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놈들은 쌍꺼풀에 진심인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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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터지고 제일 귀찮은 일 중 하나는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코로나가 터지고 제일 즐거운 일 중 하나는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스크를 쓰고 다니니까, syo 포함,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조금씩 더 아름다워진다. 가릴수록 드러나는 아름다움이다. 아름다움이란 이렇게 역설적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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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유행하는 놀이를 해보았다. 알라딘에서 발붙이고 살려면 이걸 해야 하는 분위기다.
왼쪽 상단이 실물과 가장 가깝다. 왜냐하면 실물이기 때문이다.
무쌍으로 살아온 인생 이제 곧 40년. 40년은 긴 세월이라 이제는 쌍꺼풀을 단 내 얼굴을 보니 헛구역질이 다 난다. 기괴함 그 너머의 기괴함. 쟤네들 다 정상은 아니지만 20세기 쟤는 동공 면적이 내 꺼 4배는 되겠다.
그래도 쌍수는 역시 르네쌍수. 잘 보면 배경도 깨알같이 모나리자 식으로 바꿔준다. 오토바이 탄 아저씨는 바위처럼 보인다. 그 시절에는 오토바이 탄 아저씨 같은 건 없었어서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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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왼쪽 상단이 실물과 가장 가깝다. 실물인데 실물과 가장 가깝다고 표현하는 이유는, 당연히 마스크 때문이다.
syo는 프로 마기꾼으로서, 저 마스크 안쪽으로 아무리 제초해도 박멸되지 않는 얼굴 털들을 숨겨놓았다. 그걸 가리고 다니니 어쩐지 문명인 같아 보여서 좋다. 스무 살에는 재수를 했었는데, 아침에 면도하고 학원에 가면 점심 먹을 때쯤 다시 수염이 돋아나 있었기에, 점심때나 얼굴 보는 다른 반 친구들은 syo에게 세상에는 면도라는 활동이 있음을 자꾸만 알려주었다. 몰랐겠냐. 모닝 얼굴을 매일 확인하는 같은 반 친구는 그런 게 아니라고, 쟤 얼굴에 수염 없는 꼴을 보려면 하루 세 번 칫솔질 대신 면도칼질을 시켜야 한다며 내 편을 들어주었다. 하지만 친구들은 자기들의 털이 보통 털이라면 내 털은 한 단계 위의 털이므로 같은 이름으로 불려서는 안 된다며, 내 털에 털 그 이상의 털이라는 뜻으로 “터락션Turaction”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발음기호는 [춰롹↑ㅋ션ㄴ]
내 눈은 꼬리가 처진 편인데, 이놈들 눈은 다 왜 이래. 눈알은 세 배가 되었고.
--- 읽은 ---
208. 호빗
존 로날드 로웰 톨킨 지음 / 이미애 / arte / 2021
신화나 동화를 보면 신이나 영웅들의 승과 패를 이해할 수 없을 때가 많다. 아니 쟤는 저 동네에서는 지금 적보다 훨씬 막강한 애를 맨주먹으로 때려 잡아놓고 왜 여기 와서는 저 허접한 애한테 쥐어터지고 앉았냐. 아니 저 신이라는 작자는 세상 못할 일이 없다고 해놓고 왜 여기서는 등신같이 쥐로 변해서 고양이한테 쫓기고 비둘기로 변해서 독수리한테 쫓기고 지랄이야 아예 그냥 처음부터 번개를 던지든가 산을 집어던지든가 하면 되잖아, 이게 말이 돼? 이건 일본 소년만화에 길들여진 탓. 걔네는 랭킹이 확실해서, 기연을 만나거나 노력하거나 아니면 뜻밖의 상성 문제로 랭킹이 엎어지는 수는 있어도, 기본적으로 A가 B한테 이겼는데 B가 C한테 이기면 A는 C한테 이긴다. 그런 관점에 지나치게 익숙해지면 폐해도 크다.
사실 그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만화가 먼저가 아니라 신화와 동화가 먼저다. 판타지 소설이 주는 카타르시스가 있는데 그건 뭔가 엎치락뒤치락 하는 과정에서 과학적이지 않은 일들이 수학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발생하는 데서 시작된 것이다. 본령은 그런 것. 그러니까, 이게 뭐야? 이게 납득이 돼? 하는 지점이 나오면 그런 생각을 하는 나를 조용히 들여다보면 된다. 판타지는 그런 맛으로도 본다.
바로 그 때문에 용의 관심을 끌었던 거야. 잘 알다시피 용이란 놈들은 인간과 요정과 난쟁이들에게서 황금과 보석을 훔치는데, 어디서건 가리지 않고 발견하는 족족 훔치거든. 그리고 목숨을 부지하는 동안에는 약탈한 물건들을 절대로 빼앗기지 않고 간직한다네. 그런데 용이란 놈들은 살해를 당하지 않는 한 영원히 사니까 실제로는 그 보물을 영원히 소유한다고 할 수 있지. 그놈들은 그냥 소유만 할 뿐, 놋쇠 반지 하나도 즐길 줄 몰라. 사실 그놈들은 지김 시장에서 거래되는 가격은 잘 알지만, 훌륭한 물건과 조야한 물건도 구별할 줄 모른다네. 스스로는 아무것도 만들 줄 모르고 심지어는 갑옷 비늘이 조금 헐거워져도 고칠 줄 몰라.
_ 존 로날드 로웰 톨킨, 『호빗』
209. 두 글자로 깨치는 불교
가섭 지음 / 불광출판사 / 2014
쉬울 줄 알았는데 뜻밖에 어렵다! 나는 불교 학교를 6년이나 다녔는데! 심지어 반야심경도 외울 줄 아는데!
그건 아무래도 체계가 부족하기 때문인 것 같다. 두 글자 짜리 불교 용어(?)들을 사전식으로 풀어놓은 책인데, 내용 자체가 부실한 느낌은 절대 아니지만, 영어 공부를 하겠다고 사전을 펴놓고 순서대로 외우는 느낌의 뭔가 부질없는 짓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자꾸 들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얼핏 보면 현상들은 모두 둘로 나뉘어 존재한다. 그래서 서로 다른 모습으로 인해 항상 대립하고 갈등한다. 이러한 분별은 자기중심적인 사고와 욕망이 되어 마음의 틀을 이룬다. 둘 사이의 접점을 찾지 못하고 나누어 인식하는 습관은 상대를 경쟁과 정복해야 하는 대상으로 인식하는 결과를 낳는다.
현대문명을 한계점으로 몰아온 분리 경쟁 정복 지배의 논리를 극복하고, 새로운 미래문명을 건설할 수 있는 패러다임을 불이사상에서 발견할 수 있다. 불이는 현상적 차별에 대하여 분별이 없는 것, 또한 온갖 분별을 초월한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세상의 이치르 ‘현상적 모습은 독립적인 고정된 실체를 갖고 존재하지 않는다’는 연기적 관계로 이해한다.
그래서 불이는 발생론적인 측면보다는 관계론적인 측면이 더 강하다. 불이사상은 이 우주 안 모든 것들의 관계에 대한 근원적인 통찰을 의미하며, 이분법적 사고의 틀을 허물어야 얻을 수 있는 마음이다.
_ 가섭, 『두 글자로 깨치는 불교』
210. 데이터사이언스 입문
타케무라 아키미치 지음 / 황석형 외 옮김 / 인피니티북스 / 2020
사전과 개론서의 짬뽕 느낌인데, 개론서 수준의 사전은 약하고 사전 같은 개론서는 재미없는 법이다.
--- 읽는 ---
사생활들 / 김설
시를 잊은 그대에게 / 정재찬
애덤 스미스 구하기 / 조나단 B. 와이트
황금 당나귀 / 루키우스 아풀레이우스
내가 누구인지 뉴턴에게 물었다 / 김범준
흥미로운 베이지안 통계 / 윌 커트
전쟁은 끝났어요 / 곽재식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