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09년 1월 초, 공연을 하기 위해 짧은 일정으로 뉴욕에 다녀왔다. 앞으로 틈날 때마다 내가 작년에 수행했던 작곡과 연주 작업들을 정리하는 글쓰기를 시도해볼까 하는데, 그 시작으로 뉴욕 체류에 관한 짧은ㅡ아니, 솔직히 짧지 않은ㅡ일종의 '기행담(紀行談/奇行談)'을 올려본다. 이번 뉴욕행은, 재작년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초연했던ㅡ그리고 얼마 전 2009년 2월 초 대학로 아르코 대극장에서 <육식주의자들>과 함께 다시 공연했던ㅡ<몇 개의 질문> 공연을 위해서였다. 공연은 뉴욕의 Japan Society(日本協會)ㅡ괴이한 노파심에서 말하자면, 부연설명을 하는 이 괄호의 안과 밖은 결코 뒤바뀐 것이 아닌데, 이를 굳이 밝히고 넘어가는 것은 두 언어 사이의 '번역'과 그 틈에 위치한 '괄호'라는 기이한 잉여 영역에 대해 언제나 필요 이상으로 과도하게 신경이 곤두서 있는 나의 지병 때문일 것이다ㅡ에서 APAP(Association of Performing Arts Presenters)가 주관하는 'Contemporary Dance Showcase Phase 2: Japan and East Asia'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무대에 올려졌다. 2009년 1월의 뉴욕은, 나 같은 극단적 애연가에게는 극단적으로 불친절한 공간이기도 했지만(흡연이 가능한 실내 공간은 단 한 군데도 찾을 수 없었으므로), 연일 비나 눈이 함께 하는 소중한 시간이기도 했다(축축하고 차가운 도시의 공기 속에서, 그 거리에서, '빠직' 소리를 내며 타들어가는 담배의 음악 또는 소음, 결국 담배에서 시작되어 담배로 끝나는 한 이야기의 α와 ω). 도시의 이미지, 그 여정의 발자국은 내 안에서 일종의 '사유의 악보'를 그려낸다(그러고 보면 나는 언제나 이 치가 떨리는 '모더니즘적 랑만주의'에 동시에 매료되는 것). 음들의 배치를 시각화하여 보여주는 한 장의 악보처럼, 뉴욕이란 도시는 내게 기호들의 배치를 시각화해주는 하나의 지도였다(어쩌면 앙리 미쇼(Henri Michaux)의 시어(詩語)를 차용해 '일본'이라는 나라를 또 하나의 '가라바뉴(Garabagne)'로 설정했던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의 뒤를 따라, 나는 '뉴욕'이라는 도시를 기호들의 악보로 펼쳐보고자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지도는 말하자면 축척이 1:1인 그런 지도, 그런 기호, 그런 악보인 것. 그러므로 나는 어떤 '글'이나 '생각'을 공유하고 싶다기보다는 어떤 '소리'나 '음악'을 함께 듣고 싶은 것, 그뿐이다. 

 

▷ 뉴욕 일본협회(日本協會, Japan Society)의 전경. 설립된 지 100년이 넘었다. [사진: 람혼]

2) 나는 슬며시 저 괄호의 안과 밖을, 그 주(主)와 종(從)을 바꾼다. 뉴욕의 일본협회(日本協會, Japan Society)는 1907년에 설립되어 현재까지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지금의 건물은 1971년에 지어졌다). 특히나 이번 공연에서는 그 일정과 구성상 일본의 젊은 예술가들(연출가, 음악가, 안무가 등)과 만날 기회가 많았는데, 뉴욕 한복판에 그들이 자신의 작품을 펼칠 수 있는 이러한 공간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내게는 참으로 부럽게 느껴졌다(아마도 이러한 부러움은 내가 '국가'라는 형태에 관해 유일하게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감정의 형식일 텐데, 나와 같은 '비정규직 예술 노동자'에게야말로 정작 '국가적' 지원이 절실히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엄살 아닌 엄살, 농 아닌 농을 부려볼작시면, 소위 자칭 '문화관계자'들이여, 그 볼품없이 작은 눈을 좀 떠주거나 아예 눈을 감아버릴지어다). 이는 일본에 대한 내 착종된 감정과도 직간접적으로 관계되는 것이라 아니 할 수 없는데, 나의 이러한 지극히 '근대적인' 열등의식은 뉴욕이라는 도시 속에서 더욱 강렬하게, 이른바 '세계[예술]의 중심'이라고 하는, 공간에 대한 어떤 이데올로기적 규정성 속에서 더욱 예리하게, 나에게 하나의 '과제'를 오롯이 환기시켜 주고 있었다. 이러한 '근/현대'는 언제나 내게 '동시대적(contemporain)'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반시대적/시대착오적(intempestif/anachronique)'으로 느껴지는 어떤 것이다. 뉴욕의 한국문화원 직원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들은 이야기이지만, 한국문화원도 올해 뉴욕에 극장을 건립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하니 한 번 기대를 걸어볼 일인데, 이러한 '계획'을 듣고 내가 느끼고 품게 되는 어떤 '기대'란, 그 기대감과 희망감의 정체와 실체란, 도대체 어디서 기인하는 것인가 하는 물음에 생각이 가닿게 되면, 나는 또 다시 저 중심[主]과 주변[從]을 둘러싼 모든 담론적 물음과 대답들에 대한 강박적인 사유를 거의 자동적으로 작동시키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강박적 사유란 내게 일종의 '불수의근(不隨意筋)'과도 같은 형태로 이미 '내재화'되어 있는 것, 이것이 바로 내 안의 가장 큰 공포이자 가장 큰 추동력이랄 수밖에. 

 

▷ 전혀 귀엽지 않게, 귀여운 척 해보기(photograph as a self-portrait). [사진: 한승훈]

3) 공포와 추동력은 공히 어떤 '높이'를 갖는다. 나는 천장이 높은 공간을 무척이나 좋아하지만, 지금껏 살아오면서 그런 공간을 '생활공간'으로 삼을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전무하다시피했다. 사진 찍는/찍히는 행위를 아끼고 즐기는 나로서는 언제나 한 장의 사진 안에 담을 수 있는 공간의 형태와 그 비율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데, 천장의 높이가 주는 공간감은ㅡ그것이 나를 둘러싼 환경(milieu) 또는 생활세계(Lebenswelt)에 밀접하게 접속된 것이 아니라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ㅡ하나의 사진이 지니게 될 지극히 '정치적/미학적' 의미의 기저를 이룰 수밖에 없다. 왜 그런가? 사실 '자화상'으로서의 사진은 언제나 이른바 '공간의 정치'가 작동하는 가장 '내밀한' 장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한 장의 사진 안에서, 나의 파르라니 동그란 머리와, 그 머리 위로 역시나 동그랗게 매달려 있는 세련된 조명 사이에서, 저 천장이 만들어내는 어떤 '공간감'은,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려주는 사실의 전달이 아니라, 내가 어디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자 하는 한 의지의 표현으로 기능한다. 나는 뉴욕에 있다는/있었다는 하나의 사실은, '사실'이기 이전에 하나의 '의지', '묘사'이기 이전에 하나의 '표현'인 것. 따라서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이른바 '인증샷'이라는 신조어가 수행하는 부정적 비하의 호명은, 사진 이미지가 지닐 수밖에 없는 가장 '정치적인'ㅡ따라서 바로 그러한 의미에서 가장 '미학적인'ㅡ성격에 대한 규정에 다름 아니다. 나는 나의 정체성(identité)을, 곧 내가 나라고 말하는 동질성(homogénéité)을, 내가 아닌 다른 모든 것들의 이질성(hétérogénéité)으로, 세우고, 무너뜨리고, 다시 세운다. 

 

▷ 9.11 이후: 세계무역센터가 있던 자리에서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사진: 람혼]

4) 붕괴와 재건의 양면(兩面): 하루는, 현재 재건 공사가 한창인, 과거 세계무역센터가 있던 자리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강한 바람이 불었고, 비까지 흩날리고 있었다. 이 가장 '초현실적인' 장소와 풍경 앞에서, 그 주위를 한 바퀴 돈다고 하는 저 원환적인ㅡ하지만 동시에 일회적일 수밖에 없는, 따라서 원환적이긴 하지만 결코 순환적일 수는 없는ㅡ행위는, 내게 그만큼의 '초현실적' 의무감이라는 형식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건축과 재건의 욕망이라는 전경은 동시에 언제나 파괴와 해체라는 배경을 껴안고 있었다. 마천루의 형식과 외양은 내게 조마조마한, 오금이 저릴 듯한 불안을 안겨준다. 하늘 높이 치솟은 웅대함과 위압감 자체가 불안의 원인이 된다기보다는, 그 높이가 전제하고 포함하고 있는 '위치 에너지', 그 에너지가 지니고 있는 '붕괴의 잠재력'이 새삼 너무나 커다란 무게로 내게 다가왔기 때문이다(나는 이쯤에서 나와 동갑내기인 뉴욕의 소설가 조너선 사프란 포어(Jonathan Safran Foer)가 쓴 소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Extremely Loud & Incredibly Close)』의 몇 장면들을 떠올린다). '테러'라는 이름만을 남긴 어떤 무화와 붕괴의 '유명론적' 풍경이 무시무시한 만큼이나, 꼭 그만큼, 이 거대한 재건의 몸짓은 그 자체로 내게 하나의 '실재론적' 공포로 다가왔다. 새로운 건축물은 다시 하늘에 닿을 것이고, 그렇게 신전(神殿)은 다시 세워질 것이었다(그리고 그 위대한 '높이(le haut)'는, 처음에는 움푹하게 패인 지반을 다지고 또 저미는 저 '낮음(le bas)'을 환기시킬 것이고, 그리하여 그 다음으로 저 아래에서 시커멓게 입을 벌리고 있을 어떤 '비천함(le bas/l'abject)'을ㅡ롤랑 바르트의 말을 차용하자면, 저 이분법의 바깥에 있는 '제3항(le troisième terme)'을ㅡ, 언제나 다시금 어렵게 환기시킬 것이었다). 현대의 피라미드들, 그 신정체제(神政體制)의 건축물 숲 사이를 산책하기, 혹은, 건축의 에로스 안에서 붕괴의 타나토스를 한껏 향유하기. 그것도 아니라면, 넘치는 생의 에너지를 자신도 모르게 운반하며 걷고 있는 뉴욕 시민들의 이 활기찬 육체 사이로, 저 횡단보도 너머에, 흐릿하지만 굳건히, 혼자 꼼짝하지 않고 서 있는, 한 마리 사신(死神)을 응시하기. 

 

▷ 피에로는 날 보고 웃지. [사진: 람혼]

5) 그 사신의 서식지(棲息地)는 어디인가? 센트럴파크(Central Park)의 한 구석에 있었던, 세상으로부터 잊혀진 듯한 인상의 회전목마 하나. 벽에 장식된 피에로의 형상이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사신의 얼굴은 의외로 그렇게 슬픈 마음이 일 정도로 익살스러웠다. 말[馬/言]들이 움직이기 전, 나는 가까스로 그 사신의 얼굴을 포착할 수 있었다, 그렇게 포착했다고 착각할 수 있었다. 바로 이 '착각'의 궤적이 내 사유-악보의 첫 번째 성부를 이룰 것이다. 사신마저도 [비]웃고 갈 저 피에로와 함께, 머리에 꽃을. 

사유-악보, 첫 번째 성부: 회전목마의 은밀한 매력, 부르주아는 아닐지라도 

 



▷ 회전목마의 은밀한 매력, 그리고 어쩌면, 또한 마력(魔力/馬力). 벌어진 말들의 입, 나는 그 입을 무서워한다, 가지런하게 배열된 하얀 이빨과, 그 안으로 보이는 벌건 속살이, 나는 무섭다. 아주 낮은 목소리로 끔찍한 말을 내뱉을 것만 같은 말들의 그 빨간 혀가, 나는 무섭다. 그 말들이, 결코 살아 있는 것이 아니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살아 있는 듯, 살아 있는 시간 동안만을, 살아서 움직이고 꿈틀거리기에, 나는 언제나 '말'을ㅡ그리고 또한 '말'을ㅡ가장 무서워한다(이 말의 반복과 차이를 감지할 모든 이들에게). '신체 없는 기관(organe[s] sans corps)'이 주는 공포와 매력의 혼재(아마도 이 '역전된' 철학적 용어를 곁에 가까이 두고자 하는 이들은 가장 먼저 조르주 바타이유(Georges Bataille)의 「입(La bouche)」과 「엄지발가락(Le gros orteil)」을 읽어야 할 것이다). [사진: 람혼] 





▷ 돌아가는 회전목마 '바깥'의 풍경, 그 돌아가는 풍경의 한 프레임. 결코 되튕겨져 나갈 정도로 빠른 속도가 아니지만, 나는 이 현기증 나는 느림 속에서, 그만큼의 저속(低速/低俗)으로, 다른 공간을 향해, 그 공간의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사라져버리고 되튕겨질 위협을 느끼면서, 그렇게 조심스럽게 시선을 '바깥'으로[만] 돌린다. 나는, 나의 자전(自轉/自傳/字典)을, 세상의 공전(公轉/空轉)으로, 치환한다. 바깥으로는 회색빛 하늘을 투영하는 창문들이 나 있고, 천장의 빨간 기둥에는 아기자기한 전구들이 밝게 켜져 있지만, 안은, 내부는, 저 깊은 속은, 어둡고, 캄캄하다. 그 안에서, 그 사이에서, 나는 돌고 있다, 튕겨나가 확장되어 사라질 원심력과 구겨지며 축소되어 사라질 구심력의 사이, 그 어느 안에서. [사진: 람혼] 









▷ 영롱하게 동요하는 영상들, 희미하게 흔들리는 말[馬/言]들. 사진은 가끔, 추상과 구상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색과 형태의 경계를 즐기게 하는, 우연의 선물을 선사한다. 안무가/무용가 이소영과 함께 단 둘만 탔던 회전목마가 멈추자, 그 아무도 없는 텅 빈 세상 같았던 회전목마 안으로, 이번에는 조그만 아이들이 잔뜩 들이닥친다. 그 아이들이 채우게 될 다음 번의 회전무대에서, 그들은 또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생각하며 무엇을 담아가게 될까 하는 물음을 떠올리자, 문득 웃음이 나왔다. 나는 아이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그것은 내가 여전히 하나의 아이로 남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로 남아 있다면야 더 없이 반가운 일이겠지만, 못되고 신경질이 잔뜩 난, 뾰로통해진 얄미운 아이로 남아 있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랄까. 나는 저 아이들을 질투하고 있었던 것. 회전목마에서 내려 흘깃 뒤를 돌아다본 나는, 그 아이들을 부러워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아이들을 바라보는, 또 다른 아이의 아련한 마음으로.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사진의 '실수' 혹은 '농간'은, 사실 촉촉히 젖은 어떤 시선 앞에 펼쳐진 하나의 희뿌연 환영이다. [사진: 람혼] 



▷ 센트럴파크의 을씨년스러운 풍경. 한적한 도시 공원의 한 풍경을 공포영화의 한 장면으로 바꿔 보여주는 나의 '심리적' 촬영술은, 사실 벌건 대낮에도 저 전기 남포[lamp]에 등불 하나 밝히고 싶은 내 마음의 발로이다, 오히려, 역으로. 내가 가진 건 주머니 속 동전 몇 개뿐이라는 말에, 그 동전들은 자신에게 백만 달러와도 같은 가치를 지녔다는 말을 남기고, 그 동전들을 받아간 한 노숙자[homeless]를 떠올린다(심지어 이 자선(自選) 아닌 자선(慈善)의 행위는 뉴욕 버스 옆구리에 붙은 광고판으로도 '광고'되고 '장려'되고 있었으니, 내가 '노숙자(露宿者)'라는 단어 뒤에 굳이 'homeless'라는 영어를 따로 병기하는 이유는, 첫째, 한 사람이 살고 먹고 자는 곳을 일종의 긍정어법으로 표현하는 '노숙자'라는 단어와, 반대로 그가 살고 먹고 자는 곳의 부재를 표현하는 일종의 부정어법인 'homeless' 사이의 어떤 틈과 괴리에 주목하기 위함이고, 둘째, 왜 '노숙자'라는 단어를 구성하는 한자는 '路宿者'가 아니라 '露宿者'일 수밖에 없는가 하는 '랑만적으로' 슬픈 질문을 묻기 위함이다, 어떤 이가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고 말하는 '문법' 뒤에 감춰진 '법'의 어떤 필연적 확고함, 그리고 이슬만 먹고 살 수는 없다고 말하는 '문법' 뒤에 몸을 숨긴 자본주의의 어떤 '초연한' 잔인성). 무엇이 10 센트이고 무엇이 5 센트인지를 구분하는 데에 나는 일주일의 시간을 소비했다. 뉴욕을 떠나며 공항 안으로 걸어들어갔을 때에야 비로소 내게는 그 동전들이 서로 다른 것으로 구분되기 시작했다(면세점에서 자유의여신상 모조품을 하나 사는 나를 위해 남은 동전들을 모두 계산해 주었던 한 친절한 흑인 할머니에게 이러한 '구분'의 방법이란 아마도 숨을 쉬는 일처럼 자연스러운 것일 테지만, 그리고 저 노숙자에게 10센트와 5센트의 차이란 마치 10만 달러와 5만 달러의 차이처럼 큰 것일 테지만). 하지만 그 시점에서야 비로소 도래한 이 '구분짓기'의 가능성은 이미 내게는 전혀 소용없고 쓸데없는 것, 곧 '불가능성'의 다른 이름에 다름 아니었다. 아마도 진정한 '공포영화'란 이러한 가능성과 불가능성 사이를 왕복하는 장면들의 연속에 붙여진 이름은 아니겠는가. [사진: 람혼] 



▷ 카네기홀(Carnegie Hall) 앞에서. 쿠르탁과 리게티 음악 공연 포스터. [사진: 람혼] 

6) 센트럴파크에 당도하기 전, 나는 카네기 홀 앞에서 죄르지 쿠르탁(György Kurtág)과 죄르지 리게티(György Ligeti)의 음악 공연 포스터를 목격하고 말았다. 공연 날짜는 내가 뉴욕을 떠나는 날로부터 대략 10일 뒤. 실로 안타까운 마음을 뒤로 한 채 지나칠 수밖에 없었지만, 오히려 그 아쉬움을 잔뜩 담아 사진 한 장을 찍어두었다. 그런데 공연 프로그램에는 내가 이제까지 한 번도 실연(實演)으로 들은 적이 없는 리게티 말년의 곡 <피리, 북, 깽깽이로(Síppal, dobbal, nádihegedűvel)>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따라서 당연하게도 아쉬움과 안타까움은 두 배가 되고 열 배가 되고 백 배가 될 수밖에. 이 곡은 개인적으로ㅡ아르놀트 쇤베르크(Arnold Schönberg)의 <달의 피에로(Pierrot lunaire)> 이후ㅡ인성(人聲)과 실내악 구성의 악기들을 위해 작곡된 최고의 곡들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품고 있는 작품인데(일전에 사석에서 작곡가 최우정 선생과도 잠시 리게티와 이 곡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눴던 일이 있었는데, 이름이 비슷한ㅡ실제로 이름에 쓰인 한자까지도 똑같은ㅡ우리 두 사람이 한 작곡가에 대한 애호와 경배에 있어서도 비슷한 정도의 강도(强度)를 보인다는 사실이 참으로 신기하고 소중하게 느껴졌던 기억이 난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 곡을 꼭 한 번 직접 실연으로 들을 날이 오기를 고대한다. 2007년 3월 예술의전당에서 있었던 리게티 추모 연주회, 그때 처음으로 직접 실연으로 들을 수 있었던 두 곡이 여전히 뇌리에 깊게 남아 있다: <Atmosphères>와 <Violin Concerto>. 전자의 곡이 주는 음향적 효과를 몸소 콘서트홀 안에서 겪게 되는 경이로운 경험과는 별개로, 그날 후자의 곡에서 바이올리니스트 강혜선이 들려주고 보여준 연주를 나는 여전히 짜릿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또한 그 짜릿함과 설렘의 감정은 내게 어떤 '채무감'으로 남아 있는 일종의 부채이기도 하다. 기억의 변제와 경험의 상환으로 가득 채워진/채워질, 한 인생의 재구성/재건축, 지저분하게 적어 내려갔던 것과 마찬가지로, 또한 지저분하게 찢거나 지워나갈, 오선지 한 장. 







▷ 일본협회 극장 분장실: 이른바 '셀카'를 찍는 람혼, 그리고 무용가 한승훈과 최진한. [사진: 람혼]

7) 무대 뒤편 어둠 속에서 느끼는 팽팽하면서도 느슨한 긴장감은 씁쓸하면서도 짜릿한 담즙과도 같다.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일종의 '필요악'이다. 그것을 즐기기란 오히려 쉬운 일이다, 하지만 그것과 함께 하기는 어렵다, 함께 하는 듯 피해가기는 쉽다, 하지만 피해가듯 함께 하기란 더욱 어렵다. 이 사전(事前/史前) 과정 안에 공연이라는 경험 자체의 요체가 숨어 있는 듯이 느껴졌던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그렇게 보면 내게 친숙하면서도 언제나 낯설 수밖에 없는 저 사신의 자리와 존재감이란 것의 정체가 조금이나마 명백해진다, 그 존재감은 일종의 부재(不在)로서 명백해진다, 웃기지 않은가, 그래서 아마도 이 웃음이란 무엇보다 가장 무겁기에 또한 가장 가벼운 웃음, 가장 커다랗게 터지기에 가장 부정적이고 음울할 수밖에 없는 웃음일 것이다. 사진기 앞에서 터질 듯 말 듯, 그렇게 살며시 머리를 들이미는 이 웃음 속에는, 이 핏기 없는 웃음 속에는, 이미 하나의 '죽음'이 온전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을 것이었다. 그러니,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천진하고 해맑게, 최대한 웃을 수밖에. 나와 이 죽음을 공유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향해, 그러니까, 다시 말하자면, 언제나 찰나와 순간으로밖에는 포착할 수 없을, 하나의 연속성(continuité)을 향해. 무언가를 '향해' 행해지는 '항해', 나는 언제나 파도에 흔들리는 배 위에 있는 것이지만, 나는 나를 온전히 집어삼킬 저 바다의 깊이를 알지 못한다. 





▷ 일본협회의 로비와 도서관. [사진: 람혼]

8) 바다를 건너는 배 위의 한 풍경: 열려 있는 공간은 소환하며, 숨겨져 있는 공간은 유혹한다. 개방된 공간은 그곳으로 사람들을 모으고 불러들이며, 은폐된 공간은 접근을 거부하면서도 동시에 교접을 종용한다. 저 도서관 속, 마치 이빨처럼 가지런히 꽂혀 있는 책들이, 나를 무섭게 매혹시킨다, 마치 세이렌의 노래처럼. 나는 로비와 지하를 오르락내리락하면서도, 마치 마스트에 몸을 묶는 마음으로, 그렇게 시선의 강탈을 허락하고 있었다, 그렇게 몸을 단단히 묶고서, 그렇게 묶고 나서야, 나는 나의 귀만을ㅡ눈이 아니라ㅡ살짝 열 수 있었다, 비겁하면서도 나른했다. 미국인들은 이 일본협회의 지하, 도요타 어학 센터에서 일본어를 배우고 일본어로 인쇄된 책들을 읽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읽고 쓰고 배우는 일본어는, 내가 읽고 쓰고 배우는 일본어와는 전혀 다를 것이다. 바다가 지닌 어두운 매력, 바다를 건너게 하는 이 무서운 마력이란 바로 이러한 차이, 이러한 틈에서 온다. '입구(入口)'는 언제나 시커멓게 벌어진 하나의 '입'이다. 흥미롭지 않은가, '입(入)'은 한자이고, '입[口]'은 한글이라는 이 우연적이면서도 동시에 필연적인 하나의 사실이, 이 마력적인 결합이, 무섭지 않은가. 



▷ 아직 열리지 않은, 어둠 속의 나의 무대, 나의 악기들. [사진: 람혼] 



▷ 텅 빈 객석 속에 서다. [사진: 한승훈]

9) 텅 빈 무대 뒤편과 텅 빈 객석, 한쪽은 나만이 채울 [수 있을] 것이며, 다른 한쪽은 관객들만이 채울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나 혼자만이 채울 수 있는 객석의 크기는 어느 정도일까, 혹은, 관객들이 밝힐 수 있는 무대 뒤편 어둠의 조도(照度)는 어느 정도일까, 문득, 텅 빈 객석에 서 있는 내 모습을 보면서, 지금 이 순간, 오로지 어떤 '잠재성'으로만 존재하는, 접혀진 의자들, 펼쳐져서 누군가 앉기를 기다리고 있을, 저 의자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 그런 물음들을 떠올렸다.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이 모든 몸짓들 속에서, 나는 언제나 묻게 된다, 왜 대답할 수 없는 걸까, 하고, 왜 언제나 나는, 물음으로밖에는 대답할 수 없는 걸까, 하고. 물음 안에 이미 답을 포함시키고 구겨넣기, 아니, 오히려 물음 안에서 답할 수 없음을 고백하기. 여기서 나는, 뱀이 뱀의 꼬리를 무는, 마음속에 깊이 각인된 한 자락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그래서 이 물음과 대답의 연속된 고리가 헛되고 헛되며 헛된 하나의 '연금술'일 수밖에 없음을, 또한 떠올린다, 그렇게 연금술(alchemy)은 결국 또한 하나의 화학(chemistry) 작용임을 떠올리고, 그래서 또한 고개를 주억거린다, 마치 알겠다는 듯이, 사실 내 고개는 모르겠다고, 도리도리 가로짓는 어떤 부정과 부인을 목표로 했으나, 내 머리를 아래로 끌어당기는 저 중력은, 언제나처럼, 이토록 완강하다. 

 



▷ 두 종류의 일본협회 2009년 시즌 공연 팸플릿(위)과 그 속(아래). 



10) 이번 공연은 한 번의 휴식 시간(intermission)을 사이에 두고 모두 다섯 팀의 작품을 연속적으로 무대에 올리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1월 9일(금)과 10일(토) 이틀 동안 총 3회의 공연이 이루어졌다). 내가 속해 있는 작품 <몇 개의 질문>을 제외하자면, 내게는 개인적으로 두 개의 공연이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몇 개의 질문> 바로 직전과 직후에 무대에 올랐던 두 개의 작품, 곧 한 안무가와 한 음악가의 협업인 <E/G>, 그리고 극단 chelfitsch의 '무용-연극' <Air Conditioner>가 바로 그것이다: 







▷ 히가시노 요코(Higashino Yoko)와 가지와라 도시오(Kajiwara Toshio)의 협업 <E/G>: 이 작품은 스피커가 찢어질 듯한 굉음으로 시작한다(아마 많은 관객들이 처음부터 이 소리에 많이 놀라거나 조금은 짜증이 났을 수도 있겠다). 작품 자체가 크게 나의 주목을 끌었다기보다는, 믹싱의 기법을 이용한 '즉흥성'의 음악, 그리고 음악가 자신을 무대 위의 '언어' 안에 포함시키는 연출의 문법이 개인적으로 사뭇 인상적인 공연이었다. 음악가 가지와라 도시오(梶原敏夫) 씨와는 무대 뒤에서 여러 번 같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 스스로가 즉흥 기타리스트이기도 한 이유로 해서 언젠가 함께 협업을 해보자는 약속을 했다(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 약속이 빠른 시일 안에 이루어지길 희망해본다). 언젠가부터 개인적으로 두 대의 기타가 연주하는 즉흥 음악에 춤을 올려놓고 싶은 '단순한' 욕망 하나가 생겼다. 그 작업을 가지와라 씨와 함께 해볼 날을 기대한다. [사진: japansociety.org





▷ 장은정 안무, 이소영, 이윤정, 최진한, 한승훈 출연, 최정우 작곡 및 연주, <몇 개의 질문(Several Questions)>: 이 작품은 올해 2월 초 내가 대본을 쓰고 작곡한 <육식주의자들> 공연에서 재공연된 바도 있고, 일전에 공연 영상을 한 번 올렸던 적도 있다(http://blog.naver.com/sinthome/40044551630). 개인적으로ㅡ<휘어진 시간>(정영두 안무), <I'm All Ears>(이소영 안무)와 함께ㅡ최근 몇 년 동안의 작업들 중 작곡의 측면에서 애착이 상당히 많이 가는 작품의 하나인데, 음악적으로는 일단 거의 철저하리만치 조성(tonality)에 기초한 내 나름의 '굴절된' 로맨티시즘을, 그리고 파편들(fragments)로 이루어진 여러 악구들의 병치를 통해 일종의 '조각난' 총체성을 그려보고자 했다(그러고 보면, 음악은 자주 '회화'의 은유를 취하곤 하는데, 현재의 나는 또 그때와는 조금 더 멀리 떨어져 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지금에 와서 더욱 강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이지만, 내게 이 공연은 또한 내가 무용수들과 한 공간 속에, 하나의 시간 안에 존재한다는 느낌을 진하게 주는 공연이기도 하다(바로 이 사람들과 함께였기에 가능했던 작업이라는 의미에서). 개인적으로 내게는, 작지만 단단한 발판, 혹은 소중한 지지대와도 같은 작품. [사진: japansociety.org



▷ 오카다 도시키(Okada Toshiki) 연출, chelfitsch 극단의 작품 <Air Conditioner>: 이번 뉴욕 공연에서 함께 했던 작품들 중 단연코 나를 가장 매료시킨 공연이었다. 사무실 안에서 가동되는 에어컨과 그 온도를 주제로 남자 사원과 여자 사원이 서로 끝도 없이 겉도는 대화를 나눈다. 같은 대화가 반복되는 와중에 그 반복의 리듬을 확장하거나 간섭하고 때로는 분쇄하는 분절들이 곳곳에서 등장한다. 대화 중에 계속되는 어색하고 생경한 몸짓들은, 그 자체로 그들의 대화가 지닌 [존재하지 않는] 서사 구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낯선 움직임들로 돌출된다. '현대인의 고독과 소통의 부재'를 '표현'했다고 가장 단정적으로 '유쾌하게'ㅡ그리고 또한 가장 '교과서적으로' 불쾌하게ㅡ요약하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키는 이 작품은, 그것이 이러한 유쾌와 불쾌의 공존과 둘 사이의 틈을 문제삼는다는 바로 그 지점에서, 내게는 지극히 '미학적'이고 '정치적'인 것으로 느껴졌다(그러므로 이러한 '쾌(快)'의 문제는 언제나 정치적인 문제였다). 이 작품을 연출한 오카다 도시키(岡田利規) 씨의 '연극적/무용적' 강조점이 아마도 이러한 대사와 움직임 사이, 언어와 몸짓 사이, 감정과 표현 사이의 어떤 '틈 벌리기' 작업, 어떤 '낯설게 하기' 작업에 있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내게는 이 작품이, 연극적인 것(le théâtral)을 문제 삼는다는 넓은 의미에서의 '부조리극'과, 움직임의 의미와 무의미에 걸쳐 있는 '현대무용' 사이에서, 어떤 흥미로운 접점을 찾아낸 듯, 매우 유쾌하면서도 지극히 우울한 작품으로 느껴졌던 것. 이러한 '접점'을 어떻게 사유해야 하는가, 그리고ㅡ단순히 무대와 관객 사이의 '거리'뿐만 아니라 장르들 사이의 '거리'라는 의미에서ㅡ이러한 접점 자체를 가능케 하는 조건인 '거리'를 어떻게 사유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ㅡ최근 랑시에르(Rancière)의 『해방된 관객(Le spectateur émancipé)』(2008)을 '가벼운 마음으로' 흥미롭게 읽은 나에게는 특히나ㅡ새삼 매우 의미심장한 것으로 다가온다. 문득, 오카다 씨가 연출한 작업들을 좀 더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사진: japansociety.org



▷ 대본을 들여다보고 있는 오카다 도시키 씨의 모습. 그의 작품이 너무 재미있고 흥미로워서 오카다 씨와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게 되었는데, 그 이전에 그가 한국의 백남준 아트센터에서 공연을 올린 적이 있었다는 사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김남수 선생을 아냐는 물음과 대답에 서로 반갑게 웃었다(세상은 무척 넓은 것 같으면서도 참 좁다). 백남준 아트센터에서 했던 공연 <3월의 5일>은 우리 공연이 있은 후 같은 일본협회 극장에서 다시 상연되기로 예정되어 있었는데, 그 작품을 관극하고 오지 못한 것이 개인적으로 못내 아쉬운 부분이다(역시 공연은, 볼 수 있을 때, 눈을 크게 뜨고 잘 찾아다니면서 봐야 한다는, 불변의 진리, 다시금 확인하며, 내 게으른 몸에 채찍을 가한다, 찰싹!). 



▷ 『타임 아웃(Time Out)』 뉴욕판에 실린 <몇 개의 질문> 공연 소개. 이 잡지는 이소영과 최진한의 저 익살스러운 모습에 주목하여 그 장면의 이미지를 도드라지게 싣고 있었는데, 이러한 이미지의 선택에 내포된 어떤 기호(嗜好/記號)의 작동 방식을 고찰해보는 일은 그 자체로 흥미롭다. 우리는 하나의 이미지 안에서, 그리고 그 이미지를 선택하는 하나의 행위 안에서, 어떤 특정한 '미학적' 이데올로기를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이러한 '이데올로기'는, 한 잡지 안에서 텍스트와 이미지를 어떻게 편집하는가 하는 가장 기술적이고 실제적인 요소로부터, 어떤 매체가 한 작품 안에서 특정한 측면과 장면들을 어떻게 선택하고 기억하는가 하는 가장 예술적이고 미학적인 요소까지를, 모두 포괄한다). 파편으로 남아 있는 기억들은, 말 그대로, 서로 다르게 기록될 수 있으며, 또한 그렇게 기록되기에. 

사유-악보, 두 번째 성부: '일본적인 것'이란 무엇인가, 라는 진부하고 오래된 물음 





▷ 일본협회 로비에 마련된 '정원'의 모습: 우리의 공연과 같은 시기에 일본협회 전시장에서 열리고 있던 'New Bamboo'전(展)은 로비에서부터 이러한 형태로 형상화되고 압축/확장되어 여유로우면서도 위압적인 모습으로 방문자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이 '일본식 정원'의 '동시대적' 형태가 내게 선사하고 있는 어떤 '기괴한 친숙함'은, 아마도 내가 평생 해결해야 할 어떤 '채무감'의 부분적 전신(全身/前身/轉身)일 것이다. 어쩌면 누군가는 이 안에서 '정중동(靜中動)'의 세계를 엿볼 수도 있었을 것이고, 또 누군가는 '바쇼적(芭蕉的)' 세계의 일단을 맛볼 수도 있었을 것이며, 또 어떤 누군가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겐지모노가타리적(源氏物語的)' 세계의 현현을 목격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여, 뉴욕에 위치한, 이 일본협회 안에서, 이토록 아름답게 꾸며진 한 작은 '일본-현대식' 정원은ㅡ혹은, 더 넓게 말해, 이 '오리엔탈리즘식' 정원은ㅡ, 내게 실로 커다란, 그러나 진부하고 오래된 물음 하나를 던지고 있었다: '일본적인 것'이란 과연 무엇인가. [사진: 람혼] 

사유-악보, 세 번째 성부: 지하철에서 맞닥뜨린 어떤 방향성(方向性/防香性) 





▷ 뉴욕 지하철(Metro)의 한 벽면, 그 광고판 위에서 맞닥뜨린 낙서 하나가 내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정치인들을 모두 죽여라(Kill All Politicians)!" 꽃 다운 향기[芳香]를 맡거나 내기 위해서는, 최소한 향기를 막고 있는[防香] 모든 것들을 제거하고 없애버리는 방향(方向)으로 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지하철에서 만난 저 직선적인 낙서가 내 안에서ㅡ'방향'이라는 단어와 발음을 세 번씩이나 반복하게 하는ㅡ일종의 언어유희를 작동시키면서, 동시에 그 '말뿐인 말'의 품 속에 날이 시퍼런 칼 한 자루를 숨겨놓는다('言中有劍'이라고 할 밖에). 이 가장 직접적이고 직설적인 분노의 표현은, 바로 그 표현의 보편성과 편재성(遍在性)을 통해서, 자신의 거친 힘을 긷는다(현재 우리가 품고 있고 또 품고 있을 어떤 '살의(殺意)' 역시 이보다 더 완곡하고 덜 직선적일 수 있을까). 이렇듯,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이정표란, 이미 존재하는 어떤 것이 아니라, 언제나 새롭게 정립되는 어떤 것이라는, 생각의 한 자락, 의지의 한 자락. [사진: 람혼] 



▷ 카네기홀, 잰켈(Zankel) 홀에서, 제임스 레바인 지휘의 공연이 시작되기 전. [사진: 람혼]

11) 메트로폴리탄(Metropolitan) 오페라 공연을 하나쯤 보고 싶었지만, 그 기간에 공연되고 있는 작품들 중 딱히 끌리는 레퍼토리가 없었기에(그래도 일정상 관람이 가능했던 공연은 마스네(Massenet)의 <타이스(Thaïs)>뿐이었는데, 내가 이 오페라를 보고 싶어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은, 나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지극히 예상 가능하지 않은가), 일찍 방향을 전환해 제임스 레바인(James Levine) 지휘의 실내악 공연을 일청(一聽)/일람(一覽)하게 되었다. 이 공연을 통해 내가 새삼 새롭게 '재발견'한 작곡가는 루이지 달라피콜라(Luigi Dallapiccola)였다. 공연에서는 각각 그의 초기작과 후기작에 속하는, 소프라노와 실내악 앙상블을 위해 작곡된 두 작품, <세 편의 시(Tre poemi)>와 <이별(Commiato)>이 연주되었다(예를 들자면, 지극히 이탈리아적인 성악 창법과 12음 작곡 기법 사이의 어떤 '묘한' 만남을, 귀를 열어 연상해보라). 두 곡 중 내게 더 인상 깊었던 쪽은 후자의 작품, 곧 달라피콜라의 마지막 완성작으로 알려진 <Commiato>였다. 이 곡은 꼭 나중에 악보를 구해서 재청(再聽)과 함께 일독해보고 싶은 작품이기도 한데, 후반부로 진행되면서 점차 소프라노의 인성과 금관악기의 음색이 유니슨으로 일치되는 기이하고도 단말마적인 '통합'의 코다가 특히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이 공연의 백미는 아마도 엘리엇 카터(Elliott Carter)의 작품 <In the Distances of Sleep>의 연주가 아니었을까 하는 개인적인 생각인데, 특히나 내게 감동적이었던 풍경은, 1908년에 태어난 이 미국 작곡가가ㅡ그러니까 100세가 넘었다!ㅡ직접 객석의 앞자리에 앉아 자신의 작품을 감상하는 장면, 그리고 레바인의 요청에 따라 작품의 연주가 끝난 후 무대 위로 올라가 연주자들과 함께 인사하는 장면이었다. 비교하기는 지독히도 싫지만, 예를 들어, 역대 대한민국 정권들이 작곡가 윤이상을 생전에 어떤 식으로 대했던가를 떠올려볼 때, 그리고 또한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음악들은 이 땅의 이런저런 연주회에서 끝도 없이 반복되고 재생되는 반면 왜 강석희나 진은숙의 훌륭한 곡들은 그만큼 자주 연주되지 못하고 널리 애호되지 못하는가를 떠올려볼 때, 엘리엇 카터의 존재와 등장 그 자체에서 받은 감동이 슬며시 어떤 착잡한 무게감으로 뒤바뀌는 경험을 나로서는 피할 수 없게 된다. 



▷ 재즈 갤러리(The Jazz Gallery)의 전경. [사진: 람혼] 



▷ 로이 하그로브(Roy Hargrove)와 그의 빅밴드. [사진: 람혼]

12) 블루 노트(Blue Note)와 빌리지 뱅가드(Village Vanguard)로 대변되는 뉴욕의 재즈를 맛보지 않고서 뉴욕을 떠나는 일을 상상할 수 있었을까. 물론 나는 상상할 수 있었고, 또 그렇게 상상하고 있기까지 했다. 체류 기간이 그리 충분치 못했던 만큼, 그 시간 동안 재즈 공연 하나 보고 듣지 못하고 떠나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어디 좋은 재즈 공연이 없을까 하고 눈을 씻고 찾던 중 구세주처럼 다가온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로이 하그로브의 공연 소식이었다. 작년 초부터 계속하여 트럼펫 연주를 야금야금 어렵게 독학해 오고 있는 나는,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너무나 익숙하게 들어왔던 수많은 트럼펫 연주자들의 연주가 새삼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는 사태를 '꾸준히' 경험하고 있는 중인데(역시 단순히 듣는 것과 연주하는 것 사이에는ㅡ그리고 또한 단순히 듣는 것과 악보를 함께 보는 것 사이에는ㅡ항상 어떤 무시하지 못할 틈이 존재한다), 이 와중에 현존 최고의 트럼페터 중 하나로 손꼽히는ㅡ'하드 그루브(Hard Groove)'라는 별명을 가진ㅡ저 로이 하그로브의 연주를 듣고 볼 수 있다니, 그 자체로 눈이 번쩍 뜨일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당일에 예약도 없이 찾아갔기에 대기자로 무작정 기다려야 했지만, '입석'이라도 좋으니 꼭 들여보내달라고 사정한 끝에 겨우 제시간에 입장할 수 있었다. 로이 하그로브의 '아지트'라고 할 이 재즈 갤러리는 원래 그와 동료 연주자들의 연습실로 사용되던 곳이었다고 한다(저 허름하고 누추한 외관의 건물을 보라). 지금은 그들이 유명해진 덕분에 공연장으로 바뀌어 연일 크고 작은 재즈 공연이 열리고 있다. 사회자는 이미 다소 지연된 공연의 시작을 서둘러 알리고 로이 하그로브의 등장을 재촉하며 박수를 보낸다, 하여 나도 열렬히 신나게 박수를 보내고 있는데, 그러고 있는데, 누군가 뒤에서 내 어깨를 잡는다, 나는 혼자 왔는데, 누굴까 하고 뒤를 돌아보니, 로이 하그로브가 웃으며 서 있다, 내 어깨를 잡지 않은 다른 한쪽 손으로 플뤼겔호른을 잡은 채로, 좀 지나가도 되겠냐는 익살스런 몸짓을 취하며, 그는 나를 마주보았다, 그가 내 어깨를 잡았던 것이다, 와우! [蛇足: 보통 이런 '행운'을 겪은 경우 그 옷을 세탁하지 않는 것이 일종의 '상례'일 테지만 그럴 수는 없었기에 귀국 후 옷을 빨 수밖에 없었다는 아쉬운 마음 한 자락 남겨둔다.] 

사유-악보, 네 번째 성부: 뉴욕의 구보씨, 혹은 산책자들의 작당(作黨) 













▷ 기호의 풍경들은 신호등에서 시작해서 신호등으로 마무리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 여섯 장의 사진들, 여섯 장면의 풍경들을 차례로 거쳐가면서, 하나의 이야기를 조작(造作)하고 있었다: 녹색 불이 켜지고, 나는 자전거를 세워두고 비로소 걷기 시작했다. 교통경찰의 빛바랜 조작함(操作函)이 시야를 잔뜩 가로막았고, 스치듯 지나치는 거리에는 오래된 나무가 건재했다. 주차할 공간은 없었다. 건너지 마세요, 라고 말하는 저 빨간 손은, 하지만, 내게 손바닥을 부딪치자고 반갑게 다가오는 어떤 소중한 이의 손이었다. 나는 그 손을 잡았다. 그래요, 빨간 손 친구, 우리 거리에서 다시 만나요, 저도 사실 빨간 손을 갖고 있답니다, 녹색 불은 이제 어떻게 돼도 상관없어요... 나는 길을 건넜다. [사진: 람혼] 

사유-악보, 다섯 번째 성부: 편집증적 책 사냥꾼의 탐욕스러운 아밀라제

13) 나는 어느 곳을 여행하든 반드시 그곳에 위치한 서점들을 순례하는 것을 원칙 아닌 원칙으로 삼고 있다(굳이 여기서 '원칙 아닌 원칙'이라고 부정/긍적적으로 말하는 이유는, 그것이 내게는 거의 본능ㅡ어쩌면 일종의 '식욕', 본래의 식욕을 포기하면서까지 추구하는 그런 또 다른 '식욕'ㅡ에 가깝기 때문인데, 그러므로 내 기행(紀行/奇行)의 '족적'이란 한 여행자의 발자국으로 남음과 동시에 또한 한 편집광의 타액흔(唾液痕)으로도 남는 것). 이하 뉴욕의 서점에서 얻었던 소중한 '인연'들 중 몇 권을 소개해보기로 한다: 



Alex Coles(ed.), The Optic of Walter Benjamin, London: Black Dog, 1999. 



Daniel Guérin, Anarchism(trans. by Mary Klopper), New York: Monthly Review Press, 1970.

앨런(Allen)가에 위치한 작은 책방인 블루스타킹 서점(Bluestockings Bookstore)은 정치학/사회학 관련 서적들만을 특화하여 판매하고 있는 독특한 곳이었다. 그 이름 그대로, 정말 서점 안에는 책을 읽고 있는 여자들이 너무 많았다(물론 그들이 모두 파란 스타킹을 신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주변에 이런 종류의 서점이 많이 있냐는 나의 질문에, 코와 귀를 뚫은 젊은 매니저는 '예전엔 많았지만 지금은 거의 우리 서점밖에 남지 않았다'고 답하며 씁쓸함 반 자랑스러움 반인 표정을 지었다. 산책자이자 사냥꾼의 탐욕스러운 눈길은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에 관한 책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법,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바 그의 '파사젠-베르크(Passagen-Werk)'와 관련된 문제들을 다루고 있는 이 논문집과 함께, 노암 촘스키(Noam Chomsky)의 서문을 싣고 있는 다니엘 게랭(Daniel Guérin)의 고전 『아나키즘(Anarchism)』의 영역본(내겐 이 책의 불어본이 없다)을 장바구니에 담았다(한국에 돌아와서는 하승우의 책 『아나키즘』(책세상, 2008)과 연동하여 독서 중). 



Georgy Katsiaficas, The Subversion of Politics, Edinburgh/Oakland: AK Press, 2006. 



Paul Le Blanc, Lenin and the Revolutionary Party, New Jersey: Humanities Press, 1990.

블루스타킹 서점에서 구입했던 또 다른 두 권의 책은 카치아피카스와 르블랑의 책이었다. 우리에겐 이미 『신좌파의 상상력』으로 익숙한 저자인 카치아피카스의 『정치의 전복』(2006)은 1997년에 출간됐던 동명의 책을 개정/증보한 것이다(『신좌파의 상상력』이 68 운동에 대한 전지구적 보고서였다면, 『정치의 전복』은 유럽의 자율주의 운동에 관한 일종의 집대성이다). 이 책은 또한 현재 난장 출판사에서 번역을 기획 중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국역본을 가장 기대하고 있는 책들 중 하나이기도 하다. 레닌에 관한 르블랑의 책은 숙소에서 잠들기 전 침대 머리맡에서 조금씩 읽어나갔던 책인데, 이러한 독서의 행위는 내 나름의 작은 '혁명전야'를 준비하기 위한 어떤 작당(作黨)의 몸짓이었다고 해두자(그러나 내게 최고의 '혁명가'는 언제나 호치민(Ho Chi Minh)임을 또한 첨언해두자). 



Philip Larkin, Jazz Writings, London/New York: Continuum, 2004. 



Elizabeth Merrick(ed.), This Is Not Chick Lit, New York: Random House, 2006.

시인 필립 라킨(Philip Larkin)이 재즈에 관해 쓴 글들을 모은 책이 따로 출간되어 있다는 사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한 시인이 재즈라는 음악 장르와ㅡ그리고 자신과 비슷한 시인의 영혼을 소유한ㅡ음악가들에 쏟았던 진한 애정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이 책은 또한 '재즈에 대한 책들에 관한 책'이기도 하다. 『이것은 칙릿이 아니다』라는 도발적인 제목에 이끌려 구입한 또 다른 책은 이른바 현대 소비사회의 대표적 장르로 부상한 '칙릿(chick lit)'에 대한 뒤집어보기이다. 그 기획의 의도가 다소 '도덕적'인 배경을 깔고 있다는 점이 우선 눈에 밟히긴 하지만(이에, 또한 확장해서 비유하자면, 예를 들어 '할리퀸 로맨스'에 대한 오만과 편견에 사로잡힌 어떤 도덕적 단죄는 그 자체로 '문학주의적'이며 이데올로기적인 것이겠지만), 이 단편집은 바로 그 '칙릿'이라는 장르에 대해 이론으로써가 아니라 같은 소설의 장르와 문법으로써 대거리하고자 하는 '산뜻한' 기획의 소산이다. 이런 책은 국내에서도 한번쯤 번역되거나 기획될 만한 성격의 것이 아닌가. 



Peter Webb, Robert Short, Death, Desire and the Doll, Solar Books, 2006(1985¹).

리허설과 공연이 없는 오전 시간, 나는 스트랜드(Strand) 중고서점에 틀어박혀서 호시절(好時節)을 보내곤 했다(이런 공간이야말로 내게는, 저 블레이크(Blake)의 시어를 차용하자면, '천국과 지옥의 결혼' 피로연과도 같은 장소가 아니겠는가). 한스 벨머(Hans Bellmer)에 대한 내 개인적인 애정과 열광이야ㅡ그리고 그가 조르주 바타이유와 맺고 있는 어떤 '밀접하고 끈끈한' 관계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천착이야ㅡ이미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사항이겠지만, Solar Books라는 출판사에서 출간된 이 책의 발견은 나를 다시금 예의 저 도착적인 열정에 사로잡히게 했다. 이 출판사의 정체가 궁금하여 방문해본 공식 사이트(www.solarbooks.org), 이곳에서 풍겨나오는 이런 식의 '비천한' 아우라는 실로 오랜만에 맛보는 '장관'인데, 앞으로 이 출판사의 책들에 주목해봐야겠다는 마음이 동한다. 이 편향된 '반쪽 초현실주의자들'의 오래된 도착증, 발효된 편집증. 



William Shakespeare, The Complete Works, New York: Random House, 1997.

올해 셰익스피어와 관련된 책을 한 권 번역할 일도 있고 해서, 랜덤하우스에서 나온 한 권짜리 셰익스피어 전집을 구입했다. 랜덤하우스에서 발간하는 이 'Gramercy' 총서의 책으로는 개인적으로 루이스 캐롤(Lewis Carroll)의 전집을 이미 소장하고 있었는데(이 또한 저명한 도착증 환자 중 한 분이라 아니 할 수 없지 않은가), 이 총서의 고풍스러운 양장 제본은 상당히 예쁘기는 하지만 어딘가 귀엽고 익살스럽기까지 한 구석이 있다(사실 1200쪽이 넘는 이 책을 한 끼 점심 값에 해당하는 가격으로 구했다는 사실이 내게는 가장 '귀엽고 사랑스럽다'). 



Thomas Hobbes, Leviathan, vol. 1, London/New York: Continuum, 2005. 



Thomas Hobbes, Leviathan, vol. 2, London/New York: Continuum, 2005.

개인적으로 『리바이어던』은 리차드 턱(Richard Tuck)이 편집한 Cambridge 판본 한 권만을 갖고 있었는데, Continuum 출판사에서 나온 이 실로 저렴한 두 권짜리 판본을 보자마자 주저 없이 장바구니에 담아버렸다. 이 판본은 『리바이어던』 자체를 두 권으로 분책한 것이 아니라, 원문 텍스트는 2권으로 몰고 1권을 온전히 '해제'에 바치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특히나 이 1권은 『리바이어던』 판본의 문헌사(文獻史)를 파악하기 위해서 반드시 일독을 요하는 장문의 해설들을 수록하고 있는데(이 책의 3, 4, 5부가 모두 이러한 문헌사적 해설에 할당되고 있다), 하나의 철학서를 읽는 과정에 반드시 문헌사적 연구가 필수적으로 수반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리바이어던』과 같은 고전을 읽는 행위 안에서 이러한 문헌사적/문맥적 점검은 한 사상을 그 문자적/활자적 차원에서도 또한 '역사적으로' 검토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한 번쯤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라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Alfred Rosmer, Le mouvement ouvrier pendant la première guerre mondiale
    Paris/Den Haag, 1959.

뉴욕의 중고서점에서 웬 프랑스어 책인가 하겠지만, 때로 이런 오래되고 소중한 책을 우연히 맞닥뜨리는 기쁨은 '국적'을 가리지 않는 것이다. 트로츠키(Троцкий)와 매우 가까운 관계에 있던 프랑스 공산주의자 알프레드 로스메(Alfred Rosmer)가 직접 저술한 이 책은, 생디칼리슴(syndicalisme)과 침머발트(Zimmerwald) 사이, 프랑스와 러시아 사이를 오가며, 세계1차대전 시기를 전후한 유럽의 사회주의 운동에 대해, 특히 당시 사회주의가 전쟁과 반전(反戰) 사이에서 취한 입장의 역사에 대해 꼼꼼한 서술을 시도하고 있다. 또한 이 책은 트로츠키가 쥘 게드(Jules Guesde)에게 보낸 편지를 부록으로 싣고 있기도 한데, 이는 당대 가장 큰 신망을 받았던 사회주의자들 중 하나인 게드가 속해 있는 프랑스 정부가 자신을 추방하고 전쟁에 대해 취하고 있는 태도를 비판하고 있는 것으로, 프랑스 사회주의에 대한 트로츠키의 우려 섞인 연대감이 잘 드러나 있는 소중한 자료이다. 



Actuel Marx, n° 8, Liberté, égalité, différences, Paris: PUF, 1990. 

 

Actuel Marx, n° 14, Nouveaux modèles de socialisme, Paris: PUF, 1993.

'Actuel Marx'는 프랑스의 파리 10대학 국립과학연구소가 1987년부터 1년에 두 차례씩 발간하는 논문집으로서, 현대 마르크스주의 정치철학의 향방과 관련하여 지속적으로 중요한 이론적 기여를 해왔다. 스트랜드 서점에서 발견/구입한 것은 이 총서의 8집("자유, 평등, 차이들")과 14집("사회주의의 새로운 모델들")으로서, 8집에서는 에티엔 발리바르(Étienne Balibar)의 「"인간의 권리"와 "시민의 권리": 평등과 자유의 근대적 변증법」, 자크 비데(Jacques Bidet)의 「자유, 평등, 근대성」, 그리고 조르주 라비카(Georges Labica)의 「막시밀리앵 로베스피에르: 인민의 대의」 등의 논문들이, 14집에서는 존 로머(John Roemer)의 「공산주의 이후에 사회주의는 존재할 수 있는가?」라는 논문이 개인적으로 가장 큰 관심을 끈다.



Dominique Jameux, Pierre Boulez, Paris: Fayard/Sacem, 1984.

스트랜드 서점에서 발견한 또 하나의 보물은 바로 이 책, 도미니크 자뫼(Dominique Jameux)가 쓴 작곡가 피에르 불레즈(Pierre Boulez)의 전기인데, 1부는 생애에 대한 서술에, 2부는 주요작품들에 관한 해설에 할당하는 '교과서적' 구성을 취하고 있다. 90년대 이후 불레즈의 행보는 창조적인(!) 작곡가라기보다는 현대음악에 대한 탁월한 해석자(지휘자)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에, 아마도 이 책은 불레즈가 가장 '온전한' 작곡가의 모습으로 존재하던 80년대 전반까지의 시기에 대한 유익한 '근접촬영'에 해당할 것이다. 소싯적 지극히 개인적인 '타펠무지크(Tafelmusik)'이기도 했던,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의 작품 <피아노 소나타(Sonate pour piano)> 두 곡과 <구조들(Structures)>에 대한 꼼꼼한 분석이 우선 눈에 띈다. 







Ernest Jones, The Life and Work of Sigmund Freud, vol. 1, New York: Basic Books, 1953.
Ernest Jones, The Life and Work of Sigmund Freud, vol. 2, New York: Basic Books, 1955.
Ernest Jones, The Life and Work of Sigmund Freud, vol. 3, New York: Basic Books, 1957.

이번 '사냥'에서 얻은 가장 반가운 서책들 중 하나('셋'이라고 말해야 할까)는 어니스트 존스가 쓴 3권짜리 프로이트 전기이다(게다가 1950년대 초판본들이다). 자서전과 전기 문학에 관한 나의 개인적이고도 특별한 관심은 꽤나 오래 지지부진 끌어온 것인데, 그러한 천착의 와중에서 언젠가는 꼭 한 번 정리해봐야지 했던 책들 중 하나를(셋을) 이제서야 구한다. 주지하다시피 그 스스로 정신분석가였던 어니스트 존스는 프로이트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봤던 제자들 중 하나이며, 프로이트가 나치 치하의 오스트리아를 떠나 영국으로 망명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바스라질지도 모르는 책장을 조심스레 넘기며(실제로 이 오래된 세 권의 책을 담고 있던 그만큼이나 오래된 상자는 '거친 성격의' 비행기 화물칸을 만나 한국 도착 후에는 잘게 부스러지기에 이른다), 천천히 되새김질하는 독서를 하려고 한다. 





H. Fenichel, D. Rapaport(eds.), The Collected Papers of Otto Fenichel, 1st Series
    New York: Norton, 1953.
H. Fenichel, D. Rapaport(eds.), The Collected Papers of Otto Fenichel, 2nd Series
    New York: Norton, 1954.

이 책 또한 이번 사냥에서 얻은 반가운 수확 중 하나인데(아니, 둘인데), 오토 페니헬(Otto Fenichel)의 정신분석 논문들을 두 권으로 편집해 수록하고 있는 판본이다(이 역시 각각 1953년, 1954년 초판본). 최근 들어 개인적으로 프로이트 외에 '초창기' 정신분석을 이끌었던 이들의 작업에 이전보다 더 큰 관심이 생기고 있는 중인데, 그 와중에 만난 페니헬의 논문집이라 그 반가움은 배가 된다(확장된 관심이 새롭게 펼쳐지는 길 위에서 '우연찮게' 만나게 되는 인연들, 그 만남의 신기함은 참으로 삶의 신비들 중 하나이다). 이전에는 다른 정신분석 문헌들 속의 인용을 통해서만 부분적으로 접해 왔던 페니헬의 유명한 논문들ㅡ예를 들어 「내사(introjection)와 거세 콤플렉스」나 「은폐[덮개] 기억의 경제적 기능」 또는 「복장도착의 심리학」 등의 글들ㅡ의 전체를 파악할 수 있게 된 소중한 기회, 소중한 만남이 아닐 수 없다. 



Steve Dollar, Jazz Guide NYC, New York: The Little Bookroom, 2006.

발로 쓴 책이란 아마도 이런 책을 두고 말하는 게 아닐까(결코 '괴발개발'이라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발품이 주는 그 시큼한 '발냄새'가 불쾌하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이다. 이 책은 뉴욕의 수많은 재즈 클럽들의 역사와 현재에 대해 짧지만 요긴한 정보들을 많이 수록하고 있는 일종의 '실용서'이다(그리고 내게 '실용서'란 오직 이러한 의미만을 갖는다). 문자와 문장들로만 이루어진 어떤 지도, 아마도 이 책은 이런 종류의 지도제작을 그 '실용'의 목적으로 삼고 있는 듯하다. 다섯 개의 성부로 이루어진ㅡ그리고 그 틈 사이로 몇 개의 변주(variation)와 변종(mutation)들이 오갔던ㅡ대위법적 푸가 한 곡을 마무리하면서, 나 또한 그런 지도, 곧, 언어의 이미지로만 남아 있는, 혹은 이미지의 언어로만 남아 있는, 그런 지도 한 장 그린 셈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 담아본다. 이 짧은 여행에 관한 저 기나긴 기행담(紀行談/奇行談)의 결미는 실로 '소박'하다: 머무르지 않고 계속 떠나려 한다는 것, 아마도 완성되지 않을, 어쩌면 '완성'되어서는 안 될, 한 장의 지도를 그리기 위해. 그러므로 이러한 '지도제작(cartographie)'이란 또한 실로 사유의 여정을 위한 하나의 '길닦기(pavement/exorcisme)'이기도 한 것, 하나의 지도란 그 길들을 위한 필수적인 준비물이자 치명적인 결과물일 것이다.

ㅡ 襤魂, 合掌하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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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24 09: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24 19: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드팀전 2009-02-24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너무 길어 하루에 다 못읽을 것 같구요.^^ 사진 잘봤습니다. 로이 하그리브도 만나셨군요.

람혼 2009-02-24 19:56   좋아요 0 | URL
글이 조금 길긴 길죠? ^^ 로이 하그로브와의 '만남'은 너무나 즐겁고 가슴 벅찼습니다. 덕분에 트럼펫 독학에 조금 더 속도가 붙은 것 같기도 하고요.

로쟈 2009-02-24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짧은 일정'의 산물이라고 보기엔 엄청나군요.^^

람혼 2009-02-24 19:57   좋아요 0 | URL
짧았기에 더욱 '엄청나게' 덤벼들었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떠나야죠, 또 다시.

노이에자이트 2009-02-24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프레드 로스메의 책에 관심이 갑니다.제목이 눈에 확 들어오는군요.사실은 제목만 해석할 수 있고 그 이상은 안 될 거에요. 그 무렵의 사회주의는 1차대전 직전 애국주의로 변절하여 전쟁 찬성으로 치달았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는데 더 자세한 내용이 많을 것 같군요.찜머발트 회의...오랜만에 들어보는 단어네요.쥘 게드와 트로츠키가 그렇게 친한 사이였군요.
프로이트 전기의 고전인 어니스트 존스의 작품을 구하셨군요.축하 축하...휴즈<의식과 사회>에 많이 인용된 책이죠.직접 읽으시게 되니 얼마나 좋을까요.어빙 스톤의 프로이트 전기가 있는데 1차대전 이후는 분량이 얼마 안 되더라구요.
아...그리고 조지 카치아피카스 동무가 작년 이 곳 광주 촛불집회에 참석했어요.지금도 광주 전남 대학교에 있는지 모르겠군요.

람혼 2009-02-25 02:08   좋아요 0 | URL
그렇죠, 저도 책을 발견하자마자 제 관심을 확 잡아채는 듯한 그 제목이 눈에 쏙 들어 오더군요(노이에자이트님은 독일어뿐만 아니라 프랑스어도 읽으시는군요! ^^). 트로츠키와 친밀했던 것은 로스메 자신으로 알고 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사회주의자 쥘 게드조차 전쟁으로 돌아섰던 부분에 대해서 트로츠키는 반대를 하고 있는 것이죠. 어니스트 존스의 프로이트 전기를 구할 수 있게 돼서 저도 기분이 좋습니다. 카치아피카스 동지의 계속되는 '활약상'도 기대해봅니다.^^

노이에자이트 2009-02-25 22:22   좋아요 0 | URL
독일어는 제목도 해석이 잘 안된답니다.게으름 피우고 계속 미루기만 하는 독일어 공부...
로스메의 책을 어서 읽으시고 서평을 써주십시오.제가 읽을 실력은 안되니 람혼 님의 서평으로나마 감상하겠습니다.

람혼 2009-02-26 03:59   좋아요 0 | URL
안 그래도 랑시에르의 책 <프롤레타리아의 밤>에 대한 제 나름의 정리와 서평을 기획하면서, 그에 덧붙여 얼마 전에 제가 번역했던 드브레의 글에 대한 소개와 함께 로스메의 책에 대한 정리도 같이 하려고 '거대한' 계획을 잡아보긴 했는데요, 조만간 이 모든 '연결고리'가 제 자신에게 조금 더 명확해지면 글을 써서 올려볼까 합니다. 그나저나 노이에자이트님 독일어 공부까지 너무 열심히 하시면 과도하게 바빠지시지 않을까요? ^^ 글 세심하게 잘 읽어주셔서 깊이 감사드립니다.

노이에자이트 2009-02-26 23:42   좋아요 0 | URL
오...마침 제가 어제 체 게바라가 사살되고 드브레가 체포되었을 때 중국의 문혁파들이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읽었어요.그런데 람혼 님이 드브레를 말씀하시니 더욱 기대가 됩니다.
독일어 교본은 사놓고 40페이지 이상 나가본 적이 없습니다.하하하...
제가 좀 세심하답니다.

람혼 2009-02-28 03:25   좋아요 0 | URL
말씀하지 않으셔도 그 세심함은 노이에자이트님의 글에서 배어나오고 또 스며나옵니다.^^

다락방 2009-02-24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눈에 띄는 몇 부분 만 읽고 다시 읽을 땐 정독해야겠어요.
(그와중에 센트럴파크 부분은 벌써 읽었다는!!)


그런데요 람혼님. 무용에 대한 얘기를 종종 하시던데, 혹시 '줄리엣 비노쉬'의 이번 무용 공연 관람 예정이신가요? 음, 혹시 그 무용은 람혼님의 관심 밖 분야인가요?

람혼 2009-02-25 02:10   좋아요 0 | URL
예상했던 바이지만, 역시나 웹상에서는 이 정도 길이의 글을 한 번에 모두 정독하시는 분이 참 드문 것 같습니다. 말씀해주신 대로, 나중에 꼭 정독해주실 기회가 있기를 바랄 뿐이죠(사실 제 글은 마음 잡고 한 번에 읽어 내려가야 그 '중독'의 '향정신성' 효과를 느끼실 수 있습니다...^^).
말씀하신 그 공연은 저로서는 현재 갈 계획이 없는데요, Juliette Binoche가 시도하는 '무용'에 관해서 사실 별 관심이 없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2007년 초에 역시나 LG아트센터에서 있었던 Akram Khan의 공연을 한 번 보았는데ㅡ그때는 Sylvie Guillem과 함께 한 무대였죠ㅡ그 당시 제 개인적으로 특별한 감흥을 얻지 못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사실 그때도 Khan보다는 Guillem의 춤사위가 보고 싶어서 갔던 공연이었거든요). 어쨌든 이번 Khan과 Binoche의 공연은 LG아트센터에서도 올해 가장 크게 '밀어주고' 있는 공연이긴 한 것 같은데, 저로서는 그다지 큰 관심이 가지 않습니다.

다락방 2009-02-25 08:27   좋아요 0 | URL
음.

저는 줄리엣 비노쉬가 무용을 한다는데 크게 놀라서 어엇, 하는 마음으로 예매해 두었거든요. 사실 무용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말이죠. 그러다가 혹시 람혼님도 이 공연에 오시려나, 하는 생각을 해보았답니다. 혹시 공연장에서 살짝 뵐 수 있으려나 해서 말이죠.
:)

람혼 2009-02-26 04:07   좋아요 0 | URL
사실 비노쉬가 무용을 한다는 사실이 가장 관심을 끄는 부분이긴 하죠.^^ 저도 그 사실 자체를 '관람'해보고 싶긴 한데, 아마도 공연에 가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다락방님 실제로 뵐 수 있는 기회를 이렇게 놓치게 되는군요.^^;; 아쉬워요.

2009-02-26 00: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26 04: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26 20: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28 03: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27 00: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28 03: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 『한국연극』지 2월호에 기고한 글을 옮겨놓는다. 올해 이 연재를 청탁 받으면서 개인적으로 마음속에 품었던 글쓰기의 계획은 크게 두 가지 측면으로 나눠 생각해볼 수 있는데, 곧 주제의 측면과 문체의 측면이 바로 그것이다.

첫째, 주제에 관하여: 물론 연극과 음악의 관계에 관해서는 다양한 방식의 글쓰기가 가능할 것이다. 예를 들어 이와 관련해 우리가 흔히 쉽게 예상하고 착수할 수 있는 글쓰기의 형태는 특정 공연의 관극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그 연극 안에서 구체적으로 음악이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가, 또 그 음악이 어떻게 연극과 관계 맺고 있는가 하는 문제를 논하는 연극/음악 비평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정말 쓰고 싶었던 글은ㅡ그리고 이 지면을 통해 내가 계속해서 쓰려고 하는 글은ㅡ'연극음악의 존재론'에 관한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연극음악이 '연극음악'으로서 어떻게 존재할 수 있고 또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가의 문제, 곧 연극음악이 지닌 존재의 '가능성'과 연극음악이 품어야 할 실천의 '당위성'이라는 문제를 내 나름으로 정리하고 공유하는 글쓰기를 수행하고 싶은/싶었던 것. 또한 이는 개인적으로 연극음악에 관한 어떤 정치적이고 철학적인 '테제'들을 정립해보고 싶은 내 미학적 욕망이기도 하다. 특정한 하나의 연극 공연 안에 위치한 음악의 '정당성'과 '예술성'을 논하는 '미학-내적'이고 '예술-내적'인 문제 틀에서 벗어나 연극음악의 자리를 철학과 이론의 자리에 이질적으로ㅡ그리고 적극적으로ㅡ접합시켜 성찰해봄으로써, 음악이 연극 안에서 가질 수 있는 '정체성'의 문제를 보다 근본적으로ㅡ그리고 극단적으로ㅡ다뤄보고 싶은 것이다. 이러한 글쓰기의 '욕망'과 '전략'이 성공을 거둘지는 아직 미지수이지만, 이러한 문제들은 내게 개인적으로 [불가능성의] '음악미학'을 [가능하게] 정립하기 위한 중요한 선결요소의 위치를 점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과정에서도 현실적이고 전략적인 문제들은 남아 있다. 연극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겸비한 사려 깊은 비평을 기대하기도 어려운 연극비평계의 현상황에서ㅡ이는 지극히 내 '개인적인 견해'일 뿐이므로 이견을 제기할 분들은 변명이라도 좋으니 괜히 말 못하고 소화불량에 걸리는 일 없이 재빨리 이견을 제기하시는 게 건강에 더 이로울 것이다ㅡ연극음악에 대한 이러한 '형이상학적' 성찰이 자칫 연극음악을 독립적으로 다루고자 하는 비평의 자리마저도 부족하게 만들지 않을까 하는 기우 아닌 기우가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반복하자면, 내게 가장 시급하게 선결되어야 할 문제로 생각되는 것은 연극음악의 존재론적 테제들에 다름 아니다. 이것은 고색창연하고 시대착오적인 '형이상학적' 욕망일지도 모르겠지만, 내게는 바로 이것이ㅡ니체적인 의미에서ㅡ가장 '반시대적인(unzeitgemäß) 고찰'이기에 역설적으로 더욱 시급한 문제로 다가오는 것이다.

둘째, 문체에 관하여: 나는 언제나 글에서 '반말'을 선호해 왔다. 물론 이러한 어미에 대한 '자연스럽고 자동적인' 선택을 '선호'라는 의지적 언어로 규정할 수는 없을 텐데, 왜냐하면 언제나 '성문화(成文化)'되고 또 그렇게 '객관화'될 수밖에 없는 글의 특성에서 볼 때 이러한 반말의 어미들이 정말로 '반말'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이러한 '반말'은 읽기의 행위가 동반하는 심리적 과정 속에서 일종의 '중립적'인 지위를 부여받는다(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논문, 공문, 기사 등의 공식적인 글의 형태가 '반말'의 어미를 채택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하지만 나는 이 연재의 언어로 '존댓말'을 선택한다. 이는 독자에게 더욱 '친근하게' 다가고자 하는 전략적 선택이 결코 아니다(존댓말로 말한다고 해서 내가 갑자기 '친절한 람혼씨'가 되는 것도 아니니까). 연극음악의 존재론을 논하고 건네려고 하는 나의 '생경한' 언어는, 그것이 객관적이고 중립적인ㅡ또는 그렇게 상정된ㅡ'반말'의 어미를 만났을 때 단순히 철학적이고 이론적인 글로서 '당연시'될 위험이 있다(나는 내 글이 그러한 방식으로 '소멸'될 위험을 경계하고 있는 것). 말하자면 이론이 이론으로 소화되고 말 뿐인, 아니 숫제 소화되지도 않고 꿀꺽 삼켜지고 말 뿐인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저 '자연스러운', 혹은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것으로 상정된 '반말'의 이론적 언어가 지니고 있는 어떤 위험성이다. 이러한 위험은 또한 '반말'의 이론적 언어가 자신의 외양적 객관성 뒤에 은폐해 놓고 있는 어떤 비가시적 '정치성'이기도 한 것. 말하자면 나는 나의 주제를 보다 효과적인 방식으로ㅡ따라서 가장 '생경하고 이질적인' 방식으로ㅡ드러낼 수 있는 문체를 원하는 것이고, 이 경우 바로 그러한 의도된 '불친절함'에 가장 잘 어울리는 어미는 역설적으로 '친절한' 존댓말일 수 있다. 그러므로 여기서 문체와 어미에 대한 나의 전략은 전복적이다. 연극음악에 대한 현상적 비평이 아니라 그 존재론적 테제들을 정립하고자 하는 자리에서라면, 오히려 존댓말의 '친근하고 친절한' 어미가 반말이 지닌 저 '자연스러운' 이론성의 냄새를 위반하는 '낯선 불친절함'으로 기능할 수 있는 것이다. 편안하고 친절한 '편지'의 언어를 통해 가장 불편하고 불친절한 말들을 건네보는 것, 내가 원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10년 전쯤에 재즈 보컬리스트 정말로 누님과 함께 프로젝트 밴드를 만들어서 몇 번의 공연을 가진 적이 있었다. 그것은 말 그대로 순수한 '프로젝트'였지만, 내게는 여전히 소중한 경험이자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때 그 밴드의 이름이 '대머리 여가수'였다는 여담 한 자락(그 작명의 이유는 나름대로 추측해보시라!), 지나가는 길에 남겨본다, 추억해본다. 역시나 오늘도 '글을 옮겨놓는다'는 저 시작의 언어가 무색할 정도로, 그렇게 시작이 길어졌다. 나의 지병은 계속되는 것이며 여기에 쓸 용한 약도 없는 것. 다만 조용히 반복할 뿐이다, 글을 옮겨놓을 뿐이라고: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Eugène Ionesco, La cantatrice chauve[version illustrée], Paris: Gallimard, 1964.
*) 니콜라 바타이유(Nicolas Bataille)가 연출한 장면들의 이미지와 함께 재구성된 텍스트.

 

<대머리 여가수>에 대머리 여가수는 나오지 않는다
— 조화와 불화 사이, ‘번역’으로서의 연극음악

최정우 (작곡가/번역가)

요즘은 그리 자주 상연되는 작품이 아닙니다만, 이오네스코(Ionesco)의 <대머리 여가수(La cantatrice chauve)>가 따로 첨언이 필요 없는 너무도 유명한 연극이라는 사실에는 아무도 토를 달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저 '부조리극의 대명사'라는 교과서적 명명에 따라붙는 이런저런 평가들에 관해서는, 그리고 돌출하는 무의미들에 '심오한' 의미를 부여하는 이런저런 담론들에 관해서는, 우리 잠시 동안만이라도 잊어보도록 하죠. 개인적인 생각은 이렇습니다, <대머리 여가수>가 유명해지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 연극에 대머리 여가수가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 베케트(Beckett)의 <고도를 기다리며(En attendant Godot)>에 대해서도 나는 똑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만약 <고도를 기다리며>가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 앞에 고도를 등장시키면서 그 대미를 장식했더라면, 오히려 그간의 저 모든 '기다림'의 형식들은 그 자체로 참을 수 없이 지루한 것이 되어버렸을지도 모릅니다. 블랑쇼(Blanchot)와 데리다(Derrida)가 말했던 것처럼, 미래(avenir)의 도래(à venir)란 우리에게 그런 식으로 다가오는 것이며 또한 그렇게 와야 하는 것일 테니까요.

우리가 이오네스코 자신의 작가수첩(『노트와 반노트』)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바처럼, 그는 <대머리 여가수> 창작의 기원을 영어를 배우기 위해 공부했던 경험 안에서 찾고 있습니다(이 통통하고 귀여운 얼굴의 극작가가 외국어인 영어를 배우기 위해 끙끙대는 모습을 한 번 상상해봅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 연극이 '외국어의 번역'이라는 상황으로부터 탄생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일반적인 외국어 교재의 구성을 한 번 떠올려보죠. 사용되는 단어들과 간단한 문법에 대한 설명이 있은 후 다양한 문형들에 대한 예시와 그를 이용한 '등장인물'들의 대화가 이어집니다. '1주일은 7일로 되어 있다'거나 '마루는 밑에 있고 천장은 위에 있다'는 등의 말은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그러한 내용들이 외국어라는 형식의 옷을 입고 이오네스코에게 다가왔을 때 그 '사실'은 그가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새삼스러운 '진실'의 발견이 되었던 것입니다. 뒤집어 말해, 책상은 책상인 것처럼 말이죠. 그렇기에 이 경험은 익숙하기에 낯설고 낯설기에 익숙한 것입니다. <대머리 여가수>가 출발점으로 삼고 있는 '부조리한' 진리의 자리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대부분의 부조리극이 그러하듯, <대머리 여가수> 또한 바로 그러한 '진리'를 무대 위로 올려 그 작동 방식을 시험하고자 하는 것이죠. 그러므로 사람들이 흔히 말하듯 이 작품은 영국 부르주아 사회에 대한 풍자라는 '사회적' 의미를 갖기 이전에 먼저 번역과 소통이라는 상황 자체를 '낯설게 하기'라는 '언어적' 의미를 갖게 됩니다. 그리스 비극 이래로 현대의 연극이 다시 한 번 시(詩)의 세계와 적극적으로 관계 맺게 된 것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입니다. 

 

▷ 위의 책을 펴들고 있는 이오네스코의 저 귀여운 얼굴: 환상적입니다(fantastique)!

연극음악 또한 일종의 '번역'이자 '소통'입니다. 하지만 연극의 구체적 장면들과 정황들을 따라가며 그것을 '보조'하고 '설명'하는 역할에만 머무른다면 연극음악은 연극에 대한 일종의 '번안'이 되기 쉽습니다. 슬픈 장면에 따르는 슬픈 음악, 기쁜 장면에 따르는 기쁜 음악을 떠올려보면, 이는 어쩌면 자연스런 과정이나 당연한 사실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번역'은 이러한 번안과는 전혀 다릅니다. 흔히 우리는 번안이 일차적이고 축자적인 번역을 더욱 '현재화'하거나 '토착화'하는 이차적인 번역의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대머리 여가수>에 나오는 'Bobby Watson'은 마치 교과서에서처럼 무엇보다 먼저 '철수'로 번안될 수 있을 겁니다(철수의 아버지 이름도 철수고 그 철수의 아버지 이름 또한 철수라는 식으로 말이죠). 하지만 'Bobby Watson'의 번역은 '바비 왓슨'이 될 뿐입니다(이것이 '음차'가 아니라 '번역'이라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점은 외국어의 소통에서 무엇보다 일차적인 과정은 번안이며 번역은 오히려 이차적인 과정이라는 역설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러한 번역 과정에 느끼게 되는 어떤 '낯선 익숙함'이—이를 프로이트 식으로 말한다면 '운하임리히(unheimlich)'한 것이 될 텐데요—바로 'Bobby Watson'을 '바비 왓슨'이라고 옮기는 일견 당연하면서도 새삼스러운 진리로부터 발생한다는 사실이죠. 연극음악도 마찬가지입니다. 흔히 슬픈 장면을 슬프게, 기쁜 장면을 기쁘게 해석하고 설명하는 일차적 '번안'의 음악이 일견 조화로운 것처럼 보이지만, 연극음악의 '진리'는 연극의 언어와 몸짓을 '번역'해내는 이차적인 과정에 있는 것이며, 이러한 번역의 과정은 말하자면 '조화로운 불화'라는 역설을 동반하게 됩니다. 연극음악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조화의 문법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외국어를 번역하는 '생경함의 진리'로부터 출발해야 하는 것이죠. 이러한 '부조리한 조화', '불협화음의 화음'이라는 존재방식은 넓은 의미에서의 '부조리'가 무대음악에 가르쳐준 진리이기도 합니다. 연극음악이 연극에 대한 일차적이며 감정적인 설명자와 번안자의 위치에만 있다면 그 음악은 죽어 있는 음악일 겁니다. 연극음악은 연극적 상황에 대해 총체성과 징후성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는데, 사소한 변화를 따라가지 않고 연극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결정짓는다는 점에서 음악은 '총체적'이어야 하며 또한 감정들의 자잘한 선을 따르지 않는 이면적 '불화의 조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점에서 음악은 또한 '징후적'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유행'이 한참 지난 부조리극에 관한 잡설을 통해, 그리고 번역에 대한 '반추'를 통해, 다시금 음악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대머리 여가수>에는 결코 대머리 여가수가 나오지 않습니다. 단지 소방대장이 대뜸 이렇게 물어볼 뿐이죠: "그런데, 그 대머리 여가수는요(A propos et la cantatrice chauve)?" 그리고 스미스 부인 또한 이렇게 대답할 뿐입니다: "그 여자 머리 손질하는 건 항상 같은 식이죠(Elle se coiffe toujours de la même façon)." 머리카락 없는 연극의 머리를 손질하는 작업, 음악은 이러한 역설적인 작업 안에서 '어울리지 않는' 노래를 부르며 스스로 여가수가 됩니다. 단, 그 불화의 노래를 '조화롭게' 부르면서 말이죠. 이 조화와 불화 사이의 갈등 안에 연극음악의 자리가 있습니다. 갈등의 요소들과 동요의 지점들을 떨리는 그대로 드러내는 이 '사이'에 존재하는 음악은 단순한 '번안'이 아니라 일종의 '번역'을 꿈꾸는 것, 그런 의미에서 연극음악은 언제나 '불가능한 가능성'의 작업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대머리 여가수나 고도는 아직 오지 않은 것이 아니라 '이미 언제나' 도착해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는 또한 음악이 연극 안으로 불가능하게 도래하는 어떤 가능성의 형식이기도 합니다.

ㅡ 襤魂, 合掌하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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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9-02-09 0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머리 여가수라는 작명의 이유는 대머리와 여가수가 만든 밴드였기 때문이 아닐까요?

저는 바로 위의 민음사판 [대머리 여가수]를 읽었는데 솔직히 잘 이해가 안되는 작품이었어요. 지금도 무슨 내용이었는지 기억조차 희미합니다. 어쩌면 저는 연극에 대해 전혀 아는게 없기 때문이었을까요?
위에 말씀하셨듯 그 작품 자체가 '번역과 소통이라는 상황자체를 낯설게하기' 때문이었을까요? 대머리 여가수는 제게 낯섦, 그 자체였거든요.

람혼 2009-02-09 11:02   좋아요 0 | URL
어려운 퀴즈 같은 문제는 아니었지만, 그렇게 적나라하게(?) 말씀하시니 머쓱해지는 건 어쩔 수 없군요.ㅎㅎㅎ ^^; 뭐, 어쨌든... <대머리 여가수>는 '이해'를 위한 텍스트는 아닌 것 같습니다. 덧붙여 말씀드리자면, 부조리극에 대하여 흔히들 쉽게 취하곤 하는 저 '이해'의 제스처들이 제게는 오히려 가장 '부조리한' 현상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얼마 전 산울림 소극장에서 '다시 한 번' 상연되었던 한명구, 박상종 주연의 <고도를 기다리며>의 무대 뒷편에서 만난 한 배우의 말이 생각납니다. 당신은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의 저 '신나는' 웃음이 오히려 불편하게 느껴진다고 말씀하시더군요, 피식-거리는 헛웃음이 그립다고. 모든 것을 이해하는 양 터져 나오는 직선적인 웃음이 그 배우에게는 매우 불편하다는 것이죠. 우리가 흔히 '부조리극'이라고 부르는 연극적 현재 안에서는, 부조리성이라는 개념에 대한 '이해'에서 나오는 일차적인 웃음 또는 찰나적인 희극성이 빚어내는 상황에 대한 폭소가 아니라, 부조리한 감각에 대한 공감과 어긋남의 경험에서 나오는 냉소와 조소, 자기 자신을 향한 헛웃음이 오히려 그 배우에게 더욱 더 소중한 'reaction'이 아닐까 하는 말씀으로 새겨들었습니다. 낯선 체험 그 자체를 불편하면서도 신선한 경험으로 기억하고 계신 다락방님의 '감각'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다락방 2009-02-09 17:03   좋아요 0 | URL
하하하하. 그러게요. 제가 너무 거리낌없이(!)적나라하게(!!) 표현했군요. 다르게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곰곰 생각해봐도 답이 안나와요, 람혼님. 저란 인간을 어쩌면 좋죠? 하하하하

람혼 2009-02-10 02:25   좋아요 0 | URL
뭐 적나라한 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니죠.^^ 지를 때는 또 질러주는 것이 신나는 세상을 여는 열쇠...

파란여우 2009-02-09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람혼님의 글을 읽다보면 殺靑님이 생각납니다. 뜬금없죠? 람혼님 글은 합장하고 읽게끔 만드시거든요. 가끔 구다보면서(람혼님도 가끔 글을 쓰시므로)고맙다는 인사는 이제서야 드립니다.

람혼 2009-02-09 12:23   좋아요 0 | URL
개인적인 연상작용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 것이니까요.^^ 저도 殺靑님 생각이 많이 나네요, 잘 지내고 계실지... 문득 문득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하고 뵙고 싶기도 합니다. 합장의 마음을 받아주셔서 오히려 제가 파란여우님께 더 깊이 감사드리는 마음입니다.

2009-02-09 20: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10 02: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yoonta 2009-02-10 1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극음악'에 대한 고찰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음악연극'에 대한 고찰이네요. 연극의 부분집합으로서의 음악이 아닌 음악이 되어버리는 연극.

존댓말에 대한 님의 사유는 라캉의 수행적인 '말'(존댓말)을 '읽는'것에 내포된 무의식을 이야기한 <세미나>에서의 언급이 생각나게 하는군요. "읽을 수 없는" 에크리보다는 "읽을 수 있는" <세미나>에 이중적 의미를 부여한 것처럼 말이지요.

잘봤습니다.^^

람혼 2009-02-12 12:56   좋아요 0 | URL
yoonta님, 오랜만이네요, 반갑습니다! 말씀해주신 대로 어쩌면 저의 이런 작업은 연극[안]에서의 'pas-tout'에 천착하는 일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로서는 글쓰기 자체가 지닌 어떤 '수행성'에 민감하다 못해 신경이 곤두서 있는 편인데요, 읽는 행위 자체를 어떻게 향유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제게 실로 '고통의 쾌락'입니다.

yoonta 2009-02-12 2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글고보니 댓글다는게 오랜만이었군요. 글보러는 자주 왔어서 못느끼고 있었답니다.^^ 기회가 되면 람혼님 공연도 한번 보러가고 싶은데 어찌 영 시간이 안나네요.

람혼 2009-02-12 23:52   좋아요 0 | URL
바쁘고 알차게 지내신다니 저도 힘을 얻습니다. 자주 찾아주셔서 또한 감사하고요.^^ 공연은, 언제 한 번 꼭 오세요~!

[해이] 2009-02-13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뉴레프트리뷰에 번역하신 글이 있는거 보고 살짝 놀랐어요ㅋㅋㅋ잘 읽어보겠습니다. 앞으로의 활약 기대할게요^^

람혼 2009-02-15 04:26   좋아요 0 | URL
저로서는 왜 살짝 놀라셨는지가 더 궁금하군요. <뉴레프트리뷰>, 제가 번역에 참여했기 때문에 드리는 말씀이 아니라, 정말 더 많은 분들이 읽으셨으면 하는 잡지입니다. 일각에서는 <뉴레프트리뷰> 한국판의 '가능성'과 '영향력'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계신 분들도 있는 것 같은데, 득이냐 실이냐는 그 자체로서 미리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로부터 우리가 무엇을 취할 수 있고 또 어떤 사유와 실천의 동력을 끌어낼 수 있는가 하는 물음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 당연한 사실을 많은 분들이 간과하고 계신 것 같아요.

[해이] 2009-02-15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는 표지에 적혀있는 역자 이름에는 람혼님 이름이 안적혀 있었는데 안쪽에 보니 있어서반가워서요ㅎㅎ 발마스님 서재에 있는 독자들 반응을 보셨나보네요. 람혼님 말씀 잘 새겨 듣도록 할게요:D

람혼 2009-02-15 18:46   좋아요 0 | URL
반갑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개인적으로 실로 오랜만에 읽게 된 드브레의 글이라 저 또한 번역 과정이 즐거웠던 작업이었습니다. 이른바 '반응'에 대해서는 balmas님 서재 글도 물론 보았고 그 전에 다른 분들의 다른 공간에서도 몇몇 글을 접한 바 있어 개인적인 생각을 몇 글자 남겨보았습니다. 시작한다고 말씀하신 세미나는 잘 진행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저 또한 응원을 보내드립니다.

2009-02-16 0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16 03: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16 11: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16 23: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재灰 2009-02-17 2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의 글은 "(작곡가/번역가)"라는 표식들을 내걸고 있는 람혼님의 '자기정체성 탐구'에 바쳐지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섬세한 의미들이 눈에 들어와 박혀 여러모로 생각하게 하는 글입니다. 글을 읽는 동안, 람혼님의 그 탐구가 이름(名)과 실재(實)의 괴리를 눈치채지 못하거나 사회적으로 부여받은 이름을 자기 이름으로 오인하고 있는 이들(예컨대, 여러 분야의 평론가들..)에게 어떤 '각성'의 계기가 될만하다는 생각이 퍼뜩 스쳐 지나기도 했습니다. 이후에 연재될 람혼님의 글들이 이름과 실재의 기계적인 일치를 거절하면서 그것들 사이의 간극을 '메워가는/넓혀가는' 탐구가 되었으면 하고 응원합니다.

람혼 2009-02-18 03:24   좋아요 0 | URL
內外님의 소중한 댓글에 합장하는 마음으로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지음(知音)'이라는 말은 어쩌면 이러한 현상과 반응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새삼 內外님의 말씀을 통해 다시금 되새기게 됩니다. 말씀하신 대로 이는 제게 개인적으로 스스로를 돌아보는 '자성적(自省的)'인 글쓰기임과 동시에 특정한 목표물을 향한 '공격적'인 글쓰기가 되고 있습니다. 특히나 후자의 부분만을 좀 더 자세히 말씀드리자면, 이 연재물이 품에 칼을 품듯 품은 주요한 의도 중의 하나는, 이른바 '연극평론가'라는 직함을 가진 이들이 품고 있는 어떤 '매너리즘'에 대한 공격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부정성의 작업을 어떻게 모종의 긍정성과 '평행하게'ㅡ스피노자적 의미에서ㅡ이끌어갈 수 있을까 하는 문제가, 아마도 이 글쓰기의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관건이 될 듯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비판적 작업은 또한 다시금 자성의 작업에 가닿게 되는 것이겠죠...
글쓰기의 작지만 큰 보람이란 것이 이런 데에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內外님 글에서 제가 큰 힘을 얻는 것을 보면요. 그래서 덕분에 더욱 치열하게 글을 써야겠다는 다짐을 스스로에게 두게 됩니다. 그 응원의 마음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Evelyn Glennie: How to Listen to Music with Your Whole Body
http://kr.youtube.com/watch?v=IU3V6zNER4g

얼마 전 파랑과 공연 준비 때문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블린 글레니(Evelyn Glennie)의 이름을 다시금 떠올리게 되었다. 이에 그녀의 강연/공연 영상을 옮겨온다. 30분이 조금 넘는 영상이지만, 무엇보다 재미있고, 무엇보다 감동적이다. 일람(一覽)을 권한다.

내가 글레니의 내한공연을 처음 봤던 것은 10년 전, 1999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영상을 보면 느끼겠지만, 그녀가 청각장애를 갖고 있다는 사실은 여간해서는 잘 믿기지 않는다. 어쩌면 이러한 '믿을 수 없는' 느낌은 내가 갖고 있는 또 하나의 '차별의식'이 변형된 감탄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내가 지금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녀의 영어 발음이 참 마음에 든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가 '대화'를 이끌어가는 방식이 참 마음에 든다는 것이다.

랑시에르는 <무지한 스승>에서 이렇게 쓴 바 있다: "무지한 자는 더 적게 하는 동시에 더 많이 할 것이다(L'ignorant, lui, fera moins et plus à la fois)." 이는 가르침의 '교육법'이라는 측면에서도 그렇지만, 연주의 '주법'이라는 측면에서도 또한 그렇다. 이 점을 언제나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다.

글레니의 이 영상을 보면서 다시금 새삼 느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은, 전신(全身)으로, 전경험(全經驗)으로 음악을 듣고 또 연주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이다. 흔히들 음악을 '시간 예술'이라는 말로 뭉뚱그려 말하지만, 글레니의 예는 음악가가 얼마나 '공간'과 그 '울림'에 대해 치열하게 사유해야 하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녀의 이 유쾌한 강연을 보고 있자면, 음악가가 왜 한 명의 철학자인지, 또 왜 한 명의 철학자가 될 수밖에 없는지, 실로 절실하고 새삼스럽게 느끼게 된다.
 


광고 한 자락:
2009년 2월 6, 7일 양일간 아르코(구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내가 대본을 쓰고 작곡을 하고 연주를 하는 무용 <육식주의자들>이 공연된다. 올해 1월 초 뉴욕 일본협회(Japan Society)에서 공연했던 <몇 개의 질문>도 이 공연의 1부로 함께 공연될 예정이다. 내 공연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긴 처음인 것 같지만, 이 또한 일람을 권해본다.

ㅡ 襤魂, 合掌하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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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9-01-31 0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람혼님! ^^ 아 아래 사진 너무 멋집니다. 대본에 작곡에 연주까지. 뉴욕 공연은 좋으셨나요?

람혼 2009-01-31 07:36   좋아요 0 | URL
이블린 글레니 언니의 멋진 모습에 비하자면 거의 '새 발의 피' 수준입니다...^^; 시간 나시면 공연 오셔도 참 반가울 텐데요. 뉴욕 공연은 참 즐겁고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시간 될 때 언제 한 번 후기 제대로 올리도록 하죠.^^

다락방 2009-01-31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뉴욕 공연 후기도 기다릴게요 :)

람혼 2009-01-31 16:01   좋아요 0 | URL
하하, 감사합니다. 조금 짬이 날 때 재미있게 써보겠습니다.^^

2009-02-01 23: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05 04: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lefebvre 2009-02-02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Nanjang/ 당연히 가야죠~! ^^

람혼 2009-02-05 04:19   좋아요 0 | URL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Rbooks 2009-02-03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시 한 번 공연을 보고 싶은데, 아쉽습니다. 아직도 여적 '그 곳'이라.
좋은 공연(연주회)이 되길 멀리서 기원합니다!


람혼 2009-02-05 04:21   좋아요 0 | URL
뉴욕에서의 만남은 참 반가웠습니다. 먼 타지에서의 공연에서 지인을 뵙는다는 건 정말 소중한 일 같습니다. 아직도 '그곳'이라니 조금 부럽기도 합니다.^^ 응원 말씀에 힘 얻어 공연 멋지게 해보겠습니다!

재灰 2009-02-04 1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악가가 왜 철학자일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 쓰신 한 문장에 눈길이 머뭅니다. 악기들과 조명과 람혼님이 잘 어우러진 사진에도요.^^ '관계'와 '의미'가 더 많이 만들어지는 공연이 되길 바랍니다.

람혼 2009-02-05 04:24   좋아요 0 | URL
공연을 많이 하다보면 그런 생각이 듭니다. 공연을 준비하고 무대에 올릴 때는 어떤 '의미'에 더 많은 신경을 쓰고 집착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좋은' 공연은 언제나 그 공연이 끝난 후 좋은 '의미'보다는 좋은 '관계'를 남기더군요... 그리고 그렇게 '좋은 관계'로 남는 공연이 정말 좋은 공연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이 제 나름으로 얻은, 지극히 진부하다면 진부하다 할, 하나의 결론입니다. 응원해주신 말씀처럼, 저 또한 그런 공연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2009-02-06 13: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07 01: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09 00: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09 01: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09 11: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09 12: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 『한국연극』 2009년 1월호에 기고한 글을 옮겨놓는다. 잠시 동안 이 글을 동네 초입의 장승처럼 세워두고, 오늘 나는 공연을 하기 위해 뉴욕으로 떠난다. 이곳은 원래부터 글이 그리 자주 올라오지는 않는 공간이지만, 주인이 잠시 부재하는 동안 이 공간이 그리 외롭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 <햄릿과 아버지의 유령(Hamlet and His Father's Ghost)>.

 
연극이 햄릿이면, 음악은 유령이다 — 사이, 침묵, 부재로서의 연극음악  

최정우 (작곡가/번역가)

 "연출의 의도가 분명하고 운이 좋다면, 이 극은 들리지 않는 음악으로만 만들어진 음악극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 이 극은 사이에서 빚어지고 사이에서 지워진다." 이 문장들은 일견 어떤 연극비평이나 연출의 변에 등장할 법한 글의 외양을 띠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이 글은 어떤 시인이 쓴 서시(序詩)의 일부입니다(김경주, 『기담』, 10쪽). 이 젊은 시인은 자신의 시들을 하나의 '연극' 혹은 '음악극'으로 보고, 그 연극을 작동할 수 있게 해주는 어떤 '사이', 그 연극이라는 존재 자체를 가능하게 해주는 어떤 '부재(不在)'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말하자면 이 시인은 그의 글 그대로 "들리지 않는 음악으로만 만들어진 음악극"을 꿈꾸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죠. 여기서 하나의 물음이 일어납니다. 음악이 없는 연극을 상상할 수 있을까요? 물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음악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연극도 많으니까요. 하지만 소리가 없는 연극 또한 상상할 수 있을까요? 여기서 제가 말하는 '소리'란 효과음 등의 무대 음향에만 국한된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효과음조차 없는 연극 역시 언제나 가능합니다). 역설적인 말처럼 들리겠지만, 이 '소리'란 오히려 침묵까지를 포함하는 소리, 아니 오히려 그러한 침묵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그런 이상한(?) 소리입니다. 우리는 그런 '소리' 없는 연극을 상상할 수 있을까요?

이 물음은 연극음악에 대한 어떤 근본적인 성찰로 '변신'할 수 있습니다. 연극 속의 음악은 어떤 방식으로 기능하고, 또한 어떤 방식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연극적 시공간을 '살아내는' 것일까요? 연극음악이 지닌 가장 '실질적'이고 '경제적'인 기능이라고 할 수 있는 막 전환의 순간을 살펴보는 것으로 시작해보죠. 연극에서 조명이 어두워지면서 장이나 막이 전환될 때, 무대 위에 펼쳐지고 개시되었던 연극적 시공간은 잠깐 동안의 '휴지기(休止期)'를 갖게 됩니다. 이 '사이'의 시공간은 연극 안에서 '기술적'으로 필요한 것일 뿐만 아니라 또한 '서사적'으로도 요구되는 것이죠. 이때 무대와 관객 사이에 약속되고 전제되어 있던 허구의 공간은 순간적으로나마 다시 '현실'로 돌아옵니다. 이 잠깐의 '사이' 동안 관객은 숨을 쉬고 기침을 하기도 하며, 그렇게 다음 순간 펼쳐질 장면들을 위해 일종의 '준비운동'을 하게 됩니다. 어둠 속에서 관객들은 생각합니다, 무대가 전환되는구나, 배우가 퇴장해서 옷을 갈아입고 다시 등장하는구나, 소품이 바뀌고 시간이 흐르며 공간이 달라지는구나. 그러나 이러한 순간이 단순히 연극적 시공간에서 완전히 이탈하여 관객에게 '순수한 현실'에 대한 관찰의 시간만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잠시 연극적 문맥에서 한 발 물러서 있을 뿐, 여전히 이 시공간은 연극적인 자장(磁場) 안에 남아 있습니다. 이 순간 음악이 등장합니다. 연극적 시공간이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 때, 곧 조명의 어둠과 무대의 전환과 배우의 등퇴장을 틈타 연극적 허구의 힘이 잠시 옅어지고 희미해질 때, 이 순간 음악은 지속적 '허구'의 공간을 깨고 출몰하는 어떤 '현실'의 개입을 막아줍니다. 말하자면 연극음악은 기본적으로 '환상'의 지속을 가능케 하는 것입니다. 음악은 관객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조명이 조금 어두워졌지만 연극은 아직 끝나지 않았답니다, 아직 박수를 치거나 집으로 돌아갈 필요는 없어요, 막이 전환될 뿐이고 배우들이 드나들 뿐이니까요, 그것은 연극이 이루어지기 위한 '필요악'일 뿐입니다, 신경 쓰지 마세요, 연극은 여전히 진행 중이니까요, '환상'은 계속됩니다... 단순히 '기술적'인 측면에서 필요한 것으로만 보였던 음악은 여기서 어떤 중요한 '상징적'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납니다. 음악은 관객에게 말합니다, 당신은 여전히 연극을 보고 있는 것이라고, 무대 위 어둠 속에서 일어나는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행동들, 소품을 치우거나 무대장치를 옮기거나 배우들이 바쁘게 드나드는 모습의 윤곽과 소리들은 무시하라고, 지금은 다만 음악을 들으라고, 지금 당신이 어둡고 희미한 조명 아래 보고 있는 것은 보고 있는 것이 아니며 또한 지금 듣고 있는 소음들도 들리는 소리들이 아니라고. 음악은 이 모든 연극적인 '필요악'들을 은폐하고 봉합하고 연결시키며, 또한 그 모든 것들을 '없는 것'으로 만듦으로써 그 '사이'의 시간과 공간을 '있는 것'으로 채워갑니다. 이렇듯 가장 기본적인 층위에서 연극음악의 역할이란 연극 속에 출몰할 수밖에 없는 현실의 개입을 막아서 연극적 허구와 환상을 지속시켜주는 것이죠.

하지만 이렇게 막과 막 사이를 이어주는, 곧 암전의 공간을 '채워주는', 그리하여 관객에게 어떤 환상의 지속을 가능케 해주는 '안이한' 길 외에, 연극음악이 걸어갈 수 있는 또 다른 길이 있지 않을까요? 말하자면 그 '또 다른 길'이란, 관객에게 연극적 '허구'로부터 벗어난 어떤 '현실(reality)'의 개입을 방지해주는 소극적인 길이 아니라, 오히려 '상징'의 체계로부터 이탈하여 그 상징 자체에 '틈'과 '사이'를 벌리는, 그리하여 어떤 '실재(the real)'의 출현 자체를 환기시켜주는 적극적인 길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곧, 연극음악은 '이 연극적 허구는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라는 환상을 지속시켜주는 상징적인 역할이 아니라, 막과 막 사이에 위치한 '사이', 그 시간 아닌 시간, 공간 아닌 공간, 배우의 몸이 표현할 수 없는 또 다른 종류의 심리적 특성과 서사적 배경을 머금는, 어떤 실재적인 '심연'의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연극음악이 하나의 또 다른 '배우'일 수 있다면, 아마도 그 배우란 이러한 '심연'의 배우,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침묵'을 말하는 배우, 채워지는 공간이 아니라 비워지는 '사이'를 연기하는 배우, 환상의 '존재'가 아니라 실재의 '부재'를 환기시키는 배우일 겁니다. 연극음악이 지녀야 할 '소리'가 '침묵'까지를 포함하는 것이라는, 그리고 또한 그러한 것이 되어야 한다는 역설은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가능합니다. 연극 안의 침묵과 부재는 참거나 숨기거나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자체로 오히려 소리와 존재를 가능케 하는 전제조건이라는 것, 아마도 이것이 연극음악이 '증언'하는 하나의 사실일 겁니다. 연극이 햄릿이라면, 연극 속의 음악, 연극 '사이'의 음악은 아버지의 유령이며 또한 그러한 유령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유령'으로서의 연극음악은 어떤 '치명적'이고 '마력적'인 성격을 띠게 됩니다. 그러한 음악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가능하며' 또한 '가능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말이죠. 음악은 연극을 '사이'에서 빚어가고 또한 '사이'에서 지워갑니다.

ㅡ 襤魂, 合掌하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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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06 15: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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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07 07: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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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9-01-06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쯤이면 뉴욕에 잘 도착하셨을까요, 람혼님? 직항이라도 열세시간 이상 걸릴텐데 말입니다.

아, 여유가 되신다면, 센트럴 파크와 엠파이어 스테이트에 제 안부좀 전해주세요. 다락방은 서울에서 잘 지내고 있노라고.

언제쯤 돌아오시나요? 잘 다녀오세요! 외롭지 않게 제가 이곳에 간혹 들를게요 :)

람혼 2009-01-07 07:18   좋아요 0 | URL
안부는 꼭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하는 말을 '그것들'이 알아들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외롭지 않게 해주셔서 감사!!!

2009-01-07 13: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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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07 16: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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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09 13: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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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09 00: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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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09 13: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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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0 03: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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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0 13: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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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0 16: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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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6 01: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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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2 09: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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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6 01: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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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9-01-15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죄다 비밀 댓글이닷!)


람혼님, 아직 안 오셨어요? (두리번두리번)

람혼 2009-01-16 01:40   좋아요 0 | URL
공연 성공적으로 마치고 잘 돌아왔습니다.^^
곧 다시 기지개를 켜고 글 열심히 써보겠습니다.

2009-01-16 00: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1-16 01: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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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9-01-18 1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귀국하셨군요.하신 일이 잘되었다니 다행입니다.

람혼 2009-01-19 18:33   좋아요 0 | URL
네, 잘 돌아왔습니다. 응원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2009-01-20 15: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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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20 16: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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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22 21: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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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23 02: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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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23 15: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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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24 01: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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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29 01: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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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29 02: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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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29 23: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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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30 04: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 『 한국연극 』, 2008년 11월호.

1) 『한국연극』지 11월호에 내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이하 이 기사를 옮겨 싣는다. 글쓴이는ㅡ인터뷰 말미에서 표기되고 있는 것처럼ㅡ기자이다. 인터뷰 기사이기에 '당연'하다고까지 말할 수 있을 이러한 '특징'을 여기서 새삼 도드라지게 언급하는 이유는, 나의 '말'이 다른 사람의 '글'을 통해 옮겨지고 지면화(紙面化)되었을 때 내가 느끼게 되는 어떤 생경함과 이질감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사실 이러한 낯선 감정이야 말과 글의 저 오래된 '역설적' 관계를 단순히 일반적으로만 생각해봤을 때도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새삼 묻자면, 이것은 과연 '나'의 '말'일까? 분명 이 '글'은 내가 했던 '말'들의 어떤 일면을 담고 있기는 하지만, 이 '글'은 내가 내뱉은 '말'들이 입게 된 옷으로는 어딘지 모르게 매우 헐렁하고 허술하다(글은 말의 '어조'와 '뉘앙스'까지 전달해주지는 못한다). 글이 하나의 '가면'이라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말 또한 하나의 '장막'이라는 사실 역시 간과해서는 안 된다. 내용적인 면에서만 봐도, 예를 들어 내가 기존의 연극 비평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던' 부분은 사실 한층 더 신랄했다. 자칭 연극평론가들은 연극을 너무 제한된 시각에서 고찰한다는 것이 내 말의 '요지'였다. 사실 그들이 비평할 수 있는 것은 대부분 문자적 텍스트로서의 희곡과 소위 말하는 배우의 '내면' 연기가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이 '내면 연기'라는 관용어구가 지닌 [부정적인 의미에서의] 허구성에 대해서는 이미 오래 전에 안치운 선생이 자신의 책에서 여러 번 언급했던 바 있다). 상황이 이렇다고 한다면, 그들은 차라리 스스로를 '연극평론가'가 아니라 '문학평론가'라고 칭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연극을 이루는 '총체성'의 환경을 고려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그러므로 또한 저 문자적 텍스트의 마력이란 얼마나 고질적인 '접착력'을 갖고 있는 것인가). 그들이 다루어야 할 텍스트는 문자적 희곡이나 연기의 방법론뿐만이 아니다. 비평 자체의 수준은 말할 것도 없이, 그러한 비평의 '외적' [결여] 조건 자체만으로도 그것은 '연극 비평'의 자격을 상당 부분 상실하고 있다. 영화 비평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지만, 하나의 총체적 예술 환경을 문제 삼을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하는 비평의 영역에서 오히려 비평가들이 비실대고 허우적거리고 있음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이렇듯 비평적 언어 안에서 연극 또는 영화를 좁은 의미의 텍스트로만 소급시키고 환원시키는 일종의 '무능력'은 곧 저 굳건한 '문학주의' 혹은 '문자주의'의 병들고 굴절된 변종이라고 오랜 시간 생각해오고 있다. 문학에서는 근대성에 대한 '파산' 선고가 유행하며 논란이 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한국 연극은 또 어떤 고색창연한 '근대성'을 붙잡고 있는 것인지. 내가 항상 거북하고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이 근대성 자체를 '메타적으로' 보지 못하는 어떤 종류의 '착종성'이다. 아마도 우리 세계 안에서 근대의 '바깥'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또한 어떤 '순진한' 의미에서의 '메타성'이나 적극적인 '탈출' 혹은 '외출'은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근대 그 자체에 매몰되어 자신이 숨쉬고 있는 공기 자체를 감지하지 못하는 저 '순수한 무지'는 언제나 나를 불편하게 하고 나를 찌른다. 

2) 예를 하나 들어보자. 나는 얼마 전 『중앙일보』에 실린 사진 한 장과 제목을 보고 먹던 음식을 거의 토할 뻔했다. 역겹고 메스꺼웠다. 사진 속에서 대통령이 재래시장에서 채소를 파는 한 할머니를 끌어안고 있었다. "할머니도 울었고 대통령도 울었다"고 한다. 대통령은 그 할머니에게 자신이 오랜 시간 아껴왔던 목도리를 풀어 내주며 어려운 일이 있으면 연락하라고 말하고 있었다(이 지점에서 저 재래시장 할머니는 대기업 총수들과 거의 맞먹는 수준의 지위를 부여받았다). 대통령은 그 할머니에게서 채소를 한아름 사갔다. 아, 가여운 백성을 끌어안고 보듬어주시는 지도자의 이 후한 인심이라니, 성은이 망극하지 않을 수 없다. 이보다 더 멋진 '연극', 이보다 더 눈물 나는 '신파극'이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연극계에 몸담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나는 많은 '반성'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통령은, 또한 대통령의 이 '연극'을 연출한 연출가들은, 그리고 그 '공연' 소식을 1면으로 보도한 신문은, 말하자면 근대성 자체를 보지 못하는, 혹은 애써 무시하는, 더 나아가 자신들만 알고 다른 사람들은 모르리라고 생각하는, 근대의 '눈먼' 노예들이다. 자신이 주인인 줄로만 알고 있는 무지하고 치졸한 노예들일 뿐이다. 이 사실에, 한편으론 역겨웠지만, 동시에 한편으론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게는 한국의 이 '근대'가 지닌 후진성과 낙후성이 언제나 슬프게 느껴진다. 이러한 슬픔은 입만 열면 오매불망 '선진국'과 '근대화'를 노래하는 저 높은 '어르신'들의 오래된 곡조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 후진성과 낙후성은 '극복'되고 '초월'될 수 있는 '보편적인' 성질의 것이 아니라, 하나의 '토착병'처럼 특수한 것, 그래서 오히려 '보편적으로'(!) 슬픈 것이라는 역설적인 성격을 갖는다. '한국 신연극 100년'이라고들 한다. 나는 최근에 내 '업무'와 관련하여 그 '100주년'을 기념해 선정된 신작 희곡을 읽게 되었고 또 그 연극에 음악을 작곡하게 되었다. 부끄럽게도 그 희곡의 수준은 말 그대로 '한국 신연극 100년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고 할 밖에. 실체화되지 못하고 부유하는 인물들, 유아적이고 이분법적인 세계관, 무지(無知)에 가까운 단순한 역사의식, 극이라는 형식에 대한 불충분한 이해의 정도를 드러내고 있는 진부한 형식과 내용 등등, 어쩌면 이 희곡이 '한국 신연극 100주년'을 기념하는 당선작으로 선정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한국 연극이 전반적으로 처해 있는 어떤 '낙후성'을 증명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이 세계에 한 발 담그고 있는 내 자신의 신발끈을 나는 오늘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고쳐매게 된다(이러한 점에서도 나의 성격은 자성적(自省的)이라기보다는 자학적(自虐的)인 것에 근접한다). 이 연극은 배우들의 공력, 연출의 신고(辛苦), 스태프들의 고생이 없었다면 지금의 모습으로는 아마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에, 결코 작품을 허투루 해서는 안 된다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 이 시점에서 더욱 간절한 심정으로 되새기게 된다. 이 점에 대해서 나는 그 희곡에 감사해야 하는 걸까? 이러한 감사의 인사를 전하지 않아도 되는 때가 오기를 기원하는 마음, 내게는 실로 간절하다("이하 이 기사를 옮겨 싣는다"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서론이 길어지고 만 것은 나의 또 다른 병증, 일종의 '고질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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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에게 말을 거는 음악 ㅡ 작곡가 최정우

해가 지고 해가 뜨고 날이 가고 날이 오며 계절이 계절을 지나 계절로 돌아오는 가운데 때로 어떤 시간은 음악으로만 기억되곤 한다. 간간히 삶 속에서 음악은 친구 이상의 친구로 애인 이상의 애인으로 무엇보다 추억 이상의 추억으로 남는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음악 앞에선 자신도 모르게 물덤벙술덤벙 마음 문을 열어버리고야 만다. <검둥이와 개들의 싸움>, <염소 혹은 실비아는 누구인가?>(2007), <애쉬즈 투 애쉬즈> 등 자기 색깔이 분명한 연극에 또한 그것 이상의 분명한 색으로 기억되는 최정우의 음악이 바로 그렇다. 암코양이가 그려내는 포물선마냥 부드럽다가도 초겨울의 희멀건 낯빛처럼 날카로운 음악 뒤에 숨어 있던 그를 만나보았다. 음악도 하나의 배우라고 생각하며 호흡하기를 즐긴다는 그는, 음악 이상으로 그만의 분명한 색깔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을 해야 하는 내적 이유

저는 연극이든 무용이든 같이 호흡하는 것이 정말 좋아요. 저 같은 경우는 상황이 된다면 녹음보다는 실황연주를 하자는 주의거든요. 작업한 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힘들 때마다 다신 하지 말자 그런 생각이 들면서도 계속 다시 하게 되는 건 정말 그때 그런 느낌 때문이죠. 녹음을 하게 되도 미디 작업보다는 실제 연주해서 녹음하는 걸 선호해요. 미디는 좀 차가운 느낌이 있어서... 

사실 정말 힘든 건 음악보단 음악 외적인 요인에 있죠. 호흡하는 자체는 즐거운 과정이지만 음악 자체가 배우와 같은 줄기를 가져야 하고 연출적인 마인드와도 부딪쳐야 하고 개런티나 경제적인 문제를 봤을 때도 아직은 영화음악 같은 장르에 비할 바가 아니고. 상황도 다르고 매체도 달라서 여러 가지 풀어야 할 문제점들이 많지만 그래도 자신이 들인 많은 노력이나 과정의 노고랄까요. 그런 거에 비해서는 돌아오는 게 적잖아요. 그냥 주위에서 하고 싶다는 단순한 마음으로 이 일을 하고 싶다고 한다면 이런 식의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요. 말 그대로 열정이 있어야 하고 뭐랄까 내가 이걸 해야 하고, 정말 하고 싶고 그러한 내적인 이유가 없다고 한다면 외적인 인센티브가 될 만한 건 없다고요. 

음악도 한 명의 배우

제 스타일은 세다고 해야 하나요?(웃음) 그런 면이 있어요. 아마 제 작품목록을 보면 아시겠지만 약~간 치우친 면이 있죠.(웃음) 음악 자체도 제가 전공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어법 자체를 완성시키려고 노력한 것이 많은데 본의 아니게 편향된 면이 있어서 옛날에는 정말 신경이 날카로워질 정도로 관객들이 듣기에 너무 어렵게 만드는 경향도 있었는데 그래도 서서히 제 스타일과 무대음악 문법에서의 타협점을 찾아 나가고 있는 것 같아요. 박정희 선생님과 작업할 때는 저의 그런 성향이 너무나 잘 맞아 완전히 표출되는 스타일이고 <블라인드 터치> 작업 했을 때는 오히려 임영웅 연출님[<블라인드 터치>의 연출은 김광보 선생인데, 기자가 착각하여 잘못 표기한 부분이다.ㅡ람혼]의 스타일 쪽으로 더 갔을 때도 있었고요. 그때 그때 다른데 그런 줄다리기도 재밌어요. 이제는 많이 그 줄다리기 자체를 즐기게 되었죠.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은 사실 음악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이란 막 전환이랄까요?(웃음) 굉~장히 실용적인 이유죠.(웃음) 음악이란 사실 기술적인 요소로서도 필요하지만 저 같은 경우에는 무용은 말할 것도 없지만 연극 같은 경우에도 음악도 하나의 배우라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그런 속성을 많이 활용하기 위해서 배우들과 이야기도 많이 하고 그러려는 편이죠. 물론 저도 연극에 한 명의 스태프로서 참여하는 것이지만은 어떤 연극에서 어떤 배우의 연기 혹은 어떤 희곡이 이슈가 되는 것처럼 '그 연극에는 이런 음악이 있었지'라고 기억되면 좋겠어요. 음악이 과하다거나 음향의 부피감으로서의 문제가 아니라 음악이 좀 더 관객에게 말을 걸려고 한다는 의미에서죠. 조심스러운 이야기지만 연극 비평도 사실 너무 문자적인 텍스트나 혹은 조금 더 나아가면 무대 정도에만 머물러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서울연극제에는 음악상이 없거든요. 음악상과 조명상이 없어요. 무대상은 있어요.(웃음) 시각적으로 보이는 것에만 관심이 많다는 걸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겠죠. 무엇보다 만드는 사람 쪽에서 다가가야 하겠지만 작품의 전체적인 예술적 환경에 주목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으면 합니다.

(글: 이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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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 산울림 소극장에서, 작품의 '강림'을 기다리며: 음악은 '안으로부터' 씌어지는 것이라기보다는 밖으로부터 '내려오는' 것이 아닐까 하는, 'poiesis'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그리고 거의 [무속(巫俗)에 가까우리만치] '신학적인', 어떤 해석과 잡념의 한 자락.

3) 이 인터뷰 기사에 관해 내용적인 면에서 몇몇 '까칠한' 언급들을 첨언해보자면, 가장 먼저 나는 내 음악이 "친구 이상의 친구", "애인 이상의 애인", 무엇보다 "추억 이상의 추억"이 될 수 있다고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 진하디 진한 '랑만적인' 수사법이 내게 주는 선물은ㅡ그 수사법의 형식을 고스란히 차용하자면ㅡ'당황스러움 그 이상의 당황스러움'이라고 할 밖에(어떤 이에게 내 음악이 '친구'이자 '애인'이자 '추억'이라면 나는 당장 그를 나의 '동류'라 칭하겠다). 또한 기사 곳곳에 등장하는 저 "(웃음)"이라는 '현장음'의 관용구는, 그러한 표기가 목표로 하는 의도와는 상반되게, 인터뷰가 지닌 '현장성'을 제대로 전달해주지 못한다. 그렇게 표기된 '웃음'은 내게 마치 '쉬운' 웃음처럼, 혹은 '죽은' 웃음처럼 느껴진다(그 웃음이 '나'의 웃음이 아니라면, 그것은 도대체 누구의 입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웃음일까). 그리고 어떤 작곡가라도 자신의 '색깔'을 갖지 않은 사람은 없다는 점을 첨언하고 싶다. '자신만의 색깔'이라는 말은 사실 그 어디에도 손쉽게 붙일 수 있는 말이다. 또 하나, 나는 내가 음악을 '어렵게' 만든다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분명 누군가는 내 음악에 신경이 날카로워질 수 있다고도 생각하지만, 사실 신경이라는 요물은 가장 편안한 자장가에도 가장 날카롭게 곤두설 수 있는 것이므로). 나는 다만 '감각적으로' 가장 결정적인 형식을 찾아 헤매는 것이다. 어떤 형식인가? 나는 음악에는 '내용'이 없다고 생각한다(그리고 내게는 바로 이것이 "어떤 형식인가?"라는 앞의 질문에 대한 가장 '적확한' 대답이다). 조금 더 '소극적으로' 바꿔 말하자면, 음악의 내용은 그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있다, 그것이 '심리적'인 것이든 '정치적'인 것이든. 음악은 이미-언제나 하나의 형식으로 시작되고 그 형식으로서 완성되며 그러한 형식이 음악의 '내용'을 이룬다. 예를 들어 그 음악이 '심리적으로' 어떤 내용을 환기시키는가 하는 따위의 문제는 말하자면 '전근대적(!) 언어학'의 문제인 것이다.

4) 이 짧고 평범한 인터뷰 안에서도 몇 가지 주목할 만한 부분들은 있다. '음악은 하나의 배우'라는 언급은 '도덕적'이라고 느껴질 만큼 '착하고' 또한 '진부하기까지' 한 것이지만, 사실 '연극 음악'은 오히려 '연극 외적인' 것으로 치부될 때가 많기 때문에 이 말이야말로 아무리 강조되어도 모자란 점이 있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연습 한 번 주마간산으로 보고 음악을 툭 던지고 나오는 음악 감독이 아니며, 또한 그렇게 되지 않도록 노력해 왔다. 나는 되도록이면 많은 시간을 오로지 연습을 '보고 듣고 느끼기' 위해서만 투자하며, 또한 그러고자 한다. 그래야만 좋은 음악이 나올 수 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는 아마도 내가 아주 둔하고 굼뜬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내게 필요한 정도와 강도의 자극과 경험이 충분히 '축적'되지 않으면 내게서는 단 한 줄의 글이나 음악도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무식한' 방법이 또한 내가 연극과 함께 음악을 호흡하는 형식이기도 하다. 하지만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인터뷰의 내용과 형식에 대해 이렇게 '사후적으로' 왈가왈부하는 것은 어쩌면 쓸데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나는 저 말과 저 글과 저 이미지로 이미 그렇게 소비되고 있기에. 그렇다면 해답은 뻔하지 않을까. 문제는 언제나 '현장'이며 '현장'일 수밖에 없다. 올해도 나는 거의 한 달에 한 작품 꼴로 작곡을 했다(올해 마지막으로는 저 '한국 신연극 100년'이라는 괴물(?)과 또 싸워야 했다). 예술계 안에서 이러한 무의미하고 소모적인 '타이틀 방어전'만이라도 사라져준다면 조금이나마 더 쾌적할 수 있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해본다. 먼 미래를 떠올려보자면, '한국 신연극 200년'의 모습은 또 어떻게 바뀌어 있을 것인가. 나는 사실 '이전의 100년'이 아니라 '이후의 100년'을 바라보고 있으며, 또한 그러고 싶다. 이것은 '메시아주의' 같은 것이 아니다. 이는 미래를 기다리고 추측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추억하고 기념하고자 하는 것, 이 두 가지는 같은 '이름'에 대한 다른 '호명'이다. 

         

▷ 김경주, 『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 랜덤하우스, 2006.
▷ 김경주, 『 기담 』, 문학과지성사, 2008.

5) 얼마 전에 나온 김경주의 두 번째 시집을 읽었다. 이 시인은 시와 연극 사이에서 일종의 '이종접합'을 시도하고 있었다(하지만 멀리 되돌아가 '시학'의 기원을 생각해보자면, 이는 사실 본래 '이종' 사이의 '접합'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닐 텐데). 그의 첫 시집 때부터 느꼈던 점이지만, 나는 이 시인이 정말 '풋내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시인이 유독 독특하고도 용감한 점은, 그 풋풋한 풋내기의 '풋내'를 나신(裸身) 그대로 드러내는 데에 거리낌이 없다는 사실이다(아마도 이러한 점이 또 다른 풋내기, 영원한 풋내기인 내가 이 시인에 관심을 쏟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될 것이다). 이번 시집에서 이 시인은 시라는 '극장'의 막을 열면서 이렇게 쓰고 있었다: 

이 극에서 '암전'은 극 전반을 감싸는 소재와 상징으로 사용된다./ 어둠 속에서 언어들만이, 지면 속에서 떠올라, 우리가 알 수 없는 자연을 떠돌아다니듯이 부유하면 좋다. 극의 시작부터 끝까지 암전.// 음악 역시 특별히 따로 사용하지 않는다./ 이 (지면이라는) 무대를 이해하기 위해선 한 가지 염두에 둘 사항이 있는데 그건 우리가 음악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우리 몸 안에 박동이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틈날 때마다 상기하는 것이다. 박동은 박동으로 인식되고 소리는 소리로 구별된다. 그것은 음악을 이해하는 중요한 지점을 획득한다. 개가 짖는다. 그 개 소리를 인식할 수 있는 것은 우리 몸에 개가 아니라 소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매 순간, 심장에서 자신의 형신(形神)으로 퍼지는 파동이 피와 살을 떠가며 뜻 모를 파장에 각운과 각주를 다는 일을 느낀다. 그러므로 음악에 대한 신뢰는 호흡은 머지않아 하나의 형(形)이 된다는 믿음에서 시작해야 한다. 자신이 빚어지기 전의 상태에서 지금의 여기까지 연결된 몸의 박동은 음악에 가장 가까운 언어다. 우리가 여기서 사용하는 무대의 이명(耳鳴)은 배 속의 태동을 간직하고 있는 그 언어에 호흡기를 다시 대주는 일이다. 그것이 내게 필요한 형신이며 음악이다.[...] 연출의 의도가 분명하고 운이 좋다면, 이 극은 들리지 않는 음악으로만 만들어진 음악극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언어들이 지면에서 빚어내는 무대이면서 언어극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하나하나 언어들을 섬세하면서도 모호하지 않게 다루어야 할 것이다./ 그 언어가 심중에 보인다면 우리들 생의 배우이며 배후인 언어를 상대하는 것이다.// 이 극은 사이에서 빚어지고 사이에서 지워진다.
ㅡ『기담』, 9-10쪽.

"사이"에서 빚어지고 "사이"에서 지워질 수밖에 없는 음악 또는 연극의 운명에 이리도 민감한 시인이란 또한 어떤 '시인'일 수 있을까. 암전의 빛과 무음의 박동에 이리도 천착하고 집착하는 시인이라면 그는 또한 어떤 '시인'이어야 할까. 이 '풋내기' 시인/연출가가 말하는 또 다른 '연출의 변'을 들어보자면:

아프리카엔 무지개를 잡아오는 것으로 성인식을 치르는 부족이 있었다고 한다. 일생의 마지막이 다 되어서야 성인식을 치르는 그 부족은 자신의 차례가 오면 남몰래 길을 떠났다. 무지개를 찾는 손은 축축해져갔다. 허공은 매일 활시위로 붉어졌다. 화살은 날아가 박히지 않았다. 뼛속으로 흘러와 뼈끝까지 달려간 무지개에선 새벽닭이 우는 소리가 자주 들렸다. 무지개를 쫓아 돌아다니는 동안 그들은 자신들이 차츰 헛것을 쫓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활을 다 사용하게 된다면 마지막 남은 화살은 서로의 눈알에 박아주자고 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서로의 눈을 의심하지 않고 가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무지개는 언어로 부르면 사라지고 무덤으로 부르면 차디찬 햇빛에 감겨 떠 있었다. 무지개를 발견할 때마다 그들은 늘 한쪽의 눈으론 서로의 눈에 활을 겨누고 있었고 다른 하나의 눈으론 피가 배지 않는 허공을 보고 있었다. 마지막 활시위가 손에서 떨어졌다. 그들은 받은 활 속으로 늪처럼 잠겨들었다. 헛것의 비극으로 죽어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서 헛것인 지금, 무지개 속에 뼈를 남기는 편이 낫다고 믿었다. 피눈물 속에 뜨는 무지개는 살아서 멀었다. 성인이 존재하지 않는 그 부족은 멸종해갔다. 피에 젖은 무지개는 마을로 돌아오지 못했다. 기다리는 자들도 없었고 자신의 차례가 되면 활 통을 메고 길을 나섰다. 간혹, 무지개까지 풀쩍 뛰어올랐다가 웃음이 많아진 사자는 식물을 먹기 시작했다고 하는 소문을 듣기도 했다. 혹자는 여기까지를 무지개를 숭배한 어느 이교도의 성인식이라고 부른다. 나는 여기에 '날아가 행동 위를 부유했다'라고 써둔다. 거기에 새는 가늘고 기다란 손가락 뼈 하나를 구부려주었다. 무지개는 빛의 멀미들이라고 내 배우들을 홀리느라 스스로 배후가 되었다.
ㅡ 『기담』, 144쪽.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나는 헛것과 싸우고 있구나, 그런 '허무한' 생각. 그리고, 그래서는, 마치 싸우고 있는 적(敵)에게 연민을 느끼고 그와 함께 호흡하며 결국 그와 사랑에 빠지듯, 나는 헛것을 사랑하며 그와 함께 숨쉬고 있구나, 그런 '퇴폐적'이고 '랑만적'인 생각. 나의 '배우'란 결국 나의 '배후[령]', 결국 내 자신의 유령과 생령에 다름 아니구나, 그런 '심령학적'이고 '유령학적'인 생각. 그래서는, 결국, 나의 배후를 사랑하려면 나는 나의 '배우'를 사랑해야 하는구나, 사랑하기 위해 다시 '그' 또는 '그들'과 싸워야 하는구나, 그런 '지고지순'하며 동시에 '[악]순환적'인 생각. 이 모든 생각들이 함께 모여 가리키는 지점을, 지극히 개인적으로 요약해서 말하자면, 그것은 곧, 나는 단 한 번도 나만의 '성인식'을 치르지 못했다는 것, 치르고 싶지 않다는 것, 아니 치를 수조차 없[게 되었]다는 것, 그래서 나는 내 운명의 형식을 [뒤집어] '형식의 운명'으로 받아들인다는 것, 내가 직접 그 막을 열고 닫는 어떤 연극의 배우와 배후는 이렇게 섭외되고 이렇게 구성된다는 것. 이 지독한 현기증과 멀미 속에서, 나는 용케 구토 한 번 하지 않고, 용케 그 흔한 '성인식' 한 번 치르지 않고, 단지 '이교도'이기만 한 채로, 그렇게 '신 없는 신학'을 경배하며, 터벅터벅 걸어온 건 아닐까. 올해가 저무는 이 시점에서, 나는 별 소질도 없는 반성 한 자락을, 해지고 젖은 옷을 기우고 널어 말리듯, 하나의 남루한 깃발처럼, 그렇게 펼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깃발은 백기일 것인가 승전보일 것인가. 이 지독한 우문(愚問)에 기똥찬 현답(賢答)을 내놓기는커녕, 이 순간 오롯이 드는 생각이란, 헛것과 만나 헛것과 싸우며 헛것과 사랑하기를 잘했다는, 그런 생각뿐이다. 결국 나는 '반성(反省)'이 아니라 '관성(慣性)'을, '자학[masochism]'이 아니라 '자위[masturbation]'를 행하게 된 꼴이 되었지만, 내게는 저 헛것만이 아프게 소중하다, 흔히 미사여구를 '가장'하여 말하듯, 가슴 시릴 정도로.

ㅡ 襤魂, 合掌하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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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8-12-26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에도 말씀드린 바 있지만, 제가 가장 원했던 삶을 살고 계세요. ^^ 사진 멋진데요!

람혼 2008-12-26 12:54   좋아요 0 | URL
앗, 일천한 사람에게 너무도 과분한 말씀입니다. 저도 제가 원하는 대로 살고 싶은데 당연하게도(?) 그게 그리 잘 되지는 않네요.^^; 제가 아는 분이 해주신 말씀인데, 다만 '사는 대로 생각하지 않기 위해 생각하는 대로 살고자' 애쓸 뿐입니다만, 아시다시피 이게 사실 가장 어려운 일 같습니다(문득, 아프락사스님 여전히 드럼 연주 계속 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마늘빵 2008-12-26 23:40   좋아요 0 | URL
연주 쉰지 꽤 시간이 지났네요. 없는 실력에 더 녹슬어버렸습니다. 괜히 취직 기념으로 산 중고 스네어 하나는 방치상태로 놓여져있고요. ^^ 브론즈 재질을 가지고 있다가 팔아버리고 우드로 샀는데, 우드는 관리를 잘 해줘야하는데.

람혼 2008-12-27 05:15   좋아요 0 | URL
우드 재질로 하나 장만하셨군요. 그래도 가끔은 쳐주셔야 스네어도 심심하지 않을 텐데요.^^; 올해도 Renata Suicide는 어김없이 Geek에서 연말 해넘이 공연을 합니다. 혹시 시간 나시면 공연장에서 한 번 뵈어도 좋을 텐데요.^^ 아프락사스님, 멋진 새해 맞이하시길~!

마늘빵 2008-12-27 11:16   좋아요 0 | URL
오홋 아 이런, 31일에 약속이 있네요. -_ㅠ 시간을 알려주시면 어캐 한번 가서 뵙기라도.

람혼 2008-12-27 12:41   좋아요 0 | URL
공연 자체는 12월 31일 10시 정도부터 시작인데요, 여러 밴드들이 출연하는 관계로 Renata Suicide는 아마도 1월 1일 새벽 1시 정도에 출몰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혹시 약속 장소가 홍대 근처면 한 번 뵐 수도 있겠네요.^^

마늘빵 2008-12-28 13:37   좋아요 0 | URL
아 그럼 가능합니다. ^^ 홍대서 볼 예정이거든요. 모임도 글쎄 끝날 때쯤이면 그 시간 될거 같은데, 같이 데리고 가도 되겠네요.

람혼 2008-12-29 02:46   좋아요 0 | URL
그럼 일이 잘 되면 아프락사스님을 처음으로 만나뵐 수도 있겠군요.^^ 고대하고 있겠습니다. 즐거운 연말 모임 가지시길 바랍니다.

2008-12-31 1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2-31 11: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12-31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람혼 님.새해엔 더욱 건강하고 멋진 한해 보내십시오.

람혼 2009-01-01 07:26   좋아요 0 | URL
제가 먼저 인사를 드렸어야 했는데... 노이에자이트님에게도 2009년이 멋지고 즐거운 일들만 가득한 그런 한 해가 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2009-01-01 18: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1-01 20: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1-06 11: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1-07 07: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09 08: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09 10:5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