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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받은 상장 ㅣ 내친구 작은거인 9
이상교 지음, 허구 그림 / 국민서관 / 2005년 7월
평점 :


위의 사진은 감나무과 낙엽교목인 고욤나무와 고욤나무 열매다.
<처음 받은 상장>에는 주인공 시우가 쓴 멋진 시가 여러 편 등장하는데 '고욤나무'를 제목으로 쓴 시를 보자.
고욤나무
고욤나무는 감나무 동생/꽃도 감꽃보다 조그맣고/잎도 조그맣고/매달리는 고욤도 조그맣다.
고욤나무 가지에 고욤이 다닥다닥/살보다 씨가 더 많은 고욤이 다닥다닥/멀리서 보아도 다닥다닥/싸우지 않고 사이좋게도 다닥다닥.
이 시는 아빠가 4남매를 위해 고욤나무에 매달아준 그네 때문에 시우가 동생이랑 티격태격하다가 부모님께 혼나고 혼자 고욤나무 꼭대기에 걸터앉아 몸을 출렁이며 흥얼거리는 싯구다. 시우는 2학년 여자아이인데 4남매중 세째로 아래 위로 치여서 눈에 띄지도 않고, 별달리 칭찬이나 사랑을 못 받고 사는 아이다. 외모도 그렇고 특기할 만한 자랑거리도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시우는 '어린 시인'이다. 언제나 일을 저지르는 것처럼 보이는 엉뚱한 아이지만, 구구단 숙제를 안 해와서 두 손을 들고 벌을 서 있는 상황에서도 머릿속으론 싯구를 흥얼거리는 사랑스러운 아이다. 손을 들고 창밖으로 보이는 해바라기는 저를 닮아 키만 멀대같이 크다. 벌을 서고 있는 자기를 보는 게 창피해 칠판만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시우를 보면 씩씩하고 덜렁거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에 있는 여리고 착한 마음을 엿볼 수 있다.
2학년 아이들과 이 책을 함께 읽으며 스스로에게 주는 상장을 만들어보게 했다. 왜 스스로에게 상장을 주라고 할까?, 라고 질문을 하니까, 앞으로 더 잘하라고요, 라는 대답들을 했다. 나는 아니, 너희들은 지금으로도 충분히 상장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어. 너무나 착한 언니이며 뭐든 잘 하고 지금 그 자체로 아주 소중하단다. 나는 이런 말을 해 주며 사실은 아이들이 아닌, 나에게 하는 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은 의외로 글쓰기와 피아노치기 그리고 공부를 못한다고 생각하였다. 잘 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아마도 어른들의 채근에 자신감을 잃은 상태가 아닌가하여 마음이 아렸다. 그리고 맏이인 아이들은 동생 때문에 속상하고 억울한 일들을 털어놓으며 눈물이 잠시 고이기도 했다. 형이 있는 아이는 동생으로서 또 슬프게 느낀 적이 있다고 했다. 일상에서 얻는 마음속의 상과 벌들을 시우처럼 시로 풀어쓰게 했더니 진솔한 마음이 드러나 쉽게 동시를 썼다.
작가가 창조한 시우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이다. 또한 가족간의 사랑과 배려가 아이에게 최고의 힘이 된다는 미덕도 흔히 볼 수 있는 주제이다. 하지만 작가는 흔하지 않은 방식으로 시우라는 아이에게 최고의 상장을 수여한다. 작가의 어린 시절처럼 놀기를 좋아하고 엉뚱한 생각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시우는 언제 어떤 상황에서든 '생각의 집'을 지을 줄 안다. 그것을 시로 풀어내며 영글어가는 아이다.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받는 마음의 상처를 오래 담아두지 않고 시로 승화시키며 자신을 키워가는 아이가 대견하다. 결국 시우는 가족들의 사랑을 깨닫고 마음의 병이 불러온 열병을 씻은듯이 턴다. 그런 힘은 밖에서 온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부에서 조금씩 태동하고 있었던 것이라 믿는다.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시우의 동시만 골라 읽어보아도 마음이 따듯해진다. 삽화 또한 율동적이며 시우의 다양한 심리와 내면의 갈등을 표현하는데 또렷한 몫을 한다. 갯벌에서 넘어질 때는 수채물감이 튀어오를 듯 바닷물을 찍어올리고 고욤나무에 매단 그네를 타고 있는 시우는 정말 '구름나라로 놀러 가는 것 같'다.
시우가 교내 백일장 대회에서 상을 받은 동시는 '그네'라는 제목이다.
그네
손으로 줄을 단단히 잡고 위로/휙- / 하늘나라, 구름나라로 놀러 가는 것 같다.
고욤나무 비밀 나무에 맨 내 그네/나는 혼자 그네를 탄다.
그네에 앉아 하늘로 휙 올라가면/고욤나무 이파리는 손뼉을 쳐 준다./혼자서 잘 탄다며 팔랑팔랑 손뼉을 쳐 준다.
단지 유감이라면, 작가가 '글짓기'라고 쓴 부분을 '글쓰기'라고 바꾸는 게 좋지 않을까 한다. 본문 중에 시우의 장점을 알아보고 있었던 선생님이 글쓰기에 대해 아이들에게 설명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이 말의 뜻에도 '글쓰기'가 더 어울리겠다.
- "글짓기라는 것은 하루마다 일기를 적는 것처럼 자기의 생각을 긴 글이나 짧은 시로 적는 걸 말한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이 읽었을 때, '아, 정말 그렇겠구나!', '나도 이 글을 쓴 사람과 똑같은 생각을 한 적이 있었어.!' 하는 생각이 드는 글이 바로 좋은 글이란다. 그러니까, 생각을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쓰면 되는 거란다. 알겠니? 선생님이 보기에는 우리반에도 그런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있다."
'글짓기'보다는 '글쓰기'가, 좀더 작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내면을 드러내는 작업으로 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