퀼트 할머니의 선물
게일 드 마켄 그림, 제프 브럼보 글, 양혜원 옮김 / 홍성사 / 2002년 11월
평점 :
품절


와, 이 그림책! 일러스트레이션에 완전히 매혹되었다. 한편의 아름다운 이야기못지않게 볼거리 또한 풍성하고 아름다워 눈을 어디에 둘지 모를 정도다. 꽃과 나비가 현란한 자태를 뽐내는 장면과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어두운 곳의 장면이 대조적이라 더욱 눈길을 끈다. 또한 욕심많은 임금의 탐욕스러운 얼굴과 훗날의 행복하고 넉넉한 표정이 극적으로 대조를 이루어 임금의 마음이 변해가는 과정을 읽어낼 수 있다.

퀼트는 못 쓰는 천조각을 일일이 손바느질로 이어붙여 탄생된 하나의 작품이다. 물론 섬유산업의 발달로 다양한 문양의 퀼트작품이 나오고 그 용도도 다양해졌지만 역시 퀼트는 자투리천으로 만들어야 일품이다. 퀼트를 한동안 배운 친구 말이, 눈도 아프고 어깨도 아프고 꽤 힘든 일이란다. 바느질 한 땀이라도 어긋나지 않게 시침핀으로 고정을 해가며 일일이 손으로 정성을 들여야하는 일이다.

이런 일을 하는 할머니가 옛적에 살았단다. 할머니의 퀼트는 세상에 둘도 없는 예술품이다. 하지만 원칙이 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만 나눠주는 할머니의 퀼트가 욕심 많은 임금에게 바쳐질리가 없다. 임금은 할머니에게 고난을 준다. 자신이 손에 쥐고 싶은 것에 안달이 난 임금은 할머니에게 견디기 힘든 벌을 내리지만 번번이 참패한다. 할머니의 한결같은 친절과 나눔의 심성이 하찮아보이는 동물들의 마음까지 녹인다. 사랑의 선물을 받은 곰과 참새들이 할머니의 생명을 구해주고 임금은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할머니와 거래를 한다.

임금이 가진 보물들을 사람들에게 하나씩 나누어줄 때마다 퀼트를 하나씩 이어가겠다는 약속이다. 할머니는 받기만 하려는 임금에게 나누어주는 행복의 맛을 느끼게 해주고 싶은 것 같다. 임금은 점점 이 매력에 빠져든다. 처음엔 아깝다고 여겼던 행동이 점점 자신에게 기쁨을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 임금은 이제 이 나라에서 그치지 않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자신이 가진 보물들을 모두 나누어준다.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누어주는 건 물건만이 아니다. 병상에 있는 환자를 위해 침대맡에 앉아 책도 읽어주고 싸우고 있는 사람들을 중재하기도 한다.

임금은 이제 누더기를 걸치고 발가락이 다 보이게 떨어진 신발을 신고 돌아왔다. 그와 동시에 임금과 약속한 퀼트는 완성이 되었고 할머니는 커다란 퀼트 이불로 임금의 어깨를 감싸준다. 욕심이 더덕더덕 붙어있던 예전의 임금님 얼굴은 간데 없고 느긋하고 행복해보이는 임금의 얼굴이 보는 사람의 마음까지 환하게 해 준다. 가진 건 아무것도 없지만 나누어줄 때의 행복했던 기억을 많이 가지고 있는 임금은 세상에서 제일 가는 부자라고 자부한다.

이 그림책은 그림 구석구석에 돋보기를 대고 들여다보듯 하면 정말 많은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다. 전체적인 색감이 주는 풍부함은 내용의 풍부함 못지않다. 화려하고 섬세하며 밝고 따스하다. 마치 작가가 그려내고 싶은 희망의 세상이 퀼트로 펼쳐지는 듯하다. 으르릉대던 곰에게, 베고 잘 수 있는 베개 하나 없이 사는 너이니 그렇게 마음이 거칠어질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하며 폭신한 베개를 만들어주는 할머니의 마음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무척 풍요로운 느낌의 일러스트레이션이다.

돌아올 임금을 위해 만든 퀼트 조각을 하나하나 보면 별별 것이 다 들어가있다. 왕의 파란 반지(아마도 사파이어?)를 비롯해서 세상의 모든 소소한 것들이 다 들어가있다. 할머니의 퀼트는 우리가 만들어가는 세상의 은유다. 퀼트에 쓰이는 천조각처럼 한 사람 한 사람의 작고 미흡한 마음이 모이고 모여서 아름다운 세상이 만들어진다는 희망의 바느질이다. 내가 바라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내가 내어놓는 것도 있어야한다는 것도 배울 수 있다. 마음의 부자는 내어주는 게 많은 사람일 거라 생각한다. 임금이 가진 것을 나누어 주러 온세계를 두루 돌아다녔다는 점도 아이들과 짚고 넘어가면 좋겠다.

2학년 아이들과 함께 보았다. 아이들과 함께 그림조각들을 자세히 찾아보며 그림만 다시 감상해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다. 두고두고 보고 싶은 그림책이다. 책의 앞뒤 속지에 할머니의 퀼트작품들이 전시되어있다. 작품마다 이름지어놓은 제목도 의미심장하다. '진정한 사랑의 매듭'이 기억에 남는다. 작은 종이에 아이들의 퀼트를 꾸며보고 제목을 달아보라고 하니 상상력을 발휘하여 멋진 작품을 그려내기도 했다. 재미있게도 월드컵을 주제로 꾸민 아이도 있어 함께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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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포터7 2006-06-22 1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그림이 좋은책 참 좋아라 합니다.. 특히 퀼트는 색감도 독특하구..참 보고싶네요.

또또유스또 2006-06-22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쩜.. 이리도 아름다운 리뷰를 쓰시는지요..
투명한 수채화 같은 느낌입니다..
이 동화책을 투명한 수채 물감으로 그리듯 쓰시니 어찌 아니 볼수 있답니까...
바로 담습니다...

프레이야 2006-06-23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리포터님 그림이 좋은 책이란 반하기 마련이죠. 좋은 하루 시작하세요~

또또님, 님의 표현이 더 멋있네요. 감사합니다.^^

인터라겐 2006-06-23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에 오면서 느끼는 행복중의 하나가 바로 이런 것 같아요..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을 만날 수 있는 다리가 든든하다는 것이요.. 저도 바로 담아요..^^

씩씩하니 2006-06-23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서관에 있네요,,,빌려가서 아이들과 읽어주는 착한 엄마 노릇 좀 해야겠어요,.오늘~혜경님..책을 들여다보시는 알찬 시선에 감탄해요,,,어쩜 이렇게 세심하게 들여다보실 수 있는지...전 언제 이런 경지에 도달할 수 있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