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몫
장성욱 지음 / 득수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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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무라비가 포박당한 지점으로부터 질문 네 개의 거리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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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8세기바빌로니아 왕조의 6대 왕이었던 함무라비는 태양의 신 사마쉬의 뜻을 받아(-ㅆ다고 주장하며법전을 하나 만들었는데, ‘눈눈이이로 유명한 바로 그 함무라비 법전이다칼춤이 국민체조고 유혈 낭자가 세계적 트렌드였던 당시 기준으로 보면 내 눈 뽑은 놈이라도 함부로 죽이면 안 되고 눈 뽑기까지는 가능하다-는 식의 아주 온건하고 자애로운 법이었는데오늘날에는 와눈 뽑혔다고 눈을 뽑냐 잔인하다 그야말로 야만의 법 명불허전 18세ㄱ기하는 대접을 받게 된 것을 보면 인간이라는 종족이 다소 못 미더운 구석은 있지만 그래도 발전이라는 것을 하긴 한다 싶다그럼에도 가끔 그 18세기 양식의 구법이 그리워질 때가 있는데인간이 발전하면서 죄의 형상과 질량도 같이 발전했기 때문이겠다우리 엄마 살아 생전 드라마를 보면서 가장 자주 하셨던 그 말, “아오 저 새끼 저거 저거 지도 똑같이 당해 봐야 되는데 아오는 그야말로 그윽한 울림이 있다그런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불법이 국민체조고 인면수심이 세계적 트렌드가 아닐까 싶은 다종다양한 죄의 세상.

 

 

 

1

 

그 다종다양한 죄 가운데 특수하기로 치면 맨 앞에 세우기에 모자람 없는 죄가 학폭이다피해자가 미성년이라는 점에서가해자 역시 미성년이라는 점에서그리고 가장 원초적인 폭력의 형태로 나타난다는 점에서또한 그렇게 원초적이면서도 실상 대부분 고도화된 경제사회적 계급 구도에서 펼쳐진다는 점에서무엇보다도 가해자와 피해자 이외에 방관자라는 포지션을 반드시 수반한다는 점에서 그렇다거기다 학폭이 가지는 또 하나의 특징은 함무라비식 단죄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이다학폭은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형태의 괴롭힘이 총체적으로 나타나는 범죄인 동시에학교라는 배경이 가지는 시공간적 제한을 함께 가지기 때문이다우리 엄마가 살아 계셨어도 아오 저 새끼 똑같이를 시전하면서 말끝을 흐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그렇다면학폭은 대체 어떻게 단죄해야 눈눈이이에 필적하는 감정의 정화를 일으킬 수 있을까?

 

이것이 이 소설 기억의 몫이 syo에게 던진 첫 번째 질문이었다학폭 피해자이자 은퇴한 세계적 프로게이머 박선용은 가해자 임영빈을 단죄하기로 결정했다사법체계가 아니라 피해자가 실행하며이미 눈눈이이가 불가능한 시점에 이루어지는 단죄라면그 형태는 어떠할 것이며 또 피해자의 마음을 얼마만큼 눅일 수 있을 것인가그 해답은 바로 읍읍읍스포일러-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

  네가 담배 연기를 내뿜고는 묻는다질린다는 표정을 보자 입술이 떨어지지 않는다불꽃이 다가온다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뛰기 시작한다불꽃이 팔에 닿는다그와 동시에 기억들이 뜨거운 송곳처럼 머릿속을 마구 찔러낸다.

  너는 모른다내가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너와 함께였는지. (227)

 

 

 

2

 

이야기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흥미를 잡아끄는 부분은가해자 임영빈의 신상이 공개된 후 세상의 반응이다임영빈을 둘러싼 여러 인물들은 임영빈을 비난하거나 멸시하거나 멀리하거나 괴롭힘을 가하는데그러는 동안 그들은 저마다 방식은 조금씩 다르지만 스스로의 행동을 정의구현의 일환으로 여긴다는 공통점을 보여준다작가는 각 인물들의 관점에서 내면을 서술하여 독자에게 보여주는데사실 그들을 정의구현으로 이끄는 진짜 이유는 각자가 임영빈에게 가지는 질투나 열등감자신에게 피해가 될 수 있다는 예측 등의 개인적/계산적/부정적 감정이라는 것을 독자가 쉽게 알아챌 수 있다그러니까 그들의 정의는 일종의 악의에서 시작되는 것이다단죄가 정의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들의 악의는 정의로운 악의가 되고그로 인해 임영빈에게 벌어지는 사회적 단죄는 악의로운 정의로 귀결된다여기에 두 번째 질문의 좌표가 찍힌다. ‘정의로운 악의와 악의로운 정의는 결국 정의인가악의인가필요한가불필요한가가피한가불가피한가이 세상이 정의로운 정의와 악의로운 악의로만 이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일이내가 정의라고 믿어온 것들 뒤에 숨어 있는 악의와내가 악의라고 여겨온 것들이 수반하는 정의를 인식하는 일로 오롯이 이어지는가?

 

  이딴 사이코패스 새끼가 아무렇지도 않게 잘 살고 있다니 믿을 수 있음게시물의 마지막에 적힌 글이었다작성자의 말이 맞다그는 벌을 받아 마땅하다어쩌면 이것이 신이 세상에 관여하는 방식이 아닐까당신의 손을 더럽히지 않는 비겁한 방식전면에 나서는 건 무서웠다그보다는 가벼운 경고 정도가 적당해 보였다때마침 책상 구석에 있는 형광색 포스트잇이 눈에 들어왔다나는 네가 한 짓을 알고 있다태준은 자신이 신의 대리인이 된 듯한 기분을 느꼈다. (25)

 

 

 

3

 

이 소설의 주인공에게 이름을 빌려준 어떤 독자는, (평소에 활자라고는 웹툰 속에 들어있는 것들 말고는 읽지도 않으면서자신의 이름이 사용된 이 소설을 기꺼운 마음으로 읽은 후 감상평의 운을 이렇게 뗐다와 근데가해자 그 새끼는 지가 그랬던 걸 진짜 어떻게 잊지?” 이것은 매우 중대한 질문이다저 독자는 평소 syo에게 그랬던” 크고 작은 수많은 것들을 완전히 잊었으며따라서 똑같은 짓거리를 무수히 반복하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재작년 수능에 수필 지문으로 출제되어 수많은 수험생들을 대환장 순환버스에 태우고 재수 삼수 n수의 나락으로 밀어넣은 유한준의 망해忘解라는 작품에는 이런 대목이 등장한다


너는 네가 잊는 것이 병이라고 생각하느냐무릇 잊는 것은 병이 아니다너는 네가 잊지 않기를 바라느냐무릇 잊지 않는 것이 병이 아닌 것은 아니다그렇다면 잊지 않는 것이 병이 되고잊는 것이 도리어 병이 아니라는 말은 왜일까그것은 잊어도 좋을 것을 잊지 못하는 데서 말미암는다무릇 잊어도 좋을 것을 잊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잊는 것이 병이라고 해 두자그렇다면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을 잊는 사람에게는 잊는 것이 병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 텐데그 말이 옳을까?”

 

……?

 

잊고 잊지 않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문제라 수없이 많은 청춘의 1년을 앗아가기도 한다요는잊어야 할 것을 잊는 것은 병이 아니고잊어서는 안 될 것을 잊는 것은 병이라는 이야기.

 

다시 어떤 독자의 말로 돌아가서우리는 잊은 것들을 잊었기 때문에 잊었다는 사실조차 잊곤 한다그것은 두려운 일이다내가 지금 부지불식간에 죄를 짓고 있을 수도 있으며그 사실을 나만 빼고 다 알 수도 있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은 사실 굉장한 주의를 요하는 일이다세 번째 질문은 이렇다나는 내가 기억하는 만큼 좋은 사람이 맞는가나를 누구보다 잘 아는 것은 나라는 아집에 묶여도리어 내가 나이기 때문에 반드시 모를 수밖에 없는 어떤 것들을 부인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민우는 담배 한 개비를 건네고 불을 붙여주었다연기를 길게 뱉어낸 임영빈이 불타고 있는 담배 끝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옛날 일을 생각하는 걸까?

  “정말 제가 그런 짓을 했을까요?”

  반쯤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임영빈이 중얼거렸다담배를 든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이제 와서 그게 뭐가 중요합니까?”

  민우의 말에 임영빈이 막 잠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고개를 돌려 이쪽을 바라보았다.(192)

 

 

 

4

 

그렇다면 이제 와서는 도대체 무엇이 중요한 것일까이 질문은 필수적 부사어가 생략되었기 때문에 네 번째 질문이 되지 못한다형용사 중요하다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누구에게’ 중요한가이다가해자 영빈이나 피해자 박선용의 조력자인 민우에게 중요한 것과 박선용에게 중요한 것이 다른 데에서 이 작품의 가장 치명적인 갈등이 발생한다소설의 제목이 학폭의 대가가 아니라 기억의 몫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잊어서는 안 될 것을 잊은 것이 잊은 개인의 문제라면누군가에게는 되고/안 되고의 영역에서 구분되는 사건이다른 누군가에게는 잊을 수 있고/없고의 영역에서 다루어진다는 점이 비극인 것이다피해자가 잊을 수 없는’ 사건이 가해자에게는 한낱 잊을 수도 있는’ 사건이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그 사건이 윤리적 시각에서 잊어도 되는’ 사건인지 잊어서는 안 되는’ 사건인지는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니게 되고 만다그 순간가해자가 잊지 않았다면 가졌을 수도 있었을 일말의 죄책감이나 보복에 대한 두려움 같은그러니까 가해자 몫이었을 모든 고통의 가능성들이 일거에 모습과 방향을 바꾸어 피해자를 충격하기 때문이다이것이 이 소설의 제목이 망각의 대가나 망각의 몫이 아니라 기억의 몫인 이유다.

 

학폭과 망각 중 어느 것이 더욱 끔찍한 죄인가? 이 질문은 질문 자체보다 누구의 시각으로 대답할 것인지가 중요하다그 해답의 심연을 들여다 보다 기어이 심연이 되어 버린 피해자를 우리에게 던져주는 것이것이 이 소설의 위치인 동시에 존재감이다이는 시간이 지나도 소거되지 않을 것이다.

 

  “부탁이 있어거짓말로라도 다시 기억이 났다고 말해줄래?” (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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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깊은 산 눈 내리는 절간 뒷마당의 옹기처럼, 사람 떠난 옛 어촌 마을 물 마른 시냇가의 갈대처럼, 달리 누굴 만나지도 않고, 세상 방향으로 손짓도 눈짓도 하지 않고, 호젓하고 아늑하게 나의 시간은 가고 있다. 시간을 차곡차곡 쌓아 무언가를 만들어 나가는 게 사람이라는 생각을 가졌던 적이 있다. 그러나 그것도 젊은이의 일. 몸과 마음 중 어느 하나라도 젊은 사람의 일. 눈이 내리는 날도 비가 내리는 날도 달력 위의 똑같은 하루이듯이, 축적하지 않는(못 하는) 삶도 모자람 없는 삶이고, 흩는(흩어지는) 사람도 부족함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나는 언제 받아들였던 걸까. 부르면 대답하고, 찾으면 달려 나가고, 안아 달라면 최선을 다해 안아주는 것, 그 이외의 모든 시간은 조용히 조용히 혼자서 그윽하게, 쌓지 않고 흩으며, 점착되지 않고 흩날리며, 중생대의 숲에 감춰진 호수 위로 잔잔하게 떨어지는 빗방울처럼, 지도에 없는 어느 섬의 가장자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으며 부서지는 파도의 포말처럼,

 

 

 

2

 

몽테뉴는 에세2슬픔에 관하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처럼 생생하고 불에 굽듯 최고조의 열광 상태에서는 탄식을 늘어놓고 생각을 펼쳐 놓을 수 없다그럴 때는 영혼이 깊은 상념에 짓눌리고육신은 사랑으로 녹초가 되어 기운이 쑥 빠져 버린다바로 그 때문에 때로 쾌락의 제단 바로 앞 단계에서그토록 시의적절치 않게 연인들을 덮치는 뜻밖의 침체가 야기되고극도로 뜨거운 정열의 힘이 오히려 그들을 얼어붙게 하는 것이다음미하고 소화할 수 있는 정열은 모두 시시한 것들뿐.

몽테뉴에세


그리고 나서 자신은 천성적으로 감수성이 둔한 사람이라 그런 정념에 빠져드는 일이 거의 없고, 심지어 날마다 이성적 성찰을 덮어씌워 아예 그런 정념을 원천봉쇄하고 있다는 자랑 섞인 문장으로 이 장을 마무리한다.

 

정열에 사로잡힐 일이 없는 사람이, 뭐 저리 당당하게도 음미하고 소화할 수 있는 정열은 모두 시시한 것들뿐이라고 당당하게 선언할 수 있는 걸까?

 

내 두개골 속에 든 것이 액체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아무 생각이 들지 않고 그저 흐느적흐느적 널부러져만 있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말들이 귓속으로 들어와 뇌까지 달려가는 데 최소 3초의 시간이 필요하고, /아니오의 간단한 대답 말고는, 혹은 좋다/너무 좋다/너어어어어무 좋다는 감정 말고는 아무 것도 말하고 표현할 수 없는 순간들이 있다. 그 순간 우리에게 다른 무엇이 필요하다면, 그 순간 자체로 충분치 못함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이 정열과 정념은 몽테뉴의 말처럼, “언제나 해로우며 언제나 분별없는것이 맞겠다. 하지만 정말 운 좋게도 그저 이 순간 자체 말고는 다른 아무것도 필요 없는 그런 순간에 우리가 같이 있다면, 어떤 분별도 통제도 이성적 판단도 논리적 해석력도 필요 없는 바로 그런 순간 속에 나를 담글 수 있었다면, 나를 탄식하게 하고 내 생각의 전개를 막는다고 하여 그 정열을 탓하고 내쫓을 이유가 있는 걸까.

 

그러니까 실상 중요한 것은 정열도 이성적 성찰도 아니다. 순간이다.

 

 

 

--- 읽은 ---



004. 가장 아름다운 괴물이 저 자신을 괴롭힌다

폴 발레리 외 지음 / 윤유나 엮음 / 김진경 외 옮김 / 읻다 / 2018

 

밑바닥에서 끌어올린 말들이 가지는 치열함은 흉내 내기 어렵다. 그 말들은 저마다 달거나 쓰거나 맵거나 시거나 하여튼 제각각이더라도 독자를 향해 치명적인 질량으로 달려든다는 공통점이 있어서, 시간이 지난 후에 그 말들을 생각하면, 문장이나 의미 같은 것보다 그 글을 읽던 순간 나를 치고 지나갔던 어떤 감정이라든가 그 순간 떠올렸던 더 먼 과거의 기억이라든가 하는 것들이 먼저 떠오르는 경우가 많다. 설령 그 글 자체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흐릿해졌더라도, 그런 읽기와 회상의 순간들은 나도 모르게 나를 구성한다. 그래서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글조차 가능하면 치열하게 읽으려고 하는 것이다.


 

 

 

005. 별일 없어도 읽습니다

노충덕 지음 / 모아북스 / 2024

 

드라마를 꺼리는 이유로 여친은 과잉을 든다. 감정의 과잉, 전달욕구의 과잉, 무엇보다도 쓸데없는 장면의 과잉. syo는 그 모든 것들에 동의하면서도 드라마를 좋아한다. 은 또 다른데, 인간의 감정이나 그 표현에 대해 그닥 관심이 없고 또 그걸 잘 식별할 줄도 모르는 이 소시오패스에게, 드라마는 그저 하나의 스토리에 불과하다. 따라서 그는 유튜브에서 스토리의 핵심 부분만 추려놓은 요약본 영상을 찾아본다. 그런 을 보고 있자면, , 저놈은 정말이지 노력형 소시오패스구나, 그렇게 되려고 노력한 결과 저렇게 되었구나 싶다.

 

어떤 예술 장르가, 그 장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들을 과잉 따위 일절 없이 적확한 분량으로 해내면 참 좋긴 하지만, 사실 그런 건 없다. 왜냐면 이게 과잉인지 필수인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그 예술의 소비자 내부에 있기 때문이다. syo가 과하지 않다고 느낀 어떤 장면을 봉준호가 과하다고 지적하면, syo는 생각을 바꾸어야 하는가? 그래야 하는 법은 없지만 아마도 바꿀 것 같긴 해. syo가 과하다고 느낀 어떤 장면을 전 세계인에게 보여주고 어떤지 물었더니 80억 지구 인구 중에 75억이 과하지 않다고 대답했다면 syo는 생각을 바꾸어야 하는가? 그러지 말아야 하는 법은 없지만 아마도 바꾸지 않고 그냥 입꾹닫 할 것 같긴 하다. 그렇지만 첫 느낌, 내가 어느 순간 이것이 과잉이거나 과잉이 아니라고 느꼈다는 사실만큼은 부인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런 쓸데없는 소리를 길게 하고 있는 이유는 이 말을 하기 위해서다. 이 책은 지나치게 축약적이다. 마치 주어진 시간이 4분밖에 없는데 10권의 책을 소개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유튜버처럼, 책 내용 소개도, 교훈도, 저자의 견해도 모두 축약의 연쇄여서, 뭐랄까 100자평 모음집 같은 걸 보고 있다는 느낌이다. 하나의 책을 와닿게끔 전달하는 데 필요한 여백이 있다고 믿는다. 그 여백이 누군가에겐 과잉이고 쳐내도 무관한 포장에 불과하다고 채점될 수 있겠지만, 최소한 syo에게 이 책은 다른 책으로 가는 의지를 불러일으키는 책은 아니었다. 물론 봉준호 감독님과 75억 동포들의 견해가 저와 다르다면 딱히 드릴 말씀은 없지만서도요.

 

 

 

--- 읽는 ---

기억의 몫 / 장성욱

에세 / 몽테뉴

어떤 생각들은 나의 세계가 된다 / 이충녕

어제는 고흐가 당신 애기를 하더라 / 이주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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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4-11-28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그래서 저는 역시 시즌 하나 바치는 드라마보다는 몇 시간 내 완결보는 영화가 좋아요. 마지막 책은 흠 제 편견이겠지만 공교육 몸 담은 사람 책은 재미를 원한다면 걸러라...에서 걸러질 책입니다 ㅋㅋㅋ 순간순간 복된 삶 살고 계시네요.

stella.K 2024-11-28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캬~ 스요님 문장은 싸라있네~ㅋㅋ
전 맘에 드는 드라마는 한 장면도 놓치지 않고 다 봅니다. 축약은 무슨... 대신 영화는 차츰 안 보게되더군요. 드라마는 누워 쉬면서 딱 한 시간 보고 다음을 기약할 수 있는데 영화는 중간에 끊고 다음에 보는 게 편치가 않아서. 게다가 영화는 다음에 언제든 볼 수 있지만 드라마는 다시 안 볼 거거든요. 최선을 다해 보는 거죠. 제가 좋아하는 배우도 보는 건데 후회를 남기면 안되잖아요. 의외은 인물을 볼수도 있고. 다행인 건 볼만한 드라마가 많지 않은 것. 많았으면 일케 스요님 글에 댓글도 안 달았을 겁니다. 드라마 봐야지. 근데 005번 책 좋을 거 같은데. 버리실 생각 있으면 저한테 보내주세요. ㅋㅋㅋ

다락방 2024-11-28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는데 저는 아직 그 이유를 잘 모르겠어요. 인기 있는 드라마라고 해서 보려고 해도 완결까지 못가요. 보면 뭔가 거기서 얻어가는게 있긴한데 왜 지속할 순 없는지.. 아무튼 그렇습니다.

그나저나 쇼 님 다시 와서 책 읽은 얘기 해주니까 참 좋다.
:)

감은빛 2024-11-28 14: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라마가 쓸데없는 장면의 과잉이라는 점에 대해서 여친님과 저는 같은 생각이네요. 아무리 잘 만든 드라마라고 해도 이 부분은 피해가기 힘든데, 드라마 산업 구조의 시스템의 문제라고 저는 느낍니다. 영화는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하지만,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았고, 남들 다 아는 드라마들 거의 본 적이 없던 제가 요즘 ott 서비스에서 만든 드라마는 또 보게 되더라구요. 상대적으로 다른 시스템에서 다른 문법으로 만들어서 마치 영화처럼 군더더기가 별로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상대적으로 작품마다 다를 수 밖에 없겠지만요.

꼬마요정 2024-12-15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드라마 좋아해요!! 특히 연기 보는 거 좋고, 액션씬 좋구요. ost도 좋아해요.
내가 모르는 세상을 영상으로 보여주잖아요. 사극은 그 시대 궁궐이나 궁전, 복식, 사람들의 생활 보여줘서 좋아요. 저는 책으로 볼 때 학익진이니 적벽대전이니 상상이 잘 안 가던데 영상으로 보여주니 아~ 하게 되더라구요. 느와르도 좋아해요 ㅎㅎㅎ 제가 제일 좋아하는 건 <개와 늑대의 시간>이랑 <무간도>랍니다. 으흐흐흐 (근데 왜 제가 여기서 이러고 있죠?? 아아. 맞다 스요 님, 쇼 님, syo 님도 드라마 좋아한다고 했으니까 ㅎㅎ 모두 각자의 방식과 경험이 있어서 감동하는 부분도 지루해하는 부분도 다르니까요. ㅎㅎ)))
 


사람을 미치게 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1

 

 

사랑하는 사람이 내게 말했다

내가 필요하다고.

 

그래서

나는 스스로를 돌보고

걸을 때 발밑을 조심하고

한낱 떨어지는 빗방울에도

맞아 죽지 않을까 염려한다.

_베르톨트 브레히트, 아침저녁으로 읽을 것


너를 너무나 사랑하기에 결국은 너를 사랑하는 나를 더 사랑하게 되고야 마는 사랑이 있다. 연애의 본질이 너를 사랑함과 나를 사랑함 사이의 균형잡기라는 것을 생각하면, 나를 지나치게 사랑하게 되는 사랑은 나를 지나치게 혐오하거나 부끄러워하게 되는 사랑보다 겨우 한뼘 더 나은, 차악의 사랑일지도 모르겠다. 한 연애가 끝나도 또 다른 연애를 이어가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나를 더욱 사랑하게 되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연애는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어쨌든 모든 연애는-다만 시작지점의 한 순간에 그칠지라도-나보다 더 사랑하는 너를 만나야만 시작된다. 내가 나를 사랑함으로써 이미 더없이 충분한 이에게 연애란 그저 거추장스러운 일에 불과하고, 자기애가 높을수록 타인을 사랑하기 위해 넘어야 할 허들도 높을 수밖에 없다.

 

이 시소 놀이는 비단 연애의 시작 지점에서만 벌어지는 사건은 아니다. 미세한 등락이야 숨 쉬듯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지나치게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진 균형은 반드시 상처를 남긴다. 이 시는 얼핏 너무도 바람직한 사랑, 너를 사랑함으로써 나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는 어떤 사랑의 삽화처럼 보일 수도 있는데, 좀 더 들여다보면 이미 노력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경사각의 한계지점에 가까스로 서 있는 이의 처절한 발악인 것도 같다. 아침 저녁으로 읽을 문구가 한낱 떨어지는 빗방울에도 맞아 죽지 않을까 염려하자가 아니라 염려한다인 것을 보면, 그는 지금 몸조심을 다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지금 경사면의 어떤 지점에 매달려 있는지를 쉼 없이 인식하라고, 그렇지 않으면 한낱 빗방울만 한 타격에도 모든 것이 무너지고 쓸려 내려갈 수 있다고 스스로 경고하는 것은 아닐까.

 

 

 

2

 


 

몽테뉴는 에세의 제1우리는 다양한 방법으로 비슷한 결말에 이른다에서, 패배자가 승리자의 마음을 눅일 수 있는 제일 흔한 방법은 고분고분한 태도로 자비와 연민을 이끌어내는 것이라고 짧게 서술한 다음, 그와는 정반대로 당당하고 꿋꿋하게 대응하여 승리자의 존경심을 끌어냄으로써 같은 결과를 달성한 사례를 여럿 제시한다. 그러다가 이내 패배자가 대담하게 나오자 다른 이들이 그를 추종하는 것을 경계하여 남몰래 패배자를 수장시켜 버린 어떤 승리자나, 자신만의 미덕인 대담함을 감히 흉내 냈다고 여겨 패배자를 더욱 잔인하고 처절하게 응징한 승리자의 이야기를 기록하며 제1장을 마무리한다. 그러니까 이 장은 어쩌면 우리는 다양한 방법으로 비슷한 결말에 이르지만, 비슷한 방법으로 다양한 결말에 이르기도 한다라는 제목이 붙는 게 더 적절할지도. 그러나 이렇게 보자면 이건 결국 인생사 알 수 없지같은, 그야말로 품이 너무 넓어서 사실상 아무 진리도 품지 못하는 것과 진배없는 그저 <요지경 세상 이야기 대잔치>에 그치고 만다. 그렇다면 이 장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사실 이 장의 핵심은 나열된 사례의 중간쯤, 마치 부끄러워서 길게 이야기하긴 그래서 잠깐 말하고 만다는 듯한 태도로 몽테뉴가 남긴 이 단락이다.

 

나라면 이 두 가지 방식 모두에 마음이 쉽게 움직였을 것이다. 사실 동정을 느낄 때나 고결한 모습 앞에 설 때나 내 마음은 놀랄 만큼 약해져 버리기 때문이다. 어쨌든 내 생각에 나는 존경심보다는 동정심에 더 쉬이 손들 것 같다.


TMI가 의미 있는 이유는, 몽테뉴가 말랑말랑한 가슴을 지닌 남자였다는 쓰잘데기없는 지식을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독자로 하여금 너는 그러냐? 그렇다면 나는 어떻지? 하고 생각의 문을 열어 한소끔 쉬어갈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에세를 읽는 일에는, 아니 어쩌면 모든 에세이를 읽는 일에는 결국 그런 시공간이 필요하다. 이런 태도를 만들 수 있게 되는 것은 에세읽는 이에게 주는 선물이다. 이것 말고도 쓰는 이에게 주는 선물도 있는데, 그것은 바로,

 

 

 

--- 읽은 ---

 


003. 연년세세

황정은 지음 / 창비 / 2020

 

망가지지 않은 사람 같은 건 없다. 조용하게 망가진 이들이 있을 뿐. 망가진 크기만큼 시끄러운 소리가 반드시 난다면 세계는 지금보다 훨씬 더 엉망진창이겠지만, 조용하게 망가진 이들의 망가짐은 잘 드러나지 않음으로써 불안하게나마 세상을 지탱한다. 그런 중에도 그 조용한 비명을 예민하게 알아채는 이들이 가끔 있어서, 쓰는 사람이 그렇게 쓰고 읽는 사람이 또 그렇게 읽는다면 그 만남은 바깥에는 조용하고 안에서 시끄럽다. 망가짐 감수성은 망가짐의 크기가 아니라 무늬의 닮은 정도와 비례하기 때문에, 세상에 너무도 조용하게 내려진 어떤 책은, 어떤 독자에게는 마음속의 굉음으로 달려들기도 한다. 그러면 독자는 도리없이 작가를 사랑하게 되지만, 그 사랑의 이유를 똑부러지게 짚어내지는 못하고 웅얼거리기만 하는 것이다. 많은 오래된 사랑이 결국엔 웅얼거리듯이.

 

 

 

--- 읽는 ---

가장 아름다운 괴물이 저 자신을 괴롭힌다 / 폴 발레리 외

너무 재밌어서 잠 못 드는 세계사 / 우야마 다쿠에이

사상 최강의 철학 입문 / 야무차

에세 / 몽테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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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4-11-24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주일 만에 기세회복!!! ㅋㅋㅋㅋㅋㅋㅋ 잘썼다.
어쩌면요, 이미 망해서… 그 얄팍한 자기애라는 희미한 허들 덕에 조금 덜 망하게 되는 사람도 있고요, 음.그런 ‘사람’이 있는 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겐 그런 ‘시간’들이 있다는 생각요.
근데 저 부담스러운 표지의 책은 어쩜 작가 이름이 야무차예요? 별책이 다 있구로 ㅋㅋㅋ 손은 안 갈 거 같은데 읽고 알려줘요!

syo 2024-11-28 09:16   좋아요 0 | URL
저 부담스러운 표지의 책에 대해서는 딱히 할 말이 없네요.
맨 첫장 프로타고라스와 소크라테스에서부터 벌써 제 맘에 안들어서 집어던졌습니다ㅋㅋㅋㅋㅋㅋㅋ

눈이 겁나 겁나 거어업나 왔고 오네요. 건강챙깁시다.

반유행열반인 2024-11-24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까 독후감에 시를 인용하다가 오타를 낸 걸 발견하고 고쳤는데요. 중요한 부분인데 ‘그 책의 가장 첫줄에는 사람이라고 적혀 있지’ 갑자기 사랑의 축시를 실존주의 비슷한 뭔가로 비벼버려서 웃다가 고쳤습니다. 그런데 이 글 제목도 비슷하게 잘못 봐가지고 아놔시바 드디어 온 것인가 노안이시어…했습니다. 연년세세는 가계도 그리던 것만 생각나네요. 뉴질랜드 이런거 끼적끼적…

syo 2024-11-28 09:17   좋아요 1 | URL
그러니까 사랑을 사람으로 보고, 사람을 사랑으로 보셨다는 말씀이군요 ㅎㅎㅎㅎ
낭만적인 눈으로 보자면, 그 두 단어를 헷갈리게 읽는다는 건 굉장히 아름다운 착각 같긴 한데요.

감은빛 2024-11-25 21: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오랜만에 북플 열었다가 엄청 반가운 사람의 글을 만났어요. 몇 년만에 보는 건가 기억도 안 나네요.

몇 년만인지는 모르겠지만, 글솜씨는 여전하네요. 특유의 재치와 센스.

저는 예전에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남도 사랑할 수 있다.˝ 라고 생각했었는데요. 요즘은 그냥 사람은 누구나 다 그냥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어떤 방식으로든. 그리고 이것도 요즘 생각하게 된 것인데, 자신보다 더 사랑하는 남을 만들기는 참 쉽지 않은 일일 것 같아요.

syo 2024-11-28 09:21   좋아요 0 | URL
감은빛님 진짜 오랜만이죠!

글 쓰는 게 진짜 오랜만이라, 재활 삼아 하고 있으나, 여전하다든가 특유의 재치와 센스라든가 이런 말씀은 듣기 부끄러운 상태네요 ㅎㅎㅎㅎㅎ

자신보다 더 사랑하는 남을 만드는 건 날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것 같긴 해요. 사랑에 대한 신경이 점점 낡아지는 것도 있고, 자기를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그보다 더 사랑하는 남을 만들기 어려워지는데, 또 반면 자기를 혐오하는 사람도 열어놓고 남을 사랑하기가 어렵잖아요. 사랑이라는 게 반드시 기필코 죽어도 꼭 해야만 하는 일이 아닌 게 그나마 다행이네요.
 


영하에게

 

 

 

어느 쪽이냐고 묻는다면 물론 아직도 나는 너를 사랑하는 편이지만, 해가 갈수록 조금씩 너를 견뎌내기가 버겁다는 생각은 해. 그건 내 탓일 수도 있고 네 탓일 수도 있으니 차라리 누구의 탓도 아닌 것으로 해두면 우리의 마음은 조금 더 편해지겠지. 하지만 오래 못 보다가 다시 만난 날에도, 저 멀리서 네가 손을 흔들며 성큼성큼 다가오는 모습을 보며 뒷걸음질을 치더라, 내가. 살짝이지만. , 결국은- 하는 생각을 하고 있더라, 내가.

 

생각해보면 늘 그랬지. 네가 내게서 가장 멀리 있을 때 그렇게 사무치게 너를 그리워해 놓고서 막상 네가 곁에 바투 다가앉으면 나는 화들짝 놀라며 몸을 웅크리기도 하고, 잡아달라고 내민 네 손을 못 본 체, 그냥 주머니에 손을 꽂고 종종걸음으로 혼자 앞서 걸어버리기도 했어. 그런 나를 보며 너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다시 너를 멀리 보내놓고 밤을 혼자 지낼 때면, 몸도 마음도 덥고 지쳐 서늘한 너의 손길이며 시리게 아름다운 네 미소 같은 것들을 떠올리며 아, 다음 번에 만나면 웃으며 안아줘야지, 너를 붙들어 앉혀놓고 내가 얼마나 너를 그리워했는지 세세하게 말해줘야지, 다시 네가 돌아가는 그날까지 늘 웃으며 곁에 있어 줘야지, 그렇게 다짐을 하는데도, 막상 네가 돌아올 날이 하루하루 가까워지면 나는 또 겁쟁이가 된다. 너는 언제나처럼, 내게 한 번도 야속함을 느낀 적이 없었던 것처럼 새하얀 미소로 웃으며 다가올 것이고, 나는 너를 반기는 만큼 너를 피할 수 없음에 몸서리치며 너의 귀국을 마중하겠지. 네 얼굴을 보자마자 이번에는 얼마나 있다가 돌아갈 것인지를 손꼽아 헤아려 보겠지. 그렇게 혼자 옥상을 빙빙 돌며 네 생각에 짓는 한숨이 어느덧 하얀 입김이 되었는데, 영하야,

 

너는 오늘 새벽 남몰래 와서 내 옆에 누웠더라. 모든 창과 모든 문을 닫았는데도 언제나처럼 너는 그 모든 닫음을 소리 없이 열어젖히고 내 옆에 와서 조용히 누웠더라. 북쪽 나라의 바람을 헤집고 달려온 네 몸이 너무 시려서 새벽녘 나는 얕은 잠을 깨었고, 잠든 너를 두고 슬그머니 거실로 나와 물 한 잔 마시면서, 네가 내 공간에 아무렇게나 풀어놓은 으스스한 짐이며 옷가지들 때문에 또 한 번 소스라쳤다. 왜 너는 언제나 이토록 갑작스레 내 삶에 침투하는지, 왜 너는 점점 더 날카롭고 난폭해지는지, 왜 이렇게 몰아치고 쏟아붓는지, 네가 그런 존재임을 뻔히 알면서도 너를 사랑했던 나는 왜 갈수록 네가 낯설고 점점 더 참기가 어려운지, 불 꺼진 거실 테이블에 빈 물잔을 내려놓고 앉은 나는 이마를 싸매고 한참 네 이름을 속으로, 속으로만 불렀다, 영하야. 내가 없는 내 침대에서 차가운 몸을 조용히 웅크린 채 돌아올 나를 기다리고 있는 너, 영하야, 나의 영하야. 영하 2도야…….

 

넌 왜 점점 더 일찍 와서 늦게 가니. 제발 우리 어렸던 그 시절처럼 그냥 12월에 딱 맞춰와서 2월 끝나면 깔끔하게 딱, ? 그냥 석 달만 딱 있다가 가면 안되겠니? 이러다 조만간 일 년의 절반을 니가 다 해먹겠구나, 영하야, 영하야, 아이고 제발 영하야…….

 


 

 

 

그러니 독자여나 자신이 내 책의 재료이다그러므로 이처럼 경박하고 헛된 주제에 그대의 한가한 시간을 쓰는 것은 당치 않다.

몽테뉴에세

 

 

 

--- 읽는 ---


에세 / 몽테뉴

연년세세 / 황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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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11-19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 역시 스요님 돌아온 실감이 납니다.
근데 영하는 이제 우리 곁에 그리 오래 있지 않습니다. 12월에서 2월 그건 옛말이고 1월말만되도 벌써 가려고 준비하고 있더군요. 영하도 나름 좋았는데 말입니다. ㅠㅠ

syo 2024-11-19 10:28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그런가요. 저는 나이가 들면서 점점 겨울이 길어지는 느낌이던데. 쇠약해져서 그런가....
스텔라님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공쟝쟝 2024-11-19 10: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하야, 난 니가 올줄 알고 미리 장판을 켜뒀어. 내가 따뜻한 시골에서 살다온 여자거든. 너 돌아올줄 알고 준비하고 있었다 내가ㅋㅋㅋ 어서와~
두 권 안됩니다. 네 권.

syo 2024-11-19 10:30   좋아요 0 | URL
아니, 장판?!
하지만 필히 외출을 해야 한다면 어떨까?!!

근 몇년 다독에서 회독으로 스타일이 좀 바뀌긴 했는데..... 걔네는 책이 아니라 문제집이긴 하지만.

반유행열반인 2024-11-19 10: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는 작년에 핫팩을 두둑히 사둔 게 아직 남았어. 양모양 발방석 안에 그거 하나 톡 까두면 하루 온종일을 난단다…(쓰다가 지퍼백에 넣어두면 다음 날 재사용 가능…짠돌이의 생활의 지혜)
저기 어드메서 김영하가 잘못 듣고 귀 긁적이고 있다네요. 저요? 모르는데 어떻게 가요? 하고…

syo 2024-11-19 10:32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ㅋㅋ 김영하 작가님 생각해보니까 국민학교 중학교 시절 학교 다니기 녹록치 않았겠어요.
영하야 몇 도니-랄지, 봄인데 넌 왜 아직 영하니- 랄지 그런 말들을 듣고 자랐을 것이 뻔하게 보이는데.....


청아 2024-11-19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너무 재미나면서 애틋해요ㅋㅋㅋㅋ
syo작가님도 돌아오고 영하도 돌아오고!

syo 2024-11-19 10:33   좋아요 1 | URL
못 뵌 사이에 청아님은 청아님이 되셨군요!
오랜만에 와보니 개명하신 분들이 많아서 저도 고민을 조금 해봤더랬어요. syo에서 Syo로 바꿀까 하고....

ㅎㅎㅎㅎ 반갑습니다.

다락방 2024-11-19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부분 읽으면서는 김영하인줄 알았다능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yo 2024-11-19 12:59   좋아요 0 | URL
걸려드셨군요. 이것이 바로 테스형 전법입니다.

자목련 2024-11-19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매일매일 syo 님의 페이퍼를 읽을 수 있군요!

syo 2024-11-19 13:00   좋아요 0 | URL
아뇨, 자목련님. 그건 아닐 것 같아요! ㅋㅋㅋㅋㅋㅋㅋ 으아아

모운 2024-11-22 1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게 추위를 잘 탔었나?

syo 2024-11-24 00:50   좋아요 0 | URL
안 그랬었나??

수이 2024-11-24 0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언제 오셨슈?

syo 2024-11-28 09:14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조용하게 왔습죠

감은빛 2024-11-25 2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영하를 사랑하신 적이 있었군요. 저는 단 한번도 좋아해 본 적이 없어요.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올라온 저에게 서울의 겨울은 너무나도 가혹한 계절이예요. 이젠 남쪽 나라에 살았던 시기와 서울에 살고 있는 시기가 얼추 비슷해져가고 있는데, 아직도 겨울 추위 만큼은 적응이 안 되네요.

syo 2024-11-28 09:22   좋아요 0 | URL
저도 나름대로 더위로 알려진 지역에서 자라다 서울에 올라왔는데, 그래서 저는 오히려 울이 좋더라구요.
눈이라는 것도 실컷 보고.

그러다 군대를 철원으로 다녀오면서, 겨울에 대한 정이 조금씩 식어갔던 것 같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군고구마의 은 접두사가 아니라 어근입니다만, 당최 제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가요?

 

 

 

1

 

싸늘할 땐 고구마다. 옛말에 말은 제주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고 했다. 무슨 뜻이냐면, 감자는 튀기고 고구마는 구우라는 의미다. 컵에 우유를 채우고, 에어프라이어로 구운 고구마를 꺼내놓으면 보고만 있어도 배가 부르-ㄹ것 같지만 배는 먹어야 부르다. 여윽시 고구마는 우유지. 고구마에 김치 얹어서 먹는 오랑캐가 있다던데 들어는 봤냐. syo가 묻는다. 이 침울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우리 엄마…….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2

 

김치가 고구마랑 잘 어울리고, 우유도 고구마랑 잘 어울리는데, 그렇다면 김치와 우유는 어떻게 지낼까?

 

어릴 적 우리 패밀리에서 은 그야말로 고구마 같은 존재여서, 우리는 늘 의 집에 모여서 놀았고, 모여서 햄버거 치킨 파티를 벌이고, 모여서 오심 노래방으로 달려갔으며, 모여서 사우나도 하고 다 했다. 우리 모두의 고구마였던 그는 이제 내 인생의 고구마로 거듭나서, 금토일 3일중 금요일 밤과 일요일 오전~점심 이렇게 두 번만 자고 나머지 모든 시간을 게임으로 보낸다. 저걸 보고 있자면 내 인생도 아닌데 왜 이렇게 고구마 다섯 개쯤 욱여넣은 마냥 답답한지 모르겠다. 아오 주모 여기 김치랑 우유 한 사발 내오시게…….

 

 

 

3

 

몇 년에 달하는 독서 공백기를 깨고 처음 읽은 책이 올 댓 이즈여서 위험했다. 너어어무 재미가 없었는데 하필이면 syo가 가장 사랑하는 설터의 책이어서, 나는 내가 이제 책에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인간이 되어버린 줄 알았다. 아니었다. 1차원이 되고 싶어는 재밌었어. 당분간 어려운 책은 좀 피하고 재밌는 거 뇸뇸 먹으면서 폼 올리는데 주력해야겠다.

 

 

 

4

 

갑자기 시간이 생기니까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드라마도 보고 웹툰도 보고 유튜브도 보고 책도 보고 보고 보고 또 보다 보니 뭔가 보기만 하는 것 같아서 만지고 싶다.

 

 

 

--- 읽은 ---


 

01. 올 댓 이즈

제임스 설터 지음 / 김영준 옮김 / 마음산책 / 2015

 

한 번도 보고 싶었던 적이 없는 것을 초사실주의 화풍으로 그려놓은 그림. 아름다우나 부질없다. 그건 부질없으나 아름다운 것과는 전혀 다르다.

 

 

 

02. 1차원이 되고 싶어

박상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이들은 닮았다. 닮은 표정으로 상처받고, 자신을 상처입힌 이와 닮은 표정으로 상처를 준다. 아플 때나 아파할 때나, 우리는 왜 기어이 닮아야만 하는가. 아픈 것이 슬픔이라면, 닮은 것이야말로 비극이다.

 

 

 

--- 읽는 ---


 

가장 아름다운 괴물이 저 자신을 괴롭힌다 / 폴 발레리 외

에세 1 / 미셸 드 몽테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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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11-17 21: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물론 고구마에 우유나 김치를 권하는 사람도 있지만 누구는 동치미라고도 하죠.
고구마가 먹을 땐 좋은데 가스가 차는 경우가 있어 동치미의 무가 가스 차는 것을 어느 정도 방지해 준다고.
추운 겨울밤 야식으로 그만한 조합도 없죠. 특히 살얼음 낀 동치미라면...!
참고로 저는 동치미는 잘 안 먹습니다. ㅋ

syo 2024-11-19 09:37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 아니 동치미에는 그런 과학적 근거가 있었군요.
아니, 근데 그렇다면 동치미를 잘 안 드신다는 스텔라님께서는 가스 문제를 해결하시는 신묘한 다른 방법이 있으신가 보네요ㅋ

초란공 2024-11-17 23: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 syo님 복귀하셨군요!!! ㅎㅎ 저도 집 주변 시장에서 파는 군고구마를 기다리고 있습니다만, 11월부터 나오곤 하던 군고구마 화로(?)가 올해는 날씨가 따뜻해서 인지 기미도 안보입니다. 아직 천원에 붕어빵 세 개인 곳이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붕새권인데도 기후 변화는 어쩔 수 없나뵈요. 암튼 다시 뵈니 반갑습니당!

stella.K 2024-11-18 09:57   좋아요 0 | URL
헉, 붕어빵 세 마리가 천원! 초란공님 시골에 사시나요? 요즘 이천에도 못 사 먹습니다. 뭐 대신 포장 붕어빵이 있는가 본데 예전에 한 번 사 먹고 넘 맛없어서 그후 파는지 어쩐지는 모르겠습니다. 이럴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ㅠㅠ

syo 2024-11-19 09:38   좋아요 0 | URL
붕세권! 뭔가 욕같으면서도 부러운 기묘한 단어네요.
겨울과 함께 돌아온 syo입니다. 양손에는 고구마와 우유잔을 들고.

암튼 반갑습니다 초란공님 ㅎㅎ

공쟝쟝 2024-11-18 0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님, 안녕? 오랫만 ㅋㅋ
뭘 봐요! 읽어야죠!!! oo모드 엉덩이의 힘을 보여쥬세요!! ㅋㅋㅋ 일단 책탑부터 쌓자, 쇼님아!

syo 2024-11-19 09:40   좋아요 1 | URL
아니 이 사람아,
이제 목발 짚고 슬슬 움직여보려는 사람한테 철물점 가서 허들부터 사오라고 하다니 이렇게 잔인한 사람이었어요? ㅋㅋㅋㅋㅋ 멀시! 멀시!

단발머리 2024-11-18 0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 01. 로부터 시작되는 이 아름다운 독서기행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디까지 펼쳐질지 엄청나게 기대됩니다.
삼님도 잘 지내시는군요. 내게는 잘 지내시는 걸로 읽히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방가방가 하러 들어왔는데 새 글 있어서 좋았어요. 오늘도 수고하세요!

syo 2024-11-19 09:41   좋아요 0 | URL
syo는 syo처럼, 三은 三처럼 변함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답답해하면서ㅋㅋㅋㅋㅋㅋ

방가방가는 잘 접수되었습니다! 😊😊

햇살과함께 2024-11-18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syo님이다!

syo 2024-11-19 09:42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syo님입니다! ㅎㅎㅎ

고양이라디오 2024-11-18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들 삼님을 아는 분위긴데 삼님은 누구신가요ㅎ?

syo 2024-11-19 09:42   좋아요 1 | URL
음, 전혀 신경 쓰실 필요와 이유와 가치가 없는 사람이랄까요?

꼬마요정 2024-11-18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님 오랜만이군요... ㅎㅎㅎㅎㅎㅎㅎ
지난 1년 동안 책이 엄청나게 나왔어요!! 책탑 이만큼 쌓고 또 이마안큼 글 써주시기!!^^

syo 2024-11-19 09:46   좋아요 1 | URL
요즘은 책탑이 대세인가보군요!
우리 나라 출판계의 미래는 이 동네 사람들 때문에 밝겠네요.

저는 그냥 쪼끄맣게 읽으려고 그랬는데..... ㅎㅎㅎㅎㅎ

구단씨 2024-11-19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쇼님 오랜만의 소식에 너무 반가워요~~!!! ^^
저는 고구마에 김치도 먹고 우유도 마시고 그럽니다.
고구마를 가운데 두고 김치와 우유의 사이를 좋게 만드는? ㅎㅎㅎ

여전히 쇼님의 곁에는 삼님이 함께 계시는군요.
날씨도 추워지고 올 겨울 한파도 무섭다고 하는데,
삼님을 곁에 두시고 체온 떨어지지 않게 하세요. ^^

syo 2024-11-20 15:43   좋아요 0 | URL
구단씨님 반갑습니다.
고구마의 가장 친한 친구를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나봐야겠군요.

구단씨님은 위아더 월드 사해동포주의자에 가까우신가 봐요. 고구마를 중심으로 김치와 우유의 사이도 좋게 만들고, 三같은 이조차 곁에 두라고 하시는 걸 보면 ㅋㅋㅋㅋㅋ

그레이스 2024-11-20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설터의 이 소설 저도 읽다말았는데,,, 기억이 가물가물 하네요. 바빠서였는지, 아니면 재미없어서인지....^^
반갑습니다. 쇼님!
삼님도 반갑구요.

syo 2024-11-20 15:43   좋아요 1 | URL
재미가 없어서일겁니다. 확실해요! 너무 재미가 없었어....

그레이스님, 반갑습니다!

감은빛 2024-11-25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구마를 마지막으로 먹어본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네요. 기본적으로 단맛을 좋아하지 않아서 군고구마의 그 단맛을 견디기가 힘들었어요. 그래도 오래전에 군고구마를 먹을 때는 김치랑 먹었던 기억이 나네요. 우유는 그 머시냐, 유당 분해효소인가, 그게 없어서 못 마셔요. 저는 제가 평생 우유를 못 마시는 사람이어서 우유를 마시는 사람들이 그렇게 신기하더라구요. 단 음식을 좋아하거나 잘 먹는 사람들도 좀 신기하구요.

syo 2024-11-28 09:24   좋아요 0 | URL
저는 단맛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또 아니지만, 단맛보다는 짠맛파라서 사실 고구마보다는 감자를 좋아하거든요. 감자가 짜다는 건 아니지만 고구마에 비하면 뭔가 뭔가. 감자를 먹을 때도 설탕파와 소금파가 있는데 저는 단연 소금파였구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달게 먹어도 짜게 먹어도 혼나긴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