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한국연극 』, 2008년 11월호.
1) 『한국연극』지 11월호에 내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이하 이 기사를 옮겨 싣는다. 글쓴이는ㅡ인터뷰 말미에서 표기되고 있는 것처럼ㅡ기자이다. 인터뷰 기사이기에 '당연'하다고까지 말할 수 있을 이러한 '특징'을 여기서 새삼 도드라지게 언급하는 이유는, 나의 '말'이 다른 사람의 '글'을 통해 옮겨지고 지면화(紙面化)되었을 때 내가 느끼게 되는 어떤 생경함과 이질감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사실 이러한 낯선 감정이야 말과 글의 저 오래된 '역설적' 관계를 단순히 일반적으로만 생각해봤을 때도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새삼 묻자면, 이것은 과연 '나'의 '말'일까? 분명 이 '글'은 내가 했던 '말'들의 어떤 일면을 담고 있기는 하지만, 이 '글'은 내가 내뱉은 '말'들이 입게 된 옷으로는 어딘지 모르게 매우 헐렁하고 허술하다(글은 말의 '어조'와 '뉘앙스'까지 전달해주지는 못한다). 글이 하나의 '가면'이라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말 또한 하나의 '장막'이라는 사실 역시 간과해서는 안 된다. 내용적인 면에서만 봐도, 예를 들어 내가 기존의 연극 비평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던' 부분은 사실 한층 더 신랄했다. 자칭 연극평론가들은 연극을 너무 제한된 시각에서 고찰한다는 것이 내 말의 '요지'였다. 사실 그들이 비평할 수 있는 것은 대부분 문자적 텍스트로서의 희곡과 소위 말하는 배우의 '내면' 연기가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이 '내면 연기'라는 관용어구가 지닌 [부정적인 의미에서의] 허구성에 대해서는 이미 오래 전에 안치운 선생이 자신의 책에서 여러 번 언급했던 바 있다). 상황이 이렇다고 한다면, 그들은 차라리 스스로를 '연극평론가'가 아니라 '문학평론가'라고 칭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연극을 이루는 '총체성'의 환경을 고려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그러므로 또한 저 문자적 텍스트의 마력이란 얼마나 고질적인 '접착력'을 갖고 있는 것인가). 그들이 다루어야 할 텍스트는 문자적 희곡이나 연기의 방법론뿐만이 아니다. 비평 자체의 수준은 말할 것도 없이, 그러한 비평의 '외적' [결여] 조건 자체만으로도 그것은 '연극 비평'의 자격을 상당 부분 상실하고 있다. 영화 비평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지만, 하나의 총체적 예술 환경을 문제 삼을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하는 비평의 영역에서 오히려 비평가들이 비실대고 허우적거리고 있음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이렇듯 비평적 언어 안에서 연극 또는 영화를 좁은 의미의 텍스트로만 소급시키고 환원시키는 일종의 '무능력'은 곧 저 굳건한 '문학주의' 혹은 '문자주의'의 병들고 굴절된 변종이라고 오랜 시간 생각해오고 있다. 문학에서는 근대성에 대한 '파산' 선고가 유행하며 논란이 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한국 연극은 또 어떤 고색창연한 '근대성'을 붙잡고 있는 것인지. 내가 항상 거북하고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이 근대성 자체를 '메타적으로' 보지 못하는 어떤 종류의 '착종성'이다. 아마도 우리 세계 안에서 근대의 '바깥'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또한 어떤 '순진한' 의미에서의 '메타성'이나 적극적인 '탈출' 혹은 '외출'은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근대 그 자체에 매몰되어 자신이 숨쉬고 있는 공기 자체를 감지하지 못하는 저 '순수한 무지'는 언제나 나를 불편하게 하고 나를 찌른다.
2) 예를 하나 들어보자. 나는 얼마 전 『중앙일보』에 실린 사진 한 장과 제목을 보고 먹던 음식을 거의 토할 뻔했다. 역겹고 메스꺼웠다. 사진 속에서 대통령이 재래시장에서 채소를 파는 한 할머니를 끌어안고 있었다. "할머니도 울었고 대통령도 울었다"고 한다. 대통령은 그 할머니에게 자신이 오랜 시간 아껴왔던 목도리를 풀어 내주며 어려운 일이 있으면 연락하라고 말하고 있었다(이 지점에서 저 재래시장 할머니는 대기업 총수들과 거의 맞먹는 수준의 지위를 부여받았다). 대통령은 그 할머니에게서 채소를 한아름 사갔다. 아, 가여운 백성을 끌어안고 보듬어주시는 지도자의 이 후한 인심이라니, 성은이 망극하지 않을 수 없다. 이보다 더 멋진 '연극', 이보다 더 눈물 나는 '신파극'이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연극계에 몸담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나는 많은 '반성'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통령은, 또한 대통령의 이 '연극'을 연출한 연출가들은, 그리고 그 '공연' 소식을 1면으로 보도한 신문은, 말하자면 근대성 자체를 보지 못하는, 혹은 애써 무시하는, 더 나아가 자신들만 알고 다른 사람들은 모르리라고 생각하는, 근대의 '눈먼' 노예들이다. 자신이 주인인 줄로만 알고 있는 무지하고 치졸한 노예들일 뿐이다. 이 사실에, 한편으론 역겨웠지만, 동시에 한편으론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게는 한국의 이 '근대'가 지닌 후진성과 낙후성이 언제나 슬프게 느껴진다. 이러한 슬픔은 입만 열면 오매불망 '선진국'과 '근대화'를 노래하는 저 높은 '어르신'들의 오래된 곡조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 후진성과 낙후성은 '극복'되고 '초월'될 수 있는 '보편적인' 성질의 것이 아니라, 하나의 '토착병'처럼 특수한 것, 그래서 오히려 '보편적으로'(!) 슬픈 것이라는 역설적인 성격을 갖는다. '한국 신연극 100년'이라고들 한다. 나는 최근에 내 '업무'와 관련하여 그 '100주년'을 기념해 선정된 신작 희곡을 읽게 되었고 또 그 연극에 음악을 작곡하게 되었다. 부끄럽게도 그 희곡의 수준은 말 그대로 '한국 신연극 100년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고 할 밖에. 실체화되지 못하고 부유하는 인물들, 유아적이고 이분법적인 세계관, 무지(無知)에 가까운 단순한 역사의식, 극이라는 형식에 대한 불충분한 이해의 정도를 드러내고 있는 진부한 형식과 내용 등등, 어쩌면 이 희곡이 '한국 신연극 100주년'을 기념하는 당선작으로 선정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한국 연극이 전반적으로 처해 있는 어떤 '낙후성'을 증명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이 세계에 한 발 담그고 있는 내 자신의 신발끈을 나는 오늘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고쳐매게 된다(이러한 점에서도 나의 성격은 자성적(自省的)이라기보다는 자학적(自虐的)인 것에 근접한다). 이 연극은 배우들의 공력, 연출의 신고(辛苦), 스태프들의 고생이 없었다면 지금의 모습으로는 아마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에, 결코 작품을 허투루 해서는 안 된다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 이 시점에서 더욱 간절한 심정으로 되새기게 된다. 이 점에 대해서 나는 그 희곡에 감사해야 하는 걸까? 이러한 감사의 인사를 전하지 않아도 되는 때가 오기를 기원하는 마음, 내게는 실로 간절하다("이하 이 기사를 옮겨 싣는다"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서론이 길어지고 만 것은 나의 또 다른 병증, 일종의 '고질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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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에게 말을 거는 음악 ㅡ 작곡가 최정우
해가 지고 해가 뜨고 날이 가고 날이 오며 계절이 계절을 지나 계절로 돌아오는 가운데 때로 어떤 시간은 음악으로만 기억되곤 한다. 간간히 삶 속에서 음악은 친구 이상의 친구로 애인 이상의 애인으로 무엇보다 추억 이상의 추억으로 남는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음악 앞에선 자신도 모르게 물덤벙술덤벙 마음 문을 열어버리고야 만다. <검둥이와 개들의 싸움>, <염소 혹은 실비아는 누구인가?>(2007), <애쉬즈 투 애쉬즈> 등 자기 색깔이 분명한 연극에 또한 그것 이상의 분명한 색으로 기억되는 최정우의 음악이 바로 그렇다. 암코양이가 그려내는 포물선마냥 부드럽다가도 초겨울의 희멀건 낯빛처럼 날카로운 음악 뒤에 숨어 있던 그를 만나보았다. 음악도 하나의 배우라고 생각하며 호흡하기를 즐긴다는 그는, 음악 이상으로 그만의 분명한 색깔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을 해야 하는 내적 이유
저는 연극이든 무용이든 같이 호흡하는 것이 정말 좋아요. 저 같은 경우는 상황이 된다면 녹음보다는 실황연주를 하자는 주의거든요. 작업한 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힘들 때마다 다신 하지 말자 그런 생각이 들면서도 계속 다시 하게 되는 건 정말 그때 그런 느낌 때문이죠. 녹음을 하게 되도 미디 작업보다는 실제 연주해서 녹음하는 걸 선호해요. 미디는 좀 차가운 느낌이 있어서...
사실 정말 힘든 건 음악보단 음악 외적인 요인에 있죠. 호흡하는 자체는 즐거운 과정이지만 음악 자체가 배우와 같은 줄기를 가져야 하고 연출적인 마인드와도 부딪쳐야 하고 개런티나 경제적인 문제를 봤을 때도 아직은 영화음악 같은 장르에 비할 바가 아니고. 상황도 다르고 매체도 달라서 여러 가지 풀어야 할 문제점들이 많지만 그래도 자신이 들인 많은 노력이나 과정의 노고랄까요. 그런 거에 비해서는 돌아오는 게 적잖아요. 그냥 주위에서 하고 싶다는 단순한 마음으로 이 일을 하고 싶다고 한다면 이런 식의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요. 말 그대로 열정이 있어야 하고 뭐랄까 내가 이걸 해야 하고, 정말 하고 싶고 그러한 내적인 이유가 없다고 한다면 외적인 인센티브가 될 만한 건 없다고요.
음악도 한 명의 배우
제 스타일은 세다고 해야 하나요?(웃음) 그런 면이 있어요. 아마 제 작품목록을 보면 아시겠지만 약~간 치우친 면이 있죠.(웃음) 음악 자체도 제가 전공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어법 자체를 완성시키려고 노력한 것이 많은데 본의 아니게 편향된 면이 있어서 옛날에는 정말 신경이 날카로워질 정도로 관객들이 듣기에 너무 어렵게 만드는 경향도 있었는데 그래도 서서히 제 스타일과 무대음악 문법에서의 타협점을 찾아 나가고 있는 것 같아요. 박정희 선생님과 작업할 때는 저의 그런 성향이 너무나 잘 맞아 완전히 표출되는 스타일이고 <블라인드 터치> 작업 했을 때는 오히려 임영웅 연출님[<블라인드 터치>의 연출은 김광보 선생인데, 기자가 착각하여 잘못 표기한 부분이다.ㅡ람혼]의 스타일 쪽으로 더 갔을 때도 있었고요. 그때 그때 다른데 그런 줄다리기도 재밌어요. 이제는 많이 그 줄다리기 자체를 즐기게 되었죠.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은 사실 음악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이란 막 전환이랄까요?(웃음) 굉~장히 실용적인 이유죠.(웃음) 음악이란 사실 기술적인 요소로서도 필요하지만 저 같은 경우에는 무용은 말할 것도 없지만 연극 같은 경우에도 음악도 하나의 배우라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그런 속성을 많이 활용하기 위해서 배우들과 이야기도 많이 하고 그러려는 편이죠. 물론 저도 연극에 한 명의 스태프로서 참여하는 것이지만은 어떤 연극에서 어떤 배우의 연기 혹은 어떤 희곡이 이슈가 되는 것처럼 '그 연극에는 이런 음악이 있었지'라고 기억되면 좋겠어요. 음악이 과하다거나 음향의 부피감으로서의 문제가 아니라 음악이 좀 더 관객에게 말을 걸려고 한다는 의미에서죠. 조심스러운 이야기지만 연극 비평도 사실 너무 문자적인 텍스트나 혹은 조금 더 나아가면 무대 정도에만 머물러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서울연극제에는 음악상이 없거든요. 음악상과 조명상이 없어요. 무대상은 있어요.(웃음) 시각적으로 보이는 것에만 관심이 많다는 걸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겠죠. 무엇보다 만드는 사람 쪽에서 다가가야 하겠지만 작품의 전체적인 예술적 환경에 주목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으면 합니다.
(글: 이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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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 산울림 소극장에서, 작품의 '강림'을 기다리며: 음악은 '안으로부터' 씌어지는 것이라기보다는 밖으로부터 '내려오는' 것이 아닐까 하는, 'poiesis'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그리고 거의 [무속(巫俗)에 가까우리만치] '신학적인', 어떤 해석과 잡념의 한 자락.
3) 이 인터뷰 기사에 관해 내용적인 면에서 몇몇 '까칠한' 언급들을 첨언해보자면, 가장 먼저 나는 내 음악이 "친구 이상의 친구", "애인 이상의 애인", 무엇보다 "추억 이상의 추억"이 될 수 있다고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 진하디 진한 '랑만적인' 수사법이 내게 주는 선물은ㅡ그 수사법의 형식을 고스란히 차용하자면ㅡ'당황스러움 그 이상의 당황스러움'이라고 할 밖에(어떤 이에게 내 음악이 '친구'이자 '애인'이자 '추억'이라면 나는 당장 그를 나의 '동류'라 칭하겠다). 또한 기사 곳곳에 등장하는 저 "(웃음)"이라는 '현장음'의 관용구는, 그러한 표기가 목표로 하는 의도와는 상반되게, 인터뷰가 지닌 '현장성'을 제대로 전달해주지 못한다. 그렇게 표기된 '웃음'은 내게 마치 '쉬운' 웃음처럼, 혹은 '죽은' 웃음처럼 느껴진다(그 웃음이 '나'의 웃음이 아니라면, 그것은 도대체 누구의 입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웃음일까). 그리고 어떤 작곡가라도 자신의 '색깔'을 갖지 않은 사람은 없다는 점을 첨언하고 싶다. '자신만의 색깔'이라는 말은 사실 그 어디에도 손쉽게 붙일 수 있는 말이다. 또 하나, 나는 내가 음악을 '어렵게' 만든다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분명 누군가는 내 음악에 신경이 날카로워질 수 있다고도 생각하지만, 사실 신경이라는 요물은 가장 편안한 자장가에도 가장 날카롭게 곤두설 수 있는 것이므로). 나는 다만 '감각적으로' 가장 결정적인 형식을 찾아 헤매는 것이다. 어떤 형식인가? 나는 음악에는 '내용'이 없다고 생각한다(그리고 내게는 바로 이것이 "어떤 형식인가?"라는 앞의 질문에 대한 가장 '적확한' 대답이다). 조금 더 '소극적으로' 바꿔 말하자면, 음악의 내용은 그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있다, 그것이 '심리적'인 것이든 '정치적'인 것이든. 음악은 이미-언제나 하나의 형식으로 시작되고 그 형식으로서 완성되며 그러한 형식이 음악의 '내용'을 이룬다. 예를 들어 그 음악이 '심리적으로' 어떤 내용을 환기시키는가 하는 따위의 문제는 말하자면 '전근대적(!) 언어학'의 문제인 것이다.
4) 이 짧고 평범한 인터뷰 안에서도 몇 가지 주목할 만한 부분들은 있다. '음악은 하나의 배우'라는 언급은 '도덕적'이라고 느껴질 만큼 '착하고' 또한 '진부하기까지' 한 것이지만, 사실 '연극 음악'은 오히려 '연극 외적인' 것으로 치부될 때가 많기 때문에 이 말이야말로 아무리 강조되어도 모자란 점이 있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연습 한 번 주마간산으로 보고 음악을 툭 던지고 나오는 음악 감독이 아니며, 또한 그렇게 되지 않도록 노력해 왔다. 나는 되도록이면 많은 시간을 오로지 연습을 '보고 듣고 느끼기' 위해서만 투자하며, 또한 그러고자 한다. 그래야만 좋은 음악이 나올 수 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는 아마도 내가 아주 둔하고 굼뜬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내게 필요한 정도와 강도의 자극과 경험이 충분히 '축적'되지 않으면 내게서는 단 한 줄의 글이나 음악도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무식한' 방법이 또한 내가 연극과 함께 음악을 호흡하는 형식이기도 하다. 하지만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인터뷰의 내용과 형식에 대해 이렇게 '사후적으로' 왈가왈부하는 것은 어쩌면 쓸데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나는 저 말과 저 글과 저 이미지로 이미 그렇게 소비되고 있기에. 그렇다면 해답은 뻔하지 않을까. 문제는 언제나 '현장'이며 '현장'일 수밖에 없다. 올해도 나는 거의 한 달에 한 작품 꼴로 작곡을 했다(올해 마지막으로는 저 '한국 신연극 100년'이라는 괴물(?)과 또 싸워야 했다). 예술계 안에서 이러한 무의미하고 소모적인 '타이틀 방어전'만이라도 사라져준다면 조금이나마 더 쾌적할 수 있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해본다. 먼 미래를 떠올려보자면, '한국 신연극 200년'의 모습은 또 어떻게 바뀌어 있을 것인가. 나는 사실 '이전의 100년'이 아니라 '이후의 100년'을 바라보고 있으며, 또한 그러고 싶다. 이것은 '메시아주의' 같은 것이 아니다. 이는 미래를 기다리고 추측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추억하고 기념하고자 하는 것, 이 두 가지는 같은 '이름'에 대한 다른 '호명'이다.
▷ 김경주, 『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 랜덤하우스, 2006.
▷ 김경주, 『 기담 』, 문학과지성사, 2008.
5) 얼마 전에 나온 김경주의 두 번째 시집을 읽었다. 이 시인은 시와 연극 사이에서 일종의 '이종접합'을 시도하고 있었다(하지만 멀리 되돌아가 '시학'의 기원을 생각해보자면, 이는 사실 본래 '이종' 사이의 '접합'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닐 텐데). 그의 첫 시집 때부터 느꼈던 점이지만, 나는 이 시인이 정말 '풋내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시인이 유독 독특하고도 용감한 점은, 그 풋풋한 풋내기의 '풋내'를 나신(裸身) 그대로 드러내는 데에 거리낌이 없다는 사실이다(아마도 이러한 점이 또 다른 풋내기, 영원한 풋내기인 내가 이 시인에 관심을 쏟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될 것이다). 이번 시집에서 이 시인은 시라는 '극장'의 막을 열면서 이렇게 쓰고 있었다:
이 극에서 '암전'은 극 전반을 감싸는 소재와 상징으로 사용된다./ 어둠 속에서 언어들만이, 지면 속에서 떠올라, 우리가 알 수 없는 자연을 떠돌아다니듯이 부유하면 좋다. 극의 시작부터 끝까지 암전.// 음악 역시 특별히 따로 사용하지 않는다./ 이 (지면이라는) 무대를 이해하기 위해선 한 가지 염두에 둘 사항이 있는데 그건 우리가 음악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우리 몸 안에 박동이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틈날 때마다 상기하는 것이다. 박동은 박동으로 인식되고 소리는 소리로 구별된다. 그것은 음악을 이해하는 중요한 지점을 획득한다. 개가 짖는다. 그 개 소리를 인식할 수 있는 것은 우리 몸에 개가 아니라 소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매 순간, 심장에서 자신의 형신(形神)으로 퍼지는 파동이 피와 살을 떠가며 뜻 모를 파장에 각운과 각주를 다는 일을 느낀다. 그러므로 음악에 대한 신뢰는 호흡은 머지않아 하나의 형(形)이 된다는 믿음에서 시작해야 한다. 자신이 빚어지기 전의 상태에서 지금의 여기까지 연결된 몸의 박동은 음악에 가장 가까운 언어다. 우리가 여기서 사용하는 무대의 이명(耳鳴)은 배 속의 태동을 간직하고 있는 그 언어에 호흡기를 다시 대주는 일이다. 그것이 내게 필요한 형신이며 음악이다.[...] 연출의 의도가 분명하고 운이 좋다면, 이 극은 들리지 않는 음악으로만 만들어진 음악극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언어들이 지면에서 빚어내는 무대이면서 언어극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하나하나 언어들을 섬세하면서도 모호하지 않게 다루어야 할 것이다./ 그 언어가 심중에 보인다면 우리들 생의 배우이며 배후인 언어를 상대하는 것이다.// 이 극은 사이에서 빚어지고 사이에서 지워진다.
ㅡ『기담』, 9-10쪽.
"사이"에서 빚어지고 "사이"에서 지워질 수밖에 없는 음악 또는 연극의 운명에 이리도 민감한 시인이란 또한 어떤 '시인'일 수 있을까. 암전의 빛과 무음의 박동에 이리도 천착하고 집착하는 시인이라면 그는 또한 어떤 '시인'이어야 할까. 이 '풋내기' 시인/연출가가 말하는 또 다른 '연출의 변'을 들어보자면:
아프리카엔 무지개를 잡아오는 것으로 성인식을 치르는 부족이 있었다고 한다. 일생의 마지막이 다 되어서야 성인식을 치르는 그 부족은 자신의 차례가 오면 남몰래 길을 떠났다. 무지개를 찾는 손은 축축해져갔다. 허공은 매일 활시위로 붉어졌다. 화살은 날아가 박히지 않았다. 뼛속으로 흘러와 뼈끝까지 달려간 무지개에선 새벽닭이 우는 소리가 자주 들렸다. 무지개를 쫓아 돌아다니는 동안 그들은 자신들이 차츰 헛것을 쫓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활을 다 사용하게 된다면 마지막 남은 화살은 서로의 눈알에 박아주자고 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서로의 눈을 의심하지 않고 가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무지개는 언어로 부르면 사라지고 무덤으로 부르면 차디찬 햇빛에 감겨 떠 있었다. 무지개를 발견할 때마다 그들은 늘 한쪽의 눈으론 서로의 눈에 활을 겨누고 있었고 다른 하나의 눈으론 피가 배지 않는 허공을 보고 있었다. 마지막 활시위가 손에서 떨어졌다. 그들은 받은 활 속으로 늪처럼 잠겨들었다. 헛것의 비극으로 죽어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서 헛것인 지금, 무지개 속에 뼈를 남기는 편이 낫다고 믿었다. 피눈물 속에 뜨는 무지개는 살아서 멀었다. 성인이 존재하지 않는 그 부족은 멸종해갔다. 피에 젖은 무지개는 마을로 돌아오지 못했다. 기다리는 자들도 없었고 자신의 차례가 되면 활 통을 메고 길을 나섰다. 간혹, 무지개까지 풀쩍 뛰어올랐다가 웃음이 많아진 사자는 식물을 먹기 시작했다고 하는 소문을 듣기도 했다. 혹자는 여기까지를 무지개를 숭배한 어느 이교도의 성인식이라고 부른다. 나는 여기에 '날아가 행동 위를 부유했다'라고 써둔다. 거기에 새는 가늘고 기다란 손가락 뼈 하나를 구부려주었다. 무지개는 빛의 멀미들이라고 내 배우들을 홀리느라 스스로 배후가 되었다.
ㅡ 『기담』, 144쪽.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나는 헛것과 싸우고 있구나, 그런 '허무한' 생각. 그리고, 그래서는, 마치 싸우고 있는 적(敵)에게 연민을 느끼고 그와 함께 호흡하며 결국 그와 사랑에 빠지듯, 나는 헛것을 사랑하며 그와 함께 숨쉬고 있구나, 그런 '퇴폐적'이고 '랑만적'인 생각. 나의 '배우'란 결국 나의 '배후[령]', 결국 내 자신의 유령과 생령에 다름 아니구나, 그런 '심령학적'이고 '유령학적'인 생각. 그래서는, 결국, 나의 배후를 사랑하려면 나는 나의 '배우'를 사랑해야 하는구나, 사랑하기 위해 다시 '그' 또는 '그들'과 싸워야 하는구나, 그런 '지고지순'하며 동시에 '[악]순환적'인 생각. 이 모든 생각들이 함께 모여 가리키는 지점을, 지극히 개인적으로 요약해서 말하자면, 그것은 곧, 나는 단 한 번도 나만의 '성인식'을 치르지 못했다는 것, 치르고 싶지 않다는 것, 아니 치를 수조차 없[게 되었]다는 것, 그래서 나는 내 운명의 형식을 [뒤집어] '형식의 운명'으로 받아들인다는 것, 내가 직접 그 막을 열고 닫는 어떤 연극의 배우와 배후는 이렇게 섭외되고 이렇게 구성된다는 것. 이 지독한 현기증과 멀미 속에서, 나는 용케 구토 한 번 하지 않고, 용케 그 흔한 '성인식' 한 번 치르지 않고, 단지 '이교도'이기만 한 채로, 그렇게 '신 없는 신학'을 경배하며, 터벅터벅 걸어온 건 아닐까. 올해가 저무는 이 시점에서, 나는 별 소질도 없는 반성 한 자락을, 해지고 젖은 옷을 기우고 널어 말리듯, 하나의 남루한 깃발처럼, 그렇게 펼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깃발은 백기일 것인가 승전보일 것인가. 이 지독한 우문(愚問)에 기똥찬 현답(賢答)을 내놓기는커녕, 이 순간 오롯이 드는 생각이란, 헛것과 만나 헛것과 싸우며 헛것과 사랑하기를 잘했다는, 그런 생각뿐이다. 결국 나는 '반성(反省)'이 아니라 '관성(慣性)'을, '자학[masochism]'이 아니라 '자위[masturbation]'를 행하게 된 꼴이 되었지만, 내게는 저 헛것만이 아프게 소중하다, 흔히 미사여구를 '가장'하여 말하듯, 가슴 시릴 정도로.
ㅡ 襤魂, 合掌하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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