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리 기자의 영화야 미안해
김혜리 지음 / 강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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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가, 평론가들에 대한 편견이 남달랐다. 우선, 그들의 글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었다. 내가 잠시 읽은 평론은 대부분 어려운 말과 이론을 줄줄 써서 이해가 잘 안 됐고 평론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았던 탓이다. 그런 중에 작가나 감독은 평론가들에게 대부분 욕을 한다. 사람을 만나기도 전에 안 좋은 소리를 들으면 편견이 생기는 것과 같은 이치다. 

작년부터 갑자기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유명했지만 보지 않은 영화들이 너무 좋았을 때, 이걸 왜 지금봤나하면서 후회를 하곤 했다. 잘 만든 영화는 보통 한가지 얘기만 한다지만- 뭔가 좋기는 한데, 2시간 동안 어떤 얘기를 하고 싶은지도 몰랐던 영화도 있었고, 너무 하고 싶은 얘기가 많은 것같은 인상을 주는 영화도 있었다. 

영화팬 신출내기에다 2시간 동안 뭘 봤는지 설명할 수 없는 상황을 납득할 수 없는 나는 그냥 약간의 도움을 받고 싶었을 뿐이다. 가장 공신력있는 영화잡지인 것만 같은 <씨네 21>의 기자인 김혜리의 책을 집어든 건 그 이유이다. 

책을 읽으면서 정말 오랜만에 귀를 파는 시원함을 느꼈고, 아 그게 그 뜻이였어? 하는 생소함도 느꼈으며, 영화 리뷰를 쓰는 글에도 글쓰는 것만큼의 재능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비하는 아니지만 (그저 몰랐다고 해두자)공부 많이 하고 아는 것만 많으면 되는 줄 알았다. 

영화든 그림이든 소설이든 어떤 텍스트를 읽는다는 것은 타인의 시선으로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구나 리뷰를 읽는다는 것은 타인의 시선의 시선을 읽는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내가 한꺼번에 이해를 못하고 남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이 좀 자존심 상하는 일로 여겨졌는데, 생각해보니 나도 거의 4년째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으니...  역시 다른 사람들을 가장 혹평(?)하는 부분일수록 자신의 가장 큰 아킬레스건일 수도 있다.

특히 속 시원했던 글은 영화배우 '휴 그랜트'에 대한 것이었다. 맞아, 내가 말하고 싶었던 것이 이런거 였어라고 박수를 짝짝쳤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로맨틱 코메디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등등 나는 그가 나오는 영화를 무척 좋아하는데, 하루는 넋놓고 영화를 보는 내게 울 언니는 이렇게 물었다. " 좋냐?"  내가 끄덕이자 또 덧붙였다. "저렇게 느끼하게 생긴 남자가 진짜 좋냐?" 

느끼하게 생겼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 당황한 나는 그저 어버버거렸는데, 그때 "귀엽잖아."라고 말했어야 했다. 정말로 그는 귀여운 연인이니까. (그때는 잘생겨서 좋아한 줄 알았다. 세상에!) 차에서 직업여성과 불순한 짓을 하다 체포된 굴욕샷이 잊을만하면 한번씩 회자되기도 하지만, (일단 내 남자는 아니기도 하고) 그는 정말 철없는 귀염둥이기 때문에 쉽게 용서가 될 수 있었다는 말에는 크게 동감한다.  

저자는 저널리스트의 직업윤리에 대한 분명하고 바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비판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 영화 텍스트에 대한 예의에 대해 계속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고, 글을 매우 잘 쓴다는 것이다. 

 

덧) 포스터의 소설 [전망 좋은 방]에는 그가 50년 후에 다시 쓴 [방 없는 전망]이라는 글이 실려있다.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소설을 읽고 그 글을 읽으면 다소 우울해진다. 유럽이 두 차례의 큰 전쟁의 소용돌이를 끌내고 주인공인 루시와 조지가 만났던 그 '전망 좋은 방'은 (아마도) 자취를 감추고 만다. 그럼에도 그 때와 같은 '방 없는 전망'은 그대로 남아있다. 포스터가 정확히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시간은 모든 것을 변화시키고 아무리 힘든 일을 겪어도 일상을 돌아간다는 것이 아니었을까.  

큰 섹션 중에 '방 없는 전망' 이라는 부제가 붙여져 있어서 도무지 어떤 의미인가 생각해보다가 다시 그 글을 읽어보았다. 근데 잘 모르겠다. 누가 해석 좀 해주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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