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아내, 엄마 지금 트러블을 일으키다 - 신나리 페미니즘 에세이 스토리인 시리즈 9
신나리 지음 / 씽크스마트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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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된 이후, 그의 글에 많은 부분을 의탁해왔다. 급격히 쌓여가는 살림살이에 위기감이 들 때 ‘미니멀 라이프’ 글을, 먹은 밥그릇을 치우지 않는 남편과 싸운 후 ‘돈 벌어도, 주부가 있어도 자기 돌봄은 셀프’ 글을, 아이가 등원한 적막한 거실에 앉아 ‘어린이집 보내고 집안일하지 맙시다’ 글을 읽었다. 오래 묵힌 귀지를 살살 파냈을 때처럼 쾌감을 느끼고, ‘에이 그래도 너무 한 거 아냐?’ 외치는 내 안의 누군가를 만나고, "해야할 일이 끊이지 않아서 분석할 시간이 없는" "레지스탕스"(<분노와 애정>)의 삶을 언어화하고 싶다는 욕망을 느끼고, 내 시간을 확보하기 위한 구체적인 팁을 얻었다. 블로그 필명 매실, <엄마되기의 민낯>, <여자, 아내, 엄마 지금 트러블을 일으키다>의 작가 신나리의 글이다.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그의 글을 사랑하는 이유. 그의 글은 그가 통과하고 있는 생애주기, 그가 처한 환경, 그가 보내는 일상에 철저하게 기대어 있다. 멀리 떨어지거나 높은 곳에서 “생각, 관념, 작심, 반성만을 일삼” (김영민의 <공부론>)는 대신, 레이스 팬티 대신 선택한 커다란 면 팬티, 삐뚤빼뚤한 셀프 컷, 밥 안먹는 아이에게 ‘미친년’처럼 화내며 씽크대 하수구에 쳐박아버린 초코맛 씨리얼의 세계를 기록한다. 그 세계에는 기혼 유자녀 여성이 일상을 기록할 때 빠지는 블랙홀, ‘그래도 아이는 예쁘다’, ‘그래도 남편을 사랑한다’가 없다. ‘일상의 소중함’에 가슴이 몽글몽글해지거나 ‘내 위치에서 더 열심히 살아야지’ 다짐하게 하지 않는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어!’ 혹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이거였잖아!’, 아니면 ‘에이 그건 아니지!’ 외치며, 내 안에 이야기가 되지 못한 채 무수히 쌓여있는 것을 바라보게 한다.

그의 두 번째 에세이 <여자, 아내, 엄마 지금 트러블을 일으키다>는 내가 크고 작은 생애주기를 통과할 때마다 그의 블로그에 접속해 홀짝홀짝 들이켰던 글들, 그가 나보다 앞서 생애주기를 통과하며 ‘왜’ 속에 오래 머문 글들을 모은 에세이집이다.

그의 말대로, "엄마, 아내, 여자로 살며 느끼는 불편과 혼란을 글로 쓴다는 건 주변과의 불화를 작정해야 하는 일"(278쪽)이다. 모든 글은 쓸 수 있는 말과 쓸 수 없는 말 사이의 긴 줄다리기고, 타협과 협상의 결과물이다. 하지만 엄마, 아내, 여자로 살면서 그 타협과 협상의 강도를 스스로 조절, 조율하는 것은 쉽지 않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 무의식적으로 갈등을 봉합하며, 쉬운 결론으로 마무리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하여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이런 류의 글들은 삶의 복잡함과 자신의 두려움을 외면하고, '왜'라는 질문을 차단하며, 그렇지 않은 많은 사람들을 침묵하게 만든다. 내 삶을 포장하거나, 나를 좀더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욕구에 충실한 경우도 있다. "적절한 중심을 잡고, 적절한 방법을 제시하고, 상대의 처지까지 굳이 기술하며 헤아리려 애쓰는"(279쪽) 이런 글들은, 읽는 이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고, 글을 읽는 자기 자신을 좋은 사람으로 생각하게 만들기까지 한다.

모두 내 이야기다. 내 삶을 언어화하고 싶지만,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을 어디까지 이야기할 수 있을지 매번 망설인다. 치부를 드러내기보다, 일상에 '행복'이나 '감사' 필터를 씌우고 싶다. 누군가에게 훈수 듣지 않도록, 빈틈없이 괜찮은 사람, 안정되고 차분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 기독교 환경에서 자라며 익숙했던 변화와 성장의 서사에 따라, 더 발전적으로 성찰한 모습을 보이고 싶다. 정희진 선생은 이런 나의 태도(지나치게 안정되고 차분하거나 쿨한 태도)가 "자기 방어, 무식, 갑 의식을 포장한 교양이 얇은 중산층의 페르소나"​(정희진,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라고 일갈한다.

편협할지라도 내 관점과 입장을 더욱 밀어붙여야 했다. 되지도 않은 이해심을 어설프게 그려내기보다 차라리 삐뚤어져 보이는 게 나았다. 한계를 만나기 싫어 적당한 곳에서 멈추면 애매하게 남은 부분이 찝찝하게 따라다닌다. (...) 바른말 대잔치인 훈사 같은 글은 독자의 질문을 원천 봉쇄한다.

<여자, 아내, 엄마 지금 트러블을 일으키다> 279-280쪽

그의 글을 읽으며, 내 삶을 포장하고, 갈등을 봉합하며,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욕망을 쥔 손아귀를 편다. 사랑하면서 미워하는 이들과, 이들 앞에서 '미친년'이 되어버린 날들, '왜'라고 물을수록 나 자신의 모순과 분열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시간들을 쓰고 싶다. 그게 이야기가 된다는 것, 거기서부터 시작하면 된다는 것을 알았다.

다양한 사회적 역할과 관계로 연결된 그들을 모두 설득할 수도, 배제할 수도 없다. 앞으로도 내 글을 볼 누군가의 얼굴을 떠올리며 단어와 문장을 고를 것이다. 그러나 적절한 균형에 도달하기 위해서 애쓰며 도돌이표를 반복하기보다, 나의 우울과 불안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며, "읽는 이를 안심시키기보다 동요시키는"(280쪽) 글을 쓰고 싶다. <여자, 아내, 엄마 지금 트러블을 일으키다> 북토크에서 매실은 말했다.

“내가 원하는 나보다는, 지금의 나에 대해 쓰려고 해요. 글을 쓸 때는,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아야 해요. 어차피 사람들은 남한테 별로 관심이 없어요."

그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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