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 프랑스 남자와 결혼하지 않고 살아가기
목수정 글, 희완 트호뫼흐 사진 / 레디앙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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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저학년 때, 소심한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예쁘장한 친구가 있었다. 호의가 고마워서 친하게 지냈었는데 알고보니 불만인자(?)여서 나를 놀라게 했다. 그 아이는 대한민국 3자녀 가정에서 가장 흔한 구조인 딸딸아들 자녀에서 둘째딸이었는데... 그 나이대의 아이답지 않게 한이라고 할까, 아무튼 그런게 남달랐다. 그것만 빼면(가장 집중해서 들어야할 말) 나에게 잘 해주고, 전학간 다음에도 장문의 편지를 보내는 등 좋은 친구였는데, 이상하게 그 친구가 옆에 있으면 즐겁지가 않았다. 어린나이 임에도 소위말하는 기가 다 빨리는 느낌이라는 걸 받았다.

나는 10살이었고 2녀중 둘째라 막내의 혜택은 적당히 받고 살았고 눈뜨고 일어나서 학교나 쫄레쫄레가는 무비판적인 아이였으므로 다른 형제에 비해 눈에 띄게 차별받는 것이 어떤건지 잘 몰랐기 때문이다.   

이해를 못할 바는 아니다. 주위에 성격 좋은 애들을 보면 끼인(?) 둘째인 경우가 은근히 많다. 가끔 얘기를 들어보면 언니와 동생에 비해 상대적으로 못 받은 관심에 대해 억울함을 호소하여 안타까운 생각이 드는데, 그럼에도 잘 극복하여 사회생활을 굉장히 잘하고 있지 않나.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이렇게 얘기하면 엄청나게 폭력적인 시선일수도 있지만...) 사람은 누구나 계속해서 남의 불평을 듣고 싶지 않기에... 특히 자기의 가정의 불행을 끊임없이 이야기 하면 그 사람을 슬금슬금 피하고 만다. 

책을 읽으면서 10살, 한 때는 친했지만 매정하게 슬금슬금 외면했던 그 아이가 생각이났다. 괜히 미안한 생각이 들었지만, 그럼에도 다시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보다 나이도 많고 배운 것도 많은 사람한테 원래 세상이 그런거잖아요, 거참.. 피곤하게 살지 맙시다. 라는 몰상식한 아저씨들같은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은 결코, 네버 아니다. 실은 이렇게 용기있고, 열정넘치고, 신념에 반하지 않게 사는 것이 몹시 부럽기도 하거니와 자기 일로만 끝내지 않고 공익적인 활동을 펼치는 그녀에게 지지를 보내주고 싶다.  

정말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삶은 사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니까. 문제가 있으면 연대하자고 나서고 대안을 제시하고... 어쩌면 그리 어렵지는 않지만 에너지와 용기, 의지가 없으면 무척 힘든 일이다.  

스크린쿼터제 반대 시위에 때거지로 몰려나왔던 배우들이 언제나처럼 큰 관심을 받았지만 지지는 못 받았던 이유는 아마 평소 언행과 일치하지 않은 권리주장이라 그저 '밥그릇 싸움'으로 보였던 탓일 것이다. 

오지랖은 세계 최고인 것 같은 나라에 살면서 결혼 안하고 사는 것고 결혼을 하고 사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여자는 더더욱. 게다가 같이 살면서 결혼은 안 하는 '발칙한' 일은 남 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입에 잊을 만하면 오르내릴 일임에는 틀림없다. 외국인이랑 살면서 딸까지 낳았대, 하며 말이다.  

그래서 당당한 그녀를 더 지지해주고 싶다. 잘못된 관습을 온몸으로 거부하는 그녀를. 게다가 딸도 무척 귀엽다. 

정말 철들지 않아 안면도 안튼 독자에게까지 걱정을 끼치는 그녀가 부럽다. 평생 젊게 살길 기원하며.. 리뷰를 마친다.    

  

 

덧) 제목이 정말 멋있다. 누구였더라 암튼 유명한 사람이 한 말 같은데..."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말을 더 멋있게 표현한 것 같다. 처음엔 제목의 승리라고 생각했으나 저자가 일단 좀 배운 사람이라 글을 잘 쓴다. 멋진 표현이 많았다. 줄쳐가며 읽으면 뼛속까지 도움이 될 수도. 

덧2) 나도 '월경(越境)'이 하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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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의 탄생 - 봉 마르셰 백화점, 욕망을 진열하다
가시마 시게루 지음, 장석봉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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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여자라면 백화점의 유혹을 쉽게 떨칠 수 없을 것이다. 약속장소가 백화점 근처일 때 상대방이 늦어도 크게 화가 나지 않는다. 백화점은 항상 볼거리를 제공하니까. 특히 1층에 들어서는 순간 공기에서 떠도는 화장품 향기는 백화점 마법의 효과적인 촉매제다. 구두매장과 가방매장의 가죽냄새는 또 어떻고.   

구두를 신고가는 날에는 내 발 밑에서 울리는 또각또각하는 분명한 소리까지 들리면 보폭은 짧아지면서 원시 시대에 채집의 임무를 맡았던 여자의 자손임을 자각하며 고개를 쉴 새 없이 두리번거린다. 요모조모 뜯어보면 안 예쁜 물건이 없다. 심지어 지하 1층의 식품 코너 마저도 고급스럽게 느껴지니 나는 확실한 백화점의 노예인 것이다. 그런데 백화점 입장에서 보면 나는 특별한 노예는 아닌 것이, 나처럼 별로 구매력이 크지 않은 노예는 이 도시에 널려 있다. 반면, 전체 매출을 좌지우지하는 20%의 고객님(!)들은 널려 있지는 않으므로... 그녀들은 매우 귀하다.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에서 귀엽고 당동한 미도리는 이런 말을 했는데    

"난 좋아해. 이런 거" 하고 미도리가 말했다. "뭔지 특별한 일을 하고 있는 기분이 들어. 아마도 어렸을 때의 기억 때문일 거야. 백화점 같은 덴 좀처럼 누가 데려다 주지 않았으니까." p 395

책의 내용과 큰 상관없는 이 대사가 유독 기억에 남았던 것은, 내가 진심으로 그녀를 동정했기 때문이리라. 어릴 때부터 백화점은 정말 특별한 공간이었다.  

우리 엄마는 백화점에 한때는 자주 다녔었고 비교적 언니보다 말 잘 듣고, 뭐 사달라고 조르는 아이가 아닌 탓에 동행자로 자주 채택되었었다. 그 당시에도 나에게는 전혀 필요치 않은 화장품 향기를 음미하기 시작했고 형형색색의 향수병을 보고 넋을 잃곤 했다. 한참 넋을 잃고 다니다 잠깐 땀에 찬 손을 닦고 다시 엄마의 팔짱을 꼈을 때, 다른 아주머니였던 먹쩍은 상황도 제법 있었다. 수줍은 아이였던 나는 공포에 질려서 사과도 하지 않고 저쪽에서 나를 보고 웃고 있던 엄마의 품에 뛰어들곤 했는데, 상대편 아주머니도 백화점의 마법때문인지 항상 엄마미소를 지으며 쿨하게 용서해주셨다.   

백화점과 관련된 내 어린시절 추억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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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말하려는 내용은 물론 백화점이 노예를 양산하는 기관이라고 고발하려는 것도 아니고, 아니면 백화점은 우리의 친구예요라고 찬양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저 우리에게 원래부터 존재하고 있었던 것 같은 백화점이 실은 근대의 발명품이라고 말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백화점은 철저히 계산적이고 이익을 추구하는 곳이니까 그런 사탕발림에는 꼬이지 말지어다, 아니면 알고나 꼬여라 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아닌 나라에서는 이렇게 상술에 쩌든 백화점의 형태는 거의 볼 수가 없다는 점에서 백화점은 자본주의의 상징적인 건물이라는 것이다. 좁은 입구에 친절한 점원들, 물건을 안 사도 공짜로 구경할 수 있는 너그러움(?), 세일과 사은품 등은 우리에게는 너무도 익숙하지만 하루 아침에 태어난 산물은 아니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영업의 기본이자 뛰어난 스킬은 고객에게 먼저 황홀해할만한 물건을 내놓는 것이라는데, 백화점은 바로 물건들을 선보이는 장인 것이다. 공장에서는 끊임없이 물건을 생상해내고 시장은 끊임없이 팔아야 한다. 그때 생기는 재고는? 세일이니 뭐니 하는 너무나 익숙한 상술로 팔아버리면 된다. 게다가 소비자들은 필요없는 물건을 사면서도 스스로 핑계를 생각해내어 만족하여 돌아가게 되므로 서로 손해보는 장사는 아니고.. 

책을 읽으면서 이런 저런 상술로 구매욕구를 끊임없이 부추기는 백화점에 분노를 해야 마땅하지만 나는 책을 읽으면서 그저 '백화점 가고 싶다...'라는 생각뿐이었다. 오늘도 이 한 명의 '소중한 고객님'은 백화점을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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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여자 만들기 - 미인 강박의 문화사, 한국에서 미인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이영아 지음 / 푸른역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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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부아르의 유명한 말.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지는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예쁜 여자도 만들어지는 것이다."   

굳이 따지고 들자는 건 아니지만 예쁜 여자는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그렇게 태어나기도 한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 당시 전성기였던 희선이 언니도 자기가 안 예쁘게 느껴질 때가 있다고 하여 충격이었는데...(립서비스일 수도 있겠다.) 주위에도 보면 예쁜 애들도 외모에 고민을 가지고 있다. 물론 나도! 운동도 안 하고 유난히 몸이 귀찮아지는 시기에는 왠지모를 죄책감과 자괴감에 휩싸이는 것은 비단 나뿐만은 아닐거다. 하루쯤 운동 안 한다고 크게 살이 찌는 것도 아닌데, 내 안에 감시자가 끊임없이 쪼아댄다. 이 게으름벵이야, 돼지야!! 

내 마음 속에도 뚱녀가 산다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거의 대부분의 여자들이 그렇다고 하니, 왠지 위안이 되기도 하고 다 불쌍하기도 하고.. (근데 옆에 사람한테 나 뚱뚱해보이지? 허벅지 굵지? 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해대는 건 삼가주길 바란다.) 

  

이건 정말 극단적인 경우이지만 우리도 스스로, 자기 몸에 대한 볼록거울을 갖고 있지 않을까.

 

외국에 안 나가봐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달리 외모에 대한 집착이 정말이지 너무 심하다. 게다가 안목들도 어찌들 그리 높은지! 그렇게 예쁜 연애인들 한테도 항상 조금씩은 악플이 달려있다. 머리가 크다, 허벅지가 굵다, 살 좀 빼라, 성형티 너무 난다 등등. 성형해서 예뻐져도 뭐라 그러니 정말 어쩌란 말인가요....?? 

이렇게 그들을 비판한다고 해서 나도 상대의 외모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은 아니다. 다만 그러지 않으려고 이성적으로 노력하는 사람일 뿐.  

 

물론 책에서는 이런 타고난 미인과 그렇지 않은 사람에 대해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이런 이상할 정도로 심한 집착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살펴보면, 1920년대, 근대 시대부터라고 보면 될 것이다. 물론 그 전에도 어떻게 생겨야 미인인지에 대한 의견은 있었다.  

그러나 근대에 와서는 얼굴뿐만 아니라 '몸'에 대한 어떤 '기준'같은 것이 생겼던 것이다. 근대화라는 건 쉽게 말해서 서양과 비슷해진다는 것이고, 우리가 지금도 서양화된, 그러니까 시장을 개방하고 살게 된 것도 그때부터의 일이다. 

시장이 생기면 소비재도 필요하고 소비자도 필요하다. 그런데 문제는 이 소비재에는 여성도 들어가 있었다는 것이다. 교육이니 뭐니 하는 새로운 개념이 생기고 사회생활이란 것을 하게 된 여성들은 옷도 양장으로 바뀌게 되는데, 양장의 문제(?)는 몸매를 드러낸다는 것이다. 이런 차림을 하고 교육을 받은 여자들은 '신여성' '모던걸' 등으로 불리게 되는데, 이름만 뻔지르르하게 붙여놓고 그들을 관음적으로 (특히, 남성의 시선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나중에 와서는 여성이 소비재이자 소비자로 변하게 되기도 하지만, 아무튼 시작은 그랬다는 것이다.  

갑자기 사회에 이런 여성들이 돌아다니자(?), 그런 변화에 흥분한 사람들은 이제 외형에 대해 활발하게 논의하게 시작한다. 그 때가 좀 더 솔직한 시대였는지, 아니면 더 촌스러운 시대였는지는 모르겠지만, 20,30년대의 기사는 요즘보면 몹시 자극적이고 노골적이다. 일단 이름을 다 밝히니깐. 

당시 지식인이라는 남성들은 신문에 당대의 유명한 '모던걸'들에 대한 품평을 시작하는데, 거기에는 배우, 정치인, 기자, 유학생인 여학생들이 들어가 있다. 게다가 지역별로 미인들의 차이점을 쓰는 한심한 짓들을 하기도 한다.(가장 이해가 안 되었던 부분이다.)지식인이라고는 하지만 지금보기에는 천박할 정도로 노골적인 표현을 쓰기도 하고, 더없이 주관적이어서 약간 화가 나기도 한다. 하물며 이름이 호명된 당사자들은 어땠을까. 

약간 짜증이 나기도 하지만 현재와 다른 표현법에 약간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양귀비 사촌도 아니었으나...라고 시작하여, 레코드계 미인,  민낮 환멸, 속살이 희고 깨끗..... 근데 민낯과 속살은 어찌본 걸까..?  

아무튼 20, 30년대는 예쁜 외모에 미쳐있어서 각선미를 어떻게 가꿔야 하는지, 어떤 다리가 가장 예쁜 다리인지 등을 열심히 탐구하느라 열을 올리는데, 40년대에 와서는 조금 달라진다. 40년대는 일본이 국민총동원 체제로 바꾸어서 생산, 즉 아이를 많이 낳는 여성들이 필요해졌던 것이다.

그리하여, 예뻐지라고 했다가 갑자기 건강해지라고 말한다. 몸빼를 입고 운동이나 일을 열심히 하면서 대신에 내면의 아름다움을 가꾸면 된다고!(나는 개인적으로 내면의 아름다움이 중요하여 외면을 아예 무시하자는 말을 아주 싫어한다. 이런 애들이 얼굴 예쁜 거 더 따져요..쯧) 

 

요즘의 외모 따지는 경향은 근대에서 시작된 것이고 여성의 몸을 국가 마음대로 할라구 했었어요, 라는 얘기가 끝이 아니다. 오늘 날에도 이런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소비사회인 오늘, 우리는 몸을 관리하느라 미용산업에 엄청난 돈을 붓고 있다. 간단하게는 헬스장으로 시작해서 마리***,쥬*스, 등의 관리실, 비만관리, 피부관리에 마지막으론 수술까지. 미인이 되려면 못할 짓이 없을 것 같다. 게다가 인구 줄었다고 계속 애 낳으라고 위에 어르신들은 난리다. 못 키워서 못 낳는다고 말하는 여성들은 거의 독한여자 취급을 하면서. 

이제는 여성들에게도 일할 기회가 주어졌는데, 씁쓸한 것은 아직도 외모의 중요성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는 것이다. 근대에도 미인 잘 팔리긴 했다. '미녀'라고만 하면 남편 죽여도 형벌이 낮아지고, 신문도 잘 팔렸으니까. 현대에도 미인에게는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기회가 더 많다. 알바를 해도 '용모단정'하면 덜 힘들게 일할 수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해서 미녀가 즐겁기만 한 건 아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이중성을 가지고 있어서 미인이라고 좋아하다가고 경멸하기도 한다. 그래서 미녀는 괴롭다.  

그래서 내가 예쁜 여자로 만들어지고 싶은 욕망을 접으려는 순간...  

차청오라는 사람이 1927년 12월호 <별건곤>에 이렇게 썼다. p.248 

고래로 미인이 박명이 많다로 하였지만 그것은 미인인 까닭에 박명한 것이 아니라 온갖 여성 중에는 박명한 여자가 많지만 세상 사람이 잘 알지를 못하고 오직 미인만은 여러 사람이 잘 알게 되는 까닭에 그러한 말이 생긴 것이다. 자기의 남편을 죽이고 감옥에서 신음하는 김정필같은 독부도 물론 박명한 여자의 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 여자도 미인인 까닭에 박명한 것이 아니요, 감옥 속에는 김정필 이상의 무서운 죄악을 짓고 철창에서 신음하는 박명의 여자가 많지만 미인이 아닌 까닭에 세상 사람이 잘 알지 못하는 것이다.

아놔.. 사람은 죽어서 가죽을 남겨야 한다는데 미인은 그냥 쉽고만... 괴로워서 미인은 미인이라 좋은가보다. 그냥 만드는 거라면 나도 한 번 미인 만들어줘어~~~~!! 

 

 

덧붙임) 한국인 최초로 쌍커풀 수술을 받은 사람인 '오엽주'라는 여성이 소개되었는데, 이력이 몹시 화려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잠깐 교편을 잡았다가 미용사로 또 잠깐 일했다가, 일본으로 건너가서 최초의 한류스타가 되었었다가, 또 잠깐 들어와서 카페 여급을 했다가(이때 까페는 유흥업소같은 느낌이었다고 한다), 다시 자신의 이름으로 미용실을 열어서 유명해졌다.  

이렇게 정신없는 사이에 딸도 낳고 하였는데..(참 복잡한 인생인 듯) 아무튼 미용실이 잘 되어서 유명인사도 드나드는 사교계 유명인사같은 사람이었는데, 검색해서 찾아볼 만큼 흥미진진하다. 참... 나도 미인을 엄청나게 소비하는 사람이고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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꼿 가치 피어 매혹케 하라 - 신문광고로 본 근대의 풍경
김태수 지음 / 황소자리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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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한테 참 좋은데... 남자한테 참 좋은데... 표현할 방뻡이 없네! 라는 광고로 제기에 성공한 ㅊㅎ식품은 광고의 중요성을 말해주는 무진장 많은 사례 중의 하나다. 요즘같은 세련된 광고 속에서 사장의 육성으로 직접 녹음한 라디오 광고는 들을 때마다 비식비식 웃음이 나오곤 했다.  

요즘 나한테 제일 재미있는 광고는 씨리얼 광고다. 엄마의 사랑을 강조하는 이 광고는, 딸을 찬 남자아이에게 경고를 하면서 끝난다. 상황은 많이 다르지만, 한때 내가 유치원에서 좋아했던 S군이 전원(?)가자 그날 밤 엄마한테 슬픔을 토로했는데, 다음날 날 데리러 와서는 나의 담당선생님께 바로 일러바친(?) 우리 엄마와 비교되어 더 재밌다. 평소 씨리얼을 즐겨먹는 사람은 아니지만, 혹시 씨리얼 살 일이 있으면 나는 신애라가 출연하는 이 회사의 씨리얼을 구매할 의사가 있다. 이처럼 광고의 영향이란 무시할 것이 못된다. 

각설하고, 소비사회인 오늘처럼 광고의 홍수, 아니 광고 폭력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광고의 영향이 무척이나 크다. 그래서 폭격을 맞고 있지만서도. 광고가 제대로 되지 않은 제품을 사기가 꺼려질 때도 많다. 광고는 이 제품을 사달라고 호소하기도 하고 정보를 제공하기도 하며, 그 자체로 어떤 이미지가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옛날, 우리가 가난하던 시절에도 광고는 있었을까. 당연히 Yes!다. 못살던 시절에도 제품은 꾸준히 나왔으며, 특히 격동이 많던 30년대는 새로운 상품이 많았고, 그래서 사람들에게 광고를 해야했다. 판매자는 항상 물건을 많이 팔고 싶으므로! 요즘은 신문뿐만 아니라 텔레비전, 인터넷, 길거리 전광판 등 신문보다 더 효과적인 광고 매체가 많지만 그 당시는 아마 신문이 가장 신뢰성있는 매체였을 듯 하다.  

오랫동안 일간지 기자생활을 하는 저자는 광고, 특히 30년대의 광고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기 시작했다. 저자의 이력이 이렇다는 것은 글빨에 대한 걱정은 안해도 된다는 것이다. 또 자료조사도 한땀한땀 섬세하게 잘 되어있다. 무언가를 연구할 성격은 못 되지만, 만약 기회가 있으면 나도 30년대를 선택할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광고를 봐도 무척 재밌으니까. 게다가 몇몇은 아주 노골적이고 지금 수준에서는 너무 심한 뻥이 많아서 깔깔 웃게된다.(그럼 지금도 과장광고로 속고 있는 것이 많겠지?) 

지금과 너무 달라서 재밌는 것도 있고, 지금과 별로 다를 게 없어서 웃게 되는 광고도 있다. 기생집(?), 성병약, 고무신, 전당포, 창씨개명 작명소, 포르노그라피 책 등은 요즘을 전혀 볼 수 없는 것들이라 더 흥미로웠다. 30년대는 신분제가 철폐된 때라 이제 돈만 있으면, 소위 개쌍놈(30년대식 적나라한 표현으로)도 데리고 노는 민중화의 세상이라고 혀를 끌끌차는 이도 있었다. 물론 그들은 신분이 높았던 이들이었겠지만. 그래서 기생들은 자신들을 광고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심지어 사진까지 실어놓았다! 광고의 효과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무척 흥미롭다.   

백화점 광고나 박가분 광고, 영어 교재 광고, 주류 광고 등은 지금도 여전히 명맥을 이어오고 있지만, 30년대 사람들과는 의미가 다를 것 같다. 조금 씁쓸한 점은, 우리도 알다시피 30년대는 모두에게 풍족한 시대는 아니어서 광고에 나오는 것들을 누릴 만한 사람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미시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라 더 와닿고 재밌는 부분이 많다. 그리고 재화에 대한 사람의 욕망이란 변하지 않는다는 걸 느끼게 된다. 

 

30년대 약간의 속물적인 모던걸은 비누와 치약을 사용하면서 자신이 문명인이란 걸 느낀다. 자신의 미모를 시험해 볼 요량으로 화신백화점의 직원직에 지원을 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다방인 끽연점에서 자유연애를 즐길지도 모르고. 그럼 2000년대 약간 속물적인 현대여성을 어떨까. 아마 유명 연예인이 쓴다는 고가의 수분크림을 바르면서 문명인이라고 느낀다. 외모가 좀 된다면 쇼핑몰 모델이나 스튜디어스같은 직업을 한번쯤 생각해 봄직하다. 뭐 연애는 까페가 어딜가나 널렸으니까 거기서 할 수도 있겠지만 거의 여자뿐이네.. (데이트 할만한 장소는 잘 모르겠다.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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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덩이의 재발견 - 문화와 예술로 읽는 엉덩이의 역사
장 뤽 엔니그 지음, 이세진 옮김 / 예담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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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엉덩이'라는 말이 그렇게도 웃겼다. 원래 내가 웃음이 헤픈 여자이긴 하지만.. 엉덩이의 변형적인 말은 궁뎅이, 방뎅이... 등등이 있는데 아무튼 그 모든 것이 내게는 다 웃겼다. 왜 엉덩이라는 부위는 웃음을 자아냈던 것일까. 그건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가끔 외국의 뮤지션이 관객모독(?)으로 하얀 엉덩이를 드러내곤 하는데, 사실 아직도 뭐가 웃긴지 웃기다. 푸하하 

엉덩이는 사실 불필요한 부분이다. 이 살이 없어진다고 뭐 어떻게 되기야 하겠나. 그치만 많은 사람들이 의외로 많이 엉덩이에 집착한다. 엉덩이가 예쁘면 또 의외로 삶이 풍요로워 질 수도 있다. 구체적인 예를 열거하진 못하지만 분명히 그런 점이 있다.  

어디선가 이 책의 리뷰에, '엉덩이 마니아'라면 꼭 읽어봐야 한다고 했다. 꼭 그래서 산 건 아니지마는.... 아무튼 흥미로운 얘기도 많다. 도판이 그리 훌륭하지 않다는 것이 단점이긴 하지만. 문제는 의외로 진지하다. 자칫 천박해질 수 있는 이야기가 다행인지 불행인지 별로 천박하지 않다. 그럼에도 책은 유쾌하다.  

책에 대해서 두 가지 모순된 감정이 생긴다. 아니, 엉덩이를 다루려면 좀 더 세게 나와야 하는 거 아니유? 라는 조금 섭섭한 마음이 들기도 하면서, 또 양장본인데 말 그대로 dirty한 내용이 나왔다면 출판사를 욕하면서도 끝까지 봤을거다. 막장드라마를 끊지 못하는 의지 약한 시청자처럼.  

저자는 여러 종류의 엉덩이에 대해 탐구했다. 그리고 엉덩이가 의미한 것, 엉덩이에서 파생되는 문화나 물건들... 예술 작품은 물론이고 수많은 작가와 저자들의 말은 인용하는 것은 기본이다. 이런 의외의 진지함에 가볍고 재밌는 것을 기대한 나는 숙연해졌다. 엉덩이도 인문적 탐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니! 정말 엉덩이의 재발견이다.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어떤 여성지에서 사실 남자들은 가슴보다 엉덩이가 예쁜 여자를 좋아한다는 골지의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원래 가슴 큰 걸 좋아하는 이유가 그것이 엉덩이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라나... 그래서 아유미도 '큐티허니'에서 "엉덩이가 작고 예쁜 나같은 여자..." 라고 노래를 시작했을까. (근데 이런 사실이 머가 크게 달라지는지 모르겠다.)  

예전에 가끔 봤던 무한도전에서 정준하가 엉덩이가 질펀하다고 계속 자막으로 나오는 바람에 왠지 정준하가 싫어졌다. 부정하고 싶지만 나도 엉덩이 마니안가 보다.   

이 책의 효용성은, 몸에서 엉덩이의 존재가 그렇듯이, 별로 없다. 그렇지만 엉덩이의 기원과 기상천외한 별명, 게다가 역사상의 방종한 엉덩이도 볼 수 있다.

그리하여, 나도 '엉덩이 마니아'인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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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10 15:4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