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공포영화를 볼까?
  2006/07/09 08:53
서일호      조회 715  추천 0

안녕하세요, 주간조선 서일호 기자입니다.

 

공포영화는 공포를 느끼고 즐기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다. 그렇다면 공포란 무엇일까? 공포(恐怖)의 사전적 의미는 ‘무서움’ 혹은 ‘장차 고통이나 재앙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할 때 일어나는 정서적 반응’이다. 부연설명하면, 인간이 신체적 위험에 직면하여 생존, 미래, 자신에 대한 존중을 위협 받을 때 나타나는 정서적 상태이다.

 일반적으로 공포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유전적으로 타고나는 공포와 학습에 의한 공포다. 먼저 유전적 공포는 인류의 생존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인간은 공포를 느낌으로써 위험에 맞서 싸우거나 도망갈 준비를 한다. 즉 공포는 그 상황에서 빨리 물러나야 한다는 신호 역할을 하는 것이다. 원시인은 맹수와 마주쳤을 때 공포를 느꼈기 때문에 도망가거나 싸울 준비를 해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현대에도 유전적 공포는 여전히 생존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큰 트럭이 갑자기 자신을 향해 돌진해올 때 공포를 전혀 느끼지 못한다면 피하지 않고 있다가 죽지만, 공포를 느껴 피한다면 생명을 건질 수 있다.

 인간은 후천적인 학습을 통해서도 공포를 느낀다. 공포 학습은 한두 번의 경험으로 신속하게 일어나고 오랜 시간 지속된다. 뜨거운 솥에 손을 댄 경험이 있는 아이는 그 한 번의 경험으로도 솥을 무서워한다. 높은 곳에서 떨어져 다치거나 개에게 물린 적이 있으면 이후 그 대상에게 더욱 큰 공포심을 갖게 된다.

 공포가 학습된 결과라고 주장하는 행동주의 심리학 실험 중 가장 고전적인 것이 ‘꼬마 앨버트 실험’이다. 행동주의 심리학자인 스키너가 자신의 아들인 앨버트를 대상으로 실험을 한 것이다. 스키너는 천둥이 칠 때 흰쥐가 앨버트의 앞을 지나가게 했다. 그 뒤 앨버트는 흰쥐를 보기만 하면 천둥소리를 들은 것처럼 놀랐다고 한다. 후천적인 공포는 그 대상이 무섭지 않다는 것을 다시 학습함으로써 극복할 수도 있다. 연세대 심리학과 김인경 박사는 “학습된 공포는 이전에는 없다가 자신이 극심한 공포를 느낀 시점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공포의 근원은 어떤 것일까? 공포가 발생하는 첫째 원인으로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들 수 있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타나토스(Thanatos·그리스어로 ‘죽음’)’라고 하는데, 정신분석학에서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모든 공포의 근원이라고 한다.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는 “사춘기 때뿐만 아니라 중년이 되면 인생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며 잊고 있었던 죽음을 떠올린다. 이때 죽음에 대한 공포가 중년을 방황하게 만들기도 한다”고 말했다.

 둘째로, 심리학에서 공포는 억압된 욕망의 투사(投射ㆍ심리학에서 쓰이는 용어로서 자신의 의식을 객관화하여 바라볼 수 있는 대상으로 만드는 것)로 발생한다고 정의한다. 즉 공포는 억압된 욕망이 형태를 갖춰 수면 위로 뛰쳐나온 것이다.

셋째로, 사회학에서는 억압 받는 대상인 여자나 노약자는 언제든지 억압하는 자에게 복수를 할 수 있는 공포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한다. 공포영화 속의 대다수 귀신이 여자, 아이, 노인인 것도 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공포를 담당하는 뇌(腦)의 부위가 있을까? 공포와 관련된 뇌 부위는 시상핵과 편도체다. 시상핵은 시상을 이루는 다수의 핵이고, 시상은 ‘주요 감각의 최종 중계소’라고 할 수 있다. 즉 시각, 청각, 체감각 등은 시상을 거쳐 대뇌피질(대뇌의 바깥층)에 전달된다. 후각을 제외한 모든 자극이 시상핵을 통과하고, 시상핵은 대뇌피질과 연결돼 있어 우리 몸에서 일어난 일을 대뇌피질세포에 전달해주는 것이다. 그런데 공포 자극을 받았을 때 시상핵은 이를 대뇌피질로 전달하기 전에 먼저 편도체를 자극한다.

 편도체는 변연계(대뇌피질의 안쪽을 둘러싸고 있는 구조물을 지칭하는 것)의 한 부위이다. 이 편도체가 공포 자극과 공포 반응을 연결해주는 기능을 한다. 공포관련 자극이 시상핵을 통해 편도체를 자극하면 신체에서 공포와 관련된 생리학적 반응을 일으키는 것이다.

 편도체를 제거한 쥐는 고양이 앞에서도 태연하고 심지어 잠자는 고양이 등에 올라 귀를 물기도 한다. 또 원숭이의 편도체를 손상시키면 뱀을 손으로 잡으려 하고 타오르는 불을 보고도 무서워하지 않는다.

 인간이 공포를 느끼면 어떤 신체적인 변화가 일어날까? 먼저 자율신경계(의식적인 인지나 노력 없이 내부기관을 통제·조절하는 척추동물의 신경계 일부)가 신체의 털세움근(피부 밑 털주머니에 붙어있다)을 수축시키면서 누워있던 털이 수직으로 일어선다.

 공포를 느끼면 추위를 느낄 때와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 피부에 소름이 돋고 목덜미의 털이 곧추서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이는 피부혈관에 공급되는 혈액이 줄어들고 근육이 수축하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간담이 서늘해지고 모골이 송연해지는 것이다.

 또 땀샘이 수축되면서 땀이 나고 방광이 수축돼 소변이 마려워진다. 동공이 커지는 것은 더 많은 빛을 들어오게 하기 위해서다. 침이 줄어 입이 마르는 것은 공포 대상과의 투쟁 혹은 도피에 도움이 되지 않는 소화활동을 억제하고자 함이다. 평소 공포영화를 자주 보고 강력한 놀이기구를 즐긴다는 대학생 이지연(21)씨는 “공포의 순간이 오기 직전의 긴장감이 짜릿함과 시원함을 동시에 느끼게 해준다”고 말했다.

 무더운 여름에 사람들이 공포영화를 즐기는 이유는 이 같은 신체적인 변화 때문이다. 세브란스 병원 정신과 이홍식 박사는 “공포감을 느끼는 경우 맥박, 호흡이 빨라지고 말초신경계 역시 자극되면서 손발이 차가워지고 진땀이 나게 된다”고 말했다. 특히 말초신경계의 자극은 공포감을 느끼는 사람들의 몸을 차갑게 만들기 때문에 무더위를 쫓기에도 좋다고 한다.

 생리학적으로 보면, 공포영화나 놀이기구의 자극은 아드레날린이나 도파민과 같은 흥분성 신경전달 물질을 생성시키기 때문에 짜릿한 쾌감이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하지만 정신분석학자들은 공포 자극도 반복되면 일종의 중독성을 보인다고 경고한다.

 또 공포는 고통을 감소시킨다. 인간이 공포를 느낄 때에는 고통이 줄어들게 진화되어 왔다. 극심한 공포상황에서는 고통을 잊도록 뇌에서 진통효과가 있는 신경전달물질을 내보내 고통을 덜 느끼게 되는 것이다.

 사회학적으로 보면, 공포영화는 억눌린 욕망이나 이데올로기를 해소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공포 체험은 금기나 좌절된 욕망을 해방시키는 기능을 한다. 개인적으로는 현실에서 해소되지 않는 욕구를 발산하고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이며, 사회적으로는 현실의 모순을 집단적으로 해결해서 대리 만족을 얻는 것이다.

 정신의학에서는 사람들이 공포영화를 즐기는 것은 ‘카운터 포빅 애티튜드(Counter-phobic Attitude·역공포 태도)’ 때문이라고 한다. 즉 안전함이 보장된 가운데 ‘유사 공포’를 겪음으로써 앞으로 다가올 공포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심리적 항체를 만드는 예방주사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김혜남 신경정신과의 김혜남 원장은 “두려워하는 것을 일부러 함으로써 정복하는 것”이라며 “내부의 공포를 객관화시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보면서 통제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 극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특정 대상이나 상황에 부닥쳤을 때 비현실적인 두려움과 과도한 불안 증세를 느낀다면 공포증이라 부르는 병이 될 수 있다. 여기에는 광장 공포증, 폐쇄 공포증, 고소 공포증, 대인 공포증 등이 있다. 이홍식 박사는 “공포가 지속되는 경우 위장경련, 요통, 배뇨 장애와 같은 행동 장애와 함께 집중력과 기억력이 떨어지면서 공포감을 느꼈던 것을 계속 이야기하는 인지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 또 공포감에 사로잡히면 절망적인 생각을 계속 하게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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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07-12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보니까 <알 포인트>를 볼 때의 극도의 공포감이 되살아난다. 욕망의 투사. 시각은 모든 욕망의 근원. 보이지 않는 자는 결국 공포로부터 살아남았다. 요즘 계절이니 계절이니만큼 공포영화들이 많이 나오던데 그중에서는 '스승의 은혜'가 젤 보고 싶다.

또또유스또 2006-07-14 0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36412

안녕히 주무세요..

 제가 일등 했어요  ^^


프레이야 2006-07-14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섬증을 많이 타시는 (귀여운 ㅋㅋ)또또님, 공포영화 보면 기절하실테니 절대 보지 마시고 재미나고 따뜻한 영화 보시길... 옆지기님이랑요^^ 오늘 덥네요~~

또또유스또 2006-07-14 1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흫 사실 저거 일등 캐쳐 하면서 여그다 댓글 올리다가 마구 무서워져서 알라딘을 뛰쳐 나가 바로 잤다는거 아닙니까...
무섬증하나는 정말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전출처 : 이매지 > 구스타브 클림트의 키스*클림트 온라인 전시회



 

 황금색 옷을 걸치고 아름다운 여인과 키스하는 황홀한 포즈, 연인들이 즐겨 찾는 카페의 벽에 걸릴 그림 1순위, 행복한 그림의 주인공이 바로 클림트다.


 금색은 인쇄상으로는 제대로 표현되지 못하므로 '키스'가 인쇄된 어떤 종이도 '키스'의 작품성을 3분의 1정도 밖에는 보여주지 못한다고 한다. 직접 그림을 감상한 이들은 그 황금 빛깔에 눈이 부시고 정신이 몽롱해질 정도라고...


 그러나 정작 이를 그린 그는 너무나 불행하고 외로웠다. 오스트리아 빈 보헤미안 출신의 금세공사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어느 해인가는 크리스마스 때인데도 집에 빵 한 조각이 없었다”고 할 정도로 궁핍했다. 일찍 아버지와 동생을 잃은 그에게 죽음은 충격과 두려움 그 자체였다. 그는 생전 어머니와 누이동생을 아끼며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그러나 그는 사랑이 풍부한 남자였다. 무려 수십명의 여인이 그의 품을 거쳐갔다. 심지어 그가 죽었을 때 14명의 사생아 어머니가 대신 유산상속을 청구할 정도였다  모델이 됐던 여성과는 정사를 나눈다는 소문이 난무할 만큼 여성편력이 탁월했던 그는 ‘빈의 카사노바’로 불렸다.


 ‘선수’인 그에게 이 키스란 주제는 전혀 어렵지 않은 것이었다. 이 모델은 클림트와 빈의 실업가의 아내인 아델르 블로흐 바우어로 추정된다.

몽환적인 분위기와 장식성으로 많은 여인을 유혹한 에로티시즘의 대표작 ‘키스’는 무릎을 꿇고 있는 여인, 안고 있는 남자의 뜨겁고 강렬한 포옹, 여인의 매혹적인 얼굴 표정이 관능미의 절정을 보여준다.

두 남녀를 둘러싼 황금색의 배경과 금색의 나뭇잎 줄기, 화사한 꽃밭에 무릎을 꿇은 아름다운 여인, 남자의 옷에 그려진 패턴화된 기하학적 사각형무늬, 여인의 옷에 수놓은 꽃처럼 화려한 색상이 대조를 이루고 있다.

쉴레 역시 똑같은 그림을 본떠 ‘추기경과 수녀’를 제작할 만큼 ‘포옹’은 큐비스트, 표현파, 초현실주의자 브랑쿠지의 키스까지 화가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테마였다.


 실제 그는 동양미술의 콜렉터로서 황금색의 비잔틴적 요소와 일본 기모노 디자인 영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당시 자포니즘(일본주의)은 고흐와 모네, 인상파 화가들에게도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그의 아름다운 작품들은 ‘채색된 슈베르트의 선율’이라 불릴 만큼 사람들을 열광케 했지만, 시대를 앞서간 예술가는 육체적 욕망이 강렬하고 노골적이라는 이유로 병적이며 관능적이라는 비난에 시달렸다.

‘춘화작가’ ‘변태성욕자의 무절제’라는 이 극단적인 비판은 거장 베토벤을 기념해 만든 30m 대작 ‘베토벤 프리체’도 여론의 격렬한 분노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56세, 클림트는 신체마비와 독감으로 평생의 연인이자 동생의 부인이었던 에밀리에 플뢰게 품에서 죽었다. 그는 죽으면서 “나는 결코 자화상을 그린 적이 없다. 나는 내 자신보다 여성에게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비엔나 미술을 대표하는 가장 탁월하고 혁신적인 화가 클림트의 최후였다.

 

〈김종근|미술평론가 critickim@hanmail.net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 1862~1918) | 오스트리아 빈 출생. 빈의 미술공예학교를 나온 뒤 역사주의 특히 매커드의 감화를 받아 괴기·장식적인 화풍을 전개하였다. 유명한 부르크극장의 벽면장식에서는 모든 유파를 절충한 양식이 보이나 1898년경부터는 독자적인 장식 패턴을 구사하여 상징의 주제를 찾아냈다. 유겐트 양식의 우두머리이기도 하다. 1900∼1903년에는 빈대학교의 벽화를 제작하였는데 그 표현이 너무나 생생하여 스캔들을 불러일으켰으며, 이후 고독에 묻혀 자기 스타일에 파고들었다. 동양적인 장식양식에 착안한 점, 추상화와도 관련을 가지면서 템페라·금박·은박·수채를 함께 사용한 다채로운 기법은 그의 독창적인 기법이다. 대표작에 《프리차 리들러 부인》(1906),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 부인》(1907) 등 초상화와 《부채를 든 여인》《입맞춤》(1908) 등이 있다.

 

 구트타브 클림트 온라인 전시회 

 

출처 : http://blog.naver.com/mrbookman/500060408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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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 2006-07-12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클림트.... 저 여자의 발 좀 보세요. 발조차 사랑 앞에서 달콤해하고 있네요.^^

프레이야 2006-07-12 1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자림님의 섬세한 눈길이 더 달콤해요~~^^

비자림 2006-07-12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춤추는인생. 2006-07-13 0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몽환적이예요 클림트의 그림은.
비록 순간일지라도 죽도록 사랑해라. 그림은 제게 이렇게 말하는것 같습니다.^^
 
 전출처 : 水巖 > 아빠들이 아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들


<멋진 아빠되기>
아빠가 한가지만 잘해줘도…
옛날, 역적으로 몰려 부모를 일찍 여읜 두 아이가 있었다. 이제 반겨줄 친구나 친척도 없다. 도망자가 된 형제는 원수를 갚기로 맹세를 하며 10년 후에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헤어진다. 절치부심, 와신상담하며 복수의 그 날을 위하여 10년 동안 무술을 갈고 닦았다. 드디어 약속 날짜가 되었다. 훌쩍 커버린 체구에 서로 놀랐지만 억울하게 돌아가신 부모님을 생각하니 만감이 교차한다.

만남의 기쁨도 잠깐, 형제는 서로의 실력을 알아보기로 했다. 형은 오직 단칼만을 익혔으나 욕심이 많은 동생은 무려 10가지를 터득했다고 자랑이다. 대결이 벌어졌다. 형은 가슴에서 달랑 단칼 하나를 꺼냈다. 동생은 긴 칼로 단번에 형을 제압하려고 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동생은 일합도 버티지 못하고 칼을 떨어트리고 말았다. 화가 난 동생은 삼지창, 봉, 쌍절곤 등으로 맞섰지만 결국 형을 당해내지 못했다.

지난주, 결혼 25년차 엄마와 우연히 만났다. 그녀는 필자의 명함을 받고는 기뻐하며 남편의 경험담을 이야기했다. 그녀의 아이는 20세가 넘었는데도 불구하고 아빠를 더 좋아한다고 한다. 특별히 남편이 아이에게 잘해준 것도 별로 없는데 말이다. 그러나 남편은 한 가지를 잘했다. 바로 어릴 적부터 아이가 잠자기 전에 동화책을 매일 읽어준 것이다. 심지어 고등학생일 때에도 아이는 잠이 오지 않으면 아빠를 불렀다. 아빠가 책을 읽어 주면 그때서야 편안하게 잠이 들곤 했다. 아빠들이 아이들을 위해 가볍게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자.

◈3~8세의 아빠=①아이에게 매일 한번 전화를 한다. 서로 존재에 대한 교감이 목적이다. 주로 칭찬과 덕담을 한다. ②매일 동화책을 읽어준다. 짧은 내용으로 가볍게 시작하자. ③하루에 1분 업어준다. 이야기를 안해도 된다. 스킨십이 많아지면 아빠를 좋아하게 된다.

◈3~11세의 아빠=①하루에 1분 놀아준다. 아이가 달려들면 절대 피하지 말고 일단 몸으로 부딪치자. ②주말에 30분간 놀아준다. 사전에 시간과 놀이방법을 약속한다. ③1년에 사진앨범 1권을 만든다. 카메라 2대는 필수. 집과 차에 항상 카메라를 준비하자.

◈3~13세의 아빠=아이와 목욕탕에 간다. 대부분 아이들이 물놀이를 좋아하므로 충분한 시간을 준다. 사춘기가 되면 맛있는 것을 사주면서 아빠의 경험담을 이야기해준다.

◈6~13세의 아빠=①한달에 한 번 책을 사준다. 큰 책방에 가서 1시간 이상 머물라. 시간이 가면 아이가 스스로 책을 고르는 안목이 생기게 된다. ②아이만큼 컴퓨터 게임을 알자.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하게 되면 금방 마음을 사로잡게 된다. ③주말농장을 해보자. 경제적이며 농촌체험과 생태체험이 저절로 이루어진다.

멋있는 아빠가 되기는 쉽다. 한 가지라도 꾸준히 하면 된다. 오히려 커다란 결심이나 목표를 세우지 말자. 시작이 무거우면 금방 지쳐서 오히려 약속을 어기게 된다. 그러면 아이는 실망과 배신감을 느낄 수도 있다.

속성 코스로 좋은 아빠가 되려는 마음도 버려야 한다. 가족이란 생활을 통하여 교감한다. 바로 그 속에서 자신 있고, 쉽게 할 수 있는 한 가지를 찾아서 한 번 해보자. 진리가 가까이 있는 것처럼 아이가 좋아하는 것도 멀리 있지 않다. 놀기 위하여 많은 지식이 필요 없다. 꾸준한 실천이 필요하다.


권오진 ‘아빠와추억만들기(www.swdad.com)’ 단장
 
출처 :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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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13 0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6-07-13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님, 좋은 아빠 될 수 있을 거에요^^

씩씩하니 2006-07-13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신랑은 하루에 1시간을 함께 텔레비젼을 본다,,거를 어기지 않고 꼭 하는데..건 안좋은거져,혜경님???

프레이야 2006-07-13 1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함께 텔레비전 보기.. 울집 아빠는 이것도 안 하는 걸요..ㅜㅜ
 
백성이 잘사는 나라를 꿈꾼 실학자 : 정약용 공부가 되는 위인전 5
양태석 지음, 강봉승 그림 / 해와나무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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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인물 중 오히려 잘 못 알고 있는 경우가 있다. 특히 아이들이 과거의 인물에 대한 이야기책을 읽을 때는 잘 골라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글을 쓰는 사람의 목소리와 시선이 중요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 책은 '공부가 되는 위인전'이라는 시리즈로 다섯번째의 이야기로 실학을 집대성한 위대한 인물, 정약용에 대한 이야기책이다. 5학년 아이들과 함께 읽었는데, 배경지식이 좀 덜한 아이들은 조금 어려워했지만 보통 이상이라면 꽤 흥미롭게 읽은 것 같아보였다. 인물을 따라가며 역사 지식도 함께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알찬 시리즈로 보인다.

인물이야기를 읽을 때면 인물이 살았던 시대 상황과 그런 상황이 나오게 된 역사적 배경을 먼저 알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작가의 머릿말에서 부터 시작하여 그런 배경에 대한 사전 지식을 주고 시작한다. 13가지로 분류하며 내려간 '차례'의 소제목들을 보면 정약용의 일대기를 대략 따라가볼 수 있다. 책의 뒷장에서는 '책속의 책'이란 꼭지를 두어 역사와 관련하여 정약용이 살았던 시대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할 사항을 조목조목 정리해두어 참고하기에 좋다. 당파, 실학자들, 한국 천주교회의 역사 그리고 조선시대 농민들의 살림살이, 정조의 효심에 대한 꼭지가 있고 마지막에는 정약용이 18년이나 귀양살이를 했다는 점을 감안하여 귀양의 등급에 대한 간단한 설명도 있다. 본문으로 들어가기 전, 우리나라 지도로 보는 '조선시대 실학의 발달' 도 잘 두었다 싶다. 삽화와 사진자료도 적당히 있어 내용과 함께 참고하기에 도움이 된다.

정약용의 개혁정신과 함께 그를 위인으로 부를 수 있는 까닭은 죽을 때까지 '백성들이 보다 잘 사는 삶'만 생각한 그의 애민사상을 들 수 있겠다.  그의 이런 사상은 유배지에서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도 잘 나타나 있다.  아이들과 함께 읽은 보조자료의 글을 옮겨본다.  소박하고 진지하며 강한, 감동적인 글이다.

 정약용의 편지

  너희들은 편지에서 항상 버릇처럼 말하기를 일가친척 중에 한 사람도 긍휼이 여겨 돌보아 주는 사람이 없다고 개탄하였고, 더러는 험난한 물길 같다느니, 꼬불꼬불 길고 긴 험악한 길을 살아간다고 한탄하는데, 이는 모두 하늘을 원망하고 사람을 미워하는 말투니 큰 병통이다. 전에 내가 벼슬하고 있을 때에는 조금 근심할 일이나 질명의 고통이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돌봐 주게 마련이어서 날마다 어떠시냐는 안부를 전해오고, 안아서 부지해주는 사람도 있고, 약을 먹여주고 양식까지 대어주는 사람도 있어서 이런 일에 익숙해진 너희들이라 항상 은혜를 베풀어줄 사람이나 바라고 있으니 가난하고 천한 사람의 본분을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남의 도움이나 받으면서 살라는 법은 애초 없었다. 더구나 우리 일가친척은 서울과 시골에 뿔뿔이 흩어져 은정을 입을 수도 없었다. 지금 와서 공박하지 않는 것만도 두터운 은혜일 텐데 어떻게 돌봐 주고 도와 주는 일까지 바라겠느냐? 오늘날 이처럼 집안이 패잔하긴 했지만 다른 일가들에게 비하면 오히려 부자라 할 수도 있겠다. 다만 우리보다 못한 사람을 도와 줄 힘이 없을 뿐이다. 그렇게 극심하게 가난하지도 않고 또 남을 돌볼 힘은 없으니, 바로 남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될 처지가 아니겠느냐? 모든 일이란 안방 아낙네들로부터 일어나니 유심히 살펴서 조치하고 마음속으로 남의 은혜를 받고자 하는 생각을 버린다면 저절로 마음이 평안하고 그런 병통은 사라질 것이다.

  여러 날 밥을 끓이지 못하고 있는 집이 있을 텐데 너희는 쌀되라도 퍼다가 굶주림을 면하게 해 주고 있는지 모르겠구나. 눈이 쌓여 추워 쓰러져 있는 집에는 장작개비라도 나누어 주어 따뜻하게 해 주고, 병들어 약을 먹어야 할 사람들에게 한 푼의 돈이라도 쪼개서 약을 지어 일어날 수 있도록 도와 주고, 가난하고 외로운 노인이 있는 집에는 때때로 찾아가 무릎 꿇고 모시어 따뜻하고 공손한 마음으로 공경하여야 하고, 근심걱정에 싸여 있는 집에 가서는 얼굴빛을 달리하고 깜짝 놀란 눈빛으로 그 고통을 함께 나누고 잘 처리할 방법을 함께 의논해야 하는 것인데 잘들 하고 있는지 궁금하구나. 이런 몇 가지 일도 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다른 집에서 너희들이 위급할 때 깜짝 놀라 허겁지겁 쫓아올 것이며, 너희들이 곤경에 처했을 때 달려올 것을 바라겠느냐? 남이 어려울 때 자기는 은혜를 베풀지 않으면서 남이 먼저 은혜를 베풀어주기만 바라는 것은 너희들이 지닌 그 오기 근성이 없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략 ) 뒷날 너희가 근심걱정할 일이 있을 때 다른 사람이 보답해 주지 않더라도 부디 원한을 품지 말 것이고 바로 미루어 용서하는 마음으로 “그분들이 마침 도울 수 없는 사정이 있거나 도와줄 힘이 미치지 않기 때문이구나.” 라고 생각할 뿐, 가벼운 농담일망정 “나는 전번에 이리저리 해 주었는데 저들은 이렇구나!” 하는 소리를 입 밖에 내뱉지 말아야 된다. 만약 이러한 말이 한 번이라도 입 밖에 나오면 지난 날 쌓아놓은 공과 덕이 하루아침에 재가 바람에 날아가듯 사라져 버리고 말 것이다.

        

 -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 정약용 지음/박석무 편역/ 창작과비평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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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하 2006-07-13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산의 편지는 감동적이네요.
예전에 지갑을 잃는등 신경질이 나는 일이 잇달아 생긴적이 있는데, 어느 자신 몸보다 훨씬 큰 리어카를 끌고 다니시는 할머니가 더 못한 사람에게 지갑에 돈을 꺼내서 주시는 모습보고 많이 감동한적이 있어요. 다행히 지갑을 잃어서 지갑찾다가 그 장면을 볼 수 있었거든요. 잃어버려서 좋았는데....^^; 어려운 세상을 살아도 따뜻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많은 분들이 있어서 아직 세상은 좋은 것 같아요.

프레이야 2006-07-13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님, 그런 적 있죠. 우리는 늘 내가 잃어버린 것, 내가 못 가졌다고 생각되는 것에 애닯아하며 속을 태우기가 쉬운 것 같아요. 다산의 편지글이 그런 마음에 회초리가 되는 것 같아요. 요즘 아이들 가져도 가져도 더 갖고만 싶어하는데 이런 소박하면서도 강건한 마음이 엿보이는 가르침이 필요할 것 같아서요.. 님의 작은 경험담이 울림을 줍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윗지방에는 비 피해가 심해 걱정이에요.
 

[이진원 기자의 바른말 광] 反軍(반군),사전엔 없다

'간고등어,감자탕,밀면,밤호박,쓴소리,윗선,호객꾼'처럼,우리가 많이 쓰지만 사전엔 없는 말이 '뜻밖'에 많다.(우리는 대개 우리가 쓰는 말을 사전이 거의 대부분 규정하고 있으리라 믿는다. 근거 없는,지나친 믿음은 이처럼 놀라움이나 배신감으로 끝을 볼 때가 종종 있다.)

또 신문제목 <"美,소말리아 철군 뒤에도 反軍지원">에 나온 '反軍(반군)'도 역시,의외로,사전에서 찾아볼 수 없는 말이다. 혹시 어떤 독자는 실제로 찾아보다가 '아니! 이렇게 사전에 실려 있는데…' 하고 신문사에 전화를 하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아실 것이다. 사전에 나온 그 반군과 위의 신문제목에 나온 반군은 같은 게 아니라는 것을…. 사전엔 이렇게 돼 있다.

'반군(反軍) : (1) 군부에 반대함. (2) 군벌 또는 군국주의에 반대함.'

쉽게 말해,사전에 나온 반군은 군부나 군벌이나 군국주의에 '반대하는 일'이다. '행위'인 것이다. 그러니 이 두 반군은 같지 않은 것이다. 반대하는 행위는 '반미','반독재'라고 하지만 반대하는 사람은 '반미주의자나 반미파','반독재주의자'라고 한다. 하는 짓은 '친일'이고 그 짓 하는 사람은 '친일파'다. 마찬가지로 사람을 가리키는 '반군세력'이나 '반군파'를,행위를 뜻하는 '반군'으로 줄여 쓸 수 없다. 이 자리에는 '反軍'이 아니라 '叛軍(반군)'을 써야 된다. 이 '반군'은 '반란군'을 줄인 말이니 '행위'가 아니라 그런 행위를 하는 '군대(사람)'를 가리킨다.

이렇게 '反軍'과 '叛軍'이 분명히 다른데도 혼란이 일어나는 것은 몇몇 신문과 언론인들 때문이다. '反軍'을 사람으로 써 버릇한 것은 지난 1980년대에 미국의 지원을 받던 니카라과 반군(콘트라)을 반란군으로 표기할 순 없지 않겠느냐는 '잘못된 깊은 생각'이 낳은 산물인 것이다.

하지만 미국 처지에서 생각해 주다가 우리말 체계까지 뒤흔들 수는 없는 법. '反軍 시위'나 '反軍하다'는 되지만 '叛軍 시위,叛軍하다'는 말이 안 되는 걸 생각하면,가치판단에 따라 '叛軍'과 '反軍'을 섞어 쓰는 엇나간 버릇은 이제 버려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그렇게 미국 눈치 보이면 한글로 쓰든지…. jinwoni@busa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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