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 사계절 1318 문고 36
라헐 판 코에이 지음, 박종대 옮김 / 사계절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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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역사적 사실에 작가의 문학적 상상력이 접목되어 흥미진진한 이야기구조를 이루어낸다. 이런 류의 동화나 청소년 소설은 적지 않게 있지만 이 책은 특히 전율적이었다. 우리 안에 숨어있는 편견과 선입견, 가장 치욕스러운 감정까지 들춰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우리 안에 잠자고 있는 가장 고귀한 품성을 결국은 끄집어내어 돋보이게 하기 때문이다.

역자의 말에 의하면 미술계 인사들이 역사상 최고의 명화로 꼽는 그림은 궁정화가로 이름을 날린 에스파냐의 화가, 디아고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라고 한다. 어느 명화 관련 책에서 몇  번 본적이 있는 그림이다. 놀랍게도 이 한 폭의 그림으로 작가는 짧지 않은 이야기를 풀어냈다. 본능적인 감정에 요동치는 부분도 있고  따스한 가족애로 가슴에 물이 흐르기도 한다. 평소 장애인의 문제에 관심이 많다고 하는 네덜란드 출신의 작가였다.

화가들이 충성심과 용기를 상징하는 것으로 그림에 그려넣는 대상은 '개'라고 한다. 이 말은 좌절감에 몸서리치고 있는 바르톨로메에게 들리는 위로의 말이기도 하다. 17세기 스페인 마드리스, 펠리페4세가 모든 것의 위에 앉아 군림하던 시기가 이 책의 시대적 배경이다. 화가 벨라스케스 역시 책의 뒷부분에 가면 등장한다. 그의 열린 마음과 곧은 정신이 바르톨로메의 인생에 빛을 준다. 벨라스케스는 실제로 시녀들이나 난쟁이를 왕족이나 귀족들과 동등한 배치로 하여 그림의 구도 안에 넣음으로써 소수자와 약자들에게 따스한 시선을 주었다고 평가된다.

작가는 자신이 벨라스케스가 되어 그림 속으로 들어갔고, 기가 막힌 상상력으로 이야기 하나를 자아냈다. 물론 작가의 지나친 상상일 수도 있지만 화가의 의도와 250년이 지난 시대에 사는 어느 작가의 상상이 꼭 맞아떨어져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예술을 보는 눈은 주관적인 인상과 자신만의 무한한 상상의 힘으로 깊어진다고 생각한다.

태어날 때부터 심한 기형의 몸을 하고 있어 네발로 기는 편이 더 편한 베르톨로메는 검고 빛나는 눈, 섬섬옥수 같은 손 그리고 맑고 청아한 목소리가 유난히 인상적인 열살의 남자아이다. 신은 불구의 몸으로 태어난 이 아이에게 이러한 축복을 주었지만 사람들은 누구도 알아채지 못한다. 편견이 가로막고있기 때문이다. 학구열이 높고 지력도 대단한 바르톨로메는 빠른 시일에 수사의 도움으로 글자를 익히고 <돈키호테>같은 까지 읽는다. 색채 감각 또한 뛰어나 벨라스케스 화실에서 일하는 도제의 눈에 들어 제자가 된다.

이렇게 되기까지 베르톨로메가 겪는 고난은 예수의 그것과 비교된다. 나중 된 자 먼저 되고, 먼저 된 자 나중 되리라, 는 말이 절망의 순간에 힘이 되기도 하지만 그가 당하는 모멸감과 상처는 읽는이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특히 아버지 후안의 싸늘한 태도에 함께 분노하게 되지만 역시 아버지의 정을 막을 수는 없다. 후반부에 드러나는 아버지의 말못할 고민과 자식에 대한 사랑이 읽는이의 마음에 다소 위안이 된다.

벨라스케스의 그림 <시녀들>은 시점에 있어서 남다른 그림이다. 화가가 그림 속에 등장인물로 들어가 붓을 들고 서 있고 그림의 대상인 왕과 왕후는 정면의 거울을 통해 보인다. 즉 이 그림을 우리가 보는 게 아니라 그림속의 화가가 우리를 보는 것 같은 구도다. 가운데에 다섯살 짜리 공주가 깜찍한 모습으로 서 있고 주위엔 시녀들과 시동들이 서있다. 작가는 가장 앞줄 구석에 있는 믿음직스러운 개에 눈이 멈추었다. 개의 등을 밟고 서 있는 난쟁이 시동은 다른 시녀들과 마찬가지로 이 책의 등장인물이기도 하다. 바르톨로메를 학대하는 인물로 야비한 근성을 잘 드러낸다. 전제군주의 군림 못지 않은 기생적인 군림이 핍박 받는 약자에겐 더욱 괴롭다.

하지만 개는 그런 발길조차도 묵묵히 견뎌내고 있다. "개는 짖지 않는다. 다만 화가 나면 물 뿐이다." 개는 지금 내면의 힘을 느끼며 그 힘을 모으고 있는 순간이다. 작가는 바르톨로메의 이야기를 통해 시대를 초월하여 소수자를 바라보게 한다. 인종, 계급 그리고 신체적 장애 따위로 인간이 누려야할 기본권마저 누리지 못하는 약자들의 있음직한 고통을 풍부한 상상력으로 풀어낸다. 가장 놀라운 상상은 그 개가 원래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는 점이다.

바르톨로메를 제자로 받아들인 노예출신 도제 파레하는 이렇게 말한다.

"무언가를 바꿀 힘이 네손에 없거든, 다른 누군가가 그렇게 할 것이라 믿어라! 저는 운명도 언젠가는 바르톨로메의 편에 서리라 믿습니다."

파레하의 입을 통해 작가는 선을 향한 강한 믿음과 그것에 대한 의지를 보여준다. 또한 진실을 향한 양심적인 발걸음을 확신한다. 진실은 흔히 보이지 않는 법이 아닌가.

자, 이야기는 결말로 절정으로 치닫는다. 공주의 인간개가 되어 '자신의 모습'이 아닌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바르톨로메를 구출하기 위한 작전이 볼만하다. 드디어 힘없어 보이기만 했던 가족 모두의 유쾌한 힘이 발휘된다. 마술, 그것은 마술이다. 희망적인 결말이 흐뭇하다.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리는 화가의 손처럼, 보이지 않는 것에 희망을 걸고 보이지 않는 것의 가치를 볼 줄 아는 눈. 우리에게도 이런 눈이 없다면 정말 불구의 몸이지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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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지된 장난 - 미네르바의 올빼미 05 미네르바의 올빼미 5
프랑수와 부아예 지음, 김경희 그림, 신광순 옮김 / 푸른나무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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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지된 장난’은 1952년 르네 끌레망 감독의 흑백영화와 귀에 익은 주제곡으로 오래도록 기억되고 있는 영화다. 그 이전에 1947년 프랑스의 프랑수와 부아예가 동명의 소설을 썼다. 이 책과 영화는 아이들의 순수한 눈을 통해 전쟁의 비극성을 비춰 보여, 그 맑은 눈망울에 비친 전쟁의 잔혹함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반전소설이자 반전영화이다.

 

 제목이 말하는 금지된 장난은 표면상으로는 무덤놀이 혹은 십자가 놀이다. 열 살 소년 미셸과 다섯 살 소녀 뽈레뜨가 이런 놀이를 하게 된 배경에는 전쟁이 있다. 이 소설의 배경은 1940년 6월이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시기이지만 이들이 사는 생페마을은 세상일에 다소 눈이 어두운 시골마을이다. 피난길에 부모를 잃고 우연히 흘러들어오게 된 이 마을에서 뽈레뜨는 아직도 전쟁이 무엇인지, 죽음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뽈레뜨의 눈에 죽음이란 기도문을 외우고 성호를 그어야할 만큼 대단한 일이 아닌 것 같다. 그저 노래를 목청껏 부르면 금방 살아날 것만 같은, 장난 같은 일이다. 뽈레뜨는 마을의 신부를 통해 목숨 있는 것이 죽으면 기도를 하고 성호를 그어 슬픔을 표현하며 명복을 비는 것임을 어렴풋이 알게 된다. ‘입 큰 늑대’에 의해 부모와 개가 죽는 것을 본 뽈레뜨는 주검에 대한 심한 애착을 보인다. 아이의 충격이 얼마나 컸을까.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던 아이가 자신에게 위안을 주려고 안간힘을 썼던 미셸의 죽음 앞에서 눈물을 쏟는 장면에서 누구든 가슴이 시릴 것이다.

 

 십자가는 고난과 구원의 의미를 동시에 지닌다. 생페마을 사람들은 십자가를 소홀히 하고 지내왔다. 역설적이게도, 십자가를 만들고 훔치기까지 한 미셸만이 십자가의 소중한 의미를 알고 있는 듯하다. 위선적인 신부와 성당의 형식적인 십자가는 이들의 잃어버린 신앙심과 허울뿐인 종교관을 말해준다. 싸움을 일삼던 돌레 집안과 가나르 집안의 사람들이 뽈레뜨와 미셸이 만든 공동무덤에서 자신들만의 십자가를 챙길 때에도 성당꼭대기의 거대한 철십자가에는 눈길을 주지 않았다. 이들에게 구원은 요원한 것처럼 보인다. 눈앞의 욕심에만 눈이 어두워 전쟁과 분쟁을 일으키고 있는 오늘날의 우리들에게까지도 십자가의 경종은 크다.

 

 십자가를 잊고 있었던 이 마을 사람들에게 그나마 십자가에 눈을 돌리게 해준 사람은 뽈레뜨다. 뽈레뜨는 가장 순수하고 때 묻지 않은 사랑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뽈레뜨는 ‘역사가 그들에게 준 작은 선물’이기도 하다. 이들은 십자가를 나누어 가지며 즐거워하고 양가의 결혼식도 준비한다. 결국 행복과 평화는 아이다운 순수함과 계산되지 않은 사랑을 통해 얻을 수 있다. 형식적인 종교나 폭력 따위로는 얻을 수 없는 고귀한 가치라고 생각된다. 어른들의 이기심과 비인간성을 뽈레뜨의 순진무구함와 대비하여 보여줌으로써 작가는 전쟁의 참혹함을 뚜렷이 드러낸다.  

 

 돌레와 가느르 집안의 사소한 갈등처럼 전쟁은 자기 쪽 입장만 내세워 양보하지 않고 욕심을 부리기 때문에 일어난다. 전쟁은 많은 피해를 남기지만 특히 어린이들에게 입히는 상처는 말로 다 할 수 없다. 어린이는 미래의 희망이므로 이들의 영혼에 입힌 상처는 인류의 미래를 어둡게 한다. 전쟁은 한낱 장난이 아니다. 밝은 미래를 위해 전쟁은 금지되어야하는 장난 중에서도 영순위에 해당한다. '금지된 장난'은 이런 메세지를 한 편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로 빚어낸다.

 

 중학 1학년과 함께 읽었다. 영화를 함께 보면 더 진한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은데 디비디가 모두 품절이어서 아쉬웠다. 인터넷에서 몇몇 흑백스틸사진을 보긴 했지만 가슴으로 느끼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아이들이 소설의 곳곳에 숨어있는 상징과 시대배경을 이해하고 다시 읽으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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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하 2006-05-20 0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계산되지 않은 가치들이 울긋불긋 피어나야 할 것 같아요. 언젠가 꼭 읽오보고 싶어요. 퍼가도 돼죠?^^;

프레이야 2006-05-20 0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님, ^^
 
이젠 비밀이 아니야 작은도서관 11
유정이 지음, 원유미 그림 / 푸른책들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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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특별한 입양아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공개입양을 주제로 내 건 네 가지의 알콩달콩한 이야기를 모아놓았다. 물론 창작동화이지만 실제로 있을 법한 입양 이야기들이다. 작가는 평소 우리 사회 소수자들의 생활에 관심이 많았고 입양이라는 문제를 좀더 공론화하여 입양아 입장에서 건강하게 이야기 해보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 책의 장점은, 먼저 문체가 발랄하여 읽어내려가기가 참 재미있고 수월하다. 아이들 입장에서 입양이란 단어도 생소할텐데 신파조의 무거운 문체라면 더욱 읽어가기가 어려웠을 테다. 하지만 이 동화는 네가지 이야기의 화자가 입양아이기도 하며 입양가족이기도 하며 파양을 당하는 입장이기도 하여 훨씬 실감나게 그들의 심리를 그려내고 있다. 군더더기 없이 잘 읽혀내려가면서 등장인물들의 감정과 심리를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등장인물들의 말을 통해 입양에 대한 의식을 새롭게 하고 입양에 대한 편견도 바로 잡아주려는 작가의 의도가 보인다.

입양부모의 나이가 또래친구들의 부모보다 20년 정도 많아 할아버지가 아니냐고 놀림을 당하기도 하고 입양아라는 사실을 어릴 때부터 알고 있어 어느 날 생모를 찾아 집을 불쑥 나가는 10살 남자아이. 그런 아이를 대하는 양부모의 침착하고 사려깊은 행동과 말이 잔잔한 감동을 준다.

또한 입양된 여자동생 때문에 부모님의 사랑을 빼앗겼다고 생각하여 고민하는 남자아이의 마음을 다독이려는 어린 동생의 행동이 눈물겹다. 그리고 부모님의 대사 중 "너는 엄마가 배 아파 낳았지만 은비는 가슴 아파 낳은 동생이란다" 라는 말이 입양의 의미를 전해준다. 사랑으로 이룬 새로운 가족이라는 말이다.

강아지 까미를 화자로 하는 세번째 이야기에서는 파양의 아픔을 겪으며 두번의 버림을 당하는 아이에 대하여 꼬집고 있다. 여기서 까미는 주인 아줌마의 행복을 위해서, 입양될 아이를 위해 다른 집으로 기꺼이 간다. 하지만 까미가 만일 입양아라면 무책임한 사람들의 파양으로 두번의 아픔을 겪을 것이다.

네번째 이야기는 어린 입양아가 화자로 등장한다. 입양을 비밀로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보다 입양을 공개적으로 하며 감격스러워 눈물을 흘리는 네명의 가족들과 함께 새로운 가정의 막내가 될 어린아기의 말 못하는 심리가 잘 그려져있다.

입양의 날까지 지정되었고 요즘 연예인들 중에서도 입양을 공개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모두 입양을 사랑을 실천하는 한 가지 방법으로 생각한다. 혈통주의에서 벗어나 열린마음일 때 이런 사랑을 실천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는 입양의 절차도 간단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먼저 부부가 입양에 동의를 하여 마음이 일치해야하며 경제적여건이나 나이, 건강상태 등도 입양조건으로 맞아야한다. 입양원에서 교육을 받고 입양절차를 밟기까지 마음고생도 많이 할 것이다.

이 책은 입양아 자신이 겪는 갈등뿐만아니라 입양가족이 겪을 갈등과 고민까지 사실적으로 그리면서 아주 밝고 건강한 모습을 보여준다. 입양이 더 이상 어두운 곳에서 비밀로 일어날 일이 아니라 건강하게 이루어져야할 일이며, 빚어질 수 있는 모든 갈등도 이해와 사랑으로 환하게 해결되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이 담겨있다. 등장인물들의 정신과 마음씀씀이가 따사로운 봄햇살같아 읽고 나면 가슴이 훈훈해진다. 삽화도 파스텔톤의 네 가지 색상의 종이 위에 밝고 사랑스럽게 그려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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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5-20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든갈등도 이해와 사랑으로 환하게 해결되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고모님 딸두 1살때 입양해서 친딸보다 더 잘 키우셨어요...결혼보낸 지금도 비밀로하고 있답니다...
갈등과 고민속에서도 사실적으로 그려낸 이야기라면 정말 가슴 뭉클하겠어요 ㅠ.ㅠ

프레이야 2006-05-25 1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밀입양과 공개입양을 놓고 짧은 토론을 했는데 공개입양 쪽이 많더군요. 전 잘 판단이 되지 않지만 고모님 딸처럼 당사자에게 비밀로 되어있다면 계속 그래야할 것 같군요..
 
 전출처 : stella.K > [‘어린왕자’의 60번째 생일]세계가 감동한 ‘늙지 않는 고전’

 

[‘어린왕자’의 60번째 생일]세계가 감동한 ‘늙지 않는 고전’

1935년 ‘파리 수아르’ 신문의 모스크바 특파원인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Antoine de Saint-Exupery)는 모스크바행 열차에 올랐다. 앞자리엔 엄마의 품에 안긴 아기가 입가에 미소를 띠고 자고 있었다. 그 뒤 생텍쥐페리에겐 작은 사내아이를 낙서하듯 그리는 버릇이 생겼다.

‘인간의 대지(Terre des hommes)’로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상을 받은 뒤 1940년 미국으로 건너가 ‘전투조종사(Pilote de guerre)’를 발표한 뒤의 에피소드. 하루는 뉴욕의 한 식당에 갔다가 테이블보에 또 낙서를 했다. 바람에 휘날리는 금빛 스카프를 두른 사내아이였다. 이를 본 미국인 편집장이 “그 아이를 주인공으로 동화책을 써보라”고 제안했다. ‘어린왕자(Le Petit Prince)’는 1943년 4월 이렇게 처음으로 세상 빛을 보았다.

비행사이기도 했던 그는 “이제 작가 일에만 충실하라”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정찰 비행에 나섰다. 그리고는 코르시카 섬에서 지중해 상공으로 출격을 나간 뒤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1944년 7월 31일이었다. 자신이 떠나온 별로 되돌아갔다는 소설 속의 어린왕자처럼, 그렇게 그는 하늘에 박히듯 사라졌다.

어린왕자 초판은 1943년 미국 뉴욕에서 나왔지만 작가의 모국인 프랑스에선 1946년 4월 처음 출간됐다. 올해가 어린왕자가 프랑스에서 태어난 지 60주년 되는 해이다.

프랑스는 요즘 어린왕자의 ‘환갑연’을 베푸느라 들떠 있다. 생텍쥐페리가 태어난 지 100년 되던 2000년과 미국 뉴욕에서 출간된 지 60년 되던 2003년에 축하 파티를 치렀던 미국이 입을 꼭 다물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어린왕자 공식 웹 사이트는 물론 이 책을 처음 프랑스에서 출간한 갈리마르출판사 웹 사이트에 가보면 ‘어린왕자, 생일 축하해’ ‘1946~2006’이라는 그림과 글이 팝업창으로 떠오른다. 촛불 여섯 개가 켜진 케이크 앞에서 웃고 있는 어린왕자 옆엔 소설 속에 등장한 사막여우도 앉아 있다. 프랑스의 시사주간지 ‘렉스프레스’ 웹사이트엔 어린왕자가 “양을 그려달라”고 비행기 조종사를 보채는 소설 앞 부분을 영화배우의 음성으로 들을 수 있도록 오디오 파일도 올라와 있다.

연극과 무용 등 어린왕자 공연도 올해 내내 계속된다. 오는 12월엔 구호단체인 ‘어린왕자’를 통해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모금하는 자리도 마련된다.

프랑스에선 요즘 ‘화가 생텍쥐페리’를 재조명해보자는 움직임도 한창이다. 갈리마르출판사는 그의 그림 500점을 담은 화집을 냈고 오는 9월엔 그의 미술 작품을 모은 특별 전시회까지 열린다.

▲ 프랑스 리옹에 있는 생텍쥐페리의 동상.
프랑스 사회에서 어린왕자 책 자체에 대한 인기는 다른 나라에 비해 떨어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프랑스인에게 이 책은 프랑스의 자부심처럼 통한다.

1999년 여론조사기관인 CSA가 프랑스 성인남녀 101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어린왕자는 45%의 지지를 받아 금세기 최고의 문학 작품으로 뽑혔다. 같은 해 일간지 르몽드와 대형서점인 프낙(FNAC)이 프랑스인 6000명에게 ‘20세기를 대표하는 작품 50권’을 물어봤을 때엔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1위)에 이어 어린왕자가 4위에 올랐다.

생텍쥐페리 얼굴은 유로화가 도입되기 전 프랑스의 50프랑짜리 지폐에도 새겨져 있었고 빅토르 위고, 에밀 졸라 같은 위인의 시신을 모셔놓은 파리의 팡테옹 신전에 가보면 첫 기둥에 생텍쥐페리에 대한 찬사가 적혀 있다.

프랑스인의 생텍쥐페리에 대한 사랑은 그의 탄생 100주년을 맞은 2000년 6월 극에 달했다. 그의 고향인 프랑스의 리옹시는 ‘어린왕자의 도시’로 새단장했다. 사톨라스 공항은 이때 리옹-생텍쥐페리 공항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100명의 비행사들은 전날 남프랑스에서 일몰을 기다리다가 일제히 이륙해 그의 소설 ‘야간비행(Vol de nuit)’에서처럼 날아서 리옹에 도착했다. 어린왕자란 이름의 열기구가 밤하늘로 날아오르고, 그의 비행 모습이 담긴 기록 필름이 대형 스크린에 투사되기도 했다.

프랑스가 이렇듯 국가적으로 어린왕자에 열광하는 데엔 이유가 있다. 어린왕자는 성경과 마르크스의 자본론 다음으로 많이 번역되고 읽힌 책으로 알려져 있다. 일간지 르 피가로는 최근 “어린왕자는 160개 언어로 번역됐고 프랑스에서만 1100만권이, 세계적으로 8000만권이 팔려나갔다”고 보도했다.

일본의 하코네에 있는 어린왕자 박물관엔 지난 5년간 100만명 넘는 관광객이 다녀갔다. 미국과 독일을 비롯해 국내에선 어린왕자가 오페라와 뮤지컬의 단골 메뉴로 선보인다. 어린왕자는 이제 인류 공동의 문화유산이자 세계인의 마음의 고전이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1970년대 초 처음 번역돼 소개된 뒤 100만부 이상 팔려나갔다. 현재 국립중앙도서관에 등록된 어린왕자 국내판은 100종이 넘는다. 교보문고 광화문점의 구매팀 관계자는 “책과 만화, DVD 등 모든 장르를 따져볼 때 절판된 것까지 합치면 어린왕자 관련한 품목이 350여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며 “순수 문학서적만도 60~70종”이라고 말했다.

어린왕자에 대해서라면 나이와 국적을 불문하고 저마다 할 말이 많다. “그 책을 읽고 있으면 왠지 내가 착한 사람이 된 것 같아요”(30대 초반 기자) “내가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고 그래서 내 인생과 사고가 어떻게 바뀌어가는지를, 너무 아름답게 표현했어요”(30대 중반 변호사) “자기가 길들이는 것에 책임져야 한다고 하는 부분, 섬뜩하더군요”(40대 초반 회사원)….

그렇다면 대체 어린왕자의 어떤 점이 세계인의 마음을 움직이는 걸까. 우선 줄거리를 보자. ‘소행성 B612호’라는 우주 속 작은 별에 장미 한 송이와 단둘이 살던 어린왕자는 장미가 까다롭게 구는 바람에 화가 나서 그녀를 버리고 혼자 우주 여행길에 나선다. 그러다가 지구라는 별의 사막에 추락한다. 마침 비행기 고장으로 사막에서 고생하던 비행사를 만나 대화가 시작된다. 그 뒤 여우도 만나고 뱀도 만나고 사업가, 허풍쟁이도 만난다. 그리곤 자신이 버린 그 장미야말로 자기가 책임져야 할 존재란 걸 깨닫고, 몸통은 사막에 버린 채 영혼만이 다시 외딴 별로 돌아간다는 단순한 줄거리다.

언뜻 보면 지극히 평범한 동화 같다. 하지만 어린왕자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은 다르다. 1970년대 후반 이 책을 처음 접했던 지금의 40대층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고 한다. 문체는 가볍고 삽화는 발랄한데 소설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우수, 슬픔, 권태에 가깝다. 단지 어른을 위한 동화라고 하기엔 모자랄 만큼 우리 인간사를 꼼꼼히 묘사해놓았다.

그래서 이 책은 아이들에겐 동화요, 어른들에겐 철학서가 된다. 한 비평가는 “동심이란 원래 사물을 보고 놀랄 수 있다는 것”이라며 “이런 감성을 잃어버린 어른에게 많은 걸 일깨워준다”고 말했다.

최근 출간된 ‘어린왕자의 수수께끼가 풀린다’(CHO 미디어간)에서 요시다 히로시는 “어린이에게는 수수께끼를 던지고 젊은이에게는 경고를 주며 어른에게는 반성을 촉구하는 책”이라며 “인생의 전기마다 반복해 읽어야 한다”고 했다.

최근 어린왕자 번역서를 출간한 도서출판 이레의 원미선 주간은 “어린왕자의 힘은 시대와 지역을 초월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다는 것에 있다”며 “중학생 때 읽고 대학생 때 읽고 나이가 들면서 읽을수록 새롭게 와 닿는 게 어린왕자”라고 했다.

지난 4월 25일 서울 창동에 있는 서울열린극장, 뮤지컬 ‘어린왕자’(서울시 뮤지컬단)가 공연되고 있었다. 평일 오후 관람석을 가득 채운 이들은 대부분 유치원생, 초등학생이었다. 금발머리를 하고 허리춤에 칼을 찬 어린왕자와 얼굴에 꽃잎을 단 장미가 무대 위를 뛰어다녔다.

“아저씨, 술은 왜 마시나요?” “잊기 위해 마셔” “뭘 잊으려는데요?” “부끄러움을 잊기 위해서”…. “이 세상에서 배우는 건 슬픔과 좌절뿐이라고요.” “예쁜 장미는 내 옆에 있었지만 왜 난 가시만 봤지? 이제 내가 당신을 그리워해요. 내가 당신에게 길들여졌어요.” “절망이란, 좌절이란 없는 거야. 슬픔이 있기에 기쁨도 있는 거야. 화가의 꿈을 버리고 슬퍼했지만 비행사가 되지 않았다면 이런 기분 몰랐을 거야.”

연출은 익살맞기만 한데 대목마다 생각할 거리를 던졌다. 옆자리에 있던 한 학부모는 “여고 시절에 읽을 땐 이렇게 어려운 얘기인 줄 몰랐다”며 “아이들이 저걸 어떤 식으로 이해할까 궁금하다”고 말했다.

어린왕자가 별을 여행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은 현실감 없이 잘난 척만 한다. 권위만 따지는 왕, 부끄러움을 잊기 위해 술 마시는 술꾼, 별을 사모으기만 하며 돈을 밝히는 사업가, 탐험은 않고 아는 척만 하는 지리학자…. 그 속에서 사랑, 고독, 죽음, 돈, 권력을 얘기한다.

인구에 회자되는 명대사도 어린왕자의 힘이다.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서로를 길들이는 거야”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같은 대목은 학창 시절 연애편지에 한번쯤 긁적거려 봤음직한 것이다.

▲ 영화 '어린왕자'.
글은 남의 얘기를 전하기보다 자기 얘기를 쓸 때 더 힘이 실리게 마련이다. 어린왕자는 사실 작가인 생텍쥐페리의 자서전이나 다름없다. 동심을 잃고 어른이 돼 버린 비행사도 그이고, 순수해서 무슨 말이든 솔직히 할 수 있는 어린왕자도 바로 그다.

‘모나리자’를 그린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예술가이자 수학자, 과학자, 역학자였듯이 생텍쥐페리는 기자, 작가, 비행사, 발명가였다. 그의 증조카인 나탈리 데 발리에르는 자신의 책에서 “조종사이자 시인이자 철학자이고 기자이면서 마법사, 발명가였던 할아버지는 문학학교에 다닌 적이 없다”며 “그의 글쓰기가 독창적인 것은 풍성한 이야기로 가득 찬 자신의 삶을 투영시켰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생텍쥐페리’를 주제로 프랑스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던 단국대 불어불문학과의 정소성 교수는 “어린왕자가 우주를 날아다니는 것은 비행사였던 생텍쥐페리만이 쓸 수 있는 것”이라며 “불행한 결혼 생활을 했고 위기 상황에 있던 조국에 대한 불타는 애국심을 가진 사람의 혼이 투영된 자기 기록”이라고 말했다.

작가의 개인 생활이나 역사적 상황을 고려하면 책 속의 등장 인물은 전혀 다른 식으로 해석될 수 있다. 어린왕자가 버렸던 장미꽃은 작가의 부인을 뜻할 수도, 생텍쥐페리가 미국으로 망명한 뒤의 조국 프랑스을 뜻할 수도 있다. 이 모든 장치가 어린왕자를 지금껏 우리 곁에 살아 움직이게 하는 힘이 된다.

“내가 죽은 것처럼 보일 거야. 하지만 그게 아니야.” 프랑스 리옹의 벨쿠리 광장에 있는 생텍쥐페리의 동상 앞엔 이런 글귀가 적혀 있다. 확인되지 않은 죽음 덕분에 영생을 누리고 있으니, 이 순간 등에 불을 붙여 별빛으로 우리에게 ‘안녕~’ 할는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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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모자 아저씨의 파란 집 세상을 넓게 보는 그림책 1
안느 에르보 지음, 양진희 옮김 / 함께자람(교학사)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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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란?  우리는 이것을 찾으려 살고 있지만 이것을 잊고 살기가 십상이다. 고민하고 갈등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남의 일에 간섭하고 또 후회한다. 이런 감정의 잦은 소용돌이는 비단 어른들만이 겪는 게 아니라 아이들도 작든 크든 이런 감정들로 속 끓이며 산다고 여겨진다. 이 책의 원제는 <파란 집>이다. 벨기에 그림책작가 안느 에르보는 상당히 철학적인 이야기를 선명한 그림과 시적인 글로 형상화하였다.

빨간 모자 아저씨는 나그네다.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한 곳에 붙박혀 사는 것 같지만 우리는 너도나도 나그네로 태어나 나그네로 살다 간다. 마음도 정신도 어느 한 곳에 있지 못하고 흔들리고 유랑하고 그러면서도 정착을 그리워한다. "바로 여기야!" 로 시작하는 첫 문장이 우리의 그런 바람을 간단히 말해준다.

바로 여기라고 생각한 곳에 나그네는 집을 짓는다. 파란 하늘 아래, 푸른 바다가 큰 파도 소리를 내는 곳, 그곳에 붉은 해가 쨍쨍하고 날벌레들이 작은 날개를 파닥이는 소리뿐이다. 나그네는 밤을 기다리고 낮을 기다리고 다시 밤을 기다린다. 그리고 비를 기다리고 하늘을 사랑한다. 나그네가 짓는 집은 대단한 재료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돌과 자갈과 조약돌을 쌓고 포개어 지은 후 하얀색 칠을 하는 것으로 끝난다.

하지만 그의 집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의 집을 두고 비웃는 깃털뭉치새들의 코웃음 때문에 나그네는 괴로워한다. 파란색 칠을 해보기도 하고 새 그림을 붙여 집을 멋지게 보이게도 하지만 번번이 놀림만 당한다. 나그네는 점점 이들의 비난이나 조롱을 허허롭게 넘기는 지혜를 배운다. 자신만의 생각이 있고 그것이 소중함을 느낀다. 누구나 생각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고민하는 나그네가 배움을 얻는 대상은 하늘과 바다다. 넓고 푸른 바다는 늘 나그네를 지켜보고 소리없이 웃어준다. 믿고 바라보며 그의 행복을 기원하는 존재다. 드디어 나그네가 하늘을 배경으로 그곳에 높은 지붕의 집을 파랗게 그릴 때 새들은 아무도 놀리지 못한다. 나그네만의 집이 완성되었고 그 집은 자신만의 가치로운 행복이 스며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행복을 찾아 방랑하는 나그네다.

지금 여기가 그 행복의 보금자리임을 또 놓치고 산다. 지금 여기에 하늘을 지붕으로 하는 파란 집 한 채를 지어보자. 행복이란 남들의 기준과 비례하지 않고 세상의 잣대와 비견되지 않음을 이 그림책은 조용히 속삭여준다. 세상의 화려함에 아닌 자연속에서의 소박한 행복, 나만의 작은 만족이 주는 행복, 그러면서도 진하고 기운 찬 '파란' 색의 행복이 멋진 일러스트레이션으로 펼쳐진다.

2학년 아이들과 이 그림책을 함께 보며, 아이들이 끌어내는 생각에 놀랐다. "깃털뭉치새들이 놀리는 말에 신경쓰지 말고 아저씨 생각대로 믿고 사세요." 라고 글을 쓴 아이도 있었고 집짓기 대회에 나가면 1등 하겠다고 쓴 아이도 있었다. 그리고 바다가 친구하자고 부르는 것 같다고 쓴 아이도 있었다. 아이들은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본능적인 감각으로 받아들이고 느끼고 내뱉는다. 아이, 어른 모두에게 나름의 생각의 깊이를 줄 수 있는 그림책이다. 빨간모자 아저씨가 지은 파란 집만큼 커다란 판형의 그림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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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이름은김삼순 2006-05-18 1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의 글을 보고 나니 저도 이 책을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우리는 행복을 찾아 방랑하는 나그네다,,이 한줄이 가슴이 참 와닿아요,,

비로그인 2006-05-19 0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