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12일 수요일자 <경향신문>, '김규항의 좌판' 22번째 편에 제가 속해 있는 밴드 레나타 수이사이드(Renata Suicide)의 인터뷰가 실렸습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올해는 또한 레나타 수이사이드가 결성된 지 정확히 10주년이 되는 해, 하여 지난 9월 2일에 레나타 수이사이드는 10주년 기념 공연을 장장 3시간에 걸친 마라톤 공연으로 잘 마무리했습니다. 지금까지 10년의 활동 기간 동안 레나타와 함께했던 예술가들 중 많은 분들이 게스트로 무대를 빛내주셨습니다. 시인 강정, 안무가 공영선, 플라멘코 가수 소니아, 거문고 연주가 오경자, 안무가 장은정, 소설가 황정은 등 모든 게스트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레나타의 10년은 아마도 '요약될 수 없는' 무엇이 아닐까 합니다. 이제 또 다음 10년, 20주년의 그날까지 느리지만 뚜렷한 행보를 이어가볼까 합니다. 레나타 수이사이드는 앞으로도 반국가주의적이고 반자본주의적인 행보 속에서 음악이 어떻게 미학과 정치를 서로 흘레붙이고 교배시킬 수 있는지, 암중모색을 계속해 나가겠습니다. 그 어둠 속에서, 함께 더듬고, 함께 걸어주시길.
- 襤魂, 合掌하여 올림.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9112105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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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항의 좌판](22)
반국가주의·반자본주의 음악집단 3인조 밴드 ‘레나타수이사이드’
“앨범 한 장 안 내고 10년간 밴드 활동…
우린 비전을 강요하지 않아요”
람혼(최정우), 파랑(이용창), 반시(유가영) 세 사람이 ‘레나타수이사이드’라는 밴드를 만들어 활동한 지 막 10년이 되었다. 근래 한국에는 10년 넘은 인디밴드가 적잖이 생겨났다. 그러나 그들처럼 애초 멤버 그대로, 그것도 앨범 한 장 내지 않고 10년을 맞은 경우는 거의 없다. “부부관계에 비유하면 우리는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같은 관계”(파랑)라고도 하고 “우리는 밴드로서 비전을 강요하지 않았기 때문”(반시)이라고 한다. 그들의 10년과 그들의 삶을 도란도란 들어보았다.
밴드 레나타수이사이드 멤버들. 왼쪽부터 드럼 파랑(이용창), 베이스 반시(유가영), 보컬 람혼(최정우). | 김정근 기자 jeongk@kyunghyang.com
▲ 어떤 사운드만 중요시하지 않고 연극·무용 등 다른 장르와 협업도
매이지 않아 관객들은 친구가 돼
▲ 과거엔 밴드들 저항성 선언부터… 지금은 지향성보다 현장을 중시
공연 취지 맞으면 함께 모이게 돼… 음악의 정치성 다양하게 진화 중
▲ 사회 전반 진보적 담론 확대 추세… 실은 우파체제 지탱 수준에 그쳐
왜 이럴까 질문 좀 더 치열해져야
김규항 = 레나타는 사운드가 독특한 편입니다. 말로 표현하기가 쉽진 않은데, 하드하면서도 깔끔하고 마치 테크노처럼 끊임없이 이어져가는 느낌도 있고….
람혼 = ‘너희는 장르가 뭐냐’ 물으면 대답하기가 애매해서 제가 만든 말이 있는데요. 빠르(PPAR)입니다. 사이키델릭 프로그레시브 아트록.(웃음)
파랑 = 누가 보든 형식은 밴드고 장르는 록이겠지만 어떤 사운드가 대세라거나 어떤 사운드를 만들어내겠다거나 하는 걸 별로 중요시하지 않는 편입니다. 깔끔하다고 하셨는데, 간편하고 명료하게 우리가 준비한 걸 들려주겠다는 생각에서 나온 결과인 것 같아요.
김규항 = 대개의 경우 밴드는 사운드를 궁리하고 만들어내는 게 일인데요. 곡은 람혼이 만들죠?
람혼 = 예. 그런데 제가 작곡했다고 하면 오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보통은 편곡 개념이라 생각하는 것이 저희는 작곡인데요. 제가 리프나 코드 같은 걸 만들어 오면 셋이 곡을 완성해가는 거죠. 때로는 악상이 아니라 형식적 개념이나 구조 같은 걸 가지고 토론하면서 작업하기도 합니다.
반시 = 저희는 곡이 선율에서 시작하는 게 아니라 패턴에서 시작해요. 테크노 같은 느낌도 아마 그래서일 거예요. 연주곡이 먼저 나오고 멜로디가 되고 그 다음에 가사를 붙이는 방식이죠.
김규항 = 이름 설명 좀 해주세요.
람혼 = 저는 누더기 람(襤) 자에 넋 혼(魂) 자입니다. 남루한 영혼이죠. 반시(banshee)는 사람이 죽으면 혹은 죽기 전에 울음을 운다는 아일랜드의 요정… 귀신인가?(웃음) 파랑은 물결 파 자에 물결 랑 자입니다.
김규항 = 파랑 빼곤 참으로 어둡군요.(웃음) 노래 제목들도 그런 게 많아요. ‘병든 것’ ‘독의 노래’….
람혼 = 반시 가족의 결혼식 연주를 부탁받았는데 결국 남의 노래를 했었죠.(웃음) 하지만 어둡다고는 생각하지 않고 단지 결혼식에 안 맞을 뿐이라 생각합니다.
김규항 = 10년차 밴드가 결혼식에서 연주할 곡이 한 곡도 없기는 어려워요.(웃음) 특별히 염세적 세계관을 갖거나 드러내려는 건 아니라는 뜻으로 알겠습니다. 사실 제목은 그래도 곡은 밝아요. 반복해서 틀면 레이브 파티에 써도 될 만한 곡들이죠. 각자 악기를 선택한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반시 = 베이스는 무대에서 주목받지 않아 편해보였고 또 조용하다는 게 좋았어요. 기타는 주파수가 높아서 부담스러웠거든요.
람혼 = 그러나 레나타에서 베이스는 주목받는 플레이가 많죠.(웃음)
반시 = 저희는 기타 솔로가 있을 부분에 베이스 플레이가 많아요. 멜로디를 많이 치는 편이고요.
파랑 = 고등학생 때 대학 가면 드럼 치겠다는 결심을 했어요. 드럼은 우리 악기는 아닌데 전 이상하게 내셔널한 느낌으로 다가왔던 것도 같아요. 록 드럼에서 레드제플린과 레인보우를 비교해 본다면 레드제플린의 존 본햄은 문학적이고 시적이라면 레인보우의 코지 파웰은 힘과 원초적인 에너지가 느껴져서 단연 그쪽이었고요.
김규항 = 파랑의 스네어드럼 소리는 대쪽 같아요. 그런데 때론 어떤 곡이든 홀로 대쪽 같다는 느낌도 들어요.
파랑 = 인정합니다.(웃음) 밴드의 사운드에 대한 집착은 없지만 사운드에 대한 제 개인적인 탐구는 강한 편인데요. 말씀하신 건 그와 관련된 부분이고요. 다른 연주자와의 조화에 대한 노력은 그보다는 적었던 것 같아요.
김규항 = 람혼은 어릴 적 가야금을 배웠다고 들었는데 어떤 도움이 되었나요.
람혼 = 중학생 때 가야금 소리가 좋아서 배우게 되었는데요. 기타에는 밴딩과 초킹이 있잖아요. 가야금에는 농현이 있고 꺾는 게 있다는 말이죠. 기타도 가야금도 현악기인데 현의 다양한 느낌을 알게 되었죠. 그리고 국악 박자가 재미있잖아요. 엇모리는 5박이고 7채도 있고. 저희 곡을 보면 4박과 3박을 당연시하는 게 없어요. 7박 갔다가 4박 갔다가 11박 가보면 어떨까 그런 시도들을 하기도 하죠. 뭔가에 매어있지 않을 수 있다는 게 소득이었던 것 같아요.
김규항 = 레나타는 클럽 공연이라든가 밴드로서의 활동은 많은 편이 아닙니다. 반면에 연극이나 무용, 미술 같은 다른 장르와의 협업은 무척 활발한데요. 언제부터 한 건가요.
람혼 = 처음 한 건 2006년에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에서 사라 케인의 ‘4.48 사이코시스’라는 작품이었어요. 제가 개인적으로 연극음악을 해오다가 셋이 라이브로 하면 재미있겠다 싶어서 시작하게 되었죠.
김규항 = 밴드 활동과 비교하면 어떤가요.
람혼 = 밴드는 관객을 향해 꽉 차 있는 최대 사운드를 지향한다면 연극이나 무용음악은 얼마나 비우는가가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어떻게 개입하고 어디에서 침묵이나 휴지를 통해 빠지는가. 그리고 배우, 무용수 심지어 조명 등의 무대장치와 어떻게 조응하는가를 생각하게 되거든요. 밴드음악은 깔끔하고 완결성 있게 가지만 협업에선 즉흥적인 면도 많고요. 파랑은 드럼 아닌 다양한 퍼커션들, 반시는 베이스로 내는 다양한 소리들을 시도하죠. 재미있는 작업입니다.
파랑 = 저도 아까 말씀드렸듯이 밴드에서 드럼이라는 생각보다는 드럼으로서 어떤 보편적인 것을 찾아보겠다는 욕구가 늘 우선인 편이라서인지 협업 작업들이 흥미롭고 재미있습니다.
반시 = 저는 좀 달라요. 저는 기본적으로 밴드음악을 좋아하고 다른 형태를 탐구해보겠다는 생각도 없었거든요. 사실 4박 갔다, 7박 갔다, 11박 갔다 하는 걸 적응하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협업은 저에게 스트레스가 심하고 어려운 일이었어요. 그러나 자꾸 하다보니까 이제 어느 정도는 즐길 수 있게 되었죠.(웃음)
김규항 = 밴드 공연과 실험적인 연극, 무용과의 협업은 관객이 좀 다른데요. 그런 단절에 대한 아쉬움은 없나요.
람혼 = 교집합이 조금씩은 생겨나는 것 같아요. 교집합이 아니라 지인들인가?(웃음)
반시 = 저희는 관객으로 만나서 지인이 되고 친구가 되고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팬이 없어요. 팬이 되는 순간 지인이 되는, 그 이후로는 이 사람이 팬인지 친군지, 우리 공연을 보러 오는 건지, 우리와 이야기하러 오는 건지 모르는….(웃음)
파랑 = 이번 10주년 공연 때도 관객이 꽤 많았는데 대부분 지인들이고 대부분 공연을 통해 만난 분들이죠. 연극배우나 무용가들도 많고요. 제 친구가 그날 그러던데요. ‘다 예술하는 사람들 같다, 너만 빼고.’(웃음)
김규항 = 반시는 외국계 회사에서 임금노동을 하고 있고 람혼은 비평가, 번역가, 연구자로서 활동을 하는데요. 파랑은 드럼 외엔 안 하고 살고 있어요. 스스로 선택한 거죠?
파랑 = 고3 때부터 일을 하지 않고 살겠다, 이 시스템을 거부하고 살겠다는 생각을 해왔어요. 그런데 근래 생각이 조금 바뀌고 있어요. 그렇게 사는 게 이 미국식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거부인가, 자기만족인가 하는 의문이 생겼달까요. 저도 곧 임금노동을 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일 안 하고 사는 방식을 내세운 적이 없듯이 앞으로도 일하고 사는 걸 합리화할 생각도 없습니다. 결혼하고 싶은 여성이 생긴 것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다는 사실도요.(웃음)
김규항 = 레나타 멤버들은 급진적인 분들인데 정치적인 이야기를 좀 해볼까요. 우리 사회에서도 한참 록의 저항성, 정치성에 대한 담론이 무성하던 시절이 있었고 지금은 씻은 듯이 없고 그렇죠. 실제 현장의 맥락에서는 어떤가요.
람혼 = 저도 레나타 전에 ‘이반’이라는 밴드를 했었고 메이데이나 이스크라 같은 급진적인 밴드들이 있었죠. 이런 형식에 이런 내용을 담으면 대중적인 파급력이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식이 있었어요. 나름의 의미와 성과도 있었죠. 그런데 음악의 정치성이 옮겨가는 것 같아요. 이를테면 두리반에 저희를 비롯한 많은 밴드들이 참여했잖아요. 그 대부분의 밴드들이 사회적인 밴드라고 하기는 어려운데 사회성이 강하게 표출되었죠. 과거처럼 각자 밴드들이 직접적 메시지를 전달하려 하기보다는 각자 추구하는 바는 다양한데 어디에 모이는가 그 공간이 어떤 곳인가로 정치성이 표현된다고 할까요.
반시 = 과거처럼 정치성을 표방하는 밴드는 잘 보이지 않는 반면에 “거지 같은 세상” 같은 가사는 어느 밴드에서나 아주 쉽게 찾아볼 수 있죠. 브로콜리너마저 같은 밴드는 저항적인 밴드라고 할 순 없지만 ‘졸업’이라는 노래에는 “팔려가는 서로를 바라보며”라는 가사가 나와요. 과거의 저항성은 선언된 것이라면 이젠 그런 선언 없이도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그것이라면, 심지어 내 음악 중에 그런 게 없어도 두리반 같은 상황에 내가 동의한다면 공연하는 거죠. 진화라고 생각해요.
김규항 = 정치성의 이행, 진화. 좋습니다. 보통의 시민과 노동자들은 어때 보입니까?
람혼 = 제가 최근에 갖고 있는 문제의식이랄까 하는 게 ‘청춘’에 관한 현상인데요. 예를 들면 <아프니까 청춘이다> 같은 책이라든가 힐링이니 멘토링 같은 것들이오. ‘88만원 세대’론을 비롯해서 청춘세대의 삶과 노동에 대해 사회 구조적으로 포착할 가능성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에 아프니까 청춘이고, 청춘이란 사서 고생하는 거고, 천번 흔들려야 어른이 되고 식으로 너무나 쉽게 안이하게 봉합하고 있어요. 그런 강연에 사람들이 몰리고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김규항 =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책 제목부터 현재 청년들의 현실로 보면 몰매를 맞아도 싼데 베스트셀러가 되고 저자는 떠받들어지죠.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개인의 책임과 태도의 문제로 돌리는 건 전형적인 우파의 사고인데 마치 기존 질서와 보수를 넘어서는 비전처럼 여겨지고 있죠. 안철수씨는 3시간밖에 안 잤다는 이야기를 즐겨 하던데 3시간만 자면 누구나 안철수처럼 될 수 있다는 말일까요?(웃음) 싱거운 사람들입니다.
파랑 = 주변의 많은 사람들을 보면 공부할 만큼 했고 좌파적 교양도 있고 전반적으로 사회의 ‘진보율’이 높아지고 있는 것 같아요. 취향과 안목 차원에서요. 그런데 근본적으로 별로 나아가고 있지 않은 느낌이에요. 이 많은 진보적 담론들이 실은 우파 체제를 한편으로 지탱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거죠. 이게 왜일까 하는 질문을 좀 더 치열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김규항 = 그렇게 머물고 있는 현실에 비해선 인터넷이나 트위터 같은 데선 참 어울리지 않을 만큼 시끄럽죠. 그 부조화가 우습기도 하고 기괴하기도 합니다.
반시 = 전에는 이른바 보수언론들이 정치적 무관심을 조장한달까, 권장한달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실제로 정치적 무관심이 쿨함의 일종이던 시절이 있었고요. 그런데 이젠 놀이의 영역에서든, 음악의 영역에서든, 수다의 영역에서든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게 쿨함인 사회가 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렇게 많은 이야기들이 돌고 도는데도 아무 것도 바뀌지 않죠. 가장 큰 이유는 바뀔 수 있다는 믿음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김규항 = 깊이 동감합니다. 바뀔 수 있다는 믿음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