 '민주화'가 필요한 것인가? 아니다. 경제에도 '민주화'가 필요하다. '경제민주화?' ' 정치 민주화'에 비해 낯선 말일 수 있다. 그러나 그 말뜻은 어렵지 않다. 이 땅의 모든 기업들이 한 점 부끄러움 없이 투명경영을 하고, 그에 따른 세금을 양심적으로 내고, 그리하여 소비자로서 줄기차게 기업들을 키워 온 우리 모두에게 그 혜택이 고루 퍼지고, 또한 튼튼한 복지사회가 구축되어 우리나라가 사람이 진정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 되는 것, 그것이 바로 '경제 민주화다.   <작가의 말>

이 부분에서 우리나라가 지금 경제민주화가 이뤄지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모두들 부정할 것이다.  상위 1%만 행복한 나라가 우리나라 아닌가? OECD 국가 중에서 자살율 1위, 가장 행복지수가 낮은 나라가 우리나라 아닌가.

진정한 작가이길 원하거든 민중보다 반발만 앞서 가라. 한 발은 민중 속에 딛고, 톨스토이의 말이다. 진실과 정의 그리고 아름다움을 지키는 것이 문학의 길이다. 타골이 말했다. 작가는 모든 비인간적인 것에 저항해야 한다. 빅토르 위고의 말이고, 노신은 이렇게 말했다. 불의를 비판하지 않으면 지식인일 수 없고, 불의에 저항하지 않으면 작가일 수 없다. 나랏일을 걱정하지 않으면 글이 아니요, 어지러운 시국을 가슴 아파하지 않으면 글이 아니요, 옳은 것을 찬양하고 악한 것을 미워하지 않으면 글이 아니다. 다산 정약용의 말이다. <작가의 말>

이런 처절한 마음으로 조정래 님이 이 책을 쓰셨다고 본다. 그 얼마나 비통한 마음으로 쓰셨을까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나같이 평범한 사람도 이 책을 읽으면서 구역질이 나고 화병이 생기려고 하는데 ... 이 책에 나오는 내용이 비단 책에 나오는 이야기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우리나라의 현실임을 책을 보는 사람은 누구나 알 것이다. 그러기에 작가도 우리의 자화상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더 이상 피해서도 안 되고, 여기에 나오는 진재욱 검사와 허민 교수처럼 그 거대한 자본(기업)에 맞서서 불매 운동을 벌이던지 아니면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 기업이 잘 살아야 우리가 잘 산다>는 생각에 자발적 복종을 하든지 양자 택일을 해야 할 것이다. 

책을 몇 장 안 읽어도 일광그룹이 어떤 그룹을 모델로 하고 있는지 삼척동자도 알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만든 일명 <문화개척센터>또한  실재했었고 책에 나온 내용 또한 허구가 아니라 버젓이 벌어졌던 일임을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모그룹이 지금도 재계 1등이고 대학생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선호도 1위 기업이라는 것과 책에서처럼 경영권 불법승계가 이뤄졌고 아직도 대다수의 국민들은 모그룹이 우리나라를 먹여살린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몰라서 속고 살았다지만 이제 까발릴 때로 까발려진 지금도 우리 국민들 대부분이 모그룹에 목매고 있는 현실이 참 어이 없다. 아마 조정래 작가도 그래서 이 책을 쓰셨을 것이다, 무지몽매한 국민들이 제발 정신차리라고.  허민교수의 칼럼에서 작가님의 애타는 절규가 절절히 느껴진다. 옮겨 적어 본다. 제목은 < 국민, 당신들은 노예다> 이다. 

국민은 나라의 주인인가, 아니다. 노예다 국가 권력의 노예고, 재벌들의 노예다. 당신들은 이중 노예다. 그런데 정작 당신들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 그것이 당신들의 비극이고, 절망이다. 

이번에 재벌의 재산권 불법 상속과 경영권 불법 승계 사건이 또다시 벌어졌다. 일광그룹이 일으킨 이번 사건은 몇년 전 태봉그룹이 일으킨 사건과 한 치도 다름없이 똑같다. 왜 그런 사태가 거듭 벌어지는 것일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세상 망칠 그 거대한 경제 범죄를 저지르고도 태봉그룹이 무죄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나라의 주인이고 이 사회의 주인인 국민과 대중들이 그 끔찍한 사건을 방관하고, 묵인했기 때문이다.  <중략 > 재벌들이 저지르는 그 불법 행위는 분명 사회를 병들게 하고 나라를 망치는 범죄이고, 그 피해는 국민 전체에게 씌워진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동안 재벌들의 경제 범죄에 대해 너무나 관대했다. 왜 그랬을까 기업들이 잘되어야 우리도 잘살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건 순진함을 넘어 바보 같은 기대고 희망이었다. 그건 지난 40여 년 동안 우리가 취해 있었던 환상이고 몽상이고 망상이었다. 태봉그룹과 일광그룹의 불법 행위가 그것을 잘 입증해 주고 있지 않은가. 우리가 그동안 일방적으로 품어 왔던 그 기대와 희망은 바로 자발적 복종이었다. 스스로 노예 되기를 자청한 것이다. <322쪽>

 긴 인류의 역사는 증언한다. 저항하고 투쟁하지 않은 노예에게 자유와 권리가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그런데 노예 중에 가장 바보 같고 한심스런 노예가 있다. 자기가 노예인 줄을 모르는 노예와 짓밟히고 무시당하면서도 그 고통과 비참함을 모르는 노예들이다. 그 노예들이 바로 지난 40년 동안의 우리들 자신이었다.   이제 우리는 '경제 민주화'를 이룩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그 경제민주화가 바로 모든 재벌들이 그 어떤 불법 행위도 저지르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강력한 무기를 뽑아 들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소비자로서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권한인 '불매'이다. 우리 모두가 힘을 합쳐 경제 범죄를 저지른 기업의 상품을 사지 않는 '불매운동'을 적극 벌이는 것이다.   <326쪽>

이 칼럼 때문에 허교수는 재임용에서 탈락하고 교수직을 물러나게 된다. 그렇다. 경제 범죄를 저지른 기업들의 촉수가 미치지 않는 곳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허교수의 말처럼 소비자들이 대동단결하여 우리들의 무기인<불매운동>을 벌이고 유럽의 나라들처럼 <시민단체>에 적극 참여한다면 그들의 아성도 언젠가는 무너지지 않겠는가.  우리나라 기업인 중에서도 빌 게이츠나, 워렌 버핏과 같이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멋진 기업인이 나오지 않겠는가.

이건 국민의 선택의 문제이다. 불매운동으로 경제범죄를 저지른 기업에 대한 심판을 할 것인지 아님 그들의 말대로 정치와 경제는 전혀 다른 것으로 인간의 본성인 자본주의에 이끌려 자발적 복종을 선택한 것인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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