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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남 오빠에게 - 페미니즘 소설 ㅣ 다산책방 테마소설
조남주 외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그해 우리의 마음들을 기억한다.
눈발이 옅어 겨울도 옅은 고장에 뜻밖의 큰 눈이 내려 쌓이고 길이 얼었다. 아이들은 매일 걷는 길을 조심조심 걸었고, 학교에 모여 매일 듣는 수업을 듣거나 매일 보는 교재를 보며 겨울방학을 녹였다. 몇몇은 화가 났다. 마음이 얼었다. 그래도 숨거나 도망칠 수 없었다. 길이 얼었고, 얼어붙은 길 위에서는 언 마음이나 녹은 마음이나 모두들 조심조심 걸어야 했기 때문에, 어린 마음들은 탈주를 포기하고 교실에 앉아 그저 조금씩 딱딱해지는 중이었다. 마음의 모서리가 줄곧 날카로움을 더해가는 중이었다. 모서리가 다른 모서리들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건드리기만 해. 무슨 일이라도 벌어지기만 해 봐. 이곳은 웅크린 모서리들의 각축장. 겨울이 옅은 고장에 사는 아이들의 안으로, 안으로 겨울이 열렸다.
또 그해 그 여자아이가 맥없이, 잘못 없이 받은 상처와 우리의 잘못을 어림한다.
옆 반 아이가 창문을 열고 내지른 소리가 우리 반 창문을 타고 넘어왔다. 아가씨, 고개 좀 들어 봐. 우리 반 아이들이 일제히 일어나 창가로 몰려들었다. 거칠게 열어젖힌 창문 바로 아래 우리 학교의 담이 있었고, 그 담 너머 자동차 한 대 겨우 지나다닐 좁은 길 위로 교복 입은 여자아이가 작고 조심스러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친구의 입이 뿜어낸 나쁜 말들의 손끝이 그 아이를 가리키고 있었다. 아가씨! 여기 한 번 보라니까? 커피 한 잔 합시다! 여자아이가 웅크린다. 야! 나는 어때? 저 새끼는 고자야! 나쁜 말이 커지고 여자아이는 더 작아진다. 아가씨! 놀다 가라니까? 오빠가 잘해 줄게! 그때 갑자기 여자아이가 미끄러져 휘청한다. 길가에 면한 여섯 개 학급의 창가에서 큰 웃음이 터진다. 어이, 아가씨, 괜찮아? 그러다 넘어져! 여자아이는 얼른 자세를 다잡고 다시 걷는다. 아이는 이미 너무 작아져 있다. 야, 이 XX아, 사람이 물으면 대답을 해야지! 지금 너 걱정하는 거 아냐! 여자아이는 여섯 개 학급을 겨우겨우 지나쳐 큰 도로 쪽으로 나가는 골목길을 돌아 사라진다. 아니 어쩌면, 작아지고 작아지다 이내 사라져버린 건 아닐까?
끈적거리는 가운데 날카로운 그 무섭고 더러운 말들을, 우리는 어디서 배웠을까? 그 검은 말들이 대체 언제부터 어떻게 우리 안에 도사리고 있었던 걸까? 창가에 우르르 몰려들었던 우리는 쉬는 시간이면 어깨를 겯고 매점에 들러 스스럼없이 자기 지갑을 열어 서로의 손에 먹거리를 쥐어주는 정다운 친구들이었다. 더운 여름 한 번 건네주면 땀에 찌들어 돌아올 것을 알면서도 새로 빨아 가져온 체육복을 망설이지 않고 빌려주는 친구였다. 저 친구가 한 문제를 더 풀면 내 등수가 떨어지더라도 그 한 문제를 기어이 알려주고 차라리 제 잠을 줄여 공부를 더 하는 든든한 전우였다. 그리고 그 여자아이가 사라지고 모두들 자기 자리로 돌아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내려놓았던 샤프를 쥐고 다시 수학 문제를 풀 때, 이미 우리는 다시 예전의 그 모든 우리였다.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한 걸까?
부끄러워 마땅한 것은 우리의 입이 만든 말들이었지만 정작 부끄러워하는 것은 여자아이였다. 우리가 뱉은 부끄러움들이 그 아이가 걷는 길 위에 미끄러움으로 쌓이고, 얼음이 아니라 말이 만든 그 미끄러움이 아이의 발목을 잡았을 것이다. 넘어지면 더 큰 부끄러움을 맞닥뜨려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서, 아이는 그 지옥 같던 여섯 개 학급의 옆길을 더 조심스레 더 천천히 걸어야만 했을 것이다. 그 슬픈 발걸음 말고 다른 보폭을 선택할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이미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걸 우리는 몰랐고, 우리 가운데 일부는 지금도 모를 것이다. 큰 도로를 향해 여자아이는 사라졌지만, 여자아이에서 여자가 되고, 여자에서 다시 연령이나 외모, 직업, 결혼여부 따위로 매겨지는 수많은 하위호칭들의 터널 속을 강제로 걸어 나가면서, 그녀는 아마 계속해서 조심스레, 천천히, 포착되지 않으려 고개를 숙이고, 넘어지지 않으려 웅크리며 걸었을 것이고 또 그렇게 걸어야 할 것이다.
이 책이 그녀의 보폭을 그녀에게 돌려줬으면 좋겠다.
성큼성큼 걷고 싶다면 성큼성큼 걷고, 잠시 멈춰 서서 여섯 개 학급의 창문 속에 숨은 머저리들에게 쌍욕을 하고 싶다면 손가락도 하나 펴서 시원하게 욕할 수 있게 해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날 우리가 빚은 말들과 그 말들로 더러워진 어느 겨울의 풍경을, 어린 날의 치기나 한때의 추억이라며 한 젓가락 술안주로 소비하는 친구들이 아직 남았다면, 말해주고 싶다. 우리가 만든 부끄러움은 끝내 우리의 것이며, 언젠가는 인정해야 할 날이 온다. 부끄러움을 부인하는 일이 더 큰 부끄러움을 낳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