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벨의 섬 뒹굴며 읽는 책 5
윌리엄 스타이그 글 그림, 송영인 옮김 / 다산기획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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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는 때로 사람들 마음 속의 그늘진 부분과 가슴 아팠던 기억들을 떠오르게 만듭니다. 지난 날의 슬픔, 입 밖에 낼 수 없었던 갈망, 실망, 유감, 차디찬 비탄 같은 것들을 생각나게 합니다. 또한 소란스러운 밝은 날에는 결코 떠오르지 않는 의문들을 곰곰이 생각해 볼 여유를 주기도 합니다.-66쪽

우주는 무한히 차갑고 쓸쓸하며 졸린 곳이지만 바람만은 달랐습니다. 바람은 겨울의 한 부분이 아니라 지옥에 떨어진, 환영 받지 못하는 영혼이었습니다. 비명을 지르고, 꿍꿍거리고, 쉴 곳과 자기의 업보를 닦을 곳을 찾아 정처없이 헤매는 영혼이었습니다.-1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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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03-01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6학년 정도 이상에게 권해요. 윌리엄스타이그의 산문이 너무나 멋드러져요.
 
중학교 1학년 반올림 3
수지 모건스턴 지음, 이정임 옮김 / 바람의아이들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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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지 모건스턴은 미국출신 유태계 프랑스인이다. 출신에 대한 선입견을 갖기 이전에 모건스턴의 작품 속에는 개성있고 당차며 적극적인 여자아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곤 한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자해서인지 몰라도 재기발랄하면서 강한 캐릭터를 보여준다. 그녀의 작품은 하나같이, 통통 튀는 공을 받아 치며 이리저리 공을 굴리고 이편저편으로 발을 디디며 주인공과 함께 가는 것 같은 기분을 선사한다. 재치있는 문장과 참신한 어휘의 선택, 생동감과 현실감이 느껴지는 사건전개와 허를 찌르면서도 시적인 비유같은 것들로도 충분히 유쾌하지만, 언제나 인물에 부여하는 작가의 포용력이 가장 마음에 든다.

<중학교 1학년>을  이제 중학생이 될 6학년 아이들과 함께 읽었다. '바람의 아이들'에서 엮는 '반올림'시리즈는 청소년을 겨냥하고 있지만 이 책은 6학년을 마감하려는 학생이나 중학교 1학년 정도의 학생들이 읽어보면 공감도 되고 이래저래 흐트러진 생각의 조각들을 얼마간 주워담을 수도 있겠다. 중학교라는 이름에 설렘과 호기심과 두려움을 동시에 갖고 있을 예비중학생들에게 또는 중학교 1학년을 보내고 2학년을 맞이할 친구들에게도 이 책은 학교의 의미와 그곳에서 배우는 것들의 가치, 삶에 대한 태도 같은 것들에 한번쯤 생각의 동기를 부여할 것이다.

이 책은 프랑스 중학교의 모습을 엿볼 수 있어 호기심이 더 한다. 우리네 중학교와 비슷한 점도 있지만 몇가지 다르게 보이는 점이 눈길을 끈다. 예를 들면 학부모와 학생과 교사가 함께 하는 심의회 같은 것이다. 여기서 학교를 개혁하는 길에 대한 학부모의 적극적인 제안과 체험학습에 드는 경비문제에 대해 푸념을 늘어놓는 보수적인 선생님의 말을 들을 수 있다. 마르고는 '돈도 안 드는 일'을 한 가지 제안한다. '학교'라는 이름부터 바꾸어 학교에 대해 품고 있던 생각 자체를 바꾸어 원점에서 새롭게 출발하자는 것이다. 이를 테면 '학교'를  '앎의 터전', '탐구모임', '삶의 현장' 같은 것으로 바꾸는 것이다. 학교를 '감옥'이라고 여기는 마르고의 입을 통해 던지는 작가의 생각이 신선하다.  

기대감과 현실의 결과 사이에는 예측불허의 괴리감이 있다는 것을 감안해야한다. 마르고는 중학교입학통지서를 일흔 번이나 들여다보고 새로운 시작을 하지만 학교생활은 만만하지가 않다. 유난스럽다고 퉁을 주는 언니, 곧 익숙해질거라며 말로만 해결하려는 소극적인 엄마, 권위적인 선생님, 생각지 않았던 과중한 숙제, 인색한 수행평가, 별 의미도 인생도 없는 시 쓰기, 담배를 권하는 아이들, 개선에는 무관심한 아이들, 난데없이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는 남자친구. 적극적으로 반의 일을 주도하고 아이들에게 적당한 자극도 주려고 노력한 마르고가 얻은 이름표는 '우리반 최고의 바보'라는 은근한 조롱이다. 이런 기분으로 간 로마로의 단체여행이 그리 산뜻할리도 없다.

여러가지 사건들로 좌절감과 소외감을 느끼지만 좌충우돌 1학년을 겪은 마르고는 알게 모르게 생각이 영글어 있다. 존경하는 뤼롱 선생님께 편지도 쓰고, 자유로운 하늘아래 학교를 다닐 수 있는 행복을 누리는 자신의 환경을 소중히 여기며, 꼼꼼히 기록해둔 각 과목의 노트들이 공중으로 날아가 낱장으로 흩어져버려도 오히려 기분이 가뿐해지는 걸 느낀다. 아더가 그랬던 것처럼 마르고도 세상을 향해 또 한걸음 더 나아가는 모습을 보인다.

모든 건 기대하는 것과는 다르지만 그 모든 것의 결과는 생각하기에 따라 다르게 여겨진다. 마르고는 이런 점에서 충분히 매력적인 아이다. 불만이 있으면 개선이나 개혁을 계획하는 마르고는 체념하고 '룰루랄라하기'만을 하는 반아이들을 이끌어가려고 독단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자신만의 색깔과 주장을 버리지 않는다. 지워지지 않을 상처로 기억될 1학년 나날의 마지막 장면마저도 마음 속에선 어느새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으로 변화하게 만드는, 감성이 풍부한 아이다. 

생을 행복한 것으로 만드는 건 이성보다 감성의 발달에 있지 않나싶다. 마르고는 지리한 수업 중 '심술괴팍단어장'을 돌리다 발각되지만 관대한 뤼롱선생님의 반응에 살 맛을 느끼며 '천사단어장'을 쓴다. 부정적인 단어들이 쏟아지던 머릿속에서 긍정적이며 황홀한 단어들이 술술 풀려나온다. 마음먹기 따라 같은 상황도 다르게 반사되는 모양새에 웃음이 묻어난다. 또한 마르고의 밝고 순수한 심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대목은 갖가지 '바람'에 대해 알게 되는 순간이다. 따분하기만 한 국어시간에 상상 속의 알피유 산에서 느낄 수 있는 온갖 '바람'으로 인해 황홀해진다.

마르고가 '감옥'이라고 생각했던 '학교'는 1학년을 마감할 즈음, 좀 다르게 다가온다. 생각을 바꾸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며 작가는 생각의 개혁을 종용하지 않는다. 그저 서서히 일련의 사건들을 보여주며 생각의 전환을 유도할 뿐이다. 마르고가 지은 싯구를 보면, 학교라는 또 하나의 사회 혹은 인생을 우리는 너무 기대하거나 폄하시킬 필요가 없을 듯하다. 학교는 곰팡내만 나는 곳도 아니고 '피 튀기는' 전쟁터도 아니며, 그냥 학교일 뿐이다. 학교에서 인생의 비밀을 터득하기에는 우리가 앞으로 더듬어가야할 길이 멀고도 길다. 더구나 학교가 우리에게 말하는 법과 주장하는 법을 가르쳐 줄 수 있기에는 세상엔 너무 알아야할 것이 많거나, 알아야할 것이 너무 없기도 하기 때문이다. 

2학년이 될 마르고한테서 일 년 전의 들뜸과 벅찬 기대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좀더 담담한 태도로 다가올 시간을 맞을 것 같다. 작가는 섣불리 낙관적인 눈만을 보여주지 않는다. 싹을 못 틔우는 씨앗도 있을 거라고 미리 마음의 여유를 두는 식이다. 세월을 거슬러 가서 이 책을 읽어보면 그 시절이 얼마나 소중했던가, 다시 한 번 가 보고 싶은 걸, 이런 생각만이 든다. 깔끔하고 재치있는 문장과 아이들의 구미에 맞는 발칙하고 발랄한 어휘로 작가의 개성을 한껏 살린 번역의 맛도 읽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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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받은 상장 내친구 작은거인 9
이상교 지음, 허구 그림 / 국민서관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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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진은 감나무과 낙엽교목인 고욤나무와 고욤나무 열매다.

<처음 받은 상장>에는 주인공 시우가 쓴 멋진 시가 여러 편 등장하는데 '고욤나무'를 제목으로 쓴 시를 보자.

고욤나무

고욤나무는 감나무 동생/꽃도 감꽃보다 조그맣고/잎도 조그맣고/매달리는 고욤도 조그맣다.

고욤나무 가지에 고욤이 다닥다닥/살보다 씨가 더 많은 고욤이 다닥다닥/멀리서 보아도 다닥다닥/싸우지 않고 사이좋게도 다닥다닥.

이 시는 아빠가 4남매를 위해 고욤나무에 매달아준 그네 때문에 시우가 동생이랑 티격태격하다가 부모님께 혼나고 혼자 고욤나무 꼭대기에 걸터앉아 몸을 출렁이며 흥얼거리는 싯구다. 시우는 2학년 여자아이인데 4남매중 세째로 아래 위로 치여서 눈에 띄지도 않고, 별달리 칭찬이나 사랑을 못 받고 사는 아이다. 외모도 그렇고 특기할 만한 자랑거리도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시우는 '어린 시인'이다. 언제나 일을 저지르는 것처럼 보이는 엉뚱한 아이지만, 구구단 숙제를 안 해와서 두 손을 들고 벌을 서 있는 상황에서도 머릿속으론 싯구를 흥얼거리는 사랑스러운 아이다. 손을 들고 창밖으로 보이는 해바라기는 저를 닮아 키만 멀대같이 크다. 벌을 서고 있는 자기를 보는 게 창피해 칠판만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시우를 보면 씩씩하고 덜렁거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에 있는 여리고 착한 마음을 엿볼 수 있다.

2학년 아이들과 이 책을 함께 읽으며 스스로에게 주는 상장을 만들어보게 했다. 왜 스스로에게 상장을 주라고 할까?, 라고 질문을 하니까, 앞으로 더 잘하라고요, 라는 대답들을 했다. 나는 아니, 너희들은 지금으로도 충분히 상장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어. 너무나 착한 언니이며 뭐든 잘 하고 지금 그 자체로 아주 소중하단다. 나는 이런 말을 해 주며 사실은 아이들이 아닌, 나에게 하는 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은 의외로 글쓰기와 피아노치기 그리고 공부를 못한다고 생각하였다. 잘 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아마도 어른들의 채근에 자신감을 잃은 상태가 아닌가하여 마음이 아렸다. 그리고 맏이인 아이들은 동생 때문에 속상하고 억울한 일들을 털어놓으며 눈물이 잠시 고이기도 했다. 형이 있는 아이는 동생으로서 또 슬프게 느낀 적이 있다고 했다. 일상에서 얻는 마음속의 상과 벌들을 시우처럼 시로 풀어쓰게 했더니 진솔한 마음이 드러나 쉽게 동시를 썼다.

작가가 창조한 시우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이다. 또한 가족간의 사랑과 배려가 아이에게 최고의 힘이 된다는 미덕도 흔히 볼 수 있는 주제이다. 하지만 작가는 흔하지 않은 방식으로 시우라는 아이에게 최고의 상장을 수여한다. 작가의 어린 시절처럼 놀기를 좋아하고 엉뚱한 생각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시우는 언제 어떤 상황에서든 '생각의 집'을 지을 줄 안다. 그것을 시로 풀어내며 영글어가는 아이다.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받는 마음의 상처를 오래 담아두지 않고 시로 승화시키며 자신을 키워가는 아이가 대견하다. 결국 시우는 가족들의 사랑을 깨닫고 마음의 병이 불러온 열병을 씻은듯이 턴다. 그런 힘은 밖에서 온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부에서 조금씩 태동하고 있었던 것이라 믿는다.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시우의 동시만 골라 읽어보아도 마음이 따듯해진다. 삽화 또한 율동적이며 시우의 다양한 심리와 내면의 갈등을 표현하는데 또렷한 몫을 한다. 갯벌에서 넘어질 때는 수채물감이 튀어오를 듯 바닷물을 찍어올리고 고욤나무에 매단 그네를 타고 있는 시우는 정말 '구름나라로 놀러 가는 것 같'다. 

시우가 교내 백일장 대회에서 상을 받은 동시는 '그네'라는 제목이다.

그네

손으로 줄을 단단히 잡고 위로/휙- / 하늘나라, 구름나라로 놀러 가는 것 같다.

고욤나무 비밀 나무에 맨 내 그네/나는 혼자 그네를 탄다.

그네에 앉아 하늘로 휙 올라가면/고욤나무 이파리는 손뼉을 쳐 준다./혼자서 잘 탄다며 팔랑팔랑 손뼉을 쳐 준다.

단지 유감이라면, 작가가 '글짓기'라고 쓴 부분을 '글쓰기'라고 바꾸는 게 좋지 않을까 한다. 본문 중에 시우의 장점을 알아보고 있었던 선생님이 글쓰기에 대해 아이들에게 설명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이 말의 뜻에도 '글쓰기'가 더 어울리겠다.

- "글짓기라는 것은 하루마다 일기를 적는 것처럼 자기의 생각을 긴 글이나 짧은 시로 적는 걸 말한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이 읽었을 때, '아, 정말 그렇겠구나!', '나도 이 글을 쓴 사람과 똑같은 생각을 한 적이 있었어.!' 하는 생각이 드는 글이 바로 좋은 글이란다. 그러니까, 생각을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쓰면 되는 거란다. 알겠니? 선생님이 보기에는 우리반에도 그런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있다."

'글짓기'보다는 '글쓰기'가,  좀더 작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내면을 드러내는 작업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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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2006-03-23 1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하며 퍼갑니다..
 
빗자루의 보은 - 초등학생 그림책 6
크리스 반 알스버그 글 그림, 서애경 옮김 / 달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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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책처럼 긴 판형의 그림책은 책꽂이에 꽂기에 키가 맞지 않아 따로 두는 경우가 많다. <빗자루의 보은>은 그런 점에서도 독특하지만 먼저 눈에 들어오는 일러스트레이션이 확연히 변별적이다. 석판화 같은 느낌을 주어 자세히 들여다보았는데, 알고 보니 조각을 전공한 화가답게 석필로 섬세하게 그린 것이었다. 진회색과 갈색톤의 색감이 전체적으로 몽환적이고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주며 한 장씩 액자에 담아둔 것 처럼 멋진 꿈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1학년 아이들과 함께 보았는데 좀 무서웠다고 말한 아이도 있었다. 검은 망토를 둘러 온몸을 감싸고 죽은듯이 누워있는 마녀의 콧날과 입술선이 매혹적이다. 빗자루도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임이 유연하다.

<빗자루의 보은>의 원제는 <Widow's Broom>이다. 번역된 제목은 빗자루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듯한데 원제는 과수댁에 좀더 힘이 실리는 느낌이다. 원작자의 문장인지 번역문장의 힘인지는 알 수 없지만, 문장이 단정하고 어휘수준도 적당히 낯설면서 적절하다. '교교한' 이라는 단어는 저학년에게 좀 어려울 것 같지만 새로운 단어를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전체적으로는, 비약하지 않고 한 걸음씩 놓는 징검다리처럼 문장의 흐름이 매끄러워서 스토리를 자연스럽게 따라갈 수 있게 한다.

제목을 약간 바꾸어 쓴 역자의 의도를 생각해보니, 저학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은혜에 대한 보답이라는 미덕에 촛점을 맞추려는 것인가싶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일러스트레이션과 차분한 문장, 그리고 보은이라는 미덕으로도 이 그림책의 가치는 충분하다. 하지만 연령에 따라 조금 더 숨은 이야기를 발전시켜 생각을 나누어도 좋겠다.

원제를 보면 작가는 과수댁에 애정을 두고 있는 듯하다. 실제로 과수댁이 처음부터 끝까지 한 지혜로운 행동을 보면 알 수 있다. 늙고 홀로 된 과수댁은 오래되어 별 신통력이 없어 보이는 마녀의 빗자루와 동일시된다. 낡아서 잘 날지도 못하는 빗자루를 마녀가 버리고 혼자 가버렸듯이 과수댁은 마을의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의 대상도 아니고 별달리 눈에 띄는 존재도 아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과수댁은 별다를 것 없는 빗자루를 박대하지 않고 거둔다. 또한 처음 보는 광경이나 생경한 대상에 대하여도 마음을 열고 있는 그대로 수용한다는 점이다. 자신과 다르다고 놀라지도 않고 내치지도 않는다. 무심한 듯한 이런 행동은 모든 대상이 품고 있는 나름의 신통력에 대한 믿음으로 보인다. 무심함은 최고경지의 미덕이 아닐까.

어느 날부터 별별 것을 다 도와주는 빗자루를 보고 마침내 한 남자가 길길이 뛴다. 자기보다 더욱 유능해보이는 사람이 된 과수댁을 그냥 보아 넘기지 못한다. 남자가 빗자루에게 가하는 저주의 마음과 그 빗자루를 소유하고 있는 과수댁에 대한 질시의 정도가 다르지 않다. 재산과 아들과 그 외 모든 것을 가진 듯한 남자는 가진 것이 없고 소외된 빗자루와 과수댁을 박해하려 든다. 요물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며 그것을 화형에 처할 방도를 궁리한다. 마녀사냥이라도 하려는 계략이다. 현대식으로 풀자면 소외층에 대한 핍박이다.

여기서, 과수댁이 불의에 대항하는 방식은 소극적으로 보이지만 알고보면 사려 깊고 통쾌하다.  이 인정 많고 지혜로운 과수댁은 가짜 빗자루와 하얀 페인트 외투를 이용하여 위기를 모면한다. 그리고 욕심많고 배타적이며 위압적인 남자들을 쫓아낸다. 전혀 드러나게 싸우지 않고 ''평화적으로'' 이긴다. 혼자 조용히 앉아 눈을 감고 빗자루가 들려주는 피아노곡을 감상하는 얼굴에 세상과 관계에 대한 넓고 깊은 통찰이 배어있다. 

멋진 글과 그림, 재미와 상상, 두근거림과 낯설음 그리고 진지한 생각까지 던져주는 <빗자루의 보은>을 그린 크리스 반 알스버그는 아래와 같은 말을 했다. 작품에 대한 진지한 열정과 자신감 그리고 책임있는 작가의식이 느껴져 더욱 마음에 든다.

 - 내 작품 중에서 어떤 것을 가장 좋아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그때마다 전 "다음에 나올 작품을 가장 좋아합니다." 라고 대답하지요. 적어도 제 다음 작품이 그 전 작품보다는 조금은 나아질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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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 2006-02-22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스버그도 설명이 필요없죠. 그 오만함까지도 사랑하게 되는 작가.
이 책 진작에 보았는데 아직이라며 접었는데 혜경님 리뷰는 넘 땡기는걸요^^
일단 보관함에 넣고....

프레이야 2006-02-23 0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딧불님, 전 이 작가의 그림책을 이번에 처음 만났어요. 매력적이에요^^

반딧불,, 2006-02-23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이런. 이 작가 얼마나 매력적인데요.
얼렁 찾아서 보셔요. 반하실거예요.
 
사람을 길들이는 개 쭈구리
소중애 지음, 심창국 그림 / 예림당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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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소중애 님의 동화는 정말로 재미나다. 아이들을 위해 곱고 바른 언어를 골라 써야지, 아이들에게 반듯한 생각을 심어줘야지, 뭐 이런 딱딱하고 부담되는 생각 자체가 느껴지지 않는다. 가르치려고도 들지 않고 잔소리도 없다. 그러니 아이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다. 이번에 읽게 된 <사람을 길들이는 개 쭈구리>는 2년 전 초판되었던 책이니 쭈구리도 그동안 나이를 먹었겠다.

이 책의 매력을 찾아보자면 여러가지다. 먼저, 작가가 자신의 개와 함께 생활하면서 일어났던 크고 작은 일들을 여과하지 않고 흥미진진하게 보여준다. 쭈구리랑 살게 되는 과정부터 한달간 떨어져있어야 하는 사정까지 알콩달콩, 엎치락뒤치락 펼쳐진다. 실제 쭈구리의 사진을 곁들여놓고 그 아래 쭈구리의 생각을 읽을 수 있게 해놓은 글은 생각해볼 만할 진지함이 묻어있다. 빨간 옷을 입고 눈망울을 굴리며 뭔가 생각하는 표정을 짓고 있는 쭈구리가 귀엽다. 이 책을 보고 애완견을 기르자고 부모를 조르는 아이들이 늘어날 것 같기도 하다.

쭈구리는 잔뜩 경계심을 놓치 않고 이쁜이를 골탕먹이지만 '작가의 동생'이라는 말을 듣고부터 마음을 푼다. 쭈구리와 이쁜이의 관계는 누이동생사이로 발전한다. 쭈구리라는 이름은 이쁜이(작가의 별칭)가 붙여준 이름이다. 성은 '앗'이다. 주름이 위엄있는 귀족처럼 느껴지는 쭈구리는 그래서 할머니 팬이 많다. 쭈구리의 못생긴(?) 얼굴을 갖고 이런저런 말들을 하는 사람들을 보고 쭈구리가 하는 말은 남에 대해 말이 많은 사람들을 찌른다. 이렇게, 쭈구리가 내뱉는 말과 거침없는 행동이 연이어 웃음을 자아낸다.

쭈구리의 눈과 입을 통해 보여지는 이쁜이와 다른 사람들의 행동이 바로 우리들의 행동이기 때문에 가식이 없다. 한여름날, 팬티와 브래지어만 입고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이쁜이, 방귀냄새 소동, 공원에서 쭈구리가 눈 똥을 휴지로 치우지 않고 민들레를 피우도록 흙으로 덮어두는 이쁜이, 새해첫날 무작정 바다로 가는 이들 남매. 에피소드마다 장난기 가득하며 정이 담뿍 흐른다.

쭈구리는 이쁜이를 애완사람으로 안다. 어떻게 하면 내 말을 잘 들을 수 있을까, 하며 이쁜이를 길들이려한다. 하지만 번번이 성공하지 못하고 이들간의 긴장감이 또 어떤 사건을 물고 올까, 흥미진진하다. 사람들이 애완동물에 갖는 생각을 역으로 그리고 있어서, 사람을 되돌아볼 수 있게 한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3일동안 혼자 두고, 성대수술을 해버리고, 전지한 나무처럼 털을 다 깎아버리고, 동물을 사랑하지 않는 수의사와 질이 좋지 않은 사료를 만들어 파는 사람들을 나무란다.

편지가 네 통 등장한다. 처음의 두 통은 서로에게 잘못한 것을 고백하는 식으로 알고보면 오히려 상대의 약을 올리는 셈이다. 이걸 읽으면 키득키득 웃음이 난다. 끝부분에 이쁜이가 쭈구리에게 쓴 편지는 '닭살에 유치의 극치'다. 그런데 우리의 쭈구리는 이런 편지에 바로 무너져버린다. 얼마나 순수하고 착하냐.^^  작가가 진짜 쭈구리에게 쓴 편지는 가장 마지막에 있는데 가족에게 담긴 사랑이 가득하다. 그래도 이쁜이에게 오기 전의 주인, 황선생님 집에서 진돗개 가족과 나누는 대화를 보면 역시 작가는 우리 혈통의 개를 치켜세워주고 있는 것 같다. 퍼그가 아무리 귀족견이라해도 말이다.

이쁜아, 사랑해~ 라고 말하는 쭈구리. 역시 사랑은 상대를 길들이려고 호시탐탐 노리는 게 아니라, 내가 상대에게 알게 모르게 길들여지는 게 아닐까. 쭈구리의 깊은 생각이 또르르 말려올라간 꼬리에 힘있게 매달려있는 것 같아보인다. 쭈구리는 꼬리로 생각을 전한다고 하지. 심창국님의 만화같은 삽화는 이쁜이와 쭈구리의 실물을 퍽이나 닮게 그렸다. 사랑하면 서로 닮는다고, 둘의 얼굴도 닮아있다. 이 동화는 유쾌발랄함 중에  진지한 생각이 담겨 흐뭇한 웃음을 불러낸다. 3,4학년 정도의 아이들이 보면 재미있어할 것 같다. 참고로, 쭈구리는 사람이라면 별로 두려워하지 않지만 그 중에서 물불 가릴 줄 모르는 애들을 제일 무서워한다.~

문득 다니엘 페나크가 쓴 <까보 까보슈>가 생각난다. 이 책의 뒷면에 다니엘 페나크는 이렇게 써 놓았다.

- 개를 길들이려고 하지 말고 개에게 길들여지지도 말라는 거다...... 하지만 최소한의 훈련은 필요하다. 하지만 훈련이란 서로의 자존심을 존중할 것을 가르치는 일이다. "개의 자존심이란?" - 개답게 살아가는 일.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제대로 된 훈련사는 자기 자신을 훈련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스스로가 인간다운 품위를 지키며 행동하고자 한다면 자기 곁에 사는 개의 자존심을 존중해 주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말이다. 결국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는 일, 그것이 바로 우정의 규칙이다.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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