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항거 - 유관순 이야기˝ 를 보고

유관순이 왜 독립운동가 이름에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지 의문이 든 적이 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안중근, 윤봉길, 이봉창 열사에 비하면 뚜렷한 업적이 드러나지 않는데 왜 역사 교과서에 등장하는 걸까 하는 궁금증이었다 . 전까진 그냥 그런가보다 ( 독립운동가 인가보다) 하고 당연히 넘어갔는데 어떤 면에서 의문과 궁금증이 생긴다는 건 좋은 일이다. 영화에서도 유관순이 나와 비슷했다 .

몇 년 전아이들에게 일제강점기를 제대로 알려주기 위해 예습을 하다 유관순 열사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 . 그 어린 나이에 아우내장터 만세운동을 기획하였으니 독립운동가 반열에 오를만 하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 그때 우리가 흔히 보는 유관순 열사의 수의 입고 찍은 사진도 고문에 의해 얼굴이 심하게 부은 상태로 찍은 걸 알게 되었다 . 무엇보다 그 어린 나이에 나라를 걱정하고 분연히 일어났다는 점에서 납득이 되었다 .

그리고 오늘, 영화와 대통령의 기념식사를 통해 유관순 열사의 항거가 정말 대단한 거였구나 비로소 알게 되었다 . 아들도 유관순 열사에 대해 잘 몰랐는데 자세히 알게 되었다는 소감을 말해줬다 . 아마 우리 아들처럼 유관순이란 이름은 알아도 정확히 무슨 일을 했는지 모르는 청소년이 많을 거란 생각이 든다 . 그런 의미에서 자녀와 꼭 같이 보기를 권유한다. 사인도 책과는 달랐다 .

영화는 삼일운동 후 유관순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어 여감옥 8 호실에서 있었던 이야기와 1년 전 삼일운동 당시 회상장면이 흑백과 칼라로 교차 편집되어 나온다 . 마지막에 칼라로 끝나는 게 인상적이다 . 보면 그느낌 알거다.

영화는 유관순과 대조적으로 조선인이지만 먹고살기 위해 일본 헌병이 되었다는 정춘영도 비중 있게 다룬다 . 유관순 고문에 적극 동조한 친일파 정춘영의 변명 ˝ 명령에 따랐을 뿐이다, 부양할 가족이 있어서다˝ 는 것은 너무 구차할 뿐이다 . 이런 사람이 해방 후에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다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 자료를 찾아보니 정춘영은 어린 유관순에게 영화에 나오지 않은 극심한 성고문을 자행하였다고 한다 . 이른바 미꾸라지 고문. 여러 차례 고문의 결과 유관순은 방광과 자궁 파열로 인해 출옥 2일 전에 옥사한다 .그녀의 나이 겨우 18세.

일제가 열사의 시신을 화장하려던 찰나, 이화학당에서 시신을 수습해 안장하였으나 그후 군용기지로 개발하는 과정에서 망실되었다고 한다 .

대통령의 연설대로 ˝ 친일파의 반성 ,독립운동가에 대한 예우˝ 야말로 정의로운 나라, 공정한 나라를 세우는 시발점이 될 거라 생각한다 .

삼일운동 100주년 기념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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