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우연히도 낯선 전시를 보게 되었다. 큰딸이 잠시 들르자고 해서 가게된 신세계 백화점. 나는 아이가 살 걸 사는 동안 6층 갤러리에 있겠다고 했다. 오늘은 어떤 전시회가 열리고 있을까, 무작정 기대하며... 차우희전시회. 나로선 처음 들어본 아티스트였다. 알고보니 오광수 한국문화예술위원장의 아내이기도 한 올해 64세의 미술가이자 작가. 작품과 저서로만 봐선 64세란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이 전시는 부산 신계계백화점 갤러리에서 11월 1일까지 한다. 서울 본점에서 이미 하고 내려온 것. 베를린과 한국을 오가며 상당히 활기찬 활동을 해오고 있는 사람이었다. 집에 돌아와 검색을 해보니 아래 경향신문 기사가 눈에 들어온다. 아내의 정신세계를 열렬히 지지하고 이해하는 폭이 대단하다. "나는 당신이 새벽에도 반짝이는 별이 되면 좋겠소."라는 편지를 주기도 했다는 도반.

전시된 작품들이 상당히 독특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흑백톤의 추상작품들로 간결한 선을 살려 압축된 이미지로 내면을 형상화했다. 전시 표제는 '배는 움직이는 섬이다.' 차우희는 배를 자신과 동일시하고 있는 듯. 배의 돛과 닻을 이미지로 드러내고 정착하지 않고 자유로이 흘러가는 정신세계를 표현했다. 콜라쥬 작품들도 많았고 상자 속에 작은 모형을 만들어 집어넣어놓은 작품도 특이했다.   

"배는 움직이는 섬이다. 배는 물길을 가면서 스스로 길을 지워간다. 배가 지나간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30여점의 크고 작은 작품들을 둘러보고 작은 원탁에 놓은 도록과 그녀의 저서 두 권을 뒤졌다.  예술과 꿈, 그리고 작가의 세계를 의식한 글귀가 눈의 띄었다. 

   
 

* 불가능한 것에 접근하기 위한 사닥다리 역할을 하는 예술은 꿈에 접근하기 위한 하나의 메타포다. 

* 꿈은 불가능한 것에 대한 그리움이다. 예술은 꿈을 표현한다. 

* 자신을 치열하게 의식하는 것만큼이나 내가 나를 잊는 시간도 그 나름으로 소중하다. 마음을 비운다는 것하고는 다른, 내가 눈에 보이지 않는 미립자가 되어 허공 속에 떠도는 것이다. 

- <베를린에서 띄우는 편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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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더더기 없는 예술” 아내 예찬… 오광수 문예위원장 부부




경향신문 | 한윤정기자 | 입력 2009.09.21 17:42 | 수정 2009.09.21 23:53 




오광수 한국문화예술위원장(오른쪽)과 작가 차우희씨는 부부간의 의무보다 예술적 성취를 우선 순위에 두고 살아왔다. 17일 신세계 갤러리에서 차씨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부가 우연히 똑같은 손모양을 하고 있다. 정지윤기자

"모든 것을 최소화하고 압축시켜 단순하고 군더더기가 없고 순수한 존재감만 남아있지요. 미니멀리즘과 상통하는 측면이 있고요. 요즘 젊은 세대가 하는 화려하고 컬러풀하고 정열적인 분위기와는 다르지만 시대의 미의식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봅니다."




오광수 한국문화예술위원장(71)이 부인 차우희씨(64)의 작품에 대해 내린 평가다. "작가란 모름지기 자기주장, 자기세계가 있고 그걸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하는데 집사람에게는 그것이 있다"고 말한다. 옆에서 듣고 있던 차씨가 "실제로는 전시회 도록에 글 한 번 써준 적이 없다"고 하니까 오 위원장은 "남편이 부인 작품 평론하는 거 봤냐"고 반문했고, 다시 차씨는 "외국에서는 그런 일 많아요"라고 답변했다.

차씨가 지난 16일부터 서울 신세계백화점 본점내 신세계갤러리에서 '배는 움직이는 섬이다'란 주제의 전시를 열고 있다. 1990년 이후 개인전만 서른번 이상 열 만큼 쉼 없이 달려왔다. 이번에 나온 30여점은 지난 20여년간의 변화를 보여주는 작품 가운데 선정했다. '배'는 늘 어디론가 떠나는 인생살이의 상징이자 수많은 조각과 부품으로 구성되는 유기체에 대한 비유로서 차씨의 작품에서 중요한 모티브였다.

" < 오딧세이 > 신화처럼 사람은 늘 어디론가 항해하도록 운명 지워져 있습니다. 이것을 표현하기 위해 배의 구성요소를 기호로 사용했어요. 흑백을 고집하는 이유는 강하고 소박하면서 내적인 긴장감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초기 작품은 흰 종이를 요철무늬로 잘라 여러겹 붙인 '그리드' 시리즈다. 이어 캔버스에 유화물감으로 흑백의 추상적 화면을 구성한 두꺼운 마티에르의 유화가 나오고, 다시 종이로 돌아가서 긁거나 눌러 요철을 만든 뒤 검정 잉크로 채색한 작품을 했다. 최근작은 나무패널을 이어붙인 조각이다. 얼핏 보면 단순하지만 고도의 균형과 조화를 이룬 작품들로서 짧지 않은 세월의 내공이 느껴진다.

차씨는 1980년대 중반부터 베를린을 중심으로 활동해왔다. 고 윤이상·백남준 등이 받았던 독일연방정부 학술교류기금(D.A.A.D)을 받은 것이 계기가 됐다. 작가로서는 넓은 무대에서 많은 자극을 받고 뜻을 펼칠 수 있었지만, 그는 이미 오 위원장과 1969년 결혼해 슬하에 아들을 둔 가정주부였다.

"남편은 처음에 내가 몇달 지나면 '찔찔' 울면서 돌아올 줄 알았대요. 그런데 그렇게 베를린 작업실과 서울 집을 왔다갔다 한 것이 벌써 20년이 넘었네요. 아들은 아버지를 돌보겠다면서 서울에 남았습니다."(차우희)

"서로 불편한 점도 많았지만 각자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오광수)
차씨는 베를린에 가면 1초가 아까울 만큼 작업에 몰두한다고 했다. 검은색 옷에다가 검은색 캡을 눌러쓴 차림도 그 때문이다. "검은색이 가장 경제적이잖아요. 미장원에 갈 시간이 없어서 모자를 쓰게 됐어요. 내 그림을 보고 내 옷차림을 본 사람들은 내가 이 그림의 작가라는 걸 인정해요. 그럼 된 거 아닌가요."

이번 전시의 도록은 북디자이너인 아들 찬솔씨(39)가 맡아서 더욱 뜻깊은 전시가 됐다. 차씨는 "작가는 한곳에 머물면 안된다"면서 "더 열심히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전시를 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다음달 4일까지 서울에서 열린 뒤 부산 센텀시티내 신세계갤러리로 자리를 옮겨 10월20일부터 11월1일까지 계속된다. (02)310-1921

< 한윤정기자 yjhan@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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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9-10-26 1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벽에도 반짝이는 별' 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알 것 같아요. 남들이 아직 자고 있는 시간에도 반짝일 수 있는, 자기만의 세계를 잃지 않고 빛나는 별 같은 삶을 지속해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한 것 아닐까요?
나이가 들면서 모든 것이 다 사그러드는 것은 아님은 분명한 것 같아요. 나이가 들면서 오히려 더 분명해지고 용기가 생기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위의 작품에서 저는 왜 숫자가 보이고 기호가 보이고, 그러지요? ^^

프레이야 2009-10-27 00:16   좋아요 0 | URL
네, 나인님, 저도 딱 그 의미로 읽혔어요.
참 멋진 도반이란 생각이 들어요.
나이 들수록 더 좋아지는 것들, 분명히 있지요.
숫자, 기호, 등호, 화살표, 점선.. 꽤 독특한 세계였어요,^^
 

 

 

     사막교부 이렇게 살았다 / 분도 출판사 / 뤼시앵 레뇨

 

정말 우아한 책  <고슴도치의 우아함>을 끝내고, 오늘 회원 신청도서를 시작했다. 

회원 중에 기독교 신자가 많은지 신청도서 중에는 기독교 관련 내용이 많더니 이번엔  아주 흥미로운 책이 내게 들어왔다. 

깜찍한 얼굴의 우리 녹음실장의 말,

"이거 급하니까 먼저 해주세요. 제일 빨리 정확히 읽으시니까. 그런데 내용은 별로 재미없을 거에요." 

 <고뇌의 원근법>과 에세이스트 동인지 <그대가 가질 수 있는 시간은>을 다음 차례로 꼽아두고 있었는데 이크, 그럼 이 책부터 하는 게 우선이다.  

오늘 한 다섯 시간 동안 녹음하여 테잎 번호 3A까지 했는데 생각보다 내용이 흥미롭고 번역도 깔끔하다. 간혹 번역된 책 중에는 소리내어 읽다보면 확실히 번역이 부자연스럽거나 호흡이 매끄럽지 못하다고 느껴지는 책이 있다. 

그런데 이 책은 딱딱할 수 있는 내용임에도 읽기에 걸림이 없이 순조롭고 매끄러웠다.  

역자는 허성석(로무알도), 대구 가톨릭대학교 대학원에서 영성신학 석사학위를 받은 후, 현재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수련장이며 <코이노니아> 편집위원이라고 적혀있다.

저자, 뤼시앵 레뇨는 프랑스 솔렘 수도승으로, 1914년 수련을 받고 솔렘의 도서관장과 교부학 교수로 일하다가 훗날 수련장과 원장직도 수행했다. 40년 넘게 고대 동방 수도승들의 삶과 작품과 영성을 연구해 온 그는, 이를 바탕으로 사막교부들의 금언에 대한 충실하고 비평적인 모음집을 출간했다.  

필자는 교부들의 말씀, 더 정확히는 그들의 금언을 주요 자료로 참조했다.  

이 '금언'이라는 말은 실제로 이 텍스트의 고유한 성격을 지칭하는 유일한 용어다. 금언은 공중에 뜬 허황한 말이 아니며, 기록된 말이나 아름다운 이야기도 아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사막의 독수도승이 살았던 삶과 관련하여 언제나 감화를 목적으로 구체적 환경 속에서 나온 말들이다. 이 금언들은 삶의 편린으로, 독수도승들의 실재를 비추는 섬광과 같은 것이다. 이 금언집에 흔히 '교부들의 생애'라는 제목을 붙이는 이유는 이것이 초기 사막 수도승의 일상적 실재를 구체적으로 흥미있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머리말 중) 

이 책은 고대 이집트 독수도승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다. 여러 장으로 분류하여 구체적이고 간명하게 적어놓았다. 오늘 녹음한 부분 중 '사막에서의 性' 에 재미있는 대목이 나온다. 

어디나처럼 사막에도 성욕에 사로잡힌 수도승은 있었지만,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알려진 3천 개의 금언에서 우리는 단 두 경우만을 접하기 때문이다. 하나는 누군가 추수하는 들판에서 여자와 함께 드러누운 형제를 보았다고 믿는 내용이다. 그가 파렴치한 행위를 중단시키려고 다가가 보니, 실상인즉 짚단 두 개가 겹쳐져 있는 것이었다. 또 다른 수도승은 함께 머무르며 악을 범하는 두 형제를 고발하기 위해 원로를 찾아갔다. 원로는 저녁에 그 두 형제를 불러 한 이불 밑에서 자게 한 후 제자들에게 말했다. "고발한 이놈을 독방에 가두어라. 유혹을 느낀 자는 바로 이놈이다." (65쪽)

자신 안의 욕망이 이렇게 타자에 굴절되는 일이 어디 사막교부들에게만 있었을까. 욕망은 사물을 왜곡하고 사태를 곡해한다. 우리의 감각마저 믿을 수 없는 것으로 만든다. 우리가 어떤 일에, 누군가에 애먼 소리를 하고 자신과 타인을 괴롭히는 것은 많은 부분 내부의 욕망이 꿈틀대고 제어장치를 수시로 벗어나기 때문 아닐까.   

사막! 이 책을 읽어가며 점점 '사막'이라는 단어에 꽂히게 될 것 같다. 사막 한가운데!  이말을 생떽쥐페리가 '야간비행'에서 먼저 썼다고 저자는 곁들인다. 아무튼 그들 독수도승들에게 사막은 세상으로부터의 점진적 은둔을 의미한다.  

   
 

이 은둔 덕분에 빛나는 수도승생활의 거점들이 사막 한가운데 생겨난다. 나아가 최종단계는 '가까운 사막', 즉 '외적 사막'을 포기함으로써 '큰 사막'에 이르는 것이었다고 한다. 전자는 사막의 가장자리다. 고대 문헌은 후자를 '먼 사막', '내적 사막', '보다 깊은 사막' 혹은 '완전한 사막'이라고 부른다. (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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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9-10-24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대 북아프리카 수도승에 대해서 조금 관심이 있는데...이런 책이 있군요.분도에서 좋은 책이 많이 나오지요.종교서적 외에 일반 인문사회과학 서적도 좋아요.개신교 신학자들 책도 있구요.분도출판사 책을 많이 갖고 있습니까?

프레이야 2009-10-25 08:28   좋아요 0 | URL
저는 처음 접해본 책이에요. 꽤 흥미롭더군요.
분도의 책은 한 권도 갖고 있지 않구요.
이 책도 도서관에서 낭독하게 된 책이지요.

노이에자이트 2009-10-25 14:40   좋아요 0 | URL
종교서적 출판사에서 나오는 인문 사회과학 책들이 일반 인문사회과학 전문출판사보다 더 싸고 명저들도 많아요.개신교 쪽에선 한국신학연구소,대한기독교 서회에서도 좋은 명저가 많이 나옵니다.문고판도 좋구요.
 
원위크 - One week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삶과 죽음, 실패와 성공, 포기와 끈기, 프레임 안의 안락과 프레임 밖의 모험, 나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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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9-10-11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도 이 영화 보셨군요.
말기 암 환자로 보기에 남자 주인공이 너무 건실해보였어요, 제가 보기에는요 ^^

프레이야 2009-10-11 10:47   좋아요 0 | URL
그죠? 무슨 암인지도 구체적으로 안 나오고요.
음악도 크게 와닿진 않고요. 완전 늙었다니까요, 제가..
남자가 소심하고 옹졸해 보이기도 했구요. 얼굴도 그다지 호감은 아니었다는..ㅎㅎ
약혼녀 속을 그렇게나 썩이고 다른여자와의 하룻밤은 또 뭐래요?
오토바이 타고 가다 굴러떨어져 죽은줄 알았는데
살아났다고 좋아라 막춤을 춰대던 장면에서 마구마구 웃음이 나왔어요.
그땐 쬐끔 귀여웠어요 ㅋ
캐나다의 풍광들을 볼 수 있어서 그게 좋았어요. 아~ 가보고 싶어라~
 


 ‘시느미’란 말은 강릉지방의 토속어다.

그 말은 언제나 내게 고향과 어머니를 생각하게 한다.

어렸을 적 밥상머리에 앉을 때까지는 밖에서 놀이에 빠져 있는 내 이름을 서둘러 부르셨지만, 밥숟가락을 들고 먹기 시작하면 으레 ‘시느미 먹어라. 급히 먹다 체할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어머니는 아무리 급한 길도 빨리 오라 하지 않고 ‘시느미 오너라’고 하셨다.

‘시느미’란 말이 아름답게 들리는 것은 그 말 속에 담겨 있는 따뜻한 염려와 정성스러움, 그리고 진솔함 때문일 것이다. 그 말에는 어떤 일을 하든지 꼼꼼히 정확하게 챙기라는 충고의 뜻도 들어 있다.

그러나 ‘시느미’란 말이 빠른 템포에 적응하지 못하고 뒤처져도 좋다는 뜻으로 쓰이지는 않는다.

사실 지금까지 우리는 놀랍게 빠른 속도로 눈부신 성장을 해왔으며 옛날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풍요도 이루어 냈다. 아마도 그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 빠른 속도에 익숙해져 있을 것이다.

요즘은 '초고속'이나 '광속'이라는 말쯤은 해야 빠르다고 실감할 정도에 이르렀다. 혹시 현대사회의 치열한 경쟁이 무한정의 속도를 증가시켜, 느린 것은 약삭빠르지 못한 것, 둔하고 미련한 것으로 치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여기쯤에서 한 번 돌아다봐야 할 것 같다. 빠른 속도에 떠밀려 사색을 잃어버리고 신중함을 잃어버리고 묵상을 잃어버린다면 그것은 온전한 삶이라고 할 수 없다.

지금은 ‘시느미’ 속도를 조절해야 할 때, 시간의 균형과 조화를 찾아야 할 때다. 시느미 걷고 시느미 행동하는 모습에 부드럽고 우아하며 겸손한 삶이 있을 것이다.

  


- '내가 사랑하는 우리말 우리글' 가져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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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하늘 2009-10-10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느미>라는 말이 너무 예쁩니다. 우리아이 뭐든 하는게 너무 느려 옆에서 속터져 있는 저의 모습이
생각나는군요.^^ 그런데 프레이야님 고향이 강릉이신가봐요? 지금은 멀리가서 사시는것 같은데...

프레이야 2009-10-10 18:09   좋아요 0 | URL
ㅎㅎ 강릉은 아니구요. 태어나긴 좀 윗지방에서 태어나긴 했는데
지금은 여기남부지방에서 살고 있지요.
시느미, 저도 처음 들어본 말인데 구수하고 정겹게 들려요.^^
 

 

낙 타 

 

신 경 림 

 

 

낙타를 타고 가리라, 저승길은 

별과 달과 해와 

모래밖에 본 일이 없는 낙타를 타고, 

세상사 물으면 짐짓, 아무것도 못 본 체 

 손 저어 대답하면서, 

슬픔도 아픔도 까맣게 잊었다는 듯. 

누군가 있어 다시 세상에 나가란다면 

낙타가 되어 가겠다 대답하리라. 

별과 달과 해와 

모래만 보고 살다가, 

돌아올 때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 하나 등에 업고 오겠노라고.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았는지도 모르는 

가장 가엾은 사람 하나 골라 

길동무 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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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하(紫霞) 2009-10-13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플을 어디다 달아야 할지 몰라서...ㅋㅋ
잘 들어가셨는지...
저도 반가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