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7076743
"어느 비평가처럼 '절충주의와 예술적 아취는 병립할 수 없다'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재즈가 본질적으로 절충적인 음악 형식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재즈는 출발부터 '사생아'였으며, 영원히 그럴 것이다. 다른 예술 형식과 마찬가지로, 재즈를 순수와 절충 형식으로 구분해볼 때 오늘날 순수해 보이는 것은 아주 오래전에 발생했기 때문에 당시에는 얼마나 절충적이며 얼마나 복합적인 것이었는지를 우리가 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일 뿐이다."
- 요아힘 에른스트 베렌트(Joachim Ernst Berendt), <재즈북(Das Jazzbuch)>(한종현 옮김, 자음과모음, 2012), 8쪽.
<재즈북>. 한국어 번역본으로는 2004년에 초판이, 2006년에 재판이 나왔던 책인데, 전혀 모르고 있었다. 내가 구한 판본은 올해 8월 초에 출간된 3판. 서문을 읽다가 위의 문장에 밑줄을 그었다(마지막 문장의 한국어가 약간 어색하긴 하다). 비단 재즈뿐이랴. 예술도, 철학도, 그 자신의 절충적이며 복합적인 기원의 '기원성'을 너무나 자주 망각한다. 아니, 보다 더 적확하게 말하자면, 그 '기원'이란, 그렇게 '순수한' 것으로 상정되고 상상되며 (바로 그러한 상상적 상정을 통해) 회고되기에 비로소, 그렇게 상정되고 상상되며 회고될 때에야 비로소, 그렇게 '기원'으로 기능하고 작동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나 자주 망각한다. 그리고 여기서 아주 조금 더 적확하게 말하자면, 그리고 또한 어쩔 수 없이 그러한 적확함이 지닌 역설적 의미를 적극적으로 껴안고 말하자면, '기원'의 가능조건이란 오히려 바로 이러한 '망각'에 다름 아니다.
<재즈북>의 차례를 전체적으로 살펴보면서 읽고 싶은 부분들만 조금씩 읽었는데, 재즈 초심자에게는 두고두고 확인해가면서 읽을 수 있는 책일 테고, 재즈 애호가에게는 재즈에 대한 자신의 지식을 점검해보면서 정리하며 읽을 수 있는 책일 거라 생각된다. "Quintet du Hot Club de France"를 "퀸텟 '두' 핫 클럽 드 프랑스"(547쪽)로 표기하고 있는 게 아주 작은 흠이라면 흠이겠다.
- 襤魂, 合掌하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