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대6인실
1
그러니까 저것은, 저 다리 잔뜩 달린 생명은 어떻게 무슨 수로 12층 여기에 올라와 허공에 가는 줄 하나 매달고 바람에 맞서 살고 있을까. 당장이라도 찢어질 듯 연약한 그 집에 걸려들 먹이라면 이미 저 거센 바람에 흩날려 이 높이에는 도달하지 못할 것인데, 구름도 어둠도 씹어 삼킬 줄 모르는 녀석이 어쩌자고 저 홀로 외로이, 그러나 위태로워 외로울 틈도 없이, 저기 창밖에서 무해한 깃발처럼 흔들리고 있을까.
2
보호자용 침대에 누워 거대한 창 너머로 펼쳐진 밤을 올려다보다가 거미 한 마리와 눈을 마주쳤다. 구멍 난 낙하산처럼 금방이라도 날아갈 듯 가냘픈 거미줄을 악착같이 붙들고 녀석은 사방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그 아이가 아니었으면 창밖의 밤은 창안의 밤과 다르게 적막하고 평화롭다고 착각했겠다. 6인실을 둘러싼 밤은 안팎으로 분주하고 우악스럽다.
3
이 병실에서 보름. 1번 침대 할머니는 그 기간 내내 10초 간격으로 단말마를 질렀지만 목조차 쉬지 않는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이 병실에서 가장 건강한 사람 같기도 하다. 어쨌든 비명은 필요 이상 생생하여 듣는 이의 신경 회로를 계속 긁는다. 밤에도 예외 없이 이어지는 비명 때문에 2번 침대 할머니 간병인은 바야흐로 욕지기가 목구멍을 타넘고 있다. 환자에게 화를 내긴 좀 그랬는지 괜히 1번 침대 할머니 간병인에게 화를 낸다. 매너 없이 새벽 다섯 시 반에 병실 수도꼭지를 틀었다고. 그러나 매너를 말하는 그 2번 침대 간병인 아줌마는 매너 없이 매일 아침 남자 샤워실에서 씻는다. 그리고 밤에는 실컷 잔다. 새벽, 2번 침대 할머니는 잠든 간병인을 차마 깨우지 못하고 혼자서 링거를 들고 화장실에 다녀온다. 그 꼴을 4번 침대 아주머니가 봤다. 오지랖이 경상도만한 아주머니다. 1번 침대 간병인에게 화를 내는 2번 침대 간병인에게 4번 침대 아주머니가 너나 잘하라고 화를 낸다. 이 모든 광경은 6인실의 터줏대감인 5번 침대 할머니의 딸에게는 그저 우스울 뿐이다. 40년 전쯤 영문과를 졸업한 그녀는 마지막 읽은 것이 Jane Austen의 『Pride and Prejudice』인데, 그게 벌써 20년 전이라고 말하며 어쩐지 부끄러운 표정을 짓는다. 서예로 15년 동안 마음을 단련한 그녀는, syo가 동생과 번갈아 자며 15일을 억지로 버텨내는 동안 병원 밖으로 한번을 나가지 않고 혼자 어머니를 돌보면서도 짜증 을 내는 일이 없다. 끼니도 약도 거부하는 어머니를 어르고 달래고 겁도 주지만 언성을 높이는 일이 없다. 조용히 사과와 배를 깎아 이 침대 저 침대에 건넬 뿐이다. 3번 침대 아주머니는 사과를 받고 좋아한다. 단물만 뽑아 먹고 뱉어야 하지만 그래도 마냥 좋다. 그녀는 잠이 들면 코를 심하게 곤다. 1번 침대 할머니가 지옥에서 길어 올리는 듯한 비명을 지르며 밤을 진동시키지 않았더라면, 이 병실의 공공의 적은 아마도 3번 침대 아주머니가 되었을 것이다. 그녀는 코를 골다가 자기 코고는 소리에 자기가 놀라 자꾸 잠을 깬다. 그 얼마 안 되는 풋잠 속에서도 꿈을 만났는지, 그녀는 보호자 침대에 누워 있는 아들에게 자꾸만 꿈 이야기를 한다. 아들은 꿈 이야기를 듣는 척 하며 귓등으로 흘린다. 어차피 그 이야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그녀는 다시 잠들기 때문이다. 그녀가 잠들고 나면 아들은 다시 침대에 누워 창 밖에 매달린 거미를 유심히 바라본다. 어둠의 색이 미묘하게 변하는 모습을 오래 지켜본다. 그것은 겨울이면 영하 30도까지 떨어지는 곳에서 보초를 서며 발견한 그의 재능이다. 하룻밤은 하나가 아니다. 그 밤을 응시하는 사람의 눈이 깊으면 밤도 층층이 깊다고 그는 믿는다. 밤을 오래 보는 일은 즐겁다. 생각하는 일은 즐겁다. 그러나 무엇보다 즐거운 것은, 이 밤이 이 병실에서의 마지막 밤이라는 사실이다. 잠들지 않아도 피곤하지 않은 밤이 있다. 밤만으로 충분한 밤이 있다.
4
9월 26일, 엄마가 집으로 돌아왔다.
5
같은 날, 서울에서 일자리를 주겠다고 알려왔다.
6
남은 시간 동안 나는 이런저런 책을 좀 더 읽어 볼 생각이다.
7
『제2의 성』읽기에 syo가 등판합니다.
제발 조기강판 되는 일이 없어야 할 텐데요…….

같잖은 주인 만나 2년 동안 처박혀 있느라 너희들 수고했다
--- 읽은 ---




+ 바람의 만리 여명의 하늘 상 / 오노 후유미 : 187 ~ 374
+ 하룻밤의 지식여행 헤겔 / 로이드 스펜서, 안제이 크라우제 : ~ 175
+ 한 문장으로 시작하는 경제학 수업 / 박홍순 : 283 ~ 391
+ 세상을 바꾼 물리 / 원정현 : 115 ~ 240
--- 읽는 ---




= 사랑이라니, 선영아 / 김연수 : ~ 69
= 아무튼, 술 / 김혼비 : ~ 90
= 철학자 김진영의 전복적 소설 읽기 / 김진영 : ~ 99
= 현대 철학 아는 척하기 / 이병창 : ~ 1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