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은 거짓말쟁이 (문고판) 네버엔딩스토리 22
강숙인 지음, 김미정 그림 / 네버엔딩스토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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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나서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바로 예전에 즐겨 불렀던 노래 < 연극이 끝나고 난 뒤>라는 노래였다. 연극을 한 번이라도 해 본 사람은 그 기분을 알 것이다. 시원섭섭 . 그리고 그 기분에서 벗어나서 일상으로 돌아오는 데 걸리는 시간은 사람마다 다 다르지만 분명한 것은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대열에 들어선 강숙인 작가의 초기 작품이라는 글씨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 왔다. 요즘은 역사 동화를 많이 쓰시는데 이 책은 소재면에서 역사물이 아니라 성장 소설 분위기가 물씬 난다. 그래도 예나 지금이나 탁월한 심리 묘사는 변함이 없으시다.  이 부분이 내가 강 작가님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책을 보면서 나에게 떠오르는 3가지 기억들과 연관지어 책 소개를 하고자 한다 . 

첫째는 연극이다. 주인공 희주, 희주 아버지는 연극을 통해서 자기의 존재감을 발견하기도 하지만 그것을 통해 또 절망을 맛보기도 한다. 희주가 그토록 하고 싶어하는 백설공주 역은 끝내 희주에게 돌아오지 않고 희주는 여봐란 듯이 못된 왕비역을 최선을 다해 열연하지만 막상 공연을 하는 내내 그 맘이 편치 않다. 너무 잘한 나머지 희주 아니 왕비에게 쏟아지는 비난을 감당하기에는 희주가 너무 어리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갈등하는 희주를 보면서 아마 아버지는 젊을 적 자신을 보았을 것이다. 최고가 되기 위해서 연극을 했던 그 자신의 모습, 하지만 그 결과는 연극의 실패. 아버지가 희주에게 자신이 왜 연극을 그만 두게 되었는지 이야기 해주는 부분은 세상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하는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려 준다. 내 마음 속의 거울 . 항상 내가 최고라고 말해 주는 그 거울을 부술 수 있어야만 진정한 감동을 줄 수 있다는 아버지의 말씀은 아직도 거울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 거울을 없애라는 충고를 해 주었다.  나 또한 지금까지 살면서 몇 번의 연극을 해 봤지만 기억에 남는 건 내가 주인공 마리아 역을 했던 초등학교 2학년 크리스마스 연극 <요셉과 마리아>이다.다른 연극이 기억에 남지 않은 건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별로 중요하지 않은 조연을 맡았던 이유가 크리라.  희주와 같이 연극 주인공이 되고 싶어하던 기억과 더불어 어디에 가서나 주목 받고 싶었던 그 욕심을 너무나 잘 알기에 희주의 이야기가 남의 일 같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연극이 끝나고 난 후의 그 시원섭섭한 마음을 경험해 보았기에 읽는 내내 그 노래가 생각나곤 하였다. 

둘째는 아버지이다.  작가님도 좋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으로 이 책을 쓰셨다고 하시는데 나 또한 아버지에 대한 좋은 기억들이 있어서 이 책이 참 좋았다.  희주는 연극 연습을 하는 내내 아버지가 다른 친구들만 칭찬해 주는 것이 못내 서운하다. 그러면서도 아버지를 아주 좋아한다. 그렇게 좋아하는 만큼 아버지가 주인공이 되고 싶어하는 자신의 마음을 모른 척 하실 때, 내 안의 거울을 부숴야 한다는 말씀을 하실 때 더더욱 속상하고 서운하다. 그런 아버지께서 연극이 끝난 후, 연극 연습을 하던 교실에서 혼자 울고 있는 희주에게  <거울이 거짓말을 한 거다>라는 이 말로 아버지의 사랑이 어떤 건지 잘 표현해 주고 있다. 옛날 우리 아버지들은 이러셨던 것 같다. 요즘 아빠들이야 마음껏 드러내놓고 이뻐해주고 사랑표현도 하지만 우리 아버지 세대만 해도 드러내지 못하시고 이렇게 희주 아버지처럼 중요한 순간에 속내를 보여 주셨던 것 같다. 울 아버지께서도 참 칭찬에 인색하셨다. 그런 아버지가 마음껏 칭찬해 주셨던 말이 바로 내가 고등학교 진학 시험에서 전체 차석을 했을 때 해 주신 말 <정말 장하다. >였다.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잘한다 칭찬을 안하시던 아버지께서 악수를 청하시면서 장하다고 하실 때 정말 말로 표현 못할 기쁨이 차올랐다. 까끌까끌한 수염을 내 볼에 비비며 장난을 치시던 아버지,학부모 총회 때 매번 엄마 대신 오셨던 아버지, 오르막길을 나를 뒤에 태우고 자전거를 몰았던 아버지, 고 3때 따뜻한 저녁밥을 매번 배달해주시던 아버지...아버지에 대한 좋은 추억들이 많음에 감사하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희주도 아버지의 그 말 한 마디로 그동안 서운했던 마음이 완전히 사라졌을 것이다. 희주 아버지를 보면서 나 또한 좋은 아버지를 가졌음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셋째는 딸이다. 나에게도 초3 딸 아이가 있다. 그리고 현재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다. 희주와 아버지처럼 말이다.그래서 이 상황이 정말 이해가 잘 되었다. 그것도 아버지 입장에서 말이다. 희주와 아버지는 같은 학교에 다닐 뿐더러 같은 연극반이다. 아버지는 교사로서 희주는 학생으로서. 그러기에 아버지는 아마 희주를 칭찬해 주고 싶어도 혹시 말날까봐 마음과는 달리 칭찬을 해 주지 못했을 것이다. 연극반 모두가 희주가 선생님 딸이라는 걸 다 아는데 어떻게 칭찬을 하실 수 있을까? 어떻게 백설 공주 역을 맡길 수 있을까? 그랬다간 당장 선생님이 딸만 편애한다는 이야기가 온 학교와 동네에 펴질텐데... 그래서 칭찬에 인색할 수 밖에 없는 아버지의 그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간다. 오히려 딸이기에 더 무덤덤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희주는 더 속상해 하는 게 우리 딸도 혹시 그런 기분이 든 적은 없을까 궁금해지고  물어 보고 싶어진다. 희주가 그런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만 더 일찍 알았다면 좀 덜 아파했을 텐데 말이다. 

나와 비슷한 경험과 상황들이 나와서 정말 빠져들듯이 읽었다. 아직도 마음 속에 거울이 남아 있는 나에게 그 거울을 부수라는 말은 도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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