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나타 수이사이드 앨범 «Renata Suicide»가 발매된 지 어느덧 한 달 반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무려 결성 17년만의 첫 앨범, 그리고 녹음/믹싱/마스터링에서 발매에 이르기까지 3년 이상의 시간을 공들여 만든 앨범, 그래서 그 동안 저희의 모든 음악적 시도와 노력들이 함축되고 농축되어 담긴 이 앨범을, 만약 이러한 표현이 가능하다면, 저는 감히 '마스터피스(masterpiece)'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이 앨범을 아껴주시는 음악애호가 여러분의 열렬한 청취와 뜨거운 사랑에 힘입어 발매 후 한 달 반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Renata Suicide» 앨범은 예스24 록 부문 2위, 알라딘 록 부문 3위, K-인디 차트 7위 등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며 여전히 고공 비행 중입니다. 네이버, 벅스, 멜론 등 국내 음원 사이트는 물론이고 Apple music, Google music, Spotify 등 해외 유수의 음원 사이트를 통해서도 여전히 열렬히 청취되고 있는 중이며, 또한 경인방송 라디오 "성우진의 한밤의 음악여행"을 통해 이 앨범을 소개하며 여러 이야기를 나누는 방송을 하는 영광도 얻었습니다. 다시 한 번 여러분의 짙은 성원에 깊이 감사 드립니다. 이쯤 되니 왠지 한 번 록 부문 1위를 찍어보고 싶은 마음도 생깁니다. 현재 저희의 앨범은 Amazon 등을 통해 유럽과 미국, 일본 등에서 발매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아직 들어보시지 못한 분들은 아래의 다양한 링크를 통해 청취해보시기를, 그리고 이미 들으신 분들도 더더욱 아름답고 깊게 감상해주시기를 바라 마지않습니다:

-------------------------------------------

레나타 수이사이드, 17년만의 '데뷔' 앨범 «Renata Suicide» !

2002년 람혼 최정우(보컬/기타), 반시 유가영(베이스), 파랑 이용창(드럼)의 3인조로 결성된 록 그룹으로 지금까지 홍대/신촌 인디 신에서의 그룹 공연과 다양한 연극/무용 공연과의 협업을 통해 예술적 지평을 끊임없이 확장해 온 레나타 수이사이드(Renata Suicide).

그들의 지난 17년의 활동 기간을 결산하며 그동안 가장 자주 그리고 오랫동안 연주되었던 8곡의 노래들을 오롯이 담아낸 레나타 수이사이드의 역사적인 첫 앨범, <Renata Suicide>가 드디어 발매되었습니다.

이번 앨범은 록과 여타 장르들을 다양하게 혼합한 사이키델릭 프로그레시브 록을 지향하며, 수록곡들의 가사가 지닌 시적인 지향성과 함께 2000년대 이후 레나타 수이사이드가 줄기차게 추구했던 새로운 록 음악의 정수를 담고 있는 앨범입니다.

향후 한국 대중 음악의 음악성과 문학성에 있어 일대 중대한 지표로 남을 레나타 수이사이드의 <Renata Suicide>.

아래 링크를 통해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판매처

알라딘 : https://hoy.kr/MXhvT

YES24 : https://hoy.kr/DRErb

인터파크 : https://hoy.kr/C4ahK

쿠팡 : https://hoy.kr/aPazx

11번가 : https://hoy.kr/9bD2G

+

국내 음원 서비스

멜론 : https://hoy.kr/9bwM9

네이버뮤직 : https://hoy.kr/RM97G

벅스 : https://hoy.kr/vuR6r

소리바다 : https://hoy.kr/UvVGW

지니뮤직 : https://hoy.kr/UGOqR

+

해외

Apple Music, Spotify, Google Music, Amazon Music, YouTube Music

Bandcamp : https://hoy.kr/HMe4Z







#레나타수이사이드 #renatasuicide

#람혼 #ramhon #반시 #banshi #파랑 #parang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 헤비 메탈(Heavy Metal)의 효시(嚆矢)이자 정본(定本), 그리고ㅡ다분히 '헤겔적'으로 말하자면ㅡ헤비 메탈이라는 '자기의식'의 완성으로서의 절대적 '사제 유다(Judas Priest)'.

1) 많은 망설임 끝에 주다스 프리스트(Judas Priest)의 첫ㅡ어쩌면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ㅡ내한 공연에 다녀왔다. 올림픽 체조경기장, 2008년 9월 21일 저녁 7시. 많이 망설이게 된 것은 '단지' 치러내야 할 여러 일들이 산적(山積)해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지만, 나의 유년기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던 이 전설적인 밴드의 내한 공연을 놓친다면 아마도 오랜 시간 후회하고 한참 동안 미련을 쌓아둘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을 충실하게ㅡ혹은 '불충하게'ㅡ따랐던 것. 하지만 결과적으로 말하자면ㅡ그러니까 아마도 '사후적으로(nachträglich)' 말하자면ㅡ그 선택은 지극히 옳았다고 할 밖에.

2) 공연장은ㅡ나를 포함해서ㅡ거의 광란의 도가니 수준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거기 모인 관객들은 모두, 70~80년대부터 주다스 프리스트의 음악을 들어왔기에 그들의 공연에 가장 '목마르고 굶주렸을' 장년층에서부터 상당히 최근에 그들의 음악을 알게 된 젊은 층에 이르기까지, 오로지 이 전설적인 밴드의 실황을 보기 위해 몰려온 '광신도'들이었기 때문이다. 공연장 바깥에서부터 80년대 그룹 사운드 시대를 이끌었던 몇몇 낯익은 음악인들의 '들뜬' 모습도 목격할 수 있었다. 아마 그들 모두에게도 주다스 프리스트의 음악은 일종의 청소년기의 자산이자 추억의 한 자락이었던 것일 터. 공연이 시작되고 얼마 후 "Metal Gods"의 첫 리프가 연주되자 공연장은 마치 불에 기름을 끼얹은 형국이 되었다! 말하자면 메탈 신(神)들의 강림(降臨)이 비로소 개시되었다는 느낌이었다고 할까. 첫 곡이 시작되는 것을 보면서도 '지금 내 눈 앞에서 정말로 주다스 프리스트가 실제 연주하고 있는 게 맞나'하는 얼떨떨한 기분이 들었던 나도 "Metal Gods"의 연주가 시작되고 나서야 비로소 슬슬 이들의 강림을 '실감'하기 시작했다. 명불허전(名不虛傳)이라는 말 자체 역시나 '명불허전'이라는 생각 한 자락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곧 이어 이들의 최고 명곡 중의 하나인 "Breaking the Law"가 연주되기 시작할 때 공연장은 말 그대로 완전히 '뒤집어졌다'. 모든 소절을 따라 '합창'하는ㅡ'싱얼롱(sing-along)', 요즘은 '떼창[-唱]'이라는 용어를 더 많이 쓰는 경향이 있지만ㅡ'굶주린' 관객들이 쏟아내는 이 엄청난 에너지에 아마 주다스 프리스트 멤버들도 많이 놀랐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나는 감동 때문에 정말 거의 울 뻔했다). 한 가지 지적할 부분은, "Sinner"의 연주는 개인적으로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선곡이었다는 사실인데, 초창기 곡들을 거의 들을 수 없는 그들의 최근 공연 선곡에 비추어 봤을 때 이는 다분히 한국 관객들을 위한 선택이 아니었나 짐작해본다(더불어 "The Ripper"의 연주도 기대했으나 이는 아쉽게도 이루어지지 못했다).

▷ 2004년 그리스 공연의 한 장면(개인적인 느낌으로는 이번 내한 공연의 분위기가 이 사진의 기운을 능가하고도 남음이 있다). 주다스 프리스트의 '상징' 보컬리스트 롭 핼포드(Rob Halford)의 카리스마는 이순(耳順)의 나이에도 여전히 강력했다.

3) 공연 중반, 비교적 최신의 곡들이 연주되었을 때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던 이 관객들의 미친 듯한 에너지는 드디어 "The Hellion"과 "Electric Eye"의 접속곡이 다시금 포문을 열었을 때 새삼 폭발해버렸다. 본무대의 마지막 곡인 "Painkiller"에 이르자 그 에너지는 거의 최고조에 이르러 관객들은 하나의 거대한 '뇌'이자 '몸'이 된 듯한 인상으로 객석 전체로 넘실거렸다. 일대 장관이었다. 이어 다시 등장한 핼포드는 저 예의 유명한 '오토바이 의식(ritual)'을 선보이며 재차 관객의 마음에 불을 당겼다. 핼포드는 그 중간에 태극기를 들고 나왔는데, 헤비 메탈 음악이 '어쩔 수 없이' 정치적으로 우익으로 기울 수밖에 없는(?) 음악임을 상기해볼 때 '국기(國旗)'라는 상징은 평소 같았으면 내 신경을 아주 많이 거스르고도 남음이 있었겠지만, 내게 이는 오히려 '너무나 늦게 찾아온' 한국의 관객들에 대한 일종의 사과와 감사의 인사처럼 느껴졌다. 핼포드가 오토바이를 타고 등장했을 때 너무나 '당연히' 따라나올 수밖에 없는 "Hell Bent for Leather"에서부터 대미를 장식하는 이들의 '영원한' 마지막 곡 "You've Got Another Thing Coming"에 이르기까지, 채 아쉬움을 다 씻지 못한 관객들은 그 모든 곡들을 한 소절 한 소절 따라부르며 '사제들의 제의'에 격렬하게 임하는 모습이었다. 후반부 공연에서 이 모든 명곡들과는 별개로 가장 압권으로 느껴졌던 것은 역시 "The Green Manalishi"의 연주였는데, 주다스 프리스트 전성기 모습의 일단을 살짝 목격할 수 있게 한 실황의 백미였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에서이다. 'The Priest will be back~!'이라는 핼포드의 한 마디가 가슴에 오래 남는다. 꼭 그 말을 실천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한 자락, 곧 그들의 이 공연이 결코 '마지막' 내한 공연이 되지 않기를 기원하는 마음 한 자락, 이곳에 소중히 남겨본다.

▷ 2005년 에스파냐 공연의 한 장면. 음향적인 환경이 그리 만족스럽지는 못했던 이번 내한 공연에서도 글렌 팁튼(Glenn Tipton)과 K. K. 다우닝(Downing)의 트윈 리드 기타는 역시 여전히 아름다웠다.

4) 내가 주다스 프리스트의 음악을 처음 들었던 것은 11살 때였다. 귀가 번쩍 뜨이는 기분이었다. 처음 들었던 곡은 아마도 어느 밤 라디오에서 흘러나왔던 "Screaming for Vengeance"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당시에는 밤에 불을 끄고 조용히 라디오를 켠 채 전영혁의 심야 방송을 들으며 가만히 누워 있는 것이 하루 중 내가 만끽할 수 있는 '최상의' 시간이었다. 나는 곧 이 헤비 메탈의 '신세계'에 급속도로 빠져 들었고, 얼마 후 테니스 라켓으로 흉내만 내는 걸 만족할 수 없게 된 어느 날 클래식 기타를 한 대 장만해 독학을 시작했다. 그때는 동네 레코드 가게에서 국내 라이센스 LP가 대략 4~5천원 정도 하던 '낙원' 같은 시절이었는데(레코드 가게 아줌마에게 말만 잘 하면 3천원 정도에도 살 수 있었다), 내가 처음으로 샀던 주다스 프리스트의 작품은 그들의 두 번째 앨범이었던 <Sad Wings of Destiny>였다. 어린 시절 들었던 이 앨범의 백미 "Victim of Changes"를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이미 그 시기에 이들의 '전매특허'인 트윈 리드 기타의 아름다운 화음과 이중선율, 그리고 전형적이고 공격적인 헤비 메탈 리프들이 완성되고 있었다. 나는 클래식 기타로 하루는 "로망스"를 치고 하루는 주다스 프리스트의 리프들을 따라 치는 지극히 '모순적'이고 '역설적'인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무뚝뚝하게만 보이던 아버지가 내가 중학교에 입학하던 날 슬그머니 선물해주신 전기 기타ㅡ이는 내 인생의 첫 전기 기타로서 삼익 악기의 'Vester' 모델이었다ㅡ를 내 두 손에 쥐게 된 날, 나는 마치 '세상'을 다 얻은 것만 같은 기분이 되었다(만화 <20세기 소년>이나 <BECK>에 등장하는 소년들의 어떤 특별한 날을 떠올려도 좋으리라). 이에ㅡ비유하자면ㅡ어제의 공연은 '추억'을 다시 반추하고 '전설'을 다시 확인한다는 의미에서 나에게는 너무나 뜻깊은 것이었는데, 주다스 프리스트의 내한 공연을 기념하면서 '지극히 개인적인' 그들의 최고 앨범 8장의 목록을 만들어본다:

Sad Wings of Destiny (1976)
"Victim of Changes"와 "The Ripper"를 수록하고 있는 주다스 프리스트의 '출세작'. 내가 이 앨범을 처음 LP로 샀을 때는 '금지곡'이 있던 시절이라 "The Ripper"는 누락되어 있었다(소위 '빽판' 시절의 추억이 슬그머니 밀려오기도 한다). 헤비 메탈의 '전형'을 정립하기 직전, 다소 '풋풋한' 정취를 머금은 그들의 음악을 들을 수 있다.

Stained Class (1978)
명곡 "Exciter"와 동명 타이틀 곡을 수록하고 있는 주다스 프리스트의 4집 앨범. 마치 클래식 음악에서 9번 교향곡에 대한 일종의 '징크스'가 존재하듯, 하드 록/헤비 메탈 음악에서는 밴드의 4집 앨범이 최고의 음반이라는 '통설'이 존재해왔다. 이 앨범을 그들의 최고작이라고 말하기에는 다소 부족한 부분이 있지만ㅡ게다가 이 앨범에 수록된 "Better by You Better than Me"가 어떤 청소년의 자살을 부추겼다는 부모들의 소송으로 인해 주다스 프리스트는 법정에 서게 되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ㅡ바로 다음 앨범 <Hell Bent for Leather>로 가는 가교 역할을 하는 형식을 완성시켰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내게 예나 지금이나 이 앨범의 압권은 "Beyond the Realms of Death".

Hell Bent for Leather (1979)
주다스 프리스트의 정체성(identity)을 확립시킨 대표작 중의 하나(번쩍거리는 검은 가죽옷을 입은 헤비 메탈의 이미지는 여기서 완성된다). 헤비 메탈의 송가가 되어버린 동명 타이틀 곡은 물론이고 한국 팬들에게는 더욱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는 "Before the Dawn", 공연의 백미와 절정으로 연주되곤 하는 "The Green Manalishi" 등의 곡들을 수록하고 있다.

British Steel (1980)
명실 공히 주다스 프리스트의 대표작. "Breaking the Law", "Metal Gods" 등 헤비 메탈 팬이라면 누구나 제목만 들어도 바로 아는 곡들을 수록하고 있는, 주다스 프리스트를 확고히 '메탈의 신'으로 정립시킨 헤비 메탈의 교과서와도 같은 앨범이다.

Screaming for Vengeance (1982)
개인적으로 이 앨범과 그 다음 작품인 아래 <Defenders of the Faith> 앨범은 일종의 '배다른 쌍생아' 같은 연작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며 주다스 프리스트의 최고작으로 꼽고 있다. 이 두 앨범에서 주다스 프리스트는 그들이 헤비 메탈을 통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 어느 앨범보다도 먼저 일청(一聽)을 권한다. 동명 타이틀 곡의 유려하고도 직선적인 형식미와 완성도는 일단 차치하고서라도, 앨범의 시작을 여는 접속곡 "The Hellion"과 "Electric Eye", 그리고 "Riding on the Wind"와 "You've Got Another Thing Coming" 등 그들의 '대표곡'이자 '최고작'들을 수록하고 있다.

Defenders of the Faith (1984)
메탈리카(Metallica)와 메가데스(Megadeth) 등으로 '분화'한 소위 스래쉬 메탈(Thrash Metal)의 효시를 느낄 수 있는 작품으로 개인적으로 평가한다. 가속을 밟은 읊조림과도 같은 샤우트 창법이 인상적인 "Freewheel Burning"도 압권이지만, 무엇보다 이 작품은 헤비 메탈의 고전 "The Sentinel"을 비롯하여 명곡 "Love Bites", "Eat Me Alive" 등을 수록하고 있는, 말하자면 '버릴' 곡이 하나도 없는 '꽉 찬' 앨범이다.

Painkiller (1990)
설명이 따로 필요 없는, 헤비 메탈의 또 다른 고전이 되어버린 동명 타이틀 곡으로 가장 유명한, 명실상부 주다스 프리스트의 90년대를 대표하는 음반이다. 롭 핼포드의 지치지 않는 고음역의 창법, 드러머 스콧 트래비스(Scott Travis)의 가입ㅡ주다스 프리스트의 '약점'으로 자주 언급되곤 하던 드러머의 '부재'는 트래비스의 등장으로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었는데ㅡ으로 더욱 속도감이 붙은 이들의 강력하고 아름다운 헤비 메탈 리프들 속에서, 말 그대로 '어두운 불꽃'이 폭발적으로 작렬한다.

Angel of Retribution (2005)
한 동안 롭 핼포드가 빠진 상태에서도 주다스 프리스트는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핼포드가 부재하는 주다스는 진짜 '주다스'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이 앨범은 주다스 탈퇴 이후 90년대 중반 자신의 밴드 FightHalford 등을 통해 메탈 음악의 또 다른 행보를 모색하던 롭 핼포드가 다시금 주다스로 회귀하여 만들어낸 일종의 '부활'과도 같은 작품이다. 오랜만에 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명곡들을 폭포수처럼 쏟아내고 있는 앨범인데, 개인적으로는 "Hellrider"를 이 앨범의 최고 명곡으로 꼽고 싶다. 빠른 속도감에 덧붙여, 이들의 '전매특허'라고 말할 수 있는, 글렌 팁튼과 K. K. 다우닝의 트윈 리드 기타가 뿜어내는 아름다운 화음과 격정적인 이중선율을 실로 오랜만에 가장 성공적으로 구현해낸 곡이라는 생각에서이다. 그 외에도 "Deal with the Devil", "Revolution", "Angel" 등 놓치기 아까운 백미들을 가득 담고 있는 앨범.

이렇게 간략하게나마 돌이켜보니, 이들의 거의 40년 가까운 메탈 음악으로의 '외길' 정진에 새삼 고개가 숙여진다. 내가 이 자리를 차용해 더욱 높이 평가하고 싶은 멤버는 베이시스트 이언 힐(Ian Hill)인데, 그는 언제나 주다스 프리스트의 가장 구석 자리에서, 결성 때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밴드가 잘 될 때나 어려울 때나, 언제나 '신념'을 잃지 않은 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왔다. 주다스 프리스트의 모든 멤버에게는 물론이거니와, 특히 이언 힐의 그 아름다운 '뚝심'에 새삼 큰 박수와 환호를 보내고 싶은 소중한 마음이 생기는 이유이다.

5) 공연장에 들어가기 전 그 앞에서 우연히 선배 배우 한 분을 만났다. 아내와 어린 아들을 데리고 공원 산책에 나온 길이었다. 그 선배는 이렇게 말했다: "무슨 공연이길래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가 했더니, 주다스 프리스트였구나... 나도 고등학교 때 정말 열심히 들었는데..." 음악을 연극만큼이나 사랑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이 선배의 말 한 마디가 나를 슬며시 미소 짓게 했다. 이렇게 다양한 세대가 주다스 프리스트라는 한 밴드의 공연에 모여 제 각각 그 음악과 함께 했던 자신의 추억과 열정을 소진하고 분출하며 다시금 기억하고 또한 소중히 보듬어내고 있었다. 공연 자체보다도, 그러니까 나의 유년기 역시 지배했던 이 '전설'의 밴드가 이땅에서 공연했다는 사실 자체보다도, 이 많은 사람들이 모두 각각 그리고 또한 모두 함께 만들어내고 있는 저 풍경이 나에게는 더욱 감동적이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내가 '너무나 늦게 도래한' 이 주다스 프리스트의 내한 공연에 특별히 더 감사하는 이유이다.

ㅡ 襤魂, 合掌하여 올림.







알라딘 앨범 검색을 위한 이미지 모음:

     

     


댓글(43)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08-09-22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끙. 람혼님의 유년기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이 그룹이 제게는 왜 낯선 이름인걸까요. 노래제목도, 앨범자켓도 제가 아는 건 하나도 없네요.

아, 물론 람혼님의 서재에 있는 책들도 다 제겐 낯설지만 말입니다. ^^;;

람혼 2008-09-22 22:40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헤비 메탈이 다소 '협소한' 장르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다락방님 서재에서 더 좋은 것 많이 '훔쳐보고' 있는 사람인데요.^^

드팀전 2008-09-22 1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좋으셨겠네요.
맴버가 그대로 인가봅니다. 롭 헬도프, 글렌 팁튼- KK다우닝..오랜만에 들어보는 이름이지만 여전히 입에 익군요.
전 주다스 프리스트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저 음반 자켓들은 모두 익숙합니다. 예전에 잡지 중에 <음악세계>라는게 있었는데-간혹 전영혁씨도 글을 썼던- 그 때 주다스프리스트 특집에서 저 음반들 중 7-80년대 것들은 꽤나 자세히 소개되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나저나 람혼님도 저랑 비슷한 연배인가 봅니다.ㅋㅋ

람혼 2008-09-22 22:43   좋아요 0 | URL
드러머를 제외하고는 원년 멤버들이 아직도 꾸준히 함께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이 주다스 프리스트의 또 다른 매력인 것 같습니다. 롭 핼포드, 글렌 팁튼, K. K. 다우닝, 이언 힐... 모두 정말 '추억'의 이름들이자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기도 한 이름들이죠. 저도 비슷한 음악 잡지들을 보면서 자라나긴 했지만, 제 느낌에는 드팀전님보다 제가 한참 어릴 것으로 생각되는데, 아닐까요? ^^;

드팀전 2008-09-23 09:16   좋아요 0 | URL
^^ 그런가요. 전 30대인데 람혼님은 20대인가?
아니면 비슷한 연배네요.ㅋㅋ

람혼 2008-09-23 13:57   좋아요 0 | URL
아, 그렇게 본다면 '비슷한' 연배겠군요.^^

마늘빵 2008-09-22 1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오... 공연도 공연이겠지만 후기가...

람혼 2008-09-22 22:45   좋아요 0 | URL
후기가... 어떻다는... 말씀인지... 정말로... 궁금합니다...^^

로쟈 2008-09-22 2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탈키드의 뜨거운 고백서네요.^^

람혼 2008-09-22 22:46   좋아요 0 | URL
뜨거운 흥분을 일부러 좀 자제해서 쓰려고 애썼는데, 들켜버렸군요.^^

qualia 2008-09-23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람혼 님, 주다스 프리스트(Judas Priest)의 활화산 같은 공연 열기가 그대로 전해지는군요. 저는 람혼 님의 공연 후기만으로도 그 폭발하는 열광의 도가니 속에 잠시 휩쓸린 기분입니다. 주다스 프리스트의 서울 공연 실황이 벌써 유튜브에 몇 개 올라와 찾아 봤는데요. 정말 대단하네요. 우리나라 팬들 말이에요.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정말 정열적입니다.

저는 외국 헤비 메탈 (혹은 하드 롹) 밴드의 폭발적이면서도 유려한 연주와, 한계를 넘어 포효하는 고음의 보컬을 보고 들을 때마다, 우리나라 밴드들의 저와 같은 환상적인 공연은 언제 볼 수 있을까 하고 한탄하곤 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가 주다스 프리스트(Judas Priest), 메탈리카(Metallica), 판테라(Pantera), 스콜피온스(Scorpions) 따위와 같은 순 한국 롹 밴드를 가져보는 것은 아직도 요원한 듯합니다. 드럼이나 기타 연주도, 보컬도 우리의 롹커(록커)들은 아직도 기교와 힘, 그리고 규모(웅장함)에서 모두 현저하게 딸리는 게 사실인 듯합니다. 저는 정말 롹 음악을 들을 때마다 한편으로는 열광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매우 아쉬워하곤 합니다.

초식동물(아시아의 한국인들)과 육식동물(서양의 백인들)의 원초적인 차이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체질이 육식성인 저 기름덩이 백인들은 그 목청이 매우 질기고 탄력적일 것입니다. 그 타고난 강력한 목청으로 샤우팅이나 그라울링 창법 따위와 같은 보컬 기교들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것이겠죠. 그러나 원래가 초식성인 한국인 롹커가 샤우팅이나 그라울링 창법을 구사하면, 어쩐지 좀 안쓰럽거나, 듣는이가 좀 불편하거나, 귀에 거슬리는 때가 많은 것이 사실이죠. 그렇다면 우리는 정말 헤비 메탈 밴드다운 한국의 헤비 메탈 밴드를 정녕코 대망할 수는 없는 것일까요?

그리고 제가 우리 한국 (대중) 음악에 대해 불만인 점 한 가지는, 소위 “뽕짝”류 음악의 타성과 안일함과 비창조성(혹은 무창조성)이 음악 장르 전반에 너무 짙게 드리워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른 분들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초중고 시절부터 한국의 이 뽕짝류 음악이 전혀 듣고 싶지 않았습니다. 음악적 취향인지 모르겠으나, 그 창법이나 연주 형태 모두 께느른하고, 젊은 사람들한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음악으로 여겨졌습니다(건방지고 무식한 소리인 줄 압니다만). 만약에 우리 고유의 대중 음악을 정립 · 정의한다면, “뽕짝”은 전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정체성이 지극히 불분명한 듯합니다.

제 생각엔 한국 대중 음악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것의 하나가 바로 타성에 젖을 대로 젖은 무사안일한 장르(뽕짝도 하나의 장르라고 한다면)인 뽕짝 혹은 “트로트”라고 생각합니다. 나아가서 한국에서 본격적인 정통 롹이나 헤비 메탈 음악이 거의 출현하지 못하거나, 조금은 미흡한 형태로밖에 (음악계 분들한테는 매우 죄송한 말씀이지만) 출현하지 못하는 하나의 큰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뽕짝류 음악의 영향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직간접적으로 매우 크다고 봅니다.

최근 20년 만에 재결성한 한국 롹(메탈) 밴드 “백두산”의 보컬 유현상 씨도 초창기 때는 트로트(뽕짝류)를 그렇게 싫어했다는군요. 절대 그런 것은 부르지 않으리라 했을 정도로요. 왜 정통 헤비 메탈 롹커라는 그런 자존심이 있잖습니까. (이에 대해 가수 본인이 직접 어떤 티브이 토크쇼인가 가요쇼에 나와서 밝혔던 것으로 압니다.) 그런데 그런 유현상 씨도 제9회 뉴델리 아시안 게임(1982년) 수영 3관왕 최윤희 씨와의 결혼을 전후해서 결국은 뽕짝을 부르게 되더군요. 이 사실은, 헤비 메탈 롹커를 자처했던 유현상 씨조차도 사랑에 빠지게 된 것을 계기로 결국은 롹 대신 뽕짝 연가를 부름으로써, 뽕짝류의 음악적 정서가 한국인 음악가들의 심성 속에 깊숙이 스며들어가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점을 잘 말해주는 것이라 봅니다. 저는 백두산 보컬 유현상 씨의 뽕짝 사례가 사랑에선 진보일지라도, 음악적 측면에서 퇴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음악의 장르 각각을 서로 우열 비교한다는 것은 어불성설(난센스)에 가까울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뽕짝이 전혀 독창적이지 못한 형태로 연주되고 불리는 실태를 볼 때, 그것이 우리 대중 음악 전반의 비창조성, 무상상력, 제자리 걸음 혹은 퇴보에 한 가지 큰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점은 분명한 듯합니다. 바로 이러한 부정적 형태의 뽕짝의 잔재가 한국 롹 음악에도 스며들어가 있다는 것이 제 판단입니다.

람혼 님, 흥미진진한 주다스 프리스트 공연 후기, 정말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008. 09. 23. 화. 10:43)

yoonta 2008-09-23 12:39   좋아요 0 | URL
트로트(뽕짝)하시는 분들이 보면 좀 기분나빠할 만한 내용이네요..
그래도 어쩔수없이 공감되는 부분이 있네요..^^
저도 한때 트로트는 음악이 아니고 쓰레기라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어서요. 지금은 뭐 "저런 음악도 듣고 즐길수도 있군"하는 아량?은 생겼지만요.

람혼 2008-09-24 14:41   좋아요 0 | URL
고대하고 고대했던, 굶주리고 굶주렸던 공연이어서 그랬는지, 관객들은ㅡ저를 포함해서ㅡ모두 '한풀이'를 한 판 벌이는 느낌이었습니다. 아무래도 그 열기가 사뭇 특별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겠지요... 주다스 오빠들이 깜짝 놀라고 갔을 거예요.^^

'우리나라에는 언제 저런 밴드가...?!'라는 질문의 형식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생각해봐야 할 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Led Zeppelin, Deep Purple, Black Sabbath, Judas Priest 등 70~80년대 하드 록/헤비 메탈 음악의 수혜를 입어 번성했던 과거 한국의 '그룹 사운드' 문화를 돌이켜볼 때, 그것은ㅡ임화의 저 유명한 표현을 차용해보자면ㅡ'이식된' 음악 문화에 다름 아니었으니까요. 비유하자면, 미국발 금융 위기와 국제 유가 급등에 따라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리는 한국 경제와 마찬가지로, 아시다시피 록 음악에 있어서도 언필칭 이른바 '외세적' 요소를 언급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는 것이 오히려 '현실'이겠죠. 기본적으로 록 음악의 유입과 향유ㅡ그리고 그것에 기반한 '재창조'까지도ㅡ는, 현재는 물론이거니와 과거에도, 세계 시장 구조가 지닌 어떤 '제국주의적' 근대성 그리고 거기서 파생하는 또 다른 구조인 '남북 문제'에 기반하고 있었던 측면이 다분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언제나 모든 '뮤지션'들의 궁극적 목표는 이른바 '미국 무대 진출'이었고, 예를 들어 카네기홀에서 공연이라도 한 번 할라치면 거기에 너무나 쉽게도 '본토 무대 상륙'이라는 상찬을 덧붙이게 되는 것이었죠. 그러므로 음악 산업의 측면에서 볼 때 이러한 '유사-식민지적' 상황에서 단순히 '우리나라에서는 언제 저런 밴드가 출현할 수 있는가'를 묻는 것은 어쩌면 자칫 저 '본토'와 '식민지' 사이에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를 간과할 수 있는 위험도 포함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비슷한 의미에서ㅡ초식과 육식의 비유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ㅡ음악에 관한 인종적 연결점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분명 음악에는 특정한 민족성 내지 인종성이 작용합니다. 예를 들어 컨트리/하드 록/헤비 메탈 등은 백인 음악, 블루스/재즈/소울/랩 등은 흑인 음악이라는 식으로 말이지요(어쩌면 엔카는 일본 음악, '뽕짝'은 한국 음악... 이런 식도 가능하겠지요). 저 같은 경우에는 이른바 '한국적 록 음악' 따위의 수사법은 별로 신뢰하지 않는 편입니다. 그것이 가능한가, 가능하다면 어떻게 가능한가 등의 문제와는 별개로, 이른바 국적(nationality)을 표현하는 수식어와 음악 장르를 가리키는 명사 사이의 결합은 그 자체로 어떤 '오해'와 '편견'을 강화시키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라는 개인적인 이유에서입니다. 우리가 쉽게 만들어내고 흔히 사용하고 있는 어떤 분류법의 체계ㅡ예를 들어 여기에는 'J-Rock' 또는 'K-Rock' 같은 규정어도 속할 텐데ㅡ는, 마치 프리미어 리그와 케이 리그의 구분 사이에서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전제하고 있는 것처럼, 역시나 은연중에 음악의 이식적이고 식민지적인 속성을 전제하고 있고 또 전제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뽕짝'을 생각해보면, qualia님 말씀대로 '뽕짝'이야말로 가장 '정체성'이 불분명하고 모호한 음악 장르임이 분명하지만, 바로 그런 만큼, 딱 그만큼, 반대로 '국적'에로의 귀속 욕망이 가장 강한 장르이기도 합니다. 저도 '뽕짝'에 대해서 소위 말하는 '신토불이'식 접근법으로 다가가는 것을 매우 경계하는 편입니다. 다만 제가 이 자리를 차용해 잠시 언급하고 싶은 것은 우리의 저 '개인적인 [음악적] 취향'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일까, 또는 무엇이었나 하는 물음입니다. '뽕짝'에 대해 '록'이 지니게 되는 어떤 '우월성', 기성 세대의 판에 박히고 진부한 음악적 '몰지각'을 비웃고 비판하는 '록' 음악의 어떤 도덕적 우월성... 저 또한 유년 시절에 이러한 감정들을 경험해본 사람으로서, 이 문제는 다른 것이 아닌 바로 음악의 '진정성'이라는 담론에 직접적으로 연결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 '진정성'의 담론이 허구라고 논파하는 것은 오히려 쉬운 일입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더욱 중요한 문제는 이러한 '진정성'의 문제 설정이 사회 안에서, 장르들 사이에서, 그리고 한 개인의 '내면' 안에서 어떻게 구성되고 어떻게 재생산되고 있는가 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식민지적 근대성, 문화의 이식성, 국적과 음악의 관계라는 문제에 대해서 다시금 여러 번 생각하고 고민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qualia님이 말씀하신 '뽕짝' 장르 안에서의 타성은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라고 저 또한 생각합니다. 약간 다른 점은, 제가 그 '타성'이라는 것이야말로 바로 '뽕짝' 장르의 핵심을 구성한다고 생각하는 것인데요, 저는 이 '뽕짝'의 타성이 혁파되어야 하거나 쇄신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하진 않습니다. 이 '뽕짝'의 타성이란 실제로 여러 가지 측면에서 분석될 수 있을 텐데요, 일단 생각나는 대로 예를 들자면, 가사 등에서 드러나는 연애와 사랑에 대한 '현실타협적'이고 '체제긍정적'인 시각들, 인생에 대한 관조적이고 허무적이며 현실중심적인 자세 등을 가장 먼저 예로 들 수 있겠지요. 하지만 이런 것들이 '[음악-]정치적으로' 혁신되고 타파되었을 때 남는 것이 여전히 '뽕짝'이고 '트로트'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가장 최근에 젊은 층에게까지 트로트 붐을 일으켰다고 평가되는 장윤정의 경우 그의 최고 히트작 "어머나"의 가사에서 드러나는 남성과 여성의 관계 역시 지극히 진부한 '뽕짝'적 사랑의 담론을 반복하고 있는 수준이라고 말할 수 있겠죠. 하지만 그 곡은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습니다. 이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또 하나의 예를 들자면, 제가 개인적으로 너무나 좋아하는 심수봉의 노래들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심수봉의 음악이 정말 '그렇고 그런 뽕짝'일 뿐일까 하는 물음에 직면하게 되면 그에 대답하기가 개인적으로 매우 어렵습니다. 심수봉의 음악은 일견 기존 뽕짝의 문법과 속성을 모두 담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 반면에 그러한 요소들로부터 이탈하는 성격 또한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심수봉의 '이탈적' 성격은 단순히 '뽕짝' 자체의 진부한 정치성을 논하는 것만으로는 설명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이를 통해 더 나아가 미루어보자면, 저는 개인적으로 '한국 대중 음악'의 '정체성'을 논하는 맥락에서 고려될 요소들이 실로 다층적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백두산이 최근 재결성한 지는 정말 몰랐네요. 약간 가슴이 설레기도 하는데요, 백두산의 '카리스마 보컬' 유현상이 "여자여~" 하면서 트로트를 들고 나왔던 장면은 어린 저에게는 정말 '충격'이었다는 기억 한 자락이 새삼 떠오릅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 그것은 '한국인 음악가' 안에 '보편적으로' 흐르고 있는 어떤 '뽕짝'의 정서(mentality)를 증명한다기보다는, 오히려 이른바 '성인 음악'으로 분류되는 음악의 산업성과 상업성의 측면에 대한 적극적인 고려의 결과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유현상은 매우 명민하고 기민한 작곡가입니다. 백두산의 리더로 가장 유명하긴 하지만, 가수 이지연을 키워내 많은 곡을 써주기도 한 작곡가이자 기획자이기도 합니다. 그런 그가 그 시점에서 트로트를 '선택'한 것은ㅡ물론 최윤희와의 '사랑'도 고려해야겠지만ㅡ배우자와의 '결혼'이라는 지극히 경제적인 문제를 고려했을 때 국내 음악계에서 음악-산업적으로 가장 효과적인 결과를 예상할 수 있는 결정이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이는 단지 유현상의 '변절'ㅡ'정절'과 '변절'이라는 이분법이 가능한 것 역시 바로 저 록 음악의 '진정성'이라는 담론 덕분이죠ㅡ이라기보다는, 그의 다양한 음악적 스펙트럼 안에서 그 시기에 '적합하게' 선택된 하나의 상업적 전략이자 시장적 선택이라고 보는 것이 더 옳을 듯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음악 장르 사이의 우열을 비교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뽕짝'과는 무관하게 현재 한국 대중 음악계 안에서 자주 목격되곤 하는 '비창조성', '무상상력', '몰정치성'은 저 역시 문제가 많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뽕짝'의 잔재가 한국 록 음악에 스며들어가 있는가 하는 문제, 아니 그보다 앞서 '뽕짝'에 있어 과연 '잔재'라고 하는 가치비판적 용어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제가 앞서 말씀드린 모든 문제들을 함께 고려할 때에야 비로소 겨우 그 답의 언저리에 가 닿을 수 있는 복잡다단한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단순한 '진정성'의 담론이 궁색해지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겠죠. 또한 단순히 '진정성'의 담론을 비판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그러한 담론이 어떻게 가능하고 어떻게 작동하게 되는가에 대해 치열히 생각해야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후기 잘 읽어주셨다니 저로서도 참 기쁩니다.^^ 제가 오히려 감사드립니다.

yoonta 2008-09-23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탈키드인 람혼님이 부른 텔미버전도 인상적이었답니다.^^

주다스프리스트공연은 못갔지만 Renata Suicide의 공연은 꼭 한번 가보고 싶네요..^^

람혼 2008-09-23 13:59   좋아요 0 | URL
Renata Suicide는 당분간 쉬고 있지만 공연을 재개하게 되면 yoonta님께 가장 먼저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드팀전 2008-09-23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qualia님의 글은 유현상의 변절기에 분노했던 사람들 중 하나로 '동시대적인 공감'은 갑니다. 그런데 왜 반박을 하고 싶은 걸까요. 흐흐흐
박성봉 교수는 '뽕'끼가 없으면 대중음악이 아니라고 했는데...^^

굳이 '트로트'장르에만 국한 시킬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대중음악이라는 것 자체가 하나의 트랜드를 모방하면서 자기확장하는 경향성이 있다는 점을 간과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오래 지속되어 화석화되면 당연히 음악발전에 장애가 되겠지요.그런데 대중들은 또 그런 자기복제에 반발을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과거의 것에 향수를 느끼면서도 새로운것이 나오면-물론 그것도 언젠가는 같은 운명에 처할- 관심을 돌리지요.
트로트라는 것을 하나의 단일한 것으로 보시는 듯 한데, 이것은 트로트를 너무 단순화하시는 건 아닐까 싶습니다. 트로트 역시 진화합니다. 한편에서는 작은 차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요. 예를 들어 배호의 트로트와 나훈아의 트로트가 다릅니다. 시대적 정서를 반영하는 차원도 있겠지만 기본적인 음게는 비슷하더라도 다르다는 것이지요. 또한 나훈아의 트로트와 최근에 나오는 장윤정의 트로트가 또 미묘한 차이가 있습니다. 장윤정의 '뉴 트로트'가 인기를 끌자 그것과 유사한 젊은 트로트 가수들이 무리를 지어 나오고 있습니다. 현빈이나 한영 등등등.
그런데 이게 '트로트'의 자기복제에만 해당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컴퓨터의 활용이 음악에 도입되면서 '댄스음악'에서 자기복제는 한 곡을 5분 내에 만들수도 있는 단계에 들어섰다고 합니다. 대중음악 전체에 걸려 있는 문제겠지요. 이것을 '뽕짝'으로 환유한다면 이해는 갑니다만 '뽕짝'에게 너무 가혹한 대접인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수년 전에 아일랜드의 유명한 가수 누군가 그런 말을 했는데..U2의 성공이후 아일랜드의 밴드들은 다 U2의 모방이거나 비슷하게 하려고 한다..라는 식으로 말이지요.
정통 락이나 정통 메틀에 대한 갈증은 이해합니다만...도대체 대중음악에서 '정통'이란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생각합니다.
제 생각에는 '뽕'의 문제는 아니라 대중음악의 고유한 속성과 관련된 일은 아닐까요? 한국의 문화적 상황을 보자면... 결국 서구 대중문화를 뒤늦게 쫓아가려는 입장이다 보니 뭘해도 어설플 수 밖에 없구요.쉽게 '매너리즘'에 빠져들기도 하구요...창의성의 결여는 사회적 분위기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듯 합니다.

람혼 2008-09-23 14:07   좋아요 0 | URL
방금 qualia님의 댓글에 다시 긴 댓글을 달고 숨을 고르고 있는 중이었는데, 그 사이에 드팀전님도 댓글을...^^; 드팀전님의 기본적인 생각도 저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심지어 남진과 나훈아의 트로트도 서로 다른데, 배호와 나훈아의 차이야말로 제 기준에서는 거의 록과 랩의 차이처럼 느껴지기도 하고요.^^ '정통'이라는 문제 역시 '진정성'이라는 문제의 또 다른 판본이 아닐까 합니다. 이와는 별개로, 지극히 '은유적'인 의미에서, 저 개인적으로는 모든 매력적인 음악에는 '뽕끼'가 있어야 하고 또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ㅎㅎㅎ

PhEAV 2008-09-23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이런저런 논평에 앞서서 너무너무 부럽습니다. ㅠ,.ㅠ
(하지만 이 글을 읽고 나니 아무튼 제가 아직 어리긴 어리다는 생각도 -,.-;;)

람혼 2008-09-24 04:16   좋아요 0 | URL
부럽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처음 뵙는 것 같아요, 반갑습니다.
(그런데 이 글이 특별히 K군님을 어리다고 생각하게 만든 이유가 있는지요...?)

urblue 2008-09-24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많이 망설이다 포기한 쪽입니다. 님의 후기를 읽다보니 후회가 무럭무럭...
당장 유튜브를 찾아봐야겠습니다.
저 British Steel의 자켓을 한동안 제 서재 이미지로 썼습니다만, 들르시는 분들이 무섭다고 하시는 통에 바꾼 일이 있습니다. ^^

람혼 2008-09-24 14:39   좋아요 0 | URL
하하, 무서워 하실 만도 하죠... 저 앨범 표지를 볼 때마다 저는 개인적으로 작두를 타는 무당의 어떤 서슬 퍼런 '단호함' 같은 것이 떠오릅니다.^^ YouTube뿐만 아니라 Daum이나 Naver에도 영상들이 많이 올라와 있는 것 같더라고요.

노이에자이트 2008-09-26 1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트로트는 끝무렵이 모두 비슷해요.음을 더 이상 다양하게 못만드는 것 같죠? 그래도 남진,나훈아,배호가 노래는 잘하지요? 남진이나 나훈아도 뽕기가 섞여있긴 해도 슬로우 장르도 있는 거 같아요.유현상이 작곡한 이지연 노래는 다 좋더라구요.이지연 누나 정말 이뻤는데...이제 마흔 정도 되었겠네요.

람혼 2008-09-26 20:26   좋아요 0 | URL
노이에자이트님, 안녕하세요. 글로는 몇 번 뵈었는데, 이렇게 인사 드리기는 처음이네요, 반갑습니다. 트로트도 기본적으로 5음 음계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음악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한계가 있겠죠. 7음 음계도 한계가 있어 12음으로 갔고, 12음에도 한계를 느껴 미분음으로 나아가는 판이니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남인수처럼 약간 높은 톤의 음색을 좋아하지만 배호, 남진, 나훈아 오빠들 모두 노래는 정말 정말 잘 하시죠.ㅎㅎ 당시 이지연은 자신의 청순한 이미지에 덧붙여 전영록과 유현상 등 정말 실력 있는 싱어송라이터들의 곡 덕분에 대중적인 면에서나 음악적인 면에서나 아주 좋은 가수로 기억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얼마 전에 실로 오랜만에 원준희가 컴백했다고 해서 너무 너무 기뻤지요.^^ 그나저나 '노이에자이트'라면, 아마도 저 유명한 신문 'Die neue Zeit'에서 따오신 것이겠지요?

노이에자이트 2008-09-27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너무 전문적으로 들어가셔서 음...음계 이런 건 잘 몰라요.람혼 님은 갑자기 임진모 씨로 변한 것 같아요.국내외 대중음악에 모두 통달하신...남인수 씨 목소리는 모창가수들이 많아서 구별하기가 좀 힘들더라구요.배호,남진,나훈아에 대해선 최근 인터넷을 통해 젊었을 때 취입한 노래를 알게 되었어요.목소리가 정말 좋더라구요.그들도 나이들고 나니 확실히 음색이 좀 탁해진 것 같아요.근데 원준희 누나가 재기에 성공할까요? 세월이 많이 지났는데...독일 사회민주당에서 룩셈부르그-베른슈타인 논쟁,그리고 카우츠키가 주도한 농업논쟁이 기관지인 노이에자이트 지를 통해 벌어져서 그에 관련된 책을 사고 난 다음 이름이 멋지다고 요즘 필명으로 써요.독일어는 단어는 어느 정도 아는데 그 외에 독해 작문 회화는 안됩니다.
저도 람혼 님처럼 멋진 음악 평론을 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

람혼 2008-09-27 16:19   좋아요 0 | URL
임진모는 개인적으로 별로 안 좋아하지만, 과분한 칭찬에 감사드립니다. 어쨌거나 저도 나름 음악비평(?)으로 등단했던 사람이지만(쓰고 보니 '나 이대 나온 여자야'와도 같은 삘이...), 저는 단지 '1급 독자'가 되고 싶은 마음만 앞서는 '3류 난독증(dyslexia) 환자'나 '난청 환자'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항상 해오고 있습니다. 이 후기도 단순한 감상의 정리에 지나지 않죠.
원준희의 '재기'는 생각도 기대도 하지 않는 것이지만ㅡ이는 원준희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내 음악산업의 '구조적' 문제일 텐데요, 이런 형태의 '컴백'이 '대박' 나기는 아무래도 좀 힘들 것 같습니다ㅡ, 그냥 준희 언니의 컴백 자체가 너무 반가워서 개인적으로 자주 이용하는 온라인 상점 보관함에 이번에 나온 싱글 CD를 그냥 담아두기만 하고 있습니다(구매 버튼을 클릭할 지는 아직 미지수이지만요...^^).
얼마 전에 노이에자이트님 서재에 가서 글들을 쭉 훑어봤는데요, 해박한 지식과 깔끔한 문체로 무장한 적당한 분량의 글들이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특히나 '근대' 한국의 문제와 관련된 인물들의 이야기가 개인적으로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그런데 원준희를 '누나'라고 하시는 것을 보면 제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연소'하신 것 같습니다^^). 이 자리를 차용해 감사 인사 한 자락 올립니다. 앞으로도 글 감사히 잘 읽겠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9-27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 이대 나온 여자야...하는 대사...유행이군요.음...음악비평을 하셨군요.역시...
저는 몸매는 20대구요(배가 안나오고 담배 냄새 안 나요)얼굴은 10대인데 보약먹은 부작용이 난 10대.정신연령은 당연히 10대구요,제 싸이홈피엔 한때 10대들만 왔어요.지금도 홈피방문객은 29살이 제일 고령이죠.제가 누나라고 부르는 여인들은요...이연희,하지원,보아,윤하,윤아,티파니,소희,왁스,박정현,유미...등등...소개팅 분위기네요...하하하...상상만 하세요.

람혼 2008-09-28 00:02   좋아요 0 | URL
'나 이대 나온 여자야'는 사실 이제 좀 유행이 지난 대사죠.^^ 일단 묘사하신 대로 상상해보려고 했는데 자료들의 해석에 뭔가 오작동(?)이 일어나는 듯 상상하기가 힘듭니다.^^; 그나저나 앞뒤로 배치되어 있는 인물들의 면면을 함께 살펴볼때 저 '티파니'는 제가 아는 'Tiffany'ㅡ한때 Debbie Gibson과 함께 미국 팝음악을 주도했던 무서운 10대의 쌍두마차(?) 중 하나ㅡ는 아닌 것 같군요.^^ 자 그럼 대강 소개는 끝났고... 취미는요?ㅎㅎ(소개팅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서, 어색하네요...^^;)

노이에자이트 2008-09-28 1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티파니가 아닙니다.80년대의 그 티파니는 이제 마흔 정도 될 것 같구요...제가 말하는 티파니는 소녀시대의 티파니(본명 황영미)를 말하죠.나머지 누나들은 대충 아시겠죠?
취미,고향...신상명세서 조사하는 듯한 소개팅인가요? 분위기 묘하네요. 음...언젠가 제 사진이라도 한 번 올려야겠군요.담배 안하고 규칙적인 생활과 식사를 유지하면 배 안 나오고 허리선이 나온답니다.저처럼요.좋은 버릇이 하나 있는데,버스 탈 때 기사가 인사하면 저도 인사하구요,서비스 업종에 종사하는 직원들에게 존대말을 쓰는 거에요.그리고 고속버스 요금소에서 통행료 받는 사람들이 감사합니다,하면 수고하세요 인사하지요.저는 착하니까요.

람혼 2008-09-28 18:30   좋아요 0 | URL
그 좋은 버릇은 저랑 비슷한데요?ㅎㅎ 착하실 뿐만 아니라 순진하기까지 하시네요.^^

노이에자이트 2008-09-30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맑기도 하구요...

람혼 2008-10-01 11:14   좋아요 0 | URL
좋은 가을 날씨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10-01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은 좀 덥군요.다시 찬물 목욕했어요.저는 겨울에도 찬물 목욕한답니다.건강을 위해서죠.

람혼 2008-10-02 00:02   좋아요 0 | URL
겨울에도 찬물로 씻으시는 건 저와 비슷하군요. 전 '건강을 위해서'라는 생각은 딱히 없지만요...

노이에자이트 2008-10-02 1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기가 잦았는데 누가 찬물목욕하면 좋다고 해서 이를 악물고 첫해를 감행했더니 괜찮더라구요.10년 좀 더 된 것 같아요.

람혼 2008-10-03 12:33   좋아요 0 | URL
이쯤 되면 노인네(?)의 건강 상담 같기도 하지만, 냉수마찰이 생각보다 참 괜찮습니다.^^ 잔병 앓으시면 안 되죠, 지금처럼 항상 건강하시길.

노이에자이트 2008-10-03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인네의 건강상담...하하하...사실은 신체보다 정신이 더 일찍 늙죠.특히 새로운 것을 보고 호기심이 나서 알아보려고 하면 아직 정신이 젊은 것이고 새로운 것.생소한 것을 싫어하고 짜증내면서 대하면 늙은 징조라고 하더라구요.

람혼 2008-10-05 02:00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저도 정신의 '노화'를 언제나 경계하겠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10-05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증상은 우리나라엔 남자들이 다른 나라에 비해서 더 심하다고 하네요.하기야 이제 막 제대한 소년 티를 갓 벗은 20대 초반의 사내들이 노화의 징조를 보이는 경우를 꽤 자주 보지요.

람혼 2008-10-05 19:10   좋아요 0 | URL
연령층에 따른 정치적 성향을 국가별로 평가하는 통계에는 별로 신뢰를 두지 않는 편이지만, 저도 상당히 어린 편인데, 가끔씩 제 이후 세대가 지닌 '끔찍한' 보수성을 느낄 때마다 조금은 걱정되는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걱정하는 마음' 자체가 또 다른 '노화'의 징조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요. 다른 사람의 노화든 자신의 노화든, 일단 '노화'를 걱정하기 시작하는 것이 또 다른 '노화'의 조짐이지 않을까 하는, 그런 또 다른 '걱정'일까요? ^^ 어쨌든 20대 초반의 남자들이 노화의 징조를 보이는 건 그들 자체가 '겉늙었기' 때문만은 아니겠죠.

노이에자이트 2008-10-07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치적인 진보 보수가 아닌,권위주의적인 질서나 인습에 20을 갓넘은 이들이 순응하는 속도가 빠르다는 사실이 안타깝습니다.나이에 따른 위계질서,성차별 등의 문제는 진보,보수를 가리지 않으니까요.

람혼 2008-10-08 23:42   좋아요 0 | URL
말씀 그대로입니다. 거기에 덧붙여 저로서는, 그러한 자신들의 강요된 '속도감'에 관해 성찰하지도 않고 사유하지도 않은 채 또 다른 습관과 인습에 빠져가는 이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ㅡ분노할 사치는 부리지도 못하고 다만ㅡ가슴이 아릴 뿐입니다. 하지만 이는 또한 제가 속한 세대의 이야기이기도 하기에 전혀 남의 이야기 같지 않습니다. 제 스스로를 돌아보고 신발끈을 다시 조일 뿐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10-10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습의 힘은 이념의 힘보다 강하니까요.20대가 그 정도니 30-40대가 되면 사실상 노년 세대와 같이 인습의 노예가 되는 이들이 많죠.아무래도 상대에게 말을 내리다 보면 잔소리하고 싶은 욕망을 통제하는 브레이크가 고장나는 것 같아요.상대보다 더 우위에 선 기분도 느끼게 되구요.

람혼 2008-10-13 02:32   좋아요 0 | URL
부정적인 의미에서든 긍정적인 의미에서든 '이념'이 그 자체로 '인습'이 되어버린 형태도 있을 것 같습니다. 목격할 수 있는 대부분의 경우가 실로 답답하기 그지 없는 부정적인 사례들이겠지만요. 마지막에 말씀하신 그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 저 역시 말을 내릴 수 있는 상대(?)에게도 절대 말을 내리지 않는 방식으로 제 나름 경계심을 갖는 편인데요, 함정이 '함정'이라고 불리는 이유가 아마도 따로 있는 것은 아닐 테지요.^^
 

   

▷ György Ligeti, Streichquartett No.2, Mainz: Schott.
▷ György Ligeti, Kammerkonzert für 13 Instrumentalisten, Mainz: Schott.

1) 죄르지 리게티(György Ligeti)의 폴리메터/폴리리듬 작곡은, 무질서를 질서화하는, 곧 질서의 무질서 혹은 무질서의 질서를 보여주는, 가장 뛰어난 형상화의 한 사례일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가장 먼저 두 작품을 살펴볼 수 있다. 연이은 해에 작곡된 <현악사중주 2번>(1968)의 3악장과 <13명의 연주자를 위한 실내협주곡>(1969-1970)의 3악장이 바로 그것이다. 두 작품의 악보는 모두 쇼트(Schott) 출판사의 '우리 시대 음악(Musik unserer Zeit)' 총서를 통해 출판되었다. 말 그대로 '일독'을 권한다. 다만, 여기서의 일독이란, 필시 '일청'과 함께 이루어져야 할 이른바 '공감각적인' 작업이겠지만 말이다.



▷ György Ligeti, Streichquartett No.2, ⓒSchott, p.17.

2)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사이에서 서로 교차하는 이러한 잇단음들의 증가와 중첩은, 연주가들에게는 고도의 집중력과 정확한 연주력을 요하는 것이겠지만, 청자에게는 하나의 덩어리로서의 '감각'을 선사할 뿐이다. 이런 식의 '분리된' 경험의 구성은 대편성 오케스트라를 위한 관현악곡인 1967년 작품 <론타노(Lontano)>에서도 마찬가지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인데, 일단 권하고 싶은 것은, 먼저 악보 없이 들어보라는 것, 그 다음에는 악보와 함께 '듣고 보라는' 것이다. 감각은, 무엇보다 일단, 연주와 감상의 분리, 청각과 시각의 분리 사이에서 오는 무엇이지만, 또한 무엇보다도 그러한 분리의 '감산'이 만들어내는 '가산' 혹은 '합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 György Ligeti, Streichquartett Nr.1/Nr.2, Arditti String Quartet(Wergo).
▷ György Ligeti, Ligeti Edition 1: String Quartets and Duets,
    Arditti String Quartet(Sony).



Neue Wiener Schule: Streichquartette
    LaSalle Quartet(Deutsche Grammophon)[4 CDs].

3)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는 <현악사중주 2번>의 음반은 모두 두 종류인데, 둘 다 아르디티 현악사중주단(Arditti String Quartet)이 녹음한 것이다. 첫 번째 음반은 베르고(Wergo) 레이블에서 출시된 1978년 녹음판, 두 번째 음반은 소니(Sony)에서 <리게티 에디션> 연작의 첫 번째 음반으로 출시된 1994년의 녹음판이다(소니의 <리게티 에디션>은 오페라 <Le Grand Macabre>의 영어판을 포함하여 총 9장이 나온 상태에서 중단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전자의 투박하고 거친 느낌이 더 좋지만, 객관적인 음질에 있어서는 후자의 녹음이 더 뛰어나고 연주도 더 안정되어 있다(그런데, 묻자면, 도대체 여기서 '안정'의 기준이란 무엇일까). 이 곡은 원래 라살(LaSalle) 현악사중주단을 위해 작곡되었던 곡이며, 초연도 이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지나가는 길에 개인적으로 라살 사중주단의 절창(絶唱)이라 생각하는 음반도 하나 소개하자면, 쇤베르크, 베베른, 베르크의 현악사중주 곡들을 모아놓은 저 훌륭한 4장짜리 음반의 일청 또한 강권한다.



▷ György Ligeti, Kammerkonzert für 13 Instrumentalisten, ⓒSchott, p.79.

4) 리게티가 앞서 <현악사중주 2번>의 3악장에서 보여주었던 저 '무질서'의 방식은 <실내협주곡>의 3악장에서 현악기뿐만 아니라 금관과 목관, 피아노와 쳄발로에 이르기까지 확장된다. 처음에는 호른과 트롬본에 의해 시작되었던 '작은' 무질서가 피콜로, 오보에, 클라리넷이 내는 새된 고음들의 합세에 의해 '큰' 무질서로 바뀌는 이 부분은, <실내협주곡> 중에서도 압권이자 백미에 해당한다는 개인적인 생각이다. 여기서 악기마다 상이하게 전개되는 박자들은, <현악사중주 2번>처럼 증가되지는 않는 대신, 반복되면서 중첩되고, 뒤로 밀려나거나 앞으로 당겨진다. 개인적으로 처음 들었던 순간 경이와 전율을 경험했던 부분이라는 고백 한 자락.

   

▷ György Ligeti, Kammerkonzert/ Ramifications/ Lux aeterna/ Atmosphères(Wergo).
▷ György Ligeti, Clear or Cloudy: Complete Recordings on Deutsche Grammophon
    (Deutsche Grammophon)[4 CDs].

   

▷ György Ligeti, Cello Concerto/ Piano Concerto/ Chamber Concerto
    Ensemble Modern(Sony).
▷ György Ligeti, 
    Ligeti Project I: Melodien/ Chamber Concerto/ Piano Concerto, etc.(Teldec).

5)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는 <실내협주곡> 음반은 모두 네 종류이다(내가 이 곡을 네 종류의 음반으로 갖고 있다는 사실에서 눈치 빠른 이는 이미 눈치 챘겠지만, <실내협주곡>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리게티 곡들 중의 하나이다). 녹음된 순서대로 따라가보자면, 첫 번째는 이 작품의 초연자인 프리드리히 체르하(Friedrich Cerha)가 지휘한 베르고 레이블의 1970년 녹음판, 두 번째는 피에르 불레즈(Pierre Boulez)가 지휘한 도이체 그라모폰(Deutsche Grammophon)의 1982년 녹음판, 세 번째는 앙상블 모데른(Ensemble Modern) 연주의 1992년 녹음판(소니), 네 번째는 텔덱(Teldec)의 <리게티 프로젝트> 연작(총 5장) 중 첫 번째 음반인 라인베르트 데 레우(Reinbert de Leeuw) 지휘의 2000년 녹음판이다. 이 중 불레즈의 녹음은 리게티 사후 도이체 그라모폰에서 출반한 4장짜리 컴필레이션 CD에 수록되어 있는 것이다(이 컴필레이션 음반의 제목은 "Clear or Cloudy"인데, 리게티의 작품군에 붙이기에는 다소 '가벼운' 제목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어쨌거나 그의 작품을 총괄하여 요약하기에 그리 낯설지는 않은 '일기예보'라는 느낌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리게티가 <실내협주곡> 3악장을 헌정했던 체르하의 음반과 텔덱의 <리게티 프로젝트 I>, 이렇게 둘을 추천하고 싶다. 물론 불레즈의 연주는 언제나 최고를 들려주는 완벽주의자의 것이지만, 일단은 제외한다. 그냥 그러고 싶어졌다. 일단 블레즈가 지휘한 3악장의 템포가 개인적으로 그렇게까지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를 대겠다, 꼭 이유를 대라고 한다면 말이다.



▷ 리게티, 그리고 100개의 메트로놈[들].

6) <현악사중주 2번>의 3악장과 <실내협주곡>의 3악장의 예에서 볼 수 있었던 이러한 잇단음의 증가ㅡ(2)-3-(4)-5-6-7... 여기서 필히 감지해야 할 저 괄호들의 의미작용이란, 2분음과 4분음은 '잇단음'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사실에서 오는 하나의 필요악일 텐데ㅡ는, 그리고 또한 이러한 잇단음의 증가분들이 어긋나게 포개진 기이한 중첩들은, 수학적 수렴의 모습과 닮아 있다. 왜냐하면, 수없이, 매우 빠른 속도로 진동하는 '무수한'ㅡ계량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질서'에 대비되는 '무질서'라는 의미에서 '무수한'ㅡ음들의 연속체는, 앞서 잠시 언급했던 바, 매우 '아이러니컬'하게도, 청각적으로 단 '하나의' 클러스터(cluster)로 '수렴'하기 때문이다. 

7) 이 '감각적' 현상은 어떻게 '해석'될 수 있을까. 이는 단순히 감각의 '한계'인가, 아니면 감각의 '가능성'이라고까지 명명해줄 수 있는 하나의 축복일까. 이러한 현상을 하나의 미(美)로 파악한다는 것은 근대 미학적 사고의 발로일까. 이 감각의 쾌락에 합당한 이름과 법률을 부과하려는 시도는, 그 자체로 근대 미학의 고유한 기도(projet)일까. 그러니까 다시 말해서 이는, 근대 미학이라는 저 지독한 세리(稅吏)가 매기려고 하는 피할 수 없는 어떤 추징금 같은 것일까. 문제는, 일단, 수렴값을 찾는 것이다. 단, 근사치가 아닌 정확한 하나의 값을. 여기서 상기해야 할 점은, 오일러 상수이든 원주율 π이든, 어쨌든 이렇게 '정해진' 수, 곧 수학적인 의미에서 '닫힌 형식(closed form)'을 갖게 된 수는 '정확한' 수렴값이라는 형식을 띠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다수의 음들로 이루어지는 연속체는 어떤 [하나의] 클러스터로, 어떤 [하나의] 값으로, 어떤 [하나의] 음가(音價)로 수렴하는가, 이것이 하나의 물음이다. 

8) 하지만, 수렴값이 결정되고 나면, 그 다음에는? 그 수렴값 속에서, 바로 그 숫자, 그러니까 한갓 숫자 속에서, 나는 미를 찾아내고 감별해낼 수 있을까. 이것이 두 번째 물음이다. 이 두 번째 물음 앞에서는 길을 잘 들어야 한다. 어떤 의미에서ㅡ나쁜 의미에서, 라고 말하고 싶지만, 의미라는 것이 어떻게 하면 '나쁠'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되는데, 자꾸만, 생각하게 되는데ㅡ수(數)에 대한 신비주의로 가느냐 아니냐, 이 선택지가 바로 저 두 번째 문제가 직면하게 되는 첫 번째 갈림길이다. 보르헤스(Borges)의 비유ㅡ그의 소설은 정말 비유일까, 비유일 뿐일까ㅡ처럼, 어쨌든 그 선택지는 끝없이 다른 길로 이어지는 길이거나 앞뒤가 꽉 막힌 막다른 길이겠지만. 그런데, 그 첫 번째 갈림길은, 과연, 정말로, 첫 번째였던가. 그러니까, 말하자면, 그것은 과연, 갈림길의 '기원'에 값하는 길이었던가, 어쩌면 이것이, 다시금 샛길을 내고 가지를 치는, 세 번째 물음이 될 것이다.

2007. 7. 4.

ㅡ 襤魂, 合掌하여 올림.

 

 

 

 

서지 검색을 위한 알라딘 이미지 모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ontinuum이 흐른다. 그것을 연주하는 악기는 물론 쳄발로이지만, 그 악기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쳄발로의 소리가 아니다. 죄르지 리게티(György Ligeti)의 음악을 처음 들었던 때는 15살 때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폴리포니(polyphony)'라는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내게 처음으로 '알려주었던' 것은 바흐친의 글이 아니라, 아이러니컬하게도, 리게티의 음악이었다(이 사실이 내게 '아이러니컬'할 수 있는 이유는 '폴리포니'라는 말이 갖는 저 희랍어 어원의 직접성과 그에 대한 배반에서 찾아져야 한다). 

처음으로 들었던 그의 작품은 아마도 「진혼곡(Requiem)」이었거나  「영원한 빛(Lux aeterna)」이었을 것이다. 그 이후 나는 독일의 현대음악 전문 레이블인 Wergo에서 나온 그의 음악 CD들을 미친 듯이 사모으기 시작했다. 내가 고등학교에 들어가자 Sony에서 리게티의 전작을 기획하여 발매하기 시작했지만, 소니의 그 성의 없고 치졸한 디자인은 베르고 레이블의 저 아우라 넘치는 음반들에 전혀 비할 바가 못 되었다. 내게는 언제나 리게티와 베르고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강력한 연상의 고리로 엮여 있었으며 아무것도 그 강한 고리를 깰 수 없었다(물론 중간에 출시가 중단되기는 했지만 소니의 리게티 프로젝트 시리즈가 Teldec의 리게티 에디션 시리즈와 함께 리게티 음악의 면모를 일별해볼 수 있는 아주 훌륭한 음반들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최근 몇 개의 우연의 선들이 겹쳐져 다시금 리게티가 내게로 다가오게 된 계기가 있었다. 음렬주의에 대한 열광 또는 음렬주의에 대한 회의라는 화두는 내게 학문적이거나 이론적인 문제라기보다는 하나의 '감각'에 관한 문제였다. 이러한 교양(독일어 'Bildung'이 지닌 문자 그대로의 의미에서)의 문제는 아마도 쇤베르크와 리게티의 음악을 처음으로 들었던 저 유년기의 경험과 모종의 관련이 있을 것이다. 쇤베르크-베베른-베르크-아도르노를 잇는 [탈]구축의 선 하나, 그리고 불레즈와 슈톡하우젠이라는 양극을 갖는 팽팽한 긴장의 선 하나(이 두 선들은 서로 공시적으로도, 또한 통시적으로도 비교 가능하다). 

그리고 세 번째 선.
이 선은 유별나게 애착이 가는 선인데, 왜냐하면 이 선이 실은 가장 근대적인(modern) 문제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바르톡-(코다이)-리게티의 선이 그것. 혹자는 이 세 번째 선이 어떻게 앞의 두 선들과 대등한 위치에 나란히 혹은 수직적으로 놓일 수 있는지 의구심을 가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여기서 올리비에 메시앙(Olivier Messiaen)의 선과 존 케이지(John Cage)의 선에 할당된 공간을 따로 떼어 말해야 할 필요를 느낌에도 실제로는 그렇게 하지 않았음에 그는 주목해야 한다. 이 세 번째 선은 멀게는 우리가 흔히 '국민(주의)음악'이라고 부르는 어떤 괴물 같은 것, 곧 '내셔널 뮤직(National Music)'ㅡ소문자가 아닌 대문자 '국민음악'ㅡ이라고 하는 것까지 소급이 가능하다. 그러나 소급만이 가능할 뿐 환원되지는 않는 선이다. 예를 들어, 가장 극명한 예를 들어, 바르톡의 조성을 보라, 듣지 말고 보라. 그것은 음렬주의를 넘어서지 않고 음렬주의의 외부를 끊임없이 간지럽히고 지분댄다. 좀 더 들어가 바르톡의 현악4중주 6번을 보라, 특히 마지막 악장을, 듣지 말고 보라.

'내셔널리즘'이라는 것이 어떤 때에는 '민족주의'라고 번역되기도 하였고 또 어떤 때에는 '국민주의'라고 번역되기도 하였지만, 그리고 또한 그렇게 각각 번역되었을 때 그 번역어들 나름이 갖는 포지티브와 네가티브가 있는 것이고, 또 있었던 것이었겠고, 또 있어야 했던 것이겠지만. 그리고 또한 이것은 내가 18살 여름에 고산메 선생과 함께 보았던 펜데레츠키와 안익태 곡들의 저 '민족주의적이고도 국민주의적인' 공연에 대한 경험과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것이겠지만. 하지만, 하지만, 하지만, 바르톡과 리게티가 걸어갔던 저 내셔널리즘에 대한 어긋남과 어깃장의 선들은 얼마나 통쾌하고 시원했던가. 그 사실이 다시 내 머리 속에 상기되었을 때 나는 피아노 앞으로 달려가지 않고서는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다. 기타가 아닌 피아노 앞으로.

나는 피아노를 '잘' 치지 못한다. 물론 그 어느 누구도 작곡가에게 고도의 연주력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이 세상은 그만큼 '전문화'되어 있고 '프로화'되어 있는 것이므로. 하지만 아마도 어떤 사람들은 내가 연주하는 피아노의 음들 속에서 쇤베르크를 발견하기도 할 것이고 리게티를 발견하기도 할 것이다. 가능한 일이다. 또 다른 어떤 사람들은 좋게 말해 가장 미니멀한, 나쁘게 말해 아무런 스킬도 테크닉도 없는, 그런 연주 스타일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이것도 물론 가능한 일이다. 나는 물론 '전문가'도 '프로'도 아니다. 음악깨나 들어봤다는 사람이라면, 어쩌면 피에르 불레즈의 「구조들(Structures)」 같은 작품이나 스티브 라이히의 영향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그리 넓지 않은 인간관계 때문에 가장 가능성이 없는 일이긴 하지만 이 역시 가능하긴 한 일이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자면, 한 인간을 전체적으로 이해하기란, 얼마나 어렵고 얼마나 무모한 일인가. 이 사실이 나를 찌른다, 건드린다.

서두 또한 지극히 개인적이었지만, 이하, 소장하고 있는 책들 중에서 리게티를 '듣기' 위해 '읽기' 좋은 책들 몇 권을, 역시나 지극히 개인적으로 소개해본다:



▷ 이희경, 『 리게티, 횡단의 음악 』, 예솔, 2004. 
  
이 책은, 리게티에 관한 논문·번역·음반해설 등 리게티 음악의 학문적 전도사 역할을 정력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이희경 씨가 저술한 책으로 2005년 대한민국학술원의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되기도 한 책이다. 2006년 생일에 파랑에게서 받은 선물인데, 선물을 받은 기쁨도 기쁨이었지만, 한달음에 달리며 읽어내려갔던 즐거운 경험을 안겨주었던 책으로 기억하고 있다. 무엇보다 한글로 된 리게티 관련 자료를 읽는다는 즐거움에 책 읽는 즐거움이 배가 되었던 기억이 있다(알타이어 '네이티브 스피커'의 괴로움이여...). 책의 구성은 전기적 사실들과 작곡가들과의 관계, 작곡기법과 악기별 연구, 작곡법의 음악사적 의의 등으로 비교적 평범하지만, 리게티의 음악을 듣는 데에 있어 아주 유용한 해설과 자료들을 담고 있는, 일독을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또한 이희경 씨의 논문 「90년대 이후 리게티 작품에서 '국지성(locality)'의 문제」(『서양음악학』, 9-3호(통권 12호), 2006) 또한 일독을 권하는데, 90년대 리게티의 음악, 특히 피아노 협주곡 이후 그가 보여주는 음악적 '국지성'이 어떻게 '세계성'과 '보편성'을 얻고 있는가라는 다소 진부한 주제에 대한 진지한 의의 정리를 담고 있다. 다만 이 논문은 음악이나 작곡법에 대한 논문이라기보다는 리게티 음악의 '인문학적' 의미에 보다 치중한 것이라는 점만을 덧붙여두자(음악학자들의 인문학 '차용'은 어찌 이리도 기초적인 '세계화' 수준에 머무는가, 하는 물음을 한 번쯤 던져볼 수 있겠다).

   

▷ Richard Toop, György Ligeti, London: Phaidon, 1999.
▷ Richard Steinitz, György Ligeti. Music of the Imagination
    Boston: Northeastern University Press, 2003.

영어로 된 리게티 해설서는 이 두 권의 책을 추천한다. 먼저 리차드 툽의 책은 일단 굉장히 활력 넘치는 문체로 씌어져 있기 때문에 유독 독서의 즐거움을 많이 선사하는 책이다. 또한 책의 구성을 보면, 전기적인 서술과 음악적인 문제의식을 병행·통합시키는 장의 구분과 서술방식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리게티 음악의 면모를 파악해볼 수 있는 '종합적인 저술'이라는 인상을 준다. 한 가지 더 이 책이 갖고 있는 미덕은ㅡ눈치 빠른 독자들은 이미 출판사가 Phaidon이라는 사실에서 간파하였겠지만ㅡ감칠맛 나는 도해들을 다수 수록하고 있다는 점이다. 조금 더 음악에 치중한 전문적인 해설을 보고 싶다면 리차드 슈타이니츠 책의 일독을 권하고 싶다. 시기별 대표 음악을 그 당시 리게티가 지니고 있던 작곡의 문제의식과 함께 분석한 책으로서, 해당 악보와 함께 자세한 곡 해설, 작곡·연주의 배경 상황 등을 세밀하게 서술하고 있는 책이다. 다만 두 책 모두 리게티 사망 이전에 출간된 책들이기 때문에 '결정본' 전기로서의 자격은 '태생적으로' 상실하고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은 지적해둘 수 있겠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생존작가의 '전집'도 나오는 마당에(대표적인 예를 들어주마, 김승옥과 김지하). 어쩌면 '이미 죽은 사람'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전집 출간이라는 애도(Trauer)를 바치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런데 정말 우리는ㅡ프로이트적인 의미에서ㅡ그들을 애도했는가, 애도한 적이 있었던가, 애도한 적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멜랑콜리에 걸려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여담 한 자락, 풀어놓아본다.

▷ György Ligeti, Gesammelte Schriften, Mainz: Schott, 2007.

물론 리게티 자신의 저술을 빠트릴 수 없겠다. 이 책은 말 그대로 리게티의 '저작 전집'인데, 그가 작곡 틈틈이 저술했던 음악 관련 글들을 수록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 여기서 [작곡가에게 있어 그의 작곡보다 그의 글을 더 부차적으로 취급한다는] 관습에 기대어 '틈틈이'라고 말하는 것에는 약간 어폐가 있는데, 리게티의 글들을 직접 읽어보면 그가 작곡가임과 동시에 또한 한 명의 훌륭한 [음악]이론가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리게티가 '서방' 음악계에 데뷔하던 시기의 주류였던 음렬주의에 대한 생각들을 비롯하여 각 시기별 자신의 작곡에 있어서 가장 첨예하고 품고 있던 문제의식이 무엇이었나 하는 물음에 대한 대답으로 이 책만한 참고자료를 찾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물론 개인적으로 완역되기를 바라마지 않는 책이지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까워 보인다. 번역을 한다면 현재로서는 이희경 씨가 가장 적임자로 보이지만.  

리게티의 음반은 크게 세 종류로 구분해볼 수 있다. Wergo 레이블에서 출반한 음반들, Sony의 리게티 프로젝트 총 8장(오페라 Le Grand Macabre가 2장이므로 정확히는 9장), Teldec의 리게티 에디션 총 5장이 그것이다. 물론 개별적인 곡을 녹음한 음반들도 여럿 있다. 피아노 연습곡 음반들도 이미 몇 종류가 출시되어 있는 상태이며, 또한 얼마전에는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녹음한 곡들만 따로 모아서 4장의 기획 음반이 출시되기도 했다. 이 모든 음반들에 대한 소개를 다 쓴다면, 팔이 아플 테니, 그리고 너무나 귀찮은 일이 될 터이니, 이 음반들에 대한 소개는 기회가 있을 때 Anarchiv 코너 등을 통해 슬금슬금 풀어놓기로 한다. 다만 한 가지 덧붙여두고 싶은 말은, 특히 20세기의 곡들은 악보와 함께 보고 들을 때 그 '보기'에 의해 '듣기'의 즐거움이 배가 된다는 사실이다. 사실 이러한 '읽기'의 행위는 즐거움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차라리 더 잘 '듣기/이해하기(불어 'entendre'의 두 가지 의미에서)' 위해서, 그리고 어쩌면 라캉적인 의미에서ㅡ단순한 즐거움이 아니라 고통을 수반하는 기이한 즐거움이라는 의미에서의ㅡjouissance를 위해서, 라고 해두자. 리게티의 악보 대부분은 독일 Mainz의 Schott사에서 출판되어 있으며 편집 또한 아름답다.

얼마전 한양대 음대에서 컴퓨터 음악을 가르치는 Richard Dudas 선생과 리게티 음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우리는 얼마 전에 서울에서 열렸던 리게티 추모 음악회 자리에 같은 날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확인하며 즐거워했다. 그리고 리게티의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함께 이야기하는 일이 얼마나 즐거운 경험인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또한 리게티의 Atmosphères를 실황으로 듣는다는 경험이 얼마나 경이로운 것인지ㅡ그도 나와 마찬가지로 그날의 공연이 그 곡을 라이브로 듣는 '첫 경험'이었다ㅡ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우리는 낸캐로우(Nancarrow)의 음악에 대한 농담까지 주고 받았다. 그리고 그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 내 가슴에 와닿았다. 나는 연신 마음 속으로 그 말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나 또한 그렇다고:

"I think I am his son, though I couldn't meet him while he was alive."

2007. 5. 7.

ㅡ 襤魂, 合掌하여 올림.

 

 

 

 

서지 검색을 위한 알라딘 이미지 모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