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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왕자’의 60번째 생일]세계가 감동한 ‘늙지 않는 고전’

1935년 ‘파리 수아르’ 신문의 모스크바 특파원인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Antoine de Saint-Exupery)는 모스크바행 열차에 올랐다. 앞자리엔 엄마의 품에 안긴 아기가 입가에 미소를 띠고 자고 있었다. 그 뒤 생텍쥐페리에겐 작은 사내아이를 낙서하듯 그리는 버릇이 생겼다.

‘인간의 대지(Terre des hommes)’로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상을 받은 뒤 1940년 미국으로 건너가 ‘전투조종사(Pilote de guerre)’를 발표한 뒤의 에피소드. 하루는 뉴욕의 한 식당에 갔다가 테이블보에 또 낙서를 했다. 바람에 휘날리는 금빛 스카프를 두른 사내아이였다. 이를 본 미국인 편집장이 “그 아이를 주인공으로 동화책을 써보라”고 제안했다. ‘어린왕자(Le Petit Prince)’는 1943년 4월 이렇게 처음으로 세상 빛을 보았다.

비행사이기도 했던 그는 “이제 작가 일에만 충실하라”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정찰 비행에 나섰다. 그리고는 코르시카 섬에서 지중해 상공으로 출격을 나간 뒤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1944년 7월 31일이었다. 자신이 떠나온 별로 되돌아갔다는 소설 속의 어린왕자처럼, 그렇게 그는 하늘에 박히듯 사라졌다.

어린왕자 초판은 1943년 미국 뉴욕에서 나왔지만 작가의 모국인 프랑스에선 1946년 4월 처음 출간됐다. 올해가 어린왕자가 프랑스에서 태어난 지 60주년 되는 해이다.

프랑스는 요즘 어린왕자의 ‘환갑연’을 베푸느라 들떠 있다. 생텍쥐페리가 태어난 지 100년 되던 2000년과 미국 뉴욕에서 출간된 지 60년 되던 2003년에 축하 파티를 치렀던 미국이 입을 꼭 다물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어린왕자 공식 웹 사이트는 물론 이 책을 처음 프랑스에서 출간한 갈리마르출판사 웹 사이트에 가보면 ‘어린왕자, 생일 축하해’ ‘1946~2006’이라는 그림과 글이 팝업창으로 떠오른다. 촛불 여섯 개가 켜진 케이크 앞에서 웃고 있는 어린왕자 옆엔 소설 속에 등장한 사막여우도 앉아 있다. 프랑스의 시사주간지 ‘렉스프레스’ 웹사이트엔 어린왕자가 “양을 그려달라”고 비행기 조종사를 보채는 소설 앞 부분을 영화배우의 음성으로 들을 수 있도록 오디오 파일도 올라와 있다.

연극과 무용 등 어린왕자 공연도 올해 내내 계속된다. 오는 12월엔 구호단체인 ‘어린왕자’를 통해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모금하는 자리도 마련된다.

프랑스에선 요즘 ‘화가 생텍쥐페리’를 재조명해보자는 움직임도 한창이다. 갈리마르출판사는 그의 그림 500점을 담은 화집을 냈고 오는 9월엔 그의 미술 작품을 모은 특별 전시회까지 열린다.

▲ 프랑스 리옹에 있는 생텍쥐페리의 동상.
프랑스 사회에서 어린왕자 책 자체에 대한 인기는 다른 나라에 비해 떨어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프랑스인에게 이 책은 프랑스의 자부심처럼 통한다.

1999년 여론조사기관인 CSA가 프랑스 성인남녀 101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어린왕자는 45%의 지지를 받아 금세기 최고의 문학 작품으로 뽑혔다. 같은 해 일간지 르몽드와 대형서점인 프낙(FNAC)이 프랑스인 6000명에게 ‘20세기를 대표하는 작품 50권’을 물어봤을 때엔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1위)에 이어 어린왕자가 4위에 올랐다.

생텍쥐페리 얼굴은 유로화가 도입되기 전 프랑스의 50프랑짜리 지폐에도 새겨져 있었고 빅토르 위고, 에밀 졸라 같은 위인의 시신을 모셔놓은 파리의 팡테옹 신전에 가보면 첫 기둥에 생텍쥐페리에 대한 찬사가 적혀 있다.

프랑스인의 생텍쥐페리에 대한 사랑은 그의 탄생 100주년을 맞은 2000년 6월 극에 달했다. 그의 고향인 프랑스의 리옹시는 ‘어린왕자의 도시’로 새단장했다. 사톨라스 공항은 이때 리옹-생텍쥐페리 공항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100명의 비행사들은 전날 남프랑스에서 일몰을 기다리다가 일제히 이륙해 그의 소설 ‘야간비행(Vol de nuit)’에서처럼 날아서 리옹에 도착했다. 어린왕자란 이름의 열기구가 밤하늘로 날아오르고, 그의 비행 모습이 담긴 기록 필름이 대형 스크린에 투사되기도 했다.

프랑스가 이렇듯 국가적으로 어린왕자에 열광하는 데엔 이유가 있다. 어린왕자는 성경과 마르크스의 자본론 다음으로 많이 번역되고 읽힌 책으로 알려져 있다. 일간지 르 피가로는 최근 “어린왕자는 160개 언어로 번역됐고 프랑스에서만 1100만권이, 세계적으로 8000만권이 팔려나갔다”고 보도했다.

일본의 하코네에 있는 어린왕자 박물관엔 지난 5년간 100만명 넘는 관광객이 다녀갔다. 미국과 독일을 비롯해 국내에선 어린왕자가 오페라와 뮤지컬의 단골 메뉴로 선보인다. 어린왕자는 이제 인류 공동의 문화유산이자 세계인의 마음의 고전이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1970년대 초 처음 번역돼 소개된 뒤 100만부 이상 팔려나갔다. 현재 국립중앙도서관에 등록된 어린왕자 국내판은 100종이 넘는다. 교보문고 광화문점의 구매팀 관계자는 “책과 만화, DVD 등 모든 장르를 따져볼 때 절판된 것까지 합치면 어린왕자 관련한 품목이 350여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며 “순수 문학서적만도 60~70종”이라고 말했다.

어린왕자에 대해서라면 나이와 국적을 불문하고 저마다 할 말이 많다. “그 책을 읽고 있으면 왠지 내가 착한 사람이 된 것 같아요”(30대 초반 기자) “내가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고 그래서 내 인생과 사고가 어떻게 바뀌어가는지를, 너무 아름답게 표현했어요”(30대 중반 변호사) “자기가 길들이는 것에 책임져야 한다고 하는 부분, 섬뜩하더군요”(40대 초반 회사원)….

그렇다면 대체 어린왕자의 어떤 점이 세계인의 마음을 움직이는 걸까. 우선 줄거리를 보자. ‘소행성 B612호’라는 우주 속 작은 별에 장미 한 송이와 단둘이 살던 어린왕자는 장미가 까다롭게 구는 바람에 화가 나서 그녀를 버리고 혼자 우주 여행길에 나선다. 그러다가 지구라는 별의 사막에 추락한다. 마침 비행기 고장으로 사막에서 고생하던 비행사를 만나 대화가 시작된다. 그 뒤 여우도 만나고 뱀도 만나고 사업가, 허풍쟁이도 만난다. 그리곤 자신이 버린 그 장미야말로 자기가 책임져야 할 존재란 걸 깨닫고, 몸통은 사막에 버린 채 영혼만이 다시 외딴 별로 돌아간다는 단순한 줄거리다.

언뜻 보면 지극히 평범한 동화 같다. 하지만 어린왕자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은 다르다. 1970년대 후반 이 책을 처음 접했던 지금의 40대층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고 한다. 문체는 가볍고 삽화는 발랄한데 소설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우수, 슬픔, 권태에 가깝다. 단지 어른을 위한 동화라고 하기엔 모자랄 만큼 우리 인간사를 꼼꼼히 묘사해놓았다.

그래서 이 책은 아이들에겐 동화요, 어른들에겐 철학서가 된다. 한 비평가는 “동심이란 원래 사물을 보고 놀랄 수 있다는 것”이라며 “이런 감성을 잃어버린 어른에게 많은 걸 일깨워준다”고 말했다.

최근 출간된 ‘어린왕자의 수수께끼가 풀린다’(CHO 미디어간)에서 요시다 히로시는 “어린이에게는 수수께끼를 던지고 젊은이에게는 경고를 주며 어른에게는 반성을 촉구하는 책”이라며 “인생의 전기마다 반복해 읽어야 한다”고 했다.

최근 어린왕자 번역서를 출간한 도서출판 이레의 원미선 주간은 “어린왕자의 힘은 시대와 지역을 초월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다는 것에 있다”며 “중학생 때 읽고 대학생 때 읽고 나이가 들면서 읽을수록 새롭게 와 닿는 게 어린왕자”라고 했다.

지난 4월 25일 서울 창동에 있는 서울열린극장, 뮤지컬 ‘어린왕자’(서울시 뮤지컬단)가 공연되고 있었다. 평일 오후 관람석을 가득 채운 이들은 대부분 유치원생, 초등학생이었다. 금발머리를 하고 허리춤에 칼을 찬 어린왕자와 얼굴에 꽃잎을 단 장미가 무대 위를 뛰어다녔다.

“아저씨, 술은 왜 마시나요?” “잊기 위해 마셔” “뭘 잊으려는데요?” “부끄러움을 잊기 위해서”…. “이 세상에서 배우는 건 슬픔과 좌절뿐이라고요.” “예쁜 장미는 내 옆에 있었지만 왜 난 가시만 봤지? 이제 내가 당신을 그리워해요. 내가 당신에게 길들여졌어요.” “절망이란, 좌절이란 없는 거야. 슬픔이 있기에 기쁨도 있는 거야. 화가의 꿈을 버리고 슬퍼했지만 비행사가 되지 않았다면 이런 기분 몰랐을 거야.”

연출은 익살맞기만 한데 대목마다 생각할 거리를 던졌다. 옆자리에 있던 한 학부모는 “여고 시절에 읽을 땐 이렇게 어려운 얘기인 줄 몰랐다”며 “아이들이 저걸 어떤 식으로 이해할까 궁금하다”고 말했다.

어린왕자가 별을 여행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은 현실감 없이 잘난 척만 한다. 권위만 따지는 왕, 부끄러움을 잊기 위해 술 마시는 술꾼, 별을 사모으기만 하며 돈을 밝히는 사업가, 탐험은 않고 아는 척만 하는 지리학자…. 그 속에서 사랑, 고독, 죽음, 돈, 권력을 얘기한다.

인구에 회자되는 명대사도 어린왕자의 힘이다.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서로를 길들이는 거야”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같은 대목은 학창 시절 연애편지에 한번쯤 긁적거려 봤음직한 것이다.

▲ 영화 '어린왕자'.
글은 남의 얘기를 전하기보다 자기 얘기를 쓸 때 더 힘이 실리게 마련이다. 어린왕자는 사실 작가인 생텍쥐페리의 자서전이나 다름없다. 동심을 잃고 어른이 돼 버린 비행사도 그이고, 순수해서 무슨 말이든 솔직히 할 수 있는 어린왕자도 바로 그다.

‘모나리자’를 그린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예술가이자 수학자, 과학자, 역학자였듯이 생텍쥐페리는 기자, 작가, 비행사, 발명가였다. 그의 증조카인 나탈리 데 발리에르는 자신의 책에서 “조종사이자 시인이자 철학자이고 기자이면서 마법사, 발명가였던 할아버지는 문학학교에 다닌 적이 없다”며 “그의 글쓰기가 독창적인 것은 풍성한 이야기로 가득 찬 자신의 삶을 투영시켰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생텍쥐페리’를 주제로 프랑스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던 단국대 불어불문학과의 정소성 교수는 “어린왕자가 우주를 날아다니는 것은 비행사였던 생텍쥐페리만이 쓸 수 있는 것”이라며 “불행한 결혼 생활을 했고 위기 상황에 있던 조국에 대한 불타는 애국심을 가진 사람의 혼이 투영된 자기 기록”이라고 말했다.

작가의 개인 생활이나 역사적 상황을 고려하면 책 속의 등장 인물은 전혀 다른 식으로 해석될 수 있다. 어린왕자가 버렸던 장미꽃은 작가의 부인을 뜻할 수도, 생텍쥐페리가 미국으로 망명한 뒤의 조국 프랑스을 뜻할 수도 있다. 이 모든 장치가 어린왕자를 지금껏 우리 곁에 살아 움직이게 하는 힘이 된다.

“내가 죽은 것처럼 보일 거야. 하지만 그게 아니야.” 프랑스 리옹의 벨쿠리 광장에 있는 생텍쥐페리의 동상 앞엔 이런 글귀가 적혀 있다. 확인되지 않은 죽음 덕분에 영생을 누리고 있으니, 이 순간 등에 불을 붙여 별빛으로 우리에게 ‘안녕~’ 할는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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