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 최재천의 동물과 인간 이야기
최재천 지음 / 효형출판 / 200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인간복제기술에 대한 어느 종교학자와 최재천교수의 토론에 대한 긴 기사를 몇년 전 어느 신문에서 읽은 적이 있다. 과학적인 분야에는 다소 관심이 덜 했던 나였지만 그 때 글을 꽤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아주 명쾌하고 설득력있는 논리를 펴며 상대를 흡인하는 능력이 보였다. 그런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 건지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를 통해 저자의 가치관을 들여다보는 기회가 되었다.

동물학자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저자는 동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게 아니라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가 줄곧 다루어왔고 앞으로 다룰 것도 '생명'이라고 말한 것처럼 자연에서 사는 목숨 있는 것들 중의 하나인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문학도를 꿈꾸고 조각에 한 때 심취했다는 저자는 그런 풍부한 감성으로 동물을, 인간을 보려한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자신이 자연과학도가 된 것은 어쩌면 잘 된 선택이라고 생각하기도 하며, 자연에서 또는 동물들에게서 퍼 올리는 다양함으로 자신의 글쓰기 샘은 고갈되지 않을 것 같은 희망적인 예감을 하고 있다. 나는 그런 자신감과 긍정적인 마음이 싫지 않다. 

이 책은 몇년 간 신문이나 잡지에 투고했던 글을 모아서 나온 것이라 중복되는 내용이 보이고 네 개의 장으로 나누어 글을 모아 둔 것도 약간은 억지스러운 부분이 보인다. 그리고 좀더 동물학적인 지식을 원한다면 실망스런 책이겠다. 서정적인 책의 제목으로만으로라도 그런 오류는 없어야 실망하지 않을 것 같다.  각 장을 이끄는 소제목을 보아도 이 책이 동물의 생태를 보여주는 데 주안점을 둔 것이라기보다 우리의 삶을 돌아보는 데 촛점을 맞추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중간중간에 실제 동물의 사진을 실지 않고 파스텔톤의 삽화를 실어놓은 점도 그런 의도를 짐작하게 한다.

그렇다고 저자의 단상이 감상적이거나 화려하거나 상념적인 문체로 나오는 건 아니다. 그다지 꾸미지 않고 자신의 경험과 느낌을 편안하게 적어놓았다. 우리 사는 사회의 갖가지 불합리해 보이는 점들(이미 많은 이들이 그렇게 느끼고 논란이 되고 있는 것들을 포함해 실행을 앞둔 것까지)을 비롯해, 함께 사는 사회에 걸림돌이 되는 인간 본성의 야비함, 어쩌면 고등동물을 자처하는 인간이 다른 동물들보다 못해 보이는 행태들을, 저자는 동물학자답게 동물을 관찰하고 연구하면서 느껴온 것이다.

저자의 교육관도 곳곳에서 엿볼 수 있다. 수학은 자연과학은 물론이고 인문과학을 통틀어 모든 학문의 기초라고 역설하며, 동물도 수학을 한다라고 물음표를 던진다. 꼭같은 리포트를 제출하여 기만으로 편하게 점수를 따려 한 많은 수의 제자들을 한 명씩 만나 해주었다는 저자의 말은 가슴에 한참동안 남아있다. 기본을 가르치는 교육을 하자는 주장에도 공감한다. 반짝하는 명성으로 신지식인이 되는 오늘날의 교육과 망하기 일쑤인 벤처기업들은 기본부터 가르치는 동물들의 교육에서 느껴야할 점이 있다. 한 때 열린교육이라는 어설픈 이름 아래 기초를 가르치고 배우고 익히는 과정을 무시하여 얻은 결과를 이제 다시 바로잡으려 또다시 아이들을 닦달하고 있지 않나.

구급차 일일체험을 제안하는 대목도 신선한 발상이다. 생명을 잃을지도 모르는 급박한 상황에서 차도를 꽉 매우고 한치의 양보도 찾아볼 수 없는 길거리풍경을 구급차 안에서 볼 수 있다면, 그게 나의 상황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누구든 한번쯤 구급차 안에서 세상을 내다볼 필요가 있다'고 분개하여 말하는 저자는 분명 생명을 고귀함으로 여기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특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촘스키와의 만남에서 저자가 들은 말이다. 언어학계의 거장 촘스키박사는 동물의 언어와 인간의 언어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말하며 그의 이론에 따르면 인간의 언어는 근본적으로 '스스로에게 말하기 위해' 생겨났다고 한다. 하지만 까치의 울음소리를 연구하는 저자는 까치에게도 독백이 있다고 믿는다. 이것의 진위는 잘 모르겠지만 언어가 인간만의 특권일까,를 연구하고 고민하는 저자의 다른 글도 읽어보고 싶어진다.

동물의 생태를 연구하고 알아가며 인간에 대한 것을 생각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 여겨진다. 그들을 사랑하게 되고, 결국 인간도 하나의 아름다운 생명이라는 소중한 사랑의 메세지를 스스로 찾게해주는 저자의 글이 소박하고 따뜻하다. 무엇보다 매력적인 점은 저자의 활짝 열린 눈과 가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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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다연엉가 > 아버지


아버지의 맘

아버지란 기분이 좋을 때 헛기침을 하고,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너털웃음을 웃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자기가 기대한 만큼 아들 딸의 학교 성적이 좋지 않을 때
겉으로는 '괜찮아, 괜찮아' 하지만,
속으로는 몹시 마음 아파하는 사람이다.



아버지의 마음은 먹칠을 한 유리로 되어 있다.
그래서 잘 깨지기도 하지만, 속은 잘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란 울 장소가 없기에 슬픈 사람이다.
아버지가 아침 식탁에서 성급하게 일어나서 나가는
장소(직장)는,
즐거운 일만 기다리고 있는 곳은 아니다.
아버지는 머리가 셋 달린 龍과 싸우러 나간다.
그것은 피로와, 끝없는 일과,
직장 상사에게서 받는 스트레스다.



아버지란 '내가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나?
내가 정말 아버지다운가?' 하는 자책을
날마다 하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자식을 결혼시킬 때 한없이 울면서도
얼굴에는 웃음을 나타내는 사람이다.
아들, 딸이 밤늦게 돌아올 때에
어머니는 열 번 걱정하는 말을 하지만,
아버지는 열 번 현관을 쳐다본다.



아버지의 최고의 자랑은 자식들이 남의 칭찬을 받을 때이다.
아버지가 가장 꺼림칙하게 생각하는 속담이 있다.
그것은 '가장 좋은 교훈은 손수 모범을 보이는 것이다'
라는 속담이다.
아버지는 늘 자식들에게 그럴 듯한 교훈을 하면서도,
실제 자신이 모범을 보이지 못하기 때문에, 이 점에 있어서는
미안하게 생각도 하고 남 모르는 콤플렉스도 가지고 있다.



아버지는 이중적인 태도를 곧잘 취한다.
그 이유는 '아들, 딸들이 나를 닮아 주었으면' 하고 생각하면서도,
'나를 닮지 않아 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동시에 하기 때문이다.
아버지에 대한 인상은 나이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나 그대가 지금 몇 살이든지,
아버지에 대한 현재의 생각이
최종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일반적으로 나이에 따라 변하는 아버지의 인상은, 4세때: 아빠는 무엇이나 할 수 있다. 7세때: 아빠는 아는 것이 정말 많다. 8세때: 아빠와 선생님 중 누가 더 높을까? 12세때: 아빠는 모르는 것이 많아. 14세때: 우리 아버지요? 세대 차이가 나요. 25세때: 아버지를 이해하지만, 기성세대는 갔습니다. 30세때: 아버지의 의견도 일리가 있지요. 40세때: 여보! 우리가 이 일을 결정하기 전에 아버지의 의견을 들어봅시다. 50세때: 아버님은 훌륭한 분이었어. 60세때: 아버님께서 살아 계셨다면 꼭 조언을 들었을 텐데
아버지란 돌아가신 뒤에도 두고두고 그 말씀이 생각나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돌아가신 후에야 보고 싶은 사람이다. 아버지는 결코 무관심한 사람이 아니다. 아버지가 무관심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체면과 자존심과 미안함 같은 것이 어우러져서 그 마음을 쉽게 나타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웃음은 어머니의 웃음의 2배쯤 농도가 진하다. 울음은 열 배쯤 될 것이다.
아들 딸들은 아버지의 수입이 적은 것이나 아버지의 지위가 높지 못한 것에 대해 불만이 있지만, 아버지는 그런 마음에 속으로만 운다. 아버지는 가정에서 어른인 체를 해야 하지만 친한 친구나 맘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면 소년이 된다. 아버지는 어머니 앞에서는 기도도 안 하지만, 혼자 차를 운전하면서는 큰소리로 기도도 하고 주문을 외기도 하는 사람이다. 어머니의 가슴은 봄과 여름을 왔다갔다하지만, 아버지의 가슴은 가을과 겨울을 오고간다. 아버지! 뒷동산의 바위 같은 이름이다. 시골마을의 느티나무 같은 크나 큰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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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흔 2004-03-06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버지, 라는 말에선 늘 눈물이 묻어납니다. 그걸 깨닫고 그리워하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흐르죠. 저희 아버지가 요즘 컴퓨터를 배우시려 하길래 매일매일 가르쳐 드려야지 하면서도, 그저 맘뿐이니...

프레이야 2004-03-07 0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어머니보다 아버진 묵직하게 느껴집니다. 어머닌 아옹다옹하는 사이지만 아버진 단 몇마디로, 옆모습으로, 늘 내곁에 있는 존재입니다.

chaire 2004-03-07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버지... 언제나 그리운 이름이지요...

수련 2004-03-17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버지...퍼가려면 어떻게 하나요?
 
 전출처 : 水巖 > 조병화 - 창외설경

                       < 창외 설경(窓外 雪景) >

                                                             -  趙  炳  華  -

 

        지금 창밖에 서울엔 눈이 내리고 있읍니다.

        답장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에게

        일년, 이년, 삼년,

        ............ 십년을 두고

        답장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에게

        묵은 편지를 쓰고 싶어지는

        지금 서울에 창밖엔 눈이 내리고 있읍니다.

 

        한번 맘먹고 새옷 차림을 하고

        누추한 서울을 찾아내리다

        .......... 다시 한번 주저한듯이

        주저하다 아주 결심한듯이

        망서리고 망서리다 아주 마음 내린듯이

        서울의 창밖에 내곁엔 눈이 와 앉고 있읍니다.

 

        서울의 사랑은 눈 쌓인 창안의 어슬픈

        보금자리 길이 막히어

        가시나무 그늘의 멧새처럼

        눈 내리는 눈속에서 진종일을 종일합니다.

 

        창밖에 찬 겨울, 겨울을 견디는 사랑아

        냉랭한 세월아

        ---- 서로 미워하기 위하여 나온것은 아닙니다.

        ---- 서로 싸우기 위하여 나온것은 아닙니다.

        창 밖에 찬 겨울, 겨울을 견디는 사랑아

        냉랭한 세월아

        그리운것이 있어 그리워하기 위하여

        사랑하는것이 있어 사랑하기 위하여

 

        (당신을 사랑하기 위해 나온것입니다.)

 

        지금 창밖에, 서울엔 눈이 내리고 있읍니다.

        답장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에게

        묵은 편지가 쓰고 싶어지는

        내가슴 흐뭇이 눈이 내리고 있읍니다.

 

    어느해 이름도 잊은 신문에 게재한 조병화 선생님의 시입니다.  몇번째 시집에 있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그 시절에는 신문에 이렇게 멋진 시가 全文 실렸읍니다.

  조병화 선생님은 내가 좋아하는 시인들중 한분입니다.  이분이 옛날 우리 중고등학교 시절에 서울고교 화학 선생님인거 아세요?  학교는 다르지만( 대학 시절에 알었지만) 또 럭비 선수였던 학창시절이 있었다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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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학년이 된 희원이가 또 아프다. 신학년 증후군인지 모르겠다. 그저께부터 머리가 아프다고 질질 짜더니, 오늘은 머리도 제법 뜨겁고 억지로 먹은 저녁도 토해버렸다. 열감기쯤이라면 다행인데, 2년전처럼 축농증이라면 어떡하지. 

 3학년 초 3월 중 3주정도를 축농증 약을 먹고 다녔다. 머리가 아프고(특히 고개를 숙이면) 속도 울렁거리고 먹는 것도 잘 안 넘어가고, 한마디로 죽을 지경이라는 표정이었다. 학교가는 걸 즐거워했던 아이가 아침마다 식탁에 앉아 징징 울먹이며 학교 가기 싫다고  했다. 그때 아는 엄마에게 희원이의 이런 증상을 걱정스레 꺼냈더니, 그 분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자기 큰 딸도 신학년만 되면 그런단다. 그러면 막 야단쳐서 보낸단다. 평소 재미있는 사람이라 그렇거니 웃으며 받아넘겼지만 뾰족한 수도, 그렇다고 위로도 못 얻은 나는 허탈했었다.

음엔 감기인가 싶어 동네 소아과에서 약을 처방 받아 좀 먹이다가 도저히 차도가 없어 종합병원을 찾았더니 코 촬영을 하자고 했다. 부비동염이라는 처음 듣는 병명을 이야기하며 그게 아주 증세가 고약하단다. 음식을 넘기려하면 비릿한 냄새가 거꾸로 올라오며 속이 울렁거린다고 의사가 말했다. 당연히 머리도 아프고... 재발하지 않게 털이 북실한 곰인형 같은 건 가까이 두지 말라고 해서 희원이가 좋아하는 하얗고 커다란 곰인형을 멀리 치우기도 했는데 이사와선 다시 가까이 하고 있었다. 제발 축농증이 아니어야 할텐데.

사실 다른 의심이 드니 더 걱정이다. 새집증후군이 아닐까, 하는 거다. 3년은 지나야 유해물질이 거의 없어진다는데 말이다. 작년 여름에 이사했지만 그동안 겨울에는 내가 환기를 좀 게을리 했다. 무슨 광촉매물질을 분사하여 나쁜 물질을 차단해주는 시술을 집에 하자고 제안했다가 Y에게 거부당하고 환기를 잘 했어야하는데...  생각해보니, 희원이도 희령이도 머리 아프단 말을 자주 했던 것 같다. 아이들이 온갖 유해한 물질을 몸으로 다 마시고 있다 생각하니 속이 상해 죽겠다.

희원인 옥매트에서 기운 없이 자고 있다. 내일 아침엔 병원에 가보자고 달래서 재웠다. 엄마가 너무나 무심하다. 뭐가 더 중요한 건지, 참.  요즘은 이야기 나눌 틈도 별로 갖지 못하고 맹숭맹숭한 모녀지간이 되어, 이래선 안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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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4-03-04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침에 학교 대신 병원에 데려갔다. 새집증후군 운운했더니 의사는 별 반응을 안 보이고 요새 아이들 열감기를 많이 한단다. 약을 처방 받고 약국으로 가지 전 보이는 미용실에 들어가 아이의 앞머리를 동그스름하게 자라고 뒷머리도 좀 잘랐다. 훨씬 귀엽고 발랄해 보인다고 말해줬더니 입이 함박만하다. 그래도 새집증후군이 자꾸 신경쓰인다.^^

다연엉가 2004-03-04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신학년 증후군인가봐요. 소현이가 첫날 눈이 좀 빨개지더니 오늘 아침엔 아예 한쪽 눈이 감겨 버렸네요. 그리고 무지 욱신거리고 아프데요.
지금 아이가 돌아오자 마자 안과에 가야 겠네요.
신학년 첫날 부터 왜 이러는지...

다연엉가 2004-03-04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소현이의 기분전환을 위해서 머리를 손질해야 겠네요.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 MBC 느낌표 선정도서, 보급판
J.M 바스콘셀로스 지음, 박동원 옮김 / 동녘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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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유명하여 제제는 이제 신화적인 인물이 되어버린 것 같다. 이 책을 다시 번역하여 완역으로 재탄생시킨 박동원님은 에필로그에서, 처음엔 브라질의 문화를 모르고 글만 번역했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인디오의 피가 흐르는 엄마와 포루투갈인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제제는 지독한 가난과 무관심, 매서운 매 앞에서 세상을 향한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있다가 뽀루뚜까를 만나 세상을 보는 사랑의 눈을 뜨게 된다. 

이 한편의 성장소설은 작가 바스콘셀로스의 자서전적 소설이며 제제는 작가의 어린시절 자화상과도 같다. 남다른 감수성과 상상력을 감안하더라도 좀 이르다싶은 나이에 너무 가혹하다할 정도의 통과의례를 거치고 부화하는 제제가 어쩌면 우리 정서에는 이질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유아적 기억은 아련하기 마련이고 성인이 된 작가는 그 기억의 줄기에 작가적 상상력을 더 부여하지 않았을까.

어찌보면 우리 정서에도 잘 부합하지 않고 주제도 평범하기까지 한 이 소설이 오래도록 읽히는 것은 그 속에 담겨있는 세 가지의 보편적인 정서에 공감하기 때문이 아닐까.

우정은 세상 모든 것과 세상 어느 사람과도 진정한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감정이다. 나를 그대로 이해해 주고 나의 눈높이에서 나를 보고 나의 말에 귀기울여주고 함께 하면 그저 즐거움을 나눌 수 있는 대상은 우정을 근본으로 한다. 그래서 어느 한 쪽이 지배적이던지 설교나 훈계를 늘어놓으려한다던지 자신의 입장에서만 주장하려한다면 우정은 성립되기 어렵다. 부모자식간이든, 사제지간이든, 나무든, 새든, 우정이 바탕에 깔린 감정만이 온당한 관계를 맺어준다.

제제는 어린 라임오렌지나무와도, 작은새와도, 아리오발도씨와도, 동식물과 연령을 초월하여 우정을 맺을 줄 안다. 아버지의 정에 굶주린 제제는 뽀루뚜까에게 아버지의 정을 애원하고 뽀루뚜까는 가식적이지 않은 연민과 사랑의 감정으로 제제를 품어준다. 제제는 뽀루뚜까와의 우정으로 세상은 사랑이 있는 살 만한 곳이라는 걸 깨닫기 시작한다. 우정은 우리를 성장케하는 참된 의미의 정서가 아닐까.

또 하나는, 성장에 필요한 통과의례는 비밀스럽다는 점이 매력이다. 기억의 내밀한 저장창고에 숨겨둔 몇가지의 일들을 어른이 된 사람이면 다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것만 통과하고 나면 눈부신 바깥세상이 나올 거라는 걸 어렴풋이 믿으며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저마다의 통과의례를 치른다. 제제는 뽀루뚜까와의 꿈같은 시간이 저만의 백일몽이란 걸 깨닫게 되지만, 꿈의 세계에서 빠져나와 현실에 몸 담아야하는데에 필요한 고통은 어느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것이었다. 비밀스럽기 때문에 책임 또한 자신의 몫이다.

내 영혼의 비밀스런 통과의례에 동참한 것들에는 무엇이 있을까. 일기장, 엄마도 모르는 어느 친구, 일기장에도 쓰지 않고 가슴에만 새긴 어떤 일들?

마지막으로, 우리네 정서는 슬픔의 그것에 닿아있다는 점이다. 박동원님은 이 글을 읽을 때마다 운다고 하면서, 제제의 슬픈 정서의 원류를 포루투갈인에게서 찾는다. 포루투갈 어느 해변 가파른 절벽에 제 몸을 부딪는 시퍼런 파도를 배경으로 파두를 소개한 글을 본 기억이 난다.  그 때 내가 느꼈던 서늘하리만치 가슴을 때리는 그 사진의 슬픈 정서가 잊혀지지 않는다.

나도 무엇을 대하든 슬픔을 먼저 만나는 형이었다. 지금은 기쁨을 먼저 만나는 형으로 바뀌어가고 있지만, 본질적으로 나에게도 슬픔의 근원모를 샘이 숨어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제제가 극단적인 애증을 보였던 아버지와 뽀루뚜까가 모두 포루투갈인이었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이 한편의 성장소설이 슬프게 느껴지는 이유는 더이상 돌아갈 수 없는 알껍질 속의 세계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왜 아이들은 모두 철이 들어야하나요?"라고 던지는 물음 속에 철이 들고 싶지 않았다고 발버둥이라도 치고 싶어하는 모습이 보인다. 기형도의 분석을 빌리면 이 책의 감동은 '철들기 전의 세계'에 대한 미칠 듯한 그리움에 있다.

흐릿한 기억의 유년시절로 뒷걸음쳐 달아나고픈 욕망을 느낀 적이 있다면 제제의 혹은 바스콘셀로스의 그런 어리석어 보이는 물음이 얼마나 절실하게 순수함에 대한 그리움을 토로하는 말인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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