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창 너머로는 햇살이 쏟아지는데, 눈으로 보면 너무 따뜻할 것만 같은 풍경인데도 실제로는 영하 14도. 산더미 같은 책들을 쌓아놓고 오늘 읽어야 할 것들을 오늘 읽을 수 있는 생활이 얼마나 손에 쥐기 어려운 것인가를 생각한다. 돌아보면, 


펄떡펄떡 맥이 뛰는 설렘을 품어 안은 채 몇 개나 되는 새벽을 지치지도 않고 건너 온 기억도, 또 가늠할 수 없는 질량에 한껏 짓눌려 이제 더는 못하겠다며 꽁무니를 내뺀 기억도, 모두 다 활자에 업혀 내게 온 것들이다. 읽는다는 것은 또 얼마나 변덕이 심한지, 읽는 일이 즐기는 일이 되는 낮과 읽는 일이 버티는 일이 되는 밤을 번갈아 지나오다 보면, 어떤 때는 3일이 다 가도 해가 지지 않고 또 어떤 때는 한 달 내내 밤과 밤과 밤만이 이어진다. 어느 날은 하루에도 몇 번씩 낮과 밤이 얼굴을 바꾸기도 한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에 살고 싶다. 


점심을 먹고 도서관 책상 앞에 앉아 다른 생각의 침략 없이 읽고 읽다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 창 밖으로 내려 앉은 새벽, 세상에서 가장 밝았던 어두운 그 새벽을 다시 한 번 만나고 싶다. 또 한 번 활자의 꾐에 빠져 나를 잊고 싶다. 멀리 멀리 나를 쫓아보내고 싶다.


아무것도 이룬 것 없이도 모든 것을 다 이룬 그 새벽을 아마 다시 마주하기는 힘들겠지만 그래도 행여 우리가 다시 만난다면, 그것은 아마도 오늘 읽어야 할 것들을 내일에서야 읽지는 않는 날들이 쌓아 이룬 주름들 가운데 어딘가에서 우연히 일어나는 일일 것이다. 활자를 손 끝으로 한 자 한 자 쓸어가며, 연필로 종이를 밀어가며, 스탠드 불빛 아래 엎어져가며, 그렇게 만들 것이다. 사실, 그것 말고 내가 달리 무엇을 만들 수 있을까. 햇살이 쏟아져도 충분히 추운 날이다.



의미를 상실하여 절망하면 독서는 지속되지 못한다. 하지만 독서의 의의가 가장 풍부하게 자라는 곳은 바로 책의 세계다. 인간의 최초의 선의는 불꽃에 불과하기 때문에 차디찬 현실 세계의 공기에 의해 쉽게 꺼져버린다. 불꽃이 계속 타오르기 위해서는 땔감을 넣어야 하지만 메마르고 추운 세상에는 항상 자원이 부족하다. 그렇기 때문에 땔감인 독서가 지속되어야 한다. 세계가 진정으로 의지할 수 있는것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지속되는 독서다.

_ 탕누어,『마르케스의 서재에서』



2


벼랑 끝에 오래 서 있어 본 사람은 생각한다. 어쩌면 이렇게 매일 심연을 내려다 보며 살아야 하는 여기 이 위태위태한 벼랑 끝 한 뼘의 땅이, 결국 내게 주어진 유일한 자리는 아닌가 하고. 벼랑 끝에 처음 서 본 사람은 발버둥을 친다. 벼랑 아래로 떨어져 본 사람은 포기하거나 다시 산비탈을 오른다. 그러나 벼랑 끝에 오래 서 있는 사람은 어쩔 줄을 모른다. 심연을 너무 오래 들여다 보았기 때문이다. 동시에 희망을 너무 오래 들이마셨기 때문이다. 앞도 뒤도 모두 내 자리가 아닌 것 같으면서 동시에 앞도 뒤도 모두 내 자리 같다. 그리하여 결국은 여기만이 내 자리가 된다. 벼랑 끝에 오래 서 있어 본 사람들은 어느 방향으로도 쉽게 한 발을 내딛지 못한다.


다른 곳에 선 사람들은 말한다. 너희들은 절망에 중독되어 있다고. 그것은 반만 맞는 말이다. 우리는 절망에 중독된만큼 희망에도 역시 중독되었다. 희망과 절망은 길항한다. 그러나 딱 한 군데, 희망과 절망이 공모하는 자리가 있다. 그곳이 벼랑 끝이다. 심연에 아직 몸을 담그지는 않았으나 누구보다 오래도록 내려다 보는 이들이 내몰린 자리다.   





인생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으로 가는 마차를 기다리며 머물러야 하는 여인숙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는 알 수 없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이 여인숙에 머물며 기다려야만 하니 감옥으로 여길 수도 있겠고, 여기서 다른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니 사교장으로 여길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참을성 없는 사람도 평범한 사람도 아니다. 그러므로 이 여인숙을 감옥으로 여기는 건 잠들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방안에 누워 있는 이들의 몫으로 남겨둔다. 사교장으로 여기는 건 음악 소리와 말소리가 평안하게 들려오는 저쪽 거실에서 대화를 나누는 이들에게 넘긴다. 나는 문가에 앉아 바깥 풍경의 색채와 소리로 눈과 귀를 적시며 마차를 기다리는 동안, 내가 만든 유랑의 노래를 천천히 부른다.

_ 페르난두 페소아,『불안의 책』

     


3



존 치버,『존 치버의 일기』를 읽기 시작하다.

장석남,『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을 읽다.

이진경,『철학과 굴뚝 청소부』를 다시 읽기 시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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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8-01-26 1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탕누어의 마르케스의 서재에서가 도착하길 기다리고 있어요!! 근데 오늘 글은 그런 책을 읽으셔서 그런가 무지 철학적!?( “)
암튼 토비 님 화이티잉~~~~!!(소리 크게 질러서 저렇게 갈라진 거에요!! ㅎㅎㅎㅎ)

syo 2018-01-26 16:50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ㅎㅎ
철학적은요 무슨, 공부하기 싫어서 징징대는 거예요 저거 다 ㅎ

화이팅은 잘먹겠습니다!!^ㅠ^

2018-01-26 16: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26 16: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18-01-26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번째, 두번째, 세번째 문단 너무너무 좋아요.
이렇게 마음을 와닿는 글을 ‘알라딘 서재-일기장에‘서 만났다는 걸 도무지 믿을 수가 없네요.
잘 읽고 가요. 고마워요, syo님~~^^

syo 2018-01-26 20:33   좋아요 0 | URL
단발님 그동안 어디가셨던 거예요. 알라딘이 텅 빈 줄......^^

. 2018-01-28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yo님 서재는 여러 번 들락날락했는데 댓글 다는 건 처음이네요. 처음 뵙겠습니다😄 도서관에 가면 늘 syo님 서재를 먼저 찾곤 해요. 예전만 해도 좋아하는 작가따라, 좋아하는 수상작따라, 또는 꽂히는 표지나 제목에 따라서 책을 고르곤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syo님 후기를 따르게 되었네요(왠지 쑥스러워 하실 것 같지만😸). 물론 양적인 면에선 발끝도 못 미치지만요🌝 제 취향대로만 골라 읽으면 아무래도 장르가 한정되서 인지.. 특히나 한국사나 소설쪽만 보게 돼서.. 인문학도나 돼볼까하고 고른 서적은 하나같이 지루하기만 해서요.
말이 길었는데 여하간 syo님 서재를 조용히(음침하게) 자주 들르는 저같은 사람도 있답니다😋 모쪼록 아침저녁으로 날이 싸늘한데 부디 단디 입으셔서 감기 예방하세요~~! 늘 응원하겠습니다!!

syo 2018-01-28 10:54   좋아요 0 | URL
어마어마한 댓글이네요..... 그리고 어마어마한 닉네임이시네요^^ 반갑습니다 .님🤗
제 짤막한 후기들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셨다니 뿌듯합니다. 말씀 듣고 나니 요즘은 많이 읽지도 쓰지도 못하고 있어서 민망하네요ㅎㅎㅎㅎ
아무쪼록 .님도 건강에 유의하시고, 좋은 책, 재미진 책 많이 읽으시길 응원합니당😀
 
현남 오빠에게 - 페미니즘 소설 다산책방 테마소설
조남주 외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그해 우리의 마음들을 기억한다.

 

눈발이 옅어 겨울도 옅은 고장에 뜻밖의 큰 눈이 내려 쌓이고 길이 얼었다. 아이들은 매일 걷는 길을 조심조심 걸었고, 학교에 모여 매일 듣는 수업을 듣거나 매일 보는 교재를 보며 겨울방학을 녹였다. 몇몇은 화가 났다. 마음이 얼었다. 그래도 숨거나 도망칠 수 없었다. 길이 얼었고, 얼어붙은 길 위에서는 언 마음이나 녹은 마음이나 모두들 조심조심 걸어야 했기 때문에, 어린 마음들은 탈주를 포기하고 교실에 앉아 그저 조금씩 딱딱해지는 중이었다. 마음의 모서리가 줄곧 날카로움을 더해가는 중이었다. 모서리가 다른 모서리들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건드리기만 해. 무슨 일이라도 벌어지기만 해 봐. 이곳은 웅크린 모서리들의 각축장. 겨울이 옅은 고장에 사는 아이들의 안으로, 안으로 겨울이 열렸다.

 

또 그해 그 여자아이가 맥없이, 잘못 없이 받은 상처와 우리의 잘못을 어림한다.

 

옆 반 아이가 창문을 열고 내지른 소리가 우리 반 창문을 타고 넘어왔다. 아가씨, 고개 좀 들어 봐. 우리 반 아이들이 일제히 일어나 창가로 몰려들었다. 거칠게 열어젖힌 창문 바로 아래 우리 학교의 담이 있었고, 그 담 너머 자동차 한 대 겨우 지나다닐 좁은 길 위로 교복 입은 여자아이가 작고 조심스러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친구의 입이 뿜어낸 나쁜 말들의 손끝이 그 아이를 가리키고 있었다. 아가씨! 여기 한 번 보라니까? 커피 한 잔 합시다! 여자아이가 웅크린다. ! 나는 어때? 저 새끼는 고자야! 나쁜 말이 커지고 여자아이는 더 작아진다. 아가씨! 놀다 가라니까? 오빠가 잘해 줄게! 그때 갑자기 여자아이가 미끄러져 휘청한다. 길가에 면한 여섯 개 학급의 창가에서 큰 웃음이 터진다. 어이, 아가씨, 괜찮아? 그러다 넘어져! 여자아이는 얼른 자세를 다잡고 다시 걷는다. 아이는 이미 너무 작아져 있다. , XX, 사람이 물으면 대답을 해야지! 지금 너 걱정하는 거 아냐! 여자아이는 여섯 개 학급을 겨우겨우 지나쳐 큰 도로 쪽으로 나가는 골목길을 돌아 사라진다. 아니 어쩌면, 작아지고 작아지다 이내 사라져버린 건 아닐까?

 

끈적거리는 가운데 날카로운 그 무섭고 더러운 말들을, 우리는 어디서 배웠을까? 그 검은 말들이 대체 언제부터 어떻게 우리 안에 도사리고 있었던 걸까? 창가에 우르르 몰려들었던 우리는 쉬는 시간이면 어깨를 겯고 매점에 들러 스스럼없이 자기 지갑을 열어 서로의 손에 먹거리를 쥐어주는 정다운 친구들이었다. 더운 여름 한 번 건네주면 땀에 찌들어 돌아올 것을 알면서도 새로 빨아 가져온 체육복을 망설이지 않고 빌려주는 친구였다. 저 친구가 한 문제를 더 풀면 내 등수가 떨어지더라도 그 한 문제를 기어이 알려주고 차라리 제 잠을 줄여 공부를 더 하는 든든한 전우였다. 그리고 그 여자아이가 사라지고 모두들 자기 자리로 돌아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내려놓았던 샤프를 쥐고 다시 수학 문제를 풀 때, 이미 우리는 다시 예전의 그 모든 우리였다.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한 걸까?

 

부끄러워 마땅한 것은 우리의 입이 만든 말들이었지만 정작 부끄러워하는 것은 여자아이였다. 우리가 뱉은 부끄러움들이 그 아이가 걷는 길 위에 미끄러움으로 쌓이고, 얼음이 아니라 말이 만든 그 미끄러움이 아이의 발목을 잡았을 것이다. 넘어지면 더 큰 부끄러움을 맞닥뜨려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서, 아이는 그 지옥 같던 여섯 개 학급의 옆길을 더 조심스레 더 천천히 걸어야만 했을 것이다. 그 슬픈 발걸음 말고 다른 보폭을 선택할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이미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걸 우리는 몰랐고, 우리 가운데 일부는 지금도 모를 것이다. 큰 도로를 향해 여자아이는 사라졌지만, 여자아이에서 여자가 되고, 여자에서 다시 연령이나 외모, 직업, 결혼여부 따위로 매겨지는 수많은 하위호칭들의 터널 속을 강제로 걸어 나가면서, 그녀는 아마 계속해서 조심스레, 천천히, 포착되지 않으려 고개를 숙이고, 넘어지지 않으려 웅크리며 걸었을 것이고 또 그렇게 걸어야 할 것이다.

 

이 책이 그녀의 보폭을 그녀에게 돌려줬으면 좋겠다.

 

성큼성큼 걷고 싶다면 성큼성큼 걷고, 잠시 멈춰 서서 여섯 개 학급의 창문 속에 숨은 머저리들에게 쌍욕을 하고 싶다면 손가락도 하나 펴서 시원하게 욕할 수 있게 해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날 우리가 빚은 말들과 그 말들로 더러워진 어느 겨울의 풍경을, 어린 날의 치기나 한때의 추억이라며 한 젓가락 술안주로 소비하는 친구들이 아직 남았다면, 말해주고 싶다. 우리가 만든 부끄러움은 끝내 우리의 것이며, 언젠가는 인정해야 할 날이 온다. 부끄러움을 부인하는 일이 더 큰 부끄러움을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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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01-24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 번에 도서관에서 이 책을 빌렸지요.
하지만 너무 읽을 책들이 많아서 잠시 미루어
두었었는데 예약이 되었다는 말에 오늘 아침에
집어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타이틀 단편을 읽었는데 그것 참...

점강이 아닌 점층적 자각으로 이끈 점이 문학
적 클리셰이가 아닌가 뭐 그런 생각이 들었습
니다.

syo 2018-01-24 16:22   좋아요 2 | URL
솔직히 제 눈에 조남주 작가는 재능있는 소설가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김지영도 그렇고 이 작품도 그렇고 ˝문학적˝으로 기똥찬 데는 하나도 없는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다음 작품이 기대되는 작가는 아니기도 하구요.

그런데도 이만큼 읽히고 이만큼 호명되는 건, 제 취향이랄지 작가나 작품의 ˝문학적˝ 역량 바깥에서 작용하는 뭔가가 있고, 그게 소위 문학적이라는 것이 뭐 얼마나 대단한 기준인 건지 메타적으로 한 번 돌아보게 하는 데도 있는 게 아닌가 하구 뭐 그렇지요.

레삭매냐 2018-01-24 16:34   좋아요 1 | URL
격하게 공감하는 바입니다.

저도 신랄하게 더 까고 싶더라구요...

시류에 영합한, 시류를 만들어낸 소설이라고나
할까요. 어쨌든 모든 일에는 타이밍이 있는 법이니깐요.

아무래도 방송작가 출신이다 보니 말랑한 감성을 공략
하는 법을 제대로 알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현남 오빠에게>도 소설이라기 보다 왠지 한 편의 단편
드라마를 보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syo 2018-01-24 17:07   좋아요 2 | URL
허허.
전 신랄하게 까려했던 것은 아닌데;;;

레삭매냐님께서 말씀하신 ‘시류에 영합‘과 ‘시류를 만들어 낸‘ 이라는 두 가지 표현은 syo의 기준에서 보면 천지차이입니다. 저는 <82년생 김지영>의 경우는 시류에 영합했거나 시류를 만들어 냈다기보다 ‘시류를 드러낸‘ 소설이라고 보고 싶고, 그런 점에서 높이 평가하고 싶어요. 많은 사회 구성원들이 몸으로 느끼고 또 그 중 일부는 힘들여 증언하는 어떤 현상에 서사와 언어의 옷을 입혀 많은 사람들이 ˝맞아, 이거 내 얘기야. 딱 내가 이랬다고 말을 하고 싶었어.˝ 하게 만드는 것도 문학의 역할 중에 하나라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작품 자체가 문학적으로 얼마나 잘 구성되어 있는지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어떤 큰 집단의 언어를 대신 구현해 주었다는 데서 충분히 가치있게 자리매김하는 것 같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던 건데, 제 표현이 서툴렀던 것 같아요.

레삭매냐님이 느끼신 것들, 더 신랄하게 까고 싶으신 마음을 그대로 이해합니다. 평소 레삭매냐님의 글을 열심히 읽고 판단하건대, 소설에 대한 안목으로 보면, 레삭매냐님은 syo가 토를 달기에 너무 높은 데 있는 분이시기도 하구요. 작품 자체나 작가의 역량에 대해서는 뭐 별로 다르게 생각하지도 않구요. 실제로 제 주변의 여성분들도 이 작품이 하는 말에 대해서는 공감하면서도 이 작품이 말하는 방식 자체에 대해서는 그다지 훌륭한 것은 아니라고들 하시더라구요.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서니데이 2018-01-25 08: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은 날씨도 많이 추워요.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독서괭 2018-01-25 12: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토비님!! 이 슬픈 글에 귀여운 별명을 불러 죄송하지만 입에 짝짝 붙네요..ㅎㅎ
그 작은 여자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ㅜㅜ “이미 우리는 다시 예전의 그 모든 우리였다.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한 걸까?” - 저도 인간의 이런 모습을 보면 의아하기도 하고, 저에게도 그런 이중성이 있을 수 있겠다 싶어 오싹해집니다.
늘 좋은 글 감사합니다^^

syo 2018-01-25 14:14   좋아요 0 | URL
토비가 인기가 좋아지면 우선 닉네임을 바꾸고, 나중에는 영어 이름으로 쓸까 싶습니다.
아임빠인땡큐앤유밖에 못하는 영어긴 하지만요.ㅎㅎ

아트 2018-01-28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솜씨가 좋으시네요. 잘 읽고 갑니다 :) 감사합니다.

syo 2018-01-28 23:09   좋아요 0 | URL
별말씀을요ㅎㅎ 제가 감사합니다.
 



꽈배기의 멋 / 꽈배기의 맛

최민석 지금 / 북스톤 / 2017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만나, 지금은 누가 물어봐도 가장 친하다고 대답할 수 있는 20년도 더 먹은 친구 녀석은 아무말에 매우 능하다. 서로 다른 고등학교에 입학한 이후에는 한 달에 한 번 만나기도 어려웠는데, 아니 이놈이 만날 때마다 키가 쑥쑥 자라 사람을 빡치게 만들었다. 나보다 작은 게 너의 유일무이한 매력이었는데. 키 크는 비결을 내놓지 않으면 우리의 우정은 여기 어디쯤에서 먼지가 되어 흩어질 것이라 협박했더니,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한다. 글쎄, 엄마 아빠가 같이 안 살기 시작해서 그런 것 같은데? 야! 나돈데 나는 왜 안 커. 아니 아니 그러니까, 엄마 아빠가 같이 안 살아서 밥 대신 라면을 자주 먹어서 그런 것 같은데? 야! 나 땜에 우리 동네 무파마 멸종 직전이거든? 아니 아니 그러니까, 엄마 아빠가 같이 안 살아서 밥 대신 라면을 자주 먹는데 그러다보니 김치를 많이 먹어서 그런 것 같은데? 야! 나도 김치한테 미안해서 김장이라도 배울까 고민하는 상태거든? 아니 아니 그러니까, 엄마 아빠가 같이 안 살아서 밥 대신 라면을 자주 먹는데 그러다보니 김치를 많이 먹게 되는데 그 김치에 생굴이 잔뜩 들어서......


플라타너스 이파리가 바스라져 바람에 흩날리던 가을의 어느 날, 분명히 그럴 리가 없는데도 자꾸 날이 덥다며 윗도리를 펄럭대는 그 녀석의 복근에 새겨진 선명한 王자를 발견한 syo는 그걸 못 본 척 하는데 최선을 다하는 중이었으나, 점점 더 격렬히 배를 까고 옷을 펄럭이는 녀석의 모습을 보니 아무래도 이쯤에서 언급하지 않으면 배꼽을 내 눈알에 갖다 대기라도 할 기세라 못 버티고 입을 열었다. 야, 장난 아니네 복근. 아아, 이거? 뭐 그렇지. 그게 복싱 다닌 결실이냐? 그러자 녀석인 눈을 반짝이며 대답했다. 아니 아니 그러니까, 요즘 너무 웃긴 시트콤을 보고 있는데, 계속 웃다보니까 배가 이렇게 된 것 같은데? 친구야. 니가 그놈의 복싱 배우는 중만 아니었으면, 그때부터 넌 삼겹살을 앞니로 씹어야 했거나, 네이버에 '임플란트 잘하는 곳' 따위를 검색하고 있거나 그랬을 거야.


여러분의 펀치가 syo의 모니터를 뚫고 날아오지 않는다는 확신, 어금니의 안보는 탄탄하다는 믿음에 힘입어 과장을 보탠 아무말을 하자면, 최민석의 에세이『베를린 일기』를 읽고 났더니만 선명한 복근까지는 아니더라도 윗몸 일으키기가 열다섯 개 늘었어요! 과연 복근 전문 트레이너 최민석 작가. 최신작(이라 쓰지만 묵은 에세이 모음집)『꽈배기의 맛』과『꽈배기의 멋』은 그보다는 좀 약해 일곱 개 반 정도, 레그레이즈 세 개 정도 늘려준다! 한국의 빌 브라이슨이라 불린다는데, 그만큼 웃긴다는 이야기지만 막상 글 자체의 꼴은 빌 브라이슨보다는 무라카미 하루키에 가까워 보인다. 세 스푼 더 웃긴 무라카미.




그리고 덜 웃긴 최민석


  





나의 첫 젠더 수업

김고연주 지음 / 창비 / 2017


여친이 교사라, 교육 정책이나 교육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많다. 코딩이 교육 체제 안으로 편입되어 자리를 잡으면서 우리는 학교에서 꼭 배웠으면 싶은 것들에 대해 말했다. 여친은 영화나 드라마, 라디오 프로그램과 같은 통합적인 예술 콘텐츠 제작에 관한 프로젝트식 수업을 원하고, syo는 두 과목을 원한다. 노동법과 젠더.


학교 교육의 실용성에 대한 우스개는 역사도 깊고 판본도 다양하다. 선생님, 전 문과 가고 법대 갈 건데 미적분은 어따 써요? 더 크게는, 계산기가 이렇게 좋은데 수학은 뭐하러 배워요? 같은 질문들에 다양한 대답들이 짝을 맞추어 해피엔딩부터 막장엔딩까지를 골고루 연출한다. 실용성 면에서 보면 노동법만큼 실용적인 과목이 있을까? 이 교실의 서른 명 아이 가운데 스물아홉 명은 장차 한 번은 노동자가 될 운명이다. 노동법은 창인 동시에 방패이며, 비록 그 창은 군데군데 날이 빠지고 방패는 여기저기 구멍이 숭숭 나 있지만, 그래도 맨주먹 맨발로 싸우는 것보다는 낫다.


그렇다면 젠더는 배워서 어디다 써요? 하고 물어온다면 젠더를 배워서 어디다 쓰려는 생각을 한다는 자체가 젠더 교육의 필요성을 드러내는 지점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젠더. 누군가에게 그것은, 존재한다는 사실은 분명하게 느껴지지만 너무 흐릿하게 보여 명확히 가리켜 짚어내기 어려운 것들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안경이고, 어떤 누군가에게는 평생 모르고 살아도 지장이 없는 보기 불편한 것들을 드러내 보여주는 또 다른 안경이기도 하다. 안경이 필요한 사람은 특정한 일을 하기 위해 안경을 쓰는 것이 아니라, 일단 안경을 쓰고 무엇인가를 한다. 어떤 눈은 배우지 않으면 뜨이지 않고, 어떤 배움은 이르지 않으면 이루지 못한다. 나 아닌 사람과 어우렁더우렁 살기 위해 언어와 사회규범을 배우듯, 그리고 그것들은 사용하는 게 아니라 착용하는 쪽에 가깝듯, 우리에겐 학습하기보다 장착해야 하는 과목들이 있다. 



초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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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23 14: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23 15: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1-23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교육’을 ‘젠더 교육’이라는 말로 대체해서 보편화되었으면 좋겠어요. ‘성교육’의 ‘성’이 뜻하는 정의가 고리타분해요.

syo 2018-01-23 15:25   좋아요 0 | URL
성교육과 젠더교육은 지향점 자체부터가 완전히 다른 별개의 교육인 것 같아요. 말을 대체할 게 아니라 교육 유형 자체를 교체해야 할 판이지요.

붉은돼지 2018-01-23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뭐 상관없는 이야기입니다만
저는 꿀꽈배기를 즐겨먹는데요
달달하니 소생같은 초딩 입맛에 딱인데, 다만 한가지 혼자 한 봉지 쯤 다먹으면 입천장이 좀 아프다는 ....

syo 2018-01-23 17:48   좋아요 0 | URL
아..... 제가 유서 깊은 맛동산성애자 집안 출신이라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희 쪽은 주로 과자 본체보다는 땅콩 부스러기에 입천장을 쓸리는 경우지요.

프리즘메이커 2018-01-24 0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트콤 같은 맛깔나는 글...syo님의 일화만 따로 묶어서 읽고 싶어요

syo 2018-01-24 07:12   좋아요 0 | URL
별 것 없는 소소한 인생입니다.
프메님 오랜만이네요 ㅎ

레삭매냐 2018-01-24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급 작가를 표방하는 최민석 작가가 계속해서
책을 발표하는 게 신기할 따름입니다.

그래도 수요가 있는 모양이네요 :>

초기작들을 읽었는데 신간들은 다른 책들에
치어서리.

syo 2018-01-24 16:13   좋아요 0 | URL
원래 B급이라는 것이 크진 않지만 단단한 수요를 기반으로 하니까요.

막상 전 이 작가의 소설은 한 권도 안 읽어봤습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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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립도서관 가운데, syo가 사는 곳에서는 구로도서관이 제일 가깝다. 지하철 세 정거장 하고 도보로 노래 두 곡 듣는 거리. 걸어서도 한 시간이면 간다. 뛰면 이십 분 안짝이다. 그렇다고 뛰지는 않는다. 물론 걷지조차 않는다. 가끔 다리는 왜 있는 건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곤 한다.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바지를 입기 위해서가 아닌가 싶다. 남자는 바지를 입지 않고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없게 되어 있는 것이 문명사회다. 세 살에 미적분을 마스터하고 일곱 살에 제5 외국어가 네이티브의 경지에 도달했으며 열세 살에 플라톤에서 시작해 마침내 열 일곱에 지젝을 완전정복한, 취미가 Fast Fourier Transform 암산인 남자라면 물론 세계적인 천재로 추앙받겠지만, 그런 그라도 바지를 입지 않은 채 지하철을 타는 순간 즉시 돌아이로 급전직하하여 구금 및 벌금의 처분을 받게 됨은 물론, 덤으로 2호선 하의실종남으로 등극하여 영원히 고통받는 것이 바로 이 세상 이치다. 그리하여 다리는 머리보다 위대하고, 바지는 걷기보다 위대하다. 그렇다는 것은, 일단 바지를 입었다면 다리가 할 바 중요한 임무를 완수한 것이므로, 그까짓 걷기 좀 안 해도 된다는 이야기겠다. 뭐, 어쨌든 지하철 역에서 도서관까지는 걸었잖아. 택시 탈 수도 있었는데.


여담이지만, 바깥 출입이 거의 없는 요즘, syo의 다리는 바지를 입는 용도보다는 주로 간지러울 때 긁는 용도로 사용되는 중이다.



보행은 수단인 동시에 목적이며, 여행인 동시에 목적지다.

_ 리베카 솔닛,『걷기의 인문학』


느리게 가는 데 걷는 것만큼 좋은 건 일찍이 없었다. 걷기 위해서는 두 다리만 있으면 된다. 다른 건 일체 필요 없다. 더 빨리 가고 싶다고? 그럼 걷지 말고 다른 걸 하라. 구르든지, 미끄러지든지, 날아라. 걷지 마라. 그러고 나서 중요한건 오직 하늘의 강렬함, 풍경의 찬란함 뿐이다. 걷는 것은 스포츠가 아니다.

_ 프레데리크 그로,『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


보행은 가없이 넓은 도서관이다. 매번 길 위에 놓인 평범한 사물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도서관, 우리가 스쳐 지나가는 장소들의 기억을 매개하는 도서관인 동시에 표지판, 폐허, 기념물 등이 베풀어주는 집단적 기억을 간직하는 도서관이다. 이렇게 볼 떄 걷는 것은 여러가지 풍경들과 말들 속을 통과하는 것이다.

_ 다비드 르브르통,『걷기 예찬』




2


지하철 역 화장실에 잠깐 들렀다. 들어갈 때는 분명 입구 앞 긴 의자에 잘 생긴 외국인 남자가 혼자 조용히 앉아 있었는데, 나오면서 보니 어디서 나타났는지 영악하게 생긴 꼬맹이 두 명이 그 외국인 옆에 찰싹 붙어 함께 셀카를 찍고 있었다. 요즘도 외국인 신기해 하는 꼬맹이들이 있단 말인가, 싶었지만 아무래도 외국인이어서라기보다는 잘생긴 외국인이어서 저러는 듯했다. 아 어린노무자식들이 벌써부터 잘 생긴 건 알아가지고, 이 나라가 어찌 되려고 이러나, 못 생기고 속도 좁아 이래저래 빡친 syo 아재가 혀를 끌끌 차며 슬쩍 지나가려 했는데, 갑자기 그 외국남이 자기들 사진 좀 찍어달라며 말을 걸어왔다! 영어였다! 앗, 야생의 외국인이 나타났다!!


사진을 찍는 데는 one, two, three, one more time 말고는 아무것도 필요가 없었기에 곤란할 일 없이 일단락되리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난감한 전개가 이어졌다. 바로 syo의 앨범을 호올쭉한 거지로 만든 유년기부터의 고질병, 수전증 때문에...... one more time을 남발하며 몇 장 찍었으나 역시나 죄다 조금씩 흔들려 있었고 계속 찍어 본들 더 나아질 것 같지가 않았기에 핸드폰을 돌려주며 변명을 시도했다. 근데 여기서 일이 터질 줄이야..... 아무 생각 없이 Because of my handshake, 까지 내뱉고는 뭐? 핸드셰이크? 손 떠는 게 핸드셰이크라고? 와, 인디언이 역삼동 땅투기하는 소리 하네. 이 덜떨어진 미친놈아! 으아아아아아아아앙아아앙 이 망신 난 몰라!! 하는 내면의 아우성, 자발적 패닉 상태에 빠지고 만 것이다. 


얼어 있는 syo를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 남자, 태평양이든 대서양이든 인도양이든 뭐든 건너 와, 마음씨도 태평양 대서양 인도양처럼 광활한 그 남자가 방긋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syo는 그 손을 맞잡았다. 마치 처음부터 악수가 의도였던 사람처럼 최대한 천연덕스럽게 손을 잡고 위 아래로 살짝 흔들며 말했다. Have a nice day and a nice trip. Yeah, thank you. 그의 손은 정말 따뜻했다. 


그러고 얼른 그 자리를 벗어나는데, 등뒤에서 들렸다. 야, 저 사람 동공에 지진났어. 아 어린노무자식들이 벌써부터 관상보는 법은 알아가지고. 이 나라가 어찌 되려고 이러나.


쪽은 팔렸지만, 그렇다고 영어공부를 하지는 않는다.




  

한국에서 "영어를 잘해야 한다"는 강박은 실제 삶에서 영어가 얼마나 필요한가외는 무관하다. 유창하고 세련된 영어는 1퍼센트에겐 신분을 상징하는 수단이며, 99퍼센트에겐 1퍼센트에게 빌어먹는 수단이다.

_ 김규항,『우리는 고독할 기회가 적기 때문에 외롭다』


사회가 요구하는 것에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이 '아니오'라는 목소리에는 사회 개혁을 위한 연대 정신과 '다른 가능성의 세계'를 모색하는 정신을 담고 있다.

_ 이하준,『고전으로 철학하기』

    


3



김소연,『시옷의 세계』를 마치다.

김서영,『영화로 읽는 정신분석』을 마치다.

Transnational College of Lex,『수학으로 배우는 파동의 법칙』을 마치다.

탕누어,『마르케스의 서재에서』를 읽기 시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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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8-01-20 18: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yo 야매 어학원에서 배웠다 그러고 이제 동공지진은 아이쉐이크라고 할께요. ㅋㅋㅋㅋㅋ

syo 2018-01-20 18:51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아이쉐이크 좋다ㅋㅋㅋ
그러나 분명 그 순간에는 아이쉐이크가 아니라 아이퀘이크 수준으로 흔들렸을 거예요. 아, 등줄기에 땀이 다 나더라니까요 이 추운 겨울에.

겨울호랑이 2018-01-20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syo님 논리대로라면 제 머리는 모자를 쓰기 위해 존재하는군요... 그랬군요. 어쩐지...syo님 덕분에 존재의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ㅋㅋ

syo 2018-01-20 23:32   좋아요 0 | URL
네?? 겨울호랑이님 머리가요??
그렇다면 도대체 제 머리는 뭐가 되는 걸까요....(아이퀘이크)

겨울호랑이 2018-01-20 23:46   좋아요 1 | URL
가끔은 제가 영화 「메멘토 」의 주인공같은 부분이 있어서요 ㅋㅋ

서니데이 2018-01-21 0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yo님, 올해는 영어공부는 더이상은 안하셔도 될 것 같은데요.
즐거운 일요일 좋은 하루 보내세요.^^

syo 2018-01-21 10:13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ㅎㅎㅎㅎ
원래 안하지만요 ㅎ^^

서니데이님두 힐링선데이되세요~

2018-01-21 09: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21 10: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21 12: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18-01-22 0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yo님 오늘도 편안하고 행복한 하루 되세요.^^
 


1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곳으로 아무도 몰래 숨어 들어가 며칠 동안 그간 좀 밀린 사랑을 하고 돌아왔다. 몇 번 안아보고 몇 번 입맞추고 났더니 어느덧 끝나버린 짤막한 시간이었다. 우리는 본격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무 데도 가지 않았다. 그저 꼭 붙어 앉거나 누운 채 조용히 체온에 대해 생각했다. 왜 우리는 서로의 체온이 없는 곳에서 서로의 체온을 더 여실히 느끼는 것인지. 검고 검은 밤, 미등조차 다 잠가 놓은 어둠 속에서 서로의 눈빛만을 응시하며 눈빛에 대해 이야기했다. 왜 우리는 눈을 감아야 더 선명하게 서로의 눈빛을 떠올릴 수 있는 것인지. 답 없는 문제들과 함께, 그렇게 세 개의 밤이었다. 다시 돌아와 좁은 방 작은 침대에 누워 눈을 감으면 한 줌 더 크고 선명하게 느껴지는 그 체온, 그 눈빛. 한 줌 더 사랑하는 만큼 한 줌 더 그리워질 것이다. 밤이 많이 남았다.




때로 일상은 살고 싶은 대상이 아니라, 살아 내야 하는 대상이다. 하지만 대로 그 일상이 다시 살고 싶은 대상이 되기도 하기에, 살아내야 하는 오늘을 무시하지 않으려 한다. 소중한 날로 이어지는 다리는 필시 평범한 날이라는 돌로 이뤄져 있을 것이다. 보잘것없는 돌 하나를 쌓은 밤이다.

필요한 날이었다.
_ 최민석,『베를린 일기』


자그맣게 빈둥빈둥 지내고 싶다.
밝은 게 좋다. 따스한 게 좋다.
_ 나쓰메 소세키,『유리문 안에서』 


"전 여전히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가드너 씨. 당신과 부인의 출발점은 이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과 그리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가드너 씨, 당신이 그동안 불러 온 이 노래들이 전 세계 사람들에게 호소력이 있었던 겁니다. 심지어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도 말입니다. 그런데 그 노래들이 모두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연인들이 사랑을 잃고 헤어져야만 한다면, 그건 슬픈 일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서로 사랑하고 있다면 영원히 함께해야 마땅합니다. 그 노래들이 이야기하는 바가 이런 거 아닌지요." 
_ 가즈오 이시구로,「크루너」in『녹턴』



2


토비를 아시는지?


집 안으로 들어서는 syo를 보며 여친이 대뜸 말했다. 너 참 토비같이 생겼다. 토비? 그래, 토비, 딱 토비같이 생겼어. 8년을 만나는 동안 쪘다가 빠졌다가, 늙었다가 거기서 더 늙었다가 하는 현란한 변천사를 목도했을텐데도 그런 변화를 지적한 일이 없던 여친이었는데, 보름 사이에 갑자기 토비라니? 아니, 내가 토비라니! 이게 무슨 소리야! 내가 토비라니! 내가 토비라니!!



내가 고......토비라니!



근데 토비가 뭐지?


우리도 눈 두 개씩 달린 양심 가진 생명체이므로 그 토비가 '토비 맥과이어'가 아니라는 사실에는 눈꼽만큼의 의견대립도 없었는데, 그러자 도대체 토비가 누구인지, syo는 당최 어떻게 생겨먹은 것인지가 미궁에 빠지고 말았다. 혹시 포비를 잘못 말한 거 아냐? 아냐, 나도 걔 정확히 알고 있어, 걘 고기 먹는 원시인 조연 캐릭터잖아. 그럼 토비가 누군데. 너, 너가 토비잖아. 아니 이 여자가 지금.....


우리는 주저없이 네이버에 토비를 때려넣었으나,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지 못했다. 용의주도한 여친은 tobi와 toby를 추가로 검색하는 기지를 보였으나 역시 결과는 허망했다. syo가 말했다. 결국 토비라는 건 실체가 없는 존재로군. 여친이 대답했다. 그러나 나는 알지, 네가 바로 토비라는 걸, 토비가 바로 너라는 걸. syo가 따진다. 그게 무슨 말이야, 도대체 내가 어떻게 생겼다는 거야? 실체도 없는 얼굴이라니..... 여친이 잠시 숨을 고르더니 쏘아붙인다. 이명박은 실체적으로 다스 주식을 한 주도 가지고 있지 않지, 그러나 우리 국민들은 모두 다스가 이명박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잖아. 자, 대답해 봐. 다스는 누구 거지?


자, 대답해 봐. 토비는 누구지?       


그래서 여러분 안녕하세요, 토비예요.



 혹 그대가 아니었나 몰라 어젯밤 어두운 벌판에서 베었던 수많은 꽃모가지들 아무리 칼을 놀려 베어도 잘린 자리에 끝없이 돋아 피던 그 밤의 꽃들이 실은 그대가 아니었나 몰라 간밤엔 마른 바람의 불거진 등뼈가 휘두른 칼끛에 만져졌다 칼날의 한쪽으로만 달이 뜨고 지고 등뼈를 다친 바람이 떨어진 꽃모가지들 위에서 한 번 휘청거렸으나 그것은 시간의 일 한 백 년쯤이나 바람은 다친 등뼈로 내 앞에서 휘청거렸을지도 모를 일 그 한 백 년쯤 나는 또 꽃을 베듯 그대를 베었을지도 모를 일 달도 지고 뜨지 않는 칼날의 한쪽이 챙, 짧고 낮게 울었다 낭자한 세월인 그대 지난밤 벌판에서는 벌거숭이로 낯선 짐승 한 마리가 실은 꽃을 쥐어뜯으며 먹고 먹다 토하고 토하고 다시 먹고 하였던 것인데 정녕, 아니었나 몰라, 그 붉음이, 실은, 그대가, 자꾸 부스러지는 공기의 지층 위 그대라는 달콤하고 슬픈 종족이 새겨놓은 희미한 암각화에 홀려 나도 짐승도 꽃모가지고 바람도 벌판도 가득 붉어지지는 않았는지, 몰라,

_ 김근,「허허」,『당신이 어두운 세수를 할 때』



3


3일을 진탕 먹었는데, 파스타 - 삼겹살 - 고기된장국에 새싹비빔밥 - 파스타 - 치킨 - 유부초밥으로 기억한다. 꽤 마른 얼굴로 내려갔는데 올라오는 날 새벽 거울 속에서 돼지를 발견했다. 이 얼굴 이거 꿈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잠에서 깨었는데 syo가 돼지인지 돼지가 syo인지 모르겠더라, 하는 전개를 원했지만 실제로는 꿈에서 돼지였는데 깨어났더니 반전 없이 돼지인 형국이었다. 자기야, 나 돼지 같지 않아? 아닌데, 넌 토빈데?


그래서 안녕하세요, 저예요. 돼지 같은 토비에요. '살찔 비'자를 쓴답니다. 


그렇다고 운동을 할 거냐구요? 천만에요.


 

데이비드 흄도 타이즈는 신었지만 달리기는 하지 않았다.

_ 데이먼 영,『인생학교 : 지적으로 운동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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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누어,『마르케스의 서재에서』를 읽기 시작하다.

백승욱,『생각하는 마르크스』를 읽으며 다시 스멀스멀 마르크스를 만지기 시작하다.

김애령,『여성, 타자의 은유』의 재독을 시작하며 왜 이 책을 아무도 읽지 않나 의아하다.

김소연,『시옷의 세계』를 읽으며 일기 잘 쓰는 법을 고민하다.

조남주 외,『현남 오빠에게』를 마치며 빻았던 기억을 떠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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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e 2018-01-18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혹시 텔레토비에서 토비? ㅋ

psyche 2018-01-18 23:31   좋아요 0 | URL
아니면 요즘 열심히 보고있는 드라마 this is us 에서 여주인공 케이트의 남친일까요? 완전 멋진 남자인데! 마음씨랑 성격이랑 여친 사랑하는거랑... 단 배가 좀 많이 나왔다는거 말고는...

syo 2018-01-18 23:35   좋아요 0 | URL
역시 토비들의 본토에는 좀 더 다양한 토비가 있군요.....
말씀하신 두 토비의 공통점이 배가 나온 건데, 그 점에서 보면 psyche님의 견해에 좀 설득력이 있는 것도 같아요.....ㅠ

라로 2018-01-19 0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텔레토비 생각했어요~~~ㅋㅎㅎㅎㅎ
암튼 저는 앞으로syo로 안 부르고 토비 님으로 부를래요 ~~~~~ㅎㅎㅎㅎ 계속 syo를 영문으로 쳐야하는 거야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하고 안 오시는 동안 고민했었는데 고민 끝! ㅎㅎㅎㅎ
연인의 품속에서 포동하게 살도 쪄 오셨다니 일석이조가 따로 없네요~~~. 첫 문단은 너무 달콤해서 말이지요 토비님!!! 많이 반가와요. 기다렸나봐요, 저~~~~^^

syo 2018-01-19 08:11   좋아요 0 | URL
앗, 이런 격한 반김은 예상하지 못했었는데 ㅎㅎㅎㅎ 감사합니다. 잘 지내셨나요 라로님^^
한 일주일만 안 들어와도 읽을 글들이 산더미네요!



누구나 마음 속에 토비 한 마리쯤은 있는 법인가봐요ㅎ
근데 다들 토실토실 포동포동한 뭔가를 떠올리는 듯해요.....ㅋㅋㅋㅋㅋ

라로 2018-01-19 16:12   좋아요 0 | URL
에이 뭐 이정도 가지고~~~ㅎㅎㅎㅎㅎ

cyrus 2018-01-19 0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은 ‘나폴리탄 괴담‘ 형식의 글이군요. 이 글에서 가장 중요한 ‘토비‘의 의미를 모르니까 글을 읽는 분들은 ‘토비‘가 뭔지 상상해야 합니다. ㅎㅎㅎ

여친분이 홈즈 덕후라면 냄새 잘 맡는 사냥개 이름을 불렀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syo님과 사냥개와 무슨 관련이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

책 선물 보내드리고 싶은데 읽고 싶은 책 제목, 주소, 우편번호, 전화번호 알려주세요.

2018-01-19 13: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19 17: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19 18: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공개 2018-01-19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고 텔레토비만 생각나네요.. 넘나 귀엽고 말이 없고 행동으로 모든걸 보여주었던 색색깔의 토비들!! 이제 대딩이된 사촌동생이 저한테 꼭 봐야할 프로그램으로 지정해 줬었던. ㅎㅎ
오늘도 페이퍼 넘나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syo 2018-01-19 13:28   좋아요 0 | URL
검색했을 때도 텔레토비 사진이 되게 많이 잡히더라구요. 역시 그만한 토비가 없죠? ㅎㅎㅎㅎ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jsshin님, 좋은 하루 되세요^^

chaeg 2018-01-20 0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토비님 제목날짜를 잘못 쓰셨네요^^; 오랜만에 뵈니 반갑습니다!

syo 2018-01-20 08:28   좋아요 1 | URL
그러네요!! ㅋㅋㅋㅋㅋㅋ 미래 일기를 쓰고 말았군요....

토큰님 감사합니다. 토큰과 토비라니 형동생 같은 느낌이네요ㅎㅎㅎ

AgalmA 2018-01-20 16:08   좋아요 0 | URL
놀리는 건 아니고요. 토비님 글에 토큰님이 댓글 다는 이런 풍경 어쩐지 텔레토비 보노보노스러워 재밌어요!
아, 아비라고 닉넴 잠깐 고치고 댓글 쓸까 잠시 고민을....ㅎㅋㅎ

서니데이 2018-01-20 0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토비님. 즐거운 주말 되세요.^^

syo 2018-01-20 09:00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두요!!^^
자꾸 듣다보니 토비라는 이름도 정드네요ㅎㅎ

AgalmA 2018-01-20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토비가 유부초밥 먹는 웃긴 글ㅋㅋ
서울살이 팍팍하실 줄 .. 아닐 줄 알았지만ㅋ 역시 syo님 재밌게 사시네요ㅋ

syo 2018-01-20 18:43   좋아요 1 | URL
전 뭐 한 게 없어요. 그냥 된 걸요. 토비가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