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에서 우연히 이 책을 소개하는 걸 들었다. 떠나고싶어라~

유럽 여행의 새로운 테마, 축제 - 그 광기의 현장!

 

20대부터 30대에 이르기까지 유럽 여행은 이제 꼭 가봐야할 필수코스처럼 여겨지게 되었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무작정 배낭을 메고 유럽으로 떠나던 초창기의 여행에서 테마를 찾아 현명하게 여행지를 선정하고, 그 안에서 폭넓은 경험을 얻는 것으로 여행 문화가 점점 바뀌어가고 있다. 그야말로 ‘수박 겉핥기식’으로 명소를 훑는 여행에서 진일보한 셈이다.
이런 추세에 다양한 여행 정보지도 함께 출간되어 여행자들의 구미를 자극하고 있다. 특히, <축제, 세상의 빛을 담다>라는 책에서는 유럽의 축제를 '색(color)'이라는 매개로 연결하여 아주 재미있게 그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그럼 색깔별로 어떤 유럽 축제들이 소개되어 있는지 살펴보자.

 

빨간색 - 원초적 본능이 손짓하는 스페인 축제들

 

심장에 흐르는 피마냥 붉게 타오르던 빨강. 이 색에 잘 어울리는 나라는 단연 스페인이다. 바스크의 소몰이 축제에서 붉은 스카프를 매고, 황소의 심장에서 터져 나오는 피칠갑에 흥분하여 덩달아 광란하던 그 죽음의 현장이 어찌 빨간색과 어울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반면 바르셀로나 메르세 축제의 빨간색은 희망을 상징한다. 스페인의 내전과 프랑코의 끔찍한 독재를 이겨낸 하늘을 향해 높이 솟은 인간탑의 향연은 파도처럼 춤을 추는 거대한 율동이다. 살랑살랑 나부끼며 돌아가는 사르단춤의 궤적. 그것은 감춰놓은 붉은 피의 희생과 고통, 그리고 모든 고통을 극복한 전통과 문화에 대한 그들이 집념이 이룩한 몸부림이자 거대한 에너지다.

 

 

 

 

황금색 - 찬란한 크리스마스의 정경이 있는 독일 축제

 

평화와 사랑이 충만한 황금색. 그것은 뉘른베르크 크리스마스 축제를 위한 색이다. 독일만큼 차분하고 독일의 느낌만큼 화려하고 독특한 이 축제는 한 해의 말미를 장식하는 중유럽의 중요행사다. 크리스마스 정령 같은 황금빛 소품들이 진열된 장터에서 글뤼바인을 마시며 독일의 음울한 겨울날씨를 음미하며 성가족의 구유에서 고향의 가족을 떠올린다.

 

 

 

 

 

노란색 - 우산과 우비의 뜨거운 몸짓이 흐르는 프랑스 축제

 

거친 북해를 무대삼는 선박과 바닷사람들의 본거지 덩케르크. 오래된 광기의 전통과 억센 열기가 합세하여 가장 지독한 난장판의 카니발로 악명을 떨친 이곳은 북해의 바람을 고스란히 받아치는 덩케르크 시민의 우직함이 묻어있다. 그렇다면 왜 노란색이 덩케르크 카니발을 대표할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청어잡이의 역사와 관련이 있다. 어부의 복장이었던 노란색 우비가 카니발 악대의 복장이 되어 용감하게 카니발 행사를 이끌기 때문이다. 뼈를 에이는 혹한의 비 내리는 북해 항구 도시에서 노란색 우산을 들고 나타난 광인의 무리에 샛노랗게 질려 미쳐가기도 한다. 알코올과 춤판이 난무하는 덩케르크 카니발. 성性이 뒤바뀌는 일탈의 현장에서 세상이 하나되고 사람들이 하나되는 즐거움을 경험하리라.

 

 

 


오렌지색 - 은빛보다  찬란한 벨기에 축제

 

빨갛지도 그렇다고 노랗지도 않은 모호한 오렌지색. 도시 전체가 회색 물감에 푹 담가버린 듯 침울함만이 감도는 벨기에의 뱅슈가 어떻게 이 발칙하고 도드라진 색과 어울릴 수 있을까. 하지만 이 칙칙한 도시에서 한눈에 튀는 오렌지색이야말로 즐거움과 기쁨으로 축제를 인도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진눈깨비가 내리는 벨기에의 오렌지색 복장의 거인들과 그들의 춤, 허공을 무자비하게 날아다니던 매서운 오렌지 축제. 순식간에 세상이 온통 오렌지의 광란으로 물드는 이곳에서 오렌지색과 하얀 눈이 연출하는 환각이 독특한 정경으로 다가온다.

 

 

 

초록색 - 아비뇽의 녹색 바람과 왕의 정원에서 펼쳐지는 프랑스 축제들

 

성장을 의미하는 ‘그로gro'를 상징하는 초록색. 그래서 이 색은 항상 자라는 식물과 연관되는 경우가 많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유럽을 뒤덮은 검은 땅에서  강렬하게 싹을 피우는 소나무처럼 태어난 것이 바로 아비뇽 축제다. 그래서 식물의 초록색처럼 생기 있고 발랄하고 기운차다. 다양한 예술혼들이 공연을 벌이고 아름다운 페스티벌의 정신을 계승하는 아비뇽의 거리는 흥겨움 그 자체다. 그런가하면 쇼몽 쉬르 루아르 정원 축제는 말 그대로 세계의 여러 민족들의 정원 문화가 한자리에 모이는 이색적인 축제다. 일탈과 퇴폐가 난무하는 축제와는 달리 두 축제 모두 녹색의 풍경을 담고 있기에 활기차고 희망이 가득하다. 

 

 

 

 

청록색 -  서늘한 북해의  영국 축제

 

초록보다는 차가운, 그래서 영국의 을씨년스러운 날씨에 너무 잘 어울리는 청록색. 아비뇽 축제와 이란성 쌍둥이격인 이 축제는 8월 내내 판이한 대여섯 개의 축제가 동시다발적으로 열려 풍성하고 복잡하기 그지없다. 한마디로 이 기간에 에든버러에 머물면 세상의 모든 공연 형태를 다 맛볼 수 있을 만큼 ‘다양한 문화축제’가 벌어지는 셈이다. 도시 전체가 축제를 준비하고 축제를 만끽하는 그래서 축제 도시 문화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이곳은 그 자체로 청록색이 발산하는 빛이자 새로운 젊음이 피어나는 기쁨의 현장이다. 

 

 

 


파란색 - 라인 강이 전하는 스위스 축제

 

 

차가운 빛의 대명사 파란색. 축제의 허구성과 상상 속의 다른 세상을 보게 하는 이 색은 차가움이 감도는 스위스의 바젤 축제에 제격이리라. 사실 라인 강은 독일의 강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원류는 스위스다. 이 긴 강은 애초에는 스위스 알프스의 안개를 거쳐 지난 순수한 파란색 강이다. 그러기에 더없이 고즈넉하고 신비롭고 춥다. 하지만 형형색색의 가면과 광대행렬, 등불 행렬, 악대의 피리와 북소리가 합세하는 바젤 축제에서는 일순간 전혀 다른 세상이 된다. 마치 수공작이 암공작에게 구애하듯 차량이나 말, 혹은 마차 등을 타고 자신을 한껏 뽐내는 그들을 바라보노라면 전형적인 시민행사가 어떤 것인지 실감할 수 있다.

 

 

 

 

 


17가지 - 정체성이 격돌하는 이탈리아 축제

 

열일곱 가지 무지개가 수놓아진 이탈리아의 전통 축제. 그것은 바로 팔리오 축제다. 13세기 시에나의 가장 좋은 시절에 출현한 이 축제는 17개의 동네가 겨루는 경마대회다. 그래서인지 팔리오에는 기사들의 행진, 깃발로 이루어진 의전행사, 그리고 거친 경마 등 당시 군대 문화의 흔적과 냄새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지금의 팔리오가 17개 동네를 끈끈하게 잇는 고리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공동체 축제라는 점은 참으로 재미난 부분이다. 이런 17개 동네의 난장판이 한 축제에 모여 폭발하니 그 에너지의 위력이 어떠할지 상상하고도 남으리라.

 

 

 

 

이번 여름 아비뇽을 시작으로 유럽에서 펼쳐지는 축제에 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축제, 세상의 빛을 담다』, 김규원 지음, 시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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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처럼 - 우리시대의 지성 5-016 (구) 문지 스펙트럼 16
다니엘 페낙 지음, 이정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다니엘 페낙의 '늑대의 눈'을 처음 만났던 느낌이 살아난다. 그의 상상력은 물론 독특한 이야기 방식, 즉 그만의 목소리에 매료되었던 기억이다. <소설처럼>은 책읽기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담긴 장편 에세이류로 볼 수 있는데, 마치 하나의 소설을 읽어가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이야기의 재간꾼 답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또 책 읽기를 권하는 모든 사람들이 한번쯤 가볍게 보면 좋을 책이다.

이야기! <소설처럼>은 이야기로 시작하여 여러가지 이야기를 들려주고 이야기로 맺는다. 자녀가 혹은 학생들이 책읽기를 거부하거나 어려워하는 것을 바라보는 부모나 선생님은 조바심이 날 수밖에 없다. 기다려도 보고 상벌도 취해보지만 그들이 우선 터득하여 개발하는 것은 책읽기가 아니라 책을 읽는 시늉이라고 말한다. 아이가 어릴 적을 떠올려보라. 매일 잠자리에서 들려주거나 읽어주던 이야기. 아이는 그 이야기를 반복하여 듣고 나중엔 다 외워서 줄줄 외고, 그 다음엔 자신이 개작을 하여 내게 들려주곤 했지 않은가. 같은 이야기 같지만 한 번도 같지 않았던, 날마다 새롭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듣던 우리들의 목소리가 어느 날부터인가 사라지는 게 문제였다.

아이가 활자를 알게 되면 부모는 책 읽어주기를 그만두고 아이는 그 어마무지한 활자의 괴물들과 고투를 해야한다. 다니엘 페낙은 책은 보는 게 아니라 읽는 것이라고 곳곳에서 역설하고 있다. 소리내어 읽는 것 말이다. "소리내어 책을 읽는 사람은 그것을 듣는 사람 앞에서 자신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격이다." (P224)  이야기에 심취하여 고스란히 작가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책 읽어주기 방식을 시종 권하고 있다. 이 책에는 실제로 20년간 고등학교에서 교사를 한 작가의 경험이 곳곳에 녹아있다. 군데군데 이름만으로도 입이 벌어지는 고전문학이 언급된다. 문자를 모르는 아이에게만 읽어주기 방식이 유효한 게 아니라 다 큰 학생들에게 책 읽어주기는 어마어마한 독서의 세계로 인도하는 훌륭한 방식이 된다. 가장 고전적인 방식을 잊고 현대의 대중매체나 여타의 환경 탓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이 책을 멀리 할 때는 두 가지의 이유를 생각해볼 수 있다. 그 책에 대한 시간적 압박감과 내용상의 두려움이다. 저 두꺼운 걸 읽으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해? 하지만 시간은 찾아서 내는 사람에게는 길고 맛깔나다. 하루에 몇 페이지를 정해두고 읽어도 사흘이면 어떻게 된다는 식으로 구체적인 계산을 해 주는 작가의 친절함에 끌린다. 내용이 독자를 짓누를 거라는 소심함, 읽어도 모르는 내용일 거라는 뒷걸음질 또한 책을 멀리하게 하는 요인으로 지적한다. 여기서 '보바리즘'의 단계를 무시하지 말라고 권한다. 즉 '오로지 감각만의 절대적이고 즉각적인 충족감'을 위한 사춘기 적의 책 읽기 단계도 성숙한 독서를 위한 한 단계이므로 이것을 비아냥거리거나 단호히 내몰아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작가는 오히려 '우리 자신의 청소년 시절과 화해하는 것이 현명한 태도'라고 말한다. 이 부분에서 중학생 이상의 아이를 둔 사람이라면 책뿐만 아니라 다른 취향까지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가장 믿음이 가는 대목은 마지막 장, '읽고 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권리' 편이다.  인간은 살아 있기 때문에 집을 짓는다. 그러나 죽을 것을 알고 있기에 글을 쓴다. 인간은 무리를 짓는 습성이 있기에 모여서 산다. 그러나 혼자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책을 읽는다. ..... 독서는 인간의 운명에 대하여 어떤 명쾌한 설명도 제시하지 않는다. 다만 삶과 인간 사이에 촘촘한 그물망 하나를 은밀히 공모하여 얽어놓을 뿐이다. 그 작고 은밀한 얼개들은 삶의 비극적인 부조리를 드러내면서도 살아간다는 것의 역설적인 행복을 말해준다.(P225) 

어른들은 흔히 책을 읽고 난 아이에게 이것저것 질문을 던진다. 그것도 모자라 한 단락을 읽히고 중심내용을 묻고 한 문장으로 요약해 보라고 주문하고 단어의 뜻을 아느냐고 끊임없이 추궁한다. 이런 행위들이 책 읽기를 더욱 어렵게 하는 어리석은 짓이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그저 아무런 질문을 하지 않고 이야기의 맛에 도취되어 들려주고, 들으며, 온전히 하나의 시간이 되었던 그 옛날로 돌아가라고 권한다.  우리는 어느덧 그런 행복한 시절이 있었다는 것조차 잊고 있지 않느냐고..

곳곳에 작가 자신의 독서경험과 책 읽어주기 체험담들이 나오는데,  톡톡 튀는 목소리가 흥미롭다.  우리는 다음 장이 궁금해 미칠 지경인 이야기를 듣고 싶다. 관념이나 사설이 아닌 잘 짜여진 이야기에 목 마르다.  하지만 그걸 읽고도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는 것, 그 이유에 대한 작가의 변이 어쩌면 책의 한계가 아닐까 싶다.

- 책은 우리의 의식을 완전히 변화시킬 수 있을지는 몰라도 악화일로로 치닫는 세상을 그대로 방관할 수밖에 없다는 것, 바로 그 때문에 우리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침묵한다.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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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6-07-10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에게 숙제로서가 아니라 그저 즐거움으로 책읽기를 가르쳐 주는게 중요하다는 진리를 다시 실감하게 하는 내용이네요. 제가 책을 읽을 때 즐거운 것처럼.... 하지만 책 읽어주기 너무 힘들어요. ^^;;

프레이야 2006-07-10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요.. 제가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고 작가의 목소리와 하나가 되어 들려줄 때 듣는 이도 즐거운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목이 좀 아프긴 하지만..^^

부엉이 2006-07-11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음 장이 궁금해 미칠 지경인 이야기를 듣고 싶다'! 어제 문득 책을 읽고 있다가 눈물 쏙빼거나 웃음이 막 터지는 그런 책 좀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제 감수성이 죽어버린 게 아닐까 하는 서글픈 느낌이 드네요. ^^;;

프레이야 2006-07-11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엉이님, 저도 그런 면이 많이 있다고 여겨져요. 왠만한 거에는 순수한 감동이 잘 안 일어나죠.. ^^
 
 전출처 : 비자림 > 너에게만 말하마

 

 너에게만 말하마

    

 

너에게만 말하마 흐물거리는

살바도르 달리의 시계를 쫓아간 그 순간

호두껍질 같았던 우리의 시간이

함께 딱 열리고

우리는 하염없이 젖으며 온 방 안에 꽃나무를 심은 것 같아

갈기를 휘날리며 달리는 말들의 경주를 본 적이 있니?

그녀의 허리와 그녀의 가슴이 허덕이며 하는 말들

나의 몸은 신기하게도 그녀의 몸을 해독할 수 있었지

말의 잔등마다 꼬리마다 쏟아지는 수천 개의 꽃잎들

네 안에서 달리고 싶어

네 안으로 들어가 달릴거야

나는 달리다 죽을 거야

환희의 곶(串)마다 축제의 북소리가 울려 퍼지고

그녀 안의 가장 소중한 우물에 다다른 순간

나는 두레박이 되어 힘차게 봄을 길어 올렸지

살얼음 같았던 그녀의 영혼 어딘가에서도

얼음이 풀리는 소리가 들렸어

서서히

서서히

꽃나무에도 새순이 돋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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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또유스또 2006-07-10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36178

이잉  누가 이리 빨리 왔다요...

아뭏든 이등..

월요일...기분 좋게 시작하세요.. 화이팅..


프레이야 2006-07-10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또또님, 비가 쏟아져요. 날아갈라 오늘 밖에 다니지 마시고 계시길..^^
 
키다리 아저씨 청목 스테디북스 25
진 웹스터 지음, 김창직 옮김 / 청목(청목사) / 2000년 12월
평점 :
절판


키다리아저씨는 워낙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하지만 다시 읽어보며 예전에 가졌던 느낌과 다른 것들이 있었다. 중학 1학년 아이들과 함께 읽었는데, 우선 편지체라는 점이 아이들이 읽기에 쉽게 느껴졌다. 또한 한 여학생이 멋진 기부자의 도움을 통해 사회의 일원으로 독립적인 성장을 하는 이야기와 반전이 재미를 주는 눈치다. 키다리 아저씨라는 이름으로 발신되는 답장 없는 편지를 읽어가는 독자는 어느 지점에서부터 그 사람이 누구인지 눈치를 챌 수 있다. 하지만 좀더 이야기에 푹 빠지지 못하는, 아니 이야기에 너무 빠지는, 어쩌면 순진한 독자는 그걸 눈치채지 못하기 때문에 의외의 결말에 놀란다.

진 웹스터가 이 작품을 낸 시기는 1900년대 초반이다. 당시 미국사회는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사회를 엄격하게 지배하며 보수적인 성향이 곳곳에 박혀있는 시기이다. 주디가 살아온 고아원은 밀폐되고 부조리한, 자유의지나 인격은 무시되는 사회를 상징한다. 18년을 살아온 그곳에서 주디를 벗어나게 해 주는 손길은 어느 평의원의 기부에서 시작된다. 주디의 문학적 재능을 보고 대학 4년간의 학비와 용돈을 넉넉히 지원해주는 독지가는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한다.

<키다리 아저씨>는 주디의 대학생활 4년 간의 이야기이다. 신입생일 때와 학년이 하나씩 올라갈 때의 이야기들을 통해 독자는 주디의 성장을 실감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가장 신나는 부분은 매력적인 여자를 한 사람 만나는 일이다. 유쾌하고 적극적이며 긍정적인 사고방식의 씩씩한 주디. 재치까지 겸비한 주디는 더 이상 아이가 아니라 한 사람의 '훌륭한 공민'으로 성장하기에 이른다. 주디는 대학에서 거치는 모든 배움의 과정과 학문의 세계에 무척 열정적이다. 사교적이고 솔직담백한 성격에 자유의지를 사랑하는 주디는 자신의 소소하거나 다소 큰 일까지 스스로 결정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또한 키다리아저씨의 경제적 도움에도 불구하고 장학금을 받고 학비를 벌어 많은 돈을 되돌려주기까지 한다.

주디의 독립은 경제적인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만의 '~주의'에 대해 생각해보고 사회의 모든 일들에 열린 눈으로 생각하려한다. 불필요한 소비나 사치에는 절제심을 발휘하려 노력하면서도 옷가지에 대한 욕심이 생기는 것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또한 지긋지긋하게 생각해오던 고아원 세계를 4학년이 되면 긍정적으로 평가하기에 이른다.  고아원은 또 다른 세상을 좀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을 길러준 독특한 경험이었다고 말이다. 매초마다 행복하다고 생각하겠다고, 불행을 느끼는 순간(하다못해 이가 아플때도) 에도 행복을 생각하겠다는, 밝은 기운이 넘치는 인물이다.

이 책의 미덕은 여기에 있다. 세월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 매력적인 인물, 주디. 그녀는 언제까지나 그런 친구로 우리 기억 속에 살아있을 것이다. 어려운 환경의 여자가 부유하고 멋진 남성을 만나 행복으로 간다는, 어쩌면 신데렐라 같은 결말이라 하더라도 이 이야기가 아직도 읽히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것 같다. 이렇게 자신을 사랑하고 개척하며 사회의 훌륭한 일원이 되기 위해 바람직한 성장을 하는 재능있는 인물이라면 이런 정도의 행운이 따를 수도 있다는, 아니 따라야한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게 된다.

작가는 실제로 대학시절의 한 어려웠던 친구를 모델로 주디를 그려냈다고 한다. 그러한 친구도 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아무튼 이 책은 주디와 주디가 사랑하게 되는 남자 (결말이 나오기 전에는 명문가의 도련님이지만)의 매력적인 품성이 더욱 독자를 끄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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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6-07-09 0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른이 되어서 읽어보니 주디가 참 매력적이더라구요. 키다리 아저씨 그후 이야기도 재밌답니다. ^^
 
밥보다 만화가 더 좋아 산하어린이 127
이영옥 지음, 박재동 그림 / 산하 / 2005년 6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만화가 백재동 이야기이다. 산하어린이에서 '나도 따라갈래요' 시리즈로 나온 책이다. 뒷책날개를 보니, 연극인 박정자와 최일도 목사 편도 나와있다. 이미 세상을 뜬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책보다 요즘 아이들에게는 이렇게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가 훨씬 친근하게 다가가는 것 같다. 박재동 만화가의 이야기를 4학년 남자아이들과 함께 보며 오랜만에 재미있게 읽은 책이란 걸 눈치챌 수 있었다. 아이들은 우선 만화가 라는 직업에 관심을 가졌다. 만화와 게임을 좋아하는 아이들로서는 꽤 호기심이 가는 눈치였다.

책표지에는 박재동의 얼굴이 사진으로 나와있고 그가 그린 만화 한 장과 몇몇의 만화 캐릭터들이 그려져있다. 그 캐릭터들은 영화필름 안에 들어있는 걸로 보아 영화 애니메이션의 주인공들인가,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책을 읽어보니, 박재동 만화가는 요즘 '오돌또기' 라는 극장용 애니메이션 작업에 빠져있다고 한다. 제주 4.3항쟁을 소재로 하는 작품인데 시나리오와 캐릭터 등 준비가 거의 다 되었는데도 내용상의 몇몇 문제와 제작비 문제로 인해 아직 완성을 못 하고 있다고 하니 안타깝다.

이 책은 한 인물이 자신의 재능을 어떻게 살려나가고 어릴 적 가슴에 심었던 꿈을 어떻게 이루려고 노력하는지를 보여준다. 박재동은 어릴 때부터 미술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상당한 열정과 고집이 보이는 장면에서는 웃음이 묻어나면서도 진한 감동을 느낄 수 있다.  그의 재능을 보고 어려운 경제환경에서도 믿고 밀어준 부모님들, 그의 재능을 높이 사서 회비를 받지 않고 그림지도를 해준 신창호 화백, 그리고 어려운 고비에서 좋은 길로 인도해준 친구들과 하고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믿어준 아내에 이르기까지 만화가 박재동은 재능만이 아니라 좋은 사람들이라는 복까지 얻은 사람 같아 보였다.

인물의 그릇을 알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고교미술교사로 재직 중일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제자가 "선생님의 그림은 독특하긴 한데 뭔가 빠져있습니다. 인간의 삶과 역사가 빠져있습니다." 이런 내용의 말을 한다. 여기서 박재동은 "내가 너의 스승이 아니라 네가 나의 스승이다. 그려도 그려도 뭔가 허전한 게 있었는데 이제야 그걸 알겠다." 라고 대답하며 침체기에 빠져든다. 제자의 말에 이렇게 수용의 자세를 보이며 거듭날 수 있는 회초리로 삼은, 인물됨을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이 일을 계기로 박재동의 삶은 전환점을 맞는 것 같다.

이후 박재동은 한겨례신문의 시사만화가로 활동하며 만평을 쓰고 그린다. 가로세로 9센티미터 크기의 네모 안에 강한 인상의 이야기를 그려내야하는 일이 피를 말리는 작업이었다고 간접적으로 술회한다. 이 책에는 그 때 인기있었던 시사만평도 몇 실어놓았고  환경문제를 비롯해 우리 사회 여러 곳 소수자들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만화를 그리고 있다. 아이들에게<십시일반>에 나와 있는 박재동의 그림도 덤으로 보여주었더니,  이 책에 소개되어 있는 만화가 그 책에 나와있는 걸 보고 흥분하며 좋아했다.  당장 그 만화책을 사겠다고 책 제목을 적고 책값을 물어보고 야단이다. 빌려주겠다고 해도 살 거라고 우긴다.^^

박재동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어릴 적 '요술소년'과 '피노키오' 만화영화를 보면서 '움직이는 만화'를 그리고 싶다는 꿈을 버리지 못한다. 그래서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작업의 세계에 빠져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다.  재능에 대한 자신감과 자존심 그리고 한 길로 가는 고집스러움외에도 꿈을 이루기 위해 갖추어야할 것이 있다면 노력, 열정 그리고 인간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함을 느낄 수 있다.  어릴 적부터도 박재동은 그림과 관련된 것이라면 무엇이든 스크랩을 해두어 훗날 만화를 그릴 때 그것들이 상당히 도움된다고 한다. 열정이라면 대표적으로, 밥도 안 먹고 잠도 아껴가며 다락방에서 장편만화를 그리는 일에 푹 빠졌던 학창시절의 추억을 들 수 있다. 그 스케치북을 아버지가 다 쓴 것인 줄 알고 버렸을 때 얼마나 아까웠을까.  제자의 일침으로 깨닫게 된, 인간에 대한 사랑은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된다. 나를 돌아보게 하는 글귀였다. 

이 책은 박재동이 담당한 삽화와 함께,  자신이 어린시절부터 그렸던 여러가지 그림과 만화, 서양화, 최근에 그린 인권만화들과 2004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기획한 애니메이션 '별별이야기' 중  오돌또기 식구들과 함께 만든 '사람이 되어라' 의 필름 컷 몇 장면까지 다양한 볼거리를 담고 있다. 책의 뒷편에는 간이 '만화박물관'을 만들어 만화에 대한 짧은 정보를 보기좋게 실어놓았다. 행간도 넓고 읽기에 좋은 쉬운 문체로 초등 4학년 이상이면 읽기를 권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품절로 되어있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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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또유스또 2006-07-08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흐 제가 봐도 될까요?
보고 싶어지네요..

내이름은김삼순 2006-07-08 1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은 좋은 책들을 많이 알고 계신것 같아요, 저두 좀 많이 추천해 주세요^^
조카들이 읽을만한 동화책, 제가 읽어도 좋은책들,,헤헤~^^

프레이야 2006-07-08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또또님, 보셔도 되지요. 재미나요.. 근데 알라딘에는 품절이던데요..
삼순님 조카들 나이는요??

소나무집 2006-07-09 0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박재동 님을 좋아하는데 한번 봐야겠어요.

로드무비 2006-07-30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땡스투 누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