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춤과 사람들』, 2009년 9월.

*) 『춤과 사람들』 2009년 9월호에 실린 내 인터뷰 기사를 옮겨온다. 최자윤 기자가 상당히 공을 들여 기사를 써주셔서, 일천하고 부족한 사람으로서 송구하면서도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된다. 햇수로 따지자면 올해로 연극과 무용 등 무대음악을 작곡하고 연주해 온 지도 벌써 7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어렵고 힘든 작업도 있었고, 행복하고 신나는 작업도 있었지만, 돌이켜보면 그간 작곡했던 스무 작품이 넘는 무대음악들 모두가 내게는 참 소중한 기억이자 자산으로 남아 있다. 이 기사를 읽으며 새삼 그 시간들을 돌이켜보면서, 느슨해진 발걸음에 다시금 신발끈을 동여매게 된다. 10월에도 내가 음악을 작곡한 두 연극이 극장에서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얼마 전 새롭게 개관한 명동예술극장에서 10월 11일까지 유진 오닐(Eugene O'Neill) 작, 임영웅 연출의 <밤으로의 긴 여로>(손숙, 김명수, 김석훈 등 출연)가 '절찬 상연' 중이고, 또한 10월 8일부터는 페터 바이스(Peter Weiss) 원작의 '문제작' <마라, 사드>가 박정희의 연출로 아르코 예술극장(舊 문예회관) 소극장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홍원기, 남명렬 등 출연). 두 작품은 여러 가지 면에서 서로 대비되는 연극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한 작품이 전통적이고 고전적인 내러티브에 충실한 '정극'의 형식이라면, 다른 한 작품은 일종의 파격과 비약을 겸비한 '음악극'의 형식이다. 또한 <밤으로의 긴 여로>에서는 음악이 녹음의 형식으로 '재생'되지만, <마라, 사드>에서는 악단이 음악을 실황으로 매일 '조금씩 다르게' 연주한다. 작곡의 측면에서 봤을 때도 두 작품은 서로 그 음악적 스타일이 정반대다(<밤으로의 긴 여로>의 음악이 다분히 클래식적인 요소에 기반하여 작곡한 것이라면, <마라, 사드>의 음악은 기본적으로 사이키델릭 록에 기반하여 작곡한 것이다). 말하자면 나는 음악 '안'에서조차 "모호한 경계" 위에서 일종의 '줄타기'를 즐기고 있는 것인데, 이 인터뷰 기사의 말미에 등장하고 있는 또 다른 한 단어를 차용하자면, 그것이 누군가에게 "기대감"을 줄 수 있다면 그만큼 좋은 일은 또 없을 것 같다. 가을 하늘, 공활(空豁)하다.

ㅡ 襤魂, 合掌하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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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 최정우
"연주자도 몸으로 리듬을 표현해요" 

 

1998년 스페인 음악과의 만남을 시작으로 호주, 브라질, 인도, 그리스 및 동유럽, 아프리카, 아랍 지역 등 여러 문화권의 음악을 주제로 한국의 주요 안무가 및 작품을 소개해 우리 춤과의 융합을 시도해 온 <세계음악과 만나는 우리 춤>이 올해로 12회째를 맞이했다. 12년을 거쳐 올해 다다른 카리브해 음악과의 만남 중 지난 7월 22일 <아바나行 간이열차: 여섯을 위한 삼중주(Train for Havana: Trio for Six)> 이윤정 작품에서 음악 연주와 직접 무대에서 퍼포먼스를 보여주기도 한 예사롭지 않은 밴드에 주목하게 된다. 무용수와 함께 등장해 움직임에 익숙하지 않은 세 명의 뮤지션들이 날것 그대로의 신선함을 보여주며 관객과 소통을 시도, 그들이 무용수가 아닌 음악가이기에 궁금함은 더욱 커졌다.

1970년대 다방을 연상시키는 눅눅한 나무 테이블과 거리낌 없는 분위기의 카페 공간에서 밴드의 리더인 그(최정우)와 편안함으로 마주하였다.

무용과 그와의 인연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예술의 장르를 가리지 않고 객석을 조용히 메워왔던 그에게 무용이라는 장르는 연극처럼 언어적 텍스트(text)에 기반이 되어 있지 않기에 그것에 자신을 가두지 않고 좀 더 넓고 자유로운 음악적 영역을 표현할 수 있어 매력을 느끼게 된다. 그 후 정영두, 장은정, 이용인 등의 무용가들과 함께 음악작곡가로서 대면해 작업을 하게 되었다. 그 동안 여러 무용가와 작업을 함께 하면서 그는 '음악'을 소품과 같은 백그라운드가 아닌 공연장이라는 공간 안에서 라이브 연주 자체가 주는 생동감과 연주자 각각의 움직임들 또한 하나의 퍼포먼스로서 작품에 스며든다는 생각을 기반으로 그가 무용작품을 위해 작업한 음악들을 녹음이 아닌 대부분 현장에서 직접 라이브로 연주를 하며 무용수와 관객과 호흡하곤 했다.  

 

 

 

작품 <아바나行 간이열차: 여섯을 위한 삼중주>에서 음악과 퍼포밍

"리듬을 몸으로 표현하는 것은 그 안에 있는 연주자도 예외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무용]음악이란 늘 무용수의 몸짓에 맞춰 '연주'를 하는 것에 불과하다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저는 연주하는 동안 둘이 각자 다른 듀엣을 하고 이중주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 동안에는 나도 무용수와 같은 작품을 함께 하는 퍼포머라고 생각하죠. 그런 점에서 무용 공연에서 음악작업은 어떠한 장르보다 매력적이고 흥미롭습니다."

이러한 작품과 음악의 상관관계에 대한 관념이 얼마 전 그를 무대에서 악기뿐 아니라 몸으로 작품에 녹여낼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퍼포머로서 이전에 무대에 서 본 적은 없지만,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고, 안무가/무용수(이윤정)와 친분관계가 있어 음악도 연습도 편안하고 재미를 느끼며 할 수 있었다고 하는 작곡가.

레나타 수이사이드(Renata Suicide)... 그의 표면적 활동 명칭은 홍대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레나타 수이사이드 밴드의 보컬 겸 기타리스트이다.

수이사이드?... 자살?... 레나타 자살? 자살을 동경하는 음악단체인가? 무서운 상상의 나래를 부풀이고 있는 기자를 이내 가라앉히는 말. '단지 어감이 갖는 이미지가 좋아서 선택했지 어떠한 영문에 의미를 부여하고 만들지는 않았다' 한다. 음악적 특성이 강한 밴드음악을 하고 있지만 평소에는 하나의 장르를 편식하지 않고 여러 장르의 음악을 잡식으로 수용하고 있다고... "무대음악은 늘 예측불허예요. 작품과 상황의 분위기에 맞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풍성히 알아야 그려낼 수 있기에 평소에 여러 장르의 음악을 가리지 않고 많이 접하고 있어요."

어렸을 때부터 기타와 가야금 등 여러 가지 악기가 내는 소리와 음악에 관심을 가지고 악기들을 다뤄 왔었던 그는 '예술과 철학을 접목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고 서울대 미학과에 들어가게 되었고, 이론뿐 아니라 실천의 경험을 통해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지금의 평론가와 예술가라는 모호한 경계에 그를 서게 했다.  

 

 

 

월간 <한국연극>에 평론 기고하는 음악가

현재 그는 철학, 문학 평론 글을 월간 『한국연극』에 매달 연재하고 있으며, 그의 블로그에는 문학, 음악, 미술, 연극, 무용, 영화 등 모든 장르에 대한 관람과 그 느낌에 대한 잔상과 후기들을 빠트리지 않고 꼼꼼히 기록해 두고 있다. 지금까지의 글로 토해낸 자신의 비평 작업을 모두 묶어서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는 리뷰에 그치는 평이 아닌 해당 작품이나 공연을 접하지 않고서도 자신의 글을 통해 공감하고 편하게 읽어 내려 갈 수 있는 책을 만들 예정이라고 한다. 그리고 여건이 허락될 때 밴드의 앨범작업과 동시에 지금까지 애정을 가지고 만들었던 무대음악들을 모두 모아 영화의 사운드트랙처럼 음반으로 제작하는 것도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시일이 걸리겠지만 차후에는 어느 장르에 국한되어 있는 단체가 아닌 무대작품을 구성할 수 있는 최소한의 사람들로 여러 예술 장르를 넘나들며 각자가 가지고 있는 것을 표현할 수 있는 올라운드 플레이의 작은 예술단체를 만들어 윌리엄 포사이드와 같이 소재와 영역의 폭을 확대, 실험성이 강한 작품을 시도해 보고 싶습니다."

앞으로 도전하게 될 수많은 예술적 시도가 자신의 바람을 이루어 줌과 동시에 예술계에 신선한 바람을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문자(글), 미술작품, 음악, 영화, 퍼포먼스. 그가 흡수한 모든 장르의 예술적 분야가 하나로 뭉뚱그려져 빚어지는 예술적 영역에 과히 '기대감'이란 설레임의 나무를 심어본다. '기대감'이란 관객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카타르시스적인 선물이 아닐까...

ㅡ 최자윤 기자, 『춤과 사람들』 2009년 9월호, 56-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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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01 23: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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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02 02: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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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팔판동, 삼호당에서. [사진: 襤魂]

1) 비가 내리지 않았다면 보지 못했을 것들이 있다. 그리고 우리는, 낯선 곳에서, 낯선 이에게, 처음으로 날씨 이야기를 꺼내며, 비로소 입을 뗀다. 10월 23일(木) 오후, 하늘은 가볍게 찌푸렸다. 지인들이 농담 섞어 말하듯, 실로 '람혼스러운' 날씨였다. 작곡을 맡았던 큰 공연 하나를 전날 기분 좋게 마무리하고 나서, 다소 가벼운 마음으로 정영두 선배의 공연을 찾았다(하지만 역시나 치러내야 할 일들은 태산처럼 쌓여 있었으니). 장소는 삼청 교회 골목 안쪽, 팔판동에 위치한 어느 아늑한 한옥, 이곳은 학고재 우찬규 대표의 집 삼호당이다. 공연 시간이 되자 가옥의 뒤편에서 무용수들이 조용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관객들 사이에 무던히 섞여 앉아 있던 연주자들은 소리 없는 기지개를 켰다. 'ㅁ'자 모양의 '아트리움(atrium)' 아래로 비를 머금은 마당 위, 매화나무 한 그루가 '오브제(objet)'처럼 서 있었다.

(기사 보기: http://news.joins.com/article/aid/2008/10/24/3229456.html)

▷ 이윤정과 이소영의 춤: 빗물받이에서 흘러내린 자국 위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사진: 襤魂]

2) 처음 등장한 이소영과 이윤정의 춤은 내게 3성부로 이루어진 대위법(counterpoint)을 연상시켰다. 실제로 들려오는 소리는 리코더의 선율 하나뿐이었지만, 두 무용수는 때로는 유니슨(unison)으로, 때로는 교차하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선율로, 그렇게 리코더와 함께 들리지 않는 소리들를 '연주'하고 있었다. 이 두 분의 무용가/안무가와ㅡ그리 '길지는' 않은 시간 동안에ㅡ실로 '강한' 밀도로 함께 작업하고 만나오고 있는 나로서는, 그 둘이 함께 추는 춤을 실로 '오랜만에' 보는 느낌이 없지 않아 춤을 보는 내내 흐뭇하고 짜릿한 사감(私感)을 섞을 수밖에 없었다. 개인적으로 두 분을 뵐 때마다 서로 '전혀' 다르지만 또한 동시에 서로 너무나 닮아 있는 '쌍생아'를 보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히기도 하는데, 사실 이제는 두 분 모두 내게는 '친누이'들처럼 느껴지기까지 할 정도이다. 위의 사진은 어쩌면 바로 이러한 나의 개인적인 느낌이 순간적으로 발현된 소산일 터.

▷ 3성부의 대위법: 리코더와 두 개의 몸. [사진: 襤魂]

3) 대칭성을 지속시키면서 동시에 그 대칭성에 흠집을 내기. 이 3성부의 대위법은, 때로는 리코더가 '반주'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몸들의 선율이 겹쳐졌다가 헤어지기도 하는 방식으로, 말하자면 실로 '음악적'으로 전개되었다. 그 '음악'의 모습은 제의성을 전혀 느낄 수 없는 어떤 '제의성'의 형태로 내게 다가왔던 것. 리코더의 소리는 그 스스로 입을 수 없을 어떤 '몸'을 입고자 공간을 울리며 퍼져나갔고, 두 개의 몸은 보이지 않는 '악보'를 따라가며 음표들을 눌러 밟거나 타고 넘어갔다. 가운데 서 있던 한 그루의 나무가 이 대위법의 네 번째 성부, 곧 하나의 통주저음을 연주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오히려 공연이 끝나고 난 뒤 한참 후의 일이다. 어쩌면 그러한 '통주저음'이란ㅡ가장 '적극적'으로는ㅡ이렇듯 일종의 '시간차'를 두고 지각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 정영두의 춤: 돌, 흙, 나무, 바닥과의 조우. [사진: 襤魂]

4) 일상의 공간 안에 비일상을 삽입시키는 일은 언제나 짜릿하지만 동시에 지난한 일이다. 그러나 가장 어려운 것은, 그래서 또한 가장 주목받아야 하고 추구되어야 할 일은, 일상 안에서 일상을 비일상처럼, 그리고 비일상 안에서 비일상을 일상처럼 살아내는 일이다. 이 선문답(禪問答)과도 같은, 일종의 '줄타기'를 위한 지침 안에, 예술에 대한 '사용설명서(manual)'가 들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무용 공연이라는 개념적 틀을 잠시 잊고 이 한 장의 사진을 들여다본다. 그는 넘어지려다 만 것일까, 아니면 뿌리로부터 우뚝 솟아 일어나려는 것일까. 비에 젖은 바닥에 닿은 손, 물기에 젖은 옷, 습기 찬 몸, 그 안에서 나는 어떤 안온한 '공기'를 느낀다기보다는 이해하게 된다. 게다가 그것도 가장 안온하지 않은 방식으로. 이렇게 떨리고 경련하는 '이해(理解)'는, 말하자면 나의 고질적인 병증, 곧 내 자신의 이해(利害)가 된다.

▷ 김남건의 춤: 땅의 소리를 들어보기, 혹은 마당이 머금은 빗물에 젖어보기. [사진: 襤魂]

5) 나는 작년에 남건씨가 감독했던 한 단편영화에 단역배우(?)로 출연했던 적이 있다(이소영씨가 주연이었다). 관심 있는 분들에게는 일람(一覽)을 권한다(한 영화제에서 대상까지 받은 작품이니 찾아보기가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 같다). 언제나 배우들 또는 무용수들 곁에서ㅡ또는 그 뒤에서ㅡ그들의 호흡을 따라가며ㅡ때로는 앞서가며ㅡ작곡과 연주를 해온 나로서는 어설프나마 연기를 하는 일이 실로 신선하고 흥미로운 경험이었는데, 한 가지 개인적으로 아쉬운 것은 소영 누나의 춤에 맞춰 즉흥으로 연주했던 나의 피아노 연주가 영화의 최종편집본에는 수록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연주를 하다보면 가끔씩 흔치 않게 경험하게 되는 전율의 순간이 있다. 그 연주도 그러한 전율의 드문 순간들 중 하나였는데, 다시 '재구성'될 수는 있어도 다만 그 '순간' 안에서만 존재하고 영속하는 즉흥 연주의 매력이 바로 여기에 있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 즉흥이란, 이어지고 끊어지는 순간들과의 계속되는 싸움과 화해인지라, 하면 할수록 더욱 어려운 마음으로 대하게 되는 작업이다. 그래서 즉흥이란 '즉흥적'으로 만난 사람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자유로운' 연주가 아니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서로의 작업을 오래 봐오고 또 서로의 존재와 사고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지' 않고서는, 여간해서 좋은ㅡ따라서 '낯선'ㅡ즉흥연주가 나오기 힘들기 때문이다. 서로 자신의 존재만을 주장하는 즉흥은 여유로운 틈 하나 찾아보기 힘든 '시끄럽기만' 한 것이 되기 쉬우며, 이상적으로 말해서 '좋은' 즉흥이란 직접적으로 참여하는 자(공연자)와 간접적으로 참여하는 자(관객)ㅡ이 '직접'과 '간접'의 규정은 서로 뒤바뀔 수도 있는 것인데ㅡ사이의 '대화' 또한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즉흥 안에서 '악보'는 기보되어 있지 않은 무형의 것이지만, 사실 그 악보는 어떤 '관계' 안에 이미-언제나 존재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즉흥은 절제 없고 제한 없는 무한대의 자유가 아니라 어떤 속깊은 '약속'과 느슨한 '통제'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행하는] 조심스러운 '무절제'로 묶여 있는 하나의 연속체이다. 즉흥은 솔로이스트들의 집합체가 아니라 그 사이의 '관계'들이 만나서 빚어내는 하나의 '솔로'이다(바로 이러한 감각이 내재되고 공유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즉흥은 '산으로 가버리기' 쉽다). '재현'과 '환원불가능성'의 주제는 내 안에서 이렇듯 '비가역적(non-retrogradable)'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

▷ 나무 되기, 혹은 '굴광성'과 '굴지성' 사이. [사진: 襤魂]

6) 몸은 상향의 굴광성(屈光性)과 하향의 굴지성(屈地性) 사이의 경계 위에서, 때로는 꼿꼿이 서서 걸어다니거나 하늘을 향하며, 때로는 흐느적거리며 방황하다 주저앉기도 한다. 결국 이 춤들의 '음악적' 형식은 일종의 푸가(fuga)적인 기법에 가닿는다. 서로의 뒤를 따르는, 그리하여 서로를 '주고 받는' 이 여덟 개의 성부들(네 명의 무용가와 네 명의 연주가)은, 말하자면 '푸가의 기법'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신문기사가 '세속적으로' 말하듯, '한옥과 현대무용의 만남'이라고 하는 지극히 '언론적인' 관심에서 나온 주목의 지점은 내게는 전혀 무의미하다. 반면, 이와 유사한 일종의 '패러디' 형식으로, 그리고 또한 지극히 개인적인 의문문의 형식으로, 나에게 남는 하나의 질문은 이런 것이다: '한옥'이라는 공간 안에서 '연주'되는 '푸가'란 어떤 의미를 갖는가? 푸가의 기법은 건축의 기술을 보여준다. 한옥이라는 '전통'의 공간과 현대무용이라는 '첨단'의 예술이 서로 만났다는 사실 자체로서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만남'에 대한 이러한 표피적이고 천박한 인식이 '개화된 남성과 구시대 여성의 결혼' 같은 것을 문제 삼는 지극히 '근대적'인 콤플렉스와 다를 게 무엇인가, 게다가 서구적/현대적인 것은 남성적인 것으로, 한국적/전통적인 것은 여성적인 것으로, 그렇게 쉽게만 재단되고 상징되고 있음에야). 문제는 이 무용이, 이 춤들이, 이 몸짓들이, 건축의 기술을 닮아 있다는 것, 곧 푸가의 기법을 체현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의미에서만, 이 춤들은 한옥이라는 '건축[물]의 공간'에 가닿고 또 가닿을 수 있게 된다. 만남의 지점이란 이런 것이다. 건축되고 구성되어 있는 전통의 공간 안에서 그 '전통'의 호흡을 '현대적으로' 함께 나누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라(전통과 현대의 '공존'을 논하는 이 지긋지긋한 수사법에 나는 이미 넌더리가 난 지 오래이다), 한옥이라는 공간 안에서 춤(현대무용)이 그러한 건축의 기술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푸가의 기법'으로서 제시되고 공연되고 있다는 것, 이것이 더욱 중요하며 핵심적인 문제이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결국 문제는, 어떤 춤이 대위법을 닮아 있다고 하는, 곧 소리와 몸짓 사이에 어떤 '공감각적'인 교량을 놓을 수 있다고 하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러한 대위법이 어디서 어떻게 '연주'되고 있는가 하는 것, 곧 음악과 춤 사이의 '비유'를 통해 이루어지는 '건축술'에 대한 어떤 성찰의 자리에 다름 아니다.

▷ '무대' 밖에서, '무대'였던 쪽을 바라보며, 웃으며: 이소영과 이윤정. [사진: 襤魂]

7) 공연 자료로 관객들에게 배포된 정영두 선배의 텍스트는 내게 일종의 '선언문'을 연상시켰다. 그만큼 강건하고 순수하기까지 한 내용과 문체가 고스란히 느껴졌던 것이다(이는 근래에 읽은 텍스트들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것 중의 하나였는데, 비언어적 예술가의 텍스트가 그 자체로 드물기도 하지만ㅡ또한 동시에 '드물어야' 하지만ㅡ, 그 예술가의 공연과 작업을 통해 얻을 수 없는 또 다른 '사유의 지점'을 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특히나 내게는 소중한 것이다). 말하자면 그것은 하나의 소박하고 [그로토프스키(Grotowski)적인 의미에서] 가난한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자'의 텍스트처럼 내게 다가왔다. 그래서/그러나 문제는 언제나 '자연'이었다('Naturgeschichte'에 대한 마르크스의 몇몇 언급들을 떠올려봐도 좋으리라). 한옥과 자연 사이의 어떤 '내밀한' 연결성, 이 '자연스러운' 관계의 고리는 언제부터인가 '계급성'이 배제된 채로 단순히 '문화적'으로만 소비되고 사유되어 왔다는 느낌이 있다(예를 들어 '삼청동'이라는 하나의 문화적 약호(code)가 어떤 방식으로 사유되고 소비되고 확장되어 왔는가를 떠올려봐도 좋을 것이다). 곧 자연이란ㅡ그리고 그러한 자연에 너무도 쉽게 연결되곤 하는 어떤 '전통적인' 건축 양식이란ㅡ그 자체로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근래에 보기 드물게 자연과 예술의 관계에 대해 실로 명쾌하고도 단언적으로 서술하고 있는 이 텍스트가 매우 아름답고 단호하게 느껴지면서도 동시에 개인적으로 아쉬움을 남기는 이유이다. 이 공연을 주최한 전통문화 지킴이 재단법인 '아름지기'는 물론이고, '현대'의 예술가들이 모두 공히 고민해야 하는 지점은 바로 이것이다: 누가 이러한 한옥에/을 살 수 있는가('자연'이 지니고 있는 어떤 '계급성'의 문제), 이러한 한옥에서 공연을 한다는 것은ㅡ'전통과 현대의 만남' 따위의 무의미한 논의는 제쳐두고ㅡ어떤 의미를 갖는가(예술적 '만남'이 갖는 의미 층위의 문제), 이러한 공연을 볼 수 있고 또 향유할 수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관객의 예술적 취미/기호와 경제적/사회적 심급에 관한 일종의 예술사회학적인 문제), 그리고 궁극적으로, 예술가는 하나의 장소 안에서 그 장소와 어떻게 만나야 하는가(공연 장소 자체가 공연 행위와 맺고 있는 관계적 의미와 '공연성'의 문제).

▷ 삼호당 입구로 이어진 골목에서: 배우 김호정. [사진: 襤魂]

8) 우연한 만남은 언제나 반갑고 즐겁다. 삼호당 입구에서 배우 김호정씨와 오랜만에 마주쳤다. 나는 김호정 선배와 정영두 선배를 하나의 공연을 통해 함께 만났는데, 예전에 아르코 소극장에서 있었던 사라 케인(Sarah Kane)의 연극 <새벽 4시 48분(4. 48 Psychosis)> 공연에서 작곡과 연주를 맡았던 것이 소중한 인연의 시작이었다(이러한 인연과 관련된 작업과 그 소회에 관해서는 일전에도 글을 한 번 쓴 적이 있다: http://blog.naver.com/sinthome/40044551630). 떠올려보면 그 이후 개인적으로 많은 것들이 '달라졌던' 것으로 기억한다(어떠한 '경험'이 또 그렇지 않겠느냐만은, 이렇듯 '변화'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기억에는 일종의 감상적 소회가 따르지 않을 수 없다). 소중한 인연들이 낳은 또 다른 소중한 인연들이 있었고, 만남과 헤어짐, 마주침과 부딪힘들도 있었다. 하나의 공연은 다른 공연을 '가리키고' 또 그렇게 다른 곳으로 이어지고 있었고, 하나의 공연이 끝나고 시간이 지난 뒤 남는 것은 그 공연 자체에 대한 느낌이라기보다는 그 공연이 싹 틔워 마련해준 하나의 '관계성'이었다. 나는 이러한 지극히 개인적인 기준에서의 '관계성'이 내 작업의 '특수한 보편성'을 구성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게는 그러한 '관계성'이야말로 계속해서 작업을 지속하게 만드는 중요한 추동력 중의 하나이다.

▷ 뼈를 드러낸 화석, 기와들이 만들어놓은 단층들. [사진: 襤魂]

9) 삼호당을 나오면서 바로 옆에 있는 기와 가게 앞에서 사진 한 장을 더 찍었다. 기와들이 세로와 가로로 켜켜이 어지럽게 쌓여 있었다. 얼마 전 『한국연극』지 기자와 내 음악에 관한 인터뷰를 하던 도중, 불현듯 마음 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느낌 한 자락이 있었다. 그 느낌을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고 소중히 마음 안에 눌러 담았다. 그 마음을 담고, 며칠 전 레나타 수이사이드(Renata Suicide) 멤버들과 회동을 가졌다. 나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지만, 내가 진정 진심으로 원하는 대로 되었다. 그 사실에 감사한다. 나는 사실 여전히, '우리 모두'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순간 순간 내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솔직히 고백해야겠다. 모든 문제는 사실 나에게 있는 것이었지만, 그렇다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 이런 식으로 이루어지는 어떤 책임과 채무감의 '일반화'란 되도록이면 빨리 '지양'되어야 할 '몹쓸' 성질의 것이므로, 나는 "모든 문제는 사실 나에게..." 따위의 자학적/가학적 어법에게는 작별을 고한다. 안녕이다. 하여 생각하니, 어쩌면 저 기와들이 언젠가 지붕 위로 높이 올라가 스스로의 향취를 뽐낼 때도 있을 것이고, 또한 그렇게 지붕 위로 올라가지 못한다 해도, 그저 저렇게 촘촘히 쌓여 있고 또 쌓여 가기만 한다고 해도, 그 자체로 지층을 형성하고 화석을 남길 때도 있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고 비유하며 그 안으로 스스로를 이입시키는 '대위법'이란, '푸가의 기법'이란, 또한 '음악적 건축술'이란, 이렇듯 언제나 어떤 '관계성' 위에 기생(寄生)하여 섭생(攝生)하고 있었다. 3성부로 이루어지는 '대위법'이란, 다성(多聲/多性)의 몸짓들이 만나 이루어내는 '푸가의 기법'이란, 어떤 것이며 또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실로 '필생의 숙제'가 아닐 수 없다. 비가 내리지 않았다면 결코 보지 못했을 것들이 있다. 그래서 나는 그 비가 반갑고 또 고맙다.

ㅡ 襤魂, 合掌하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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