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교부 이렇게 살았다 / 분도 출판사 / 뤼시앵 레뇨
정말 우아한 책 <고슴도치의 우아함>을 끝내고, 오늘 회원 신청도서를 시작했다.
회원 중에 기독교 신자가 많은지 신청도서 중에는 기독교 관련 내용이 많더니 이번엔 아주 흥미로운 책이 내게 들어왔다.
깜찍한 얼굴의 우리 녹음실장의 말,
"이거 급하니까 먼저 해주세요. 제일 빨리 정확히 읽으시니까. 그런데 내용은 별로 재미없을 거에요."
<고뇌의 원근법>과 에세이스트 동인지 <그대가 가질 수 있는 시간은>을 다음 차례로 꼽아두고 있었는데 이크, 그럼 이 책부터 하는 게 우선이다.
오늘 한 다섯 시간 동안 녹음하여 테잎 번호 3A까지 했는데 생각보다 내용이 흥미롭고 번역도 깔끔하다. 간혹 번역된 책 중에는 소리내어 읽다보면 확실히 번역이 부자연스럽거나 호흡이 매끄럽지 못하다고 느껴지는 책이 있다.
그런데 이 책은 딱딱할 수 있는 내용임에도 읽기에 걸림이 없이 순조롭고 매끄러웠다.
역자는 허성석(로무알도), 대구 가톨릭대학교 대학원에서 영성신학 석사학위를 받은 후, 현재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수련장이며 <코이노니아> 편집위원이라고 적혀있다.
저자, 뤼시앵 레뇨는 프랑스 솔렘 수도승으로, 1914년 수련을 받고 솔렘의 도서관장과 교부학 교수로 일하다가 훗날 수련장과 원장직도 수행했다. 40년 넘게 고대 동방 수도승들의 삶과 작품과 영성을 연구해 온 그는, 이를 바탕으로 사막교부들의 금언에 대한 충실하고 비평적인 모음집을 출간했다.
필자는 교부들의 말씀, 더 정확히는 그들의 금언을 주요 자료로 참조했다.
이 '금언'이라는 말은 실제로 이 텍스트의 고유한 성격을 지칭하는 유일한 용어다. 금언은 공중에 뜬 허황한 말이 아니며, 기록된 말이나 아름다운 이야기도 아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사막의 독수도승이 살았던 삶과 관련하여 언제나 감화를 목적으로 구체적 환경 속에서 나온 말들이다. 이 금언들은 삶의 편린으로, 독수도승들의 실재를 비추는 섬광과 같은 것이다. 이 금언집에 흔히 '교부들의 생애'라는 제목을 붙이는 이유는 이것이 초기 사막 수도승의 일상적 실재를 구체적으로 흥미있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머리말 중)
이 책은 고대 이집트 독수도승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다. 여러 장으로 분류하여 구체적이고 간명하게 적어놓았다. 오늘 녹음한 부분 중 '사막에서의 性' 에 재미있는 대목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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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나처럼 사막에도 성욕에 사로잡힌 수도승은 있었지만,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알려진 3천 개의 금언에서 우리는 단 두 경우만을 접하기 때문이다. 하나는 누군가 추수하는 들판에서 여자와 함께 드러누운 형제를 보았다고 믿는 내용이다. 그가 파렴치한 행위를 중단시키려고 다가가 보니, 실상인즉 짚단 두 개가 겹쳐져 있는 것이었다. 또 다른 수도승은 함께 머무르며 악을 범하는 두 형제를 고발하기 위해 원로를 찾아갔다. 원로는 저녁에 그 두 형제를 불러 한 이불 밑에서 자게 한 후 제자들에게 말했다. "고발한 이놈을 독방에 가두어라. 유혹을 느낀 자는 바로 이놈이다." (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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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 안의 욕망이 이렇게 타자에 굴절되는 일이 어디 사막교부들에게만 있었을까. 욕망은 사물을 왜곡하고 사태를 곡해한다. 우리의 감각마저 믿을 수 없는 것으로 만든다. 우리가 어떤 일에, 누군가에 애먼 소리를 하고 자신과 타인을 괴롭히는 것은 많은 부분 내부의 욕망이 꿈틀대고 제어장치를 수시로 벗어나기 때문 아닐까.
사막! 이 책을 읽어가며 점점 '사막'이라는 단어에 꽂히게 될 것 같다. 사막 한가운데! 이말을 생떽쥐페리가 '야간비행'에서 먼저 썼다고 저자는 곁들인다. 아무튼 그들 독수도승들에게 사막은 세상으로부터의 점진적 은둔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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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은둔 덕분에 빛나는 수도승생활의 거점들이 사막 한가운데 생겨난다. 나아가 최종단계는 '가까운 사막', 즉 '외적 사막'을 포기함으로써 '큰 사막'에 이르는 것이었다고 한다. 전자는 사막의 가장자리다. 고대 문헌은 후자를 '먼 사막', '내적 사막', '보다 깊은 사막' 혹은 '완전한 사막'이라고 부른다. (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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