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팔판동, 삼호당에서. [사진: 襤魂]

1) 비가 내리지 않았다면 보지 못했을 것들이 있다. 그리고 우리는, 낯선 곳에서, 낯선 이에게, 처음으로 날씨 이야기를 꺼내며, 비로소 입을 뗀다. 10월 23일(木) 오후, 하늘은 가볍게 찌푸렸다. 지인들이 농담 섞어 말하듯, 실로 '람혼스러운' 날씨였다. 작곡을 맡았던 큰 공연 하나를 전날 기분 좋게 마무리하고 나서, 다소 가벼운 마음으로 정영두 선배의 공연을 찾았다(하지만 역시나 치러내야 할 일들은 태산처럼 쌓여 있었으니). 장소는 삼청 교회 골목 안쪽, 팔판동에 위치한 어느 아늑한 한옥, 이곳은 학고재 우찬규 대표의 집 삼호당이다. 공연 시간이 되자 가옥의 뒤편에서 무용수들이 조용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관객들 사이에 무던히 섞여 앉아 있던 연주자들은 소리 없는 기지개를 켰다. 'ㅁ'자 모양의 '아트리움(atrium)' 아래로 비를 머금은 마당 위, 매화나무 한 그루가 '오브제(objet)'처럼 서 있었다.

(기사 보기: http://news.joins.com/article/aid/2008/10/24/3229456.html)

▷ 이윤정과 이소영의 춤: 빗물받이에서 흘러내린 자국 위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사진: 襤魂]

2) 처음 등장한 이소영과 이윤정의 춤은 내게 3성부로 이루어진 대위법(counterpoint)을 연상시켰다. 실제로 들려오는 소리는 리코더의 선율 하나뿐이었지만, 두 무용수는 때로는 유니슨(unison)으로, 때로는 교차하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선율로, 그렇게 리코더와 함께 들리지 않는 소리들를 '연주'하고 있었다. 이 두 분의 무용가/안무가와ㅡ그리 '길지는' 않은 시간 동안에ㅡ실로 '강한' 밀도로 함께 작업하고 만나오고 있는 나로서는, 그 둘이 함께 추는 춤을 실로 '오랜만에' 보는 느낌이 없지 않아 춤을 보는 내내 흐뭇하고 짜릿한 사감(私感)을 섞을 수밖에 없었다. 개인적으로 두 분을 뵐 때마다 서로 '전혀' 다르지만 또한 동시에 서로 너무나 닮아 있는 '쌍생아'를 보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히기도 하는데, 사실 이제는 두 분 모두 내게는 '친누이'들처럼 느껴지기까지 할 정도이다. 위의 사진은 어쩌면 바로 이러한 나의 개인적인 느낌이 순간적으로 발현된 소산일 터.

▷ 3성부의 대위법: 리코더와 두 개의 몸. [사진: 襤魂]

3) 대칭성을 지속시키면서 동시에 그 대칭성에 흠집을 내기. 이 3성부의 대위법은, 때로는 리코더가 '반주'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몸들의 선율이 겹쳐졌다가 헤어지기도 하는 방식으로, 말하자면 실로 '음악적'으로 전개되었다. 그 '음악'의 모습은 제의성을 전혀 느낄 수 없는 어떤 '제의성'의 형태로 내게 다가왔던 것. 리코더의 소리는 그 스스로 입을 수 없을 어떤 '몸'을 입고자 공간을 울리며 퍼져나갔고, 두 개의 몸은 보이지 않는 '악보'를 따라가며 음표들을 눌러 밟거나 타고 넘어갔다. 가운데 서 있던 한 그루의 나무가 이 대위법의 네 번째 성부, 곧 하나의 통주저음을 연주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오히려 공연이 끝나고 난 뒤 한참 후의 일이다. 어쩌면 그러한 '통주저음'이란ㅡ가장 '적극적'으로는ㅡ이렇듯 일종의 '시간차'를 두고 지각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 정영두의 춤: 돌, 흙, 나무, 바닥과의 조우. [사진: 襤魂]

4) 일상의 공간 안에 비일상을 삽입시키는 일은 언제나 짜릿하지만 동시에 지난한 일이다. 그러나 가장 어려운 것은, 그래서 또한 가장 주목받아야 하고 추구되어야 할 일은, 일상 안에서 일상을 비일상처럼, 그리고 비일상 안에서 비일상을 일상처럼 살아내는 일이다. 이 선문답(禪問答)과도 같은, 일종의 '줄타기'를 위한 지침 안에, 예술에 대한 '사용설명서(manual)'가 들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무용 공연이라는 개념적 틀을 잠시 잊고 이 한 장의 사진을 들여다본다. 그는 넘어지려다 만 것일까, 아니면 뿌리로부터 우뚝 솟아 일어나려는 것일까. 비에 젖은 바닥에 닿은 손, 물기에 젖은 옷, 습기 찬 몸, 그 안에서 나는 어떤 안온한 '공기'를 느낀다기보다는 이해하게 된다. 게다가 그것도 가장 안온하지 않은 방식으로. 이렇게 떨리고 경련하는 '이해(理解)'는, 말하자면 나의 고질적인 병증, 곧 내 자신의 이해(利害)가 된다.

▷ 김남건의 춤: 땅의 소리를 들어보기, 혹은 마당이 머금은 빗물에 젖어보기. [사진: 襤魂]

5) 나는 작년에 남건씨가 감독했던 한 단편영화에 단역배우(?)로 출연했던 적이 있다(이소영씨가 주연이었다). 관심 있는 분들에게는 일람(一覽)을 권한다(한 영화제에서 대상까지 받은 작품이니 찾아보기가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 같다). 언제나 배우들 또는 무용수들 곁에서ㅡ또는 그 뒤에서ㅡ그들의 호흡을 따라가며ㅡ때로는 앞서가며ㅡ작곡과 연주를 해온 나로서는 어설프나마 연기를 하는 일이 실로 신선하고 흥미로운 경험이었는데, 한 가지 개인적으로 아쉬운 것은 소영 누나의 춤에 맞춰 즉흥으로 연주했던 나의 피아노 연주가 영화의 최종편집본에는 수록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연주를 하다보면 가끔씩 흔치 않게 경험하게 되는 전율의 순간이 있다. 그 연주도 그러한 전율의 드문 순간들 중 하나였는데, 다시 '재구성'될 수는 있어도 다만 그 '순간' 안에서만 존재하고 영속하는 즉흥 연주의 매력이 바로 여기에 있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 즉흥이란, 이어지고 끊어지는 순간들과의 계속되는 싸움과 화해인지라, 하면 할수록 더욱 어려운 마음으로 대하게 되는 작업이다. 그래서 즉흥이란 '즉흥적'으로 만난 사람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자유로운' 연주가 아니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서로의 작업을 오래 봐오고 또 서로의 존재와 사고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지' 않고서는, 여간해서 좋은ㅡ따라서 '낯선'ㅡ즉흥연주가 나오기 힘들기 때문이다. 서로 자신의 존재만을 주장하는 즉흥은 여유로운 틈 하나 찾아보기 힘든 '시끄럽기만' 한 것이 되기 쉬우며, 이상적으로 말해서 '좋은' 즉흥이란 직접적으로 참여하는 자(공연자)와 간접적으로 참여하는 자(관객)ㅡ이 '직접'과 '간접'의 규정은 서로 뒤바뀔 수도 있는 것인데ㅡ사이의 '대화' 또한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즉흥 안에서 '악보'는 기보되어 있지 않은 무형의 것이지만, 사실 그 악보는 어떤 '관계' 안에 이미-언제나 존재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즉흥은 절제 없고 제한 없는 무한대의 자유가 아니라 어떤 속깊은 '약속'과 느슨한 '통제'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행하는] 조심스러운 '무절제'로 묶여 있는 하나의 연속체이다. 즉흥은 솔로이스트들의 집합체가 아니라 그 사이의 '관계'들이 만나서 빚어내는 하나의 '솔로'이다(바로 이러한 감각이 내재되고 공유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즉흥은 '산으로 가버리기' 쉽다). '재현'과 '환원불가능성'의 주제는 내 안에서 이렇듯 '비가역적(non-retrogradable)'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

▷ 나무 되기, 혹은 '굴광성'과 '굴지성' 사이. [사진: 襤魂]

6) 몸은 상향의 굴광성(屈光性)과 하향의 굴지성(屈地性) 사이의 경계 위에서, 때로는 꼿꼿이 서서 걸어다니거나 하늘을 향하며, 때로는 흐느적거리며 방황하다 주저앉기도 한다. 결국 이 춤들의 '음악적' 형식은 일종의 푸가(fuga)적인 기법에 가닿는다. 서로의 뒤를 따르는, 그리하여 서로를 '주고 받는' 이 여덟 개의 성부들(네 명의 무용가와 네 명의 연주가)은, 말하자면 '푸가의 기법'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신문기사가 '세속적으로' 말하듯, '한옥과 현대무용의 만남'이라고 하는 지극히 '언론적인' 관심에서 나온 주목의 지점은 내게는 전혀 무의미하다. 반면, 이와 유사한 일종의 '패러디' 형식으로, 그리고 또한 지극히 개인적인 의문문의 형식으로, 나에게 남는 하나의 질문은 이런 것이다: '한옥'이라는 공간 안에서 '연주'되는 '푸가'란 어떤 의미를 갖는가? 푸가의 기법은 건축의 기술을 보여준다. 한옥이라는 '전통'의 공간과 현대무용이라는 '첨단'의 예술이 서로 만났다는 사실 자체로서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만남'에 대한 이러한 표피적이고 천박한 인식이 '개화된 남성과 구시대 여성의 결혼' 같은 것을 문제 삼는 지극히 '근대적'인 콤플렉스와 다를 게 무엇인가, 게다가 서구적/현대적인 것은 남성적인 것으로, 한국적/전통적인 것은 여성적인 것으로, 그렇게 쉽게만 재단되고 상징되고 있음에야). 문제는 이 무용이, 이 춤들이, 이 몸짓들이, 건축의 기술을 닮아 있다는 것, 곧 푸가의 기법을 체현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의미에서만, 이 춤들은 한옥이라는 '건축[물]의 공간'에 가닿고 또 가닿을 수 있게 된다. 만남의 지점이란 이런 것이다. 건축되고 구성되어 있는 전통의 공간 안에서 그 '전통'의 호흡을 '현대적으로' 함께 나누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라(전통과 현대의 '공존'을 논하는 이 지긋지긋한 수사법에 나는 이미 넌더리가 난 지 오래이다), 한옥이라는 공간 안에서 춤(현대무용)이 그러한 건축의 기술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푸가의 기법'으로서 제시되고 공연되고 있다는 것, 이것이 더욱 중요하며 핵심적인 문제이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결국 문제는, 어떤 춤이 대위법을 닮아 있다고 하는, 곧 소리와 몸짓 사이에 어떤 '공감각적'인 교량을 놓을 수 있다고 하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러한 대위법이 어디서 어떻게 '연주'되고 있는가 하는 것, 곧 음악과 춤 사이의 '비유'를 통해 이루어지는 '건축술'에 대한 어떤 성찰의 자리에 다름 아니다.

▷ '무대' 밖에서, '무대'였던 쪽을 바라보며, 웃으며: 이소영과 이윤정. [사진: 襤魂]

7) 공연 자료로 관객들에게 배포된 정영두 선배의 텍스트는 내게 일종의 '선언문'을 연상시켰다. 그만큼 강건하고 순수하기까지 한 내용과 문체가 고스란히 느껴졌던 것이다(이는 근래에 읽은 텍스트들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것 중의 하나였는데, 비언어적 예술가의 텍스트가 그 자체로 드물기도 하지만ㅡ또한 동시에 '드물어야' 하지만ㅡ, 그 예술가의 공연과 작업을 통해 얻을 수 없는 또 다른 '사유의 지점'을 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특히나 내게는 소중한 것이다). 말하자면 그것은 하나의 소박하고 [그로토프스키(Grotowski)적인 의미에서] 가난한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자'의 텍스트처럼 내게 다가왔다. 그래서/그러나 문제는 언제나 '자연'이었다('Naturgeschichte'에 대한 마르크스의 몇몇 언급들을 떠올려봐도 좋으리라). 한옥과 자연 사이의 어떤 '내밀한' 연결성, 이 '자연스러운' 관계의 고리는 언제부터인가 '계급성'이 배제된 채로 단순히 '문화적'으로만 소비되고 사유되어 왔다는 느낌이 있다(예를 들어 '삼청동'이라는 하나의 문화적 약호(code)가 어떤 방식으로 사유되고 소비되고 확장되어 왔는가를 떠올려봐도 좋을 것이다). 곧 자연이란ㅡ그리고 그러한 자연에 너무도 쉽게 연결되곤 하는 어떤 '전통적인' 건축 양식이란ㅡ그 자체로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근래에 보기 드물게 자연과 예술의 관계에 대해 실로 명쾌하고도 단언적으로 서술하고 있는 이 텍스트가 매우 아름답고 단호하게 느껴지면서도 동시에 개인적으로 아쉬움을 남기는 이유이다. 이 공연을 주최한 전통문화 지킴이 재단법인 '아름지기'는 물론이고, '현대'의 예술가들이 모두 공히 고민해야 하는 지점은 바로 이것이다: 누가 이러한 한옥에/을 살 수 있는가('자연'이 지니고 있는 어떤 '계급성'의 문제), 이러한 한옥에서 공연을 한다는 것은ㅡ'전통과 현대의 만남' 따위의 무의미한 논의는 제쳐두고ㅡ어떤 의미를 갖는가(예술적 '만남'이 갖는 의미 층위의 문제), 이러한 공연을 볼 수 있고 또 향유할 수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관객의 예술적 취미/기호와 경제적/사회적 심급에 관한 일종의 예술사회학적인 문제), 그리고 궁극적으로, 예술가는 하나의 장소 안에서 그 장소와 어떻게 만나야 하는가(공연 장소 자체가 공연 행위와 맺고 있는 관계적 의미와 '공연성'의 문제).

▷ 삼호당 입구로 이어진 골목에서: 배우 김호정. [사진: 襤魂]

8) 우연한 만남은 언제나 반갑고 즐겁다. 삼호당 입구에서 배우 김호정씨와 오랜만에 마주쳤다. 나는 김호정 선배와 정영두 선배를 하나의 공연을 통해 함께 만났는데, 예전에 아르코 소극장에서 있었던 사라 케인(Sarah Kane)의 연극 <새벽 4시 48분(4. 48 Psychosis)> 공연에서 작곡과 연주를 맡았던 것이 소중한 인연의 시작이었다(이러한 인연과 관련된 작업과 그 소회에 관해서는 일전에도 글을 한 번 쓴 적이 있다: http://blog.naver.com/sinthome/40044551630). 떠올려보면 그 이후 개인적으로 많은 것들이 '달라졌던' 것으로 기억한다(어떠한 '경험'이 또 그렇지 않겠느냐만은, 이렇듯 '변화'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기억에는 일종의 감상적 소회가 따르지 않을 수 없다). 소중한 인연들이 낳은 또 다른 소중한 인연들이 있었고, 만남과 헤어짐, 마주침과 부딪힘들도 있었다. 하나의 공연은 다른 공연을 '가리키고' 또 그렇게 다른 곳으로 이어지고 있었고, 하나의 공연이 끝나고 시간이 지난 뒤 남는 것은 그 공연 자체에 대한 느낌이라기보다는 그 공연이 싹 틔워 마련해준 하나의 '관계성'이었다. 나는 이러한 지극히 개인적인 기준에서의 '관계성'이 내 작업의 '특수한 보편성'을 구성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게는 그러한 '관계성'이야말로 계속해서 작업을 지속하게 만드는 중요한 추동력 중의 하나이다.

▷ 뼈를 드러낸 화석, 기와들이 만들어놓은 단층들. [사진: 襤魂]

9) 삼호당을 나오면서 바로 옆에 있는 기와 가게 앞에서 사진 한 장을 더 찍었다. 기와들이 세로와 가로로 켜켜이 어지럽게 쌓여 있었다. 얼마 전 『한국연극』지 기자와 내 음악에 관한 인터뷰를 하던 도중, 불현듯 마음 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느낌 한 자락이 있었다. 그 느낌을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고 소중히 마음 안에 눌러 담았다. 그 마음을 담고, 며칠 전 레나타 수이사이드(Renata Suicide) 멤버들과 회동을 가졌다. 나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지만, 내가 진정 진심으로 원하는 대로 되었다. 그 사실에 감사한다. 나는 사실 여전히, '우리 모두'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순간 순간 내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솔직히 고백해야겠다. 모든 문제는 사실 나에게 있는 것이었지만, 그렇다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 이런 식으로 이루어지는 어떤 책임과 채무감의 '일반화'란 되도록이면 빨리 '지양'되어야 할 '몹쓸' 성질의 것이므로, 나는 "모든 문제는 사실 나에게..." 따위의 자학적/가학적 어법에게는 작별을 고한다. 안녕이다. 하여 생각하니, 어쩌면 저 기와들이 언젠가 지붕 위로 높이 올라가 스스로의 향취를 뽐낼 때도 있을 것이고, 또한 그렇게 지붕 위로 올라가지 못한다 해도, 그저 저렇게 촘촘히 쌓여 있고 또 쌓여 가기만 한다고 해도, 그 자체로 지층을 형성하고 화석을 남길 때도 있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고 비유하며 그 안으로 스스로를 이입시키는 '대위법'이란, '푸가의 기법'이란, 또한 '음악적 건축술'이란, 이렇듯 언제나 어떤 '관계성' 위에 기생(寄生)하여 섭생(攝生)하고 있었다. 3성부로 이루어지는 '대위법'이란, 다성(多聲/多性)의 몸짓들이 만나 이루어내는 '푸가의 기법'이란, 어떤 것이며 또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실로 '필생의 숙제'가 아닐 수 없다. 비가 내리지 않았다면 결코 보지 못했을 것들이 있다. 그래서 나는 그 비가 반갑고 또 고맙다.

ㅡ 襤魂, 合掌하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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