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대학원 신문에 기고했던 글을 옮겨온다. 랑시에르의 방한 강연들을 보면서 느꼈던 개인적인 소회에 관해 일전에 썼던 글(http://blog.aladin.co.kr/sinthome/2437583)을 조금 보충하고 확장하여 이번 강연의 의미와 의의에 대해 간략하게나마 내 나름대로 정리해본 글이다. 아래 사진은 랑시에르의 중앙대 강연 장면. 덧붙여 중앙대 대학원 신문 사이트에서는 '민주주의의 위기'와 관련된 랑시에르와의 짤막한 인터뷰도 읽을 수 있다(http://www.cauon.net/news/articleView.html?idxno=157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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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랑시에르 방한 강연이 남긴 교훈

 최정우 (작곡가/번역가)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가 방한해 차례로 서울대(<민주주의와 인권>, <테러가 뜻하는 것>), 홍익대(<감성적/미학적 전복>), 중앙대(<동시대 세계의 정치적 주체화 형태들>)에서 서로 다른 네 개의 주제로 강연했다. 이번 연속 강연은 청중의 많은 관심과 호응을 불러일으켰는데, 특히 '미학/감성학(esthétique)' 개념을 다뤘던 홍익대 강연에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 이는 이 개념의 새로움과 논쟁적인 성격에 한국 청중이 보이는 특별한 관심을 방증하는 듯했다.

랑시에르는 서울대 강연에서 '불화'에 기초한 민주주의 개념과 '치안/정치'의 구분에 의거해 불일치 과정으로서의 인권에 관해 논했고, 홍익대 강연에서는 '감각적인 것의 나눔'이라는 자신의 핵심 개념을 통해 미학적/감성적 체제 안에서 감각적인 것들의 분배가 어떻게 정치적 문제와 연관될 수 있는지 보여줬다. 중앙대 강연에서는 탈정체성 개념에 중점을 두고 경계에 있는 이들이 지닌 정치적 행위에 주목하면서 이들의 주체화/탈주체화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밝히기도 했다.


'석학'을 바라보는 익숙하지만 잘못된 시선들

하지만 언론에서 랑시에르를 다루는 방식을 보면 대부분 한국이나 세계의 정세와 관련해 랑시에르로부터 어떤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언급을 끌어내려고 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마도 이런 경향은 언론뿐만 아니라 한국의 대중이 랑시에르라는 철학자와 그의 이론에 기대하는 부분과 맞물려 있다고도 할 수 있을 텐데, 실제로 서울대 강연에서는 최근 한국의 여러 정치상황과 관련된 질문이 많이 나왔다.

개인적으로는 랑시에르의 방한강연이 갖는 의미가 단순히 정치와 철학에 대해 사유하는 한 명의 '석학'에게 한국사회가 나아갈 방향이나 정세 진단 등을 듣는 '제한된' 경험에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의 논의를 통해서 우리의 문제를 사유하고 우리의 문제에 대해 진단을 내리는 일은 결국 언제나 우리의 몫으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이 '우리'는 물론 단순히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으로 묶을 수 있는 민족주의적인 '우리'가 결코 아니다). 한국의 구체적인 상황에 대해 랑시에르에게 의견을 구할 수는 있겠지만, 우리 사회의 세부적인 상황에 대해 기본적으로 어두울 수밖에 없는 랑시에르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다만 그 자신의 이론에 입각한 다분히 일반론적인 언급들일 수밖에 없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가 초점을 둬야 할 것은 한국의 여러 정치적/경제적 상황에 대해 랑시에르의 입을 빌려 진단을 내리거나 분석을 행하는 것보다는 랑시에르가 생각하는 기본적인 논의를 최대한 잘 전달하거나 전달받는 일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랑시에르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 역시 한국 정세에 대해 자신이 직접적으로 말한 '일반론'이 통용되는 일보다는, 자신의 논의를 통해 한국사회의 구성원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정치성을 조직해내는 일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물며 랑시에르의 입을 빌려 '우리'의 사실을 왜곡하거나 곡해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한 언론의 기사 제목에서 이런 부정직하며 몰염치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었는데, 그 신문은 랑시에르와의 인터뷰 기사에 "욕망 제어 못하는 민주주의, 사회질서 해치는 정치과잉"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주지하다시피 랑시에르가 말하는 '과잉'은 정치적 주체화의 한 조건인데, 이런 기사 제목은 불화와 불일치 자체를 정치의 조건으로 보는 랑시에르의 기본적인 논의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제목은 기자의 '무지'가 낳은 결과일까, 아니면 어떤 '의지'의 표현일까?

해외 학자 초청강연의 새로운 가능성

또한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랑시에르의 강연 네 개가 모두 대학교를 중심으로 이뤄졌다는 점 역시 상징적이면서 동시에 부정적인 면을 갖고 있다. 대학생 또는 지식인이 지닌 어떤 지적/담론적 권위에 대해 랑시에르는 기본적으로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랑시에르의 논의를 가장 필요로 하는 곳, 다시 말해 그의 논의가 가장 먼저 전달되고 전유되어야 할 곳은, 지식인/대학생의 자리일 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말해 자신에게 주어질 몫이 없는 사람들이 자신의 몫을 주장하며 자신들을 정치적 주체로 조직하고 형성하는 자리가 아닐까. 말하자면 이는 정치에 대한 랑시에르의 사유를 가장 '급진적'으로 적용해 이 강연들이 지닌 어떤 독점적인 '장소'와 제한적인 '청중'에 대해 한 마디 덧붙이는 개인적인 제언일 뿐이지만, 나는 어쩌면 그 누구보다도 랑시에르의 정치적 논의들을 일종의 '무기'로서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이 강연들이 진정 '개방적'일 수 있을까 묻고 싶다.

이런 문제점들과는 별개로 이번 랑시에르의 방한강연은 기존의 해외 학자 초청강연과는 다른 생산적이고 긍정적인 면모를 띠고 있다. 각각 다르지만 서로 연결되는 주제들로 이뤄진 네 개의 강연은 랑시에르의 저서를 단순히 요약하거나 정리한 데 그치지 않고 그 자체로 뛰어난 논의의 밀도를 갖고 있었으며, 청중의 반응도 다채롭고 뜨거웠다. 거액의 '출연료'를 지불하고도 단순한 요식행위에만 그치는 방한강연들이 심심찮게 있어왔던 한국 상황에서 랑시에르의 강연은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특히 이번 방한은 학교나 학술단체 차원의 초청이 아니라 현재 랑시에르의 책을 열정적으로 번역하고 공급하고 있는 출판사와 번역자들의 헌신적인 합심으로 인해 가능했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었다. 이는 향후 해외 학자의 방한강연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관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기사 출처: http://www.cauon.net/news/articleView.html?idxno=15791)

ㅡ 襤魂, 合掌하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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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틀 전 주간지 <시사IN> 측에서 자리를 마련해주어 자크 랑시에르와 인터뷰를 하고 돌아왔다. 나에 앞서 <경향신문> 인터뷰는 양창렬 선생이, 그리고 <한겨레> 인터뷰는 진태원 선생이 각각 맡아 진행했다. 녹녹치 않은 두 개의 인터뷰를 마친 직후인데도 랑시에르는 내 질문들에 성의를 다해 자세하게ㅡ게다가 자상하게(!)ㅡ답변해주었다. 좋은 인상을 받을 수밖에... 게다가 개인적으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랑시에르의 책 세 권에 사인을 받는 여분의 즐거움도 있었다. 

2) 랑시에르의 사유를 그의 육성으로 들을 수 있는 네 번의 강연이 현재 서울의 몇몇 대학에서 펼쳐지고 있다. 네 번의 강연이 모두 다른 주제로 진행되는데("민주주의와 인권", "감성적/미학적 전복", "동시대 세계의 정치적 주체화 형태들", "테러가 뜻하는 것"), 이 각각의 주제들이 모두 '시의적절'할 뿐만 아니라 또한 우리가 랑시에르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이유를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주고 있는 것들이어서, 알찬 연속 강연이라 아니할 수 없다. 관심 있는 분들은 한국 랑시에르 블로그에서 자세한 일정을 참조할 수 있다(
http://ranciere.wordpress.com).

3) <시사IN> 기사는 아마도 다음 주(65호)에 나올 것 같은데, 그 전에 먼저 <경향신문>, <한겨레>, <연합뉴스>, <동아일보> 등에 실린 랑시에르와의 인터뷰 기사들을 옮겨놓는다:

<경향신문> "해방은 인민의 주체적 역량으로만 가능" (2008. 12. 2.)

<한겨레> "비정규직 노동운동이 새 정치의 희망" (2008. 12. 2.)

<연합뉴스> "끊임없는 대화와 소통, 연대가 필요하다" (2008. 12. 2.)

<동아일보> "욕망 제어 못하는 민주주의, 사회질서 해치는 정치과잉" (2008. 12 . 3.)

4) 기사 제목을 뽑은 것을 보면, 각각의 언론들이 어떤 논의에 중점을 두고 있는지, 또한 랑시에르를 '통해서' 독자들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무엇보다 여기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동아일보>의 기사 제목인데, 나는 도대체 랑시에르와의 인터뷰에서 "욕망 제어 못하는 민주주의, 사회질서 해치는 정치과잉"이라는 제목을 어떻게 뽑을 수 있는지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는 매우 '징후적'인데, 이러한 제목을 통해 우리는 기자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ㅡ또는 혹시 아무 생각 없는 것은 아닌지ㅡ추측해볼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랑시에르가 말하는 '과잉'은 정치적 주체화의 한 조건으로서, 이는 또한 불화와 불일치 자체를 정치의 조건으로 보는 그의 기본적인 논의와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제목은 <동아일보> 기자의 '무지'의 결과일 것인가, 아니면 '의지'의 표현일 것인가? 실소를 금치 못하게 되는 일들은 좀 자제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5) 또 하나 덧붙이고 싶은 말은, 랑시에르의 방한에 관련된 나의 개인적인 느낌에 가깝다. 일반적으로 언론에서 랑시에르를 다루는 방식을 보면 거의 모두가 한국정세나 세계정세와 관련하여 랑시에르로부터 어떤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언급들을 끌어내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마도 이러한 경향은 언론뿐만 아니라 한국의 '지식-대중'이 랑시에르라는 철학자와 그의 이론에 기대하는 부분과 맞물려 있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 텐데, 나 개인적으로는 그의 방한이 갖는 의미가 단순히 정치와 철학에 대해 사유하는 한 명의 '석학'으로부터 한국 사회가 나아갈 방향이나 정세 진단에 관한 언급들을 듣는 '제한된' 경험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논의를 통해서 우리의 문제를 사유하고 우리의 문제에 대해 진단을 내리는 일은 결국 언제나 우리의 몫으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으므로(이 '우리'는 물론 민족주의적인 '우리'가 결코 아니다). 한국의 구체적인 상황들에 대해 랑시에르에게 의견을 묻고 구할 수는 있겠지만, 그러한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상황들에 대해 기본적으로 어두울 수밖에 없는 랑시에르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다만 그 자신의 이론에 입각한 다분히 일반론적인 언급들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가 초점을 두어야 할 것은 한국의 여러 정치적/경제적 상황에 대해 랑시에르의 입을 차용해 진단을 내리거나 분석을 행하는 것이 되기보다는(이러한 측면의 가장 부정적이며 파렴치한 사례를 저 <동아일보> 기사의 제목이 보여주고 있는 것인데), 오히려 랑시에르가 생각하는 기본적인 논의들을 최대한 잘 전달하거나 전달받는 일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에겐 우리의 정치적 문제에 관해 어떤 해외 석학의 고견을 듣는다는 것이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와 동시대를 살며 우리와 비슷한 층위의 이러저러한 정치적 문제들에 대해 사유하고 있는 한 프랑스 학자의 논의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 하는 것, 내게는 이 점이 중요하며 또한 이 문제는 내 스스로 풀 수밖에 없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랑시에르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 역시 한국정세에 대해 자신이 직접적으로 말한 '일반론'이 통용되는 일보다는, 자신의 논의를 통해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정치성을 조직해내는 일이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6)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또한 랑시에르가 서울에서 갖는 네 개의 강연이 모두 대학교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는 점 역시 상징적이면서 동시에 부정적인 면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다. 대학생 또는 지식인이 지닌 어떤 지적/담론적 권위에 대해 랑시에르는 기본적으로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랑시에르의 논의를 가장 필요로 하는 곳, 다시 말해 그의 논의가 가장 먼저 전달되고 전유되어야 할 곳은, 지식인/대학생 등의 자리가 아니라ㅡ하기야 현대의 대학생들을 과연 '지식인'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은 들지만ㅡ일반적으로 이야기해서 자신에게 주어질 몫이 없는 사람들이 자신의 몫을 주장하며 그를 통해 자신들을 정치적 주체로 조직하고 형성하는 자리가 아닐까(물론 그러한 여러 자리들 중의 하나가 '대학'이라는 공간임 또한 분명한 사실이지만). 말하자면, 이는 정치에 대한 랑시에르의 사유를 가장 '급진적'으로 적용하여 그의 강연이 이루어지고 있는 어떤 독점적인 '장소'와 '청중'에 대해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를 제기한 것일 수 있을 텐데, 나는 어쩌면 그 누구보다도 랑시에르의 정치적 논의들을 일종의 '무기'로서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강연들이 진정 '개방적'일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을 묻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그 대답은 다소 회의적이다.

ㅡ 襤魂, 合掌하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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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이] 2008-12-03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읽어보니 인터뷰를 직접 하고 오셨군여ㅎㅎ우와. 가장 좋아하는 세 권의 책은 뭘까요??ㅋ 저는 홍익대학교 강연을 다녀왔는데 재밌었습니다ㅎ

람혼 2008-12-05 13:23   좋아요 0 | URL
네, 흥미롭고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홍대 강연 때는 정말 많은 분들이 오셨다면서요? 후끈한 열기가 느껴졌을 거라 추측해봅니다. 가장 좋아하는 책 세 권은 비밀에 부치겠습니다.^^;

로쟈 2008-12-03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음주 시사인 기사도 기대가 되는군요.^^

람혼 2008-12-05 13:24   좋아요 0 | URL
저도 기대 중입니다, 잘 나와야 할 텐데요.^^

드팀전 2008-12-04 0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요...

람혼 2008-12-05 13:2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다락방 2008-12-04 0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말 하면 웃으실지도 모르겠지만 어제 경향신문을 보면서 랑시에르 인터뷰를 하는 남자의 사진이 실렸길래, 혹시 이분이 람혼님이실까? 나이도 맞는데...했더랬어요. 랑시에르에 대해선 아는바가 전혀 없고, 람혼님에 대해서도 아는바가 전혀 없는데 그냥 그런 생각을 문득 했어요. 그런데 사진을 보니 아닌 것 같기도 했어요. 예전에 네이버 블로그에서 어느분이 람혼님을 뵙고 '머리를 예술가처럼 하신'이라고 묘사하셨던데, 사진속의 그 분은 예술가의 헤어스타일이 아니었거든요. 하하.


그런데 어쨌든 인터뷰를 하기는 하셨군요. 그것도 시사인과. 다음주에 꼭 사서 읽어봐야겠어요.

(후훗. 여작의 직감이란!)

람혼 2008-12-05 13:28   좋아요 0 | URL
경향신문 인터뷰어는 양창렬 선생님이세요. 며칠 뵈었는데, 참 멋지고 좋은 분 같습니다.^^
참고로 저 개인적으로는 제 헤어 스타일이 예술가 스타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어쨌든 여자의 직감은 정말 무서운 것 같습니다.ㅎㅎ

마늘빵 2008-12-04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오. 랑시에르의 인터뷰를 세 분이 하셨는데, 그 중 두 분이 여기서 알게 된 분이라니. ^^ 가보고 싶은데 강연 시간이 어찌 되나 모르겠네요. 지금 찾아보는 중인데.

람혼 2008-12-05 13:30   좋아요 0 | URL
알라딘 통해서 아프락사스님 만나뵙게 된 것도 제게는 참 소중한 인연인데요... 강연에 오셨다면, 그리고 제가 갔던 날과 일치했다면, 서로 스쳐지나갔을지도 모르겠군요.^^

마늘빵 2008-12-05 17:59   좋아요 0 | URL
이게 시간이 직장인은 불가능한 때더군요. -_- 그래서 못갔어요. -_ㅠ

람혼 2008-12-05 23:26   좋아요 0 | URL
그게 또 다른 문제인 것 같기도 합니다... 아프리카 같은 곳에서 인터넷 생중계를 했으면[이라는 아쉬움 또는 제안을 어제 누군가가 말씀해주시더군요] 회사에서도 보실 수 있었을 텐데요.

노이에자이트 2008-12-04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때 동아일보를 아꼈던 한 사람으로서 정말 안타까워요.김대중 정부 때 그 유명한 2000년 가을의 기사제목 "부산 대구엔 추석이 없다"로 조선 중앙과 한솥밥을 먹으려 한 뒤 이도 저도 아닌 이상한 신문이 되고 말았습니다.한때 동아일보 기자 하면 얼마나 자부심이 있었던가요...
랑시에르를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람혼 님의 생각에 저도 공감합니다.그가 한국상황을 잘아는 건 아니니까요.

람혼 2008-12-05 13:33   좋아요 0 | URL
기사 제목을 보고 일단 깜짝 놀랐고 그 다음으로 허탈했습니다. '무지'라고 한다면 기본적인 이해 노력 자체가 부재하는 것일 테고, '의지'라고 한다면 무감각하거나 파렴치하다고밖에는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드팀전 2008-12-04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씀하신 5)번의 상황은 언론의 보편적 관행이 된 듯합니다.내년 초 쯤 되면 또 각종 신문사들이 중심이되어서 '세계의 석학에게 듣는다' 라는 기사를 실을 듯 합니다. 아마 내년에는 경제학 석학들이 대거 신문을 장식하겠지요. 그것도 그냥 들으면 될터인데...거기에는 한국의 구체적 정치,사회적 문제를 대입하는 질문들이 들어가지요. 그걸 또 '동아일보'식으로 아전인수식 강조법으로 해석하는 순환론적 반복이 매년 되풀이됩니다.

노이에님이 동아일보의 전향 분기점을 2000년으로 보는 시점이 재미있군요.아마 안티조선운동에서 보수언론에 대한 대명사로'조중동'을 묶는 것이 본격화된 시점과 유사할 것 같습니다. 그런 단어가 나왔을 때...동아일보에서는 발끈했었지요. 왜 '조동중'이 아니라 '조중동'이냐는 것이지요. 실제 구독율면에서 90년대 후반부터 동아일보가 중앙일보의 공격적 마케팅에 밀려나가고 있는 시점이었기 때문에 더 발끈했겠지요. 노이에님은 아마도 조선일보와 대비해서 상대적 자율성이 있는 보수언론으로 동아일보는 구분하시는 것 같습니다. 특히
동아일보와 자부심을 연결하시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동아 특위나 80년대 해직 언론과 관련 시대경험을 공유하신 세대인가 봅니다.

그런데 아시겠지만 그런 동아특위와 현재의 동아일보는 별로 상관이 없지 않습니까? 그 동아일보라는 공간만 제공했고 그 결과물을 훈장처럼 자신들이 떠안은 것일뿐이잖아요.

저희 아버지도 동아일보를 지금도 여전히 보시지만...제가 대학 들어갔을때만 하더라도.(물론 2000년이전입니다만) 동아일보와 자부심을 연결하지는 않았거든요. 흐흐흐^^

노이에자이트 2008-12-05 00:23   좋아요 0 | URL
아...저도 아버지 세대들이 하던 전설같은 이야기를 말하는 거예요.아마 70년대 초 무렵 이야기일 겁니다.다른 신문사에 합격한 기자가 다시 시험봐서 동아에 들어갔다는 그런 류의 이야기지요.그리고 동아일보가 호남보수파-김성수 및 민주당 신파-장면을 상징하던 신문이었잖아요.그런데 조선이나 중앙과 합류하면서 사실상 호남과의 인연은 끊어졌다고 봐야죠.
그런데 드팀전 님같은 시각이 요즘 많이 퍼져 있습니다만 그 시각이 좀 염려스럽기도 합니다.예를 들어 송건호 씨같은 경우는 일찍 동아에서 해직되었지만 80년 대량해직 이후에도 김중배나 서중석 같은 이는 여전히 각각 동아일보와 신동아에 재직중이었거든요.좀 세밀하게 생각하면 이게 상당히 미묘한 문제입니다.
그리고 동아일보는 그 유명한 추석 기사로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고 특히 2001년 세무조사를 둘러싼 신문들간의 대립은 한국신문사의 획을 긋는 대사건으로 봐야죠.그때 정운영 씨가 중앙일보 논설위원 자리를 수락하면서 굉장히 말썽이 많았죠.이미 조중동이 형성된 시기였잖아요.그래서 MBC에서 100분 토론 사회자를 그만 두어달라고 하니까 정운영 씨가 반발하고...MBC는 언론개혁 문제도 토론회에서 다루어야 하는데 사회자가 중앙일보 논설위원이면 곤란하다고 주장하고...여하튼 저는 그 시기가 한국신문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봅니다.

람혼 2008-12-05 13:35   좋아요 0 | URL
말씀하신 언론의 그 보편적인 관행이라는 것 자체가 우리 학문의 어떤 고질적인 '식민화'와도 어느 정도 관련이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마음 한 구석이 씁쓸합니다. 반복적인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할 텐데요.

ludvik 2008-12-05 0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첫날 강연회를 갔다 왔는데, 질문에서 자꾸 한국 현실에 적용을 시키려고 하니까 랑시에르가 '나는 한국 전문가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다..'라고 전제한 후에 큰 이야기만 하겠다고 말하며 대답하는 것을 보고 있자니, 예전에 서울대 사회학과 모 교수(다 아는)가 하버마스에게 '한국의 상황' 관해서 물었다가 비슷하게 답변 들었던 게 생각이 나더라구요... 뭔가 우리 안에서 질문을 끌어내고 답을 찾기보다, 여전히 초청의 의도와 다르게 모든 질문과 답을 초청인사에게 넘겨버리는 태도가 있는 것 같아서 아쉬웠어요.

람혼 2008-12-05 13:50   좋아요 0 | URL
저도 1996년에 서울대에서 열렸던 하버마스 강연 자리에 있었는데요, 몇몇 웃지 못할 장면들이 추억처럼 떠오르는 것도 사실입니다.^^ 강연자에게 익숙치 않은 한국적 상황들에 대해 직접적으로 질문하는 문제점에 관해서는, 위에도 썼듯 저 또한 공감하는 바인데요. 하지만 이번 랑시에르의 방한 강연은 기본적으로 알차고 내실 있는 행사였던 것 같습니다. 고액의 '출연료'를 지불하고도 요식행위에 그치는 방한 강연들도 이제껏 많았으니까요. 그에 비해 '시의적절'하면서도 다채로운ㅡ그러면서도 논의의 지점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ㅡ네 개의 주제로 이루어진 랑시에르 강연을 보면서 저자의 정성과 성의를 느낄 수 있어서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특히나 이번 랑시에르 강연이 고무적인 점은, 학교나 학술단체 차원의 초청이 아니라 현재 랑시에르 책들을 열정적으로 번역하고 공급하고 있는 출판사와 번역자들의 헌신적인 합심이 이런 양질의 강연을 가능케 했다는 사실일 것 같습니다. 말하자면 '현장 활동가'들이 능동적인 주체가 된 것이죠. 그 점이 높게 평가되어야 할 것 같아요.

ludvik 2008-12-05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저도 이번 강연회 자체에 대해서는 정말로 고맙다고 느낄 정도입니다. 특히 출판사-번역자가 초청했다는 점에서도, 그 주제에 대해서도 말이죠.^-^

람혼 2008-12-05 23:34   좋아요 0 | URL
네, 정말 감사의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강연들이었죠. 이번 강연의 성사에 고생하신 분들이 많은 것으로 압니다, 감사한 분들...^^ 오늘 랑시에르 방한 행사 중 마지막 순서인 심포지엄에 다녀왔는데요. 토론 시간에는 참석자 모두가 랑시에르에게만 질문하는 진풍경이 펼쳐졌지요(덕분에 다른 발표자들께서는 다소 꿔다 놓은 보릿자루 같은 안쓰러운 느낌도 없지 않아 있었고요...^^;). 그런데 질문들은 별 영양가가 없다고 느껴지더군요. 어제까지의 나머지 세 강연들이 훨씬 더 풍성하고 활기찬 느낌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열매 2008-12-20 0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뒤늦게 무화과나무님의 블로그에서 인터뷰를 보고 들렀습니다.
홍대강연때 갔었는데, 함께 했었던 분들과 랑시에르가 지금 이곳에 온 의미는 무엇일까에 대해서 한동안 이야길 나누었더랬습니다.
한 선생님이 랑시에르가 이런 대학에서 강의를 할 것이 아니라 울산으로 가야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농담아닌 농담을 했더랬는데, 자신에게 주어진 몫마저 빼앗겨 정치적 주체화가 꼭 필요한 이들에 대한 람혼님의 지적은 랑시에르의 정치철학에 대해 적확하게 꿰뚫고 계신 것 같습니다.
아울러 바디우가 방한에 대한 요청을 받았을 때 한국의 제자에게 자신이 방한할 장소와 그 주체에 대해 꼼꼼히 물어보았다는 후일담을 들었습니다. 그럼 랑시에르는 그런 코멘트를 해줄만한 처지의 한국의 제자가 아직은 없었는가라는 농담을 주고 받기도 했었습니다^^ 물론 양창렬씨는 옆에서 과묵하면서도 적절히 잘 받쳐준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양창렬씨의 번역본 두권은 모시고 있기만 한데, 좋은 번역들이 더 나왔으면 좋겠군요.
근데 람혼님께선 랑시에르와 불어로 대담을 하셨나요? 불문과이시니 당연한 일이기도 하겠지만 웬지 불어를 눈앞에서 말씀하시는 분들을 보면 항상 웬지모를 신묘함을 느껴서요^^;

람혼 2008-12-21 06:01   좋아요 0 | URL
열매님, 너무 오랜만이에요! 반갑습니다. 인터뷰를 보셨군요, 잘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랑시에르 방한 강연의 의미를 좀 더 '객관적인' 거리에서ㅡ혹은 랑시에르 그 자신의 이론적 지향점에 입각해서ㅡ살펴봐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울산'과 '제자'에 관련된 뼈 있는 농담, 그 농담 아닌 농담은 정말 저로서도 무척 공감하는 바인데요...^^; 바디우의 방한 강연도 아마 잘 하면 성사될 수 있을 것 같은 분위기입니다. 그때를 또 기다려보게 되네요. 랑시에르와 대담할 때는 영어와 불어를 섞어서 함께 사용했습니다. 랑시에르는 그 자신의 간명한 문체와 부담 없는 분량의 책 두께에 비할 때 다소 수다스럽다 싶을 정도로 달변이더군요.^^
 

▷ 서울 팔판동, 삼호당에서. [사진: 襤魂]

1) 비가 내리지 않았다면 보지 못했을 것들이 있다. 그리고 우리는, 낯선 곳에서, 낯선 이에게, 처음으로 날씨 이야기를 꺼내며, 비로소 입을 뗀다. 10월 23일(木) 오후, 하늘은 가볍게 찌푸렸다. 지인들이 농담 섞어 말하듯, 실로 '람혼스러운' 날씨였다. 작곡을 맡았던 큰 공연 하나를 전날 기분 좋게 마무리하고 나서, 다소 가벼운 마음으로 정영두 선배의 공연을 찾았다(하지만 역시나 치러내야 할 일들은 태산처럼 쌓여 있었으니). 장소는 삼청 교회 골목 안쪽, 팔판동에 위치한 어느 아늑한 한옥, 이곳은 학고재 우찬규 대표의 집 삼호당이다. 공연 시간이 되자 가옥의 뒤편에서 무용수들이 조용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관객들 사이에 무던히 섞여 앉아 있던 연주자들은 소리 없는 기지개를 켰다. 'ㅁ'자 모양의 '아트리움(atrium)' 아래로 비를 머금은 마당 위, 매화나무 한 그루가 '오브제(objet)'처럼 서 있었다.

(기사 보기: http://news.joins.com/article/aid/2008/10/24/3229456.html)

▷ 이윤정과 이소영의 춤: 빗물받이에서 흘러내린 자국 위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사진: 襤魂]

2) 처음 등장한 이소영과 이윤정의 춤은 내게 3성부로 이루어진 대위법(counterpoint)을 연상시켰다. 실제로 들려오는 소리는 리코더의 선율 하나뿐이었지만, 두 무용수는 때로는 유니슨(unison)으로, 때로는 교차하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선율로, 그렇게 리코더와 함께 들리지 않는 소리들를 '연주'하고 있었다. 이 두 분의 무용가/안무가와ㅡ그리 '길지는' 않은 시간 동안에ㅡ실로 '강한' 밀도로 함께 작업하고 만나오고 있는 나로서는, 그 둘이 함께 추는 춤을 실로 '오랜만에' 보는 느낌이 없지 않아 춤을 보는 내내 흐뭇하고 짜릿한 사감(私感)을 섞을 수밖에 없었다. 개인적으로 두 분을 뵐 때마다 서로 '전혀' 다르지만 또한 동시에 서로 너무나 닮아 있는 '쌍생아'를 보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히기도 하는데, 사실 이제는 두 분 모두 내게는 '친누이'들처럼 느껴지기까지 할 정도이다. 위의 사진은 어쩌면 바로 이러한 나의 개인적인 느낌이 순간적으로 발현된 소산일 터.

▷ 3성부의 대위법: 리코더와 두 개의 몸. [사진: 襤魂]

3) 대칭성을 지속시키면서 동시에 그 대칭성에 흠집을 내기. 이 3성부의 대위법은, 때로는 리코더가 '반주'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몸들의 선율이 겹쳐졌다가 헤어지기도 하는 방식으로, 말하자면 실로 '음악적'으로 전개되었다. 그 '음악'의 모습은 제의성을 전혀 느낄 수 없는 어떤 '제의성'의 형태로 내게 다가왔던 것. 리코더의 소리는 그 스스로 입을 수 없을 어떤 '몸'을 입고자 공간을 울리며 퍼져나갔고, 두 개의 몸은 보이지 않는 '악보'를 따라가며 음표들을 눌러 밟거나 타고 넘어갔다. 가운데 서 있던 한 그루의 나무가 이 대위법의 네 번째 성부, 곧 하나의 통주저음을 연주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오히려 공연이 끝나고 난 뒤 한참 후의 일이다. 어쩌면 그러한 '통주저음'이란ㅡ가장 '적극적'으로는ㅡ이렇듯 일종의 '시간차'를 두고 지각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 정영두의 춤: 돌, 흙, 나무, 바닥과의 조우. [사진: 襤魂]

4) 일상의 공간 안에 비일상을 삽입시키는 일은 언제나 짜릿하지만 동시에 지난한 일이다. 그러나 가장 어려운 것은, 그래서 또한 가장 주목받아야 하고 추구되어야 할 일은, 일상 안에서 일상을 비일상처럼, 그리고 비일상 안에서 비일상을 일상처럼 살아내는 일이다. 이 선문답(禪問答)과도 같은, 일종의 '줄타기'를 위한 지침 안에, 예술에 대한 '사용설명서(manual)'가 들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무용 공연이라는 개념적 틀을 잠시 잊고 이 한 장의 사진을 들여다본다. 그는 넘어지려다 만 것일까, 아니면 뿌리로부터 우뚝 솟아 일어나려는 것일까. 비에 젖은 바닥에 닿은 손, 물기에 젖은 옷, 습기 찬 몸, 그 안에서 나는 어떤 안온한 '공기'를 느낀다기보다는 이해하게 된다. 게다가 그것도 가장 안온하지 않은 방식으로. 이렇게 떨리고 경련하는 '이해(理解)'는, 말하자면 나의 고질적인 병증, 곧 내 자신의 이해(利害)가 된다.

▷ 김남건의 춤: 땅의 소리를 들어보기, 혹은 마당이 머금은 빗물에 젖어보기. [사진: 襤魂]

5) 나는 작년에 남건씨가 감독했던 한 단편영화에 단역배우(?)로 출연했던 적이 있다(이소영씨가 주연이었다). 관심 있는 분들에게는 일람(一覽)을 권한다(한 영화제에서 대상까지 받은 작품이니 찾아보기가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 같다). 언제나 배우들 또는 무용수들 곁에서ㅡ또는 그 뒤에서ㅡ그들의 호흡을 따라가며ㅡ때로는 앞서가며ㅡ작곡과 연주를 해온 나로서는 어설프나마 연기를 하는 일이 실로 신선하고 흥미로운 경험이었는데, 한 가지 개인적으로 아쉬운 것은 소영 누나의 춤에 맞춰 즉흥으로 연주했던 나의 피아노 연주가 영화의 최종편집본에는 수록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연주를 하다보면 가끔씩 흔치 않게 경험하게 되는 전율의 순간이 있다. 그 연주도 그러한 전율의 드문 순간들 중 하나였는데, 다시 '재구성'될 수는 있어도 다만 그 '순간' 안에서만 존재하고 영속하는 즉흥 연주의 매력이 바로 여기에 있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 즉흥이란, 이어지고 끊어지는 순간들과의 계속되는 싸움과 화해인지라, 하면 할수록 더욱 어려운 마음으로 대하게 되는 작업이다. 그래서 즉흥이란 '즉흥적'으로 만난 사람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자유로운' 연주가 아니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서로의 작업을 오래 봐오고 또 서로의 존재와 사고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지' 않고서는, 여간해서 좋은ㅡ따라서 '낯선'ㅡ즉흥연주가 나오기 힘들기 때문이다. 서로 자신의 존재만을 주장하는 즉흥은 여유로운 틈 하나 찾아보기 힘든 '시끄럽기만' 한 것이 되기 쉬우며, 이상적으로 말해서 '좋은' 즉흥이란 직접적으로 참여하는 자(공연자)와 간접적으로 참여하는 자(관객)ㅡ이 '직접'과 '간접'의 규정은 서로 뒤바뀔 수도 있는 것인데ㅡ사이의 '대화' 또한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즉흥 안에서 '악보'는 기보되어 있지 않은 무형의 것이지만, 사실 그 악보는 어떤 '관계' 안에 이미-언제나 존재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즉흥은 절제 없고 제한 없는 무한대의 자유가 아니라 어떤 속깊은 '약속'과 느슨한 '통제'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행하는] 조심스러운 '무절제'로 묶여 있는 하나의 연속체이다. 즉흥은 솔로이스트들의 집합체가 아니라 그 사이의 '관계'들이 만나서 빚어내는 하나의 '솔로'이다(바로 이러한 감각이 내재되고 공유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즉흥은 '산으로 가버리기' 쉽다). '재현'과 '환원불가능성'의 주제는 내 안에서 이렇듯 '비가역적(non-retrogradable)'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

▷ 나무 되기, 혹은 '굴광성'과 '굴지성' 사이. [사진: 襤魂]

6) 몸은 상향의 굴광성(屈光性)과 하향의 굴지성(屈地性) 사이의 경계 위에서, 때로는 꼿꼿이 서서 걸어다니거나 하늘을 향하며, 때로는 흐느적거리며 방황하다 주저앉기도 한다. 결국 이 춤들의 '음악적' 형식은 일종의 푸가(fuga)적인 기법에 가닿는다. 서로의 뒤를 따르는, 그리하여 서로를 '주고 받는' 이 여덟 개의 성부들(네 명의 무용가와 네 명의 연주가)은, 말하자면 '푸가의 기법'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신문기사가 '세속적으로' 말하듯, '한옥과 현대무용의 만남'이라고 하는 지극히 '언론적인' 관심에서 나온 주목의 지점은 내게는 전혀 무의미하다. 반면, 이와 유사한 일종의 '패러디' 형식으로, 그리고 또한 지극히 개인적인 의문문의 형식으로, 나에게 남는 하나의 질문은 이런 것이다: '한옥'이라는 공간 안에서 '연주'되는 '푸가'란 어떤 의미를 갖는가? 푸가의 기법은 건축의 기술을 보여준다. 한옥이라는 '전통'의 공간과 현대무용이라는 '첨단'의 예술이 서로 만났다는 사실 자체로서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만남'에 대한 이러한 표피적이고 천박한 인식이 '개화된 남성과 구시대 여성의 결혼' 같은 것을 문제 삼는 지극히 '근대적'인 콤플렉스와 다를 게 무엇인가, 게다가 서구적/현대적인 것은 남성적인 것으로, 한국적/전통적인 것은 여성적인 것으로, 그렇게 쉽게만 재단되고 상징되고 있음에야). 문제는 이 무용이, 이 춤들이, 이 몸짓들이, 건축의 기술을 닮아 있다는 것, 곧 푸가의 기법을 체현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의미에서만, 이 춤들은 한옥이라는 '건축[물]의 공간'에 가닿고 또 가닿을 수 있게 된다. 만남의 지점이란 이런 것이다. 건축되고 구성되어 있는 전통의 공간 안에서 그 '전통'의 호흡을 '현대적으로' 함께 나누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라(전통과 현대의 '공존'을 논하는 이 지긋지긋한 수사법에 나는 이미 넌더리가 난 지 오래이다), 한옥이라는 공간 안에서 춤(현대무용)이 그러한 건축의 기술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푸가의 기법'으로서 제시되고 공연되고 있다는 것, 이것이 더욱 중요하며 핵심적인 문제이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결국 문제는, 어떤 춤이 대위법을 닮아 있다고 하는, 곧 소리와 몸짓 사이에 어떤 '공감각적'인 교량을 놓을 수 있다고 하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러한 대위법이 어디서 어떻게 '연주'되고 있는가 하는 것, 곧 음악과 춤 사이의 '비유'를 통해 이루어지는 '건축술'에 대한 어떤 성찰의 자리에 다름 아니다.

▷ '무대' 밖에서, '무대'였던 쪽을 바라보며, 웃으며: 이소영과 이윤정. [사진: 襤魂]

7) 공연 자료로 관객들에게 배포된 정영두 선배의 텍스트는 내게 일종의 '선언문'을 연상시켰다. 그만큼 강건하고 순수하기까지 한 내용과 문체가 고스란히 느껴졌던 것이다(이는 근래에 읽은 텍스트들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것 중의 하나였는데, 비언어적 예술가의 텍스트가 그 자체로 드물기도 하지만ㅡ또한 동시에 '드물어야' 하지만ㅡ, 그 예술가의 공연과 작업을 통해 얻을 수 없는 또 다른 '사유의 지점'을 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특히나 내게는 소중한 것이다). 말하자면 그것은 하나의 소박하고 [그로토프스키(Grotowski)적인 의미에서] 가난한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자'의 텍스트처럼 내게 다가왔다. 그래서/그러나 문제는 언제나 '자연'이었다('Naturgeschichte'에 대한 마르크스의 몇몇 언급들을 떠올려봐도 좋으리라). 한옥과 자연 사이의 어떤 '내밀한' 연결성, 이 '자연스러운' 관계의 고리는 언제부터인가 '계급성'이 배제된 채로 단순히 '문화적'으로만 소비되고 사유되어 왔다는 느낌이 있다(예를 들어 '삼청동'이라는 하나의 문화적 약호(code)가 어떤 방식으로 사유되고 소비되고 확장되어 왔는가를 떠올려봐도 좋을 것이다). 곧 자연이란ㅡ그리고 그러한 자연에 너무도 쉽게 연결되곤 하는 어떤 '전통적인' 건축 양식이란ㅡ그 자체로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근래에 보기 드물게 자연과 예술의 관계에 대해 실로 명쾌하고도 단언적으로 서술하고 있는 이 텍스트가 매우 아름답고 단호하게 느껴지면서도 동시에 개인적으로 아쉬움을 남기는 이유이다. 이 공연을 주최한 전통문화 지킴이 재단법인 '아름지기'는 물론이고, '현대'의 예술가들이 모두 공히 고민해야 하는 지점은 바로 이것이다: 누가 이러한 한옥에/을 살 수 있는가('자연'이 지니고 있는 어떤 '계급성'의 문제), 이러한 한옥에서 공연을 한다는 것은ㅡ'전통과 현대의 만남' 따위의 무의미한 논의는 제쳐두고ㅡ어떤 의미를 갖는가(예술적 '만남'이 갖는 의미 층위의 문제), 이러한 공연을 볼 수 있고 또 향유할 수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관객의 예술적 취미/기호와 경제적/사회적 심급에 관한 일종의 예술사회학적인 문제), 그리고 궁극적으로, 예술가는 하나의 장소 안에서 그 장소와 어떻게 만나야 하는가(공연 장소 자체가 공연 행위와 맺고 있는 관계적 의미와 '공연성'의 문제).

▷ 삼호당 입구로 이어진 골목에서: 배우 김호정. [사진: 襤魂]

8) 우연한 만남은 언제나 반갑고 즐겁다. 삼호당 입구에서 배우 김호정씨와 오랜만에 마주쳤다. 나는 김호정 선배와 정영두 선배를 하나의 공연을 통해 함께 만났는데, 예전에 아르코 소극장에서 있었던 사라 케인(Sarah Kane)의 연극 <새벽 4시 48분(4. 48 Psychosis)> 공연에서 작곡과 연주를 맡았던 것이 소중한 인연의 시작이었다(이러한 인연과 관련된 작업과 그 소회에 관해서는 일전에도 글을 한 번 쓴 적이 있다: http://blog.naver.com/sinthome/40044551630). 떠올려보면 그 이후 개인적으로 많은 것들이 '달라졌던' 것으로 기억한다(어떠한 '경험'이 또 그렇지 않겠느냐만은, 이렇듯 '변화'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기억에는 일종의 감상적 소회가 따르지 않을 수 없다). 소중한 인연들이 낳은 또 다른 소중한 인연들이 있었고, 만남과 헤어짐, 마주침과 부딪힘들도 있었다. 하나의 공연은 다른 공연을 '가리키고' 또 그렇게 다른 곳으로 이어지고 있었고, 하나의 공연이 끝나고 시간이 지난 뒤 남는 것은 그 공연 자체에 대한 느낌이라기보다는 그 공연이 싹 틔워 마련해준 하나의 '관계성'이었다. 나는 이러한 지극히 개인적인 기준에서의 '관계성'이 내 작업의 '특수한 보편성'을 구성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게는 그러한 '관계성'이야말로 계속해서 작업을 지속하게 만드는 중요한 추동력 중의 하나이다.

▷ 뼈를 드러낸 화석, 기와들이 만들어놓은 단층들. [사진: 襤魂]

9) 삼호당을 나오면서 바로 옆에 있는 기와 가게 앞에서 사진 한 장을 더 찍었다. 기와들이 세로와 가로로 켜켜이 어지럽게 쌓여 있었다. 얼마 전 『한국연극』지 기자와 내 음악에 관한 인터뷰를 하던 도중, 불현듯 마음 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느낌 한 자락이 있었다. 그 느낌을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고 소중히 마음 안에 눌러 담았다. 그 마음을 담고, 며칠 전 레나타 수이사이드(Renata Suicide) 멤버들과 회동을 가졌다. 나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지만, 내가 진정 진심으로 원하는 대로 되었다. 그 사실에 감사한다. 나는 사실 여전히, '우리 모두'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순간 순간 내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솔직히 고백해야겠다. 모든 문제는 사실 나에게 있는 것이었지만, 그렇다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 이런 식으로 이루어지는 어떤 책임과 채무감의 '일반화'란 되도록이면 빨리 '지양'되어야 할 '몹쓸' 성질의 것이므로, 나는 "모든 문제는 사실 나에게..." 따위의 자학적/가학적 어법에게는 작별을 고한다. 안녕이다. 하여 생각하니, 어쩌면 저 기와들이 언젠가 지붕 위로 높이 올라가 스스로의 향취를 뽐낼 때도 있을 것이고, 또한 그렇게 지붕 위로 올라가지 못한다 해도, 그저 저렇게 촘촘히 쌓여 있고 또 쌓여 가기만 한다고 해도, 그 자체로 지층을 형성하고 화석을 남길 때도 있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고 비유하며 그 안으로 스스로를 이입시키는 '대위법'이란, '푸가의 기법'이란, 또한 '음악적 건축술'이란, 이렇듯 언제나 어떤 '관계성' 위에 기생(寄生)하여 섭생(攝生)하고 있었다. 3성부로 이루어지는 '대위법'이란, 다성(多聲/多性)의 몸짓들이 만나 이루어내는 '푸가의 기법'이란, 어떤 것이며 또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실로 '필생의 숙제'가 아닐 수 없다. 비가 내리지 않았다면 결코 보지 못했을 것들이 있다. 그래서 나는 그 비가 반갑고 또 고맙다.

ㅡ 襤魂, 合掌하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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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절판과 8절판을 만드는 방법. '고독'이 몸부림 칠 때, 한 번쯤 직접 시도해볼 만하다.

1) 요즘은 책을 낼 때 4절판(quarto)이 됐건 8절판(octavo)이 됐건 접혀 있는 책장을 절단하지 않은 채 그대로 출판하는 경우는 참 드문 일이지만, 유럽 책들을 주문하면 가끔씩 여전히 그런 책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할 때가 있어 실로 반가운(?) 마음이 든다. 접혀진 부분을 한 장 한 장 칼로 잘라서 아직 채 드러나지 않은 미지의 지면들을 넘겨보는 재미는, 어찌 보면 쓸데없는 고색창연한 취미인 것 같기도 하지만, 나에게는 매번 책의 한 '역사(歷史/役事)'를 다시금 환기시켜주는, 소소하지만 동시에 소중한 경험이기도 하다. 소피아 서점의 백환규 선생이 일전에 한 번은 내게 이런 '추억' 한 자락을 말씀해주신 적이 있었다: "예전에는 가난한 학생들을 위해서 책장이 절단되지 않은 4절판들이 싼 가격에 많이 나왔었는데, 요즘은 그런 책 찾기가 참 힘들죠..." 웬만한 책 가격이 만원을 지나 2만원을 훌쩍 넘어버리는 요즘이고 보면, 나는 고학생들을 위해 그런 책들이 나왔던 시대를 떠올리고 '상상'하면서, 말하자면 '추억 없는 추억'에 빠져보기도 하는 것이다.

William Blake traduit et présenté par Georges Bataille, Montpellier: Fata Morgana, 2008.

2) 가장 최근에 책장을 '자르며' 넘겨보았던 책은 조르주 바타이유(Georges Bataille)가 불어로 번역한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의 시선집(詩選集)이었다. 올해 초 출간된 이 책의 내용물은 사실 1979년에 출판된 바타이유 전집 9권 안에 이미 모두 수록되어 있는 것들이긴 하다(바타이유는 흠모에 가까운 감정으로 블레이크에 많은 관심을 갖고 그의 시들을 다수 번역하였다). 하지만 이 책이 특별히 '아름다운' 것은 블레이크와 관련된 앙드레 마송(André Masson)의 그림들을 다수 수록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파타 모르가나(Fata Morgana) 출판사만의 고급스러운 제책(製冊) 방식을 맛볼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파타 모르가나는 몽펠리에(Montpellier)에 위치하고 있는 출판사로서 바타이유뿐만 아니라 모리스 블랑쇼(Maurice Blanchot)의 책들도 다수 간행한 바 있어 내게는 다소 익숙한 이름의 회사이다. 책장을 칼로 자를 때 들리는, 경쾌한 마찰음 너머로, 앙드레 마송의 데생들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을 때, 내가 느꼈던 희열에 가까운 감정은, 내 지극히 '도착적'이고 '편집증적'인 쾌락들의 한 사례일 뿐이다.

       

William Blake, The Complete Poems, Penguin Books, 1977.
William Blake, Songs of Innocence and Songs of Experience, New York: Dover, 1992.

3) 영미권의 염가판(paperback) 책을 볼 때마다 그 금방이라도 뜯어져 나갈 것 같은 갱지 재질의 책장들에 가끔씩 실망하곤 하지만, 이런 '고전'들을 이렇게 싼 가격에 만날 수 있다는 건 분명 '행복한' 일임에 틀림없다(일례로 위 오른쪽 책 『순수의 노래/경험의 노래』는 구입 당시 가격이 1달러에 불과했다). 펭귄판 블레이크 시전집에 수록된 시들은 주석을 제외해도 거의 900쪽에 육박하는 엄청난 분량을 자랑한다. 이 중에서도 바타이유가 특별히 금과옥조(金科玉條)처럼 여기는 블레이크의 구절이 있었으니(『저주의 몫(La part maudite)』에서도 이 문장을 책 서두의 제사(題詞)로까지 사용하고 있을 정도이다), 그 구절은 『천국과 지옥의 결혼(The Marriage of Heaven and Hell)』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다:

Exuberance is Beauty.

바타이유는 이를 불어로 다음과 같이 옮기고 있다:

L'exubérance est Beauté.

이 문장의 '번역'은 번역이라고 말하기에는 다소 '허탈'한 감이 없지 않다. 이 '번역'은 말 그대로 하나의 순수한(?) '옮김'이 되고 있으며, 또한 영어와 불어 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고려했을 때 물론 '이렇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옮김'의 과정 안에는 미묘하고 섬세한 '의미의 이동' 또한 존재하고 있다. 블레이크에게 있어 'exuberance'의 뜻을 새겨보자면 그것은 신비주의적인 의미에서의 '충일(充溢)' 또는 '만일(滿溢)'에 가깝다(한자 '溢' 안에도 '넘침'의 의미가 담겨 있음은 물론이다). 바타이유에게 있어 이 단어는 '넘침' 또는 '과잉'을 뜻하는 자신의 'excès' 개념에 직접적으로 연결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타이유가 블레이크를 자신의 것으로 전유(appropriation)하는 방식이며, 또한 이것이 바로 그가 '일반 경제'를 이야기하는 『저주의 몫』 안에서 이 문장을 제사로 삼은 이유이기도 하다. 곧 바타이유는 블레이크의 저 '신비주의적' 명제(블레이크는 바로 이 문장 조금 뒤에 이어서 "Enough! or Too much"라고 외치기도 한다)를 그 자신의 '경제학적/인류학적' 명제로 치환하고 강화하며 재해석하고 있었던 것. 여기서는 문장 하나의 번역 안에서 '동일한 단어'가 드러내고 있는 '상이한 층위'를 목격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 윌리엄 블레이크, 『 천국과 지옥의 결혼 』(김종철 옮김), 
    민음사(세계시인선 46), 1996[개정증보판].
▷ 조르주 바타이유, 『 저주의 몫 』(조한경 옮김), 문학동네(모더니티 총서 10), 2000.

4) 이러한 의미에서 바로 이 문장을 번역하고 있는 두 권의 국역본을 살펴보면 매우 '흥미로운' 점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첫 번째, 블레이크의 시들을 발췌해 옮기고 있는 김종철 번역의 『천국과 지옥의 결혼』에서 이 문장은 이렇게 번역되고 있다:

넘쳐흐름이야말로 아름다움이다.

두 번째, 그렇다면 동일한 문장을ㅡ하지만 '동일한' 문장이라고 해도 이는 적확히 말해서 분명 '바타이유가 번역/인용한 블레이크'를 다시 국역한 것이라고 해야 할 텐데ㅡ『저주의 몫』 국역본(언젠가 이 책의 번역 전반에 관해 다시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에서는 어떻게 옮기고 있는가? 이렇게 옮기고 있다:

충만은 아름다움이다.

말하자면 나로서는 이 두 국역을 비교할 때마다 그 둘이 지닌 각각의 '역할'과 '효과'가 묘하게 서로 뒤바뀌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 것이다. 이 '기묘한' 느낌은 하나의 물음에서 기인하는 것인데, 블레이크 '그 자체'를 옮기는 김종철의 번역이 "충만은 아름다움이다"가 됐어야 했고, 반대로 '바타이유가 인용한' 블레이크를 옮기는 조한경의 번역이 오히려 "넘쳐흐름이야말로 아름다움이다"가 됐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물음이 바로 그것. 내게는 마치 오히려 김종철의 번역이 바타이유가 블레이크를 번역하고 인용했을 때 생각했던 효과를 이미 '선취'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 동시에 단순히 "충만"으로만 옮긴 조한경의 번역은ㅡ"충일"만 됐어도 더 좋았을 텐데ㅡ그 자체로 '충만'하지 못한 번역이라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게다가 김종철의 번역은 "~이야말로"라는 말로 일종의 '확인사살'(!)까지 하고 있음에야. 그렇다, 나는 이렇게 까칠하다.

Georges Bataille, L'archangélique et autre poèmes, Paris: Gallimard(coll. "Poésie"), 2008.

5) 올해 초에 나왔던 바타이유의 또 다른 '따끈따끈한' 책으로는 위의 책이 있다(시인들을 엄선하여 출간하는 갈리마르의 이 총서는 정말이지 너무 아담하고 예쁘다...). 이 책의 내용 역시나 1971년에 바타이유 전집 3, 4권을 통해 이미 모두 '소화'된 것들이지만, 베르나르 노엘(Bernard Noël)이 붙인 서문을 읽는 재미만 해도 아주 쏠쏠하다. 특별히 새로운 의견이나 해석을 제시하는 수준은 아니지만, 근래에 본 바타이유 관련 글들 중에서도 특히 그의 시론(詩論)ㅡ사실 바타이유의 시론은 일종의 '반시론(反詩論)', 차라리 '반시'로서의 시에 대한 지극히 '역설적'이며 '전복적'인 담론이라고 해야 하지만ㅡ을 간략하면서도 명쾌하게 해설한 것으로 추천할 만하다. 노엘이 말하듯 "시에 반대하는 모든 행동은 오직 시의 내부에서만 일어날 수 있다(toute action contre la poésie ne peut avoir lieu qu'à l'intérieur de la poésie)"는 것, 따라서 그러한 행동이 기반하고 있는 '내적 체험'이란 지적인 과정이라기보다는 언제나 하나의 실천(pratique)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 바타이유의 시론은 이와 다른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또한 이것이 바로 바타이유가 말하는 '시의/에 대한 증오(la haine de la poésie)'의 본령이기도 하다.

       

William Blake: 1757-1827, London: Tate Gallery, 1990.
William Blake: The Complete Illuminated Books, London: Thames & Hudson, 2000.

6) 블레이크는 자신의 책을 직접 '제작'했던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미술에 대한 그 자신의 '상징주의적'인 독특한 재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저 유명한 'Illuminated Books'가 그 결과이다. 블레이크의 그림들을 접할 때마다 느끼게 되는 어떤 '기괴함'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은, 깊고 오래된 나의 또 다른 병증이다. 블레이크의 화집으로는 지금까지 다양한 종류들이 출간된 바 있지만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는 것은 위의 두 가지 판본이다. 일람(一覽)을 권한다.

   

▷ 『 김수영 전집 1권: 시 』, 민음사, 1981.
Kim Su-Yŏng, Cent Poèmes(trad. par Kim Bona), Bordeaux: William Blake & Co., 2000.

7) '옮기는' 일로서의 번역에 관해 짧게 언급하고 나니, 일전에 김수영 시의 불역(佛譯)을 잠깐 살펴보았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보르도(Bordeaux) 3대학에서 한국학과를 맡고 있는 김보나 교수의 번역으로 출간되었던 이 책에서 내가 가장 먼저 찾아보았던 시는 물론(!) 「어느 날 古宮을 나오면서」의 번역이었다. 비단 이런 이유에서만은 아니었지만, 당신이라면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을 과연 어떻게 옮겼을까 궁금하지 않았겠는가. 그 구절이 "la gargotière souillon spécialiste du bouillon"으로 옮겨진 것을 보고 참 재미있다고 느꼈던 기억이 있는데, 그 이유는, 첫째 "spécialiste"라는 일종의 해설적인 '첨가어'가 매우 흥미로웠기 때문이었고(말하자면 이를 다시 거꾸로 한국어로 번역하여 "고기 수프(설렁탕)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싸구려 식당의 더러운 주인년"이라는 지극히 '직설적'인 직역을 한 번 떠올려보라), 둘째, 각운도 두운도 아니지만 "souillon"과 "bouillon"이라는 단어들이 형성해내고 있는 어떤 운율에 놀랐기 때문이었으며(한국어였다면 만들어지지 못했을, '더러운 년'과 '설렁탕' 사이를 이어주는 저 '아름다운' 운율), 그리고 한국인이 "돼지 같은 주인년"이라는 말로 표상하는 인물과 프랑스인이 "la gargotière souillon"이라는 말로 표상하는 인물 사이에는 어떤 '문화적' 차이와 거리가 놓여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기 때문이었다. 블레이크의 언어를 '옮겼던' 바타이유의 언어와는 조금 다른 맥락에서, 이번에는 '상이한' 단어들이 지닌 '동일한' 의미들의 망, 그것의 범위와 한계 혹은 그 가능성과 불가능성이 문제였다고나 할까... 그러므로 언어란ㅡ그리고 그 언어들의 '사이'란ㅡ참으로 현기증 나는 하나의 심연(abîme)이랄 수밖에(게다가 김수영의 저 불역본을 출간했던 회사가 '윌리엄 블레이크' 출판사였다는 '기묘한' 사실을 떠올려보면, 이 현기증은 실로 배가 될 수밖에...).

       

▷ 김수영, 『 거대한 뿌리 』, 민음사, 1974.
▷ 『 김수영 전집 1권: 시 』, 민음사, 2003[개정판].

8) 조용히, 모든 것이 정지된 것처럼, 책상 앞에 놓인 책들을 가만히 바라보기만 할 때가 있다. 주로 죽은 자들과 나누게 되는 이 '대화', 대부분 죽은 자들과 치를 수밖에 없는 이 '연애'를 진심 반 농담 반으로 걱정해주는 고마운 사람도 있다. 일천한 능력 탓에 저 언어라는 심연 속에서 기를 쓰며 허우적대다가, 내가 왜 이러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가끔, 아주 가끔씩 있다. 실제로 어느 '돼지 같은 주인년'에게 속으로 한껏 욕을 퍼부을 때도 있었고, '땅주인'에게는 차마 하지 못하는 반항을 애꿎은 '야경꾼'에게만, 그것도 '20원'도 '10원'도 아니고 단돈 '1원' 때문에 쏟아부은 적은 그보다 훨씬 더 많았다. 김수영의 말대로, 이는 "얼만큼 작으냐". 이 시를 읽어 온 지가 벌써 십수년인데도, 나는 아직도 이 모든 '작음'들을 잊지 않기 위해서, 여전히 '타파'는커녕 단지 새겨서 '기억'만이라도 하기 위해서, 이 시를 계속 다시 읽고 있는 것인데, 그런 것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인데, 그런데 시의 반대야말로 언제나, 결국 시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던가, 그런 생각이 문득 들어, 김수영의 저 '시론' 역시나 또 하나의 '반시론'이었음을, 새삼스레 절감하고 통감하게 된다. 읽기 위해 책을 자르는 것인지, 아니면 자르기 위해 책을 읽는 것인지, 나는 가끔씩, 아주 가끔씩, 궁금해지는 것이다.

▷ 펼쳐진 책, 쌓아놓은 책들 너머로, 굳이 비유하자면, 마치 'punctum'이 되고자 하는 'studium'처럼, 그것도 시계 방향으로, 얄궂게도: 시계, 칼, 담배의 삼원소. 

ㅡ 襤魂, 合掌하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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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29 17: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9-29 18: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9-29 2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9-30 01: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yoonta 2008-09-30 0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레이크가 말한 exuberance가 "신비주의적 의미"를 가진다는 말씀을 들으니 이는 연금술에서의 증식multiplication과정과 연관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실제로 블레이크도 연금술과 같은 그노시스적 신비주의에 관심이 많았다죠?)

연금술에서의 증식과정은 기저물질(현자의 돌)은 변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물질들을 변화시키는 과정을 의미하죠. 연금술에서 '창조'는 "다양한 양식들 속의 하나(unnum in multa diversa moda)라는 말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수 있는것으로 보이는데

이런 관점에서 님의 다음 문장
"'동일한 단어'가 드러내고 있는 '상이한 층위'"라는 말도 해석가능하겠군요..^^

동일한 단어(현자의 돌)의 증식을 통해 드러나는 상이한 층위(다양한 물질들)의 과정이 언어에 의해 창조되는 exuberance 혹은 multiplication의 과정이 아닌가 하는 생각.

바타이유가 그의 일반경제학에서 발견한 것도 결국 이러한 증식의 과정을 통한 가치의 창조에 있다고 봅니다. 이런 식으로 또 바타이유의 연금술적 해석도 가능하게 되네요..^^

잘 읽었습니다.

람혼 2008-09-30 04:04   좋아요 0 | URL
연금술이라면 저도 한동안 빠져 살다시피(?) 하면서 허우적댔었지만, yoonta님처럼 생각해보진 못했네요.^^;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블레이크에게는 'multiplication'의 연금술적 요소도 중요한 것이겠으나 그에 못지않게 'emanation' 같은 신비주의적 혹은 신플라톤주의적 요소도 상당히 중요한 것이라고 말이죠. 곧 '연금술적'으로 비유할 때에는 동일한 단어가 상이한 층위들을 '증식'시킨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반면ㅡ그에 못지않게, 혹은 그보다 더 중요하게ㅡ'신비주의적/신플라톤주의적'으로 해석할 때에는 동일한 단어로부터 상이한 층위들이 '유출'되어 나온다고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블레이크-바타이유가 개념화했던 저 '넘침'과 '과잉'의 입장에서 생각해볼 때 'exuberance'라는 단어는 지극히 신플라톤주의적인 '유출'의 개념이 지닌 어떤 '시의적절함'(혹은, 말 그대로 니체적인 의미에서의 어떤 '반시대성')을 더욱 강조하고 강화하며 재해석하고 있는 것으로도 생각됩니다. 그러므로 바타이유의 '일반 경제'가 말하고 있는 것은, 어떤 '증식으로서의 가치 창조'라기보다는, 오히려 '유출로서의 과잉' 또는 '넘침으로서의 탕진/소비'라는 지점에 더 맞닿아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것이죠.

또한 블레이크뿐만 아니라 바타이유 역시나 그노시스주의에 관심이 많았는데요, 실제로 바타이유는ㅡ다소 생경하지만 동시에 날카롭게도ㅡ유물론과 그노시스주의 사이에서 어떤 '접점'을 찾아내고 있기도 합니다.^^

'unum in multa diversa moda'라는 연금술의 모토를 언급하시니, 저는 문득 저 미합중국의 건국 모토였던 'e pluribus unum'이라는 문구가 떠오르는데요, 요즘 미국 대선의 이런저런 흐름들을 '관전'하면서 이 모토를 다시금 새삼스레 재독(再讀)해보게 되더군요.^^

yoonta 2008-09-30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네. 그러고보니 신플라톤주의, 특히 플로티누스철학에서의 유출로 볼수도 있군요. 그러나 플로티누스의 유출emanation도 결국 일자The one으로부터 누스nous 그리고 영혼psyche 등으로의 하강적 확산과정과 그 역의 상승과정의 반복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한다면 연금술의 '증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신플라톤주의의 유출도 이러한 Trias적 과정을 통해 일자가 다자로 '증식'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연금술의 제 과정들을 단순히 화학적인 물질변성의 기술적 과정으로만 보지 않고 형이상학적인 관점에서 세계의 창조나 변환에 대한 하나의 상징이나 메타포로 본다면 말이지요.

바타이유의 일반경제학도 결국은 잉여생산물의 단순한 '탕진/소비'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순수증여'의 행위를 통해서 가치의 증식/창조가 그 과정에서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입니다. 표면적으로 과도해 보이는 소비행위가 사실은 가치의 증식에 기여하는 과정이라는 이 역설을 이해하는 것. 여기에 바타이유적 일반경제학의 핵심이 숨어 있는 것 아닐까요?

람혼 2008-10-01 03:17   좋아요 0 | URL
역시 yoonta님께서 바타이유의 '일반' 경제라는 말이 지닌 궁극적 함의를 명쾌하게 잘 정리해주신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분명 일반 경제의 개념은, 그 자체로 '반쪽'일 뿐인 단순한 생산과 재생산의 고리를 넘어 그 나머지 '반쪽'인 탕진과 소비를 강조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동질성과 이질성, 전유와 배설이라는 두 극성을 동시에 함께 사고하는 어떤 '불균형적 균형점'을 제시하고 있는 개념이라는 생각, 저 역시나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바로 이 지점에서 언제나 가장 결정적인 문제는, 이러한 사유의 체계가ㅡyoonta님의 소중한 말씀처럼ㅡ'가치의 증식과 창조'로 나아가느냐, 아니면 단순하고 진부한 보편주의의 가면을 쓴 '순환적 보수주의'로 추락하고 마느냐 하는, 어떤 선택적인ㅡ따라서 어떤 '결단'의 순간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는ㅡ이론의 문제가 아닐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이 점에 관해, 꾸준히, 그리고 함께, 생각하고 고민해보고 싶습니다.^^

PhEAV 2008-10-07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교 도서관에 새로 들어왔던 아당과 타네리판 데카르트 전집을 제본하려고 일일이 잘랐던 기억이 나네요. 어디 소설에서나 볼법한 작업을 하다가 책 두께가 너무 두꺼워서 좌절하고, 급한 책만 후딱 자르고 나머지는 그냥 도서관에 부탁했던 기억이...;;

람혼 2008-10-07 01:46   좋아요 0 | URL
Adam & Tannery 판본의 Descartes 전집은 저로서도 정말 탐나는 서책들 중의 하나입니다. 저 역시나 아직 전권을 소장하고 있지는 못한데요, 두툼하고 넓은 판형에 아름다운 17세기 활자체로 인쇄된 책을 펼쳐놓고 보고 있자면, 정말이지 기분이 묘해집니다(특히나 저는 그 시대 's' 서체의 형태를 너무나 좋아한답니다^^). 그나저나 K군님이 보시기 전까지는 아무도 그 책을 열어보지 않았던 모양이군요, 그 책장들을 모두 자르려는 시도를 하셨다니, 정말이지ㅡUmberto Eco의 어느 소설에 나올 법한?ㅡ소설 같은 '명장면'입니다.^^

2008-10-22 23: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0-25 16: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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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28 02: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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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28 19: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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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29 02: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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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30 00: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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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30 00: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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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30 00: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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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31 03: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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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람혼님의 "메탈 신들의 강림: 주다스 프리스트 공연 후기"

고대하고 고대했던, 굶주리고 굶주렸던 공연이어서 그랬는지, 관객들은ㅡ저를 포함해서ㅡ모두 '한풀이'를 한 판 벌이는 느낌이었습니다. 아무래도 그 열기가 사뭇 특별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겠지요... 주다스 오빠들이 깜짝 놀라고 갔을 거예요.^^

'우리나라에는 언제 저런 밴드가...?!'라는 질문의 형식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생각해봐야 할 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Led Zeppelin, Deep Purple, Black Sabbath, Judas Priest 등 70~80년대 하드 록/헤비 메탈 음악의 수혜를 입어 번성했던 과거 한국의 '그룹 사운드' 문화를 돌이켜볼 때, 그것은ㅡ임화의 저 유명한 표현을 차용해보자면ㅡ'이식된' 음악 문화에 다름 아니었으니까요. 비유하자면, 미국발 금융 위기와 국제 유가 급등에 따라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리는 한국 경제와 마찬가지로, 아시다시피 록 음악에 있어서도 언필칭 이른바 '외세적' 요소를 언급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는 것이 오히려 '현실'이겠죠. 기본적으로 록 음악의 유입과 향유ㅡ그리고 그것에 기반한 '재창조'까지도ㅡ는, 현재는 물론이거니와 과거에도, 세계 시장 구조가 지닌 어떤 '제국주의적' 근대성 그리고 거기서 파생하는 또 다른 구조인 '남북 문제'에 기반하고 있었던 측면이 다분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언제나 모든 '뮤지션'들의 궁극적 목표는 이른바 '미국 무대 진출'이었고, 예를 들어 카네기홀에서 공연이라도 한 번 할라치면 거기에 너무나 쉽게도 '본토 무대 상륙'이라는 상찬을 덧붙이게 되는 것이었죠. 그러므로 음악 산업의 측면에서 볼 때 이러한 '유사-식민지적' 상황에서 단순히 '우리나라에서는 언제 저런 밴드가 출현할 수 있는가'를 묻는 것은 어쩌면 자칫 저 '본토'와 '식민지' 사이에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를 간과할 수 있는 위험도 포함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비슷한 의미에서ㅡ초식과 육식의 비유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ㅡ음악에 관한 인종적 연결점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분명 음악에는 특정한 민족성 내지 인종성이 작용합니다. 예를 들어 컨트리/하드 록/헤비 메탈 등은 백인 음악, 블루스/재즈/소울/랩 등은 흑인 음악이라는 식으로 말이지요(어쩌면 엔카는 일본 음악, '뽕짝'은 한국 음악... 이런 식도 가능하겠지요). 저 같은 경우에는 이른바 '한국적 록 음악' 따위의 수사법은 별로 신뢰하지 않는 편입니다. 그것이 가능한가, 가능하다면 어떻게 가능한가 등의 문제와는 별개로, 이른바 국적(nationality)을 표현하는 수식어와 음악 장르를 가리키는 명사 사이의 결합은 그 자체로 어떤 '오해'와 '편견'을 강화시키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라는 개인적인 이유에서입니다. 우리가 쉽게 만들어내고 흔히 사용하고 있는 어떤 분류법의 체계ㅡ예를 들어 여기에는 'J-Rock' 또는 'K-Rock' 같은 규정어도 속할 텐데ㅡ는, 마치 프리미어 리그와 케이 리그의 구분 사이에서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전제하고 있는 것처럼, 역시나 은연중에 음악의 이식적이고 식민지적인 속성을 전제하고 있고 또 전제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뽕짝'을 생각해보면, qualia님 말씀대로 '뽕짝'이야말로 가장 '정체성'이 불분명하고 모호한 음악 장르임이 분명하지만, 바로 그런 만큼, 딱 그만큼, 반대로 '국적'에로의 귀속 욕망이 가장 강한 장르이기도 합니다. 저도 '뽕짝'에 대해서 소위 말하는 '신토불이'식 접근법으로 다가가는 것을 매우 경계하는 편입니다. 다만 제가 이 자리를 차용해 잠시 언급하고 싶은 것은 우리의 저 '개인적인 [음악적] 취향'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일까, 또는 무엇이었나 하는 물음입니다. '뽕짝'에 대해 '록'이 지니게 되는 어떤 '우월성', 기성 세대의 판에 박히고 진부한 음악적 '몰지각'을 비웃고 비판하는 '록' 음악의 어떤 도덕적 우월성... 저 또한 유년 시절에 이러한 감정들을 경험해본 사람으로서, 이 문제는 다른 것이 아닌 바로 음악의 '진정성'이라는 담론에 직접적으로 연결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 '진정성'의 담론이 허구라고 논파하는 것은 오히려 쉬운 일입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더욱 중요한 문제는 이러한 '진정성'의 문제 설정이 사회 안에서, 장르들 사이에서, 그리고 한 개인의 '내면' 안에서 어떻게 구성되고 어떻게 재생산되고 있는가 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식민지적 근대성, 문화의 이식성, 국적과 음악의 관계라는 문제에 대해서 다시금 여러 번 생각하고 고민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qualia님이 말씀하신 '뽕짝' 장르 안에서의 타성은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라고 저 또한 생각합니다. 약간 다른 점은, 제가 그 '타성'이라는 것이야말로 바로 '뽕짝' 장르의 핵심을 구성한다고 생각하는 것인데요, 저는 이 '뽕짝'의 타성이 혁파되어야 하거나 쇄신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하진 않습니다. 이 '뽕짝'의 타성이란 실제로 여러 가지 측면에서 분석될 수 있을 텐데요, 일단 생각나는 대로 예를 들자면, 가사 등에서 드러나는 연애와 사랑에 대한 '현실타협적'이고 '체제긍정적'인 시각들, 인생에 대한 관조적이고 허무적이며 현실중심적인 자세 등을 가장 먼저 예로 들 수 있겠지요. 하지만 이런 것들이 '[음악-]정치적으로' 혁신되고 타파되었을 때 남는 것이 여전히 '뽕짝'이고 '트로트'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가장 최근에 젊은 층에게까지 트로트 붐을 일으켰다고 평가되는 장윤정의 경우 그의 최고 히트작 "어머나"의 가사에서 드러나는 남성과 여성의 관계 역시 지극히 진부한 '뽕짝'적 사랑의 담론을 반복하고 있는 수준이라고 말할 수 있겠죠. 하지만 그 곡은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습니다. 이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또 하나의 예를 들자면, 제가 개인적으로 너무나 좋아하는 심수봉의 노래들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심수봉의 음악이 정말 '그렇고 그런 뽕짝'일 뿐일까 하는 물음에 직면하게 되면 그에 대답하기가 개인적으로 매우 어렵습니다. 심수봉의 음악은 일견 기존 뽕짝의 문법과 속성을 모두 담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 반면에 그러한 요소들로부터 이탈하는 성격 또한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심수봉의 '이탈적' 성격은 단순히 '뽕짝' 자체의 진부한 정치성을 논하는 것만으로는 설명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이를 통해 더 나아가 미루어보자면, 저는 개인적으로 '한국 대중 음악'의 '정체성'을 논하는 맥락에서 고려될 요소들이 실로 다층적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백두산이 최근 재결성한 지는 정말 몰랐네요. 약간 가슴이 설레기도 하는데요, 백두산의 '카리스마 보컬' 유현상이 "여자여~" 하면서 트로트를 들고 나왔던 장면은 어린 저에게는 정말 '충격'이었다는 기억 한 자락이 새삼 떠오릅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 그것은 '한국인 음악가' 안에 '보편적으로' 흐르고 있는 어떤 '뽕짝'의 정서(mentality)를 증명한다기보다는, 오히려 이른바 '성인 음악'으로 분류되는 음악의 산업성과 상업성의 측면에 대한 적극적인 고려의 결과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유현상은 매우 명민하고 기민한 작곡가입니다. 백두산의 리더로 가장 유명하긴 하지만, 가수 이지연을 키워내 많은 곡을 써주기도 한 작곡가이자 기획자이기도 합니다. 그런 그가 그 시점에서 트로트를 '선택'한 것은ㅡ물론 최윤희와의 '사랑'도 고려해야겠지만ㅡ배우자와의 '결혼'이라는 지극히 경제적인 문제를 고려했을 때 국내 음악계에서 음악-산업적으로 가장 효과적인 결과를 예상할 수 있는 결정이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이는 단지 유현상의 '변절'ㅡ'정절'과 '변절'이라는 이분법이 가능한 것 역시 바로 저 록 음악의 '진정성'이라는 담론 덕분이죠ㅡ이라기보다는, 그의 다양한 음악적 스펙트럼 안에서 그 시기에 '적합하게' 선택된 하나의 상업적 전략이자 시장적 선택이라고 보는 것이 더 옳을 듯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음악 장르 사이의 우열을 비교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뽕짝'과는 무관하게 현재 한국 대중 음악계 안에서 자주 목격되곤 하는 '비창조성', '무상상력', '몰정치성'은 저 역시 문제가 많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뽕짝'의 잔재가 한국 록 음악에 스며들어가 있는가 하는 문제, 아니 그보다 앞서 '뽕짝'에 있어 과연 '잔재'라고 하는 가치비판적 용어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제가 앞서 말씀드린 모든 문제들을 함께 고려할 때에야 비로소 겨우 그 답의 언저리에 가 닿을 수 있는 복잡다단한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단순한 '진정성'의 담론이 궁색해지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겠죠. 또한 단순히 '진정성'의 담론을 비판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그러한 담론이 어떻게 가능하고 어떻게 작동하게 되는가에 대해 치열히 생각해야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후기 잘 읽어주셨다니 저로서도 참 기쁩니다.^^ 제가 오히려 감사드립니다.

ㅡ 襤魂, 合掌하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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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27 13: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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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28 03: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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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27 23: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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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30 17: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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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01 03: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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