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살 희령인 요즘 피겨스케이팅을 아주 재미있어하며 배우고 있다. 유치원 마치고 바로 그 뒷편에 있는 아이스링크로 와서 3시10분부터 강습을 시작한다. 나는 로비의 유리창 밖으로 내다 보고 있으면 희령인 노란 셔틀에서 달랑 뛰어내려 손을 흔들어 주며 친구들과 선생님을 보내고는 내가 시킨대로, 양쪽을 한번씩 살피고 얼른 길을 건넌다. 좁은 길이지만 차가 다니는 편이라 그렇게 당부를 해뒀더니 양쪽으로 토끼처럼 묶어준 머리가 대롱대롱거릴 정도로 고개를 흔들며 살피는 눈이 꼭 토끼같다.
2층에서 보관해둔 신발을 찾고 3층으로 올라가면 선생님이 언제나처럼 신발의 끈을 차근차근 매어주신다. 스피드스케이트는 끈을 꽉 당겨서 조여신어야 하지만, 피겨는 약간 여유를 주어야 발목이 부자연스럽지 않단다. 하얀색 신발을 신고 서면 아주 예쁘다. 스피드스케이트를 한달 동안 하면서 희령인 줄곧 피겨하는 언니들을 눈여겨 보았던 것이었다. 예쁜 옷을 하늘거리게 입고 아름다운 동작을 펼치는 언니들을 보며 아주 부러웠던지 어느날 제법 진지한 얼굴로 피겨를 하고 싶다는 거다. 순간의 변덕을 부리는 건 아닌지, 요모조모 탐색을 거친 후 나는 한번 시작하면 열심히 변덕부리지 않고 해야한다고 다짐을 해두고 아이가 원하는 것을 시작해 주기로 했다.
역시 자기가 원하는 걸 자발적으로 골라서 하는 아이들은 태도가 다르다. 초롱한 눈으로 즐겁게 참여하고 아주 행복해한다. 피겨스케이트의 칼날은 측면에서 보면 완만한 곡선을 이루고 있다. 회전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란다. 스피드스케이트화에 익숙해있던 아이는 앞뒤로 균형을 놓치고 몸이 흔들리기 일쑤라 처음엔 신발에 어서 익숙해지는 게 우선이란다. 허리를 곧바로 세우고 등을 쫙 펴고 턱도 적당한 각도로 두고 어깨와 팔에 힘을 빼고 걷기 부터 시작했다. 요새는 항아리모양을 그리며 걷기를 하는데 아주 재미있어한다. 자세가 바르고 아름다워질 것 같다.
희령인 꿈이 아나운서가 되는 것이다. 의사도 되고 싶단다. 두가지를 다 하고 싶다는 거다. 어떻게 둘 다를 하면 좋을까?, 하니 대답이 걸작이다. "의사는 6시쯤 되면 병원문 닫으니까 그때 방송국에 가서 저녁뉴스를 하면 되지." 이러는 거다. 세상에 직업의 종류가 무수하다는데, 정말 이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기상천외한 직업도 나올 것이고 이런 식의 1인 다역의 사회인도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가정조사란에 엄마가 희망하는 아이의 직업란을 쓰려면 늘 막막하다. 내가 아이들에게 뭐가 되라고 어떻게 희망할 수 있을까. 그저 어떻게 사는 사람이 되라고는 말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아이의 적성과 심성, 특성을 고려해보고 그저 희망사항이란 점에 의미를 둔다면 희원이는 분석적이고 준법적이고 논리적이니 판사 같은 직업이 어울릴 것 같고 희령인 따뜻하고 임기응변도 있고 남의 감정을 잘 헤아리는 편이며 말하는 걸 좋아하니 방송인도 괜찮을 것 같다.
솔직히 누가 어릴 적 꿈이 뭐였냐고 물으면 내가 좀 한심한 생각이 든다. 그저 선생님 또는 좀 커서는 대학교수, 뭐 이랬으니까 말이다. 그러면 그걸 위해 구체적인 노력을 했나하면 그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아이들은 장래희망이나 꿈이 뭐냐고 물으면 아주 난감해한다. 너무 많아 다 말할 수 없다고 하는 아이는 오히려 다행이다. 더 많은 아이들은 뭐가 되야할지 모르겠다. 또는 부자가 되고싶다, 이정도로 대답한다. 하기야 나도 그맘때 꿈이 뭐였더라, 생각해보면 뭐라 내세워 말하기가 곤란하다.
내가 뭘 원하는지를 제대로 보고 찾아내는 게 중요하겠다. 내가 진실로 원해서 하고 싶은 게 뭔지를 자신에게 묻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아이에게도 이런 질문을 가끔은 던져주어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시간을 슬쩍 주는 것도 좋겠다. 하지만 지키고 싶은 나의 원칙은, 적어도 나의 생각이나 희망사항을 아이들에게 강요하는 엄마는 되기 싫다는 거다. 저희들이 가장 바람직한 선택을 할 수 있게 다양한 체험과 환경만 만들어주고 자발적으로 동기가 부여된 선택을 스스로 할 수 있게 하고 싶다.
그래서 지금은 물론 훗날 아이도 나도 함께 행복하면 좋겠다. 시행착오를 해도 거기서 하나를 더 얻고 스스로 일어날 수 있게, 옆에서 든든한 믿음으로 바라보며 살짝 부축해주는, 지혜로운 엄마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