퀼트 할머니의 선물
게일 드 마켄 그림, 제프 브럼보 글, 양혜원 옮김 / 홍성사 / 2002년 11월
평점 :
품절


와, 이 그림책! 일러스트레이션에 완전히 매혹되었다. 한편의 아름다운 이야기못지않게 볼거리 또한 풍성하고 아름다워 눈을 어디에 둘지 모를 정도다. 꽃과 나비가 현란한 자태를 뽐내는 장면과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어두운 곳의 장면이 대조적이라 더욱 눈길을 끈다. 또한 욕심많은 임금의 탐욕스러운 얼굴과 훗날의 행복하고 넉넉한 표정이 극적으로 대조를 이루어 임금의 마음이 변해가는 과정을 읽어낼 수 있다.

퀼트는 못 쓰는 천조각을 일일이 손바느질로 이어붙여 탄생된 하나의 작품이다. 물론 섬유산업의 발달로 다양한 문양의 퀼트작품이 나오고 그 용도도 다양해졌지만 역시 퀼트는 자투리천으로 만들어야 일품이다. 퀼트를 한동안 배운 친구 말이, 눈도 아프고 어깨도 아프고 꽤 힘든 일이란다. 바느질 한 땀이라도 어긋나지 않게 시침핀으로 고정을 해가며 일일이 손으로 정성을 들여야하는 일이다.

이런 일을 하는 할머니가 옛적에 살았단다. 할머니의 퀼트는 세상에 둘도 없는 예술품이다. 하지만 원칙이 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만 나눠주는 할머니의 퀼트가 욕심 많은 임금에게 바쳐질리가 없다. 임금은 할머니에게 고난을 준다. 자신이 손에 쥐고 싶은 것에 안달이 난 임금은 할머니에게 견디기 힘든 벌을 내리지만 번번이 참패한다. 할머니의 한결같은 친절과 나눔의 심성이 하찮아보이는 동물들의 마음까지 녹인다. 사랑의 선물을 받은 곰과 참새들이 할머니의 생명을 구해주고 임금은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할머니와 거래를 한다.

임금이 가진 보물들을 사람들에게 하나씩 나누어줄 때마다 퀼트를 하나씩 이어가겠다는 약속이다. 할머니는 받기만 하려는 임금에게 나누어주는 행복의 맛을 느끼게 해주고 싶은 것 같다. 임금은 점점 이 매력에 빠져든다. 처음엔 아깝다고 여겼던 행동이 점점 자신에게 기쁨을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 임금은 이제 이 나라에서 그치지 않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자신이 가진 보물들을 모두 나누어준다.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누어주는 건 물건만이 아니다. 병상에 있는 환자를 위해 침대맡에 앉아 책도 읽어주고 싸우고 있는 사람들을 중재하기도 한다.

임금은 이제 누더기를 걸치고 발가락이 다 보이게 떨어진 신발을 신고 돌아왔다. 그와 동시에 임금과 약속한 퀼트는 완성이 되었고 할머니는 커다란 퀼트 이불로 임금의 어깨를 감싸준다. 욕심이 더덕더덕 붙어있던 예전의 임금님 얼굴은 간데 없고 느긋하고 행복해보이는 임금의 얼굴이 보는 사람의 마음까지 환하게 해 준다. 가진 건 아무것도 없지만 나누어줄 때의 행복했던 기억을 많이 가지고 있는 임금은 세상에서 제일 가는 부자라고 자부한다.

이 그림책은 그림 구석구석에 돋보기를 대고 들여다보듯 하면 정말 많은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다. 전체적인 색감이 주는 풍부함은 내용의 풍부함 못지않다. 화려하고 섬세하며 밝고 따스하다. 마치 작가가 그려내고 싶은 희망의 세상이 퀼트로 펼쳐지는 듯하다. 으르릉대던 곰에게, 베고 잘 수 있는 베개 하나 없이 사는 너이니 그렇게 마음이 거칠어질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하며 폭신한 베개를 만들어주는 할머니의 마음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무척 풍요로운 느낌의 일러스트레이션이다.

돌아올 임금을 위해 만든 퀼트 조각을 하나하나 보면 별별 것이 다 들어가있다. 왕의 파란 반지(아마도 사파이어?)를 비롯해서 세상의 모든 소소한 것들이 다 들어가있다. 할머니의 퀼트는 우리가 만들어가는 세상의 은유다. 퀼트에 쓰이는 천조각처럼 한 사람 한 사람의 작고 미흡한 마음이 모이고 모여서 아름다운 세상이 만들어진다는 희망의 바느질이다. 내가 바라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내가 내어놓는 것도 있어야한다는 것도 배울 수 있다. 마음의 부자는 내어주는 게 많은 사람일 거라 생각한다. 임금이 가진 것을 나누어 주러 온세계를 두루 돌아다녔다는 점도 아이들과 짚고 넘어가면 좋겠다.

2학년 아이들과 함께 보았다. 아이들과 함께 그림조각들을 자세히 찾아보며 그림만 다시 감상해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다. 두고두고 보고 싶은 그림책이다. 책의 앞뒤 속지에 할머니의 퀼트작품들이 전시되어있다. 작품마다 이름지어놓은 제목도 의미심장하다. '진정한 사랑의 매듭'이 기억에 남는다. 작은 종이에 아이들의 퀼트를 꾸며보고 제목을 달아보라고 하니 상상력을 발휘하여 멋진 작품을 그려내기도 했다. 재미있게도 월드컵을 주제로 꾸민 아이도 있어 함께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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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포터7 2006-06-22 1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그림이 좋은책 참 좋아라 합니다.. 특히 퀼트는 색감도 독특하구..참 보고싶네요.

또또유스또 2006-06-22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쩜.. 이리도 아름다운 리뷰를 쓰시는지요..
투명한 수채화 같은 느낌입니다..
이 동화책을 투명한 수채 물감으로 그리듯 쓰시니 어찌 아니 볼수 있답니까...
바로 담습니다...

프레이야 2006-06-23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리포터님 그림이 좋은 책이란 반하기 마련이죠. 좋은 하루 시작하세요~

또또님, 님의 표현이 더 멋있네요. 감사합니다.^^

인터라겐 2006-06-23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에 오면서 느끼는 행복중의 하나가 바로 이런 것 같아요..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을 만날 수 있는 다리가 든든하다는 것이요.. 저도 바로 담아요..^^

씩씩하니 2006-06-23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서관에 있네요,,,빌려가서 아이들과 읽어주는 착한 엄마 노릇 좀 해야겠어요,.오늘~혜경님..책을 들여다보시는 알찬 시선에 감탄해요,,,어쩜 이렇게 세심하게 들여다보실 수 있는지...전 언제 이런 경지에 도달할 수 있대요????
 
 전출처 : 알라딘도서팀 > [알립니다] 어린이책 '구석구석 재미있는 세상' 서평단 모집합니다

안녕하세요 ^^

절찬리 판매중인 어린이책 <구석구석 재미있는 세상>에 서평 써주실 분을 찾습니다.
1, 2, 3, 4 권 각각 10 분씩, 총 40 분입니다 (확률이 높겠지요? 많이 많이 신청해주세요 ^^)

책내용이 궁금하시면 아래 링크를 참고하세요.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1780164

유치원생부터 초등저학년까지 폭넓게 볼 수 있는 책입니다.
6월 22일 목요일 오후 5시까지 댓글을 통해 신청해주시면 됩니다. 서평은 도서를 받으신 후 15일 이내에 써주시면 됩니다.

한 분이 한 번씩만 신청해주시면 좋겠구요, 관련하여 궁금한 사항 있으시면 알라딘 편집팀 이예린, yerin@aladin.co.kr 로 연락주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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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06-23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권에 모집되었다. 받고 15일 이내 리뷰마감..

치유 2006-06-23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뽑히신것 보면서 괜히 제가 기뻤어요..축하드려요..

프레이야 2006-06-23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꽃님 호호호.. 옛날사람들의 생활편이네요. 금상첨화네요^^

프레이야 2006-07-04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7월 15일까지 리뷰 올릴것
 
무서록 범우 한국 문예 신서 13
이태준 지음 / 범우사 / 1999년 12월
품절


사람의 울음소리... 새들의 그것보다 얼마나 불유쾌한 소리인가!

죽음을 저다지 치사스럽게 울며불며 덤비는 것도 아마 사람밖에 없을 것이다. 죽음의 주위는 좀더 경건하였으면 싶었다.-18쪽

산, 그는 산에만 있지 않았다. 평지에도 도시에도 얼마든지 있었다. 나를 가끔 외롭게 하고 슬프게 하고 힘들게 하는 모든 것은 일종의 산이었다.-22쪽

자연은 신이다. 이름 없는 한 포기 작은 잡초에 이르기까지 신의 창조가 아닌 것이 없다. 신의 작품으로서 우리 인간이 손을 대지 않으면 안 될 만한 그러한 졸작, 그러한 미완품이 있을까?-25쪽

파초는 언제 보아도 좋은 화초다. 폭염 아래서도 그의 푸르고 싱그러운 그늘은, 눈을 씻어줌이 물보다 더 서늘한 것이며 비오는 날 다른 화초들은 입을 다문 듯 우울할 때 파초만은 은은히 빗방울을 퉁기어 주렴안에 누웠으되 듣는 이의 마음에까지 비를 뿌리고도 남는다. 가슴에 비가 뿌리되 옷은 젖지 않은 그 서늘함, 파초를 가꾸는 이 비를 기다림이 여기 있을 것이다.-28쪽

차라리 눈보다 입보다 더 몇 배 고마운 것이 발이다. 어떤 때는 돌뿌리를 차고, 어떤 때는 가시나 그루에 찔리고, 찬물에, 풀숲에, 늘 먼저 들어서며 뱀에게도 먼저 물리는 것이 저 발이 아닌가!-32쪽

생각하면 돌은 동양인의 놀라운 발견이다. 돌을 그리고 돌을 바라보고 이름까지 즐겨 돌로 부른 동양 예술가들의 심경은, 찰나적인 육체에 붙들린 서양인의 그것에 비겨 얼마나 차이 있는 존경함인가!-35쪽

그러나 그도 잠시 꺼지는 석양일 뿐 아무것도 아니다. 고요히 바라보면 지나가는 건 그저 바람이요 구름뿐이다. 있긴 있으면서 아무것도 없는 것, 그런 것은 생각하면 이런 옛 성만도 아닐 것이다.-42쪽

가을꽃들은 아지랑이와 새소리를 모른다. 찬 달빛과 늙은 벌레 소리에 피고 지는 것이 그들의 슬픔이요 또한 명예이다.-45쪽

인생의 외로움은 아내가 없는 데, 아기가 없는 데 그치는 것일까. 아내와 아기가 옆에 있되 멀리 친구를 생각하는 것도 인생의 외로움이요, 오래 그리던 친구를 만났으되 그 친구가 도리어 귀찮음도 인생의 외로움일 것이다.-49쪽

책은 세수를 할 줄 모르는 미인이다.

책에만은 나는 봉건적인 여성관이다. ...... 덮어놓으면 떠들리거나 구김살이 잡히지 않고 이내 고요히 제 태로 돌아가는 인종忍從이 있기를 바란다고 할까.-62쪽

먼저 자신을 알면 모든 일에 있어 현명한 일이다. 작품은 개인의 뿌리에서 피는 꽃이다. 평론가는 여론에 무서움을 탈 경우가 많으리라. 그러나 작가에겐 여론이 어쩌지 못할 것이다. 자기를 한번 정확하게 진단한 이상은 자기의 것을 자기의 투로 써서 천하에 떳떳이 내어놓은 것이다.-65쪽

내가 불안을 갖는 평자는 작품을 가능성이 무한한 감성으로 느끼려 하지 않고 다만 고정된 개념만으로 정리하는 평자다.

작가의 욕심으로는, 평론가는,
첫째 창작에 다소 경험자일 것,
둘째 인생관에 남의 것도 존중하는 신사일 것,
셋째 개념보다는 감성에 천재이기를 바라는 것이다.-70쪽

감식은 모든 비평의 기초일 것이다. 문학도 감식에 어두워선 작자와 작품의 정체를 포착치 못할 것이다. 비평가가 읽기만 하고 얻기 쉬운 것은 애매한 인상일 것이다. 한번 그 작품을 모사, 베껴본다면 그 작품은 그 평가評家에게 털끝만한 무엇도 가리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다.

모방에 이처럼 미덕의 일면이 있음은 놀라운 일이다.-94쪽

잃어버리면 울지 않고는, 몸부림을 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그런 작품을 써야 옳을 것이다.-105쪽

'내 문장'을 쓰기보다는 될 수만 있다면 '그 작품의 문장'을 써보고 싶다. 우선은 '그 장면의 문장' 부터 써보려한다.

아마 조선문단 전체로도 이대로 3년이면 3년을 나가는 것보다는 지금의 작품만 가지고라도 3년 동안 퇴고를 해놓는다면 그냥 나간 3년보다 훨씬 수준 높은 문단이 될 것이라 믿는다.-109-110쪽

그러다가도 그 소낙비 같은 변조와 정열! 더구나 그 열이 또한 급행열차와 같이 지나가버린 뒤의 밤중의 적막, 연정처럼 비등沸騰하고 연정처럼 냉각하고 연정처럼 고독한 것이 '미스 말라리아'다! 그의 스피드, 그 스피드로 냉각지대와 염열지대의 비행. 그리고 나중의 빈 그라운드와도 같은 적막, 이것은 병을 앓았으되 한 연정과 한 스포츠를 게임하고 난 것과도 흡사하다.-119쪽

매화란 고운 꽃이기보다 맑은 꽃이요 달기보다 매운 꽃이라 그러므로 색 있는 것이 그의 자랑이 못 되는 것이요 복엽이 그에게는 무거운 옷이라 단엽백매를 찾으러 꽃이 피기 전부터 다닌 것이 도리어 탈이었던지,......

절개란 무릇 견디기 어려움에서 나고 차고 가난한 데가 그의 산지라 인정이니 생활이니 복이니 함도 진짜일진댄 또한 고절의 방역을 벗어나 찾기는 어려울 줄 알러라.-138쪽

자동차를 몰아 '호텔'로 가듯 그것이 아니라 죽장망해竹杖芒鞋로 산사를 찾아가는 심경이 아니고는 고전은 언제든지 써늘한 형해일 뿐, 그의 따스한 심장이 뛰어주지 않을 것이다. 완전히 느끼기 전에 해석부터 가지려 함은 고전에의 틈입자임을 면하지 못하리니 고전의 고전다운 맛은 알 바이 아니요 먼저 느낄 바로라 생각한다.-142쪽

시대가 오래다 해서만 귀하고 기교와 정력이 들었다해서만 완상할 것은 못 된다. 옛물건의 옛물건다운 것은 그 옛사람들과 함께 생활한 자취를 지녔음에 그 덕윤이 있는 것이다.

고완 취미를 돈 많은 사람이나 은자의 도일거리로만 보는 것은 속단이다. 금력으로 수집욕을 채우는 것은 오락에 불과한 것이요, 또 제 눈이 불급하는 것을 너무 탐내는 것도 허영이다. 직업적이어선 취미도 아니려니와 본대 상심낙사(완상하는 마음과 즐거운 일)란 무위와 허욕과 더불어서는 경지를 같이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157쪽

고전이라거나, 전통이란 것이 오직 보관되는 것만으로 그친다면 그것은 '죽음'이요 '무덤'일 것이다. 우리가 돈과 시간을 들여 자기의 서재를 묘지화시킬 필요는 없는 것이다.

청년층 지식인들이 도자를 수집하는 것은, 고서적을 수집하는 것과 같은 의미를 나타내야 할 것이다. 완상이나 소장욕에 그치지 않고, 미술품으로, 공예품으로 정당한 현대적 해석을 발견해서 고물古物 그것이 주검의 먼지를 털고 새로운 미와 새로운 생명의 불사조가 되게 해주어야 할 것이다. 거기에 정말 고완의 생활화가 있는 줄 안다. -163쪽

가장 즐거운 것은 천진하게 마음 속에서부터 이쪽을 신뢰하며 쏠리도록 내어미는 어린이의 손이다. 이것은 마치 동물의 앞발과 같아 전적으로 친애의 표시기 때문이다.-1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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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einsusun 2006-06-28 0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Thanks to!^^
 

 

사랑스런 추억

                                                                   윤 동 주

 

봄이 오던 아침.

서울 어느 쪼그만 정거장에서 희망가 사랑처럼 기차를 기다려.

 

나는 플랫폼에 간신한 그림자를 떨어뜨리고,

담배를 피웠다.

 

내 그림자는 담배연기 그림자를 날리고,

비둘기 한 떼가 부끄러울 것도 없이

나래 속을 속, 속, 햇빛에 비춰 날았다.

 

기차는 아무 새로운 소식도 없이

나를 멀리 실어다 주어,

 

봄은 다 가고-

동경 교외 어느 조용한 하숙방에서,

옛거리에 남은 나를 희망과 사랑처럼 그리워한다.

오늘도 기차는 몇 번이나 무의미하게 지나가고,

 

오늘도 나는 누구를 기다려

정거장 가차운 언덕에서 서성거릴 게다.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스파피필름님 서재에서 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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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릴케 현상 > 교육비 공포가 피임을 부른다

교육비 공포가 피임을 부른다

성차별에 대한 격렬한 저항이자 대학입시전쟁과도 깊이 연관된 출산파업… 엘리트층의 명문대 출신 독식을 제어하도록 ‘경쟁의 병목현상’ 뚫어줘야

▣ 강준만 전북대 교수·신문방송학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일제 말기에 일제는 “낳아라! 불려라! 길러라!”라는 표어를 내걸고 10명 이상의 자녀를 낳은 가정에 대한 표창식을 거행하며 출산을 장려했다. 해방 뒤 이승만 정권도 다산 여성에 대한 표창을 계속했다.

‘3·3·35운동’에서 ‘1·2·30운동’까지

5·16 쿠데타로 집권한 군사정권은 1962년부터 가족계획 사업을 국가 시책으로 실시했다. 국가 시책으로서의 가족계획 사업 채택은 인도와 파키스탄에 이어 한국이 세 번째였다. 가족계획 사업은 전국의 모든 군에 보건소가 설치된 65년부터 본격화됐다. 이른바 ‘3·3·35운동’이 벌어졌다. “3명의 아이를 3살 터울로 35살 이전에 낳자”라거나 “3살 터울 셋만 낳고 35살 단산하자”는 구호를 내건 운동이었다.

1970년대 가족계획의 목표는 둘로 줄었다. “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하루 앞선 가족계획 십년 앞선 생활 안전”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와 같은 구호들이 외쳐졌다. 80년대는 “둘도 많다.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로 바뀌었다.


△ 2006년 여성 1명이 평생 낳는 아이는 1.08명으로 세계 최저를 기록했다. 저출산 재앙은 아이 낳기가 두려운 우리의 모순된 현실의 반영이다. 서울의 한 병원 신생아실 풍경.

그러한 구호 뒤에 숨은 치열한 노력은 눈물겹기까지 했다. 정관수술 받으면 예비군 훈련 면제해준다고 유혹하던 것도 눈물겨웠지만, 자식에 대해 다다익선이라고 여기는 고정관념에 도전하는 일도 눈물겨웠다. 소현숙이 쓴 <너무 많이 낳아 창피합니다: 가족계획>이라는 글에 따르면, “가족계획 사업 초기만 하더라도 마을에 들어간 가족계획 지도요원들은 마을 할아버지들이 지팡이를 들고 쫓아나와 도망나오기 일쑤였다고 한다. 이렇게 보수적인 분위기 때문에 여성들은 남편이나 시부모 몰래 피임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1973년까지만 해도 남편 몰래 피임한 여성들이 57.4%나 되며, 시부모가 모르는 경우가 55.4%나 된다.”

그런 눈물겨운 노력 덕분에 출산력은 1960년을 정점으로 해서 빠른 속도로 감소하다가 80년대 후반엔 재생산 수준 이하로까지 떨어졌다. 90년대 들어선 더욱 낮아졌다. 60년대 초 3%였던 인구증가율은 90년대에 이르러 1% 미만으로 감소했으며 출산율로는 1.6명으로까지 떨어졌다.

이런 출산율 감소의 주요 원인은 산업화로 대변되는 사회구조 변동이었지만, 2000년대 들어선 자녀의 교육 문제가 출산을 억제하는 최대 요인으로 등장했다. 2004년 12월 전북여성정치발전센터가 전주에 거주하는 20~40대 여성 5천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교육비 무서워 자녀 못 낳는다”고 답한 사람이 42.1%로 나타났다.

2005년 3월28일 대한가족보건복지협회가 출산억제 기관에서 출산장려 기관으로의 변신을 선언하면서 ‘1·2·30운동’을 시작했다. 결혼 뒤 1년 내에 임신을 해서 2명의 자녀를 30살 이전에 낳아 잘 기르자는 의미였다.


△ 전국적으로 뿌려진 1960~80년대가족계획 포스터들.

2005년 8월24일 통계청이 발표한 ‘2004년 출생·사망 통계 결과’에 따르면 여성 1명이 평생 낳는 아이(합계출산율)는 1.16명으로 전년보다 0.03명이 더 줄었다. 1.16명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인 미국(2.04명·2003년), 영국(1.79명·2004년), 일본(1.29명·2004년) 등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었다. 언론은 이를 ‘1.16 쇼크’라 부르면서 위기의식을 고조시켰다.

특정 도의 인구 감소는 ‘재앙’ 아닌가

<중앙일보>는 “이러다가 우리는 17년 뒤부터 사망자 수가 출생자 수를 웃돌아 절대 인구 수가 감소하는 이른바 ‘죽음에 이르는 사회’를 맞게 된다”고 했고, <조선일보>는 “답답하고 한심스러운 것은 일본식으로 표현하면 ‘유사 이래의 재난 사태’라 할 인구의 감소를 눈앞에 두고 이 정부가 딴전만 부리고 있는 것이다”고 했다.

2006년 5월8일엔 ‘1.08 쇼크’가 찾아왔다. 통계청이 발표한 합계 출산율이 1.08로 세계 최저를 기록한 것이다. 언론은 또 한 번 ‘재앙의 도래’를 선언하고 나섰다. <중앙일보>는 ‘국가적 재앙’으로 규정하면서 “서두르지 않으면 나라가 저출산 때문에 망하게 생겼다”고 했고, <조선일보>는 ‘비상 상황’을 선포하면서 “이렇게 가다간 경제는 주저앉고 복지는 부도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저출산 재앙’에 대한 반론도 있지만 그건 극소수고, 다른 언론과 대부분의 지식인들도 ‘1.08 쇼크’에 심각한 우려를 표했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다. 나라의 인구 감소가 ‘재앙’이라면, 특정 도(道)의 인구 감소는 ‘재앙’인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여러 도가 해당될 것이나, 가장 대표적인 전라북도의 경우를 살펴보자. 1966년 전북의 인구는 252만 명이었다. 당시 한국 인구는 2900만 명이었다. 그간의 인구증가율을 따진다면, 전북 인구는 오늘날 417만 명이 되어야 한다. 그게 정상이다. 그런데 얼마인가? 178만 명이다! 다른 도들처럼 무슨 광역시가 떨어져나가 그런 게 아니다. 전북엔 광역시가 없다. 먹고살 길이 없어 무작정 다른 지역, 특히 수도권으로 빠져나간 것이다.


△ 1973년 한 호텔에서 ‘낳는 것은 여자가, 안 낳는 것은 남자가’라는 가족계획 세미나 광경이다. 애를 낳지 말라는 국가주의적 구호는 30년이 지난 오늘 애를 더 낳자는 구호로 변했다.(사진/ 연합)

우리 언론이 지방 인구 준다고 걱정해준 적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국제경쟁력을 앞세워 수도권 규제를 풀지 않는다고 아우성치면서 정부 욕하기에만 바빴다. 무슨 대안을 제시하면서 욕한 것도 아니었다. 맹목적인 폭격이었다. 그런 폭격 받다가 헷가닥한 건지는 몰라도 노무현 정권은 가장 대표적인 업적으로 기록될 뻔했던 ‘지방 살리기’ 프로젝트를 스스로 다 망쳐놨다. 노 정권의 업적은 정반대로 수도권 신도시 개발과 수도권 공장 신·증설 허용이 될지도 모른다. 수도권에 국내 대기업 공장 신·증설이 허용되는 것은 10년 만이라고 하니, 이 얼마나 거룩한 업적인가.

나라의 인구 감소하는 게 ‘재앙’이라고 생각한다면, 지방 인구 감소 문제에 대해서도 눈을 돌려야 한다. 그게 정상적인 두뇌를 가진 사람들이 할 일이다. 또 하나 주목할 건 출산율이 감소하는 이유다. 그 이유도 규명하지 않은 채, 출산율 감소를 부추길 정책을 고집하면서 출산율 감소를 재앙으로 보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정희진은 “저출산의 주원인은 가임 적령기 여성이 결혼 자체를 기피하기 때문이다. 여성의 평균 출산 연령이 서른 살에 육박하는 29.7살이다. 통계청 조사에 의하면, 여성(41.5%)이 남성(19.9%)보다 두 배 이상 부정적인 결혼관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여성 출산 독려는 ‘불가능한 임무’

“이제까지 한국이 과도한 군사비 지출에도 경제성장이 가능했던 것은, 사회복지 비용을 전혀 부담하지 않고 이를 가족 내 여성의 성역할 노동으로 대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여성들은 더는 이러한 이중 노동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으며, ‘현모양처’와 ‘커리어우먼’ 사이에서 분열과 고통을 감수하지 않는다. 저출산은 그간의 성차별에 대한 여성들의 조용하지만 격렬한 저항이다. 가부장제 사회가 던진 부메랑인 것이다. 저출산은 전통적인 여성 억압의 기제였던 출산을 저항의 무기로 삼은 여성들의 정치적 선택이다.”

이어 정희진은 “여성의 출산을 독려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은 대책이기 이전에, ‘불가능한 임무’다. 국민과 노동자의 개념을 바꾸고 인종적, 성적, 연령적 다양성을 보장하는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더 현실적인 대안이다”고 말했다.

동의한다. 다만 하나 더 추가하고 싶다. 작게는 사교육비, 크게는 대학입시 전쟁의 문제다. 앞서 거론한 전북여성정치발전센터 조사 외에도 여러 조사 결과 사교육비 부담 문제가 출산율 저하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다.

“네 성적에 잠이 오냐?” “쟤 깨워라” “30분 더 공부하면 남편 직업이(마누라 몸매가) 달라진다” “10분만 더 공부하면 마누라가 바뀐다” “대학 가서 미팅할래, 공장 가서 미싱할래?” “끝없는 연습만이 살길이다. 10시간: 서울대, 8시간: 연대, 7시간: 이대”

일부 고교 교실의 급훈들이다. 지난 3월 교육부가 비교육적이라며 전국 시·도 교육청에서 장학지도를 통해 해당 학교장들이 재검토할 수 있도록 당부해달라며 예시한 것들이다. 그러나 위와 같은 비교육적 급훈들이야말로 대학입시 전쟁의 진실을 말해주는 건 아닐까? 이즈음 사이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죽음의 트라이앵글: 누가 우리를 미치게 만드는가’라는 제목의 동영상은 2008년 대입이 내신-수능-대학별 고사로 이뤄진 ‘최악의 삼각형’이라고 주장하면서 “친구를 짓밟고 적으로 만드는 것이 창의적 인재인가”라고 물었다. 그 동영상을 만든 학생들은 “우리 가슴속의 분노와 피해의식, 그 모든 것은 바로 당신들이 키웠다”면서 “당신들을 용서하지 않는다”고 했다.


△ 대학입시를 목표로 하는 사교육비 부담은 출산율 저하의 주범이다. 묻지마 교육비 투자를 불러온 입시 전쟁의 해법 없인 출산율 저하에 대한 해법도 없다.(사진/연합)

이 동영상이 말한 ‘당신들’은 정부·학교·학원·대학 등이었지만, 기성세대는 누구도 그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지난 2003년 대학입시 전쟁으로 인해 자살을 하는 어린 학생들이 속출했으며, 그 연령대가 초등학교 5학년 학생으로까지 내려갔을 때, 언론은 자살 사건들을 개탄하듯이 보도하면서도 기본적으로는 한국형 약육강식 시스템을 사실상 옹호했다.

대입 입시 전쟁 자체를 없앨 수는 없지만 그걸 정상적인 ‘경쟁’의 수준으로 완화하는 방법은 이미 나와 있다. 그건 부모의 책임으로 간주되는, 10대 후반에 한 번 치르는 입시전쟁으로 평생을 결정하게 만드는 기존 시스템을 바꾸는 것이다.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엘리트층의 대부분이 지금처럼 서너 개 또는 대여섯 개 대학 출신이 독식하는 한, 그 그룹에 끼고자 하는 전쟁은 사라지지 않게 돼 있다.

보수언론이여, 진정한 국가주의자가 돼라

따라서 기존 학벌의 ‘경로 의존’에 변화를 주는 게 필요하다. 기존 명문대들의 정원을 대폭 줄여 소수 정예주의로 가게 하면서 그들의 엘리트층 독식을 제어하고, 수십 개 대학 출신이 엘리트층 다수의 자리를 놓고 경쟁하게 한다면, 지금과 같은 경쟁의 병목 현상은 크게 완화될 수 있다. 일단 대학에 들어간 다음에 다시 한 번 경쟁을 해볼 수 있고 대학 졸업 뒤에도 경쟁이 가능하게끔 하자는 것이다. 자녀의 생존경쟁 책임을 부모가 지지 않게끔 해주자는 것이기도 하다.

이 점에서 보자면 지금과 같은 ‘고교 평준화’ 정책은 올바른 대안이 아니다. ‘고교 평준화’ 철폐는 더더욱 아니다. 엘리트층의 명문대 출신 독식은 이미 오랜 ‘경로’로 설정돼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 경로를 바꿔주지 않는 한 그 어떤 입시정책 변화도 하나 마나 한 짓이다. 그럼에도 그런 하나 마나 한 짓이 계속 반복되고 있는 이유는 입시정책을 다루는 사람들은 물론 정부 밖에서 교육운동을 하는 사람들조차 기존 경로의 기득권자들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아예 그런 문제의식이 없을 수도 있다.

이러한 경로 변경 주장이 무조건적인 학벌 타파로 오해받은 측면도 있다. 진정 변화를 이뤄내고자 한다면, 교육운동가들도 학벌 타파는 불가능한 목표라는 걸 인정하고 경쟁의 병목 현상을 뚫어주자는 현실적인 목표로 이동하면 좋겠다.

보수언론에도 당부하고 싶다. 비판이 아닌 호소를 하고 싶다. 담론상으론 이미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한국에선 국가주의는 비판의 대상이지만, 과연 한국에 진정한 국가주의자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보수언론이 부디 진정한 국가주의에 충실해주면 좋겠다. 진정 국가를 생각한다면, 그리고 앞뒤가 맞는 주장을 하고자 한다면, ‘출산율 재앙’의 주요 원인이 대학 입시 전쟁에 있다는 걸 인정한다면, 기존 대학 입시 전쟁을 무조건 옹호하거나 더욱 가열찬 전쟁을 해야 한다고 선동하는 일만큼은 다시 생각해보면 좋겠다.

보수언론이 대학 입시 문제를 다룬 지면을 보라. ‘평등주의’니 ‘포퓰리즘’이니 ‘하향 평준화’니 운운하는 이데올로기 공세가 난무한다. 입만 열었다 하면 그 소리인지라 신물이 날 지경이다. 보수언론이 원하는 대로 대학 입시 정책이 이루어진다면, 출산율은 더욱 감소할 것이다. 자신들이 믿는 어떤 ‘재앙’을 피하기 위해 자신들이 믿는 또 다른 ‘재앙’을 자초하는 그런 어리석은 게임을 언제까지 계속할 셈인가?

보수언론이 진보 진영을 향해 쏟아내는 독설 중엔 타당한 것들이 많다. 그런데 비극은 그런 독설이 자기들에게도 해당된다는 건 전혀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역설 같지만, 이는 그들이 진정한 국가주의자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의 시야는 국가에까지 뻗어 있는 게 아니라 자신들의 협소한 당파적 범주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 총장은 서울대만 생각할 것인가

서울대 총장도 마찬가지다. 서울대 총장쯤 되면 대한민국 교육 전체를 생각하는 발언을 할 법도 한데 여태까지 그런 총장이 단 한 명도 없었다. 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서울대 기득권 지키기에만 일로매진했다. 서울대가 잘되면 무조건 한국이 잘된다는 그들의 신앙은 자기 재벌그룹이 잘되면 그게 곧 한국이 잘되는 거라는 재벌 총수들의 신앙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이처럼 국가주의자의 씨가 마른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국가주의자는 없는데 국가주의 비판이 난무하는 한국의 모습은 보기에 처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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