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

나는 무엇으로부터 찢겨진 몸일까

유난히 엷고 어룽진 쪽을
여기에 대보고 저기에도 대본다

텃밭에 나가
귀퉁이가 찢겨진 열무잎에도 대보고
그 위에 앉은 흰누에나방의 날개에도 대보고
햇빛좋은 오후 걸레를 삶아 널면서
펄럭이며 말라가는 그 헝겊조각에도 대보고
마사목에 친친 감겨 신음하는
어린 나뭇가지에도 대보고

바닷물에 오래 절여진 검은 해초 뿌리에도 대보고
시장에서 사온 조개의 그 둥근 무늬에도 대보고
잠든 딸아이의
머리띠를 벗겨주다가 그 띠에도 슬몃 대보고
밤 늦게 돌아온 남편의 옷을 털면서 거기 묻어온
개미 한마리의 하염없는 기어감에 대보기도 하다가

나는 무엇으로부터 찢겨진 몸일까

물에 닿으면 제일 먼저 젖어드는 곳이 있어
여기에 대보고 저기에도 대보지만
참 알 수가 없다
종소리가 들리면 조금씩 아파오는 곳이 있을 뿐

                                                                   -나희덕-




댓글(4)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파란여우 2005-06-17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흔적이 저는 더 반가워요^^

물만두 2005-06-17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요^^

水巖 2005-06-18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만에 배혜경님 자취를 발견하는군요. 열심히 하시죠?
가끔 제게도 흔적(댓글)을 남겨 주시기를...........

프레이야 2005-06-29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우님, 물만두님, 그리고 수암님!! 장마가 시작되었네요. 건강 유의하시구요^^
늘 행복하시길... 넘 반가워요.
 
어두운 숲속에서 미네르바의 올빼미 8
애비 지음, 펠릭스 샤인베르거 외 그림, 유동환 옮김 / 푸른나무 / 2004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표지의 그림에는 아주 대조되는 이미지가 그려져있다. 이글거리는 붉은 눈 가운데 광채를 발하는 검은 눈동자, 꿰뚫을 듯 상대를 제압하고 있는 뾰족한 부리 아래에는 왜소한 몸집의 생쥐 한 마리가 어디론가 걸어가고 있다. 불안한 듯 눈을 굴리며 장대에는 하얀 깃발을 매달고 풀 숲을 헤치며 가고 있다. 우선 몸집의 크기로도 대적이 안 될 것 같은 두 생명체가 보는 이의 호기심을 잔뜩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이 책에 매료된 첫번째 이유는 표지를 비롯한 책 속의 모든 삽화들이다. 풍부한 색감과 동작의 느낌이 그대로 살아있다. 모두 생쥐의 눈높이에서 보고 그린 것이라 배경이 되는 모든 것들이 한결 실감이 난다. 크고 작게, 멀고 가깝게, 생쥐의 눈에 비춰지는 모든 대상을 있는 그대로 그려놓아 거대하기만 한 그 모든 악조건을 이겨내고 승리를 끌어낸 생쥐, 양귀비에게 보내는 박수가 부자연스럽지 않게 느껴진다. 특히 흙길 위에서 양귀비와 미스터 우훅스가 벌이는 결투 장면은 압권이다. 이 동화를 판타지 영화로 만든다면 장대한 연출이 가능할 것 같은데 몇몇 장면은 삽화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등장인물들의 개성있는 성격 묘사도 두드러진다. 대화를 통하여 드러나는 성격이 아주 생동감있게 전해진다. 어느 한 장면을 골라 연극으로 꾸며보아도 특별한 활동이 될 정도로 대화로 이어지는 사건의 전개가 지리하지 않다. 인물들이 나누는 대화는 재치가 풍부하다. 심리묘사 또한 공감되는 부분이 많아 웃음을 자아낸다. 대화와는 또 다르게 풍경을 그리는 부분은 그것대로 세밀한 묘사를 하고 있다. 그레이하우스에서 뉴하우스를 가는 길 군데군데에서 만나는 모험의 장면을 세심하게 그린 풍경 안에서 상상해 보는 재미가 솔솔하다.

이 책이  마음에 드는 마지막 이유는 가볍지 않은 주제를 손에 땀을 쥐는 이야기를 통해 잘 녹여서 풀어냈다는 점이다. 설명이나 설교조의 동화는 식상한 느낌을 주고 마음의 거리를 두게 한다. 하지만 이런 식의 동화라면 초등 고학년 쯤이면 꽤 흥미롭게 읽을 것이다. 세상의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보이지 않는 권력은 힘 없는 자들을 지배하기 위해 거짓사실을 만들어 유포한다. 그것에 무조건 순종하고 의문을 던져보지 않는 자는 알 수 없는 진실을 캐내는 과정에서 주인공 생쥐는 중요한 교훈을 스스로 얻게 된다. 본질에 다가가서 생각하기, 남다른 생각으로 진실에 접근하기,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 안에 도사리는 두려움에서 벗어나 자신의 다른 한 쪽에 숨어있는 '용기'를 끄집어내야한다는 점이다. 부딪혀보면 예상치 않은 해결방법과 담대함이 생기기도 하니 얼마나 놀라운가. 용기란 애시당초 우리  속에 있다. 새로이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부딪혀보는 순간부터 두려움에 눌려 나오지 못한 용기란 녀석이 고개를 쳐드는 것이다. 우리는 '용기'에게 활약할 수 있는 기회조차 주지 않고 물러서거나 섣부른 겉핧기식판단으로 오류를 범하고 있음이다. 

주인공 양귀비에게 진실을 파헤치는 눈을 가져다준 건 돼지풀이라는 죽은 남자친구이다. 권력 앞에 반기를 들다 억울한 죽음을 당한 돼지풀이 세상에 남긴 것은 한 그루의 개암나무와 귀걸이 한 짝이다. 양귀비는 어두운 숲의 지배자 우훅스의 실체를 캐내고 싸워서 승리하여 모든 생쥐들의 삶을 더 나은 쪽으로 이끌었다. 아직은 다 자라지 못한 연약한 개암나무는 장차 무성해질 '현명한 의식'의 나무이다. 그 가지 끝에 걸려서 황금빛을 발하는 귀걸이는 언제까지나 그 의식을 깨워주는 각성의 상징물이다. 달빛이 훤하게 빛나는 날 양귀비와 그 가족들은 손을 잡고 빙글빙글 돌며 왈츠를 춘다. 양귀비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하고 싶었던 한 가지가 바로 자유롭게 춤을 추는 것이었지 않나.  결말이 풋풋하게 끝나면서 독자에게는 긴장 뒤의 만족감을 주는 점도 미덥다.

 "넌 세상의 소금이야." -  적인 줄로만 알았던 침털공자가 양귀비에게 한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꽃들에게 희망을 (반양장)
트리나 포올러스 지음 / 시공주니어 / 199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이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연도가 1972년이라는 사실을 얼마 전에 알았다. 표지만 보면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그림책으로만 보이는 이 책은 30년이 넘게 스테디셀러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것은 이 책이 보편타당한 진실과 시공을 초월한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꽃들에게 희망을>은 애벌레에서 부터 나비가 되어 저 세상으로 간 모든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며, 그러한 모든 사람을 위한 이야기다. 또한 어느 사회 어느 국가에서도 생각할 수 있는 나비들의 이야기다.

무엇이 되는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사는가가 삶의 중요한 의미라고 생각하면서도 우리는 종내 마음 속에 부족함을 담고 살아간다. 가까운 사람에게조차 작은 희망의 씨앗 하나 뿌리지 못하면서 무슨 거창한 표어를 제창한다고 그 삶이 훌륭한 것을 아닐 것이다. 내 주위에 피어있는 작은 꽃들에게 먼저 생명과 희망을 주는 생명체가 나비이지 않은가.  자기본위의 안락한 삶만을 추구하는 애벌레의 단계에서 타인의 삶에 눈을 돌리는 나비의 단계가 되었을 때, 애벌레 기둥 꼭대기에 있는 허상이 아닌 진정 고귀한 삶의 목표에 이르렀다고 말할 수 있겠다. 

'나비'는 자신 안에 숨어있는 혁명정신을 은유한다. 나비는 진정한 사랑을 실천하는 성숙한 삶의 원형이다. '고치'는 죽음과도 같은 고통의 시기이자 변혁의 시기이다. 죽은 듯이 보여도 내적으로는 상당한 것이 꿈틀대며 날개를 펼칠 날을 기다리고 있다.

개인의 삶으로 보아서도 애벌레와 고치의 시기를 거치지 않고서는 진정으로 변화된 자신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반복되는 일상과 안락함 속에서도 고치가 되어 죽은 듯 매달려있을 정도의 시간을 대비하고 있어야한다. 준비된 자는 기회가 왔을 때 놓치는 확률이 낮다. 자기물음에 확신에 찬 답을 스스로 제시할 수 있을 때 고치의 시기는 더 이상 고통이 아닐 것이다. 어느 단계에 있을까, 우리는?

하나의 국가나 사회도 애벌레에서 고치를 거쳐 나비의 단계를 밟는다.  고치의 단계를 비웃거나 속단해서도 안 되며 애벌레의 단계를 얕보아서도 안 된다. 애벌레가 없으면 나비는 없기 때문이다. 애벌레를 죽여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죄없는 애벌레들이 죽어가고 그 애벌레들을 위해 나비의 삶을 살다가 떠난 이들의 시절에 대한 이야기는 역사책 속 이야기의 일부가 되었다. 하지만 그 모든 과정은 지금도 우리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음이다. <꽃들에게 희망을>에 내재하는 보편타당한 진실이란 개인과 사회의 역사가 굴리는 수레바퀴 아래 있는 진리라고 말할 수 있겠다. 

중1학생들과 이 책을 다시 보며 나비같은 삶을 살다간 인물들을 떠올렸다. 전태일, 마더 테레사... 명징한 언어의 정수를 보여주는 짧고 시적인 글과 선이 뚜렷한 그림 속에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책은 고학년을 위한 책이다. 올바른 성공을 한 삶이란 나비처럼 타인을 위한 삶으로 승화된 모습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어떤 직업을 가지고 살더라도 한 마리 나비와 같은 마음으로 살아야겠다고 느끼는 아이들을 보며 그들이 바로 희망이라 생각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도전한다 나의 첫소설 2
클로드 카레 지음, 이브 칼라르누 그림, 유정림 옮김 / 함께자람(교학사) / 200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릴 적 기억을 떠올려보면 난 참 겁이 많았던 것 같다. 특히 육체적으로 부딪혀야하는 일이라면 더욱 오금이 저리고 식은땀이 비직비직 나곤 했다. 극기훈련 따윈 엄두도 못 내었고 학교 체육시간만 되어도 아랫배가 살살 아파왔다. 뜀틀을 뛰어넘어야 할 때면 정말 지옥에라도 달아나고싶을 정도였다. 그 높고 딱딱한 장애물을 두 손을 집고 훌쩍 뛰어넘으라니 이건 완전 불가능한 일로만 보였다. 체육선생님의 구령에 따라 뛰어가다가는 뜀틀 중간에 털썩 걸터앉아버리기 일쑤였다. 내 얼굴은 달아오르고 가슴은 콩닥댔다. 백 미터 달리기도 거의 2박3일이 걸릴 정도였는데, 이유는 날쌔게 달리면 넘어져서 다칠 것 같으니까 속도를 붙이지 못하는 것이었다. 두 발에 바퀴가 달린 것처럼 쌩하니 달리던 친구들을 보며 침을 꿀꺽 삼키곤 했다.

그런 내가 지금은 숏트랙 신발을 신고 300미터정도를 48초에 달린다. 스케이트를 배운지 그럭저럭 일년이 좀 넘었다. 예전같으면 꿈에도 생각 못할 운동을 제법 잘 해내고 있는 셈이다. 나를 아는 친구나 식구들은 상당히 의외라는 눈길을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도전해 본다는 것 자체가 삶의 활력이 됨을 인정한다.

<나는 도전한다>는 여주인공 솔렌의 한방 먹이기이다. 대상은 허풍쟁이 오빠들이다. 사실 솔렌이 극기훈련에 참가한 것은 오빠들을 한방 먹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성격에 한방을 날리기 위해서였다. 자신감이 없고 소심하며 무엇에나 '예' 라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하는 성격을 고쳐보는 게 목적이었다. 솔렌은 래프팅, 암벽타기, 동굴탐험 그리고 밤에 텐트 안에서 자기 같은 일들을 통해 자신에게 숨어있는 용기와 지혜를 발견한다. 반대로, 솔렌의 오빠 위그와 그의 친구들에게 숨어있었던 것은 공포증과 허세, 위선과 겉멋 같은 것들이다. 오빠들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차분하게 해결을 한 사람은 다름아닌 솔렌이었다. 

이 책은 남자들에 비하여 약하다고 생각하기 쉬운 여자아이들에게 통쾌함과 자신감을 줄 것이다. 누구든 겉으로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 본모습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하다. 자신의 본모습을 발견하는 날 어떠한 일에 대해서도 물러서지 않고 대처할 수 있는 참용기가 생겨날 것이다. 

문장이 참 쉽게 읽히고 군데군데 유머가 있다. 활자도 크고 여백이 많아 눈이 시원한 장점도 있다. 지리하지 않고 손에 땀을 쥐며 빠르게 전개되는 이야기 속에 빠져있다보면 어느새 그들 일행과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 있다. 오빠들에게 드러난 문제점들로 인해 훈련의 일정은 변경될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의 헛점 때문에 일정대로 다 하지 못하고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도 오빠들은 여전히 허풍을 떨고 솔직하지 못한 태도를 보인다. 하지만 도전에 참가하면서부터 마음가짐을 단단히 하고 자신의 목표를 잊지 않았던 솔렌은 마음의 키가 성큼 자란 것 같다.  자신의 소심한 성격에 크게 한 방을 먹인 셈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출처 : 꼬마요정 > 바람은 그 소리를 남기지 않는다

    바람은 그 소리를 남기지 않는다. 바람이 성긴 대숲에 불어와도 바람이 지나가면 그 소리를 남기지 않는다. 기러기가 차가운 연못을 지나가도 기러기가 지나가고 나면 그 그림자를 남기지 않는다. 그러므로 군자(君子)는 일이 생기면 비로소 마음이 나타나고 일이 지나고 나면 마음도 따라서 비워진다. 삶들은 무엇이든 소유하기를 원한다. 그들의 눈을 즐겁게 해 주는 것, 그들의 귀를 즐겁게 해 주는 것, 그리고 그들의 마음을 즐겁게 해 주는 것이면 가리지 않고 자기 것으로 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남의 것이기보다는 우리 것으로, 그리고 우리 것이기보다는 내 것이기를 바란다. 나아가서는 내가 가진 것이 유일하기를 원한다. 그들은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이기 위하여 소유하고 싶다고 거리낌 없이 말한다. 얼마나 맹목적인 욕구이며 맹목적인 소유인가? 보라. 모든 강물이 흘러 바다로 들어가 보이지 않듯이, 사람들은 세월의 강물에 떠밀려 죽음이라는 바다로 들어가 보이지 않게 된다. 소유한다는 것은 머물러 있음을 의미한다. 모든 사물이 어는 한 사람만의 소유가 아니었을 때 그것은 살아 숨쉬며 이 사람 혹은 저 사람과도 대화한다. 모든 자연을 보라. 바람이 성긴 대숲에 불어와도 바람이 가고 나면 그 소리를 남기지 않듯이, 모든 자연은 그렇게 떠나며 보내며 산다. 하찮은 일에 너무 집착하지 말라. 지나간 일들에 가혹한 미련을 두지 말라. 그대를 스치고 지나는 것들을 반기고 그대를 찾아와 잠시 머무는 시간을 환영하라. 그리고 비워두라. 언제 다시 그대 가슴에 새로운 손님이 찾아들지 모르기 때문이다. - "채근담" 중에서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