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숲속에서 미네르바의 올빼미 8
애비 지음, 펠릭스 샤인베르거 외 그림, 유동환 옮김 / 푸른나무 / 2004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표지의 그림에는 아주 대조되는 이미지가 그려져있다. 이글거리는 붉은 눈 가운데 광채를 발하는 검은 눈동자, 꿰뚫을 듯 상대를 제압하고 있는 뾰족한 부리 아래에는 왜소한 몸집의 생쥐 한 마리가 어디론가 걸어가고 있다. 불안한 듯 눈을 굴리며 장대에는 하얀 깃발을 매달고 풀 숲을 헤치며 가고 있다. 우선 몸집의 크기로도 대적이 안 될 것 같은 두 생명체가 보는 이의 호기심을 잔뜩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이 책에 매료된 첫번째 이유는 표지를 비롯한 책 속의 모든 삽화들이다. 풍부한 색감과 동작의 느낌이 그대로 살아있다. 모두 생쥐의 눈높이에서 보고 그린 것이라 배경이 되는 모든 것들이 한결 실감이 난다. 크고 작게, 멀고 가깝게, 생쥐의 눈에 비춰지는 모든 대상을 있는 그대로 그려놓아 거대하기만 한 그 모든 악조건을 이겨내고 승리를 끌어낸 생쥐, 양귀비에게 보내는 박수가 부자연스럽지 않게 느껴진다. 특히 흙길 위에서 양귀비와 미스터 우훅스가 벌이는 결투 장면은 압권이다. 이 동화를 판타지 영화로 만든다면 장대한 연출이 가능할 것 같은데 몇몇 장면은 삽화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등장인물들의 개성있는 성격 묘사도 두드러진다. 대화를 통하여 드러나는 성격이 아주 생동감있게 전해진다. 어느 한 장면을 골라 연극으로 꾸며보아도 특별한 활동이 될 정도로 대화로 이어지는 사건의 전개가 지리하지 않다. 인물들이 나누는 대화는 재치가 풍부하다. 심리묘사 또한 공감되는 부분이 많아 웃음을 자아낸다. 대화와는 또 다르게 풍경을 그리는 부분은 그것대로 세밀한 묘사를 하고 있다. 그레이하우스에서 뉴하우스를 가는 길 군데군데에서 만나는 모험의 장면을 세심하게 그린 풍경 안에서 상상해 보는 재미가 솔솔하다.

이 책이  마음에 드는 마지막 이유는 가볍지 않은 주제를 손에 땀을 쥐는 이야기를 통해 잘 녹여서 풀어냈다는 점이다. 설명이나 설교조의 동화는 식상한 느낌을 주고 마음의 거리를 두게 한다. 하지만 이런 식의 동화라면 초등 고학년 쯤이면 꽤 흥미롭게 읽을 것이다. 세상의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보이지 않는 권력은 힘 없는 자들을 지배하기 위해 거짓사실을 만들어 유포한다. 그것에 무조건 순종하고 의문을 던져보지 않는 자는 알 수 없는 진실을 캐내는 과정에서 주인공 생쥐는 중요한 교훈을 스스로 얻게 된다. 본질에 다가가서 생각하기, 남다른 생각으로 진실에 접근하기,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 안에 도사리는 두려움에서 벗어나 자신의 다른 한 쪽에 숨어있는 '용기'를 끄집어내야한다는 점이다. 부딪혀보면 예상치 않은 해결방법과 담대함이 생기기도 하니 얼마나 놀라운가. 용기란 애시당초 우리  속에 있다. 새로이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부딪혀보는 순간부터 두려움에 눌려 나오지 못한 용기란 녀석이 고개를 쳐드는 것이다. 우리는 '용기'에게 활약할 수 있는 기회조차 주지 않고 물러서거나 섣부른 겉핧기식판단으로 오류를 범하고 있음이다. 

주인공 양귀비에게 진실을 파헤치는 눈을 가져다준 건 돼지풀이라는 죽은 남자친구이다. 권력 앞에 반기를 들다 억울한 죽음을 당한 돼지풀이 세상에 남긴 것은 한 그루의 개암나무와 귀걸이 한 짝이다. 양귀비는 어두운 숲의 지배자 우훅스의 실체를 캐내고 싸워서 승리하여 모든 생쥐들의 삶을 더 나은 쪽으로 이끌었다. 아직은 다 자라지 못한 연약한 개암나무는 장차 무성해질 '현명한 의식'의 나무이다. 그 가지 끝에 걸려서 황금빛을 발하는 귀걸이는 언제까지나 그 의식을 깨워주는 각성의 상징물이다. 달빛이 훤하게 빛나는 날 양귀비와 그 가족들은 손을 잡고 빙글빙글 돌며 왈츠를 춘다. 양귀비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하고 싶었던 한 가지가 바로 자유롭게 춤을 추는 것이었지 않나.  결말이 풋풋하게 끝나면서 독자에게는 긴장 뒤의 만족감을 주는 점도 미덥다.

 "넌 세상의 소금이야." -  적인 줄로만 알았던 침털공자가 양귀비에게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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