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영전 (문고판) 네버엔딩스토리 17
강숙인 지음 / 네버엔딩스토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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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는 그 유명한 신윤복의 <월하정인>이다. 받는 순간 표지가 너무 멋져서 얼른 읽고 싶어졌다. <월하정인>이 표지에 씌여졌다면 이건 남녀의 사랑 이야기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이 책을 접하기 전에는 운영전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었다. 다 읽고 나서야  예전에 고등학교 때 고문시간에 제목을 배웠던 기억이 가물가물 났다.   읽고 나서 보니 춘향전, 견우와 직녀, 로미오와 줄리엣만큼 재미있다. 춘향전도 그렇지만 원전은 약간 성인만이 볼 만한 내용들이 나와서 놀랐던 기억이 있는데(고등학생일 때 ) 운영전의 부분에서도 두 남녀가 애틋한 사랑을 하는 장면이 나와서 아이들이 읽기에 괜찮을까 약간 걱정스럽기도 하다. 작가도 그래서 11세 이상 권장을 하고 있기는 한데... 요즘 어린이들은 일찌기 드라마나 영화 만화등에서도 자연스럽게 키스씬이나 애정씬을 보와 온 터라 충격이 덜 하려나 싶기도 하고.. 어찌되었건 어린이들이 이해하기 쉽게 한문소설 <운영전>을 쉽게 풀어 쓴 것 만큼은 확실하다.  한 손에 잡고 단숨에 다 읽었다.  

책 속으로 들어가면 유영이라는 가난한 선비가 예전에 안평대군(세종대왕의 셋째 아들)이 살던 수성궁을 찾아가는 것부터 시작된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의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것은 똑같은 모양. 수성궁에 풍류를 즐기러 나온 선비들은 유영의 남루한 옷차림을 보고 조롱한다. 이에 유영은 혼자 후원으로 들어가고 수성궁이 몰라보게 초라해진 모습에 슬퍼하며 술을 혼자 마시다가 잠이 든다. 한참을 지나 깨어 보니 두 남녀가 정겹게 이야기하는 모습이 보여 함께 이야기를 하다가 그 여인의 이름이 운영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둘의 사연이 궁금한 유영은 그 여인의 이야기를 듣는다. 남자는 운영이 하는 이야기를  < 운영전> 이라 이름짓고 운영이 하는 이야기를 책으로 쓴다. 이렇게 운영이 유영이라는 선비에게 자신의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 주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표지에 나온 남녀는 책으로 말하자면 여인은 운영이고. 남정네는 바로 운영의 정인인 김진사인 셈이다.  

둘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전편의 주된 줄거리이나 난 그것보다 안평대군의 독선이 가장 눈에 띈다. 대군은 수성궁에 10명의 궁녀를 데려와서 그들에게 시를 가르친다. 몇 해가 지나자 이들의 실력은 일취월장하여 안평대군을 찾아오는 여느 선비들에 비할 만큼 훌륭해진다. 하지만 안평대군은 궁녀들에게 절대 바깥 출입도 못하게 하고 어느 누구와도 상종을 못하게 하며 오직 자신만을 바라보며 자신의 기쁨을 위해 시를 짓게 한다. 안평대군은 그 시대에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문장가이고 세종대왕이 가장 사랑한 아들이라고 한다. 그런 그이지만 궁녀를 대하는 태도는 그렇게 인격적이지는 못한 것 같다.겉으로는 궁녀들을 위하는 것 같지만 결국 궁녀들에게 시를 가르쳐 줌은 자기 만족을 위함인 듯 하다. 그렇지 않고야 궁녀들을 꼭꼭 숨겨두고 아무에게도 보여 주지 않는 걸 어떻게 이해할까?  안평대군이 지었다는 비해당- 게을러 지지 않도록 스스로 조심한다.- 과 그 옆에 쌓았다는 맹시단-훌륭한 시를 짓기로 맹세한다.-의 이름이 부끄러워지는 대목이다. 누구를 위한 비해당이고 누구의 만족을 위한 시였을까?   수성궁은 안평대군의 제국이었을 뿐이고 그 안에 갇혀지내는 궁녀들은 그저 예쁜 인형에 불과한 셈이다. 여기에 반기를 든 사람이 바로 운영이다. 평생을 대군의 여자로 살아야 할 운명임에도 불구하고 외갓 남자를 사모하여 상사병이 생기는 지경에 이른다. 어느 날 대군이 10명의 궁녀를 모아 놓고 시를 짓게 하는데 유독 운영의 시에서 다른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난다며 운영의 마음을 의심하는 장면은 사뭇 긴장감이 넘친다. 

마지막 부분에 운영이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부분이 혹여 어린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칠까봐 우려되나 원문이 그러니 어쩔 수는 없었을 터이고 우리나라 역사와 고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요즘에 이런 쪽에 꾸준한 관심을 가지고 계속해서 책을 쓰시는 작가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운영전은 남녀의 사랑이야기일 뿐 아니라 그 속에 신분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이 들어 있는 작품인 것 같다.  엔딩도 춘향전과는 달리 비극으로 끝낸 점이 특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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