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이 잘사는 나라를 꿈꾼 실학자 : 정약용 공부가 되는 위인전 5
양태석 지음, 강봉승 그림 / 해와나무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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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인물 중 오히려 잘 못 알고 있는 경우가 있다. 특히 아이들이 과거의 인물에 대한 이야기책을 읽을 때는 잘 골라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글을 쓰는 사람의 목소리와 시선이 중요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 책은 '공부가 되는 위인전'이라는 시리즈로 다섯번째의 이야기로 실학을 집대성한 위대한 인물, 정약용에 대한 이야기책이다. 5학년 아이들과 함께 읽었는데, 배경지식이 좀 덜한 아이들은 조금 어려워했지만 보통 이상이라면 꽤 흥미롭게 읽은 것 같아보였다. 인물을 따라가며 역사 지식도 함께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알찬 시리즈로 보인다.

인물이야기를 읽을 때면 인물이 살았던 시대 상황과 그런 상황이 나오게 된 역사적 배경을 먼저 알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작가의 머릿말에서 부터 시작하여 그런 배경에 대한 사전 지식을 주고 시작한다. 13가지로 분류하며 내려간 '차례'의 소제목들을 보면 정약용의 일대기를 대략 따라가볼 수 있다. 책의 뒷장에서는 '책속의 책'이란 꼭지를 두어 역사와 관련하여 정약용이 살았던 시대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할 사항을 조목조목 정리해두어 참고하기에 좋다. 당파, 실학자들, 한국 천주교회의 역사 그리고 조선시대 농민들의 살림살이, 정조의 효심에 대한 꼭지가 있고 마지막에는 정약용이 18년이나 귀양살이를 했다는 점을 감안하여 귀양의 등급에 대한 간단한 설명도 있다. 본문으로 들어가기 전, 우리나라 지도로 보는 '조선시대 실학의 발달' 도 잘 두었다 싶다. 삽화와 사진자료도 적당히 있어 내용과 함께 참고하기에 도움이 된다.

정약용의 개혁정신과 함께 그를 위인으로 부를 수 있는 까닭은 죽을 때까지 '백성들이 보다 잘 사는 삶'만 생각한 그의 애민사상을 들 수 있겠다.  그의 이런 사상은 유배지에서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도 잘 나타나 있다.  아이들과 함께 읽은 보조자료의 글을 옮겨본다.  소박하고 진지하며 강한, 감동적인 글이다.

 정약용의 편지

  너희들은 편지에서 항상 버릇처럼 말하기를 일가친척 중에 한 사람도 긍휼이 여겨 돌보아 주는 사람이 없다고 개탄하였고, 더러는 험난한 물길 같다느니, 꼬불꼬불 길고 긴 험악한 길을 살아간다고 한탄하는데, 이는 모두 하늘을 원망하고 사람을 미워하는 말투니 큰 병통이다. 전에 내가 벼슬하고 있을 때에는 조금 근심할 일이나 질명의 고통이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돌봐 주게 마련이어서 날마다 어떠시냐는 안부를 전해오고, 안아서 부지해주는 사람도 있고, 약을 먹여주고 양식까지 대어주는 사람도 있어서 이런 일에 익숙해진 너희들이라 항상 은혜를 베풀어줄 사람이나 바라고 있으니 가난하고 천한 사람의 본분을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남의 도움이나 받으면서 살라는 법은 애초 없었다. 더구나 우리 일가친척은 서울과 시골에 뿔뿔이 흩어져 은정을 입을 수도 없었다. 지금 와서 공박하지 않는 것만도 두터운 은혜일 텐데 어떻게 돌봐 주고 도와 주는 일까지 바라겠느냐? 오늘날 이처럼 집안이 패잔하긴 했지만 다른 일가들에게 비하면 오히려 부자라 할 수도 있겠다. 다만 우리보다 못한 사람을 도와 줄 힘이 없을 뿐이다. 그렇게 극심하게 가난하지도 않고 또 남을 돌볼 힘은 없으니, 바로 남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될 처지가 아니겠느냐? 모든 일이란 안방 아낙네들로부터 일어나니 유심히 살펴서 조치하고 마음속으로 남의 은혜를 받고자 하는 생각을 버린다면 저절로 마음이 평안하고 그런 병통은 사라질 것이다.

  여러 날 밥을 끓이지 못하고 있는 집이 있을 텐데 너희는 쌀되라도 퍼다가 굶주림을 면하게 해 주고 있는지 모르겠구나. 눈이 쌓여 추워 쓰러져 있는 집에는 장작개비라도 나누어 주어 따뜻하게 해 주고, 병들어 약을 먹어야 할 사람들에게 한 푼의 돈이라도 쪼개서 약을 지어 일어날 수 있도록 도와 주고, 가난하고 외로운 노인이 있는 집에는 때때로 찾아가 무릎 꿇고 모시어 따뜻하고 공손한 마음으로 공경하여야 하고, 근심걱정에 싸여 있는 집에 가서는 얼굴빛을 달리하고 깜짝 놀란 눈빛으로 그 고통을 함께 나누고 잘 처리할 방법을 함께 의논해야 하는 것인데 잘들 하고 있는지 궁금하구나. 이런 몇 가지 일도 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다른 집에서 너희들이 위급할 때 깜짝 놀라 허겁지겁 쫓아올 것이며, 너희들이 곤경에 처했을 때 달려올 것을 바라겠느냐? 남이 어려울 때 자기는 은혜를 베풀지 않으면서 남이 먼저 은혜를 베풀어주기만 바라는 것은 너희들이 지닌 그 오기 근성이 없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략 ) 뒷날 너희가 근심걱정할 일이 있을 때 다른 사람이 보답해 주지 않더라도 부디 원한을 품지 말 것이고 바로 미루어 용서하는 마음으로 “그분들이 마침 도울 수 없는 사정이 있거나 도와줄 힘이 미치지 않기 때문이구나.” 라고 생각할 뿐, 가벼운 농담일망정 “나는 전번에 이리저리 해 주었는데 저들은 이렇구나!” 하는 소리를 입 밖에 내뱉지 말아야 된다. 만약 이러한 말이 한 번이라도 입 밖에 나오면 지난 날 쌓아놓은 공과 덕이 하루아침에 재가 바람에 날아가듯 사라져 버리고 말 것이다.

        

 -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 정약용 지음/박석무 편역/ 창작과비평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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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하 2006-07-13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산의 편지는 감동적이네요.
예전에 지갑을 잃는등 신경질이 나는 일이 잇달아 생긴적이 있는데, 어느 자신 몸보다 훨씬 큰 리어카를 끌고 다니시는 할머니가 더 못한 사람에게 지갑에 돈을 꺼내서 주시는 모습보고 많이 감동한적이 있어요. 다행히 지갑을 잃어서 지갑찾다가 그 장면을 볼 수 있었거든요. 잃어버려서 좋았는데....^^; 어려운 세상을 살아도 따뜻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많은 분들이 있어서 아직 세상은 좋은 것 같아요.

프레이야 2006-07-13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님, 그런 적 있죠. 우리는 늘 내가 잃어버린 것, 내가 못 가졌다고 생각되는 것에 애닯아하며 속을 태우기가 쉬운 것 같아요. 다산의 편지글이 그런 마음에 회초리가 되는 것 같아요. 요즘 아이들 가져도 가져도 더 갖고만 싶어하는데 이런 소박하면서도 강건한 마음이 엿보이는 가르침이 필요할 것 같아서요.. 님의 작은 경험담이 울림을 줍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윗지방에는 비 피해가 심해 걱정이에요.