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lyn Glennie: How to Listen to Music with Your Whole Body
http://kr.youtube.com/watch?v=IU3V6zNER4g
얼마 전 파랑과 공연 준비 때문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블린 글레니(Evelyn Glennie)의 이름을 다시금 떠올리게 되었다. 이에 그녀의 강연/공연 영상을 옮겨온다. 30분이 조금 넘는 영상이지만, 무엇보다 재미있고, 무엇보다 감동적이다. 일람(一覽)을 권한다.
내가 글레니의 내한공연을 처음 봤던 것은 10년 전, 1999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영상을 보면 느끼겠지만, 그녀가 청각장애를 갖고 있다는 사실은 여간해서는 잘 믿기지 않는다. 어쩌면 이러한 '믿을 수 없는' 느낌은 내가 갖고 있는 또 하나의 '차별의식'이 변형된 감탄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내가 지금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녀의 영어 발음이 참 마음에 든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가 '대화'를 이끌어가는 방식이 참 마음에 든다는 것이다.
랑시에르는 <무지한 스승>에서 이렇게 쓴 바 있다: "무지한 자는 더 적게 하는 동시에 더 많이 할 것이다(L'ignorant, lui, fera moins et plus à la fois)." 이는 가르침의 '교육법'이라는 측면에서도 그렇지만, 연주의 '주법'이라는 측면에서도 또한 그렇다. 이 점을 언제나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다.
글레니의 이 영상을 보면서 다시금 새삼 느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은, 전신(全身)으로, 전경험(全經驗)으로 음악을 듣고 또 연주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이다. 흔히들 음악을 '시간 예술'이라는 말로 뭉뚱그려 말하지만, 글레니의 예는 음악가가 얼마나 '공간'과 그 '울림'에 대해 치열하게 사유해야 하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녀의 이 유쾌한 강연을 보고 있자면, 음악가가 왜 한 명의 철학자인지, 또 왜 한 명의 철학자가 될 수밖에 없는지, 실로 절실하고 새삼스럽게 느끼게 된다.
광고 한 자락:
2009년 2월 6, 7일 양일간 아르코(구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내가 대본을 쓰고 작곡을 하고 연주를 하는 무용 <육식주의자들>이 공연된다. 올해 1월 초 뉴욕 일본협회(Japan Society)에서 공연했던 <몇 개의 질문>도 이 공연의 1부로 함께 공연될 예정이다. 내 공연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긴 처음인 것 같지만, 이 또한 일람을 권해본다.
ㅡ 襤魂, 合掌하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