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자전쟁 - 불륜, 성적 갈등, 침실의 각축전
로빈 베이커 지음, 이민아 옮김 / 이학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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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심리, 생물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즐겨보곤 했다. 제목만큼이나 흥미롭고 재미있었던 책. 사려고 벼르고 벼르다 반값행사할 때 주저없이 장바구니로 쏙 넣었다. 이제 그런 호시절이 다시 오려나...? 


공공장소에서 읽기는 몹시 민망하다. 시도해 본 적도 없지만 야심한 시간에 혼자 읽기를 권한다. 먼저, 책의 구성은 생식(!)이 되는 사례를 먼저 보여주고 그 다음에 바로 어떤 정자가 어떤 승리를 거뒀는지 설명한다. 물론 책을 유명하게 만든 건 저자의 독특하고 파격적인 설명 때문이지만... 그치만.. 그치만... 나는 앞에 사례 때문에 더 재미있게 읽었다.


핫핑크로 씌여진 제목 때문에 잘 안보이지만 책의 부제는 이렇다. '불륜, 성적 갈등, 침실의 각축전' 크아.


어릴 때 별별 상식 사전을 읽어대던 언니가 나한테 또 엄청 뻐기며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야 너, 사람을 생물적으로만 보면 어떤 필요가 있는 줄 알아?" 당근 대답을 못 했다. 도대체 생물이 뭘 뜻하는 말인지! (그냥 맹- 그 자체였음) 입도 뻥끗 못하는 나를 아래로 보며 언니는 이렇게 말했다. "애 낳는거야. 사람은 생물학적으로 보면 그거 밖에 가치가 없어. 동물하고 똑같은 거지."


애, 낳, 가치, 동물.... 나름 충격을 받았는지 그걸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데 사실 맞는 말이다. 그리고 약간 동물처럼 사는 것도  이제는 현명하다는 생각이 든다. ('동물' 이라는 정의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난 그저 감정에 솔직하다는 뜻으로 쓴다.)


아무튼 책은 부제를 배반하지 않고 온갖 난잡한 사연이 나온다. 보기 좋은 커플이 아름답게 결혼해서 오순도순 살며 애기를 낳는 이야기는 단순히 생물학적 여자의 선택에선 너무나 지루하고 유전자적으로 아쉬운 경우다. 연애할 때도 바람난 상대 때문에 피눈물을 흘리는 경우가 많은데 하물며 결혼 생활에서야. 


다행(?)인 것은 책 사례에서 외도한 여자의 대부분이 가정으로 돌아간다. 왜냐하면.. 아무래도 배우자가 양육을 할 때 더 좋은 상대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이 여성의 외도 혹은 스와핑, 매춘부, 젊고 멋진 대학생을 고용할 수 있는 부잣집 사모님(아니면 유리창 청소부..) 과 같은 경우가 예로 들어진다. 그 이유는 앞서 말했듯 정자를 전쟁시킬 여건을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사례에서는 부정의 관계로 인해 아이들이 더 많이 태어난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건 아마 자궁과 질 점액이 그런 관계에서 얻은 유전자가 더 좋다고 판단했던 거겠지.


정자도 정자끼리 전쟁을 하지만 사실 자궁이랑도 전쟁을 해야한다. 일반 가정에서도 아이를 첫째 아이가 걸을 수 있을 정도의 텀을 두고 낳거나 가장이 직업이 불안정할 때 임신이 잘 안 되는 것 처럼 출산 전략에 맞게 임신하는 경우를 볼 수가 있다. 이건 스트레스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책은 외도와 불륜만 있는 것이 아니다. 평범한 사람들도 겪는 자위행위나 몽정 같은 사례도 얼마든지 있다. 거의 400쪽에 걸친 방대한 양에도 책을 재밌게 읽을 수 있는 것은 흡사 '야설'과 같은 자세한 묘사다. 성적으로 흥분을 하면 어디어디서 땀이 분비되고 어디에서 어떤 반응이 오고... 하는 것을 참 자세히도 써놨다. 필력이 짱이다. 로빈 베이커 아저씨는 생물학자가 아니었음 로맨스 소설 작가로 이름을 날렸을 것 같다.


이것은 야설이 아니다. 그리고 이것은 픽션이 아니다. 약간 흥분되는 작은 로맨스 소설을 읽고 생물학적인 지식도 쌓을 수 있다. 사랑과 전쟁은 대척점에 서 있는 것 같지만 본질은 같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그러고 보니 [사랑과 전쟁]은 참 잘 지은 제목인 것 같다. 시즌 3... 나올꺼죠?




* 가끔 용기를 북돋아주기 위해 "그래도 넌 태어날 때는 1등이었잖아."는 틀린 명제다. 엉엉. 그 중에서 나를 뽑아준 엄마 자궁의 선택에 감사하자. 엄마에게 효도해야할 이유가 또 늘었네.


* 괜히 나도 하는 한줄평 : 인문서계의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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