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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구두 - 소년한길 그림책 3
이와사키 치히로 그림, 한스 크리스찬 안데르센 원작, 이지연 옮김 / 한길사 / 2002년 4월
평점 :
절판
이와사키 치히로의 그림에 푸욱 빠져 버려서 그림책을 모으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생각보다 우리 나라에 출판된 게 별로 없었다.
이 책은 너무도 유명한 안데르센의 글에 치히로가 그림을 그린 것이다.
앞표지는 드가의 그림을 연상시킨다.
카렌이라는 여자 아이가 빨간 구두를 신고 춤을 추는 장면이다.
처음 읽고 나서 내 반응은
와! 이 책이 이렇게 잔인했었나 싶다.
음! 애들이 읽기에는 좀 그런 거 아니야?
그러고 보면 헨젤과 그레텔도 잔인한 장면이 많이 나오긴 하는데
아이들은 그것보다 다른 것을 보니까
그래서 우리 딸도 같이 읽히고 나서 함께 이야기를 나눠 보았다.
이 책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일단 나처럼 잔인하다 끔찍하다는 반응은 아니었다.
하여튼 나는
예전에 읽었을 때는 빨간 구두를 한 번 신자 벗을 수도 없고
마구 마구 제멋대로 춤을 추게 되어서 결국 여자 아이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미친 듯이 춤을 추고 숲 속으로 가던 장면만 기억에 남았었는데...
다시 보니 이 책에서는 카렌이 자기의 발목을 잘라달라고까지 하고
그렇게 잘린 구두가 여전히 허공에서 춤을 추는 장면도 있다.
그렇게 될 만큼 카렌이 잘못한 게 뭐가 있을까 질문해 본다.
구두를 탐한 것
아님 교회에 검정 구두가 아닌 빨간 구두를 신고 간 것
아님 자신을 양녀로 잘 키워준 마님의 부탁을 거절한 것
우리 딸은 답이 명확하다.
<엄마, 카렌이 교회에 검정 구두가 아닌 빨간 구두를 신고 가서 그런 벌을 받은 거야>
글쎄~~
언뜻 납득이 가지 않지만
안데르센은 신에 대한 순종과 불순종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솔직히 카렌이 살인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그렇게 누구나 손가락질할만한 못된 짓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단순히 교회에 빨간 구두를 신고 갔다고 해서(그 당시 실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그런 벌을 내리셨을까?
그것보다도 여기서 빨간 구두는 에덴 동산에 나오는 선악과의 의미인 듯 하다.
선악과를 따먹으면 안 된다고 하나님이 명령을 내리신 걸 인간이 거역한 것 처럼
빨간 구두를 신으면 안 된다고 한 것을 카렌이 순종하지 않았기에
그런 벌을 내리신 게 아닐까?
우리 인간은 왜 창조주가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하는지
왜 빨간 구두를 신지말라고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우리의 얄팍한 이성으로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 그 이성으로 신의 이유를 따지려 한다.
하지만 신은 그것보다 온전한 순종을 원한다.
발목이 잘려 나간 카렌이 하녀로 일한다.
마지막에 신에게 용서를 구하는 장면에서
그제서야 마음의 평화를 찾았다는 말이 나온다.
음산한 이야기와 치히로의 그림이 정말 잘 어울린다.
아름답지만 어딘지 슬픈 치히로의 그림이
깊은 절망에 빠진 카렌을 잘 묘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