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가는 카페에 시모임을 하나 만들었다. 출산을 두어달 앞둔 사람으로서 쉬운 결정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오래 고민하진 않았다. 생각하면 해야하는 성격이라 뒷일은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책 좋아하고 즐겨 읽는 엄마들의 카페였지만 시모임을 개설했을 때 반응이 예상 외로 뜨거워서 기뻤다. 놀라기 보단 기뻤다. 시에 대한 목마름이 이렇게 엄마들에게 있구나,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한 모금이 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했다.

 

시를 처음으로 읽었을 때(학교에서 공부할 때가 아니다. 자발적으로 읽었을 때)를 생각한다. 나희덕이었나? 가물가물하다. 20대 초반의 나희덕은 많은 공감과 위로를 주었다. 그리고 기형도. 는 시라는 게 무슨 뜻인지 몰라도 눈물을 펑펑 흘릴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지금도 그의 시를 읽으면 눈물이 차오른다. 이유는 여적 모른다.

 

모임의 이름은 호詩탐탐이다. 예전에 시모임할 때 제안했다가 퇴짜 당한 이름인데 다행히 좋아들 해 주셨다. 역시 사람은 일관성이 있어야해! 보고있나, 악몽!ㅋㅋ

 

첫 시집은 고은 시인의 <순간의 꽃>과 김개미 시인의 <어이없는 놈>이다. 엄마들 모임이라 시집과 더불어 동시도 함께 읽는다. 참 좋다. 책을 선택할 때 우리는 헤매었지만 그 헤맴조차 어여쁘다. 한 달 간 어떤 느낌이 공유될까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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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전집 6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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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밖에 없는 삶이기에 최선을 다하라고, 후회없도록 노력하라는 말을 많이 들어왔다. 그런데 역으로 어차피 두 번은 없기에 그만큼 가벼운 게 인간의 삶이라는 쿤데라의 해석은 신선했다. 쿤데라의 책을 일 년에 한 권 정도 읽고 있는데 읽을 때마다 아둔한 머리를 탓하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읽게 되는 것은 쿤데라만의 특별한 생각들 때문이다.

 

비교적 쉽고 재밌는 소설이라고 했다. 지난 번에 읽은 [느림]이 얇으면서도 내겐 굉장히 어려웠는데 이 소설의 두께에 지레 겁을 먹은 내게 그 말은 달콤했다. 사랑이야기라고 했고, 야하다고도 했고, 쿤데라의 소설 중 제일 재밌다고도 했다. 사랑 이야기였고, 야한 부분도 있었고, 그간 읽은 소설 중엔 제일 재밌게 읽었다. 그런데도 쉽지는 않았다. 또한번 아둔함을 탓해 보지만 곧바로 밑줄 친 문장들을 다시 읽어보고 몇 개는 옮겨 적어보기도 했다. [밀란 쿤데라 읽기]라는 책자도 참고했다.  단번에 다가오는 책도 좋지만 이렇게 여러 방법으로 생각을 정리하게 하는 책도 참 좋다.

 

사랑은 은유로 시작된다.(337쪽)

 

바람둥이적 성향에 가까웠던 토마시가 아주 우연히 테레자를 맞는다. 그리곤 강물에 떠내려온 바구니 속 아이같다는 생각을 한다. 사랑이 시작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바람둥이적 성향을 버리지는 못한다. 그것을 인내하는 것은 테라자의 몫이다. 그들이 마지막으로 택한 전원적 삶 속에서 둘의 가벼움과 무거움은 조화를 이룬다. 비록 그것이 죽음으로 가는 문턱 직전의 삶일지라도 그들은 일종의 행복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사비나, 사비나는 토마시를 사랑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꼭 그렇다고 인정하진 않는 삶을 살아간다. 물론 토마시에게 사비나는 바람둥이적 성향의 한 대상이었을 뿐 사랑은 아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배반하고자 하는 삶을 사는 사비나의 삶을 통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표현이 처음으로 등장한다. 철저하게 가벼움을 지향하는 삶이 그녀의 삶이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사랑하고 사랑하려고 했던 프란츠. 내 생각엔 사랑을 했다기 보단 사랑을 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자기가 사랑하기로 마음을 먹고 책임을 지려고 했던 대상이기에 그렇게 믿도록 자신에게 최면을 건 것 같은. 테레자처럼 무거운 삶을 사는 사람이다. 죽음을 앞두고 그 무거움은 어느 정도 해소가 된 것 같으니 그 역시 찰나일지라도 행복하지 않았을까 싶다.

 

읽으면서 나는 누구에게 이입을 하는 것일까? 하는 질문을 의식적으로 했다. 사비나를 동경했을 것이다. 그런 삶을 살아보지 못해서. 동시에 테레자의 삶을 부정했다. 그런 삶을 원하지는 않는다. 아마 유형으로 따지자면 프란츠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 아닐까 싶다. 썩 맘에 들진 않지만....

 

Einmal ist Keinmal. 한 번은 중요하지 않다. 한 번이면 그것으로 영원히 끝이다.(358쪽)

 

삶을 좀더 가볍게 보기로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건 막 살겠다는 뜻은 아니다. 그저 우리는 한낱 우주의 먼지일 뿐이지 않는가!에 동의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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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크기로 보는 넓은 바다 실제 크기로 보는 시리즈
아니타 가너리 글, 스튜어트 잭슨-카터 그림, 최재숙 옮김, 신남식 감수 / 사파리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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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은 겁이 많다. 그래서 동물을 썩 좋아하지 않는데 그나마 공룡 덕분에 무서움이 좀 줄어든 것도 같다.  어릴 때 자연관찰책을 접하게 해 주려고 했지만 아이가 싫어했다. 그래서 세밀화로 된 관찰책이나 귀여운 아기 동물의 이야기 위주로 읽을 수 밖에 없었다.

 

이 책은 몇 번을 읽어도 썩 믿기 어려운데 삽입된 이미지가 모두 사진이 아니라 그림이다. 아마 아들은 여전히 믿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 책장을 펼칠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라곤 했기 때문이다. 그게 귀여워 자꾸만 그 페이지를 펼쳐 아이에게 들이밀었다. 장난꾸러기 엄마다^^

 

 

푸른바다거북이나 흰긴수염고래는 쓰담쓰담 하면서도 심해아귀만 펼치면 어딘가로 내뺀다.  푸른바다거북과 흰긴수염고래는 크기가 너무 커서 책에 눈만 겨우 보일 정도인데도 제딴에는 무섭게 생기지 않다고 느껴지는 모양이다. 심해아귀는 고작해야 18cm(수컷은 3.5cm)라고 하는데도 생김새가 무서운 게 아이에겐 더 큰 느낌으로 다가오나 보다.

 

그러다 어제 기사를 보았다.

 

 

평소 같으면 그저 지나칠 기사였지만 책에서 독성이 있는 문어라고 읽었던 터라 관심이 갔다. 사실 아들의 기겁(?) 대상에 이 문어는 포함되지 않았었다. 독성이 있지만 크기나 모양이 무섭지 않았기 때문이었는데 기사를 아이에게 읽어주다보니 겁이 나기 시작했나보다. 만지기만 해도 죽을 수 있다는 데 겁이 나는 게 당연하겠지! 그 뒤론 푸른고리문어에 대한 반응도 심해아귀 못지 않아졌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책에 수록된 이미지는 사진이 아니라 그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이라고 느껴지는 것은 이 책이 <실제 크기>를 강조하기 때문이다. 욕심 같아서는 펼침북으로 실제크기처럼 만들면 좋겠지만 우리집보다 큰 흰긴수염고래를 더이상 어떻게 표현할 수 있겠는가 싶어졌다. 대신 보라줄무늬해파리 정도의 크기는 복사를 한 뒤에 전지에 실제 크기를 추측해서 그림으로 그려보는 활동을 하면 좋겠다 싶다.

 

아울러 책을 펼치기 전 음각이 들어간 푸른바다거북을 탐색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책에 대한 친밀감을 높이는 데에 도움이 될 것 같다. 아들은 여전히 특정 바다동물을 무서워하면서도 불쑥불쑥 이 책을 꺼내 혼자 읽는다. 아마 무서운 영화를 보는 마음과 같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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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5-05-27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런 문어가 다 있군요. 아이의 통통한 손이 귀여워요

그렇게혜윰 2015-05-27 13:50   좋아요 0 | URL
심해아귀에서 사라진 손ㅋㅋㅋ
 
책이 좀 많습니다 - 책 좋아하는 당신과 함께 읽는 서재 이야기
윤성근 지음 / 이매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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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의 괴로움]을 읽으면서 나와 같은 고민을 하지만 양적인 측면에서 너무나 차이가 많이 나서 내 고민은 고민도 아닌기라~하던 참인데 이렇게 우리나라에도 책이 쌓인 사람들이 많구나 싶어서 우선 놀랐다.

 

이상북의 대표이자 책에 관한 책을 쓰는 저자 윤성근이 인터뷰이로 선택한 사람들은 유명인이 아니라 그가 알음알음으로 알게 된(그러하기에 역촌동 즈음의 사람들이 많다) 사람들이다. 참 자연스러운 것 같다. 굳이 장서가로 많이 알려진 사람들을 억지로 찾아가는 것 보다는 아는 사람에게 가서 자연스레 이야기를 나누는 일, 좋은 인터뷰 방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 사람들, 오카자키 다케시 만큼은 아닐지라도 그에 못지 않은 장서가들이 아닌가! 한 개인의 주변 인물들 중에도 이렇게 장서가가 많다니, 다시 한 번 내 책은 많은 것도 아닌기라~~

 

개인적으로는 인터뷰를 정리한 각각의 장도 좋았지만 에필로그가 특히 맘에 들었다. 인터뷰를 끝내고 책이 출간되는 사이 인터뷰이들 중 대다수가 그때와 다른 자리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점 말이다. 삶은 그렇게 흘러가고 변해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이라는 구심점이 있어 서로가 여전히 그대로 연결되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 책 사랑이 깊은 사람들의 이야기만 죽 읽다보니 책을 좋아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아도 좀 갑갑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사실 중간에 그만 읽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다 읽게 된 데에는 어느 순간 이분들의 이야기가 편안히 다가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방식이나 무언가를 나에게 강요하는 느낌이 없었다.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할 뿐이었다. 그게 좋았다. 책이 많다는 것에 자부심이 있다던가, 깊은 지식을 강조한다던가, 정독해야 한다던가, 다독해야 한다던가, 중독해야한다던가 등등의 답이 없다.  도리어 책부심(?)에 힘입어 자만할 것을 경계하고, 세상의 책을 다 읽어치울 욕심을 버리라고 말하는 것에 공감했다.  장서가와 애서가의 차이에 대해 고민하기도 했다. 어차피 장서가는 아니지만 과연 나는 애서가인가, 하는 고민 말이다. 무엇 때문에 책을 읽는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본다.

 

한옥 책 거실을 가진 회사원 정무송 씨의 글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여행자였던 까닭일까 애서가이면서도 책에 대한 집착이 없는 것이 마음이 편해진다. 깊게 알지 않고 넓게 아는 것이 더 좋다는 그의 말이 여유롭게도 느껴지기도 한다.  "그 시간, 그 장소에서, 바로 그 책을 읽는 것."이라는 말이 새삼 내가 지금 읽고 있는 책을 애틋하게 느끼도록 한다. 각각의 인터뷰이들을 만나 이야기하면서 저자가 추천한 책들을 알아가는 재미도 쏠쏠하다. 덕분에 집에 사두기만 했던 책들에게 다시 한 번 눈길을 주고, 헌책방을 지나면서 [파브르 곤충기]를 사기도 하고, [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를 장바구니에 담아두기도 했다. 여러모로 책을 좀더 가볍고 진실하게 대해야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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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격자들 2 - 조운선 침몰 사건 백탑파 시리즈 4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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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http://blog.aladin.co.kr/tiel93/7549256을 사흘에 걸쳐 읽었다면 2권은 그냥 앉은 자리에서 읽을 수 밖에 없었다. 아들에게 수불석권 [手不釋卷] 을 설명하며 양해를 구하였다. 어쩔 수 없이 자기도 얼마 전에 산 만화책을 옆에서 읽는다^^

 

제목이 [목격자들]이고, 이야기의 흐름과는 별도로 작가 역시 조운선과 소선의 침몰을 보고 방관하는 어선들에 대해 틈틈히 언급을 한다. 제노비스 신드롬과는 다르게 어선들의 방관은 이익을 취하고자 하는 의도적 방관이다.

 

소설을 읽다보면 소설의 배경이 바다이고 억울하게 침몰한 생명에 관한 사건이다보니 자꾸만 세월호가 떠오른다. 아마 작가 역시 쓰면서 세월호를 은근슬쩍 암시하도록 하지 않았나 싶다.  소설의 말미에 거론된 '기억의 마을'이 가장 그러하다.

왜 우리에겐 담헌이나 화광, 청전과 같은 이들이 없는 것인지, 더 나아가 왜 우리에겐 완벽하진 않더라도 직언을 받아들이고 그를 실행에 옮길 군주가 없는지 읽으면서 현실과 겹쳐지고 또 어긋나는 면면에 마음이 복잡해진다.

 

1권의 중간부터 2권의 중간까지의 긴박함과 달리 사건의 마무리는 크게 예상을 벗어나지는 않는다만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의 이름과 그들의 이야기를 짧게나마 정조에게 올려 그들의 슬픔을 달래주라 청한 신하나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여 고맙다고 전하는 정조의 모습은 비록 비현실적일지언정 아름답다.

-383쪽

 

이명방이 소설과 현실의 차이를 느껴 소설 쓰기를 멈추었듯이 우리도 소설이 현실과 많은 차이를 지니고 있음을 안다. 허나 김진의 말처럼 소설에서라도....그런 마음도 충분히 공감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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