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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모자 아저씨의 파란 집 ㅣ 세상을 넓게 보는 그림책 1
안느 에르보 지음, 양진희 옮김 / 함께자람(교학사) / 2003년 3월
평점 :
행복이란? 우리는 이것을 찾으려 살고 있지만 이것을 잊고 살기가 십상이다. 고민하고 갈등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남의 일에 간섭하고 또 후회한다. 이런 감정의 잦은 소용돌이는 비단 어른들만이 겪는 게 아니라 아이들도 작든 크든 이런 감정들로 속 끓이며 산다고 여겨진다. 이 책의 원제는 <파란 집>이다. 벨기에 그림책작가 안느 에르보는 상당히 철학적인 이야기를 선명한 그림과 시적인 글로 형상화하였다.
빨간 모자 아저씨는 나그네다.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한 곳에 붙박혀 사는 것 같지만 우리는 너도나도 나그네로 태어나 나그네로 살다 간다. 마음도 정신도 어느 한 곳에 있지 못하고 흔들리고 유랑하고 그러면서도 정착을 그리워한다. "바로 여기야!" 로 시작하는 첫 문장이 우리의 그런 바람을 간단히 말해준다.
바로 여기라고 생각한 곳에 나그네는 집을 짓는다. 파란 하늘 아래, 푸른 바다가 큰 파도 소리를 내는 곳, 그곳에 붉은 해가 쨍쨍하고 날벌레들이 작은 날개를 파닥이는 소리뿐이다. 나그네는 밤을 기다리고 낮을 기다리고 다시 밤을 기다린다. 그리고 비를 기다리고 하늘을 사랑한다. 나그네가 짓는 집은 대단한 재료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돌과 자갈과 조약돌을 쌓고 포개어 지은 후 하얀색 칠을 하는 것으로 끝난다.
하지만 그의 집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의 집을 두고 비웃는 깃털뭉치새들의 코웃음 때문에 나그네는 괴로워한다. 파란색 칠을 해보기도 하고 새 그림을 붙여 집을 멋지게 보이게도 하지만 번번이 놀림만 당한다. 나그네는 점점 이들의 비난이나 조롱을 허허롭게 넘기는 지혜를 배운다. 자신만의 생각이 있고 그것이 소중함을 느낀다. 누구나 생각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고민하는 나그네가 배움을 얻는 대상은 하늘과 바다다. 넓고 푸른 바다는 늘 나그네를 지켜보고 소리없이 웃어준다. 믿고 바라보며 그의 행복을 기원하는 존재다. 드디어 나그네가 하늘을 배경으로 그곳에 높은 지붕의 집을 파랗게 그릴 때 새들은 아무도 놀리지 못한다. 나그네만의 집이 완성되었고 그 집은 자신만의 가치로운 행복이 스며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행복을 찾아 방랑하는 나그네다.
지금 여기가 그 행복의 보금자리임을 또 놓치고 산다. 지금 여기에 하늘을 지붕으로 하는 파란 집 한 채를 지어보자. 행복이란 남들의 기준과 비례하지 않고 세상의 잣대와 비견되지 않음을 이 그림책은 조용히 속삭여준다. 세상의 화려함에 아닌 자연속에서의 소박한 행복, 나만의 작은 만족이 주는 행복, 그러면서도 진하고 기운 찬 '파란' 색의 행복이 멋진 일러스트레이션으로 펼쳐진다.
2학년 아이들과 이 그림책을 함께 보며, 아이들이 끌어내는 생각에 놀랐다. "깃털뭉치새들이 놀리는 말에 신경쓰지 말고 아저씨 생각대로 믿고 사세요." 라고 글을 쓴 아이도 있었고 집짓기 대회에 나가면 1등 하겠다고 쓴 아이도 있었다. 그리고 바다가 친구하자고 부르는 것 같다고 쓴 아이도 있었다. 아이들은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본능적인 감각으로 받아들이고 느끼고 내뱉는다. 아이, 어른 모두에게 나름의 생각의 깊이를 줄 수 있는 그림책이다. 빨간모자 아저씨가 지은 파란 집만큼 커다란 판형의 그림책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