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도시의 마지막 여름> 읽다가 엥? 이건 각주를 좀 더 자세히 썼어야 하는데... 싶은 부분이 있었다. 57쪽의 “헨리 제임스 조이스(Henry James Joyce, <율리시스>를 쓴 아일랜드의 작가)나 밥 딜런 토마스(Bob Dylan Tonmas, 미국의 싱어송라이터),”라고 쓴 부분이 문제의(?) 문장이다. 괄호 안의 설명-각주는 부분적으로만 맞다.

이 책의 화자인 ‘레오’는 책을 많이 읽는 인간이라 책으로 언어 유희하는 걸 즐기는데, 곧 사랑에 빠지게 될 여자 ‘아리아나’를 만나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던 중 책에 관한 그녀의 질문에 언어 유희하듯이 대답한다. 바로 사진 속의 문장처럼.

이어지는 '해박한 지식을 동원한 내 말장난'이라는 문장처럼 레오는 “헨리 제임스/제임스 조이스, 밥 딜런/딜런 토마스” 두 사람을 동시에 연이어서 말하려고 했던 것이다. 때문에 저 각주는 엄밀히 따지자면 “헨리 제임스 조이스(Henry James, <나사의 회전>을 쓴 미국의 소설가 및 James Joyce, <율리시스>를 쓴 아일랜드의 작가를 잇달아 말함)나 밥 딜런 토마스(Bob Dylan,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및 Dylan Tonmas, 영국 웨일스의 시인을 잇달아 말함) 정도로 고쳐야 할 것 같다. 헨리 제임스도 사실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후에 영국으로 귀화했기 때문에 미국의 소설가란 표현도 딱 맞지는 않지만......

오늘 이 책 리뷰 쓰면서 이 사실을 덧붙이려고 했는데 리뷰 왠지 안 쓸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일단 이것만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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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11-20 14: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우 설명 잘해주셨네요. 저는 저 사진속 문장 읽으면서 제임스 조이스가 앞에 원래 헨리 붙는 거였어? 했거든요. 어우. 이건 굳이 각주 정리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이상 현암사 이벤트 3등 해서 기운 빠진 다락방 씀.)

잠자냥 2023-11-20 14:56   좋아요 0 | URL
헉 3등밖에 안 되었다고요?!!! 이런이런... 현암사가 잘못했다.......

잠자냥 2023-11-20 14:57   좋아요 0 | URL
그래서 확인해 본 제임스 조이스 이름은.... James Augustine Aloysius Joyce ㅋㅋㅋㅋㅋㅋㅋㅋ 앞에 아무것도 안 붙음.

잠자냥 2023-11-20 14:57   좋아요 0 | URL
그래도 출간도서 1종 고르는 재미가 있잖아요?! ㅋㅋㅋ

다락방 2023-11-20 15:03   좋아요 1 | URL
오웰 전집 생각하고 있다가 한 권 고르라니까 고를 의지가 없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3-11-20 15:18   좋아요 4 | URL
그래도 고르고 있는 거 다 보인다........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3-11-20 15:18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23-11-20 17: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헐 이건 꼭 정정되어야겠네요. 말장난을 역자도 이해하지 못한 것인가…

잠자냥 2023-11-20 17:30   좋아요 0 | URL
아마 각주는 편집자…..

독서괭 2023-11-20 17:32   좋아요 1 | URL
여러분 편집은 잠자냥에게 맡깁시다. 그래서 다니시는 출판사가 어디라고요?

잠자냥 2023-11-20 17:37   좋아요 1 | URL
오잉 이건 지금 제가 책 갖고 있어서 확인해보니 괄호 안 각주는 모두 옮긴이 주라고 되어 있네요?! 그래도 편집자가 한 번 봐주지….

유부만두 2023-11-20 17:45   좋아요 0 | URL
역자샘 역주를 감히 못 건들인거 아닐까요?

잠자냥 2023-11-20 17:53   좋아요 0 | URL
ㅋㅋㅋ 그것보다는 걍 믿고 넘어갔을 가능성…. 틀린 건 아니니까요?!

유부만두 2023-11-20 18:17   좋아요 0 | URL
‘가만 있으면 절반이라도 간다’ 일까요? 그런데 헨리 제임스 죠이스가 없잖아요;;; 그러면 오십 점도 아까운 주석인데요.

유부만두 2023-11-20 18:17   좋아요 5 | URL
이명박근혜에 대한민국 최초 여성 대통령이란 주석 단 셈이니까요. ^^

단발머리 2023-11-20 21:07   좋아요 1 | URL
ㅋㅎㅎㅎㅎㅎ 유부만두님의 찰진 비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옮긴이가 편집자를 이겨먹은 겁니까? 편집자가 그냥 믿고 지나간 거랍니까?

은오 2023-11-20 19: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하루라도 결혼욕구를 잠재워주시면안되나요 제발
잠자냥님이 너무멋있어서 또 차올랐습니다

잠자냥 2023-11-20 20:28   좋아요 1 | URL
내일 페이퍼 쉬겠습니다.

은오 2023-11-20 20:33   좋아요 1 | URL
100자평도 쉬십시오.

Falstaff 2023-11-20 19: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기함을 할 만한 농담들이군요.
스콧 핏제럴드도 영어로 Scotch Fitzegerald로 되어 있습니다. Scott를 Scotch로 바꾸어 쓰는 우스개를 한 건데, 암만해도 역자가...
솔직한 생각으로 말하자면, 욕을 좀 먹어도 할 말이 없을 듯합니다.

잠자냥 2023-11-20 20:22   좋아요 0 | URL
아 그러고 보니 스콧도 영어 철자가 원래 스콧하고 다르네요! (스콧은 뭐지?? 하고 영문 주의 깊게 안 보고 넘어갔음 ㅋㅋㅋㅋㅋ)
 

현암사 78주년 기념으로 갖고 있는 현암사 책 78쪽을 찍어 올리는 이벤트를 하고 있더라. 하이드 님 서재에서 보고 오호 재밌겠다, 생각했는데.... 책 사진 찍어 올리는 거 또 은근 귀찮아서 에이 말자, 하다가.... 며칠 전에 서재에서 무슨 책 찾다가 문득 생각나서 해보았다. 생각보다 현암사 책 없어서 놀람...(근데 책 앞칸만 훑어본 거라, 뒤쪽에 숨겨진 책이 분명히 더 있을 거 같은데....?)





#현암사78주년이벤트 (~11/19)
갖고 계신 현암사 책 78P의 사진과 함께 마음에 드는 문장을 인용으로 올려주세요! (도서명 기입 필수)


 이벤트 상품
 *나쓰메 소세키 전집|전 14권| (1명)
 *조지 오웰 소설 전집|전 6권|(한정판, 5명)
 *2023년 출간 도서 1권 선택 (법전류 제외, 10명)







나쓰메 소세키 전집- 이벤트로 1명에게 이 전집을 준다고 하는데 저는 이미 다 갖고 있으므로 괜찮습니다. 그냥 재미로 해보는 거랍니다...... 이 전집의 78쪽을 다 찍어 올리기는 너무 귀찮아서 ㅋㅋㅋㅋㅋㅋㅋ 나쓰메 소세키 작품 중에서 (아직까지는) 가장 좋아하는 <행인>의 78쪽을 찍어보기로 했다.




“화를 내면 안 되네.” 그가 말했다. "숨기는 게 아니네. 자네하고는 관계없는 일을 일부러 떠드는 것으로 보이는 게 싫어서 말하지 않으려고 생각했을 뿐이니까." (<행인>, 78쪽)



<행인> 78쪽엔 별 문장이 없다. 그래도 위의 문장에 눈길이 머문 것은 저 대화들이 나쓰메 소세키 작중 인물의 특징을 잘 드러낸다고 생각해서.









그 안에서 베네딕트는 자신을 정신적 장애가 있는 소녀로 그렸다. 가족과의 갈등 그리고 삶과 고통스럽게 타협하고 화해하는 영혼으로 말이다. (<마거릿 미드와 루스 베네딕트>, 79쪽)



<마거릿 미드와 루스 베네딕트>- 참 좋은 책이다, 수년 전 읽고 리뷰까지 남겼는데 책 안 팔고 갖고 있는 거 보소. 오잉? 지금 보니 절판이네. 그리고 중고 가격이 더 높다...? 오호라 책테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뻥. 갖고 있을 거야. 지적 자극을 주는 사제관계이자 연인이었던 두 사람의 이야기. 근데 78쪽은 하이드 님이 언급하셨듯이 없다..... 장과 장을 나누는 속지였고요.... 그래서 79쪽에서 찍은 문장. 루스 베네딕트의 어린 시절을 잘 묘사한 문장으로.

그런데 이 책에서 진짜 내가 좋아하는 문장은 바로 이 구절.


‘우리의 사랑은, 우리 모두가 자신 있게 들어갈 수 있는, 자유로운 집’이라고 베네딕트가 쓰자 미드는 다음과 같이 화답했다. “내 삶의 중심은 벽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곳이에요. 내 존재의 핵심은 당신의 완벽함을 중심으로 마감돼요.” (441쪽)






오잉? 이런 책이 있었어?! 하고 보니 아, 이건 내가 산 책이 아니고 집사2가 산 책. 예전에 집사2가 이 책 사왔을 때 아니 그냥 <젠더트러블>을 읽지 뭔 해제한 책을 샀느냐고 구시렁댄 기억이 났다......... 아무튼 그래서 나는 안 읽은 책인데 이번에 78쪽을 딱 펼쳐보니 이 구절이 눈에 들어온다. 흥미로운...데?




버틀러에게 젠더는 문화적이고 역사적인 특수한 일련의 관계를 둘러싼 상호 수렴점인 반면, 이리가레에게는 여성적인 성이 언어의 부재 지점이며, 문법적으로 규정된 실체의 실현 불가능성이자 남성적 담론의 지속적이고 근원적인 환영이다. (<젠더는 패러디다>, 78쪽)









올리비아 랭 <강으로> 이것도 사두고 아직 안 읽었어...;;;; 그러고 보니 현암사에서 처음 올리비아 랭 에세이 발굴해서 소개하고 지금은 다 절판... 다른 회사에서 올리비아 랭 판권 가져간 듯.


그래도 과거는 결과적으로 위안을 안겨주기도 한다. (<강으로>, 78쪽)
그리고 이렇게 토막토막 끌어온 문화 유물은 악조건을 무릅쓰고 초지일관으로 밀고 나간 인간의 끈기를 증명해준다.(<강으로>, 78쪽)






이것도 올리비아 랭 책. 이거 읽으면 술 엄청 마시고 싶어질까 봐 자제 중인데(웃기시네 ㅋㅋㅋㅋ), 78쪽 딱 펼치니 존 치버 이야기라 좋았다. 표지 찍은 위 사진에서 뒤쪽에 살짜쿵 존 치버 보이는 것은 우연의 일치치고는 재미난 우연. 78쪽은 치버가 자신처럼 똑같은 주정뱅이 카버를 만나기 전 일화가 소개되고 있다. “진의 위안도 없이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기 7년 전”이라는 구절이 특히 마음에 드는데... 존 치버, 진 좋아했어요? 난 진 별로던데....






1968년이라면 그가 레이먼드 카버와 아이오와 시티 인근을 활개치고 다니기 5년 전이자, 스미더스 알코올 치료 및 훈련 센터에 들어가 파산한 델리카트슨 점주와 한 방을 쓰며 슬픔도 진의 위안도 없이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기 7년 전이다. (<작가와 술>, 78쪽>)





그리고 마지막으로 <레 망다랭>- 1권이 아닌 2권 78쪽을 찍어봤는데 오잉?! 하이드 님도 그러셨더라...? 그리고 거의 비슷한 문장을 골라서 재미났습니다.






죽음은 모든 것을 삭혀버리지. 희생된 세대가 최후의 만찬에 참가하겠다며 무덤에서 나오는 일은 없어. 희생된 세대를 위로하는 것은 선택된 사람들도 얼마 후면 지하에 있는 그들을 만나러 가게 된다는 사실뿐이겠지. 행복과 불행 사이에 사람들이 믿고 있는 만큼의 차이는 없을지 몰라. (<레 망다랭>, 2권 78쪽)




이거 근데 트위터에 올려야 하는 것인가...? 귀찮다..... 상품을 받는다면 조지 오웰 전집 받고 싶지만 트위터에 안 올릴 거 같음. ㅋㅋㅋㅋㅋㅋㅋㅋ 아 그리고, 보니까 처음엔 조지 오웰, 전집으로만 팔아서 패스했는데 이젠 낱권으로도 파는구나? <신부의 딸> 살까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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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3-11-19 19:07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 제법 많은 축에 속하는군요!

독서괭 2023-11-18 15: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 어떤 이벤트든 준비되어 있는 잠자냥!! 소세키 전집은 볼 때마다 간지난다 싶은데 막상 소세키는 그닥 읽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는요 ㅋㅋ
전 현암사 한권도 없는 줄 알았는데 두권 있다라고요. 마르타 아르헤리치가 현암사 책인지 몰랐어요. 안 읽어서….

잠자냥 2023-11-19 19:08   좋아요 1 | URL
어떤 이벤트든?! ㅋㅋㅋㅋㅋㅋㅋ 이벤트 싫어하는데 이벤트 준비는 항상 되어 있는 잠자냥?!
아 마르타 그 책도 현암사군요. 읽고 팔아서 없어…;;; (현암사 참 다채롭게 내고 있구나)

책읽는나무 2023-11-19 0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암사는 예전에 그림책 쪽으로 많이 들고 있었는데 다 처분!!ㅜㅜ
그림책들 읽으면서 현암사 출판사 참 괜찮다.라고 생각한 적 많았어요.
내 책들 중 현암사 찾으려니 그닥 없군요.
이중으로 꽂아 둬 뒤지려니 먼지 나올까봐 손 대기도 싫고...ㅋㅋㅋ
근데 소세키 전집이 1등 상품!
당첨되시는 거 아녜요?ㅋㅋㅋ

잠자냥 2023-11-19 19:09   좋아요 1 | URL
그림책도 많이 냈군요. 하긴 역사가 78년이면 그럴 만도 합니다.
저는 1등은 다락방에게 양보. ㅋㅋㅋㅋ(트위터에 올리기 귀찮으므로 ㅋㅋㅋㅋㅋ)

얄라알라 2023-11-19 20: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잠자냥님, 아싸 신나라
저도 저 [마가릿 미드와 루스 베네딕트] 5-6년 전? 쯤 읽었는데요 아싸.
오늘따라 잠자냥님이랑 어떻게해든 공통분모 만들려 필사적이 된 느낌!

벌써 2권이네요 ㅎ

잠자냥 2023-11-19 21:07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 공통분모 생겨서 즐겁다니 기쁘네요. ㅋㅋㅋㅋ

자목련 2023-11-20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잠자냥 님의 책장에 없는 출판사가 있을까요? 아마도 없을 듯~

잠자냥 2023-11-20 12:18   좋아요 0 | URL
에이, 그래도 있지 않을까요? 이를테면 분도출판사 같은? 아아... 그러고 검색해 보니 <아낌없이 주는 나무> <꽃들에게 희망을> 이런 책이 여기서 나왔군요. ㅋㅋㅋㅋㅋㅋㅋ

관심 있는 책 나와도 제 돈 주고 사보지 않으려고 마음 먹고 있는 출판사는 있습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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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할 것 같았다. 아무리 보뱅이지만, 성 프란체스코라니. 가난한 이와 동물들의 수호성인(聖人) 프란체스코- 성인(聖人)은 말 그대로 성인, 평범한 사람이 아니다. 평범한 인간으로 태어나 비루하기 짝이 없는 나날을 살아가고 있는 나는, 애초부터 나와는 다른 종자라는 생각에서 위인이라는 존재에게 딱히 관심이 없는데 하물며 성인의 삶이야 말해 무엇하랴. <지극히 낮으신>은 그래서 보뱅의 책인데도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그의 문장이 읽고 싶어서 완벽하게 외면은 하지 못하던 이 책.

결국 늦가을, 이 책을 손에 든다. 책을 펼치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그 이름 “지슬렌”- “잉크로 쓰인 모든 길을 웃음으로 해방시킨 지슬렌 마리옹에게”라는 헌사가 눈에 들어온다. 이, 지독한 인간. 보뱅에게 지슬렌은 어떤 존재였을까. 그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만 부를 수 없었던, 그 조그만 단어만으로 명명하기에는 부족하기만한 존재. 이 지독한 사랑꾼 보뱅은 이 책을 평생의 연인이자 절대적 이름과도 같았을 여인 지슬렌에게 바치면서 시작한다. 책을 읽고 난 후 나는 이 헌사를 다시 읽을 수밖에 없었다. 보뱅에게 지슬렌이 절대적인 그 무엇이었다면 프란체스코에게는 신, 하느님이 절대적인 그 무엇이었다. 성 프란체스코에게 이 세상은 “잉크로 쓰인 모든 길을 웃음으로 해방시킨 하느님에게”라는 이름으로 헌사할 수 있었으리라. 그렇다면 나에게는 그런 존재가, 대상이 과연 무엇일까. <지극히 낮으신>은 그런 질문을 남긴다.

오래전 카잔차키스의 눈으로 그린 <성자 프란체스코>를 만난 적이 있다. 세속에 찌들대로 찌든 나날을 살다 보면 가끔은 그 속세를 벗어난 길을 걸어간 이들을 만나고 싶어진다. 그때가 그랬던 것 같다. 뭐랄까, 하도 자극적인 음식만 먹다보니 사찰 음식처럼 담백한 맛이 그리워지는 그런 거라고나 할까. 그럼에도 사찰 음식은 하루, 또는 한 번이면 족하다. 카잔차키스가 그려나간 프란체스코의 삶이 그랬다. 아니, 성 프란체스코라는 사람의 인생 자체가 그랬겠지. 남부러울 것 없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그 부를 누리면서 술과 여자 도박 등 온갖 향락적인 삶을 마음껏 누리던 사람이, 어느 날 문득 갱생하여, 그 세속의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자신의 특권을 모두 내려놓고 스스로 나환자를 비롯한 가난한 이들을 위해, 아니 가난한 이들과 함께, 고행을 선택하고 실천하여 살아간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그 삶에 잠시 경도되기도 하지만 내가 갈 수가 없는 길. 인간은 누구나 자라 성인(成人)이 되지만 성인(聖人)은 아무나 될 수 없기에, 프란체스코의 삶은 그래서 내겐 너무나 먼 길, 하늘의 별 같은 이야기처럼 뇌리에 남았을 뿐이다.

역시 보뱅은 달랐다. 성자 프란체스코의 삶을 기록하지만 그의 삶을 일대기 형식으로-그렇게 뻔하게 그려나가지 않는다. 프란체스코의 삶에서 결정적인 어느 한 때의 장면, 장면만을 스케치하듯 그리면서도 프란체스코라는 한 사람의 이미지를 완벽하게 재현한다. 그렇다고 보뱅이 프란체스코의 일생을 완벽하게 안다는 의미는 아니다. <지극히 낮으신>은 “아이는 천사와 함께 떠났고, 개가 그 뒤를 따라갔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해 거듭 반복된다. 보뱅은 이 문장이 프란체스코에게 딱 들어맞는다고 말한다. 우리는 그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지만, 그게 오히려 다행이라고 말한다. “누군가에 대해 안다고 하는 것이 그 사람을 알 수 없게 만들어버리니까.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안다고 믿으며 그 사람에 대해 말함으로써 그의 참모습을 놓치기 일쑤”(12쪽)이므로. 또 보뱅은 “아이와 천사, 웃음과 침묵, 장난기와 우아함을 쫓아가는 이 개”가 바로 프란체스코라고 말한다. 보뱅의 장점이 발현되는 순간이다. 평범한 소재에서도 다르게 볼 줄 알고 달리 표현할 줄 아는 그, 크리스티앙 보뱅. 프란체스코를 아이와 천사를 즐겁게 쫓아가는 한 마리의 개로 보다니. 이 찬탄은 책을 읽어나갈수록 구체화된 모습으로 나의 눈앞에 드러난다.

프란체스코는 앞서 말했다시피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스무 살 무렵까지는 그 부와 향락을 즐기면서 여느 인간과 다를 바 없는 인생을 살아간다. 가진 게 많았기에 결핍도 없었고 잘생겼기에 아름다운 여자들이 그를 따른다. 그러므로 그는 이 삶에서 애써 구할 것이 없었다. 그런데도 때로 인간은 신기한 존재라서 그는 어느 날 문득 여행을 떠난다. 이것은 예전의 여행들과는 달라서 “명예도 무기도 예고도 없는 여행”이다. 아무도 그를 모르는 곳, 로마에서 “예전에 더없이 아름다운 여자들 주위를 서성였듯이 이제 그는 거지들 주위를 배회”한다. 보뱅은 그런 프란체스코를 “사냥감을 찾는 사냥개”(70쪽)와 같다고 표현한다. 그러나 프란체스코가 구하고자 하는 것은 가난이 아니다. 그는 “어떤 돈으로도 살 수 없는 부富를 구하는 것이다.”(70쪽)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일까 싶은데 이어지는 문장이 이 책의 모든 것을 말해준다. “진리는 분명 높은 곳에 있기보다 낮은 곳에 있음을, 충족 속에 있기보다 결핍 속에 있음을 그는 본능적으로 감지한다.”(71쪽)는 이 문장.

진리(眞理)- 과연 무엇이 진리일까? 보뱅은 진리란 결코 우리 외부에 있지 않다고, “진리는 우리가 무언가를 아는 데 있지 않고,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기쁨 속에 있다.”(71쪽) 말한다. 진리는 그 무엇으로도 바래지 않는 기쁨으로 보뱅에 따르면 진리는 “죽음조차도 앗아갈 수 없는 보물”이다. 그리고 프란체스코는 그 진리를 하느님, 그 하느님 안, 가난한 자들의 삶속에서 찾았다. 프란체스코는 “가난이 내포하는 물질적 헐벗음에 매료”당한다. 부잣집 도련님의 가난코스프레인가? 가난을 알기 위해 가난을 배우려는 것일까 잠시 의혹이 싹튼다. 그러나 프란체스코는 “말뿐인 사랑, 사랑 없는 사랑”의 공허함을, 그것이 “다른 모든 감정과 마찬가지로 구멍이 숭숭 난 부서지기 쉬운 감정”임을 안다. “부르주아들은 자신들의 이해타산에 부합하는 가난한 자를 꿈꾼다. 사제들은 그들의 소망에 부합하는 가난한 자를 꿈꾼다. 그러나 프란체스코는 꿈꾸는 것이 없다.” 그는 “가난이 조금도 사랑스럽지 않은 것”이며 “가난은 어떤 결함이며 고통이며 상처”이고 “사랑스러운 구석이라고는 없는 무엇”임을 안다. 그리하여 그는 가난한 자들 속에서, 그 채울 수 없는 결핍에서 사랑을, 하느님을 발견한다. 그렇기에 그것은 곧 프란체스코에게 진리가 된다.

보뱅은 “한 사람에 대해 알고 싶다면 그의 삶이 남몰래 지향하는 대상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 사람은 어느 누구보다 이 대상에 대고 말한다고, 우리에게 말하는 것처럼 보일 때조차 그렇다고. 그가 침묵 속에서 대면하는 이 대상에 모든 게 달려 있다고. 그리하여 인간은 “이 대상에게서 인정받기 위해 사실과 증거를 축적했으며, 이 대상으로부터 사랑받기 위해 현재와 같은 삶의 모습에 이르렀다.”(134쪽)고. 프란체스코가 남몰래 지향했던 이 대상은 대개의 인간들이 그렇듯이 아버지도, 어머니의 세계도 아닌 하느님의 세계였다, 그리고 거기에서 가장 결핍을 느꼈을 이들은 가난한 자들이다. 인간은 사랑이 자신들을 가득 채워 주길 기대한다. 그러나 보뱅 또는 프란체스코는 말한다. 사랑은 “아무것도-당신들 머릿속에 뚫린 구멍도, 마음속 심연도-채워 주지” 않는다고. “사랑은 충만한 상태라기보다 우선 결핍”이므로 “사랑은 결핍의 충만함”이므로(147~148쪽). 프란체스코는 사랑이 결핍임을, 결핍의 충만함임을 알았기에 하느님과 가난한 이들의 삶 속으로 뛰어 들었고 그것이 그에게는 곧 진리이자 사랑이었다.

보뱅에게는 그 진리가 지슬렌이라 불리던 한 여인이고 그 사랑이 아니었을까. 보뱅은 지슬렌을 잃고 쓴 글에서 그녀를 이렇게 묘사한다.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있고, 두 번 결혼했고, 수많은 관계로 이어져 있던 너. 너보다 더 자유로운 사람, 더 자유롭고, 더 지혜롭고, 더 사랑이 깊은 사람을 본 적이 없다.”고. 그리고 지슬렌을 표현하는 이 언어, “자유와 지혜와 사랑은 세 단어이나 똑같은 말”이라고 덧붙인다. “각 단어가 다른 두 단어와 유리되면 알맹이도 의미도 없는 텅 빈 언어가 되어버리므로.”(<그리움의 정원에서>, 44쪽) 자유와 지혜와 사랑은 곧 지슬렌이며, 그녀 없이는 텅 빈 언어가 되어 버린다. 그리움, 공허, 고통, 기쁨은 지슬렌이 보뱅에게 남긴 보물(<그리움의 정원에서>110쪽)로 그 보물은 결코 고갈되지 않는다. 보뱅에게 지슬렌은 결핍의 충만함을 알려주는 사랑 그 자체이며 진리인 것이다.

보뱅은 인간은 이런저런 도시에서, 이런저런 직업을 갖고, 이런저런 가정에 산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곳은 사실은 어떤 장소가 아니라고, “우리가 정말로 살고 있는 곳은 하루하루를 보내는 그곳이 아니라, 무얼 희망하는지도 모르면서 우리가 희망하는 그곳이며, 무엇이 노래하게 만드는지도 모르면서 우리가 노래하는 그곳”(<지극히 낮으신>, 58쪽)이라고 말한다. 이 구절은 <그리움의 정원에서>의 “진정한 거처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다.”와 꼭 들어맞는다. 프란체스코도 보뱅도 “자신의 주인이 계시는 집”, ‘지극히 낮으신 분’이 어디에 거하는지 알고 있던/알게 된 운 좋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찾던 그 ‘지극히 낮으신 분’이라는 존재는 “세속의 빛이 가까스로 닿는 곳, 삶에 모든 것이 결핍되어 있는 곳”(73쪽)에 있었다. 그곳에서 삶은 “단순한 경이요, 조촐한 기적”이 된다. 아이와 천사의 웃음을 따르던 한 마리의 개, 프란체스코- 자유와 지혜와 사랑이라는 이름의 지슬렌을 따르던 한 마리의 개 보뱅, 나는 무엇을 따라가는 한 마리의 개가 되어야 할 것인가. 나에게 "잉크로 쓰인 모든 길을 웃음으로 해방시킬" 그 존재는 과연 무엇일까. 이 가을, <지극히 낮으신>이 내게 남기는 묵직한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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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목련 2023-11-13 15: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올해가 가기 전에 보뱅의 책을 읽겠다는 다짐.

잠자냥 2023-11-13 15:15   좋아요 0 | URL
최근에 읽은 책들 중에 보뱅의 문장처럼 제 마음을 사로잡는 문장도 없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 문장이 공허하지 않아서 더 울림이 남다른....

새파랑 2023-11-13 15: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도 ‘지슬렌‘인가요?ㅋ ‘지슬렌‘에게 마치는 또다른 책이군요. 리뷰 초반만 읽고 패쓰 했습니다 ㅋ 오늘 바로 구매해야 겠습니다.

프랑스에 지슬렌이 있다면 한국에는 잠자냥님?


보뱅 = 은오님
지슬렌 = 잠자냥님

잠자냥 2023-11-13 15:16   좋아요 2 | URL
지슬렌에게 바치는 또 다른 책입니다만 지슬렌은 헌사 외에 더 나오지는 않아요.
그러나 어떤 이의 눈에는 지슬렌이 보입니다. ㅎㅎㅎ

아니 그나저나 은바오를 보뱅에게 비유하기엔 은바오는 글을 쓰지 않음..,,

독서괭 2023-11-13 17:07   좋아요 2 | URL
판다 손으로 글쓰기는 좀 무리겠죠.. 슬프다..

잠자냥 2023-11-13 17:22   좋아요 2 | URL
먹고 자고 싸기 바쁜 은바오.

라파엘 2023-11-13 15: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다른 출판사에서 번역된 책으로 읽고 그 책이 절판되어서 아쉬웠는데, 이렇게 새로운 출판사에서 번역되어 더 멋지게 나왔군요!! 보뱅의 문장에 버금가는 자냥님의 멋진 리뷰를 기쁘게 읽었습니다~!!! 😃 👍👍

참고로, ˝아이는 천사와 함께 떠났고, 개가 그 뒤를 따라갔다˝ 라는 문장에 등장하는 천사가 바로 라파엘입니다~! 😆

잠자냥 2023-11-13 15:39   좋아요 1 | URL
네, 전에 저도 이 책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버전을 보관함에 담아돴었는데(새로운 번역이 나오길 바라면서...) 이렇게 출간되어서 읽게 되니 기쁘더라고요.

그 라파엘 천사 저도 좀 따라가보고 싶네요. ㅎㅎ

독서괭 2023-11-13 17: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다음 “구간 세권 작파 후 살 책” 후보로 임명합니다. 보뱅의 문장에 반하신 마음이 뿜뿜 느껴지는 리뷰네요!

잠자냥 2023-11-13 17:24   좋아요 2 | URL
괭, <가벼운 마음>처럼 마음에 들어야 할 텐데!

다락방 2023-11-13 18:0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리뷰 읽고나니 <그리움의 정원에서>가 읽고 싶어졌는데, 잠자냥 님 이 책은 구매자평만 있네요? 저는 이 책으로 다시 보뱅 도전합니다. 안좋다면서 자꾸 도전하게 되네요.. 인생.. 잠자냥 알고 달라지고 있다...

잠자냥 2023-11-13 18:31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 우리 오늘 밤 보뱅으로 한몸이 아니다 이상하닼ㅋㅋㅋㅋㅋㅋ 일치단결 ㅋㅋㅋㅋㅋ

책읽는나무 2023-11-13 21: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잉크로 쓰인 모든 글을 웃음으로 해방시킬˝로 읽었네요.ㅋㅋㅋ
잠자냥 님의 글이라면 웃음으로 해방시킬 수 있는뎅...ㅋㅋㅋ

잠자냥 2023-11-14 09:34   좋아요 1 | URL
나무 님 요즘 살짝 우울하신 것 같은데 제가 웃음으로 해방시켜 드리겠습니다! ㅋㅋㅋㅋ

은오 2023-11-14 18: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보뱅의 필력을 가졌다면 잠자냥님을 두고 이런 책을 썼을텐데!
그 존재는 이미 찾았습니다ㅋ

잠자냥 2023-11-14 18:43   좋아요 1 | URL
쓰지도 않으면서 필력 타령은….

은오 2023-11-14 20:21   좋아요 1 | URL
제가 글을 올려도 잠자냥님 피드에 뜨지 않을걸 생각하니 쓰고싶지 않네요ㅜㅠ

잠자냥 2023-11-14 20:46   좋아요 2 | URL
뻥은…..오

은오 2023-11-14 21:42   좋아요 2 | URL
근데 볼수록 흐뭇하네요 리얼 커플프사 ㅋㅋㅋㅋㅋㅋㅋ
 

<아무도 안 시켰지만 그냥 하는 글쓰기 공부> 4일차- 아주 오래전에 읽은 터라 제목이 정확히 떠오르지 않지만 심리학 관련 책으로 기억한다. 그 책에 따르면 목요일 오후, 그러니까 목요일 저녁에는 중요한 약속(소개팅이나 중요한 협상을 해야 하는 그런 종류의)을 잡지 말라는 것이었다. 인간의 생체 리듬에 따르면 일주일 중 목요일, 그것도 목요일 저녁 무렵에 가장 피로함을 느끼기 때문에(심리적으로 금요일은 주말에 대한 기대감 때문에 사람들 기분이 좋기 마련이라나), 예민해지기도 하고 신경이 날카로워져서 일주일 중 다른 날보다 중요한 약속에서의 성공률 같은 것이 낮아지기 쉽다는 이야기였다. 제법 그럴듯하게 들렸던 이야기라 지금까지도 기억하는 것 같다. 실제로 목요일이 좀 제일 피곤하지 않은가?

어제가 바로 그 목요일이었고, (서울은) 비까지 내려서 추적추적한 날씨에 선생님께 드릴 선물을 챙겨서 신촌으로 가자니 지하철 파업으로 사람은 왜 또 그렇게 많던지- 아이고야, 정말 희진쌤 강의만 아니었다면 어제는 정말 수업을 포기했을 것 같은 극도의 피로감이 몰려왔다. 그래도 이번 강의의 마지막 시간이니 힘을 내서 교실로 향했다. 내가 도착한 시간은 6시 40분으로 수업 시작하기 거의 한 시간 전. 강의실에 아무도 없었다! 흐흐흐. 이걸 노렸지. 그러니까 아무래도 사람들이 다 지켜보는 가운데 선생님께 직접 선물을 드릴 수는 없을 것 같아서(부끄럽습니다), 강의실에 가장 먼저 도착해서 선생님 책상 위에 올려두기로 한 것이었다. 그리고 성공! >_< (암튼 선물 관련 이야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지하철 파업 여파로 선생님도 어제는 평소보다 좀 늦은 시간에 도착하셨다. 아아, 그런데, 숨을 잠시 돌리시더니 책상 위에 놓인 선물- 정확히는 쇼핑백 안을 들여다보시고는 살짝 웃으셨다. 내가 쌤에게 쓴 편지도 바로 꺼내 읽으셨다..... 안 보는 척 지켜보는 나의 심장은 콩닥콩닥 ㅋㅋㅋㅋ (선물 이야기 그만 하자)

쌤은 “탈식민은 내 안에 식민지가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강의를 시작했다. 탈식민이라고 하니까 단어로 인해 반일이나 반미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이 아니라 우리는 투명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 안에도 이런저런 모순들이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 예컨대 쌤은 외모주의를 비판하지만 당신 스스로 잘생긴 남자를 좋아한다고 말하면서 이런 모순, 이때 “왜?”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던져야 한다는 것, “왜?”라는 사유를 해야, 즉 이 모순을 고민해야 좋은 글이 나온다고.

보편성과 객관성은 구성되는 것으로(making/조작造作) 이때 조작이라는 단어는 우리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듯이 나쁜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지어서 만든다는 의미이다. 지식의 권력 관계는 만들어지는 것인데 그 보편성을 해체하고 재구성해야 나 자신이 변화할 수 있다. 지난 시간에 언급한 “포지셔닝”은 곧 “글로써 개입하는 실천(투수의 눈/포수의 눈/심판의 눈/관중의 눈 어떤 눈으로 글을 쓸 것인가)”이다. “글로써 개입하는 실천”이기에 “글쓰기가 곧 사회운동이 되는 것”이다. 켄 로치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 I, Daniel Blake, 2016> 같은 글은 사회운동이 되지 못한다. 그런 현상을 바라보는 나를 전시하는 것일 뿐. (그런데 나는 이 영화를 아주 좋게 봤던 터라-켄 로치식의 거리두기가 오히려 좋았는데....쌤이 무엇을 말하는지는 알겠지만 이런 식의 영화도 존재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전시하기는 하지만 그 전시가 곧 다른 이들-그런 세상을 알지 못했던 이들에게 전달하는 파급력이 있지는 않을까?)

이야기는 이렇게 이번 강의 주제 <왜 쓰는가, 왜 쓰지 않고는 살 수 없는가 : 글쓰기의 정치와 윤리>로 넘어갔다. 쌤은 근본적으로 왜 쓰는지, 왜 써야만 하는지 스스로 질문해 보라고 하면서 다시, 조지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를 언급하셨다. 여기서 잠깐.... 예전에 읽은 이 책에서 ‘쓰는 동기’에 관하여 내가 메모해둔 부분을 옮겨 본다.


내가 이런 배경 설명을 일일이 하는 것은, 어릴 때 어떤 식으로 성장했는지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한 작가의 동기를 헤아리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글의 주제는 그가 사는 시대에 따라 결정되겠지만 그는 작가 생활을 시작하기도 전부터 이미 나름의 정서적 태도를 갖게 되며, 그것은 그가 완전히 벗어날 수 없는 무엇이다. (중략) 나는 생계 때문인 경우를 제외한다면, 글을 쓰는 동기는 크게 네 가지라고 생각한다.

1. 순전한 이기심 : 똑똑해 보이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깃거리가 되고 싶은, 사후에 기억되고 싶은, 어린 시절 자신을 푸대접한 어른들에게 앙갚음을 하고 싶은 등등의 욕구를 말한다. 이게 동기가 아닌 척, 그것도 강력한 동기가 아닌 척하는 건 허위다. 작가의 이런 특성은 과학자, 예술가, 정치인, 법조인, 군인, 성공한 사업가 등, 요컨대 최상층에 있는 모든 인간에게 공통되는 특성이다. 사람들 절대다수는 그다지 이기적이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이 서른 남짓이 되면 개인적인 야심을 버리고(많은 경우 자신이 한 개인이라는 자각조차 거의 버리는 게 보통이다) 주로 남을 위해 살거나 고역에 시달리며 겨우겨우 살 뿐이다.

2. 미학적 열정 : 외부 세계의 아름다움에 대한, 또는 낱말과 그것의 적절한 배열이 갖는 묘미에 대한 인식을 말한다. 어떤 소리가 다른 소리에 끼치는 영향, 훌륭한 산문의 견고함, 훌륭한 이야기의 리듬에서 찾는 기쁨이기도 하다.

3. 역사적 충동 :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진실을 알아내고, 그것을 후세를 위해 보존해두려는 욕구를 말한다.

4. 정치적 목적 : 여기서 ‘정치적’이라는 말은 가장 광범위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동기는 세상을 특정 방향으로 밀고 가려는, 어떤 사회를 지향하며 분투해야 하는지에 대한 남들의 생각을 바꾸려는 욕구를 말한다. 다시 말하지만, 어떤 책이든 정치적 편향으로부터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없다.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의견 자체가 정치적 태도인 것이다. (조지 오웰, <나는 왜 쓰는가>, 292~294쪽)



쌤은 이어서 “나의 육체여, 나로 하여금 항상 물음을 던지는 인간이 되게 하소서” 프란츠 파농의 말을 읊으면서 글쓰기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이 몸이 근거가 되어야 한다고. “우리 모두에게는 칼이 있습니다. 그러나 ‘남자’는 칼자루를, ‘여자’는 칼날을 쥐고 있습니다. 이 상태에서 대화를 시도할수록 우리는 피를 흘릴 뿐입니다.”라는 나혜석의 말을 빌려와 여성은 칼날을 쥐고 있으므로 손에 피를 흘린다, 그러므로 다른 칼자루(칼날을 잡고 살아갈 수는 없으니)를 잡아야 한다. 이것은 곧 다른 언어를 가져야 함을 의미한다고.

쓰지 못하는 것과 아예 쓸 게 없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이 평일 저녁에 이곳까지 온 분들은 대단한 의지, 절실한 언어를 가진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쓸 것이 없는데 쓰는 사람이 문제다. 이런 사람들이 글을 쓰면 지당한 말씀이 되고 만다. 사람들은 언제 글이 쓰고 싶어지는가? 억울할 때, 외로울, 때 화가 날 때, 연애할 때, 사랑에 빠졌을 때, 그리울 때, 슬플 때, 고생스러울 때 등등 감정이 솟아날 때이다. 감정적인 것이 과연 나쁜가? 인간은 분노하고 억울할 때 할 말이 많다. 이것은 곧 세계와(외부와) 갈등, 투쟁, 억압 상태라는 증거이다. 특히 분노는 인간의 감정에서 매우 중요하다. 구조적으로 억울한 상황이 반복될 때가 있고(젠더/계급 인종/권력 관계 등) 자기 자신의 인생에서 억울했을 때도 있을 것이다. 이 리스트를 짜보라,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했을 때의 경험 등. 이 리스트가 많은 사람들은 글을 꼭 써라. 인생은 고통이다. 억울한 게 많을수록 글감이 많아진다. 고통이 글쓰기에는 나쁜 게 아니다. 여성이나 장애인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끊임없이 할 말이 있을 것이다. 끊임없는 결핍과 갈증 상태이기 때문이다. 분노, 결핍, 갈증은 모두 쓸거리가 된다.

언어는 약자에게 최고의 무기이다. 모두가 분신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인간이 호모사피엔스인 이유는 언어를 가졌기 때문이다. 물론 강자는 매스컴이나 지면 같은 매체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런 자원이 없는 이들도 언어는 갖고 있다. 장 주네를 보라, 그는 노숙자였지만 썼다. 그리고 언어는 읽기와 쓰기에서 나온다(읽기와 쓰기를 해야 하는 이유). 분노와 억울함, 약자라는 상태는 나쁜 것이 아니라 쓰기의 자원이다.

그러나 이때 이런 자원 자체만으로 완성품이 되지는 않는다. 약자라는 자원 그 자체에서만 그쳐서는 안 된다.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 예컨대 똑같이 고문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있다. 임철우의 <붉은 방>과 정찬의 <얼음의 집>, <슬픔의 노래>, <길 저쪽> 등의 작품. 그런데 임철우의 작품은 고문 피해자의 입장에서 쓴 글이며, 정찬의 작품은 고문 가해자의 입장에서 쓴 글이다. 정찬은 왜 가해자를 주인공으로 썼을까? 피해자의 시선이나 관점에서 썼으면 더 쉽지 않았을까? 정찬은 이런 작품을 통해서 무엇이 가해자로 하여금 고문을 영광스럽게 했는가를 탐구한다. 가해자들이 왜 그랬는지를 알아야 피해를 또 막을 수 있다(고문의 구조를 이해). 그러나 이때 윤리적 고민이, 치열한 사유가 필요하다. 자칫 잘못하면 폭력 포르노(고문 포르노)가 되거나 가해자 옹호의 글로 읽힐 수도 있다. 분노를 성찰해야 한다, 가해자와 나의 관계를 성찰,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가/나는 그런 적이 없는가를 성찰. 여기에서 글쓰기의 윤리가 발생한다.


Maurits Cornelis Escher, <Drawing Hands>. 1948



에셔의 <그림을 그리는 손>을 보라. 이 그림에서는 “주체와 대상의 구분이 없다.” 글은 “대상에 대해 쓰는 게 아니라 대상과 나의 관계에 대해 쓰는 것”이다. 그림을 그리는 손이나 꽃병이나 사과나 모두 같다. 대상을 그리는 것,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과 나의 관계를 성찰해야 한다. 중산층인 나와 노동자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때 중산층인 내가 노동자 다니엘 블레이크와 동일시하기란 어렵다. 불가능하다. 흔히 “연대”라고 말하지만 이것은 기본적으로 배려, 동정심, 자기만족이 아닐까. 연대는 쉽지 않다. 또 연대, 카르텔, 네트워크, 연줄은 어떻게 다른가. 중산층과 노동자의 연대? 불가능하다. 연대는 어려우므로 이런 글을 쓰려면 아주 구체적이어야 한다. 자원이 많은 사람이 정치적으로 올바른 행동도 하기 쉽다. 이 모순에 대해 써라. 연대의 당위성이 아니라, 연대의 어려움, 모순을 성찰해야 한다.

<밀크맨>의 작가 애나 번스의 말 인용. “문이 열리고 내면의 모순이 드러나면 양립할 수 없는 것들이 충돌하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올바른 발언을 하기는커녕 나 자신에게조차 말이 되게 설명할 수 없다.”(<밀크맨> 필독!) 글쓰기는 세상을 바꾼다기보다는 나 자신에게 적대적인 세상을 이해(인식/언더스탠드/동의/수용)하고 모두가 모순이 있음을 받아들이는 행위이기도 하다. 복잡한 삶 속에서 글을 써라. 이것이 글쓰기의 운명이다.

기억하자. “약자의 유일하고도 품위 있는. 영향력 있는 자원은 언어”이다. 분노는 투명하지만 세상은 복잡하다. 이 두 가지를 모두 고려해서 쓰려면 길을 잃기 쉽다. 그래서 글쓰기가 어려운 것이다. 분노에 차서 막상 쓰고 나면 화풀이만 되고 말기도 한다. 그러나 이 모든 상황이 약자의 특성이 아닐까. 문제의식이 없는 사람은 인생이 지루할 것이다. “분노한 자신을 인식하는(사유하는) 또 다른 자신을 탄생시켜야 한다. 에셔의 그림처럼. 이럴 때 분노는 자원이 된다.”



















마지막 시간이라 수강생들에게 질문을 받으셨고 두 사람이 한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시간이 좀 길어졌다. 하나만 더 받으셨으면 나도 질문할 거 있었는데....(이건 메일로 할 수밖에)- 아무튼 그러고 나서!!!!!!!! 만면에 웃음 가득한 얼굴로 쌤이 다급하게 물으셨다.



“이 천하장사 소세지 놔둔 사람 누구예요? 누구죠?”

침묵하는 천하장사 소세지 잠자냥.

수강생들 중 아무도 손을 들지 않자, 쌤은 “아무튼 고마워요, 잘 먹을게요! 이거 먹고 내가 00kg 돼서 나타난다.”라고 하셨다. ㅋㅋㅋㅋㅋㅋㅋㅋ




부담되지 않으면서도 쌤이 좋아하실 만한 것으로 고른 천하장사 ㅋㅋㅋㅋ 이게 좀 생각보다 무거워서;; 쌤이 고생 좀 하셨을 것 같다.......







참, 그리고 얘들아 주목... 12월은 강의 없고, 1월, 2월에 강의하실 거라고, 이번에는 이론/합평반 따로 하는 게 아니라 합평반만 토요일에 4번씩 하신다고. 1월 합평반 토요일 4번, 2월 합평반 토요일 4번 이렇게. 강의 공지는 곧 올라갈 것이라고 하는데.... 한겨레문화센터 홈페이지나 <정희진의 공부> 댓글 중 쌤이 올리는 댓글 주목하라능... 합평반은 글을 써서 내야 하고, 그 글에 대해 쌤의 코멘트를 받을 수 있단다. 공쟝쟝아, 들을래? 들어라, 들어볼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앞희진 좌천하장사 우은오, 2024년 쟝의 극락은 이뤄질 것인가?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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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키 2024-02-29 10: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퍼가기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어제 댓글 달고 보니 저와 함께 사는 사람의 아이디로 댓글을 단 것이었습니다.ㅜㅜ 위의 댓글은 삭제하도록 하겠습니다... (혼란 드려서 죄송해유) 3년전쯤인가 한겨레에서 선생님 논문 글쓰기 강의 6강짜리 들은 적이 있고 (논문 쓸 건 아님 ㅎㅎ) 요즘은 정희진의 공부 들으며 행복해하는 1인입니다.. 정희진 선생님께 더 배우고 싶어서 언제나 드릉드릉하는 중인데, 한겨레 개강알림일 신청까지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알라딘 서재에 요렇게 책 좋아하는 분들이 모여계시는군용...! 깊고 넓은 알라디너의 세계에 감탄하고 갑니다. 글 퍼간 블로그 주소는 https://blog.naver.com/iskii82/223368715943 입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려요!

이스키 2024-02-29 10:57   좋아요 1 | URL
앗 죄송해요.. 위의 댓글을 지웠더니 거기에 달아주신 잠자냥님의 댓글도 삭제되었나봅니다 죄송합니다 엉엉엉 ㅠㅠㅠㅠ

잠자냥 2024-02-29 10:59   좋아요 0 | URL
네 감사합니다. 알라딘서재는 여성주의 책 읽기 모임도 있고, 정희진 선생님 사랑하는 분들이 모여서 함께 책 읽고 생각 나눔도 많이 하고 있으니 서재활동 하시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즐거운 공부 생활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제 댓글 지움은 뭐 한겨레 강좌 링크만 알아두셨다면 괜찮습니다. 그거 알려드리는 게 목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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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너 아주 이맘때면 아주 고약한 버릇이 있어! 왜 대체 올해 얼마나 샀는지 기록을 알려주는 거야? 알고 싶지 않아....... 그러면서도 궁금증에 열어보면 깜짝 놀란다. 아니 정말 이만큼 샀다고???? 어제도 그랬는데, 그래도 좀 안심... 안도&위로. 다락방보다는 내가 덜 샀더라고? 다락방 걔는 심지어 다른 계정으로도 막 샀더라? 그래도 난 아니야. 알라딘에서만 샀어. 잠자냥, 칭찬한다. ㅋㅋㅋㅋㅋ

그나저나 그래프 보다 보면 저 주름이랄까? 저게 난 액세서리처럼 누구의 그래프에나 디폴트로 들어가는 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더라? 대디 님은 심지어 저 주름이 부럽다고 ㅋㅋㅋㅋㅋ 다락방은 PC 버전에서 캡쳐해서 그런지 그래프가 위를 향하고 있던데, 얘들아 모바일로 보면 그래프가 옆을 향한다?! 주름도 옆으로.... 그래프에 주름을 가진 자는 이번에도 또 샀다......


일단 그래프부터 보자.





월평균 책 구매 금액! 다락방은 38만 원 넘더라! 만세 내가 졌어! 10월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네, 다 알면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일보 퀴즈대회 상품으로 책 쏜 달. 그나마 위로는 저 금액이 실구매액은 아니고 알라딘에서 주는 적립금&리뷰대회 적립금 이런 것을 다 포함한 금액인 것 같다는 사실이랄까.

이미 다 알려진 내 나이.... 몇몇에게는 이미 다 알려진 내가 사는 동네이지만 그래도 좀 가려봤다. 그나저나 근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이를 가리니까 갑자기 여성 상위 0.3% 된 것 무엇? ㅋㅋㅋㅋ 여성 상위 0.3%밖에 안 한다고? 많이들 하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여성 상위가 뭐야 그게 정상위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놔 아침부터 이런 이야기하면 다락방이 너무 좋아해서 안 돼. 그만하자 이런 이야긴.




너희들은 젤리곰 몇 개니? 푸바오로 세워보지 그랬을까? 그나저나 이렇게 샀는데도 재작년보다 51권 덜 구매했다고?! 재작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ㅋㅋㅋㅋㅋㅋㅋ <성스러운 동물성애자>만 등장하면 왜 부끄러운 웃음이 날까?




이건 간만에 마음에 드는 리스트가 되었다. 네 거의 다 맞습니다(책 많이 산 작가를 좋아한다고 분석하는 알라딘- 근데 부르디외 사진은 저게 뭐니. 부르디외 최소 저 책 표지 사진보다는 잘 생겼는데 좀 실물 사진 넣어주지).




부르디외는 이렇게 생겼습니다.




지안프랑코 칼리가리치, <도시의 마지막 여름>
확실히 요즘 문학이 덜 땡기긴 한다. 그런 중에 눈에 띈 이 책. “1973년 첫 출간 후 50년이 지난 지금, 세상이 잊고 있던 시대를 관통하는 고전을 다시 만나다.”라는 구절이 눈에 들어온다. ‘잃어버린 세대’가 낳은 혼란을 대변하는 한 남자 레오 가짜라와 로마에서 만난 사람들 사이의 환멸적 관계를 통한 군중 속의 고독, 잔인하리만큼 냉혹한 현실을 살아가는 사랑의 모순을 탐구하고 있다는데, 이런 소설 약간 모 아니면 도일 수 있지만, 50년을 살아남았다고 하니 한번 읽어보기로.
 


뮤리엘 스파크, <운전석의 여자>
<진 브로디 선생의 전성기>의 뮤리엘 스파크, 신간 나오기를 기다리는 작가 중 한 사람인데 오우. 표지 너무 별로여서 눈물이..... 구매욕을 확 떨어뜨리는 표지 어쩔. 결국 그래도 샀다. 왜냐? 전후 영국의 최고 작가 중 하나로 손꼽히는 뮤리얼 스파크, 그녀는 <운전석의 여자>를 자신의 최고작으로 꼽았다고. 그런 데다가 “닮은 소설을 찾기 힘든 기이한 소설”이라는 소개 문구도 혹한다. 그저 ‘여성이 주인공인 미스터리 스릴러’라고 말할 수 있을 뿐, 그 외의 모든 전형성은 비껴간다고! <진 브로디 선생의 전성기> 속 여학생들 모습이 남달랐던 것을 기억하는 독자라면 이 책에도 흥미가 동할 것이다.



로베르트 무질, <특성 없는 남자 2>
1권 다 읽으면 사려고 했는데..... 그냥 샀다. 이러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처럼 책만 모아두는 건 아닌지..... 으음.



이즈쓰 도시히코, <러시아적 인간>
발간된 거 보고 너무 궁금하고 읽고 싶어서 손 떨리면서 ㅋㅋㅋㅋㅋ 급박하게 샀다. 근데 왜 다른 거 읽고 있어? 여러분 착각하지 말자. 책 사면 산 거지 읽은 건 아니잖아? 다락방하고 나는 약간 책을 소유하면 읽은 것으로 착각하는 것 같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이 책은 러시아 문학 분석(?)을 통해 러시아적 인간이란 무엇인가 연구하는 책으로 보인다(읽지 않았기 때문에 확신은 못 함). 푸시킨, 레르몬토프, 고골, 벨린스키, 튜체프, 곤차로프, 투르게네프,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체호프를 다루고 있는데, 곤차로프부터 읽어야지. <나보코프의 러시아 문학 강의>하고 비교해서 읽어도 재밌을 것 같다. 러문빠(러시아 문학 빠)들은 그냥 지나치지 못할 책이 아닐까.




사라 아메드, <감정의 문화정치>
최근 출간된 책 중 가장 핫(?!)한 책이 아닐까. 감정 연구와 정동 이론의 필독서로 꼽혀온 책으로 사라 아메드는 “고통, 증오, 공포, 역겨움, 수치심 등의 감정을 분석하며 우리를 둘러싼 권력구조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탐구”한다. 아 근데 ㅋㅋㅋㅋㅋㅋㅋㅋ 월평균 책 38만 원어치 산 다락방이 어제 자기 주름 그래프 페이퍼에 올려놓고도 정신을 못 차리고 바로 나한테 이 책을 또 선물을 보낸 게 아닌가? (내가 그렇게 좋아? 내가 그렇게 보고 싶었어?! ㅋㅋㅋㅋㅋ) 근데 이 책은 이미 나에게 달려오고 있는 중이었고, 락방아 나 그거 이미 샀어! 제발 취소해!!! 해가지고 어떻게 어떻게 취소했다고 한다. 보니까 락방이가 초콜릿도 같이 보냈던데(내가 그렇게 좋아?! 며칠 못 봤다고 그렇게 그리웠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락방아, 넣어둬, 네 주머니에 넣어두렴. 나 초콜릿(단 거) 안 좋아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얘들아 너희들도 새겨두렴. 잠자냥은 초콜릿 안 좋아한다. 초콜릿 선물은 나나 집사2가 종종 받는데 둘 다 안 좋아해서 주변에 나눠주고도 남으면 울집 냉동실에서 꽁꽁 얼어 있다가 그나마 자전거 여행 떠날 때 가끔 챙겨간다. 근데 문제는 그렇게 갖고 가면 늘 숙소 냉장고에 넣어뒀다가 잊어버리고는 그냥 두고 온다는 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호텔 청소 노동자들이 맛나게 먹었기를 바랍니다.




클라우디아 골딘, <커리어 그리고 가정>
2023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욘 포세는 궁금하지 않지만, 2023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클라우디아 골딘의 이 책은 궁금했다. “성별 임금 격차의 핵심 원인”을 밝히고 있다고 해서 다 아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좀 의심이 가기도 하지만..... 그가 제시하는 해결책은 좀 궁금하다(뭐 그렇다고 이 사회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지만). 2023년, 여기 한국은 똑같은 직군에서 남자들이 100만 원 받을 때 여자들은 60만 원 받는다. 이런데도 역차별 운운하는 놈들아, 이 숫자에서 눈 돌리지 마. 그나저나 이 책은 희진 쌤이 강의 중 언급하시기도 했다.




앤서니 기든스, <현대사회학>
사회학 필독서 앤서니 기든스 <현대사회학>- 각 잡고 읽어보려고 샀는데, 진짜 각 잡고 읽어야 할 판. 얘들아 이거 봐, 책 내부를 보니까 대학교 다시 가야할 판 ㅋㅋㅋㅋㅋㅋㅋㅋ 완전 수업 교재 스타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내용은 재밌어 보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간만에 보는 교재 스타일....


















캐럴라인 냅, <명랑한 은둔자>, <드링킹>
냅의 책 두 권도 좀 뒤늦게 구매. 냅의 책은 <욕구들>만 읽었는데 그걸로 됐지 싶었었다. 그런데 요즘 우울한 일이 있기도 해서 우울에 더 빠져 보려고(원래 인간이 바닥을 치면 올라오지 않습니까?) 냅의 책을 급박하게 사서 <은둔자>부터 읽고 있다. 또 우리 은오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좋아하는 에세이스트라고 해서 잘 읽어보고 싶기도. 공쟝쟝 너 나 놀리지 마라, 넌 은오 이해하려고 푸바오 책도 사보잖아? ㅋㅋㅋㅋㅋㅋㅋ 푸바오보다는 냅이 낫지 않아? ㅋㅋㅋㅋㅋㅋㅋㅋ 충격 속보! 은오의 첫사랑 공쟝쟝, 떠난 버스 이해해 보고자 푸바오 만나. 푸코보다 푸바오가 어렵다 충격 고백




그리고 선물을 받았습니다. ㅋㅋㅋㅋㅋ 이름하여 알라딘 <책읽는 사람들의 생활용품연구소>에서 판매 중인 치즈 고양이 인형 키링. 이게 집 책상 위에 있는 걸 보고 집사2가 물었다. “이게 뭐야? 어디서 났어?” “어, 알라딘 이웃이 선물.” 집사2가 뭐라고 대답했을까요?

“널 잘 모르는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러분 제가 또 안 좋아하는 게 있는데 인형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집사2한테도 딱 한번 그것도 거의 연애 초창기에 딱 한번 받아봤습니다. 이 인간이 가족들하고 제주도 여행 다녀오다가 테디베어뮤지엄에서 곰 인형을 사와서 저에게 안겨준 것입니다. 제 표정이 떨떠름했는지 ㅋㅋㅋㅋㅋㅋㅋㅋ 그 후 다시는 인형 선물을 하지 않았다 합니다. 이 곰인형에 얽힌 슬픈(?) 사연이 있는데 그날 인형을 받은 잠자냥은 인형을 집에 가져와서 머리맡에 놓고 잠이 들었는데.........그때 그 집은 그러니까 잠자냥이 전애인과 아직 정리가 덜 되어서 같이 살던 집이었고.... 그 전애인은 이게 뭐냐고 자던 저를 깨워서 물었고 “걔한테 선물받은 거”라고 있는 그대로 팩트를 말한 잠자냥(INTJ). 거기에 또 상처받은 전애인....(그때는 미안했다).... 아 나 진짜 인간이 참 덜 되었었구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휴. 그만하자 이런 이야기도.

아무튼 인형은 감사했습니다. 우리 막내 닮았어요. >_<




꺄오. 우리 막내 쌍꺼풀도 있어! >_< 너무 귀여워........





얘들아 잠자냥에게 초콜릿, 인형 선물 금지!! 책은 은오창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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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3-11-10 19:29   좋아요 2 | URL
ㅠㅠㅠㅠㅠ 그러나 드링킹을 읽다보면 드링킹하고 싶어짐…

은오 2023-11-10 19:31   좋아요 3 | URL
그쳐 쟝님? ㅋㅋㅋㅋㅋㅋ 아 원래 중독자의 묘사가 제일 맛깔나는법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3-11-10 19:32   좋아요 1 | URL
첫 잔은 내 위 안에 고흐의 해바라기를 넣는 느낌! ㅋㅋㅋ

잠자냥 2023-11-10 19:49   좋아요 1 | URL
캬오… 이미 마신 거 같다 ㅋㅋㅋㅋ

은오 2023-11-10 13: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근데 진짜 여럿 울리고 다니셨군요.... 아니 지금도 울리시네요ㅠ
하아 내가 어쩌다 잠자냥님을 사랑하게돼서ㅠ....이런고통을ㅠ

잠자냥 2023-11-10 13:35   좋아요 1 | URL
폴리아모리 선배로서 말합니다. 고통을 내려 놓거라. 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3-11-10 22:21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런 댓글 푸바오 이미지로 보니까….. 진짜…… 성스러운 동물성애자 같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ㅠㅠ

은오 2023-11-10 22:26   좋아요 1 | URL
아ㅜ욱겨서눈물나요

잠자냥 2023-11-10 22:31   좋아요 0 | URL
너모 확 깹니다. 오늘부로 저는 폴리아모리 은퇴합니다. 안녕 은오!

은오 2023-11-10 22:33   좋아요 0 | URL
바꾸래서 바꿨더니,...... 떠나가는 잔인한 인간......

햇살과함께 2023-11-12 08:11   좋아요 2 | URL
두 분의 대화가 너무 사랑스럽습니다…

잠자냥 2023-11-12 09:27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ㅠㅠ 저 곰탱이
업고 다녀야 하나요?!

잠자냥 2023-11-12 11:30   좋아요 2 | URL
햇살 님. 제가 동물들한테 어필하는 스타일인데 ….(개 고양이들이 저를 글케 좋아하더라고요) 이젠 판다의 사랑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육고에 이어 판다까지 돌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업보려니 하고 살아야죠. 뭐…. ㅠㅠ

은오 2023-11-12 18:42   좋아요 2 | URL
업히겠다곤 안했는데..?! 벌써 업고다닐 생각까지 하시네요..😳

잠자냥 2023-11-12 19:07   좋아요 1 | URL
동물한테 약하긴 해 …..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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